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⑩]
‘한글 로드’ 따라 걷는 생명문화유산 기행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한글 창제를 도운 신미대사가 걷던 길을 한글날이 있는 10월에 걷는다면 말과 글에 얽힌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가슴에 색동 단풍 숲이 계절의 불을 지필 것이다.
어느 절집인들 주변에 소나무가 없으랴만, 법주사의 소나무는 정이품송 때문에 각별하다. 2006년 문화관광부는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100대 민족문화 상징으로 ‘민족 상징’(2개), ‘강역 및 자연 상징’(19개), ‘역사 상징’(17개), ‘사회 및 생활 상징’(34개), ‘신앙 및 사고 상징’(9개), ‘언어 및 예술 상징’(19개)을 발표했다. 소나무는 ‘강역 및 자연 상징’의 하나로 진돗개, 한우, 호랑이와 함께 이 땅에 생육하고 있는 식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 우리에게 식량을 제공해주는 벼나 보리, 또는 약효가 뛰어난 인삼이나 다양한 맛을 내는 과수(果樹)는 포함되지 않고,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4300여 종류의 식물 가운데 소나무만이 민족문화의 대표적 상징에 포함된 이유는 무엇일까. 소나무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기에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일까.
소나무는 지난 수천 년 동안 건축재와 조선재의 중요한 원료였고, 도자기와 소금 생산에 필요한 연료였음은 물론이고 흉년에 주린 배를 채워준 구황식물의 구실도 해왔다. 그러기에 소나무는 농경사회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생명자원이었다. 농경사회에서 소나무가 베푼 다양한 물질적 혜택은 우리 정신세계에까지 영향을 끼쳐 지조와 절조, 생명과 길지, 풍류와 안일과 같은 상징체계로 녹아들었다. 그래서 소나무는 우리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아이콘이 됐을 것이다.
그런 소나무를 상징적으로 가장 잘 나타내는 나무는 단연 정이품 소나무라 할 수 있다. 사방으로 뻗은 줄기의 형상이 어느 쪽에서 보든 마치 정규분포곡선처럼 아름다운 대칭을 이루면서 당당하게 자라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그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불자(佛子)의 여부를 떠나, 한국인이면 누구나 세조 임금과 정이품송에 얽힌 이야기를 익히 안다. 세조가 법주사를 방문하고자 법주사 들머리에 당도했을 때 소나무가 제 스스로 처진 가지를 들어올려 임금의 가마를 무사히 지나가도록 했고, 그 것을 가상히 여긴 임금이 오늘날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2품이라는 벼슬을 하사했다는 이야기는 우리 조상들이 나무를 인격체로 본 수목관의 결정체다.
그러나 소나무와 관련된 내용이 700여 회 이상 수록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조가 소나무한테 벼슬을 내렸다는 기록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정이품송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 사실처럼 믿고 싶어하는 나무(자연)와 인간의 돈독한 관계를 전하는 한 편의 설화인 셈이다.
법주사는 불법을 구하러 천축으로 건너가 경전을 얻어 귀국한 의신(義信)스님에 의해 553년(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됐다. 법주사란 이름은 법(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脫俗)의 절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가람의 건물 대부분이 불타버렸지만, 1624년 벽암스님에 의해 중창됐고, 1787년(정조 11년)에 23대 왕이 될 순조의 태를 인근 태봉에 안치하면서 태봉수직사찰이 됐다. 오늘날은 금산사와 함께 미륵신앙의 요람으로 특히 유명하다. 법주사 경내에는 팔상전(捌相殿·국보 55호),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국보 5호), 석련지(石蓮池·국보 64호) 등의 국보와 사천왕석등(四天王石燈·보물 15호),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보물 216호) 등의 중요 문화재가 있다.
