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봉신연의(封神演義)_29

醉月 2012. 9. 16. 10:13

숭후호를 목 베고 문왕이 후사를 부탁하다

南宮适남궁괄은 周주나라 진영을 떠나 곧장 曹州조주를 향해 나아갔다. 새벽에 길을 나서 곧장 달려 밤이 돼 채 하루가 되지 않아 조주에 도착하여 역관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다음날 崇黑虎숭흑호의 관사로 가서 편지를 전했다. 숭흑호가 집무실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자 家將가장이 보고를 올렸다.


“전하, 서기에서 남궁괄이 사자로 와서 편지를 올렸습니다.”


숭흑호는 서기의 사신이 왔다는 보고를 듣고 계단을 내려와 영접했다. 온 얼굴에 미소를 띠며 대전 안으로 안내하고 서로 간 인사를 마치고 주인과 손님이 자리를 정하여 앉았다.


숭흑호가 몸을 굽히며 말했다.

 

 “장군께서 저희 경내까지 오셨는데,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남궁괄이 대답했다.

 

 “저의 주공 문왕과 승상 강자아께서 대왕께 인사를 올리고, 특별히 末將말장을 파견하여 편지를 전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남궁괄이 편지를 꺼내어 숭흑호에게 건네주었다. 숭흑호가 편지를 개봉하여 읽어 내려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岐周기주 승상 姜尙강상이 머리가 땅에 닿도록 숙이고 인사를 올리며, 大君대군 侯후 숭장군 휘하에 편지를 올립니다. 


사람의 신하된 자로 힘써 그 임금을 마땅한 길로 인도하고, 반드시 간언하여 듣도록 하며, 백성에게 은택을 내리고, 백성으로 하여금 생업을 즐기게 하여 천하를 편안하고 풍성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몸이 大臣대신이 되어 임금의 사악을 보고도 천자를 미혹시키고, 만민을 잔인하게 학대하고 천자의 명령을 빌어 골수까지 착취하여 백성의 재력으로 사사로이 집안만 살찌우며, 임금을 불의 속에 빠지게 하여 차마 충절을 잃은 사람으로서 바로 장군의 형(숭후호)과 같은 자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진실로 악을 쌓음이 산과 같고 극악무도하기가 호랑이와 같아 사람과 귀신이 함께 분노하며, 천하에서 그의 살을 먹고 그 가죽으로 잠을 자지 못하여 한스러워하니, 천하의 제후들에게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지금 尙상(강자아)의 주공께서 홀로 정벌하심에 조칙을 받들어 무도함을 토벌하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君侯군후의 어질고 현명함을 생각하니, 어찌 일족으로서 불의를 더할 수 있겠나이까!


상은 차마 앉아서 볼 수 없어 특별히 裨將비장을 파견하여 편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군후께서 반역자를 사로잡아 周주 진영으로 압송시켜 천하에 사죄케 하시면, 아마도 일신의 청백함을 돋보이고 어리석고 현명함의 구분이 있음을 볼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며 천하의 입들이 그치지 않고 시끄러워져 화염이 옥이 생산되는 崑崗곤강을 불태워 玉石옥석이 구분되지 않을까 두렵사오니, 尙상은 몹시 군후를 위해서 애석할 뿐이옵니다!


군후께서 만약 저의 어리석은 말을 그르다 여기지 않으시다면, 속히 한 말씀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尙상은 몹시 다행이라 여겨지며, 만민에게도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답장 주시기를 鶴首苦待학수고대할 뿐입니다. 尙상 再拜재배합니다.”  


숭흑호는 편지를 읽고 나서 다시 연달아 몇 차례를 읽고는 스스로 생각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강자아의 말을 듣고 보니 심히 도리가 있다. 나는 차라리 조상에게 죄를 지을지언정 어찌 천하에 죄를 지어 만세 인민의 원수가 되리오. 비록 효도하고 자애로운 자손이 있다 하더라도 그 허물을 덮을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죽어서 지하 명부에서 부모님께 죄를 청하더라도 오히려 가히 崇氏숭씨 일맥을 보존할 수 있으니, 종족이 滅絶멸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옆에 앉아있던 남궁괄은 숭흑호가 조용히 자문자답하는 모습을 보고, 암암리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나 감히 그 이유를 물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숭흑호가 말했다.

