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네시스 美 ‘슈퍼볼’ 광고, 30초 2편에 57억!
● “렉서스는 그랜저 맞수, 우리 적수는 독일 명차”
● 정몽구 회장, 디자인만 두 번 바꿔
● 정 회장이 아우디 충돌광고 주도…“조작은 없었다”
● 문, 시동, 속도조절…자동으로 안 되는 게 없다
● “지금 시동 걸린 거야?” 정숙성, 세계 최고 자부
● 렉서스, 제네시스 출시 맞춰 가격인하…정면승부 시동
● 엔진·서스펜션·첨단장치 비교치 독일차 이상, 그러나…
● 전문가 설문 “상품가치 충분…주행성능엔 개선 여지”
전세계 2억여 명의 시청자에게 생중계되는 미국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 ‘슈퍼볼’. 지난 2월3일 열린 제42회 슈퍼볼 TV 중계 중간광고에 한국 기업 광고가 처음 등장했다. 광고효과가 워낙 크다 보니 광고단가도 30초 1편당 무려 300만달러. 하지만 돈을 낸다고 누구나 광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광고시간은 한정된 반면, 광고를 내겠다는 기업은 폭주하기에 주최 측은 광고 상품의 품질과 광고 내용, 광고주의 기업 이미지에 대한 사전 심의를 거쳐 광고물을 확정한다. 매해 슈퍼볼 광고에 어느 기업이 들고났는지가 뉴스의 초점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엄정한 사전심의와 치열한 경쟁, 엄청난 광고비의 벽을 넘어 슈퍼볼 광고기업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한국 기업은 현대자동차. 한국 광고사에 빛날 슈퍼볼 1호 광고의 주인공 상품은 현대차가 최근 출시한 럭셔리 세단 ‘제네시스(GENESIS)’였다. 현대는 이번 슈퍼볼 광고에 30초 광고를 두 편이나 내보냈다. 광고 제작비를 제외한 순수 광고 게재 비용만 600만달러(57억원). 단일 광고가로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
‘Think about it’
수출용 제네시스는 1월8일 첫 출시된 BH380 차종에 3300cc, 3800cc급 람다엔진 대신 4600cc급 타우엔진을 탑재해 8월쯤에 첫 수출이 이뤄질 예정으로, 수출가격은 국내 승용차 수출사상 최초로 대당 4만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현대차는 미국시장에 제품을 출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프리론칭 광고(출시 전 광고)에만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은 것이다. 현대차가 제네시스에 거는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현대차는 슈퍼볼 광고에서 제네시스가 어떤 차들과 경쟁하려는지를 분명히 했다.
“오우! 제네시스, 이 빅게임에 데뷔하는 새로운 럭셔리 브랜드는 벤츠 S클래스처럼 넓지만 C클래스의 가격에 살 수 있습니다… 생각도 할 수 없는 반전(twist) 아닌가요? 375마력의 제네시스를 소개합니다.”
“내일 USA투데이 ‘애드미러’ 코너(광고 리뷰 칼럼)에 이 광고가 어떻게 평가받을진 모르지만, 분명히 벤츠 BMW 렉서스는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습니다. BMW 7시리즈만큼 넓지만 3시리즈 정도의 가격, 375마력의 제네시스를 소개합니다.”
현대차는 슈퍼볼 광고 1편에선 벤츠를, 2편에선 BMW를 겨냥했다. 벤츠와 BMW 최고 차종의 품격(실내공간 넓이)과 성능(375마력)을 갖추고도 가격은 최저 차종 수준이라 가격 대비 만족도가 세계적 명차와 비교해 손색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 현대차는 이 광고에서 미국 최대 신문 중 하나인 ‘USA투데이’까지 동원하며 제네시스가 이미 세계적 명차 브랜드의 견제 대상이 됐음을 일방적으로 선포한다. 그러고선 두 편의 광고 말미에서 시청자에게 이렇게 권한다.
“Think about it(생각해보세요).”
미국 광고시장에선 요즘 ‘Think about…’ 유의 카피가 유행인데, 이는 기존 브랜드 파워에 현혹되지 말고 제품의 실질적 내용을 다시 살펴본 후 구매하라는 의미다. 주로 후발주자가 명품시장에 진입할 때 쓰는 카피. 이 광고를 통해 현대차는 미국시장에 형성된 저가 브랜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앞으로는 성능과 품질로 승부를 가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소비자에게 각인시켰다.
효과가 나타난 것일까. 2월6일 미국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슈퍼볼 시청자 조사 결과, 현대차 제네시스 광고가 슈퍼볼 중간광고 중 브랜드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힘을 얻은 현대차는 ‘Think about it’ 광고 시리즈를 연이어 냈다. “자동차는 컵 홀더보다 에어백 수가 많으면 안 되는가?” “자동차 긴급 정비 서비스는 돈을 내고 받아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계속 던짐으로써 브랜드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匠人 드림팀 ‘BH TFT’
미국 자동차 전문지 ‘모터 트렌드’는 “…제네시스는 현대차를 럭셔리 메이커 반열에 올릴 놀라운 차…GM, 도요타, BMW, 벤츠도 제네시스를 주목해야 할 것…현대차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럭셔리 세단 제네시스의 출시는 일본 경쟁사들에 커다란 고통이 될 것…”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돈을 들여 뜯어고치면 누구나 미인이 될 수 있다는 성형 지상의 시대. 하지만 변하지 않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 ‘원판 불변의 법칙.’ 본 바탕, 즉 ‘원판’이 나쁘면 겉모습을 아무리 고쳐도 ‘명품 미인’이 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지금껏 세계시장에 최고를 추구하는 다종다양한 차가 선을 보였지만, 그중 살아남은 명차 브랜드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겉치레 광고에는 한계가 있는 법. 주행성능과 디자인, 안전성과 같은 ‘원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그 브랜드는 막대한 광고비만 쏟아 붓고 자취를 감춘다. 그게 명품시장의 법칙이다.
