매미가 시끄럽다고?
입추 뒤에 말복이 버티고 섰다. 가을 초입에 질긴 여름이 도사리고 있으니 계절의 지혜는 선들바람 먼저 맞으려는 윤똑똑이를 나무란다. 처서가 오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하지만 여름 매미는 입추가 돼도 여전히 운다. 외가닥 소나무 가지에 앉은 매미 한 마리. 푸르른 솔잎은 싱싱하고 길차다. 매미는 더듬이질도 멈춘 채 소나무에 들러붙었다. 날개는 얼마나 투명한가. 앞뒤 날개, 속과 겉이 유리알처럼 끼끗하다. 눈 밝은 겸재 정선의 붓질이 놀랍다. 매미는 식물의 수액을 먹고 자란다. 옛 문인은 그런 매미에게서 다섯 가지 덕을 찾아냈다. 첫째가 문(文)이다. 머리에 갓끈이 달려 문자속이 보인다. 둘째가 청(淸)이다. 이슬을 마시니 맑다. 셋째가 염(廉)이다. 곡식을 축내지 않아 염치가 있다. 넷째가 검(儉)이다. 살 집을 안 지어 검소하다. 다섯째가 신(信)이다. 철에 맞춰 오가니 믿음이 있다. 그뿐만 아니다. ‘순자’를 보면 ‘군자의 배움은 매미가 허물 벗듯 눈에 띄게 바뀐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미물인 매미도 군신의 도리를 다 안다. 매미의 날개는 관모(冠帽)에도 붙어 있다. 펼친 날개 모양이 신하의 오사모이고 나는 날개 모양이 임금의 익선관이다. 모름지기 매미의 오덕을 기억하라는 가르침이다. 다 큰 매미의 한살이는 짧다. 한 달을 못 넘긴다. 하지만 땅속에서 몇 차례 탈바꿈하는 애벌레 시절은 길다. 짧은 출세를 위해 긴 수련을 거치는 것이다. 긴 목숨 인간은 살아서 몇 가지 덕을 실천하는가. 매미 우는 소리 들을 때마다 돌아볼 일이다. |
난초가 어물전에 간다면
소동파가 어느 날 난초 그림을 보았다. 난은 가슴 설레도록 아름다웠다. 시심에 겨워 그는 시 한 수를 적었다. ‘춘란은 미인과 같아서/ 캐지 않으면 스스로 바치길 부끄러워하지/ 바람에 건듯 향기를 풍기긴 하지만/ 쑥대가 깊어 보이지 않는다네’.
제 발로 찾아오는 미인은 없다. 향기를 좇아가도 웬걸, 쑥대 삼대가 가로막아 만나기 힘들다. 난초 그리기도 미인의 환심을 사기만큼 어렵다. 난 잎의 시작은 못대가리처럼, 끝은 쥐꼬리처럼, 가운데는 사마귀 배처럼 그린다. 잎이 교차하는 곳은 봉황 눈을 닮아야 하고 잎이 뻗어나갈 때는 세 번 붓 꺾임이 있어야 한다. 이럴지니 그림 속 난향인들 쉽사리 풍기겠는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난초는 홑잎이다. 봉긋하게 솟은 난 잎의 자락이 요염한데, 봉오리가 뱀 대가리마냥 혀를 날름거린다. 매우 고혹적인 병치다. 아래쪽 고개를 쳐든 풀은 지초다. 난초와 지초가 나란히 있으니 이른바 ‘지란지교’다. 벗과 벗의 도타운 사귐은 난초와 지초의 어울림과 같다. 그것도 모자라 대원군은 맨 아래에 공자 말씀을 덧붙인다. ‘착한 사람과 지내는 것은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난초는 미인이자 선인(善人)이다. 예나 오늘이나 남자는 예쁜 여자를 찾는데, 지금 여자는 나쁜 남자를 좋아한단다. 예쁜 여자와 나쁜 남자의 만남을 어찌 일컬을지 모르겠다. 다만 공자의 이어지는 말은 이렇다. ‘나쁜 사람과 지내는 것은 어물전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오래되면 냄새를 못 맡고 비린내에 젖는다’.