 

 “남장군, 소장이 삼가 승상의 가르침을 따르겠으니, 회답을 따로 쓸 필요가 없소. 장군께서 먼저 돌아가셔서, 대왕(문왕)과 승상께 인사를 올려 주시오. 다른 말은 하지 마시고, 다만 家兄가형(숭후호)을 압송하여 轅門원문에서 죄를 청하겠다고 전해 주시오.”


서로 간 이야기가 끝나고 남궁괄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여 술을 마시고 자리를 파하였다. 다음 날 남궁괄은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다.


숭흑호는 부장인 高定고정, 沈岡심강에게 분부했다. ‘3000명의 飛虎兵비호병을 준비시켜라. 오늘 숭성으로 가겠다.’  


그리고 아들 崇應鸞숭응란에게 조주를 지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군대가 출발한 지 하루 만에 숭성에 닿았는데, 척후병이 숭응표에게 보고를 올렸다. 숭응표가 장졸들을 거느리고 성 밖으로 나와 숭흑호를 영접했다. 숭응표가 말 위에서 몸을 굽혀 인사를 올리고, ‘王叔왕숙’이라 부르며 말했다.


“조카가 갑옷을 입었으므로 온전히 예를 행할 수 없사옵니다.”


숭흑호가 대답했다.


“어진 조카여, 내가 희창이 숭성을 정벌한다는 소문을 듣고, 특별히 도우러 왔네.”


숭응표는 더 없이 감사함을 표시하고 말을 나란히 하여 성으로 들어와 王府왕부로 들어가 대전에 올랐다.

대전에서 숭흑호와 숭응표는 예를 마치고, 숭흑호가 문왕이 숭성을 정벌하러 온 연고를 묻자, 응표가 대답했다.
“어쩐 연고인지 모르겠사오나 문왕이 숭성을 공격했습니다. 전날 서백후와 맞서 싸우다가 조카가 병사와 장수들의 손실을 보았습니다. 이제 王叔왕숙의 도움을 받게 되었으니, 숭문 일가의 행운이라 하겠습니다.”
이어서 환영연 잔치를 베풀어 환대하고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숭흑호는 3000명의 비호병을 이끌고 성을 나와 주나라 진영에 이르러 싸움을 걸고 있었다. 남궁괄 장군은 이미 조주에서 강자아에게 돌아와 있었다. 이때 강자아는 단정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숭흑호가 싸움을 청한다는 보고를 들었다. 


강자아는 남궁괄에게 출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남궁괄이 장군으로서 옷치장을 하고 군진 앞에 이르니, 숭흑호도 갑옷 등을 차려입고 완전무장한 채 군진 앞에 나와 있었다. 숭흑호는 火眼金睛獸화안금정수라는 짐승을 타고 안장위에는 두 자루 도끼가 걸려있었다.


숭흑호의 얼굴은 솥바닥과 같았는데, 양 볼에 붉은 수염을 늘이고, 두 갈래 황색 눈썹에 금빛 눈동자를 사납게 부라리며 군진 앞에 이르러 매섭게 큰 소리를 질렀다. 


“이유 없이 강함을 믿고 남의 경계를 침범하여 제멋대로 날뛰는 것은 王者왕자의 군사답지 못하도다.”

 

남궁괄이 대답했다.

 

 “숭흑호, 당신 형의 죄악이 천하에 가득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충성스런 신하를 모함하여 해치고 선한 사람들을 잔학하게 해쳤으니, 옛말에 ‘亂臣賊子난신적자는 사람마다 이를 사로잡아 誅殺주살한다’ 했소.”


말을 마치고 남궁괄이 칼을 들고 곧장 앞으로 나오자 숭흑호도 손에 도끼를 꺼내 들고 급히 맞섰다. 금정수와 말이 서로 교차하고 도끼와 칼이 난무하면서 20합을 싸웠다.


말 위에서 숭흑호가 몰래 남궁괄에게 말했다.

 

 “말장은 이제 단지 싸움을 구경할 것이니, 다만 나의 형이 군영에 압송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상견합시다. 장군께서도 싸움을 멈추고 돌아가시오.”


남궁괄이 말했다.

 

 “君侯군후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남궁괄은 칼을 거두고 말 머리를 돌려 달리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숭흑호, 나는 당신을 당할 수 없으니, 나를 뒤쫓지 마라!”


 숭흑호도 역시 뒤 쫓지 않고 북을 두드리며 군영으로 되돌아왔다.