지난 2003년, 세계 8위의 현대차는 명품 수입차가 내수시장에 쏟아져 들어오자 바짝 긴장했다. 소비자들은 이미 자동차 전문가가 돼 있었고, 그들은 자신의 질주 본능을 만족시킬 명차를 원하고 있었다. 더욱이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저가 마케팅은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수출실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신장세를 계속 유지하기 힘들다는 결론이 내부적으로 내려졌다. 이런 위기감 속에 탄생한 것이 ‘명차 브랜드 창조를 위한 중장기 플랜’이었다. 벤치마킹 대상은 도요타의 명차 브랜드인 렉서스.
하지만 생산될 명품 대형 세단의 품질비교 대상은 일본차 렉서스가 아니라 독일차 BMW, 벤츠, 아우디였다. 렉서스는 2005년 5월 출시된 후 놀라운 내수 판매량을 기록한 그랜저 TG의 적수일 뿐, 새롭게 출시될 명품 브랜드의 수준은 적어도 BMW와 벤츠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월등히 우월한’ 수준에는 못 미치더라도 ‘그것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게 마지노선.
정몽구 회장 “바꿔, 바꿔…”
세계적 수준의 고급 대형 세단 개발은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직접 주도했다. 평소 차량을 직접 분해하고 조립할 만큼 전문가로 소문난 그가 ‘루키’에 붙여준 프로젝트 명은 ‘BH(Brilliant Honor)’, ‘똑똑하고 존경스러운’이란 의미의 프로젝트 명은 후일 이 차량의 트림 명(세컨드 네임)으로 살아남았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오너가 직접 투자를 결정하고 개발을 진두지휘한 상품에는 조직원의 총체적 역량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2004년, 각 공장에 흩어져 있던 연구개발 부문 숙련 인력이 모두 현대차의 맹아이자 기술개발의 산실인 남양종합기술연구소로 모여들었다. 남양연구소는 풍동(風洞)실험실과 주행시험장, 충돌시험장 등 차량 개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춘 곳으로, 시설 면에서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자동차연구소로 꼽힌다. 이곳에 현대차 40년 기술진보의 산증인인 분야별 거장들이 모여 태스크포스팀을 만든 것이다. 일명 ‘BH TFT’.
현대차 기획실 박진영 차장은 “현대차 40년 역사상 한 대의 차를 개발하기 위해 각 파트 숙련 연구인력 전원이 한군데 모여 3년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은 처음이며, 회사는 이들을 위해 어떠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톱(Top,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서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현대차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이후 이곳에서 람다엔진, 뮤엔진, 타우엔진이 개발됐고, 이들 각 엔진에 맞는 자동변속기가 만들어졌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 에어서스펜션도 고안됐다.
이렇듯 기획 단계만 2년에 개발 과정 3년2개월 등 5년여의 기간을 거쳐 총 5000억원의 개발비가 투입돼 탄생한 결과물이 제네시스다. ‘GENESIS’는 구약성서의 첫 권, 창세기편의 이름이며 ‘기원, 창시, 시작’을 의미한다. 고급 명차 브랜드 론칭을 하느님이 세상을 연 태초에 비유한 셈. 지난 1월8일의 국내 신차발표회에는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와 차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제네시스를 직접 몰고 발표회장에 나타났다. 이후 정 회장은 평소 타고 다니던 에쿠스 리무진 대신 제네시스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네시스에 대한 정 회장의 애정은 강렬했다. 개발과정에서 차량의 주행 안정감을 결정짓는 서스펜션을 3번이나 새로 설계하게 했고, 외부 디자인도 2번이나 바꿨다. 두 번째 디자인은 언론에도 공개됐지만 정 회장의 지시로 앞뒷면이 현재의 모습으로 확 바뀌었다. 두 번째 디자인이 바뀐 것은 지난해 3월로, 차량 출시를 불과 9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제네시스는 광고를 통해 독일 명차들에 줄줄이 선전포고를 했다. 아우디 A8은 제네시스와의 옵셋충돌(준 정면충돌)에서 대파됐고, 벤츠 E350과 BMW 530i는 제네시스에 장착된 레이더 자동감응 시스템(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에 추월당했다. 실제 광고에선 차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수입차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소비자들은 화면에 비친 차가 어떤 종류의 차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아우디와의 충돌 장면 촬영은 정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네시스는 당초 스포츠 세단으로 기획됐으나 콘셉트를 바꿔 정통 세단으로 탄생했다. 이른바 ‘프리미엄 럭셔리 다이내믹 세단’. 수식어가 3개나 붙었다. ‘스포츠’가 ‘다이내믹’으로 순화됐고, 고급스러우면서 다른 차와 차별되는 중후함을 갖췄다는 의미에서 ‘프리미엄’과 ‘럭셔리’가 추가됐다.
