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의 경포대가 이렇듯 맑고 아름다운 해변을 갖고 있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경포대 해변의 언덕 위에 지난 6월 말 새로 들어선 ‘씨마크 호텔’ 10층 객실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이랬습니다. 흰 모래가 깔린 바다는 수정같이 맑았고 갯바위와 해초들은 투명한 초록빛으로 반짝였습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백사장에 드문드문 꽂힌 원색의 파라솔이나, 보트가 끌고 가는 물보라까지도 모두 감각적으로 배치된 듯했습니다. 강원 고성에서 남쪽으로 속초와 양양, 강릉을 지나 동해까지…. 7번 국도로 이어지는 강원 해안이야말로 너무 익숙합니다. 이처럼 익숙한 길을 휴가철 한복판에 다시 따라가면서 새로 생겨난 것들이나,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과 만나 봤습니다. 익숙한 곳에 새로운 것들이 들어서고 있었고, 새로운 것들은 그곳의 풍경과 이미지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미처 몰랐던 경포대의 낭만적인 바다 말고도, 그 길에서 새로 발견한 건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화진포 호수와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명당자리, 리조트 건물과 영랑호를 화폭으로 삼아서 빛으로 그려낸 그림, 분방함에 몸을 맡긴 젊은이들이 파도에 뜨거운 몸을 식히는 서핑 해변, 솔숲의 초록빛이 흥건하게 고여 있는 캠핑장….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접하면서 익숙한 곳을 새롭게 만드는 풍경을 만나 봤습니다. # 경포대의 아름다움을 새로 발견하다…씨마크 호텔 씨마크 호텔의 가장 큰 가치라면 ‘경포대를 다시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호텔이 아니었더라면 경포대의 바다가 이리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동안에도 알지 못했듯이 앞으로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호텔에서 바다의 경관을 가장 인상적으로 볼 수 있는 자리가 바로 5층의 야외공간인 ‘인피니티 풀’이다. 인피니티 풀이란 바다 쪽에 담장이나 난간 같은 경계를 없애 시선에서 풀의 한쪽 끝과 바다가 겹쳐지도록 만든 풀장을 말한다. 그래서 풀 안에 몸을 담그면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데, 이 장면 하나만으로 휴가의 판타지는 완성된다. 어디 바다뿐일까. 인피니티 풀에서는 산을 조망할 수도 있다. 몸을 뒤로 돌리면 멀리 대관령 일대의 힘찬 백두대간 능선과 마주 서게 된다. 씨마크 호텔에서 눈길을 붙잡은 건 흰 설탕 같은 순백의 외관과 풍경, 그리고 안으로 풍경을 끌어들이는 크고 작은 수많은 창이다. 호텔은 건축계의 세계적인 거장 리처드 마이어의 솜씨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마이어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장식 미술관’, 미국 애틀랜타의 ‘하이 뮤지엄’ 등 세계적인 건축프로젝트를 완성하며 명성을 쌓아 왔다. 그의 스타일을 관통하는 건 ‘백색’이다. 그래서 건축계에서는 그의 건축을 ‘백색건축의 미학’으로 정의한다. 씨마크 호텔도 예외 없이 순백색이다. 경포 해변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백색의 건축물은 낮에는 흰색으로, 밤이면 은빛으로 빛난다. 호텔을 찾아간 건 마침 보름 밤이었는데, 환한 달빛을 받은 건물이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몽환적으로 반짝였다. 호텔 내부는 간결한 대신 크고 작은 창으로 외벽을 삼다시피 해서 풍경이 안으로 들어온다. 객실도 치렁치렁한 치장 없이 깔끔하고 단순하다. 장식을 비워 둔 자리로 창밖의 경관이 밀고 들어온다. 하기야 바다의 휴양지에서 자연과 경관만큼 완벽한 장식이 또 어디 있을까. 문제가 있다면 딱 하나 숙박요금이다. 호텔의 최상층인 15층 전체를 하나의 객실로 쓰는 호화로운 프레지덴셜룸이나 정원을 거느린 한옥 별채 ‘호안재’의 하룻밤 숙박비는 여기서 밝히지 않는 게 좋겠다. 비수기에는 좀 내려가긴 하겠지만, 일반 객실도 여름 성수기 숙박 패키지가 50만 원을 육박한다. 그럼에도 그 값을 하는지 여부야 저마다 판단할 일이다.