이때 숭응표가 성위 망루에서 관전하다가 남궁괄이 패주하는데, 숭흑호가 뒤쫓지 않자 급히 성 아래로 내려가 숭흑호를 영접하면서 말했다.

 

“숙부님께서는 오늘 싸움에서 어찌하여 신령한 매인 神鷹신응을 풀어놓아 남궁괄을 사로잡지 않으셨습니까?”  


숭흑호가 말했다.

 

 “어진 조카여, 자네는 나이가 어려 사안의 요체를 모른다네. 자네는 강자아가 곤륜산의 術客술객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내가 그 술법을 쓰면 그는 틀림없이 깨뜨릴 수 있을 터이니, 아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다시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


두 사람이 함께 성안으로 들어가 말에서 내려 대전에 올라 자리를 잡아 앉았다. 그리고 군사를 물리는 退兵퇴병의 계책을 함께 논의했다.


숭흑호가 말했다.

 

 “네가 표문을 하나 써서 조가로 관리를 파견하여 천자를 뵙도록 하라. 나도 자네 부친이 돌아오도록 편지를 보내겠다. 그때 적을 깨뜨릴 계획을 세운다면 아마 문왕을 가히 사로잡을 수 있으며, 그러면 대사는 아마 정해질 것이다.”


상의한 대로 숭응표가 명에 따라 상소문을 작성하였고, 숭흑호가 형인 숭후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사신을 시켜 조가로 가져가도록 했다.


사신은 상소와 편지를 가지고 조주를 출발해서 황하를 지나고 맹진에 도착한 후 조가로 갔다.


그날로 조가에 당도하여 먼저 숭후호를 만났다. 좌우에서 숭후호에게 아뢰었다.


“전하, 가장 孫榮손영이 왔습니다.”     


숭후호가 말했다.

 

 “들라 하라.”

 

손영이 들어와 머리를 조아리자 숭후호가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는가?”


손영이 숭흑호의 편지를 올렸다. 숭후호가 편지를 뜯어보니 다음과 같았다.


“아우 흑호가 王兄왕형 휘하에 백번 절을 올리며 아룁니다.

무릇 천하의 제후란 피차간에 모두 형제의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서백후 희창이 무도하게도 강상의 계략을 듣고 무단히 관을 침범하였습니다. 왕형께서 지나치게 악을 행한다고 하면서, 사나운 군사를 일으켜 명분도 없는 비방을 일삼으며 숭성을 몹시 급하게 침입해 왔습니다.


응표가 적과 맞섰으나 병사와 장수의 손실을 보았습니다. 아우인 제가 이 소식을 듣고 밤을 틈타 군사를 진격시켜 적과 연이어 두 번 싸움을 벌였으나 승패를 가리지 못했습니다. 


이에 사신을 왕형께 보내오니 주왕께 아뢰시고, 병사를 발동하여 반역의 역도를 소탕하고, 문왕의 西土서토를 깨끗이 평정하십시오. 이제 일이 급박하오니 결코 지체하는 것은 불가하옵니다.


아우는 병사가 이르는 것을 기다려 함께 西黨서당(서주 : 문왕의 서기)을 격파하게 되면 崇門숭문이 심히 다행일 것입니다. 아우 흑호가 다시 절을 올리며 아룁니다.”

崇侯虎숭후호는 편지를 다 읽고 책상을 치며 서백후 희창을 욕했다.


“늙은 도적놈! 네놈은 임금을 속이고 도망친 것만 해도 그 죄는 마땅히 도륙을 당해야 한다. 聖上성상께서 수차례 네놈을 치려하시는 것을 내가 중간에서 여러 번 만류했었다.

이제 네놈은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는커녕 도리어 속이고 모욕까지 하다니. 만약 내가 이 늙은 도적을 죽이지 않으면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곧 朝服조복을 입고 내전으로 들어가 주왕을 알현하였다. 주왕이 숭후호를 들어오게 하자 알현의 예를 올렸다. 주왕이 물었다.


“경은 무슨 上奏상주할 것이 있는가?”


숭후호가 아뢰었다.

 

 “반역한 惡徒악도 희창이 자신의 영토를 지키지 않고, 사단을 일으켰습니다. 군대를 통솔하고, 신의 봉토를 침입하였사온데, 득의양양하여 사악함이 지나치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신에게 그자를 토벌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왕이 말했다.

