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봉신연의[封神演義]_03

醉月 2009. 10. 10. 09:41

봉신연의(封神演義) - 희창이 기주성 포위를 풀고 달기를 바치게 하다

 

ⓒ 삽화 권미영

 

숭후호가 천자의 칙명을 받고 소호를 토벌하러 갔으나 智謀지모가 깊지 못하고 용렬하여 패주했는데, 가슴에는 원망만 가득했다.
부상을 당한 崇侯虎숭후호 부자는 하룻밤 내내 도망치느라 지치고 초췌한 몰골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서둘러 패잔병을 수습하니 열 명 중 하나가 생존해 있을 뿐이고 그나마 대부분이 중상을 입고 있었다. 숭후호는 남은 군대를 둘러보고 비탄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황원제가 앞으로 나와 말한다. “군후께서는 어찌 그리 슬퍼하십니까?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어제 밤에 우연히 미리 방비를 하지 않아서 간사한 계략에 걸려들었습니다. 군후께서는 장수들과 나머지 병사만으로 잠시 견디시다가, 군사를 재촉하는 문서를 西岐서기에 보내어 서백후가 속히 군대를 인솔하여 오도록 하십시오. 그들이 도착하면 싸움을 끝내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군이 오면 우선 군사가 증강되어 서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두 번째 오늘의 이 통한을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군후의 뜻은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승후호가 이 말을 듣고 중얼거리며 망설이다가 대답한다. “서백후 희창이 군대를 진군하지 않고, 앉아서 성패를 관망하고 있는데, 내가 오늘 그를 재촉한다면, 도리어 그에게 聖旨성지를 거역했다는 죄명을 씌우는 것이 아닐까?”

망설이며 결정을 짓지 못하여 주저하고 있는데, 문득 앞쪽에서 한 무리 부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숭후호는 어느 곳의 군대인지 모른 채 놀라서 魂飛魄散혼비백산하여 정신이 아득하고 혼이 공중에 떠다니는 듯하다.

급히 말위에 올라 앞을 바라보니 두 개의 큰 깃발사이로 한 장수가 보이는데, 얼굴은 솥 밑바닥처럼 시커멓고, 붉은 구렛나루가 덥수룩하고, 두 줄기 흰 눈썹에 눈은 마치 금방울과 같았다.
머리에는 九雲烈焰飛獸冠구운열염비수관을 쓰고, 몸에는 작은 미늘을 엮어 만든 鎖子連環甲쇄자연환갑을 입었으며, 큰 붉은 도포를 걸치고, 허리에는 백옥 띠를 매었다. 말 대신 火眼金睛獸화안금정수라는 짐승을 타고, 두 자루 湛金斧담금부를 들고 있었다.

이 사람은 바로 숭후호의 동생인 崇黑虎숭흑호였다. 曺州侯조주후로 봉직하고 있는데, 숭후호의 바로 친동생이었다. 이곳에서 뜻밖에 동생을 보게 되자 놀란 가슴이 진정되고 안심되었다.

숭흑호가 인사를 올렸다. “형님께서 싸움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도우러 왔습니다. 뜻밖에 이곳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는데, 실로 천만다행입니다.”

숭응표가 말위에서 몸을 앞으로 구부리면서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숙부님! 먼 길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숭흑호가 말했다. “동생인 제가 이곳에 온 것은 형님과 더불어 병력을 합세하여 다시 기주로 돌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방도가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두 군대가 하나로 합류했다. 숭흑호의 군대는 삼천 명의 飛虎兵비호병이 앞장서고, 나머지 이만 군사가 뒤따랐다. 대군이 다시 기주성 아래 도착하여 진영을 막 펼치고 나자, 조주의 숭흑호 병사들이 앞장서서 고함을 지르면서 싸움을 걸기 시작했다.

기주성의 척후병들이 이를 탐지하고 나는 듯이 소호에게 보고한다. “지금 조주의 숭흑호 군대가 성 아래 와서 싸움을 걸어 왔습니다. 청컨대 군후께서는 군령을 내려주십시오”
소호는 급보를 듣더니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말이 없다. 한참 있다가 말을 꺼낸다. “숭흑호는 무예에 정통하고, 심오한 이치에 달통한 사람인데, 성안에 가득한 장수중에서 어느 누구도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이를 장차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좌우에 있던 여러 장수들이 소호의 말을 듣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단지 아들인 소전충이 앞으로 나서면서 대답한다. “옛말에 ‘병사가 공격해오면 장수가 막고, 물이 밀려오면 흙으로 막는다.’라는 말처럼 적절한 방법을 강구하면 됩니다. 생각건대 숭흑호 한 명을 어찌 그렇게 두려워하십니까?”

소호가 대답한다. “너는 아직 어려서 일의 전후사정을 잘 모른 채 자신의 똑똑함과 용맹함만을 자부하고 있구나! 숭흑호가 일찍이 異人이인에게 도술을 전수 받아, 백만 군대 가운데서 적군의 상장군 首級수급을 베는 것이 마치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는 것과 같다고 한다. 너는 아직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느냐? 결코 輕擧妄動경거망동하지마라!”

그 말에 소전충이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는 남의 銳氣예기만 너무 치켜세우고, 스스로의 위엄을 깎아 내리고 있습니다. 소자가 이번에 달려 나가 숭흑호를 사로잡아 오지 못하면, 맹세코 돌아와 아버님의 얼굴을 뵙지 않을 것입니다.”

