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현 포스코)이 들어선 지 올해로 47년. 대표적인 공업도시로서 포항의 나이는 중년을 훌쩍 넘겼지만, 관광에 관한 한 포항은 ‘젊은 도시’입니다. 도시의 무게중심이 생산과 효율에서 ‘삶의 질’과 도시재생 쪽으로 옮겨가면서 곳곳에 새로운 명소들이 만들어지고, 또 발견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포항이 새로 만드는 명소들은 기왕에 없던, 새로운 것들이어서 특히 반갑습니다. 대부분의 관광지가 ‘손을 대면’ 오히려 망가지기 일쑤지만, 포항이 만들어내는 명소는 새롭습니다. 새롭다는 건 한편으로 낯설다는 것. 저마다 비슷비슷한 관광지들 사이에서, 포항의 명소들은 낯선 만큼 빛납니다. 포항의 새로운 명소를 대표하는 건 단연 ‘포항운하’입니다. 오래 전에 물길이 닫힌 형산강의 샛강. 존재마저 희미해진 그 샛강이 지난해 다시 이어져 도심 한복판의 운하로 재탄생했습니다. 이름하여 ‘포항운하’입니다. 고인 채 썩어가던 바다에 유연하게 휘어진 물길을 내자 금세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운하를 따라 시민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했고, 운하를 따라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느릿느릿 떠다녔습니다. 포항에는 또 영일만의 푸른 바다에 화강석 돌다리를 놓아 그 끝에다 지어낸 전통 목조 누각이 있습니다. 영일대(迎日臺). ‘해를 맞이하는 누각’이란 이름의 이 전통 한옥 건축물은 당당한 위용으로 존재감부터가 남다릅니다. 이만 한 규모의 누각부터가 드물 뿐만 아니라 바다 위에 지어진 것으로는 거의 유일한 것이니 말입니다. 포항운하에 앞서 지난 2013년 지어진 이 누각은 일대 해수욕장의 이름마저 북부해수욕장에서 영일대해수욕장으로 바꿔버렸을 정도입니다. 포항의 호미곶 앞바다에 세워놓은 ‘상생의 손’도 ‘손을 대서’ 명소가 된 곳이고,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의 골목을 복원해낸 구룡포의 근대역사문화거리도 잘 다듬어서 만들어낸 곳입니다. 이런 곳들이 유독 돋보이는 건, 당장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공업도시의 그늘을 벗어나려 오래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포항에는 또 공업도시와 바다의 그늘 아래 숨겨진 곳들도 많습니다. 계곡을 따라 무수한 폭포가 만들어내는 비경에 취해 따라가는 내연산의 풍광이야 익히 알려진 곳이지만, 조선 말엽에 조성됐다는 흥해읍 북송리의 천연기념물 솔숲 ‘북천수’의 먹으로 찍어낸 듯한 소나무의 도열은 포항 사람들도 아직 잘 모릅니다. 바다와 마당 사이를 돌담 하나로 나눈, 이제는 여기밖에 남아있지 않은 소박한 바닷가 마을풍경도 숨겨진 보석 같습니다. 포항 사람들의 안목을 보건대 이 짙은 숲을, 이 소박한 바닷가 마을을 섣불리 손대지 않고 놓아둔 것에도 다 뜻이 있으리라 짐작됐습니다.
# 포항운하, 공업도시에 낭만을 불어넣다 ‘포항운하’. 그냥 말이 그렇지 싶었다. 아마도 공업도시라는 강렬한 이미지에다 ‘운하’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공업도시와 낭만이라니…. 좀처럼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 아닌가.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운하는 기대 이상이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다듬어낸 물길이 도심 한복판을 흘러 바다의 내항으로 이어졌다. 운하 양옆으로 나무가 심어졌고 산책로와 전망대가 놓였다. 운하 뒤편에 공장과 굴뚝이 솟아있었지만, 그것도 크게 거슬리는 건 아니었다. 어둠이 내리자 공장시설을 밝힌 조명은 운하의 가로등과 어우러져 나름 운치를 자아냈다. 서늘한 밤바람 속에서 야경 유람선이 운하의 좁은 수로를 따라 지나갔고, 산책을 나오거나 자전거를 탄 이들은 운하를 건너는 다리 위에 멈춰서서 등지느러미를 내놓은 채 무리지어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포항운하에서 물이 주는 아늑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건, 그게 단지 경관의 목적뿐만 아니라 소용과 순환으로 놓은 것이기 때문이리라. 본디 운하가 흐르는 물길은 형산강의 지류였다. 바다를 코 앞에 두고 형산강은 샛강으로 갈라져 바다로 나갔다. 해도, 송도, 상도, 대도…. 샛강은 하구에 이렇게 4개의 섬을 빚어내곤 동빈내항을 지나 바다와 만났다. 그런데 그 물길이 40년 전쯤 닫혀 버렸고, 샛강은 지도에서 지워졌다. 그대로 두었다면 곧 기억에서도 지워지고 말 것이었다. 