 

 “희창은 본래 큰 죄를 지었는데, 관리로서 도망쳐서 제후로서의 책임을 저버렸다. 감히 대신을 능멸하다니, 극히 증오스러울 뿐이다! 경은 먼저 고향으로 돌아가라. 짐이 장수들과 다시 의논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출동하도록 하겠다. 함께 협동하여 반역한 악도를 포위토벌토록 하겠다.”


숭후호가 명을 받들고 먼저 돌아갔다. 숭후호는 인마 3000명을 거느리고 조가를 떠나 한 달음에 숭성으로 왔다.
이 장면을 읊은 시가 다음과 같았다.


“3000 군사 질풍처럼 달려오는데, 숭후호의 위엄이 그의 성씨인 崇숭(높다 숭)에서 왔는가? 쌓은 악이 산처럼 높아 귀신도 노하는데, 임금을 유혹하여 토목공사를 일으켜 士民사민을 곤궁하게 했다. 일가의 형제(동생 숭흑호)가 계략을 펼쳐, 진중에서 체포하여 공세우기를 청했다. 선과 악이 종국에는 과보가 있거늘, 의복에 피를 물들이는데 만사는 이미 부질없는 것이거늘.”  


숭후호의 3000 군대는 하루가 되지 않아 숭성에 도착했다.


척후가 와서 숭흑호에게 보고를 올렸다. 숭흑호는 몰래 高定고정에게 명령을 내렸다.


“자네는 20명의 刀斧手도부수(칼과 도끼를 잘 쓰는 병사)를 거느리고, 성문 안에 매복하고 있다가 내 허리에 차고 있는 검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으면 나와 함께 형님 나리를 끌어내려 체포하여 周주 진영으로 압송하여 보내고, 주나라 진영의 轅門원문에서 만나도록 하자.”


부하 沈岡심강에게 또 명령을 내렸다.


“내가 성을 나가 형님 전하를 영접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그대는 형님의 가솔들을 체포하여 주 진영으로 데려다 놓고, 원문에서 기다리도록 하라.”


숭흑호는 각자에게 역할을 분부하여 시행토록 하고, 조카 숭응표와 함께 성을 나와 영접하는데, 3리 밖까지 나갔다. 이미 숭후호의 군대는 도착했다. 척후병이 숭후호 진영으로 들어와서 아뢰었다.


“두 대왕이 전하와 원문에서 만나고자 합니다.”


숭후호가 말을 타고 원문을 나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진 아우가 이곳까지 오다니, 어리석은 이 형은 기쁨을 이길 수 없다네.” 이어서 아들 숭응표의 인사를 받고, 3인이 동행하여 막 성문을 들어서는데, 숭흑호가 허리 아래의 검을 뽑아 칼집을 치자 쨍그랑 소리가 났다.


그러자 양쪽에서 숭흑호의 家將가장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숭후호 부자를 끌어내려 그 팔을 결박했다. 숭후호가 소리쳤다.


“아우야! 형을 끌어내려 포박하다니, 무슨 일인가?”


숭흑호가 대답했다.


“형님, 형님은 지위가 극히 높은 신하로서 仁德인덕은 닦지 않고, 조정을 어지럽히며, 만백성을 살해하고, 무거운 뇌물과 가혹한 형벌로 鹿臺녹대 건축공사를 감독하여 그 죄악이 천하에 가득합니다.

사방의 제후들이 한마음으로 崇氏숭씨 일가를 소탕하려고 합니다. 문왕이 편지를 보내, 우리 숭씨를 위해 무엇이 어리석고 현명한지를 분별해  주었습니다.    

제가 감히 조정에 책임을 면할 수 없으나 차라리 형님을 체포해, 주 진영으로 압송하여 定罪정죄받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다만 조상들께 죄를 지을지언정, 제가 어찌 천하에 죄를 지어 스스로 滅門멸문의 화를 자초하겠습니까? 그래서 형님을 주 진영으로 압송하오니, 다시 다른 말씀하지  마십시오.”


숭후호는 길게 장탄식을 한번 한 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숭흑호는 숭후호 부자를 압송하여 주 진영으로 갔다. 주 진영의 원문에 이르자 그곳에서 숭후호는 그의 처 李氏이씨와 딸이 서있는 것을 보았다.


숭후호 부자는 이를 보자 큰 소리로  울면서 말했다.