한글 창제 도운 신미대사와 세조의 인연
정이품송이 우리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의 심벌로 우리 가슴속에 자리 잡은 가장 큰 이유는 법주사를 찾은 세조와 정이품송에 얽힌 판타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판타지의 배경을 조금 더 깊게 살펴보면, 우리 문화의 핵심인 훈민정음의 창제에 기여한 불교의 공덕과 함께, 이른바 ‘한글 로드’(말티재-정이품송-법주사-복천암)라는 애칭까지 얻게 된 또 다른 판타지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역사는 이 일을 세조가 1464년 2월28일 법주사 복천암의 신미대사(信眉大師·1403~1480)를 만나고자 나선 걸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피부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는데, 훗날 세종을 도와 집현전 시절부터 한글 창제에 적극적으로 참여(일설에는 한글 창제를 주도)한 대학자이자 고승인 신미대사가 머물고 있던 복천암을 찾게 됐고, 3일간의 기도와 법문으로 안정을 찾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조는 도괴 직전의 상원사 적멸보궁을 복원시켜 달라는 신미대사의 청을 받아들여 복원공사에 필요한 재원을 나라에서 지원하게 했다. 세조와 신미대사의 인연 덕분에 오대산 월정사의 적멸보궁이 복원됐고, 복원을 기념해 상원사 걸음을 하게 된 세조가 밤중에 계곡물로 목욕할 적에 문수동자가 등을 밀어주어 피부병이 나았다는 것은 불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이야기로 이미 지난 월정사 편에서 다룬 바 있다.
청주에서 출발한 세조 일행은 말티재 아래 대궐 터에서 하루를 묵었다고 기록돼 있다. 다음날, 소나무로 빽빽하게 덮여 있는 말티재의 험한 고갯길을 넘어 평지로 내려섰을 때 주변 소나무들 중에 저 멀리 군계일학처럼 멋진 한 그루의 나무가 눈에 들어왔을 터이다. 저 소나무로부터 부처님의 나라까지는 십리길. 아마도 험한 고갯길을 넘느라 지친 가마꾼들을 쉬게 하는 한편, 흐트러진 수행원들의 의관(衣冠)도 정제할 수 있도록 소나무 밑에서 잠시 쉬어가게끔 걸음을 멈추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추측건대, 후세 사람들은 임금이 가마(輦)에서 내려 쉬어간 소나무를 신성한 왕권을 부여받은 나무로 치부했을 터이고, 그래서 정이품이라는 벼슬을 하사받은 나무로 판타지를 꾸몄을지도 모른다. 또는 궁궐을 짓고 배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나라의 중요한 자원인 소나무를 더욱 철저히 지키고자 지엄한 왕권의 상징을 잘생긴 소나무한테 부여(상징적 이입현상)했을 수도 있다.
이런 사연 때문에 예부터 나라에서는 정이품 소나무를 보호하고자 각별히 애를 썼다. 그 상징적인 예는 1980년대 초 솔잎혹파리의 공격으로 많은 소나무가 해를 입었을 때 이 소나무만은 큰돈 들여 나무 주위에 대규모 방충망을 설치, 솔잎혹파리의 공격을 막은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정이품송은 원래 ‘삿갓 또는 우산을 편 모양’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1993년 강풍으로 서쪽 큰 가지가 부러졌고, 또 이후 폭설 피해로 서쪽의 남은 가지들조차 많이 상했다. 정이품송이 자연재해로 아름다운 수형이 훼손될 때마다 여러 언론매체가 앞 다투어 기사화한 이유도 이 소나무가 가진 상징적 가치에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세조 일행의 걸음까지 멈추게 만들었다고 믿고 싶은 아름답고 당당하던 정이품송의 모습은 오늘날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오늘날은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란 옛 영광을 뒤로하고, 2001년 정이품송의 화분을 이용해 삼척 준경묘의 미인송과 교배해 얻은 종자로 후계목을 양성해서 보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소나무가 간직한 기개와 당당한 풍채를 상징하던 정이품 소나무가 병충해와 눈과 바람의 피해로 쇠퇴해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조연환 시인(전 산림청장)은 이렇게 읊었다.
정이품송
정규분포곡선으로 상징되던 네 모습이 / 허물어지는구나
네 팔뚝을 부러뜨린 자가 누구더냐
육백년을 버텨온 네가 /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힘센 폭풍이 있었더냐
하루살이 솔잎혹파리가 네 팔뚝을 / 뚝딱 먹어 치웠단 말이냐
너는 알고 있으리라 / 육백년간 승진 한 번 못하면서도
지켜온 정규분포 네 기개를 꺾고 / 비정규분포로 너를 무너뜨린 자들이 누구인지를
폭풍, 벼락, 천적보다 / 얼마나 더 무서운 자들인지를
그래, 찌그러진 네 모습으로/똑똑히 일러 주어라 / 저들의 소행을
한 천년 더 살아가면서
- 조연환의 시집 ‘숫돌의 눈물’에서
문화적 가치 對 생태적 가치
‘한글 로드’를 따라 법주사를 향하고자, 새로 낸 터널 지름길 대신에 보은 읍내에서 험한 말티재를 넘는다. 정이품송 앞에서 차를 멈추고 ‘한글 로드’의 콘텐츠를 다시금 상기한다. 500여 수행원을 대동하고 오리 숲길로 향하던 세조 임금의 행차를 상상하면서 일주문을 지난다. 법주사를 찾는 수많은 방문객은 640여 년 전 한글 창제를 도운 신미대사와 세조의 인연은 물론이고 불가의 숨은 기여를 과연 알고 있을까.