# 화진포, 호수와 바다를 다 같이 보는 자리…응봉 두 번째로 꼽을 곳이 화진포다. 동해안의 최북단 땅인 고성. 고성의 대표적인 명소라면 단연 화진포다. ‘화진(花津)’은 ‘꽃피는 나루’라는 뜻. 호수 주변에 해당화가 만발해 붙여진 이름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 화진포에는 해당화는 드물고, 대신 소나무 울울하게 늘어선 숲이 있다. 강원 동해안 일대 해안에는 강이 끌고 내려온 모래가 바다 모래와 만나 민물을 가두면서 만들어 낸 호수 ‘석호(潟湖)’가 여럿 있다. 송지호, 영랑호, 청초호…. 그중에서도 둘레가 16㎞에 달하는 최북단의 화진포가 가장 크다. 화진포에는 김일성, 이승만, 이기붕의 별장이 있다. 최고 권력자들이 저마다 이쪽에 별장을 두었다는 건 그만큼 화진포 일대의 경관이 빼어나다는 증거다. 사실 화진포에 먼저 별장을 지은 건 외국인 선교사들이었다. 외국인 선교사들의 동해안 별장은 함경도 원산 해변에 있었는데, 일제가 비행장 건설을 이유로 별장을 화진포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렇게 지어진 외국인 선교사의 별장이 소위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는 화진포의 성이었고, 이기붕의 별장이었다. 화진포에 외국인 선교사의 별장이 지어지고, 내로라하는 이들이 그 별장을 제 것으로 삼은 연유는 빼어난 경관 때문이다. 그러니 화진포에서 경관 대신 별장만 둘러보고 돌아온다면 앞뒤가 바뀐 것이다. 별장보다는 별장을 그 자리에 들어서게 한 경관이 더 먼저라는 얘기다. 화진포의 경관을 가장 극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은 해발 122m의 자그마한 봉우리 응봉이다. 응봉 정상에 올라서면 화진포 호수와 화진포 해수욕장 백사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에 호수를 품고 앞으로 바다를 두고 있는 해변의 옆모습이 마치 파노라마 사진 같다. 소나무 가득한 첩첩한 산으로 둘레를 삼고, 호수와 바다의 서로 다른 물색이 반짝이는 모습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이리 좋은 풍경이 왜 여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그건 응봉 일대가 50년 넘게 군사작전지역으로 엄격하게 출입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응봉은 부산에서 고성을 잇는 770㎞의 해안 도보코스 ‘해파랑길’이 이 봉우리를 지나면서 2013년에 비로소 개방됐다. 다른 계절이라면 거진항에서 출발해 바다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응봉을 넘어 통일안보공원까지 11.8㎞ 구간을 다 걷는 게 좋겠지만, 한여름 뙤약볕 아래 5시간 30분을 걷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 그러니 하이라이트 구간인 거진항에서 화진포 해변까지 5㎞ 남짓 구간만 걷거나, 절집 ‘금강삼사’에서 응봉까지 가볍게 오르내린대도 좋겠다. 금강삼사는 본디 금강산에 있던 절. 유점사, 장안사, 표훈사의 토지를 관리하기 위해 지어졌는데, 남북의 왕래가 막힌 1950년쯤 화진포 쪽으로 옮아왔다. 절집은 새로 중창해 볼품이 없지만 이래봬도 대웅전의 관세음보살 목불은 금강산 유점사에서 노스님이 업고 내려온 것이다. 절집에서 응봉 정상까지는 500m 남짓. 산책 삼아 다녀올 수 있는 거리와 높이만으로 화진포 일대의 훌륭한 경관을 한눈에 다 담을 수 있다.