“어찌, 친아우가 형을 모함에 빠뜨려 일문을 끊어지게 할 줄을 알았으리오!”


숭흑호가 원문에 이르러 말에서 내리자, 척후병이 중군에 사실을 알렸다.


강자아가 말했다.


“들라하라!”


숭흑호가 장막에 이르러 예를 올리자 강자아가 영접하며 장막 위로 오르게 했다.


“賢侯현후의 크신 덕으로 악당을 소탕하게 되었으니, 君侯군후야말로 천하의 奇丈夫기장부입니다!”

강자아의 말을 듣고 숭흑호가 몸을 굽혀 감사를 표하고 말했다. “승상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직접 편지를 보내어 마음을 밝혀주시니, 명령에 따라서 하였습니다. 하여 어질지 못한 형을 붙잡아 원문에 호송하여 왔으니, 군령을 기다립니다.”  


강자아가 명했다. “문왕께 원문에 납시도록 청하라.”
이때 문왕이 도착했다. 숭흑호가 나아가 예를 올리며, ‘대왕’이라 불렀다.
문왕이 말했다. “아! 이런, 바로 숭문의 둘째 현후가 아니오? 어찌하여 이곳에 왔습니까?”


숭흑호가 아뢰었다. “못난 가형이 천명을 어기고, 악을 짓고 많은 사단을 일으켰으며, 널리 어질지 못한 짓을 하고, 선량한 백성을 잔인하게 해쳤습니다. 이 아우가 不仁불인한 형을 원문에 압송하였으므로 청컨대 영을 내려 시행하옵소서.”


문왕이 다 듣고는 그 마음이 기쁘지 않은 듯 깊이 생각에 잠겼다.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인데, 도리어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있으니, 이 또한 불의한 일이로다.”


강자아가 옆에 있다가 말했다. “숭후호가 어질지 못하여 아우인 숭흑호가 명을 받들어 역적을 토벌하면서 骨肉골육을 피하지 않은 것은 진실로 忠賢충현군자이며, 慷慨강개한 장부이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착한 자는 복을 불러오고, 악한 자는 화를 불러온다.’고 하였사옵니다. 천하가 숭후호를 원망하여 그의 살을 생것으로 씹어 먹지 못함을 한스러워 하고, 3척의 동자라도 이를 듣고 切齒腐心절치부심한다고 합니다.  


이제 숭흑호의 현명한 이름을 모두 알고 있으며, 사람마다 기뻐하여 마음으로 즐거워합니다. 그러므로 좋거나 나쁘거나, 어질거나 어리석거나를 한가지로 논해서는 안 됩니다.”
강자아가 명을 내렸다. “숭후호 부자를 끌어내 오라!”


여러 사졸들이 숭후호 부자를 빽빽이 둘러싸고 중군에 데려와 무릎을 꿇렸다. 정중앙에 문왕이 앉고, 좌측에 강자아가 우측에 숭흑호가 앉았다.


강자아가 말했다. “숭후호는 온갖 나쁜 짓을 다하여 오늘 스스로 천벌을 받을 죄를 범했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문왕이 옆에 있었으나 차마 숭후호를 벌주지 못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강자아가 명령을 내렸다. “속히 斬首참수하고 보고토록 하라!” 곧바로 두 사람은 떠밀려 나가고 이어서 깃발이 한번 펄럭이면서 숭후호 두 부자의 머리가 베어졌다. 베어진 머리를 중군으로 가져왔다.


문왕은 일찍이 사람의 머리를 본 적이 없어 갑자기 사람의 머리를 가지고 와 보고를 하자 혼이 달아날 정도로 깜짝 놀라서 급히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과인이 놀라서 죽는 꼴을 보려는가!”
강자아가 명령을 내렸다. “首級수급을 원문에 내걸어 사람들에게 보여라!”


이 장면을 읊은 시가 있었다.
“홀로 朝歌조가를 독점한 듯 제 몸이 강함을 믿었으며, 임금을 미혹시켜 탐학하였고 忠良충량을 해쳤다. 저지른 악행이 쌓이면 그 업보를 받는다는 것을 누가 알았으리오?  마침 목이 떨어져 轅門원문에 높이 걸렸으니 스스로 죽음을 자처했다네.”


숭가 부자를 목 베고 나자 아직 숭후호의 처 이씨와 그 딸이 남아있어, 숭흑호가 강자아에게 그들에 대한 처벌을 청했다.