직업의식을 속일 수 없는지, 상상의 날개를 더 이상 펼칠 수 없다. 자연의 질서에 따라 참나무와 단풍나무 등 활엽수의 세력에 눌려서 소나무가 점차 사라지는 천이(遷移) 현장이 오리 숲길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천이가 이런 속도로 진행되면 법주사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들머리 솔숲은 우리 눈앞에서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법주사의 들머리 솔숲 역시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형편이다. ‘한글 로드’의 중요한 자연유산인 솔숲이 사라지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순리일까.
지난 8월23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코엑스에 2500여 명의 전세계 산림과학자가 모인 가운데 제23차 세계산림과학대회(IUFRO) 서울 총회가 열렸다. 총회에 앞서 17개 나라에서 온 산림과학자 60여 명과 하룻밤을 절집에서 묵으면서 절집 숲의 전통적(종교적) 문화 가치와 현대사회가 요청하는 생태적 가치 사이에 상존하는 알력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절집 숲 현장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에 참여한 외국 학자들은 사찰림의 종교적 활용과 보전에 대한 종교계와 정부 사이의 갈등 해소책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나의 호소에 좋은 해결책을 쉽사리 제시하지 못했다. 참가자 대부분이 단숨에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과제라는 데 의견을 모았을 뿐이다.
지난 천 수백 년 동안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돼온 절집 숲에 대한 불교계의 견해는 정부(지자체나 국립공원관리공단)와 다를 수밖에 없다. 거칠게 정리하면 사찰 측은 수행과 포교 등 종교적 목적을 위해 절집 숲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데 반해 정부 측은 미래 세대를 위해 생태적 가치(생물다양성과 경관 보전)를 더 중시한다. 종교적 목적으로 유지해온 절집 숲의 이용과 보전에 대한 갈등의 대표적 사례는 사찰림이 국립공원(또는 도립공원이나 군립공원) 면적의 30% 이상 편입된 사찰에서 더욱 심각하게 불거지고 있다.
‘소나무 순례’ 적기는 가을과 겨울
세계산림과학대회 서울 총회 기간 중 나는 ‘문화가치와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분과에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사찰림의 이 현안에 대해 절집 현장에서와 같은 문제 제기를 했다. 그러나 학술회의 참가자 대부분은 매우 조심스럽게 반응했다. 기독교의 전통이 뿌리 깊은 유럽에서 온 학자들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남미에서 온 학자들이 제안하거나 조언한 내용도 한정적이었다. 분과 학술회의의 주최자 겸 사회자인 이탈리아 피렌체 대학의 마우로 아그놀레티 교수는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이 한 가지 주제만으로도 우리 분과에 배분된 이틀간의 시간을 모두 할애해도 결론을 도출하기 쉽지 않을 만큼 어려운 주제라고 정리했다. 또 당장 양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국토가 망가지고, 자연과 생태의 가치가 고양되면 될수록 사찰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을 터이고, 그에 비례해서 종교적 문화 가치와 생태 가치 사이의 긴장은 증대될 것이다. 이 분야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중지를 모을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이런 무거운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 법주사 절집 숲을 즐기는 한 방법은 한글 로드를 따라 말티재에서 복천암까지 소나무를 순례하는 것이다. 소나무를 순례할 경우 숲이 우거져 소나무가 잘 보이지 않는 여름철보다 소나무의 형태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낙엽 진 가을이나 겨울철이 좋다. 보은군에서 운영하는 말티재의 솔향공원(소나무 전시관)을 먼저 방문한 후 정이품 소나무를 만나고, 법주사 사하촌 공원에 일렬로 선 멋진 낙락장송과 오리 숲 곳곳에 자라는 소나무를 감상하는 순서도 소나무를 즐기는 한 방법이다. 법주사 수정교 앞의 속리산사실기비(俗離山事實記碑) 주변 솔숲엔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성하다.