# 속초의 화려한 여름밤과 양양의 ‘청춘 전용 해변’ 고성 아래 속초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일찌감치 관광지로 개발돼 이미 내놓을 것을 죄다 꺼내놓아 더 내세울 게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매력이 없다는 건 아니고, 새로운 걸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 속초에 올여름, 빛으로 영랑호반을 붓질하듯 화려한 그림을 그려내는 대규모 야외공연 ‘더 블루’가 등장했다. ‘더 블루’는 신세계 영랑호 리조트 잔디마당에 특설무대를 설치하고 오는 23일까지 매일 밤 열린다. 피서객들을 위한 공연인 셈이다. ‘더 블루’ 공연을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다. 이 공연의 장르는 ‘하이퍼 파사드 판타스틱 쇼’. 이름이 좀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건축물의 외벽이나 구조물을 스크린 삼아 수시로 바뀌는 환상적인 영상을 보여주고, 이를 배경으로 입체효과를 입힌 무대 위에서 논버벌 퍼포먼스 공연을 벌이는 식으로 진행되는 공연이다. 뮤지컬 연출자 박칼린이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공연은 1, 2부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1부는 하이퍼 파사드 쇼이고, 2부는 특수효과를 총동원한 퍼포먼스다. 높이 76m의 영랑호 리조트 건물과 50m 길이의 무대 전체를 스크린으로 삼는 만큼 공연의 규모는 압도적이었고 몰입감도 뛰어났다. 은하계에서 한 마리 용이 은빛 여의주를 따라 지구로 향한다는 이야기 구조보다는 순간순간 펼쳐지는 시각적인 놀라움만으로 하이퍼 파사드 공연은 볼 만했다. 화려한 특수효과를 총동원한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후반부도 흥겨웠다. 이 정도라면 피서객들의 여름밤을 책임지는 데 손색이 없어 보였다. 속초 아래 양양에는 서핑 전용 해변이 올해 국내 최초로 등장했다. 양양 하조대 해변 북쪽의 군사작전지역 백사장 일부를 개방해 조성한 ‘서피비치’다. 동호인을 중심으로 간간이 서핑을 즐기는 해변은 동해안과 제주 일대에 있지만, 해수욕객이 몰리는 피서철에는 사고 우려 때문에 서핑을 통제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서피비치는 오히려 피서철에 튜브를 이용하는 해수욕객을 통제하고, 서핑만을 즐길 수 있는 전용해변으로 운영된다. 서피비치의 입지는 그러나 파도를 타기에는 적당치 않아 보였다. 서핑을 즐기기에 좋은 파도가 밀려오는 날도 있겠지만, 마침 서피비치를 찾아간 날은 파도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바다가 고요했다. 파도 대신 해변을 채운 건 싱싱한 젊음이었다. ‘서핑 전용’이라기보다 ‘젊은이 전용’이라는 게 더 적당해 보였다. 록음악과 재즈가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해변에서 젊은이들은 분방하게 즐겼다. 요샛말로 ‘핫’한 클럽의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더러는 뙤약볕의 백사장에 누워 선탠을 하면서 음악을 감상했고, 다른 이들은 서핑보드에 배를 깔고 수영을 즐겼다. 잔잔한 파도가 심심했는지 지프형 차량을 백사장으로 밀고 들어와서는 차와 연결한 밧줄을 붙잡고 서핑보드로 물살을 가르는 모험심 넘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이들과 함께 섞일 만큼 젊지 않더라도,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해변의 분위기가 썩 괜찮아 슬쩍 끼어들어 봐도 좋을 듯 싶다.