독일차, 일본차보다 넓은 실내
과연 제네시스는 이런 수식어에 걸맞은 차일까. 또 얼마만큼 ‘원판’이 보장되는 차일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현대차 측에 제네시스 시승을 요청했다. 현대차는 1월8일 국내 신차발표회 이전 남양연구소에서 기자단을 상대로 깜짝 시승모임을 연 적이 있으나, 개별적으로 차량을 빌려준 적은 없다. 그런데 뜻밖에도 현대차 측은 6일 동안이나 시승 기회를 줬다. “충분히 타보고 제대로 분석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기자는 지난해 그랜저 TG를 취재(‘신동아’ 2007년 3월호 참조)하면서 렉서스 ES330과 ES350을 비교 시승했고, 제네시스의 주 경쟁 차종인 BMW 530i와 벤츠 E350, 아우디 A6를 타본 적이 있다. BMW 530i는 차주를 조수석에 앉히고 30분가량 몰아봤고, 벤츠 E350과 아우디A6는 차주가 모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4~5시간을 달렸다. 현재 기자가 타는 차는 1998년식 3000cc 쌍용 뉴코란도. 장착된 엔진은 독일 벤츠사에서 만든 디젤 602EL이다.
현대차 측에 제네시스 시승을 요청한 지 일주일 뒤인 3월4일 제네시스가 도착했다. 현대차 홍보실 권용준 과장이 직접 차를 몰고 왔다. 아침 일찍 세차를 하고 출발했다는데 오는 도중에 황사 섞인 눈이 내렸다. 제네시스의 첫인상은 스포티하면서도 중후한 느낌. 전체적으로 그랜저 TG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렵한 보디라인,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 헤드램프의 하이테크 이미지가 어우러져 심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지난해 3월 언론에 살짝 공개된 옛 디자인보다는 중후함이 강조됐고, 전체적으로 차체가 동급 경쟁차보다 커 보였다. 스포츠 세단에서 다이내믹 세단으로 콘셉트가 바뀐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제네시스의 차체 길이는 BMW 530i, 벤츠 E350, 렉서스 ES350보다 12cm, 그랜저 TG보다는 6cm 길고, 폭은 전체적으로 4~7cm 넓다. 높이(차고)는 BMW 530i, 렉서스 ES350보다 1~3cm 높은 반면 벤츠와 그랜저 TG보다는 1~1.5cm 낮다.
바퀴는 휠이 큰 데 비해 타이어 부분이 얇아 BMW 530i의 바퀴(던롭 타이어)를 보는 듯했다. 이는 지금껏 BMW만이 가진 기술로 알려져왔으나 제네시스에도 적용됐다. 앞바퀴 휠 중심에서 차량 전면부까지의 거리, 즉 오버항이 매우 짧아져 스포티한 느낌을 더했다. 뒷부분은 트렁크라인에서 유리창을 부드럽게 타고 올라간 라인이 루프 뒷면에 달린 상어 모양의 샤크 안테나에서 절정을 이뤄 다이내믹한 역동성이 강조됐다. 이런 스포티한 디자인은 차량 뒷면 하단부에 양쪽으로 포진한 머플러에서 극대화된다.
스포티하면서도 중후한 그랜저 TG에 환호했던 40대들에겐 더욱 눈길을 끌 만하다. TG보다 1000만~4000만원 비싸지만 디자인은 오히려 더 스포티해진 면이 있다. 첫 느낌에 손잡이를 잡고 뒷좌석에 앉는 사람의 차, 즉 운전기사를 둔 후석 위주의 차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도 이 때문이다. 디자인만 봐도 오너드라이버를 위해 만들어진 차임을 알 수 있다.
차에 올라 실내공간을 살피니 세 단어가 떠올랐다. 깔끔, 심플, 우아함. 제네시스에 첨단 사양이 많이 적용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조작 스위치가 의외로 적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모든 마감재가 나무 아니면 가죽 재질이라 우아한 느낌을 더했다. 무엇보다 차 문을 열면 경쟁 차보다, 그리고 차의 외형 크기에 비해 실내공간이 무척 넓어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제네시스의 전장과 폭은 다른 차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실내공간의 넓이를 결정하는 축거(앞뒤 바퀴 중심 사이의 거리, 휠 베이스)가 BMW 530i, 벤츠 E350보다 5cm, 렉서스 E350과 그랜저 TG보다는 무려 16cm가 길기 때문이다.
각 차량의 제원표에 따르면 실내공간의 경우 제네시스의 앞자리 레그룸의 길이는 렉서스 ES350보다 12cm, BMW 530i, 벤츠 E350보다는 6~7cm 길다. 또 뒷자리의 무릎 공간(무릎과 앞 시트 사이 공간)은 BMW 530i와 렉서스 ES350의 두 배 수준(116mm), 벤츠보다는 36mm 더 길다. 하체가 길거나 몸집이 큰 사람에겐 앞자리 레그룸과 뒷자리 무릎 공간이 1cm만 길어도 큰 차이가 느껴진다. 실내공간이 이처럼 넓어진 것은 제네시스의 앞뒤 오버항이 그만큼 짧아졌기에 가능한 일로, 현대차 측은 “이 또한 기술력 진보의 산물”이라고 자평한다.
시동 걸린 줄 모르다!
운전석에 앉으니 다소 비만한 편인 기자에게도 운전석이 넉넉하다. 시동이 켜질 때의 엔진소음과 진동을 시험할 요량으로 시승차를 몰고 온 권 과장에게 키를 달라고 했다.
“최 기자님, 지금 시동이 걸려 있는데요….”
