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역에서 여우가 달기를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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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흑호가 소호의 아들 소전충을 풀어주다 서백후의 편지 한 통으로 숭흑호와 소호는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소호는 천자에게 잘못을 사죄할 것을 결정하고, 숭흑호도 숭후호에게 돌아가 가문의 욕되게 한 형의 부덕함을 지적하고 소전충을 돌려보낸다.ⓒ 삽화 권미영 |
숭흑호는 앞으로 나와 말했다.
“仁兄인형, 대사는 이미 결정 되었습니다. 속히 행장을 꾸려서 달기를 조가에 바치는 것이 좋겠사오며, 꾸물거리다가 변고가 생길까 두렵습니다.
小弟소제는 돌아가 소전충을 석방해 기주성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저는 형인 숭후호와 함께 병사를 거두어 돌아가겠으며, 상소를 준비하여 먼저 조정에 올려, 소호 형님께서 상나라에 조회하고 사죄하는 것을 돕겠습니다. 또 다른 생각이 생겨서 禍根화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말에 소호가 대답했다.
“어진 아우의 보살핌과 서백후 희창의 덕을 입었는데, 내가 어찌 딸아이 하나를 사랑하여 스 스로 멸망의 길을 가겠는가? 두말 할 것도 없이 즉시 행장을 꾸릴 것이니, 아우는 안심하시 오. 다만 이 소호에게는 아들이 하나뿐인데, 숭후호의 군영에 사로잡혀있으니, 아우께서 속히 석방하여 기주성으로 돌려보내주시오. 늙은 아내가 자식이 살아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다오. 자식이 살아 돌아오면 온 집안이 그대의 깊은 덕에 감동할 것이오!”
숭흑호가 말했다.
“어진 형님께서는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이 아우가 돌아가서, 즉시 소전충을 석방할 것이 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간 사례를 하고 헤어졌다.
숭흑호가 기주성을 나와 숭후호 군영에 도착했다. 척후의 보고가 숭후호에게 올라갔다.
“군후께 아룁니다. 둘째 군후께서 군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숭후호가 들여보내라고 명령을 내린다. 숭흑호가 군영 안으로 들어와 앉는다. 숭후호가 물었 다.
“서백후 희창이 몹시 가증스럽도다! 지금까지 군사를 출병시키지도 않고, 앉아서 성패만 관 망하고 있도다. 어제 산의생을 파견하여 편지를 보내왔다. 소호가 딸아이를 바치고 상나라에 조회한다고 하였는데, 지금까지 회답을 받지 못했다. 아우가 잡혀간 뒤 매일 사람을 보내 알 아보며 마음이 몹시 불안하였다. 그런 터에 아우가 돌아왔으니, 한량없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 겠구려. 소호가 과연 천자를 알현하고 사죄하려 하던가? 아우가 기주성에 있다가 왔으니, 마 땅히 소호 쪽의 사정을 알고 있을 터이니 그 상세한 내막을 말해보시오.”
숭흑호 성난 목소리로 음성을 높여 소리친다.
“형님, 저의 형제는 두 사람이고, 위로 같은 시조로부터 육세까지 내려왔는데, 우리 형제는 같은 탯줄의 한 본으로 매어있습니다. 옛말에 ‘한 나무의 과일도 신 것이 있고, 단 것이 있 다. 한 어미의 자식도 어리석은 자식이 있고, 현명한 자식이 있다’고 합니다.
형님, 저와 형님도 알고 있다시피, 소호가 상나라에 반역하였을 때, 형님은 먼저 군사를 거느 리고 정벌을 하여, 군사들의 손실을 보았습니다. 형님은 조정에서 한 鎭진의 대제후인데, 형님은 조정을 위해 좋은 일을 꾸밀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천자의 측근에 있는 아첨하는 신하들의 꾐에 빠져, 이러한 일을 하여 천하의 사람들의 원망만 받게 되었습니다.
형님은 오만 명의 군사를 거느린 원수으로서 결국 희창이 보낸 한 장의 서찰에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소호는 이미 딸을 천자에게 바치고 조정에 들어가 사죄하기로 하였습니다. 형님은 장수와 병사를 잃었는데,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崇氏숭씨 家門가문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형님, 이제 저와 한번 헤어지면, 저 숭흑호는 다시는 형님과 만나지 않겠습니다! 시위병은 들어라, 소전충을 석방하라!”