샛강이 살아있던 시절, 동빈내항은 명실상부한 포항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동빈내항은 당시 포항제철로 들고나는 물동량을 감당하지 못했다. 형산강 본류 하구 쪽에 포항신항이 건설됐다. 뒤로 물러앉은 동빈내항은 ‘구(舊)항’이란 이름을 받아 그저 어선들만 드나드는 초라한 항구로 겨우 살아남았다. 뒤이어 포항제철에 인구가 급속도로 유입됐고, 집지을 땅이 부족하자 사람들은 샛강의 습지 주위로 몰려들었다. 집이 들어서면서 습지는 서서히 매립됐다. 샛강의 물길은 그렇게 닫히고 말았다. 강이 사라지고 물 흐름이 멈추자 내만(內灣)의 바다는 악취를 풍기며 썩어들어갔다. 스테인리스처럼 번쩍이는 공장과 썩어 악취를 풍기는 바다. 공업도시의 음습한 뒷모습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40여 년 만에 닫혔던 물길이 복원됐다. 말이 쉽지 처음 논의가 시작되고 이후 무려 17년이나 걸린 사업이었다. 물길 위에 집을 짓고 살았던 827가구 2225명이 떠난 자리에 형산강의 샛강이 다시 물길을 열었다. 그게 바로 포항운하다.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샛강을 복원해 만들어낸 운하는 이제 유람선이 뜨는 명소가 돼 외지인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 바다 위에 지은 누각 ‘영일대’가 바꾼 풍경들 포항시가 명소로 만들어낸 건 운하뿐만이 아니다. 영일만의 바다 위에는 지난 2013년 새로 지은 해상 누각 ‘영일대’가 우뚝 서있다. 해변 백사장에서 돌다리를 놓아 바다 안쪽에 섬을 만들고는 거기에 거대한 목조 누각을 지었다. 현판에는 ‘해를 맞이하는 곳’이란 뜻으로 ‘영일대(迎日臺)’란 이름을 달았다. 바다 위에 누각이라니. 창의적이고 낯설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쩐지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 바다 풍경을 버드나무 늘어진 연못으로 바꾸니 경복궁의 경회루가 단박에 떠오른다. 본래 영일대가 세워진 해변의 이름은 ‘북부해수욕장’이었다. 1975년에 개장한 해수욕장인데 포항 도심의 북쪽에 있다고 그리 이름을 붙인 모양이었다. 공업도시다운 작명법이다. 그런데 누각을 세우면서 아예 해변의 이름을 ‘영일대해수욕장’으로 바꿨다. 해수욕장의 이름까지 바꿀 정도니, 그것만으로도 해상 누각이 지닌 무게감이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영일대 부근의 바다는 부산의 해운대와 빼닮았다. 해변에서 도심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지는 것도 그렇고, 해변에 딱 붙어 도로가 나있는 것도 그렇다. 도로 이쪽이 백사장이라면 횡단보도 하나 건너 카페와 레스토랑이 불야성을 이룬다는 점도 비슷하다. 제트스키와 요트, 윈드서핑 등 해양레포츠 활동이 활발한 것도 닮았다. 규모나 휘황함에서야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지만, 거리의 흥겨운 분위기만큼은 해운대보다 한 수 위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조각작품이 세워진 해변 산책로에서는 흥겨운 거리공연이 펼쳐진다. 공연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 아마추어들. 악기 하나 없이 소형 녹음기만 틀어놓고 육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학생부터, 정작 노래실력보다는 용기를 더 칭찬해줄 만한 청년도 있다. 이들은 빙 둘러선 관객들과 격의없이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고, 아예 관객 중 한 명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노래 한 소절을 청하기도 한다. 한 여학생이 그 마이크를 받아 음정도 박자도 다 무시한 노래를, 그것도 끝까지 천연덕스럽게 불렀다. 영일대의 밤바다는 들뜬 해변 도시의 분위기에다, 불밝힌 해상 누각의 모습이 보태져 더 아름답다. 간접 조명을 받은 영일대 누각의 목재기둥들이 모두 황금빛으로 빛나는 모습이라니…. 낮이라면 아무래도 좀 꺼림칙했을 포스코 공장굴뚝과 건물들이 바다 너머에서 불을 켜고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인다. 그 불빛에 거리공연의 기타소리와 색소폰 소리, 그리고 밤바다의 파도소리가 겹쳐진다. 영일대 해변은 몸을 담그고 헤엄치는 바다라기보다는 이렇게 바라보고, 걷고, 산책하는 바다에 가깝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손대지 않아서 아름다움을 지킨 숲… 북천수
조선 철종 때 흥해군수가 도음산의 지맥을 보호하고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둑을 쌓고 조성한 이 숲은 21만1000여㎡(약 6만4000여 평)의 평지에 해송과 곰솔이 한데 어우러져 어둑한 숲을 이룬다. 