소호가 대답한다. “너는 스스로 싸움에 패하여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라.” 그러나 소전충이 어찌 이 말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몸을 훌쩍 날려 말위에 오르더니 성문을 열고 單騎단기로 말을 몰아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 도망가던 숭흑호가 조롱박 뚜껑을 열고 주문을 외우자, 시커먼 연기가 치솟으며 철취신응이 날아올라 소전충을 공격하다 
ⓒ 삽화 권미영

 

소전충은 성문을 나와 숭흑호 진영으로 말을 몰았다. 적진 앞에서 고함을 지른다. “적군들은 들어라! 소전충이 여기에 와있다고 본영에 알리어라. 그리고 숭흑호에게 내가 할 말이 있다고 전 하여라!”
남색 깃발의 전령이 서둘러 숭후호와 승흑호에게 보고한다. “밖에 소전충이 와서 싸움을 재촉합니다.”

이에 숭흑호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말한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첫째 형님이 싸움에서 패했기 때문이고, 둘째 소호를 위해 포위를 풀고 나와 소호와의 우의와 교분을 온전히 하기 위함이다.”

숭흑호는 좌우에 명령을 내려 탈 것을 가져오게 하고, 즉시 몸을 날려 올라타고 군영 앞에 도착했다. 앞에는 소전충이 말위에 앉아 武勇무용과 위세를 뽐내면서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숭흑호가 말한다. “전충 어진 조카는 듣거라. 돌아가서 너의 부친께서 나오시라고 해라. 아버님에게 내가 할 말이 있다고 전 하여라.”
소전충은 아직 젊은 사람으로서 일의 전후사정을 깊이 헤아릴 줄 몰랐고, 그의 부친이 숭흑호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어찌 기꺼이 이를 받아들여 그냥 돌아갈 수 있겠는가?

소전충은 큰 소리로 외쳤다. “숭흑호는 들으시오. 나는 당신과 대적하는 형세가 되었으니. 나의 부친 또한 당신과 어떻게 정을 나눌 수 있겠소? 속히 창과 칼을 내리고 군사를 거둔다면, 당신의 생명을 살려주겠소.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늦을 것이오!”

이 말에 크게 노한 숭흑호가 대꾸한다. “이런 어린 짐승 같은 놈이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말을 마치자 도끼를 치켜들고 소전충의 면상을 향해 찍어 들어간다.
소전충은 손에 들고 있던 창으로 급히 막으면서 반격에 들어간다. 두 사람이 한바탕 치열한 싸움을 전개함에 따라 숭흑호가 타고 있는 괴수 화안금정수와 소전충의 말도 덩달아 전후좌우로 접전하는 형국이다

두 사람이 맞붙어 싸우는 것을 누가 감히 그만두도록 할 수 있겠는가? 마치 한쪽이 머리를 흔들며 산언덕을 내려오는 사자와 같다고 하면, 다른 한쪽은 전설상의 짐승인 狻猊산예가 꼬리를 흔들며 사나운 호랑이를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두 장수의 일대 접전이 기주성 아래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소전충은 숭흑호가 어려서부터 截敎절교 진인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비밀리에 조롱박인 葫蘆호로를 받았다는 것을 몰랐다. 그는 그 호로를 늘 등 뒤에 둘러메고 있었는데, 신통을 부릴 수 있었고 신통력이 무한하였다.

젊은 소전충은 다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용맹만 의지했고, 또 승흑호가 사용하는 무기가 짧은 도끼라는 것만 보았지, 더 이상 숭흑호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

상대를 가볍게 여겨 안하무인이 되어갔고, 자기의 능력을 모두 드러내어, 숭흑호를 사로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어서 드디어 평소 갈고 닦은 무예를 전부다 드러냈다. 창은 뾰족하고 끝에 가지가 있는데, 창술에는 9×9 팔십 하나의 보법이 있고, 72가지 공격의 술법이 있다. 이에 소전충은 창을 솟구치고, 찌르고, 피하고, 끌어내리고, 누르고, 빠르고, 느리고, 거두고, 놓는 등 자유자재로 창술을 구사했다.

소전충은 숭흑호를 죽이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내는데, 숭흑호도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숭흑호는 탄식하면서 한마디 던진다. “소호에게 이 같은 아들이 있다니! 가히 쓸 만한 아이라 할 만하다. 진실로 장군 집안에는 그 씨가 따로 있구나!”

숭흑호는 손에 든 도끼를 번쩍 한번 휘두르고는 화안금정수의 머리를 돌려 곧 달아났다. 이를 보라보고 있던 소전충이 말위에서 허리가 휘어지도록 한바탕 웃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만약 아버님의 말씀을 들었더라면 마침내 일을 그르칠 뻔했다. 맹세코 이 숭흑호를 사로잡아, 아버님의 입을 막으리라.’한다.

소전충이 말을 몰아 뒤쫓는데,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빨리 달아나면 재빨리 쫓아가고, 천천히 도망가면 천천히 쫓아갔다. 소전충은 반드시 공을 이루고자 하였으므로 한참을 이렇게 뒤 쫓아 갔다.

도망가던 숭흑호가 머리 뒤에서 금방울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머리를 돌리니 소전충이 멈추지 않고 계속 뒤쫓아 오는 것이 보였다. 서둘러 등 뒤에 매달려 있는 붉은 조롱박(葫蘆)의 뚜껑을 열고는 중얼중얼 몇 마디 주문을 외웠다.

주문이 끝나자 금세 조롱박 속에서 한줄기 시커먼 연기가 치솟는데, 크고 작은 그물 같은 모양으로 변하여 퍼져나갔다. 그 시커먼 연기 중에서 깍깍하는 우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하늘을 가리고 햇빛을 받으면서 무엇이 날아왔다. 이것이 무쇠 부리를 갖고 있는 송골매로서 바로 鐵嘴神鷹철취신응이었다.

이 철취신응이 부리를 쫙 벌리고 소전충의 얼굴을 향해 쪼아 온다. 소전충은 다만 말위의 영웅에 불과하였지, 어찌 숭흑호의 奇異기이한 술법을 알 수 있으리오? 급히 창을 휘둘러 몸과 얼굴을 보호하였으나 철취신응이 말을 공격하여 말의 눈을 쪼았다. 말이 놀라 펄쩍 뛰는 바람에 소전충이 말위에서 넘어지면서 머리의 황금관이 땅에 떨어지고, 갑옷이 안장에서 흘러내리는 등 말위에서 막 떨어지려고 하였다.
 