시위병들은 감히 명령을 어길 수 없어 소전충을 석방했다. 소전충이 장막 안으로 들어와 숭흑호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다.
“숙부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이 어린 조카를 용서하여 새로운 삶을 주었으니, 오로지 감격할 뿐입니다!”
숭흑호가 대답한다.
“어진 조카는 아버님께 ‘서둘러 수습하여 천자를 배알하시라’고 말씀드려라. 나는 자네 아버님과 더불어 천자께 상소를 올려 너의 부자가 조정에 들어가 사죄할 수 있도록 하겠네.”
소전충은 사례를 하고 군영을 빠져나와 말에 올라 기주로 돌아갔다.
숭흑호는 화를 벼락처럼 내면서 삼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금정수에 올라타더니 자신의 근거지인 曹州조주로 돌아갔다.
한편, 숭후호는 부끄러워 감히 말조차 하지 못했고, 다만 군사를 수습하여 자신의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상소를 올려 조정에 죄를 청했다.
한편, 소전충이 기주성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인사를 올리고 서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위로하였다.
소호가 말한다.
“서백후가 전날 편지를 보내와 진실로 우리 소씨 가문의 滅門멸문의 화를 구해 주었다. 이러한 은혜와 덕을 어찌 감히 잊을 수 있겠는가! 전충아, 내가 생각하기로는 君臣군신의 의리는 지극히 중하여 임금이 신하더러 죽으라고 명하면 죽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내가 감히 한 여식에게 연연하여 스스로 멸망으로 나아가겠는가? 이제 너의 누이 달기를 데리고 조가로 가서 천자를 뵙고 속죄할 것이다. 너는 잠시 기주성을 내 대신 지켜, 백성을 소란하게 하는 일을 일으키지 말라. 나는 머지않아 일을 마치고 돌아오겠다.”
▲ 소호가 달기를 천자에게 데리고 가다
소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한 딸 달기를 천자에게 데려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앞장서 딸을 인도하며 길을 떠난다.ⓒ 삽화 권미영
소전충이 절을 하면서 아버지 소호의 말을 받아들였다.
소호는 뒤이어 후원으로 들어가 부인 楊氏양씨에게 서백후 희창이 보낸 편지와 조가에 가서 천자에게 사죄를 권한 일 등을 한바탕 상세히 이야기했다. 부인은 그 말에 목을 놓아 울었다. 소호는 재삼 안심하라고 위로 하였다.
양씨는 눈물을 머금고 말한다. “이 아이는 아리땁고 온유하게 성장하였지만, 임금을 모시는 예절을 모르는데, 도리어 사단을 일으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소호가 대답한다. “사정이 이러해도 어찌할 수 없으며, 다만 이를 따를 수밖에 없소.” 부부 두 사람은 온 밤 내내 슬퍼할 뿐이었다.
다음 날, 삼천 人馬인마와 오백 명의 가병을 점검하고, 담요를 깐 마차를 준비하고, 달기를 단장하게 하여 출발하려고 하였다.
달기도 이 소식을 듣고, 쏟아지는 눈물이 빗물과 같았다. 모친과 오빠 전충에게 절을 하고 이별을 고하는데, 슬퍼서 우는 그 모습이, 천 가지 요염함이 드러나 진실로 안개에 싸인 작약과 같고, 비에 젖은 배꽃과 같았다.
어미와 딸이 어떻게 생이별 할 것인가? 좌우에 시립해 있는 사람들이 애써 권고하자, 부인은 궁전 안으로 들어가고, 달기는 눈물을 머금으며 마차에 오른다. 오빠 전충은 五里오리까지 배웅하고 돌아갔다.
소호가 앞장서서 인도하면서 달기를 보호하며 나아갔다. 다만 그 행차 앞에는 貴人귀인 깃발 두 개가 높이 걸려있고, 가는 길에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아침에 길을 나서, 저물 때까지 먼지를 밟으며 나아갔다. 푸른 버들 우거진 옛길과 붉은 살구꽃 숲을 지났다. 우는 까마귀가 봄을 부르고, 두견새가 달을 보고 운다. 가는 노정이 하루 이틀에 그치는 것이 아니어서, 州縣주현을 지나고, 물을 건너고 산을 넘었다.