걸음품을 팔 자신이 있으면 법주사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숲길 곳곳의 소나무도 감상한다. 저수지를 지나면 태평교가 나타나고, 조금만 더 오르면 탑골암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주변에서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감상할 수 있다. 탑골암 위에 순조 태실이 있음을 떠올리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성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복천암에서 서향 산록을 바라보면 기세도 당당한 소나무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놓치지 말아야 할 풍광이다.
들머리 숲에서 복천암에 이르는 단풍 숲
봄철의 절집 순례는 남녘에서 시작되지만, 가을철의 절집 순례는 남하하는 단풍을 따라 북녘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우리 산하의 단풍은 보통 하루에 50m씩 고도를 낮추고, 25㎞씩 남하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9월 하순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시작한 단풍은 10월 중순 중부지방을 거쳐 하순에는 중부 해안과 남부지방으로 내려온다.
나의 절집 순례도 자연의 운행속도에 맞출 수밖에 없다. 10월 초순부터 나의 단풍 행각은 먼저 강원도 최북단의 건봉사나 백담사를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10월 중순에는 월정사를 찾고, 하순에는 강화의 전등사, 문경의 김룡사와 김천의 직지사를 차례로 찾는 것이 대체적인 가을 단풍 순례 순서다.
법주사의 단풍은 10월 하순이 제격이다. 지난해 10월 하순에 새벽 일찍 혼자서 거닐면서 즐기던 오리 단풍 숲길의 풍광을 잊을 수 없다. 봄철의 신록이나 활엽수에 가려서, 잎이 진 겨울철에야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들머리 소나무들과는 달리 가을철의 오리 숲길은 색동 단풍 숲의 별천지로 변해 있었다.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단풍(어느 자연인들 그렇지 않으랴만)을 찾을 계획이면 가능한 한 번잡함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사실. 행락객의 인파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새벽 일찍 절집을 찾는 부지런함과 함께, 가능하면 주말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오붓하게 절집 숲의 단풍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인적이 드문 이른 시간이면 오리 숲길을 천천히 음미하듯 걷고, 가능하면 오리 숲길을 왕복하면서 단풍 숲의 풍광을 가슴에 담아도 좋다. 오르내리는 방향에 따라서 눈에 들어오는 단풍의 풍광이 제각각 다름을 느낄 수만 있으면 이미 상당한 수준의 감상안을 지닌 자연 애호가임에 틀림없다. 특히 일주문 주변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형형색색으로 변한 단풍잎들을 한 자리에 서서 방향을 조금씩 바꿔 가면서 감상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절집에서 복천암까지 단풍 숲길을 거니는 방법도 추천하고 싶다. 한글 창제를 도운 신미대사가 걷던 길을 한글날이 있는 10월에 걷는다는 기분만으로도 말과 글에 얽힌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다시금 새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가슴에 색동 단풍 숲이 계절의 불을 지필 것이다. 큰절(법주사)에서 복천암에 이르는 등산로는 어느 절집 숲길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복천암은 세조가 신미대사 등과 함께 3일 동안 기도를 하고, 길목의 계곡(목욕소)에서 목욕을 한 덕분에 피부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서 깊은 암자로, 공민왕의 친필인 무량수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암자 지척에 있는 ‘이뭣고다리’ 주변의 풍광은 금강산 마하연, 지리산 칠불암과 더불어 구한말 3대 선방의 하나로 이름을 얻은 이유를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답다.
절집의 보리수와 전나무
법주사 대웅보전 앞의 두 그루 피나무(Tilia amurensis)는 달피나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보리수(菩提樹)로 표기한다. 보리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득도를 지켜본 나무로, 불자는 누구나 이 나무에 관심과 사랑을 쏟는다. 잎이 인도보리수와 닮고, 또 열매로 염주를 만들기 때문에 불자들은 보통 피나무를 보리수나무라고 부른다. 절집에서는 피나무의 사촌 격인 보리자나무(Tilia miqueliana)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나무의 열매 역시 염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스님들이 중국에서 많이 들여온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땅에는 큰 키로 자라는 피나무와 달리 ‘보리수나무’라고 불리는 관목이 따로 자라고 있다. 그밖에 상록성 덩굴나무로 자라는 ‘보리장나무’와 ‘보리밥나무’도 있다. 이들 나무 역시 모두 염주에 알맞은 열매를 맺는다.