앗! 당황한 나머지 순간적으로 변속기에 한 손을 올리고 다른 손으로 핸들을 쥐었다. 미동이라도 느껴지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양손 모두 별다른 느낌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계기판 위에도 손을 올려봤지만 역시 마찬가지. 권 과장에게 “농담하지 말라”며 “그럼 시동을 꺼보라”고 했다. 권 과장이 핸들 우측 아래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니 ‘푸르르’ 하며 시동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렉서스나 BMW, 벤츠를 몰거나 옆에 앉아 있을 때 실내가 하도 조용해 탄복한 적이 여러 번 있지만, 시동이 걸려 있는지조차 모르기는 제네시스가 처음이다. 권 과장은 “제네시스를 막 인수한 고객 중에 시동이 걸린 줄 모르고 시동 스위치를 몇 번씩 누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차체 각부 소음과 진동 취약 부위에 제진 패드와 차음 패드를 많이 넣었고, 공회전시 진동소음을 경쟁차보다 최소화하는 데 주력한 덕분에 정지시 진동과 소음에 있어선 세계 최고 수준을 자부한다”고 했다.
이외에도 제네시스에는 국내 최초로 후면을 제외한 모든 유리에 이중접합 차음소재가 적용됐고, 이는 벤츠에도 없는 차음 시스템이라는 게 현대차의 주장이다. 실제 제네시스의 냉각팬 소음은 BMW 530i의 87% 수준이며, 공회전시 진동과 소음은 BMW 530i보다 각각 4~8dB, 3dB 더 낮다. 실내 소음 측정치는 BMW 530i가 62.2dB, 제네시스가 61.7dB.
다시 시동을 걸기 위해 키를 달라고 했더니 이번엔 “이 차엔 시동키가 따로 없고 방금 시동을 끌 때 사용한 그 스위치를 다시 누르면 시동이 걸린다”고 한다. 이른바 ‘스마트키 시스템’이라는 것인데, 요즘 웬만한 대형차 고급 차종엔 다 적용되는 시스템이란다. 스마트키를 지닌 차 주인이 근처에 있을 경우 도어 핸들에 달린 단추만 누르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며, 차 주인이 스마트키만 갖고 있으면 버튼 하나로 시동이 걸리고 꺼진다. 갑자기 세상 돌아가는 사정 모르는 ‘벽촌거주 만년서생’이 된 기분이다.
그 후로도 기자는 시동을 걸어놓고 딴 짓을 하다 몇 번씩 시동 스위치를 다시 누르곤 했다. 차를 정말 조용하게 만들었거나 진동과 소음에 대한 기자의 반응감각이 아주 무디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최다 판매 모델은 ‘BH330 럭셔리’
현대차가 제공한 시승차는 국내 시판 제네시스 중 최고급 규격이다. 최고급 기종인 BH380 로얄 VIP팩(5830만원)에 모든 선택품목이(916만원)이 탑재된 총액 6746만원짜리 차였다. 렉서스 ES350 (6520만원, 일부 옵션 제외)과 가격이 비슷하다. 현대차는 자신들의 경쟁 상대는 렉서스가 아니라 독일차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국내에서건 미국에서건 렉서스와의 정면승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렉서스가 최근 차량가격을 대폭 인하하고 옵션을 다양화한 것도 제네시스 출시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 한다.
독일차 브랜드도 최근 수입가격을 줄줄이 내렸지만 제네시스와의 가격차는 아직 크다. BMW 530i(9150만원)와 벤츠 E350(직수입 풀옵션 8670만원, 수입회사 판매가 1억700만원), 아우디 A6(3.2 기준, 직수입 풀옵션 8620만원) 등과 비교하면 독일차에 대한 제네시스의 가격경쟁력은 여전히 큰 무기다.
현대차가 최고 규격의 제네시스를 시승차로 내준 것은 제네시스의 모든 성능과 편의품목을 체험해보라는 배려와 함께 수입 명차와 공평하게 비교해보라는 의도였다. 대부분의 대형 수입 판매사들이 풀옵션 적용 차량을 수입해 판매하며, 이들보다 17% 정도 싼 직수입 차를 타는 사람들도 풀옵션을 선택하는 사람이 태반이기 때문.