그날도 날이 저무는데, 이미 恩州은주에 도착했다. 은주 驛丞역승이 접견한다. 소호가 말했다. “역승은 들으시오. 은주역 청사를 청소하고, 귀인을 모시도록 하시오”
그 역승이 대답했다. “군후께 아룁니다. 이 역은 삼년 전에 妖精요정이 출현하였는데, 이후 이곳에서 와서 머문 군후들께서 모두 편안히 쉬지 못했습니다. 그러하오니 귀인이 잠시 군영 막사에서 쉬게 하여 염려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할 것을 청하옵니다. 군후님의 높은 뜻이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소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천자의 귀인인데, 무슨 사악한 귀신 따위를 두려워하겠는가? 하물며 관청의 관사가 있는데, 어찌 임시병영에서 쉬는 것이 이치에 맞겠는가? 빨리 가서 역관의 거실과 머물 곳을 청소하고, 늑장을 부려 죄를 얻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 말에 역승은 사람들을 시켜 서둘러 역의 대청과 내실을 청소하는데, 자리를 깔고 가구를 벌려놓고, 향을 뿌리고 물을 뿌려 쓰는 등 하나같이 잘 정리정돈한 후, 달기가 들어와 쉬도록 청했다.
소호는 달기를 뒤쪽 내실에 들어가 쉬도록 하고, 오십 명의 시녀들을 좌우에서 시중들게 했다. 삼천 명의 군사들은 은주역 외곽을 둘러싸게 하였고, 오백 명의 家將가장은 驛館역관 문 앞에 주둔하게 했다.
소호는 역관 대청에 앉아 촛불을 켜놓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방금 역승이 이곳에 妖怪요괴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곳은 천자의 관리가 공무를 보는 곳으로 인가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역시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
소호는 표범꼬리 채찍 하나를 책상위에 놓아두고, 등불의 심지를 돋우면서 兵書병서를 펴서 읽고 있었다. 다만 은주성에서 시간을 알리는 북소리가 처음 울리는 것이 들려오는데, 이미 초저녁 8시 경이었다.
소호는 종래 마음이 놓이지 않아, 손에 채찍을 들고, 조용히 뒤쪽 내실로 걸어갔다. 좌우 내실을 한번 확인해 보니, 시중드는 시녀들과 달기가 아무런 기척도 없이 편히 잠든 것 같기에, 비로소 안심하였다.
다시 대청위로 돌아와 병서를 펴서 보고 있는데, 어느 덧 이경 즉 밤 열시쯤 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이윽고 북소리가 세 번 울렸다. 그때 흉악한 邪氣사기가 일어나면서, 홀연히 한 바탕 바람소리가 들리고, 사람의 살갗에 파고들며, 등불이 꺼지듯이 깜빡거리다가 다시 밝아졌다.
그 장면이 마치 이러하였다.
호랑이가 표호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용의 신음이 있겠는가? 매섭게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스치는데, 냉랭한 사악한 기운이 사람을 엄습한다. 꽃이 필수 없고 버들도 시드는데, 山水산수에는 많은 괴상한 요괴가 감추어져 있다.
슬픈 바람 그림자 속에 한 쌍의 눈이 드러났는데, 흡사 금으로 된 등잔하나가 을씨년스럽게 깔려있는 안개 가운데 있는 것 같다. 시커먼 기운이 모인 가운데 네 발톱을 웅크리고 있어, 강철 갈고리를 붉은 놀 밖에 드러낸 것과 같다. 꼬리를 벌리고 머리를 흔드는 것이 전설 속에 나오는 괴수인 狴犴폐안(옛날 감옥 문에 그려져 있었다함)과 같고, 흉악하고 용맹한 것이 마치 사자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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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 묵은 여우가 달기의 혼백을 삼켜 버리다 한 바탕 요사스런 바람이 불어오고 시녀들의 외마디 고함소리에 소호가 등불을 들고 급히 달기의 침상으로 가 괜찮냐고 물었다. 달기는 꿈속에서 요정이 왔다는 비명소리만 들었다며 괜찮다고 하였으나 그 말을 한 것은 이미 천년 묵은 여우였다.ⓒ 삽화 권미영 |
소호는 한 바탕 요사스런 바람이 불어오자 毛骨모골이 송연하였다.