강자아가 말했다. “그대의 형이야 악을 쌓았지만, 그 처와는 무관하며, 하물며 여성은 外姓외성인데, 무슨 악행이 있으리오?


군후께서 형수와 조카딸을 후원에 나누어 모시고 옷과 음식을 군후께서 대주시어 부족함이 없도록 하십시오. 이제 曹州조주는 아래의 장수에게 지키라고 하고, 崇城숭성을 직접 다스리십시오. 일단 한 국가가 되었으니,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없어야 합니다.”


숭흑호는 곧 형수를 풀어주고, 강자아의 말대로 따랐다. 문왕을 청하여 숭성으로 들게 하였다. 그리고 숭흑호는 나라의 창고를 조사하고, 호구를 계산하게 했다.


이에 문왕이 말했다. “賢侯현후의 형이 이미 죽었으니, 현후께서 장악하실 일인데, 하필 과인이 그 권한을 행사하겠소? 희창은 이제 이곳에서 돌아가겠소.” 숭흑호가 재삼 머물기를 청하였으나 문왕을 머무르게 할 수 없었다. 이에 강자아도 회군하였다.

 

강자아가 전쟁에서 이겨 돌아가는 장면을 읊은 시가 남아있었다.  
“스스로 磻溪반계 물가를 나와 수상이 되었는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暴惡폭악을 제거하고자 숭성을 토벌했다. 편지 한 장으로 숭후호를 사로잡았으니, 바야흐로 飛熊비웅이란 이름이 세상에 드러났다.”


문왕과 강자아는 숭흑호와 이별하고 군사를 돌려 서기 땅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문왕은 숭후호를 목 벤 수급을 직접 본 후 정신이 안정되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불안하여 울적하고 산란하였다.


오는 길 내내 음식도 먹기 어렵고 잠자리조차 편안치 못하였고, 눈을 감으면 몽롱하고 또 죽은 숭후호가 면전에 나타나 깜짝 놀라 실신하기도 하였다. 그날 회군하여 서기 땅에 도착하자 여러 문무관원이 문왕을 영접하고 입궁하였다. 이때 노상에서 얻은 병은 의사가 진료하고 약을 먹었으나 차도가 없었다.

 

한편 숭흑호가 형인 숭후호를 묶어서 주나라 진영에 헌상하자, 문왕이 온갖 악을 저지르던 숭후호 부자의 목을 베어 백성들이 보도록 광장에 높이 걸었다. 崇城숭성은 이미 숭흑호에게 소속되었으며, 이로써 북쪽지방은 모두 은나라 朝歌조가의 명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때 숭성이 서백후 문왕에게 점령되었다는 보고가 조가성에 도착했다. 문서방에서 微子미자가 상주문을 보니, 숭후호가 문왕에게 죽임을 당했으며 숭성이 이미 숭흑호에게 점령되었다는 것이었다.


미자가 그 소식을 접하고 한편 기뻤으나 또 염려스러웠다. 기쁘다는 것은 숭후호의 그 죄가 깊어 목을 베어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인데, 죽었다는 것이 그 죄에 마땅하다는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숭흑호가 숭성을 독점했다는 것은 종래는 좋은 일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왕 희창이 독단적으로 정벌을 단행한 것은 반드시 商상(즉 은나라)을 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일은 사안이 중대하여 부득이 주왕께 아뢰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미자는 상주문을 껴안고 주왕에게 아뢰었다. 주왕이 상주문을 읽어보고 노했다. “숭후호가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웠는데, 하루 아침에 반역한 신하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니, 원통하고 분할 뿐이로구나!”


주왕이 즉시 어지를 내렸다. 병사와 장수들을 정비하여 먼저 서기 주나라를 치고, 曹侯조후 숭흑호 등을 붙잡아와 신하로서 해서는 아니 될 죄를 범한 것을 바로 잡도록 하라고 하였다. 


곁에 있던 중대부 李仁이인이 황제를 부르며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숭후호가 비록 폐하께는 큰 공로가 있사오나, 실제로는 만민에게 해독을 끼치었으며, 제후들에게 큰 악을 저질렀는데, 사람마다 이를 갈았으며, 이로 인해 상심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서백후에게 죽임을 당하자 천하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하물며 대소 백관들은 폐하께서 아첨하고 참언하는 신하를 총애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이제 제후들을 위해 또 일을 일으킨다면, 이러한 말들이 제후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장차 이 일을 서서히 도모하시옵소서. 만약 급히 시행하신다면, 문무관원들은 폐하께서 간사한 무리를 총애하신다고 여길 것이며, 제후를 가벼이 여긴다고 생각할 것이옵니다.