제네시스는 엔진 배기량에 따라 BH330과 BH380으로 대별되고, 또 각 모델에 들어가는 기본품목에 따라 BH330 4종, BH380 2종 등 총 6종류로 나뉜다. 3300cc급 람다엔진을 탑재한 BH330 중 최저가 모델인 ‘그랜드’(무옵션, 4050만원)는 동급 람다엔진을 넣은 그랜저 TG L330의 최고급 규격인 브라운 팩 풀옵션(4281만원)과 가격이 비슷하다. 같은 급 엔진을 채택한 풀옵션 그랜저 TG를 살 수 있는 돈으로 무옵션 제네시스 그랜드를 구입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제네시스 BH330 최고 사양인 VIP팩 풀옵션 차량도 구매자의 눈길을 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가격이 6416만원으로, BH380의 최고 규격인 VIP팩 풀옵션(6746만원)과 330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풀옵션은 같은 조건이므로 3800cc 엔진과 3300cc 엔진의 가격차가 330만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3월10일 현재까지 팔려 나간 제네시스는 3400여 대인데, 이 중 가장 많이 팔린 차종은 BH330 중 최저가 모델 바로 위 모델인 ‘럭셔리’(4520만~5110만원, 27%)이고, 다음은 그보다 조금 더 비싼 럭셔리 프라임팩(4920만~5750만원 22%)이다. 시승차와 같은 모델인 BH380 VIP팩(5830만~6746만원)도 20%나 팔렸다. 국내 구매자의 경우 무옵션 모델보다는 편의품목을 어느 정도 갖춘 차량, 아니면 최고급 모델을 선택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드디어 시속 260km
외관과 내부는 꼼꼼이 살펴봤고, 가격도 경쟁차종과 비교해봤으니 이젠 본격적으로 성능 시험에 나설 차례. 3월4일 밤 11시쯤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을 출발해 경기도 평촌의 인덕원 사거리까지 30여 km를 달렸다. 시청→남산1호터널→반포대교→우면산터널→시외곽순환도로→평촌으로 이어지는 코스. 각종 첨단 편의장치 시험은 다음으로 미루고 주행성능과 소음, 주행안정성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가속페달에 발을 댄 첫 느낌은 부드러움 그 자체. 그랜저 TG L330에서 아주 미세하게 느껴지던 변속 충격, 즉 가속할 때의 울렁거림이 전혀 없었다. 브레이크도 부드러웠다. 조금만 밟아도 상체가 흔들릴 정도인 기자의 ‘애마’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내친김에 최고 속도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제네시스의 계기판 최고속도는 260km, 설계상 최고속도는 280km다. 우면산터널 앞 도로는 밤 11시30분이 넘으면 차량 출입이 뜸해지고, 터널 안은 2000원의 통행료 때문에 몇 분에 한 대꼴로 차량이 지나간다. 기자는 다른 차들을 지나쳐 보내고 터널 안에 들어온 차량이 없는 순간을 확인한 후 제네시스를 급발진시켰다.
제네시스 홍보 책자에는 100km 도달 시간이 7초라고 했는데 기자의 계산으로는 7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속도계 바늘이 미친 듯이 올라가는데도 핸들에는 떨림이 없다. 속도감이 나지 않았다. 속력을 계속 올리자 차가 바닥에 착 가라앉는 느낌이 들더니 속도계가 어느새 220km를 가리켰다. 차량의 흔들림은 느끼지 못했지만, 시속 150km가 넘어서자 풍절음(wind noise)이 ‘윙’ 하며 들리기 시작하더니 속도가 올라갈수록 거세졌다. 만일의 사고를 막기 위해 우면산터널 1, 2차로에 걸치게 정중앙으로 차를 몰았다. 한 손으로 핸들을 움직이며 곡선 반경을 휘저어 나갔다.
우면산터널은 커브가 꽤 심한 곳이다. 하지만 제네시스는 시속 200km를 넘는 속도에 브레이크 한번 밟지 않고도 차체 흔들림 없이 터널 안을 헤쳐 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터널 끝에 다다랐고 요금소가 눈앞에 들어왔다. 재빨리 브레이크를 몇 번 밟았더니 요금소 코앞에 이르러 차가 급히 멈춰 섰다. ‘끼익~’ 하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브레이크 성능도 좋다. 우면산터널 요금소 직원에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2000원을 들이밀자 그는 ‘미친 사람’ 보듯 기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요금소를 나와 아웃사이드 미러를 힐끗 보니 40대로 보이는 여직원은 또다시 ‘휑’하니 사라지는 제네시스를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민 채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기자는 이틀 후 인천공항 고속도로에서 마침내 제네시스 계기판 최고 속도인 시속 260km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물론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지 않고도 그 속도에 이르렀고, 10여 초간 달리는 동안 차체의 흔들림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설계 속도가 시속 280km란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rpm이 요동치듯 올라갔지만 위험경계선(6500)을 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곡선 운전도 편안했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차량이 커브의 반대 방향으로 쏠리지 않았다. 국산차 성능이 이 정도까지 올라왔다는 것에 만족하고 그쯤에서 ‘광란의 질주’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데 과연 국내에 이런 속도로 달릴 도로가 있을까. 아무리 시험주행이라도 이건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다.
“같은 람다엔진이 아닙니다”
현대차는 독일 명차에 도전장을 낸 제네시스 주행성능의 핵심을 자체 개발한 람다엔진과 후륜구동 동력전달 방식, 최적의 중량 배분에서 찾는다. 자동차에 꽤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도 제네시스에 장착된 람다엔진이 그랜저 TG 엔진과 같은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현대차는 이런 지적에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친다. 제네시스에 탑재된 람다엔진은 전륜구동형인 그랜저 TG와 달리 후륜구동형으로 설계됐고, 출력향상을 위한 보조장치가 곳곳에 설치됐으며, 연비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주장이다. 그랜저 TG L330의 람다엔진 최고출력(ps/rpm)은 233ps인 데 비해 제네시스 BH330은 262ps로 더 높다. 최대토크(kg.m/rpm)도 제네시스가 1.2 더 높다. 가장 큰 차이는 연비(km/ℓ). TG L330의 연비는 ℓ당 9.0km이고, 제네시스 BH330의 연비는 10% 더 개선된 10km다.
BH 380에 탑재된 3800cc급 람다엔진은 경쟁 수입차종과 비교해 출력과 토크, 발진가속도(0→100km), 추월가속도(60→100km), 연비 면에서 앞선다. 연비는 벤츠 E350이 ℓ당 8.7km,제네시스는 9.6km이고, 출력은 BMW 530i가 234ps인 데 비해 제네시스는 290ps이다. BMW 530i와 렉서스 ES350의 발진가속도는 각각 7.4초, 7.3초이지만 제네시스는 7.0초, 추월가속도는 BMW 530i가 4.3초인데 비해 제네시스는 3.6초에 불과하다.