마음속에서 정히 의혹이 일어나고 있는데, 홀연 후정에서 시녀들의 외마디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妖精요정이 나타났다”
소호는 급히 손에 채찍을 들고 서둘러 후정으로 갔다. 왼손에는 등을 들고, 오른손에는 채찍을 들고, 막 대청 뒤를 돌아가는데, 손에 들고 있는 등불이 요사한 바람 때문에 꺼졌다.
소호는 급히 몸을 돌려 다시 대청을 지나, 집안에 있는 장수들을 불러 등에 불을 붙이라고 하고, 다시 후정으로 들어갔는데, 여러 시녀들이 허둥대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호는 서둘러 달기가 자고 있는 침상 앞에 다가가서, 손으로 장막을 걷어 올리며 묻는다. “아희야, 방금 妖氣요기가 침범했다는데, 너는 보지 못했느냐?”
달기가 대답했다. “저는 꿈속에서 시녀들이 요정이 왔다고 고함지르는 소리를 들었으며, 저는 급히 시간을 보았고, 또 등불의 빛을 보았는데, 아버지께서 오신 것을 몰랐습니다. 아울러 일찍이 무슨 요괴 따위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소호가 말했다. “천지의 비호가 있음에 감사하며, 네가 놀라지 않았다니, 그러면 되었다.” 소호는 달기가 편히 쉬도록 위로한 후, 몸소 주변을 한번 순시하였으나 감히 안심하고 잘 수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일은 끝난 뒤였다. 조금 전 소호에게 대답한 달기의 목소리는 천년 묵은 여우였으며, 달기가 아니었다.
방금 등불이 꺼졌을 때, 다시 대청으로 와서 등불을 붙였는데, 이것은 잠간의 시간에 불과하였다. 달기의 혼백은 그때 이미 여우가 삼켜버렸고, 죽은 지 한참 되었다. 바로 여우가 달기의 몸을 빌려 형체를 이루었고, 紂王주왕을 미혹시켜, 수백 년 이어온 금수강산을 잃게 하였다. 이것이 天數천수이고, 인력으로 어찌 할 수 없는데, 시가 있어 이를 입증한다.
은주역내에서 요사한 바람에 놀라, 소호가 채찍을 들고 막으려 하였으나 등불이 꺼졌다. 십육 세 아름다운 용모의 달기는 이제 이미 죽어버렸는데, 요괴를 자신이 낳은 딸로 착각하였다.
(恩州驛內怪風驚, 蘇護提鞭撲滅燈, 二八嬌容今已喪, 錯看妖魅當親生)
소호는 마음이 불안하여 밤새 잠들지 못했다. 다행히 귀인이 놀라지 않았으니, 천지와 조상님의 도움을 받았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임금을 속인 죄를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날이 밝기를 기다려 은주역을 떠나 상나라의 수도인 조가를 향해 나아갔다. 날이 밝으면 가고, 해가 지면 쉬고,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가는 여정이 하루 만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황하를 건너고, 조가에 도착해서 영채를 마련했다.
소호는 먼저 사신을 성으로 들여보내 서찰을 武成王무성왕 黃飛虎황비호에게 보이도록 하였다. 황비호는 소호가 딸을 바치고 속죄하겠다는 문서를 보자, 서둘러 부하인 龍環용환을 성 밖으로 파견하여 소호에게 명령을 전했다. 군대는 성 밖에 주둔시키고, 소호가 딸을 데리고 성으로 들어와 金亭館금정관에서 쉬도록 하였다.
당시 권세를 부리던 신하인 비중과 우혼은 소호가 또 먼저 선물을 보내오지 않은 것을 보고, 탄식하면서 말한다. “이 역적 놈, 비록 네가 딸을 헌상하여 속죄를 해도, 천자의 기쁨과 노여움을 헤아릴 수 없고, 만사는 모두 우리 두 사람 손에 있으며, 그 生死存亡생사존망도 다만 우리의 손아귀에 있거늘, 전혀 우리를 무시하는데, 몹시 괘씸하구나!”
한편, 주왕은 용덕전에서 시위관의 상주를 듣고 있었다. “비중이 어지를 기다립니다.” 천자가 들어와 발표하라고 명한다.
비중이 조정에 들어와 만세를 외치며 예를 마치는 것이 보이는데, 바닥에 엎드려서 아뢴다. “지금 소호가 딸아이를 진상하려고, 이미 도성에 들어와 어지를 기다리고 있사오니 재가하여 주십시오.”
