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나귀 무리지어(拈頌第三二則公案頌)
出得何如未出時 驢成隊喪全機
而今四海平如砥 蘆管迎風亂吹
저 깊은 명상의 상태와 일상의 상태,
이 둘의 다름은 어떠한가
눈먼 나귀 무리지어 마음밭은 난장판이네
지금 바다는 숫돌같이 평평한데
갈피리만 바람 맞서 어지러이 울고 있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밀암함걸(密庵咸傑, 1118~1186)
임제종 사람. 성은 정씨(鄭氏), 복주(福州)사람.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유년에 출가하였다. 제방(諸方)을 다니다가 응암선사(應庵禪師)를 만났다. 오래지 않아 응암의 법을 이었다. 다시 행각(行脚)길에 올랐다. 처음에는 망구(芒衢)의 오거(烏巨)에 주석했다. 후에 장산(蔣山)의 화장(華藏)에 옮기고 다시 경산(徑山) 영은사(靈隱寺)에 옮겼다. 만년에는 태백산(太白山)에 머물면서 사방의 운수(雲水)를 접득(接得)하였다. 1186년 6월 12일 69세에 입적했다.
여러 해 동안 돌말이(無題)
多年石馬放毫光 鐵牛哮吼入長江
虛空一喝無跡 不覺潛身北斗藏
여러 해 동안 돌말이 빛을 토하자
쇠소가 울면서 강으로 들어가네
허공의 고함 소리여 자취마저 없나니
어느 사이 몸을 숨겨 북두에 들었는가.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야보도천(冶父道川)
송나라 때 사람으로 성은 적씨(狄氏), 이름은 삼(三). 군(軍)의 궁수(弓手)였다. 재동(齋東)의 도겸선사(道謙禪師)에게 발심(發心), 도천(道川)이라는 호를 얻었다. 임제선의 일맥(一脈)인 정인계성(淨因繼成, 1101~1125)에게 인가를 받았다. 고향 재동에 돌아와 <금강경야보송(金剛經冶父頌)>을 지었다.
대그림자가(無題)
借婆衫子拜婆門 禮數周旋已十分
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
대그림자가 뜰을 쓸고 있네
그러나 먼지 하나 일지 않네
달이 물밑을 뚫고 들어갔네
그러나 수면에는 흔적 하나 없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야보도천(冶父道川)
송나라 때 사람으로 성은 적씨(狄氏), 이름은 삼(三). 군(軍)의 궁수(弓手)였다. 재동(齋東)의 도겸선사(道謙禪師)에게 발심(發心), 도천(道川)이라는 호를 얻었다. 임제선의 일맥(一脈)인 정인계성(淨因繼成, 1101~1125)에게 인가를 받았다. 고향 재동에 돌아와 <금강경야보송(金剛經冶父頌)>을 지었다.
산집 고요한 밤(無題)
山堂靜夜坐無言 寂寂寥寥本自然
何事西風動林野 一聲寒雁長天
산집 고요한 밤 홀로 앉았네
누리 한없이 적막하여라
무슨 일로 저 바람은 잠든 숲 흔들어서
한 소리 찬 기러기는 울며 가는가.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야보도천(冶父道川)
송나라 때 사람으로 성은 적씨(狄氏), 이름은 삼(三). 군(軍)의 궁수(弓手)였다. 재동(齋東)의 도겸선사(道謙禪師)에게 발심(發心), 도천(道川)이라는 호를 얻었다. 임제선의 일맥(一脈)인 정인계성(淨因繼成, 1101~1125)에게 인가를 받았다. 고향 재동에 돌아와 <금강경야보송(金剛經冶父頌)>을 지었다.
천길 낚싯줄을(無題)
千尺絲綸直下垂 一波動萬波隨
夜靜水寒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
천길 낚싯줄을 내리네
한 물결이 흔들리자 일만 물결 뒤따르네
밤은 깊고 물은 차가워 고기는 물지 않나니
배에 가득 허공만 싣고 달빛 속에 돌아가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야보도천(冶父道川)
송나라 때 사람으로 성은 적씨(狄氏), 이름은 삼(三). 군(軍)의 궁수(弓手)였다. 재동(齋東)의 도겸선사(道謙禪師)에게 발심(發心), 도천(道川)이라는 호를 얻었다. 임제선의 일맥(一脈)인 정인계성(淨因繼成, 1101~1125)에게 인가를 받았다. 고향 재동에 돌아와 <금강경야보송(金剛經冶父頌)>을 지었다.
오도송(卽物契神頌)
勤求勝積功 理契古人同
同得妙何處 澗松西北風
부지런히 갈고 닦은 보람 있어
옛 어른들 깨달으신 그 이치에 닿았네
미묘하기 그지없음은 과연 무엇이던가
개울가 저 소나무 매운 바람 불고 있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회암지소(晦巖智昭, ?~1188~?)
임제종 대혜파(大慧派)의 선승. 제방(제방)을 편력하기 20년만에 천태산 만년사(萬年寺)에서 《인천안목(人天眼目)》(6권)을 간행하였다.