▲ 숭흑호가 소전충을 사로잡다. 숭흑호에게 사로잡힌 소전충이 숭후호 앞에서 무릎조차 꿇지 않고 당당하다.

숭후호는 그런 소전충을 크게 꾸짖자 소전충도 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여 달라며 큰소리를 친다. 
ⓒ 삽화 권미영

 

숭흑호가 소전충이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붙잡아라!” 명령을 내린다. 한 무리의 군사가 뛰어나가 소전충을 에워싸고 두 팔을 단단히 포박한다. 숭흑호는 승리의 북을 울리면서 본영으로 돌아와 말에서 내렸다.

연락병이 숭후호에게 보고한다. “둘째 군후께서 승리하셨습니다. 반역신하인 소전충을 산채로 잡아 와서 군문 앞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숭후호는 바로 “들라하라!”며 명령을 내린다.

숭흑호는 장막위로 올라 형인 숭후호를 보자 보고를 한다. “형님, 이 아우가 소전충을 사로잡아 군문 앞에 대령하였습니다.” 숭후호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면서 소전충을 끌어오라고 명령을 내린다.

잠시 후 소전충이 지휘소 장막 앞으로 끌려왔다.

소전충은 꼿꼿이 선채로 무릎조차 굽히지 않는다. 이를 본 숭후호가 큰 소리로 꾸짖는다. “이 못된 놈! 이제 이미 사로잡혔거늘, 무슨 해야 할 말이 남아있단 말인가? 감히 고집을 부리며 몸으로 저항을 한단 말인가! 지난 밤 五崗鎭오강진에서 그렇게 날뛰던 영웅이 이제는 온갖 못된 짓을 다한 대가로 마침내 그 업보를 받았구나. 이놈을 끌어내어 목을 베어 전군에게 보이도록 하여라!”

소전충이 버럭 고함을 지른다. “죽이려면 바로 죽여라, 하필 이런 짓을 하여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가! 나 소전충은 죽음을 기러기의 털처럼 가벼이 여길 뿐이다. 다만 너희들 못된 간사한 역적들이 천자의 눈귀를 미혹시키고, 만백성을 도탄에 빠트려, 장차 成湯성탕(은나라의 시조)의 基業기업이 끝나게 되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구나. 단지 살아서 너희 못된 무리들의 살점을 씹을 수 없는 것이 한이로구나!”

숭후호가 크게 노해서 다시 꾸짖는다. “이 젖비린내 나는 풋내기야! 이제 너는 이미 사로잡힌 몸이다. 오히려 감히 허황한 말을 지껄이느냐!”

말을 마친 후 속히 끌어내어 참수시키라고 명을 내렸다.

바야흐로 참수형을 집행하려고 하는데, 돌연히 숭흑호가 나서서 말투를 바꾸어 진언한다. “형님, 잠시 격노함을 누르십시오. 소전충은 이미 사로잡혔으며, 즉시 참수를 해도 되나, 소전충 부자가 모두 조정에 죄를 범한 관리이므로 먼저 천자의 御旨어지를 들어야 합니다. 하여 죄인을 압송하여 수도인 朝歌조가로 보내어 나라의 법대로 바르게 처리해야 합니다.

또한 소호에게는 妲己달기란 딸이 있는데, 자색이 몹시 아름다워 천자조차 종래 愛護애호하는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 하루아침에 소호의 죄를 사면한다고 하면 그때는 그 죄가 오히려 우리들에게 돌아옵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공을 세웠으나 반대로 공이 없는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서백후 희창이 도착하지 않았는데, 우리 형제가 무엇이 안타까워서 그 허물을 다 감당하시겠습니까? 소전충을 후영에 감금하여 두고, 冀州기주를 격파하여 소호의 온 집안사람들을 사로잡아 조가로 압송한 후 천자에게 주청하여 가부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숭후호가 대답했다. “賢弟현제의 말이 극히 옳도다. 아무튼 이 역적을 단단히 감금하여 두어라.” 이어서 “내 아우의 승전을 축하하겠다.”하면서 잔치를 베풀라고 명을 내린다.

한편 기주의 척후병이 달려와 소호에게 전황을 보고한다. “큰 공자님께서 출진하여 사로잡혔습니다.” 그 보고에 소호가 말했다.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아이가 애비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능력만 믿더니, 오늘 사로잡혔다. 그럴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일이다. 내가 한차례 호걸이 되었지만, 이제 친자식은 사로잡혔고, 강한 적군도 경계선까지 바짝 밀어 닥치었다. 기주도 머지않아 그들의 소유가 될 것인데, 도리어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다만 예쁜 딸아이 달기를 두었는데. 어두운 임금은 남을 헐뜯고 아첨하는 사람의 말을 믿었기 때문에 우리 온 집안으로 하여금 화를 입게 하였고, 덩달아 백성들도 재앙을 당하게 되었다. 이것은 모두 내가 이 不肖불초한 여자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렇게 무궁한 화를 당하게 되었다.

만약 한참 후에 이 성이 한번 격파되고 나면, 나의 아내와 여식이 포로가 되어 조가로 압송될 것이다. 그러면 부녀자가 그 얼굴을 만천하에 드러낸 채 희롱당하다가, 나중에는 그 시체마저 잔인하고 포악하게 처리될 것이다.

만약 천하의 제후들에게 내가 무모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으로 비웃음을 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먼저 아내와 딸을 죽인 연후에 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되면 아마도 장부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잃지 않게 될 것이다.”

소호는 극심한 번뇌에 잠겨 있다가 장검을 들고 후원으로 들어갔다. 그때 어린 딸 달기가 보이는데,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우고 붉은 입술을 가볍게 벌리면서 말을 건네 온다. “아버지, 어찌하여 장검을 빼어 들고 들어오세요?”
 