후륜구동은 아우디를 제외한 독일 명차들이 대부분 선택하고 있는 동력전달 방식으로, 조정 성능이 우수하고 회전 반경과 기동성이 좋으며, 특히 고속주행 안정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돌 때 충격 흡수공간이 넓어 안전성 면에서도 유리하다. 제네시스는 후륜구동방식을 적용하면서 주행의 운동성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차량 전후 중량 배분에 있어 50:50의 황금비율에 근접했다. 전륜구동인 렉서스 ES350의 전후 무게비율은 61:39로 앞쏠림 현상이 있지만 제네시스는 52:48로 별 차이가 없다. 덕분에 연비가 개선되고 가속 시간도 단축됐다. 세계에서 중량 배분 비율이 가장 우수하다는 BMW의 무게비율은 51:49다. 여기에 독일차와 렉서스가 선택한 6단 자동변속기가 장착돼 주행감이 부드럽다.
바퀴에 가해지는 중량과 노면의 진동을 분산시키는 서스펜션도 제네시스의 자랑거리. 앞뒤 바퀴 서스펜션에 모두 독일차(4개)보다 많은 각각 5개의 링크를 장착한 데다, 충격에 따라 반응정도를 자동 조절하는 진폭 감응형 댐퍼도 들어 있다. 특히 고급모델에 장착되는 전자제어 에어서스펜션은 운전자의 설정, 또는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서스펜션의 반응정도를 조절한다. 험한 도로를 달릴 때는 차체가 3cm 정도 위로 올라가고, 고속주행을 하거나 노면이 좋으면 1.5cm 내려간다. 운전자가 버튼 하나로 이를 수동 조작할 수 있는데, 정차했을 때 차고 버튼을 누르면 차체가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차고가 올라가거나 내려간 상태에서 시동을 끄면 차량이 알아서 정상 위치로 복귀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차의 서스펜션은 나무 막대기 같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현대차는 서스펜션만을 주제로 한 광고도 만들었다. ‘풍동 테스트’ 편이 그것. 거대한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초강풍 앞에 은색 메탈 공기방울은 바람을 맞으며 제네시스로 변해가고 ‘공기저항계수 0.01을 줄이기 위해’라는 카피가 나오면서 속도가 빨라질수록 차가 가라앉는 다운포스 기술을 형상화 한 장면이 나온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이 광고는 남양연구소 풍동실험실에서 촬영됐다.
초속 55m의 바람(태풍 초속은 17km)이 불어오는 3층 높이에서 “목숨을 걸고 촬영했다”는 게 현대차 광고제작사 이노션의 후일담. 풍동실험실은 차량을 정지시킨 상태에서 엄청난 바람을 일으켜 실제 차량이 달릴 때 받게 되는 공기저항을 수치화한다. 제네시스는 바람이 강하게 불 때 전자 에어서스펜션이 작동되면서 차량이 아래로 내려앉으며 공기저항을 최소화한다. 제네시스의 공기저항계수는 벤츠 E350과 렉서스 ES350보다 0.01 낮고, BMW 530i보다는 0.01 높다.
주차장에서 생긴 일
차를 새로 사거나 다른 사람의 차를 빌려 탈 때 가장 조심스러운 것은 주차다. 제네시스는 몸체가 그랜저 TG보다 더 크다. 첫 주행시험을 마치고 아파트 단지의 비좁은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시도하던 기자는 3번 놀랐다. 맨처음 놀란 것은 흔히 파워핸들(스티어링)이라고 하는 제네시스의 ‘엉뚱한’ 핸들 조향방식 때문이었다. 주차할 곳이 없어 이곳저곳 헤매던 중 직각으로 꺾이는 곳에서 핸들을 한껏 돌린 후 손을 놓았더니 핸들이 그 자리에 멈춰버린 것. 그래서 차가 핸들이 꺾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 접촉사고가 날 뻔했다. 핸들을 한쪽으로 돌렸다가 놓으면 저절로 반대방향으로 돌아 제자리로 가는 여느 차와 달랐다. 시속 40km 이상으로 달릴 때 손을 놓아야 핸들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현대차측은 “저속에서 핸들이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생기는 차체 흔들림을 막고, 운전자의 의지대로 핸들을 조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만들었다. 그게 유럽 스타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제네시스는 다른 차량들처럼 엔진에 있는 펌프에서 핸들 파워스티어링의 유압력을 제공받는 대신 전기모터로 유압펌프를 돌려 핸들에 전해지는 진동과 소음을 제거하며, 연비를 올리는 대신 속도에 따라 핸들이 제어되도록 했다. 제네시스 핸들에서 미세한 진동도 느껴지지 않고 저속에서 핸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속도가 매우 느린 것도 전기유압식 파워스티어링 때문이었다.
주차장을 돌던 중 빈 자리를 발견하고 후진 기어를 넣는 순간, 모니터에 차량 뒤편 공간이 나왔다. 후방 카메라가 작동한 것. 다른 차들에 비해 모니터 화면이 밝고 선명한 게 마음에 들었다. 후진 기어를 넣음과 동시에 아웃사이드 미러가 아래로 향하며 차량 옆면 아랫부분을 보여주는 것도 운전자를 세심하게 배려한 장치였다.