# 계곡 아래 솔숲 그늘에서 힐링을 만끽하는 캠핑장 강릉 아래 동해의 무릉계곡 입구에는 지난 2013년 동해시가 솔숲에 새로 들여놓은 쾌적한 캠핑장이 있다. 동해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고 있는 ‘힐링캠핑장’이다. 이 캠핑장은 근래에 조성한 캠핑장답지 않게 울창하고 서늘한 솔숲 그늘 아래 있다. 새로 조성한 캠핑장은 대부분 그늘이 없어 한여름 뙤약볕으로 뜨겁게 달궈져 여간 불편한 게 아닌데, 여기는 애초부터 캠핑장을 잘 자란 소나무 숲 한가운데 들여놨다. 캠핑장 규모는 5000㎡로 그닥 크지 않은 편. 텐트를 칠 수 있는 사이트도 32면에 불과하다. 그러나 텐트에 타프까지 쳐도 그닥 비좁지 않을 정도로 텐트 사이트가 널찍하고, 텐트와 텐트 사이의 이격 거리도 좁지 않은 편이다. 샤워장, 화장실, 개수대, 전기설비 등도 모두 갖추고 있다. 무릉계곡에는 공용 주차장 옆에 ‘자연캠핑장’ 간판을 단 대중적인 캠핑장도 따로 있지만, 힐링캠핑장의 시설이나 분위기에는 훨씬 못 미친다. 사실 무릉계곡 힐링캠핑장 시설이 수도권 일대의 이른바 럭셔리 캠핑장과 견줄 정도로 잘 꾸며진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곳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건 무릉계곡을 비롯해 두타산, 청옥산, 고적대 등과의 접근성 때문이다. 낮에는 무릉계곡의 반석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내친김에 두타산이나 청옥산 등반까지 겸할 수 있다. 피서객들이 미처 몰려들기 전인 이른 아침이나, 다 빠져나간 뒤인 해질 무렵 호젓한 계곡의 경관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캠핑장 솔숲은 한여름에도 밤이면 바람 끝이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다. 캠퍼들 사이에 입소문이 빠르게 나면서 해마다 힐링캠핑장 이용객들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1만여 명에 달할 정도다. 캠핑 덱의 숫자가 많지 않아 기사가 나간 뒤에 어떨지 모르지만, 아직 덜 알려진 편이어서 8월 중순 이후에 토요일만 피하면 여유가 있긴 하다. 굳이 여름이 아니라 가을을 겨눠 찾아간다면 더 쾌적한 캠핑과 단풍이 물든 무릉계곡 탐방을 즐길 수 있다. 동해안 최북단 고성에서 속초, 양양, 강릉을 거쳐 동해까지…. 이 익숙한 여행지에서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매력이 발견되기도 한다. 다 가봤다 해도 모두 본 건 아니다. 어디 동해안의 해변만 그럴까. 아직 미처 발견해내지 못한 매력이 우리 땅 곳곳에 있다.
강릉에서는 사천항의 물회가 이름났다. 사천항 물회의 원조 격인 ‘장안횟집’(033-644-1136)이 가장 인기 있다. 물회에 미역국과 공깃밥을 함께 낸다. 사천항 뒷불해수욕장의 ‘돌고래횟집’(033-644-1237)은 성게알로 비빔밥과 미역국, 물회 등을 차려 낸다. 동치미 육수에다 성게알과 가자미, 오징어, 멍게 등을 함께 넣어 내는 성게모둠물회가 이색적이다. 강릉 경포대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안목해변의 해송횟집(033-652-8200)은 호텔 1층에 자리 잡아 식당이 깔끔한 데다 푸짐한 곁들이 음식과 회를 낸다. 양은 많은 편이지만, 회를 다소 얇게 썰어내서 풍성하게 씹는 맛을 즐길 수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강원 고성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면 단연 가진항의 물회. 가진항 일대에는 물회를 내는 식당이 즐비하다. ‘광범이네 횟집’(033-682-3665)이 그중 추천할만한 곳이다. 매일 아침 포구에서 입찰받은 물가자미와 오징어, 해삼 등을 받아다가 쓴다. 가진항의 식당들은 거의 비슷한 맛의 새콤달콤한 물회를 낸다. 물회가 복잡한 손맛을 내는 음식이 아닌 만큼 구태여 원조집을 찾을 필요는 없다. 속초 중앙동에서는 30여 년간 가자미물회를 다뤄 온 ‘송도물회’(033-633-4727)가 유서 깊은 맛집인데, 최근에는 속초시청 앞 골목의 ‘봉포머구리집’(033-631-2021)의 명성이 하늘을 찌른다. 30년 경력의 잠수부인 주인이 바다를 뒤져 횟감을 잡아내는 걸로 유명해졌다. 멍게비빔밥과 성게미역국도 인기 메뉴다. 요즘 같은 피서철에는 워낙 손님이 몰려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속초의 ‘속초 회국수’(033-635-2732)는 30년 넘은 내력을 가진 집이다. 물가자미회에다 겨자채와 배, 해초 등을 넣고 국수에 비벼 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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