▲ 정륜이 하명을 기다리다. 
소호가 정륜에게 송주후와 숭흑호의 침입을 받은 과정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 삽 화 권미영

 

소호가 칼을 빼들고 후원에 들어갔는데, 막상 어린 딸 달기(妲己)를 눈앞에서 보게 되자 ‘이 아이는 내가 친히 낳은 딸이고 원수도 아닐진대, 이 검을 뽑아들고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호는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딸에게 말했다. “이 원수야! 너로 인해 너의 오빠 전충이가 적군에게 사로잡혔고, 기주성도 침입자들 때문에 핍박받게 되었고, 이 부모가 앞으로 그들에게 피살된다면 宗廟종묘도 그들의 소유가 될 것이다. 이 모두가 너 하나가 생겨남으로 인해 우리 소씨 가문이 끝나게 되었구나!” 하면서 홀로 탄식하고 있는데, 긴급 보고를 알리는 雲版운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군후께서 빨리 대전으로 들어오라는 기별이 왔다.

소호가 대전에 들어오자 “숭흑호가 싸움을 걸어 왔습니다.”라는 보고를 받은 후 바로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각 성문을 굳게 잠그고 방어에 치중하며, 적군의 공격에 준비하라. 숭흑호는 기이한 술법을 소유하고 있어, 누가 감히 맞상대하여 막을 수 있겠는가?”

많은 장수들이 서둘러 성루로 올라가 활과 쇠뇌를 장치하고, 신호용 대포를 설치하고, 재를 넣은 병과 성벽위에서 아래로 굴려 적군을 물리치는 통나무 종류 등을 갖춰놓고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때 공격을 위해 기주성 밑에 와있던 숭흑호는 마음속으로 가만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형! 당신이 밖으로 나와서 나와 상의를 하면, 군사를 되돌릴 수도 있는데, 왜 나를 두려워하여 도리어 싸움에 나오지 않는가? 더 이상 무어라 말을 할 수 없구나!” 숭흑호는 어찌할 방법이 없어 잠시 군사를 철수하였다.

척후병이 이 사실을 숭후호에게 보고했다. 숭후호는 숭흑호를 들라하여 원수부에 같이 앉았다. 숭흑호는 ‘소호가 성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숭후호가 말했다. “흑호 아우, 성을 공격하는 雲梯운제를 설치하고 성을 공격하세”

숭흑호가 대답했다. “굳이 성을 공격할 필요가 없습니다. 헛되이 마음과 힘만 허비할 뿐입니다. 이제 곧 기주성안에는 식량이 고갈되어 성안 백성들도 살아남기가 어렵습니다. 곧 이 성은 공격하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집니다. 형님께서는 쉬면서 힘을 비축했다가 피로한 적을 맞아 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서백후 희창이 군사를 몰고 오면 다시 그때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편, 소호는 성안에 있었으나 어느 하나 쓸 만한 방책도 없이 속수무책이었으며, 진실로 꼼짝도 못하고 죽음만을 기다리는 형국이 되었다. 우려와 번민 속에 빠져 있는데, 문득 보고가 올라왔다. “군후께 아룁니다. 督糧官독량관(양곡을 책임지는 사람) 정륜(鄭倫)이 하명을 기다립니다.”

소호가 탄식하면서 말했다. “이 식량이 비록 도착했으나, 실로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정륜을 들라고 급히 명을 내렸다. 정윤이 처마 밑 물이 떨어지는 곳까지 다가와서 몸을 숙여 절을 하며 예를 마친다.

정륜이 말했다. “末將말장이 돌아오는 길에서 들었는데, 군후께서 商상나라에 반역하였고, 숭후호가 어지를 받들어 기주성을 토벌하러 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말장의 마음에 두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어 밤에도 쉬지 않고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다만 군후께서 이번 싸움의 승패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소호가 대답한다. “지난번에 상나라 수도 조가에 가서 조회에 참석하였다는데, 어리석은 임금이 讒言참언하는 말을 믿고, 나의 딸 달기를 후궁으로 들이려 하였다. 그래서 내가 바른말로 諫諍간쟁을 하였는데, 이것이 昏君혼군의 뜻을 거역하였고, 이로 인해 죄를 받게 되었다.

뜻밖에 비중과 우혼 두 간신이 상대방의 계략을 역이용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는 將計就計장계취계의 방법을 써서 나를 사면하여 귀국시켰는데, 이것으로 내 딸을 자진하여 천자에게 받치게끔 하였다. 이에 나는 일시에 격분을 참을 수 없어 상나라에 반역하는 시를 지었다.

지금 천자는 숭후호에게 명령하여 나를 정벌하게 하였다. 첫 싸움에 이어 연달아 그들의 두세 진영을 무찔러 승리했다. 이러는 와중에 그들의 군대를 무찌르고 적장을 죽이는 등 크게 승리하였다.

뜻하지 않게 조주후 숭흑호가 적의 원군으로 싸움에 가세하여 내 아들 소전충을 붙잡아갔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숭흑호는 몸에 신기한 술법을 가지고 있어 그 용맹함이 삼군의 으뜸이라 할 수 있으므로 내가 그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지금 천하의 제후는 팔백인데, 나 소호가 어느 누구에게 가서 몸을 의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스스로 생각해보니 나의 가까운 至親지친은 불과 네 사람인데, 장남은 이미 사로잡혔으므로, 먼저 나의 아내와 딸을 죽이고 그런 연후에 스스로 자결하는 것이 낫겠다. 그러면 아마 천하의 후세인들로 하여금 비웃음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대들, 장수들은 행장을 꾸려 각기 제갈 길을 가시오. 그대들의 앞길을 그르치지 마시오.”
 