주차를 마친 뒤 시동 스위치를 눌러 끄고 주차 브레이크를 당기려 오른쪽 아래편을 더듬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런데 계기판에는 주차 브레이크가 이미 채워졌다는 표시가 나왔다. 시동이 꺼지면 자동으로 주차 브레이크가 걸리는 전자 파킹 브레이크 시스템이 장착돼 있던 것. 출발할 때는 가속페달을 밟기만 하면 저절로 주차 브레이크가 풀리고 차가 움직인다. 차량 가까이에 사람이나 차가 있다면 수동으로 전환하는 게 좋을 듯했다. 브레이크를 억지로 풀고 차가 출발하려다 보니 앞으로 울컥 튀어나가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주차 브레이크 거는 것을 잊어버려 큰 사고가 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주차공간이 없어 일렬주차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제네시스는 시동을 끄면 주차 브레이크가 자동으로 걸리고, 시동을 완전히 끄려면 반드시 ‘P’에 기어를 넣어야 한다. 알다시피 변속레버 ‘P’ 상태에서 시동이 꺼지면 중립(N) 위치로 기어를 옮길 수 없다. 그렇다면 일렬주차가 불가능한 것일까.
그러나 현대차는 주차공간이 부족해 일렬주차할 경우가 많은 국내 현실을 감안해 시프트 록 해제 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꺼진 이후에도 기어를 중립 상태로 옮길 수 있는 장치를 추가했다. 이런 기능은 벤츠나 BMW, 렉서스 등 수입 명차에는 없다. 이들 차는 일렬주차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다음날 아침 포화상태인 회사 지하 주차장에서 이 버튼을 가까스로 찾아내 일렬주차를 하자 ‘대발견’이라도 한 듯 뿌듯했다. 기능이 워낙 다양해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지 않고는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최신 휴대전화처럼, 제네시스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함을 느꼈다.
‘키트’ 연상케 하는 첨단기능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또 한 가지 별스러운 경험을 했다. 남산순환도로 급경사에 서 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는데 차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제네시스는 정차홀드 기능 버튼을 누르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도 어떤 급경사에서든 차가 움직이지 않도록 설계됐다. 이 기능을 알아낸 후 도심 운행이 무척 편해졌다. 정차할 땐 브레이크에서 발을 뗀 채 딴 짓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네시스가 자랑하는 각종 첨단·편의장치가 워낙 많다 보니 우선 설명서를 펴놓고 밑줄을 그어가며 사용법부터 익혀야 했다. ‘자동차는 남자의 마지막 장난감’이라 했던가. 제네시스라는 값비싼 ‘장난감’을 제대로 가지고 놀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내놓으며 외친 일성도 ‘Fun To Drive’다. 현대차 박진영 차장은 “그랜저 TG가 편안한 드라이브에 초점을 맞췄다면 제네시스는 운전자가 손맛을 즐기도록 하기 위해 만든 차”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맨먼저 내세우는 제네시스의 최첨단 기능은 두 가지. 차량이 레이더 기능을 활용해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고 브레이크를 제어하며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 시스템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헤드램프가 핸들을 돌리는 방향에 따라 사람 눈처럼 움직이며 나아갈 방향을 미리 비춰주는 어댑티브 헤드램프(AFLS) 기능이다. 1980년대 외화에 등장한 드림카 ‘키트’에서 본 듯한 기능이다.
현대차는 이런 기능을 알리기 위해 국내 신차발표회 이후 두 편의 방송 CF를 내 보냈는데, 많은 시청자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라는 뜨악한 반응을 보였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광고의 줄거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제네시스 앞으로 벤츠가 끼어들자 제네시스 앞에서 레이더가 작동되면서 차의 속도가 느려지고, 잠시 후 운전자가 어떤 버튼을 누르니 제네시스가 벤츠를 추월한다는 것. 하지만 이 광고는 운전자가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에서 발을 모두 뗀 상태에서 차가 알아서 이 모든 일을 해낸다는 크루즈 기능의 핵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운전자의 발을 보여주긴 했지만 너무 짧은 순간이라 이를 알아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레이저 자동운전
경인고속도로에서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장승윤 기자를 조수석에 앉히고 이 기능을 시험했다. 시속 100km쯤에서 핸들에 부착된 크루즈 가동 버튼을 누르니 가속페달과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도 그 속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다 앞차와 가까워지자 스스로 속도를 시속 80km까지 줄여 차간거리를 떼어놓더니 앞차가 다시 멀어지자 속력을 올려 시속 100km를 회복했다.
시속 100km로 설정된 상태에서 시속 120km로 달리는 차량을 추월하려면 가속 페달을 밟는 게 아니라 핸들에 있는 크루즈 기능 버튼을 길게 두 번 누르면 된다. 설정속도가 올라가며 차 속도가 빨라졌다. 옆에 있던 장 기자가 “발을 뗀 게 확실해요? 이거 완전히 키트네 키트. 장거리 여행 때는 참 편하겠네요”라며 신기해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나라같이 도로 정체가 심한 곳에서 이 기능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쭉 달려나갈 곳이 별로 없잖아요. 급작스레 끼어드는 차를 피하려면 어차피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텐데, 끼어들기가 일상화한 우리 실정에서 이 기능만 믿고 있다간 사고 날 가능성도 크겠어요.”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미국처럼 직선주행로가 긴 고속도로나 차량통행이 많지 않은 곳, 특히 끼어들기와 같은 난폭운전이 드문 곳에서는 제 기능을 발휘하겠지만, 한국에서 이 기능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는 큰 낭패를 볼지도 모르겠다. 버릇이 되어서 그런지 다른 차가 앞으로 끼어들 때마다 발은 브레이크로 향했다. 그러나 현대차 측은 “이 기능이 감지하지 못할 만큼 돌발적인 끼어들기라면 사람도 대처하기 힘든 상황일 것”이라며 “믿고 맡겨놓으면 차가 알아서 제어한다”고 반박했다. 기자가 겁이 많은 것인지 제네시스의 크루즈 기능이 민감하지 못한 것인지 스턴트맨이라도 동원해 끼어들기 시험을 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네시스, 007 출연?