벼슬 높아도 뜻은 낮추고
멋쩍은 퀴즈 하나 내보자. 이 양반의 패션에서 어색한 걸 고른다면? 정답은 모자와 옷. 격에 안 어울리는 복색이다. 모자는 벼슬아치의 오사모인데 옷은 야인의 평복이다. 무인으로 치면 투구 쓰고 베잠방이 걸친 꼴이다. 이 엉뚱한 차림새에 무슨 까닭이 있을까. 작품은 강세황의 자화상이다. 그는 제 모습을 그린 뒤 해명 삼아 그림 속에 글을 남겼다. ‘저 사람이 누군가. 수염과 눈썹이 새하얀데 머리에 오사모를 쓰고 옷은 야복을 입었네. 이로써 안다네, 마음은 산림에 있는데 이름이 조정에 올랐음을. 가슴에 온갖 책이 들어있고 붓으로 오악을 흔들어도 남들이 어찌 알까, 나 혼자 즐길 따름이라네…’ 지식과 경륜은 자족의 방편일 뿐, 벼슬길에 나아가도 마음은 온통 초야에 쏠려 있다는 고백이다. 강세황이 어떤 인물인가. 젖 냄새 날 때 시를 짓고 그림을 품평했으며 열 살 갓 넘겨 선비들의 과거 답안지에 훈수를 두었다는, 이른바 ‘엄친아’였다. 병조참판과 한성판윤을 지냈으나 벼슬보다는 창작과 비평을 오가며 예림의 총수로 군림한 이력이 더욱 빛났다. 일흔 나이에 그린 그의 자화상은 겉볼안이다. 깊숙한 눈두덩에 배운 자의 사려가, 긴 인중과 다문 입술에 과묵한 성정이, 하관이 빠른 골상에 칼칼한 지성이 풍긴다. 그런 그도 출사(出仕)는 환갑이 넘어서 했다. 예부터 벼슬은 높이고 뜻은 낮추랬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포의(布衣) 시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벼슬은 모름지기 복어알과 같다. 잘못 삼키면 독이 된다. 젊은 나이에 입각했다고 입맛 다실 일이 아니다. |
지고 넘어가야 할 나날들
‘보부상’은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다. 둘 다 조선의 떠돌이 장사치다. 봇짐장수는 부피가 작은 비단, 구리, 수달피 등을 보자기에 싸서 다녔고, 등짐장수는 부피가 큰 어물, 소금, 토기 등을 지게에 지고 다녔다. 장 따라 부랑하는 그들은 대개 홀아비나 고아였다. 상민(常民)축에 못 들어 멸시 받은 존재다. 그릇 파는 등짐장수가 잠시 다리쉬임한다. 왼다리를 주무르는 그의 표정이 피곤에 절었다. 짚신에 들메끈을 묶고 바짓가랑이에 행전을 쳤다. 먼 길을 앞둔 차림새다. 갈 길이 아득한데 다리는 무거우니 패랭이에 꽂힌 담뱃대에 연초라도 쟁여 한 대 빨면 나아질까. 등에 진 짐이 어느덧 천근만근, 짧은 지게 목발에 의지하는 신세가 오늘따라 서럽고 야속하다. 지게에 동여맨 질그릇은 자배기와 소래기다. 장독 뚜껑으로 쓰거나 물 퍼 담는 옹기들이다. 그릇 이름은 용도나 모양에 따라 갖가지다. 투가리, 옹배기, 방퉁이, 옴박지, 이남박, 맛탱이…. 동네 아이 별명 부르듯이 불렀다. 반질반질한 오지그릇과 달리 질그릇은 구울 때 솔가지 태우는 연기 그을음이 묻어 칙칙한 회색빛을 띤다. 등짐장수 행색이야 그보다 나을 게 없다. 고단한 이 사내의 쓸쓸한 옆모습은 19세기 화가 권용정이 그렸다. 수수한 필치에 외로움이 스며들었다. 오라는 데 없이 다리품만 부산했던 등짐장수지만 그래도 그네들이 부른 타령에는 익살이 넘친다. ‘옹기장사 옹기짐 지고 옹덩거리고 넘어간다∼사발장사 사발짐 지고 올그락 달그락 넘어간다∼’ 넘어가기 힘들어도 넘어야 하는 등짐장수의 날들이 여느 삶과 무에 다른가. |
달빛은 무엇하러 낚는가
억지꾸밈이라곤 전혀 없는 그림이다. 휑한 공간이 오히려 시원하다. 듬성듬성한 소재 배치가 수선스럽지 않아 정겹다. 심심풀이로 그려서일까, 애쓰지 않은 천진함이 정갈한 산수인물화다. 화면 위에 흘려 쓴 초서 두 자는 ‘현진(玄眞)’이다. 그린 이의 이름인데, 호인지 본명인지 모른다. 미술사의 갈피 속에 숨어버린 화가다. 쓰러질 듯 기우뚱한 바위는 자못 험악하다. 눈을 부릅뜬 귀면(鬼面)같다. 아가리를 벌려 곧 집어삼킬 기세인데, 그 아래 노인은 아랑곳없이 낚싯대 지그시 잡고 흐르는 물에 눈길을 돌린다. 달빛은 교교하고 물이랑은 보채지 않는다. 연푸른빛으로 어룽진 달무리가 강물에 풀려 떠다니고 밤하늘은 구름 지나간 자취를 지운다. 외톨이 노인을 마중하는 보름달만 오롯할 뿐, 만물이 숨죽인 적요한 밤이다. 은자의 하루는 차 석 잔에 저물고 어부의 생애는 외가닥 낚싯대에 달렸다고 했던가. 노인의 낚시놀음에 고단한 생계는 보이지 않는다. 조바심 나게 입질하는 물고기야 안중에 없다. 허심하게 드리운 낚시에 무엇이 걸려들까. 밭가는 농부가 흙을 뒤적여 봄볕을 심듯이 강가의 낚시꾼은 달빛을 낚는다. 오늘 사람은 옛 달을 보지 못해도 오늘 달은 옛 사람을 비추었으니 달빛을 낚으면 연연세세의 사연을 들어볼 수 있을까. 고려 문인 이규보는 우물에 비친 달을 노래했다. ‘산 속 스님이 달빛을 탐내/ 물과 함께 병에 담아가네/ 돌아가면 알게 되리니/ 병 기울이면 달 또한 사라짐을’ 낚시에 딸려온 달빛도 마찬가지일 터. 들어 올리면 사라지지만 세월이 궁금한 노인은 오늘도 하염없이 낚싯대를 드리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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