▲ 정륜이 숭흑호를 잡으러 가다 
소호의 말을 들은 정륜은 한 무더기 시커먼 구름이 땅을 말아 올리듯 쏜살같이 달려 숭흑호의 진영을 향해 달려간다.

ⓒ 삽화 권미영

 

소호가 말을 끝내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흐느꼈다.
정륜이 소호의 말을 듣고는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 “군후께서는 오늘 취하셨습니까? 어디에 홀리셨습니까? 아니면 어리석음 때문입니까? 어떤 연고로 이러한 입에 담지 못할 말씀을 하십니까!

천하의 제후로서 이름이 있는 자는 西伯서백 姬昌희창, 東柏동백 姜桓楚강환초, 南伯남백 卾崇禹악숭우 등이며, 모두 팔백진의 제후가 있습니다. 일제히 모두 이 기주에 쳐들어온다 해도 저 정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자신을 비하하심이 이와 같습니까?

정륜이 비록 末將말장이지만 어려서부터 군후를 따랐으며,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였고, 커서는 옥띠를 허리에 둘렀습니다. 말장이 비록 용렬하고 미련하여 가지고 있는 재주가 하잘 것 없는 犬馬견마에 불과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소호는 정륜의 말을 다 듣고, 여러 장수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식량을 서둘러 가져오다가 오는 도중에 사악한 나쁜 기운에 씌어서 입으로 허튼소리를 내뱉는구나. 천하에는 팔백진의 제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만 그 숭흑호 한 사람만 하여도 일찍이 기인을 만나 도술을 전수받아 귀신조차 놀랄 정도이다. 가슴에는 무궁한 韜略도략을 감추고 있어 만 사람이라도 대적할 수 없다. 당신은 어찌하여 그 숭흑호를 가볍게 보는가?”

정륜이 소호의 말을 다 듣고 난후 검을 쥐고 큰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군후께서는 이 자리에 계십시오. 말장이 숭흑호를 사로잡아 오지 못하면 저의 머리를 여러 장수들 앞에 내놓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군령을 어기고 몸을 돌려 궁중을 빠져나온다.

火眼金睛獸화안금정수라는 짐승을 타고, 두 자루의 降魔杵항마저를 쥐고, 대포를 놓아 성문을 열고 나가는데, 삼천의 烏鴉兵오아병이 줄을 지어섰다. 마치 한 무더기 시커먼 구름이 땅을 말아 올리는 것 같았다. 곧 적진 앞에 도착하여 사납게 고함을 내지른다. “숭흑호는 앞으로 나오너라. 내가 왔다!”

숭후호 진영의 척후병이 중군에 이 사실을 보고한다. “둘째 군후께 아룁니다. 기주에서 장수가 찾아와 둘째 군후와 면담을 청합니다."

숭흑호는 형인 숭후호에게 몸을 굽혀 예를 올리고 “잠시 기다리십시오. 아우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한다.

숭흑호는 본부의 삼천 飛虎兵비호병을 거느리고, 한 쌍의 깃발을 펄럭이면서 앞으로 나갔다. 그때 기주성 아래 한 무리의 人馬인마가 보이는데, 북방의 壬癸水임계수 방향에 따라 배치되어 있었는데 마치 한 무리 시꺼먼 구름과 같았다. 그 앞의 장수는 얼굴이 자주색 대추 빛과 같고, 수염은 金針금침처럼 빳빳했으며, 머리에는 九雲烈焰冠구운열염관을 쓰고, 大紅袍대홍포를 걸치고, 금쇄갑을 입고, 옥대를 두르고, 화안금정수를 타고 있는데, 손에는 절구공이처럼 생긴 두 자루 항마저를 들고 있다.

정륜도 이때 숭흑호의 옷차림이 稀奇희기한 것을 보았다. 九雲四獸冠구운사수관을 쓰고, 大紅袍대홍포를 걸치고, 고리를 이어 만든 連環연환갑옷을 입고, 옥대를 두르고, 또한 화안금정수를 타고 있으며, 도끼인 두 자루 湛金斧담금부를 들고 있다.

숭흑호는 정륜을 알보지 못하고 묻는다. “기주에서 온 장수는 우선 통성명이나 합시다!”

정륜이 말했다. “기주성의 督糧上將독량상장 정륜이다. 너는 조주후 숭흑호가 아니더냐? 내가 모시는 主將주장의 아들을 사로잡아갔는데, 스스로 사납고 포악함을 믿고 있구나. 속히 우리 주군의 아들을 내놓고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으라. 만약 이를 거역한다면 네 몸을 당장에 가루로 내어 죽이겠다.”

숭흑호는 크게 노하여 꾸짖는다. “이런 필부 같은 놈이 있나! 소호는 천자의 법을 어겨서 뼈를 부수고 몸을 가루로 만드는 화를 자초했다. 너희 모두가 반역의 도당인데, 감히 이렇게 대담하고도 망령되게 미치광이 말을 함부로 지껄이는가!” 이어서 숭흑호는 서둘러 금정수에 앉자 바로 손의 도끼를 휘두르며, 나는 듯이 정륜을 향해 찍었다. 정륜도 수중의 항마저로 급히 막으며 서로 한 번씩 주고받았다. 각자 타고 있는 괴수인 금정수도 이에 따라 일진일퇴를 하면서 한바탕 싸움이 무르익어갔다.

두 진영에서 징소리 북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응원하는 고함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두 장군이 모두 금정수를 타고 싸움을 하고 있는데, 네 개의 팔에는 각기 도끼와 절구공이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한쪽에서 노여움이 우레의 불꽃처럼 일어나는가 하면, 다른 한쪽은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던 못된 성깔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한쪽이 봉래해도에서 교룡을 베는 것 같으면, 다른 한쪽은 만길 높은 산 앞에서 사나운 호랑이를 베는 것 같았다. 한쪽이 무예에 달통하여 장차 강산을 바로잡으려는 듯 하고, 다른 쪽은 비밀리에 전수받은 도술로 乾坤건곤을 보완하려는 듯하다. 두 장수가 벌이는 용호상박의 싸움을 눈앞에서 보지 않고 더 이상 무어라 설명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 정륜이 숭흑호를 사로잡다. 
정륜은 서곤륜 도액진인(度厄眞人)스승으로부터 배운 비법인 콧구멍으로 기운을 내 보내자 숭흑호는 그 기운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고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면서 정신을 잃고 곧 사로 잡히고 만다.