비록 숭후호가 죽었으나 마치 작은 옴과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천하의 동쪽과 남쪽의 일에 성심을 더하여 힘쓰실 때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 살피시옵소서!”  왕이 다 듣고는 한참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정벌할 생각을 그만두었다.


한편 문왕의 병세가 날로 위중해지며 더 이상 차도가 없었으며 마침내 위독하게 되었다. 문무관원들의 문안이 하루도 그치지 않았다. 문왕이 어지를 내렸다. “승상을 궁에 들게 하라.”

강자아가 내전에 들어와 龍榻용탑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노신 姜尙강상 어지를 받고 내전에 들어와, 대왕의 貴體귀체에 문후 여쭈옵니다.”


문왕이 말했다. “과인이 오늘 경을 불러 내전에 들게 한 것은 달리 의논할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과인이 나라의 西北서북지역에 거주하면서 兌方태방(주역의 괘로 태방은 서쪽지방을 말함)을 진압하고, 200여 진의 제후를 통합하여 원수가 된 것을 헤아려보면 성은을 입은 것이 얕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지금 난리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군신의 명분이 있으니, 아직 크게 어긋나지 않고 있습니다. 과인이 숭후호를 정벌하여 비록 승리하고 돌아왔지만, 내심으로는 실로 편안하지 않습니다.


亂臣賊子난신적자는 비록 사람마다 가히 죽일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어진 임금이 위에 계시는데, 천자께 아뢰지도 않고 스스로 살육을 자행하였으니, 제멋대로 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물며 과인과 숭후호는 한 지역을 관장하는 같은 爵位작위인데, 스스로 전횡을 저질렀으니 이는 큰 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숭후호를 죽이고 난 뒤, 과인은 매일 밤마다 슬피 우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며, 눈을 감으면 어탑 앞에 서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밝은 세상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늘 경을 청해 내전으로 들게 한 것은 과인이 당부할 말이 있는데, 절대 어기지 말도록 하시오. 만약 내가 죽은 후에 임금의 패악이 가득하더라도 절대 제후들의 부추김에 의해 신하로서 임금을 정벌해서는 안 됩니다. 
승상이 만일 과인의 말을 위배한다면 저승에서 어찌 좋은 낯으로 서로 볼 수 있겠오.” 말을 마치자 문왕의 온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마치 유언 같기도 한 문왕의 말을 다 듣고, 강자아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신이 은총을 입어 몸이 승상의 지위까지 올랐는데, 어찌 감히 명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만약 임금의 말씀을 어긴다면 바로 不忠불충일 것입니다.”


군신 간에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문왕의 둘째 아들 姬發희발이 문안하러 궁으로 들어왔다. 문왕이 희발이 온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말했다. “내 아들아, 이리 오너라. 마침 과인이 부르려고 하던 참이었다.”


희발이 다가와 임금에 대한 예를 마쳤다.
문왕이 말했다. “내가 죽은 뒤 너의 나이가 어리므로 다른 사람의 말을 망령되이 듣고, 멋대로 정벌을 자행할까 두렵구나. 비록 천자가 부덕하여도 역시 망령되게 행동하여 신하가 임금을 시해했다는 아름을 얻어서는 아니 된다. 


너 이리로 와서 승상에게 절을 하고 亞父아부로 삼고, 아침저녁으로 가르침을 받도록 하라. 이제 승상의 말을 듣는 것이 곧 과인의 말을 듣는 것이다. 승상께 앉으시도록 청하여 절을 올리도록 하라.”


희발이 강자아를 윗자리에 앉도록 청하여 절을 하고 亞父아부로 삼았다.
강자아가 침상 앞에서 조아리며, 울면서 말했다. “신이 대왕의 막중한 은혜를 입었으니, 비록 간과 뇌가 땅에 구르고, 뼈와 몸이 부수어진다 해도 나라에 입은 은혜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없겠습니다!


대왕께서는 절대 신의 일로 해서 심려하지 마시옵고, 의당 龍體용체를 보중하시어 불일간에 쾌차하셔야 하옵니다.”