임종게(臨終偈)
來無所來 去無所去
瞥轉玄關 佛祖罔措
와도 오는 곳 없고
가도 가는 곳 없나니
문득 이 경지마저 뛰어넘자
불조(佛祖)도 몸둘 바를 모르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송원숭악(松源崇嶽, 1132~1202)
절강성 용천(龍泉)에서 태어났다. 23세에 출가하여 밀암함걸(密庵咸傑)의 문하에서 대오(大悟)하였다. 저서 : 《松源和尙語錄》(2권)이 있다.
반야송(般若頌)
通身是口掛虛空 不管東西南北風
一等與渠談船若 滴丁東了滴丁東
온몸은 입이 되어 허공에 걸렸는가
동서남북 바람을 가리지 않고
바람과 더불어 반야를 노래하네
뎅그렁 뎅, 뎅그렁 뎅.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천동여정(天童如淨, 1091~1157)
1163년 7월 7일 절강성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출가, 19세까지 경전을 공부하다가 그것을 버리고 선문(禪門)에 들어섰다. 설두산의 족암지감(足菴智鑑)밑에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의 공안을 타파, 깨달음을 얻은 다음 20년 간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수행에 몰두하였다. 1224년 태백산(太白山) 천동사(天童寺)에 주석, 당시 일본의 영평도원(永平道元: 일본 曹洞宗의 시조)이 와서 법을 받아 갔다. 1228년 7월 17일 66세로 입적했다.
이 호수를 찾아와(偶題)
幾度西湖獨上船 師識我不論錢
一聲啼鳥破幽寂 正是山橫落照邊
이 호수를 찾아와 홀로 배에 오르기 수십 번
사공은 날 알아보고 배삯을 받으려 않네
한 소리 새 울음에 유적(幽寂)은 깨어지고
산은 노을 곁에 길게 누웠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도제(道濟, 1150~1209)
절강성(浙江省) 임해(臨海)에서 태어났다. 호는 호은(湖隱). 남송(南宋)의 시승(詩僧). 계율을 지키지 않고 고기와 술을 좋아하여 미치광이짓을 일삼았다.
저서 : 《제공전전(濟公全傳)》
임종게(臨終偈)
八十一年 只此一語
珍重諸人 切莫錯擧
팔십일 년 동안
이 한 마디뿐
여러분 잘들 있게
부디 잘못 알지 말라.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만송행수(萬松行秀, 1166~1246)
1166년 하남성에서 태어났다. 남달리 기골이 장대했던 그는 젊은 시절에 하북성 형주(邢州) 정토사(淨土寺)에 출가했다.
승묵광(勝光)과 설암만(雪巖滿)을 찾아가 각고정진(刻苦精進) 끝에 깨달음을 얻은 다음 정토사(淨土寺)에 돌아와 암자를 짓고 만송헌(萬松軒)이라 하였다. 1193년 금(金)의 장종(章宗) 황제에게 부름을 받았다.
1230년 원(元)의 태종(太宗) 때에는 종용암(從容庵)에 주석했는데 유명산 《종용록(從容錄)》을 여기에서 집필했다. 원(元)의 정종(正宗) 1년(1246) 윤4월 7일 81세로 입적했다. 유교와 도교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세 번이나 독파했다고 한다.
오후(海山寄興)
午窓定起晝沈沈 觸目虛凝一片心
好鳥關關知我意 盡情啼破綠場陰
선정(禪定)에서 깨어난 오후의 창은 낮에도 침침하니
눈길 닿는 곳마다 텅 비어 응결되는 이 마음이네
저 날새가 내 마음 아는지
버들 푸른 그늘 속에서 애타게 울고 있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대헐중겸(大歇仲謙, 1174~1244)
절강성 금화에서 태어났다. 임제종 양기파(楊岐派)의 선승
임종게(臨終偈)
來時空索索 去也赤條條
更要問端的 天台有石頭
올 때는 빈손으로 왔다가
갈 때는 알몸으로 가는 것
다시 이 밖의 것을 묻는다면
천태산에는 돌이 있다 하리라.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무준사범(無準師範, 1178~1249)
1178년 사천성에서 태어났다. 1187년 9세에 음평산(陰平山)의 도흠(道欽)에게 출가하였다. 파암조선(破菴祖先)을 찾아가 수도 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고 그의 법을 이었다. 이후 절강성 청량사(淸凉寺) 등지에 개법(開法), 후학을 지도했으며 이종(理宗)의 부름을 받고 자명전(慈明殿)에서 설법했다. 1249년(淳祐 9) 9월 18일 72세로 입적했다. 저서 : 《불감선사어록(佛鑑禪師語綠)》(5권).
산거(山居)
竟日窓間坐寂蓼 岩前稚筍欲齊腰
幽禽忽起藤花落 澗瀑飛聲渡石橋
진종일 창가에 앉아 있나니
바위 앞 어린 죽순이 허리만큼 오르네
문득 깊은 산새 날아 등꽃 지나니
폭포 소리는 아스라이 돌다리를 건너오네
<해설 : 선시감상사전 석지현 엮음/민족사>
설암조흠(雪巖祖欽, ?~1287)
송말원초(宋末元初)의 고승(高僧). 절강성 금화(金華)에서 태어났다. 5세에 출가, 18세에 대오(大悟)하였다. 원(元) 세조(世祖)의 추앙을 받았다.
저서 : 《설암화상어록(雪巖和尙語錄)》(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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