ⓒ 삽화 권미영

 

정륜과 숭흑호의 싸움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었다. 싸움터에는 살기어린 붉은 구름이 암담하게 깔리고, 하얀 안개가 흩날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호적수를 만나 절구공이와 도끼를 마음껏 휘두르며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이십사오 합을 주고 받았다.

정륜이 숭흑호의 등 뒤에 붉은 葫蘆호로를 둘러매고 있는 것을 보고 스스로 생각해 본다. “主將주장께서 ‘이 사람은 異人이인에게 비술을 전수받았다’고 하였는데, 등에 맨 이것이 그의 법술일 것이다.” 흔히 말하기를 “사람을 공격할 때는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이 좋다”라고 한다.

사실 정륜은 일찍이 서곤륜 도액진인(度厄眞人)을 스승으로 모셨다. 도액진인은 정륜이 封神榜봉신방 위에 이름이 올라있는 것을 알고, 특별히 정륜에게 그의 콧구멍에서 나오는 두 기운으로 사람의 혼백을 흡수할 수 있는 비법을 전했다. 싸움에서 적과 상대할 때 이 비술을 사용하면 바로 상대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정륜은 이 비술을 소지하고 하산하여 기주성 소호에게 의탁하여 벼슬을 얻었고, 인간의 福祿복록을 누리고 있었다.

오늘 싸움에서 정륜은 손에 들고 있는 절구공이를 공중에 한번 휘두르자, 뒤편에 서있던 삼천 명의 烏鴉兵오아병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기다란 뱀이 기어오는 형상처럼 다가왔다. 병사마다 갈고리를 들고 있고, 저마다 쇠사슬을 늘어뜨리고 있는데, 구름속의 번쩍이는 섬광처럼 몰려왔다.

숭흑호가 살펴보니, 사람을 사로잡으려는 형상이었다. 숭흑호는 그 이유도 잘 모르는 채, 다만 정륜의 콧구멍에서 종소리 같은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그 콧구멍에서 두 줄기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사람의 혼백을 빨아들이는 것이 보였다.

숭흑호도 귀로 그 종소리를 듣자, 자기도 모르게 눈이 가물가물 해지고 넘어지면서 황금관이 벗겨지고, 갑옷이 말안장에서 떨어지고, 한 쌍의 신발이 공중에서 어지러이 날렸다. 이때 오아병들이 달려들어 숭흑호를 산채로 생포해서 밧줄로 두 팔을 단단히 묶었다.

숭흑호가 한참 만에 깨어나 사실을 똑바로 알았을 때는 이미 사로잡혀있었다. 숭흑호는 화가 나서 한마디 한다. “이 도적놈이 사람 눈을 속였구나! 어떻게 하였는지 잘 모르겠으나 나를 사로잡았구나?” 정륜은 승리의 북을 울리면서 성으로 돌아갔다.

숭흑호가 막상 사로잡힌 몸이 되고나자 통천교주 문하 절교파의 이름난 스승에게 비술을 전수받아 용감한 영웅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음에도, 그가 거느린 십만의 신령한 송골매(神鷹)도 아무런 쓸모없이 그 힘을 잃었다.

그때 소호가 정전에 앉았다가 홀연히 성 밖에서 북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는 탄식하면서 한마디 한다. “정륜도 끝났구나!” 하면서 마음속으로 몹시 상심할 뿐이었다.

척후병이 나는 듯이 달려와 보고를 했다. “군후께 아룁니다. 정륜이 숭흑호를 사로잡아 와서 군후의 처분을 기다립니다.”

소호는 그 연유를 모른 채 마음속으로 가만히 생각해본다. “정륜이 숭흑호의 적수가 되지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숭흑호를 사로잡았을까?”

소호는 급히 들라고 명령을 내린다. 정륜이 정전 앞에 도착하여 숭흑호를 사로잡은 경과를 한바탕 보고한다. 그때 여러 병사들이 숭흑호를 빼곡히 에워싸고 정전 계단 앞에 도착하는 것이 보인다.

소호는 서둘러 정전 아래로 내려가 숭흑호를 둘러싸고 있는 좌우의 병사들에게 물러나라고 꾸짖었다. 그리고, 몸소 그 결박을 풀어주고, 무릎을 꿇고 앉아 말했다. “소호는 이제 천자에게 죄를 지어, 이에 용서받을 여지가 없는 賊臣적신이 되었다오. 정륜이 일의 사정을 잘 모르고 천자의 위엄을 침범했는데, 소호가 마땅히 죽을 죄를 지었소!”

숭흑호가 대답한다. “어지신 형과 이 아우는 서로 절을 하고 한번 친분을 맺은 이래, 감히 의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형님의 부하에게 사로잡혔는데,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또 후한 예의로 보살핌을 입었는데, 숭흑호는 깊이 감격할 따름입니다!”

소호는 숭흑호를 존중하여 윗자리로 앉으라고 권하고, 정륜과 여러 장수들을 불러서 인사하게 했다. 이때 승흑호가 말한다. “정륜 장군의 도술은 정묘하고 기이하여 이제 제가 사로잡혔으니, 이제 이 숭흑호는 종신토록 기쁜 마음으로 복종하겠습니다.”