솔숲은 곡강천 물길을 따라 띠처럼 이어져 있는데 그 길이가 자그마치 2.5㎞다. 대한민국에서 세 번째로 긴 숲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숲은 경남 함양에 있는 상림이고, 그 뒤를 잇는 게 하동 섬진강변에 조성된 송림이다. 북천수와 상림, 하동송림. 이 세 곳 모두가 천연기념물이다. 솔숲을 찾아가는 길은 흥해 서부초교에서 시작한다. 그윽한 소나무들이 아예 학교 담을 이루고 있다. 서부초교에서 자전거도로가 놓인 곡강천 둑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이 사는 집들과 이리 가까운데 여기 어디 천연기념물 숲이 있을까 싶다. 그렇게 좌우를 살피며 걷는데, 어느 사이에 소나무들이 점점 더 촘촘해졌다. 그리고 둑 주변 마을 사람들이 제 먹을 것을 거두는 텃밭 곁으로 나무 울타리가 나왔다. 북천수의 진면목은 그 울타리 안에 있었다. 솔숲은 은은하면서도 품위 넘치는 먹빛이었다. 다양한 농담의 먹을 화선지에 툭툭 찍어내 번진 것 같은 색감이랄까. 볕이 들지 않는 울창한 송림의 서늘한 대기 속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시들었던 몸과 마음이 싱그러워지는 느낌이다. 그 숲에 들어서자마자 ‘아, 좋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 솔숲을 두고 한때 산림욕장을 만들자는 제안이 많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북천수는 손을 타지 않은 채 주민들의 삶 곁에서 아직도 싱싱하게 살아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손대지 않고 그냥 놓아둔 것이 못내 고마웠다. 지금 이대로도 산림욕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숲인데, 길을 넓히고, 팻말을 세우고, 주민들을 밀어내며 편의시설을 들여서 과연 무엇을 더 얻을 수 있을까. 여기까지 왔다가 포항 내륙의 덕동마을을 빼고 가는 건 아무래도 서운하다. 여강 이씨 집성촌인 기북면 오덕리 덕동마을은 운치있는 노거수 솔숲과 그윽한 고택, 물을 끼고 있는 정자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본래 이 마을은, 마을 사람들이 계를 운영하며 가꿔온 솔숲의 아름다움으로 밖에 알려졌다. 그 뒤에 체험마을이 돼서 한옥 체험장을 짓고, 폐교 운동장에 물을 대 연못으로 조성하며 경관을 다듬어냈다. 그럼에도 마을은 예전의 기품을 잃지 않았다. 손을 댔으되 도를 넘지 않아 이전의 정취를 흐뜨러뜨리지 않은 것이다. 섣불리 손을 대 삶의 냄새를 다 지워버리고 한옥 별장촌이나 테마파크처럼 탈바꿈시킨 몇몇 고택마을을 생각하면 덕동마을의 그윽한 아름다움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 | |||||||||
포항 가는 길 = 지난해 3월 31일 신경주-포항 간 고속철도(KTX)가 개통됐다. 새마을호 열차로 서울에서 포항까지 5시간 20분 걸리던 것이, KTX를 타면 2시간 15분으로 절반 이상 짧아졌으니 이만저만 가까워진 게 아니다. KTX 요금은 서울에서 성인 일반실 기준 5만2600원이다. 포항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 포항운하를 둘러보려면 ‘포항운하관’을 먼저 들르는 게 순서. 포항과 동빈내항, 형산강 샛강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곳이다. 운하관에서는 유람선을 탈 수도 있고, 운하까지 자연스럽게 길이 이어져 산책의 출발점으로 삼아도 좋다. 운하에서 영일대해수욕장까지는 택시로 10분이면 간다. 요금은 6000원 정도.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에 지난달 베스트웨스턴 호텔이 새로 문을 열었다. 모든 객실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다. 8월 말까지 숙박요금은 주중 9만 원, 주말 13만 원 안팎. 9월부터는 주중 9만 원, 주말 10만 원쯤을 받는다. 영일대해수욕장 주위에는 휘황한 모텔들이 많다. 휴가철 주말은 숙박비가 10만 원을 호가하지만, 9월부터는 5만∼6만 원선으로 내려간다.
포항의 먹거리는 죽도시장에 모여있다. 포항운하를 끼고 있는 시장 초입의 ‘죽도시장길’에 횟집들이 몰려있다. 4인가족 기준으로 모둠회가 7만∼9만 원선. 굳이 추천하라면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하게 음식을 차려내는 운하회·대게식당(054-346-5656)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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