문왕이 아들 희발에게 말했다. “상나라가 비록 無道무도하다고 하나 나는 신하된 자이므로 반드시 그 직분을 충실히 준수해야 하며, 신하로서 분수에 넘쳐 지나치거나 후세에 비웃음을 남겨서는 아니 된다.

너는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가 있어야 하며, 만백성을 矜恤긍휼히 여겨야 하며, 내가 죽더라고 역시 지나치게 슬퍼해서는 아니 된다.”


이어서 또 말했다. “선함을 보고 태만하지 말고, 의를 행할 때 의심하지 말고, 갈 곳이 아니면 가지 말라. 이 3가지가 곧 수신의 도이며, 치국안민의 큰 경륜인 大略대략이니라.”


희발이 다시 절을 하고 명을 받았다.
또 문왕이 말했다. “과인은 상나라 주왕의 세상에서 드문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신하로서 다시는 천자의 尊顔존안을 뵙고 직간할 수 없으며, 다시 羑里獄유리옥에 갇혀 있을 때처럼 八卦팔괘를 연역하여 백성을 교화시킬 수 없게 되었구나!”


말을 마치고 곧 숨을 거두었는데, 향년 97세였다. 나중에 시호를 周文王주문왕이라고 하였다. 때는 商상나라 주왕 20년 한겨울이었다.


문왕을 칭송하는 시가 남아있다.


“아름다운 문왕의 덕을 찬미하노니
 여러 제후들 중 으뜸으로 우뚝 솟았다네.
 혼미한 군주를 만난 시대에도
 조심스럽게 공경하고 삼감을 구하였다네.
 商都상도에서 3차례 간언하다가
 羑里獄유리옥에 7년 동안 갇혀 있었다네.
 八卦팔괘를 펼쳐 先天선천의 비밀을 헤아리고
 易傳역전에는 나중에 周주나라를 일으킨다고 하였다네.
 飛熊비웅(강자아를 의미)이 꿈속에 들어오고
 丹鳳단봉이 세상에 나와 울었다네.
 어진 풍모는 后稷후직을 닮아 빛을 내고
 德業덕업은 公劉공유를 이었다네.
 종내 어진 신하의 절개를 지켰고
 商상나라 정벌 모의를 드러내지 않았다네.
 만고토록 岐山기산 아래서
 西伯서백과 짝할 사람 되기 어렵다네.”

 

서백후 희창이 서거하자 白虎殿백호전에 관을 모시고, 백관이 왕위 계승문제를 의논했다.
태공망 강자아가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희발을 받들어 서백의 자리를 잇도록 하였는데, 이 사람이 바로 나중에 武王무왕 諡號시호를 받은 문왕의 둘째 아들 희발이다. 


 

무왕이 부친의 장례를 마치자 자아를 받들어 尙父상부로 삼았으며, 기타 백관들에게 각각 한 품계씩 올려 주었다. 임금과 신하가 협심하여 뜻을 잇고 일을 처리하면서 선왕의 정치를 따르는데 진력을 다했다.


사방의 속국들이 모두 西土서토에 조공을 바쳤으며, 200진의 제후들이 모두 주나라를 받들어 섬겼다.
한편 汜水關사수관의 총병 韓榮한영이 변방의 보고를 보고 문왕이 이미 죽고 강상이 세자 희발을 무왕으로 세웠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놀라 급히 상주문을 써서, 관리를 조가성에 파견하여 아뢰었다.


한영의 상주문이 문서방에 도착하자 그때 근무하던 상대부 姚中요중이 상주문을 보고 미자 전하와 의논했다. 희발이 무왕에 즉위하여 자립하였으니, 그 뜻이 작지 않은데, 장차 뜻은 모반에 있으니 일을 상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미자가 말했다. “요 대부, 천하의 제후들이 현재 조정이 이처럼 荒淫황음 무도하여 간신을 가까이하고 충신을 물리치는 것을 보고, 모두들 임금이 없는 것 같은 마음들이오.


이제 희발이 스스로 무왕이 되었으니 멀지 않아 산하가 솥이 끓는 듯하고, 천지가 요란해지는 때가 있을 것이오. 지금 곧 상주문을 임금께 올린다 해도 어리석은 임금은 결코 이를 우환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니, 종내 무익한 일일 뿐이오.”


요중이 대답했다. “전하, 말씀이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신하의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요중이 상주문을 안고 적성루로 가서 어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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