법주사는 미륵신앙의 도량이다. 미륵신앙에서 일컫는 미륵보살은 대승불교의 대표적 보살 가운데 하나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를 말한다. 미륵신앙에는 용화수(龍華樹)라는 나무가 나오는데, 일명 보리수라고도 한다. 대웅보전 앞마당의 두 그루 피나무는 따라서 용화수라 할 수 있다. 미래의 부처는 용화수 앞에서 성불하기 이전까지는 미륵보살이라 하고, 성불한 이후는 미륵불이라 한다. 미륵불은 56억7000만년이 지나면 사바세계에 내려와 화림원 용화수 아래에서 성도해 3번의 설법으로 300억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미래불(未來佛)을 말한다. 이 3번의 법회를 ‘용화삼회’라고 한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대웅전 앞마당에 버티고 있는 피나무 두 그루는 불교적 의미를 간직한 살아 있는 자연유산인 셈이다.
법주사가 보유한 수많은 국보와 보물 못지않게 나의 눈길을 붙잡는 것은 천왕문 앞의 전나무다. 세조가 찾은 복천암 입구에도 두 그루의 전나무가 당당하게 서 있다. 당간지주처럼 굳게 하늘로 뻗은 천왕문 앞 두 그루 전나무의 의미는 무엇일까.
전나무 숲을 보유한 월정사나 내소사와는 별개로 전나무는 이 땅의 수많은 절집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나무다. 지난 3년간 절집 숲을 순례하면서 놓치지 않고 관찰한 것은 절집의 전나무 유무였다. 단언컨대 역사가 오래된 절집치고 전나무 없는 절집은 없었다. 서늘하고 추운 곳에 자생하는 한대성 수종인 전나무가 온화한 남도의 여러 절집에서까지 자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님네들이 이들 전나무를 직접 심었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절집에 왜 다른 나무보다 전나무를 특별히 많이 심었을까. 왜 절집 곳곳에 무리지어 심거나 또는 삼문(三門·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주변에 마주 보게 두 그루의 전나무를 심었을까?
절집을 찾을 때마다 전나무에 대한 이런 의문이 떠올랐고, 그때마다 스님께 그 연유를 여쭈었지만, 시원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전나무가 절집에 자리 잡게 된 사연 중에 이런 저런 책을 뒤져 얻은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당나라 조주선사의 유명한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와의 연관성이었다.
‘정전백수자’란 선사의 한 제자가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祖師西來意)’라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니라’는 선문답에서 유래한 고사다. 우리나라에선 간화선에 얽힌 이 화두를 설명할 때, 뜰 앞의 잣나무로 해석하지만, 실제로 ‘柏(백)’은 측백나무를 나타낸다. 사실 이 선문답에 대한 해석은 나무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측백나무 대신 잣나무라 해도 화두의 의미가 변질되거나 손상되지 않기에 큰 문제는 없다.
결론적으로 전나무가 절집에 특히 많은 이유는 간화선의 화두로 언급된 측백나무와 전나무가 외형상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 연유는 전나무와 측백나무를 나타내는 한자의 자전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후한 때 허신(許愼·30~124년경)은 한자 9353자를 수집해 540부(部)로 분류하고, 육서(六書)에 따라 글자의 모양을 분석해 ‘설문해자(說文解字)’를 편찬했다. 이 자전은 전나무가 ‘잎은 소나무, 줄기는 측백나무를 닮았다’고 풀이한다. 그리고 옛 문헌에는 전나무를 뜻하는 회(檜)가 측백나무를 뜻하는 백(柏)과 함께 백회(柏檜)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서산대사 휴정이 남긴 옛 시는 이러한 해석을 더욱뒷받침하고 있다.
草堂詠柏(초당에서 전나무를 읊다)
月圓不逾望 둥근 달도 보름 넘지 못하고
日中爲之傾 해도 정오면 스스로 기우네.
庭前柏樹子 초당 뜰 앞에 서 있는 전나무
獨也四時靑 사시사철 저 홀로 푸르구나.
- 西山大師(休靜)
결국 전나무는 측백나무와 비슷한 모습을 간직했기에 예부터 선 수행을 하던 스님들이 측백나무 대신에 전나무를 절집에 많이 심은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절집마다 조주선사의 화두로 언급된 측백나무와 비슷한 전나무를 심어서 곧고 당당하게 자라는 전나무의 수형(樹形)과 엄동에도 늘 푸른 상록성을 통해 참선 수행에 임하는 수행자의 올곧은 수행 자세와 서릿발 같은 지계(持戒)의 강직함을 끊임없이 본받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땅 수많은 절집의 전나무들이 참선 수행에 나선 고승대덕의 동반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절집 숲이 포용하고 있는 만물이 제각각의 의미를 간직한 생명문화유산임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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