주왕은 비중이 상주하는 것을 듣고, 크게 노해서 말한다. “이 필부 놈, 그때 난폭한 말로 정사를 어지럽혔고, 짐이 법에 따라 조치하려고 하였는데, 경들이 간언하여 그쳤으며, 사면하여 귀국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 역적이 반역하는 시를 오문에 붙여, 짐을 멸시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했었겠는가! 진실로 가증스럽도다. 내일 아침에 조회를 열고, 반드시 국법을 바르게 하여, 임금을 기만한 죄를 징계하겠노라!”
비중이 기회를 틈타 아뢴다. “천자의 법은 원래 천자의 사사로운 것을 위함이 아니고, 만백성을 위해 세우는 것입니다. 지금 반역한 신하를 제거하지 않으면, 이는 법이 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법이 없는 국가는 천하의 버림을 받게 됩니다.”
천자가 말한다. “경의 말이 극히 옳도다. 내일 짐이 직접 소호의 죄를 물을 것이다.” 비중이 조정을 물러나와 퇴궐했다. 다음날 천자가 대전에 오르고, 종이 일제히 울리자, 문무관원들이 시립한다.
이때의 광경은 이러하였다. 천자를 배알하는데 은 촛불은 자주색 길에 길게 이어 있고, 궁궐의 봄빛은 아침에 더욱 푸르다. 못가의 어린 버들은 푸른 쇠사슬처럼 늘어져 있고, 앵무새는 이리저리 날면서 울고 있다. 허리에 차고 있는 칼 부딪치는 소리가 걸음걸이에 따라 울리고, 옷과 모자와 몸에는 황궁 화로에서 나오는 향내가 묻어있다. 모두 봉황 연못 은혜의 물결에 목욕하였고, 아침마다 붓에 먹을 묻혀 군왕을 모셨다.
![](http://www.epochtimes.co.kr/data/photos/200910/pp_16559_1_1256516804.jpg)
주왕이 말한다. “아뢸 상소가 있는 사람은 出班출반하여 아뢰고, 일이 없는 사람은 물러가시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문에서 천자에게 아뢴다. “기주후 소호가 오문에서 어지를 기다리는데, 딸을 바치고 죄를 청하고 있사옵니다.”
주왕이 명령한다. “들라 하라”
소호는 몸에 죄를 지은 관리가 입는 옷을 걸치고, 감히 면류관도 쓰지 못하고, 붉은 섬돌 밑에 와 엎드려 아뢴다. “법을 범한 신하 소호, 저의 죄는 죽어 마땅한 죄입니다!”
주왕이 말을 한다. “기주후 소호, 그대는 반역시를 오문에 붙여 ‘영원히 상나라에 조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숭후호가 칙명을 받들고 문죄하는데, 그대는 천자의 군사에 오히려 항거하여, 명을 받은 군사와 장수들을 죽이고 손상시켰는데, 그대는 무슨 할 말이 있으며? 이제 또 임금에게 조회를 하겠다고!”
시위관에 명한다. “오문에 끌어내어 梟首효수하고, 나라의 법을 바로 잡으라!”
말을 막 마치는데, 수상 상용이 출반하여 간언한다. “소호가 상나라에 모반하였으니, 당연히 사형을 집행해야합니다. 다만 전날 서백후 희창이 상소를 올렸는데, 소호가 딸아이를 바치고 속죄토록 하여, 임금과 신하간의 대의를 완전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소호가 이미 왕법을 존중하고, 딸아이를 바치고 천자를 배알하고 속죄하는데, 정상을 참작할 만하옵니다.
또한 폐하가 딸아이를 바치지 않아 죄를 묻고자 하온데, 이제 이미 딸아이를 바쳤는데 죄를 주는 것은 심히 폐하의 본심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불쌍히 여겨 이를 용서하시옵소서.”
주왕이 머뭇거리면서 결정하지 못하자, 비중이 나서서 아뢴다. “승상이 주청한대로 폐하께서 따르시기를 희망합니다. 또 소호의 딸 달기가 이미 입조하였습니다. 만약 용모가 출중하고, 예절이 현숙하여, 가히 옆에서 부릴 만하다면, 폐하께서 소호의 죄를 사면하시옵소서. 만약 천자의 뜻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 딸도 저자거리에서 참수하여, 그 죄를 밝히소서. 그러면 폐하께서는 신하와 백성에게 믿음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주왕이 대답한다. “경의 말에 일리가 있도다.” 이 비중의 말 한마디가 장차 成湯성탕의 육백년 기업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게 되었다.