소호는 잔치를 베풀게 하여 숭흑호와 함께 서로 술을 권하면서 즐겁게 마셨다. 이 술자리에서 소호는 천자가 자기의 딸을 진상하라고 한 일을 하나하나 숭흑호에게 한바탕 이야기해 주었다

승흑호가 이에 대답했다. “이 아우가 이곳에 온 것은 첫째 저의 형님인 숭후호가 불리하게 될까 염려되어서이고, 둘째는 어진 형을 위해 기주성 포위를 풀고자 함이었습니다. 뜻밖에 아드님인 소전충이 나이가 어리고 스스로 강함만을 믿고 성으로 돌아가 어지신 형께 대화를 청한다고 저의 말을 듣지 않고, 싸우려고 달려들기에 이 아우가 붙잡아 저의 진영에 감금했는데, 이것도 사실은 仁兄인형을 위해서 입니다.”
 

▲ 서백후의 관리 산의생이 숭후호에게 주공의 뜻을 전하다. 
주공은 무기는 흉기이므로 임금이 된 자는 부득이 할 때에만 사용해야 하며 지금의 작은 일로 백성들은 세금을 징수당하는 고통이 따르고, 병사와 장수들도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습니다. 때문에 제가 모시는 주공께서는 먼저 저에게 편지 한 통을 내려서 이번 싸움을 중지하도록 하였습니다.

ⓒ 삽화 권미영

 

이에 소호가 감사를 표시한다. “이러한 덕과 정을 어찌 감히 잊겠습니까?”
소호와 숭흑호가 기주성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숭후호 진영의 척후가 군영의 문으로 달려와 숭후호에게 보고를 올린다. “군후께 아룁니다. 둘째 군후 숭흑호께서 정륜에게 사로잡혔는데, 그 생사의 여부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명을 내려주십시오.”
숭후호는 가만히 생각해본다. “나의 아우는 몸에 도술을 지니고 있는데, 어찌하여 사로잡혔을까?”

그때 略陣官약진관이 그간의 사정을 간략히 보고한다. “둘째 군후와 정륜과의 사이에 한창 싸움을 하고 있는데, 정륜이 절구공이 같은 항마저를 한번 휘두르자 삼천 명의 烏雅兵오아병이 일제히 몰려왔습니다. 그때 정륜의 코 구멍에서 두 줄기 하얀 빛줄기가 흘러 나왔으며,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는데, 곧 둘째 군후께서 말에서 떨어지면서 사로잡혔습니다.”

숭후호가 듣고 놀라면서 말한다. “세상에 어떻게 이러한 특이한 술법이 있을까? 다시 척후를 보내어 그 사실 여부를 알아보아라.”

말을 막 끝내는데, 서백후가 파견한 관리가 영문 앞에 도착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숭후호는 마음이 썩 기쁘지 않았으나 사신을 들어오라고 분부를 내린다. 서기 땅 서백후의 사신인 대부 散宜生산의생이 소복에 각대를 하고 장막 안으로 들어와 예를 올린다.

“이 미천한 소생 산의생이 군후께 인사 올립니다.”
숭후호가 대답한다.
“산의생 대부, 당신의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목전의 안일만 꾀하다가, 결국 국가를 위하지 않고, 기회만 엿보면서 실제 군대를 파견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조정의 뜻을 거역한 것이 아닙니까? 당신이 섬기는 주공은 신하로서의 예절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대부가 이곳에 왔는데, 무슨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산의생이 대답한다.
“저의 주공께 말씀하셨습니다. 무기는 흉기이므로 임금이 된 자는 부득이 할 때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작은 일로 인해, 백성을 수고로이 하게하고 재물을 낭비하며, 집집마다 두려움에 놀라게 합니다. 군대가 지나는 州府縣주부현에서는 돈과 식량을 조달하느라 먼 길을 고생스럽게 왕래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세금을 징수당하는 고통이 따르고, 병사와 장수들도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모시는 주공께서는 먼저 저에게 편지 한 통을 내려서 이번 싸움을 중지하도록 하였습니다. 소호가 자진하여 딸을 궁궐에 바치게 해서 각기 무기를 버리고, 조정에서 임금이 믿고 중하게 여기는 신하를 잃지 않도록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만약 소호가 복종하지 않으면, 그때는 많은 병사를 휘몰고 와서 반역자를 토벌하여 제거하고, 그 죄로 滅族멸족을 당할 것입니다. 그때는 소호가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숭후호가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서백후께서 조정의 뜻을 거스린 죄를 스스로 알고, 특별히 이리저리 둘러대는 이런 말을 하여 스스로를 변명하고 있구나. 나는 먼저 이곳에 도착해서 장수와 병사를 잃으면서, 여러 차례 악전고투를 겪었다. 그런데 저 반적이 한 장의 편지를 받고 그의 딸을 기꺼이 바칠 수 있을까? 나는 또 그대 대부가 기주로 가서 소호를 만나서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 만약 소호가 따르지 않는다면, 당신이 모시는 주공이 어떻게 회답하는지 보겠다. 당신은 어서 떠나시오”

산의생은 숭후호 군영을 나와 말을 타고 바로 기주성 아래로 가서 문을 두드린다.
“성위의 병사는 들어라. 너희 주공에게 서백후의 사자가 편지를 전하러 왔다고 보고 하시오.”
성위의 병사가 급히 대전에 보고한다.

“군께 아룁니다. 서백후의 사신이 성 아래 도착했습니다. 편지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때 소호는 숭흑호와 더불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가 말한다.
“서백후 희창은 西岐서기의 현인인데, 속히 성문을 열고 맞아 들여라”
잠시 후 산의생이 정전 앞에 도착하여 예를 올렸다. 소호가 말한다.
“대부께서 이번에 이러한 누추한 지역까지 오셨는데, 무슨 깨우쳐 주실 것이라도 있습니까?”