주왕이 시위관에게 명하여 달기를 입조하게 하였다. 달기는 오문을 들어와, 구룡교를 지나, 九間殿구간전 물 떨어지는 처마 앞까지 도착하여, 象牙笏상아홀을 높이 받들고, 예를 올리고 절을 하는데, 입으로는 만세를 외친다.
주왕이 찬찬히 달기를 살펴보니, 검은 구름 같은 첩첩이 말아 올린 머리털, 살구꽃 같은 얼굴에 붉은 뺨을 하고 있었다. 풋풋함은 초봄에 피어오르는 봄 동산 같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허리는 버들 같았는데, 진정으로 해당화가 햇빛에 취한 듯, 배꽃이 봄비를 젖은 듯했다. 그야말로 瑤池요지에서 나온 九天仙女구천선녀와 옥 궁궐을 떠나온 달 속의 상아에 뒤지지 않는 것 같았다.
달기가 붉은 입술로 아뢰는데, 한 점 앵두 같았으며, 혀끝에서 토해 내는 것은 아름답고 온화한 한 무더기 화창한 기운이었다. 눈으로 秋波추파를 던지는데, 한 쌍의 난새와 봉황의 눈과 같았고, 눈가에서 내보내는 것은 교태로움이 뚝뚝 떨어지는 만 가지 바람 같은 정이었다.
달기가 입을 벌려 말한다. “죄를 범한 신하의 딸 달기가 폐하의 만세를 기원합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이 몇 마디 말은 주왕의 혼(魂)을 하늘 밖으로 떠다니게 하였고, 백(魄)은 구층 하늘까지 흩어지게 하였고, 뼈와 근육이 나긋하게 풀리고, 귀에 열이 오르고 눈이 튀는 듯 어지러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때 주왕은 천자의 책상 곁에 서서 명을 내린다. “미인은 몸을 바로 하라.” 좌우의 궁녀들에게 명을 내린다. “소 낭자를 안내하여 壽仙宮수선궁으로 들게 하고, 짐이 회궁하기를 기다리도록 하라.”
서둘러 시위관에게 어지를 전달한다. “소호 일문을 용서하여 죄가 없도록 하고, 짐이 추가로 벼슬을 내린다. 옛날 관직을 돌려주고, 새로 國戚국척의 벼슬을 더하고, 매월 이 천석의 녹봉을 추가하며, 현경전에서 삼일동안 축하연회를 베풀어 수상과 백관들이 경하하도록 하고, 황족의 친척으로 삼일동안 자랑스럽게 하라. 문관 2명, 무관 3명을 딸려서 소호가 고향으로 영광스럽게 돌아가도록 하라.”
소호가 천자의 은혜에 감사를 표한다. 문무양반들은 천자가 이렇게 여색을 좋아하는 것을 보게되자, 모두 불쾌한 마음이 일어났다. 천자가 수레에 올라 환궁하자, 간쟁할 수도 없고, 다만 현경전으로 가서 연회에 참석하였다.
소호가 딸을 바치고 영광스럽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천자는 달기와 함께 수선궁에서 연회를 열었다. 그날 밤 난새와 봉황처럼 사랑을 나누었는데, 사랑이 깊어 아교와 옻처럼 끈끈하고 두터웠다.
주왕이 스스로 달기에게 간 후, 낮이면 낮마다 연회를 즐기고, 밤이면 밤마다 쾌락에 빠져드니, 조정의 정사가 무너지고, 상소는 끊이지 않았다. 많은 신하들이 간할 상소가 있어도, 주왕은 어린애 장난같이 여겼으며, 밤 낮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향락에 빠져있는 동안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았으며, 이미 두 달 동안 조회조차 열리지 않았고, 다만 수선궁에서 달기와 함께 연회를 즐길 뿐이었다.
천하 팔백진의 제후가 많은 상소문을 조가에 올렸는데, 문서방에 상소문이 산처럼 쌓여 있을 뿐, 임금을 대면할 수 없는데, 그 임금의 명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눈앞에서 천하대란을 빤히 보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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