산의생이 대답한다.
“微官末職미관말직이 이번에 서백후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지난 달 군후께서 노하셔서 반역의 시를 지음으로 해서 천자의 죄를 얻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칙명에 따라 군대를 일으켜 죄를 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주공께서는 본래 군후의 충의로움을 알고 있어, 군대를 일으켜 쳐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군후께 전할 편지를 가져왔으니 군후께서 상세히 살피시어 시행하시기를 바라옵니다.”

말을 마친 산의생이 금낭에서 편지를 꺼내어 소호에게 올린다. 소호는 편지를 받아 개봉하였다.
 

▲ 희창이 편지 한 통으로 소호의 마음을 바꾸다 
서백후 희창이 세 가지 이익과 세 가지 해로움을 들어 소호의 마음을 바꾸고, 제후들과 화합하며 아래로는 三軍삼군의 수고로움을 면하게 하였다.

ⓒ 삽화 권미영

 

희창이 보낸 편지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서백후 희창이 백번 절을 하면서 기주 군후 蘇公소공 휘하에 올립니다. 희창은 일찍이 들었습니다. ‘온 나라 안의 백성은 모두 왕의 신하이다’ 지금 천자는 어여쁜 후궁을 뽑으려 하는데, 무릇 공경대부에서 서민의 가정에 이르기 까지 어찌 숨길 수 있겠습니까? 지금 그대에게는 맑고 덕이 있는 여식이 있어, 천자가 후궁으로 뽑으려 하는데, 이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대가 마침내 이것 때문에 천자와 맞서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대가 임금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또 반역의 시를 대궐문에 붙여 무엇을 하려는 의도입니까? 그대의 죄는 이미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대는 겨우 적은 예절만 알고, 딸아이 하나만 사랑하여 君臣군신의 큰 의리를 잃어버렸습니다.
희창은 평소에 소공이 忠義충의하다고 들었는데, 차마 앉아서 볼 수 없어 특별히 한마디 올리니, 가히 轉禍爲福전화위복이 되도록 부디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또 그대가 만약 딸아이를 궁궐에 들여보내면 세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여식이 천자의 총애를 받으면, 아버지는 황후의 귀함을 누리면서, 나라의 척족이 되고, 식록이 천종이나 되는데, 이것이 첫 번째 이익입니다.
기주를 鎭진으로 영원히 다스리면서, 온 집안에는 근심 걱정이 없을 것인데, 이것이 두 번째 이익입니다.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고통이 없고, 삼군이 서로 살육하는 참상이 없을 것인데, 이것이 세 번째 이익입니다.

소공이 만약 미혹에 사로잡혀 고집한다면, 세 가지 해로움이 눈앞에 닥칠 것입니다. 기주를 지킬 수 없어 종사가 존재하지 않을 것인데, 첫 번째 해로움입니다.
골육이 모두 멸족을 당하는 화가 있을 것인데,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군대와 백성에게 병란의 재앙을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세 번째입니다.

대장부가 마땅히 작은 예절을 버리고 큰 의리를 온전히 해야지, 어찌 구구하게 무지한 무리들을 본받아, 스스로 멸망의 길을 취하려 하십니까?
희창은 그대와 더불어 상나라의 신하가 되었으므로, 마지못하여 바른 소리를 하여 언짢게 하였는데, 어진 군후께서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대강대강 바삐 적어 삼가 받들어 올리오니 읽어보시고, 지금 곧 회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올립니다.”

소호가 편지를 다 읽고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고 다만 머리를 끄덕인다.

산의생이 소호가 말이 없는 것을 보고, 말을 건넨다.
“군후께서는 머뭇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받아들인다면, 편지 한 장으로 전쟁을 그칠 수 있습니다. 만약 복종하지 않으면, 이 몸이 돌아가 주공께 아뢰어 다시 군대를 출정시킬 것입니다.
무릇 위로는 임금의 명령에 복종해야하고, 가운데로는 제후들과 화합해야하며, 아래로는 三軍삼군의 수고로움을 면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공의 일단의 호의인데, 군후께서는 어떤 연고로 입을 다물고 말이 없습니까? 속히 지휘명령을 발동하여 시행토록 하십시오.”

소호가 산의생의 말을 다 듣고, 숭흑호에게 말한다. “賢弟현제여, 당신 이리로 와서 희창이 보낸 이 편지를 한번 읽어 보시오. 실로 이치에 합당하고, 과연 진심으로 국가와 백성을 위하는 仁義인의 군자이시다. 감히 이 편지의 권고에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이에 사신을 접대하는 관리에게 산의생을 관사에 모시고 가서 주연을 베풀어 접대하라고 명했다.

다음 날 소호가 산의생에게 편지의 답장을 써주고, 돈과 비단을 선물로 주면서 먼저 서기 땅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이어 소호는 “나는 뒤이어 딸을 궁궐에 바치고, 상나라에 입궐하여 속죄토록 하겠소.”한다.

산의생은 절을 하고 서기로 출발했다. 진정으로 편지 한 통이 십만의 군사와 필적할 만하였다.
마침 시가 있어 이를 증명한다.

“웅변은 거침없어 백군데 냇물이 한곳으로 모이는 것 같고, 바야흐로 임금의 의리와 신하의 어짐을 알게 되었다. 단 몇 줄의 편지가 소호의 마음을 바꾸게 하였는데, 어찌 삼군이 창을 베고 잠잘 필요가 있겠는가?”

편지 한 장이 전쟁을 멈추게 하였는데, 소호가 산의생이 서기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고, 숭흑호와 더불어 그 문제를 다시 상의하였다.

“희창의 말은 몹시 옳도다. 속히 길 떠날 행장을 꾸려서, 상나라에 가서 천자를 알현합시다. 더 이상 꾸물거리다가 또 다른 변고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무예의 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신연의[封神演義]_04  (0) 2009.11.03
전통태극권(傳統太極拳)  (0) 2009.10.24
무술적인 기공   (0) 2009.09.20
무맥_박정진  (0) 2009.09.10
삼국지에서 배우는 지피지기  (0) 2009.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