이런 첨단 자동운전 기능은 현재 어떤 수입 명차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현대차는 이미 수년 전에 이 기술을 개발하고도 전파법에 묶여 사용하지 못하다가 지난 1월1일부터 레이더 무선 주파수 문제가 해결되면서 제네시스에 이를 가장 먼저 상용화했다.
또 다른 첨단기능인 어댑티브 헤드램프도 제한 규정이 지난해 풀리면서 장착할 수 있게 됐다. 이 기능을 시험하기 위해 북악스카이웨이로 향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엔진 소음조차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제네시스는 오르막을 평지처럼 치고 올라갔다. 핸들을 조금 꺾을 때마다 헤드램프는 차가 끼고 돌아갈 곡선반경의 안쪽을 훤히 비췄다. 달리는 방향, 즉 차량 앞쪽만 비추는 여느 차들과 달리 제네시스의 어댑티브 헤드램프는 차량의 기울기와 바퀴의 회전 각도에 따라 차량 진행 방향의 좌우를 알아서 비춰줬다. 램프 뒤쪽에 모터가 들어 있어 센서의 명령에 따라 램프가 좌우로 움직이는 것이다.
국도의 심한 커브 길에서 야간에 많이 발생하는 인명사고를 줄이고, 산간, 해안 절벽지역 야간운행도 평지처럼 할 수 있는 편리한 장치였다. 또 한 가지. 제네시스의 헤드램프는 유난히 밝았는데, 승차인원과 적재량, 급제동, 급발진 등 여러 조건에 따라 헤드램프가 위 아래로 움직이면서 최적의 빛 높이로 조절해주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눈과 여러모로 흡사하다.
현대차는 어댑티브 헤드램프를 소재로 한 광고도 내보냈다. 이탈리아로 날아가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철야촬영을 했다는데, 느낌은 ‘글쎄요’다. 헤드램프가 곡선반경 안쪽을 비춰주는 효과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 구불구불한 해안가 도로를 달리던 운전자가 커브 길에서 쓰러진 나무를 발견하고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경고 표지판을 세워놓고 간다는 내용인데, 어댑티브 헤드램프가 없었다면 쓰러진 나무를 발견할 수 없어 사고가 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암시하는 데는 실패했다. ‘핸들의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어댑티브 헤드램프’라는 카피가 자막으로 잠깐 떴을 뿐이었다. 특수효과를 써서라도 어댑티브 헤드램프가 핸들의 움직임에 따라 휙휙 돌아가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줬어야 했다. 현장 촬영만 강조하다 포인트를 놓친 셈.
사실 레이저 감응 자동 운전 시스템이나 자동조정 헤드램프 광고는 신차발표회 때 상영한 5분짜리 홍보영화의 한 부분을 떼어내 CF용으로 제작한 것. 현대차가 만든 홍보영화는 첩보영화 ‘007’을 패러디 한 것으로, 이 홍보영화에서 제네시스는 007의 슈퍼카로 등장한다. 007 시리즈에 감초처럼 나오는 박사는 홍보영화에서도 007에게 슈퍼카 제네시스의 온갖 첨단 기능을 설명하는데,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기능과 어댑티브 헤드램프 기능도 그중 하나였다. CF에 등장하는 남자가 바로 홍보영화에서 007역을 맡은 사람이며,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으로 벤츠를 추월하는 장면은 다른 첩보원의 추적을 따돌리는 장면에서 따왔다. 해안도로에서 나무를 피해가는 장면도 007이 ‘제네시스 칩’을 적지에서 훔쳐 나와 도망가는 장면에서 가져왔다. 그런데 CF에선 거두절미하고 해당 장면만 보여주니 시청자가 메시지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홍보영화에서 007이 슈퍼카 제네시스를 몰면서 사용하는 또 하나의 첨단 기능이 음성인식장치다. 가령 운전자가 “라디오”라고 말하면 라디오가 켜진다. 내비게이션, DMB, 전화걸기 등 말만 하면 해당 기능이 실행됐다. 휴대전화에 처음 적용된 이 기능은 ‘성공률’이 높지 않아 버림받은 기술. 그러나 차 안에서는 밀폐된 공간이라 그런지 성공률이 꽤 높았다.
특명! 렉시콘을 잡아라
제네시스에는 다른 차의 주차 브레이크가 있는 자리에 DIS 통합 조작키가 있다.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라디오, DMB, 내비게이션, 전화받기, 차량정보, 외부 안내 시스템(모젠) 버튼이 이 한곳에 모여 있고, 중앙의 조그 다이얼을 돌려 기능을 선택할 수 있다. 직접 써보니 내비게이션은 명칭을 입력하는 방식보다 조그 다이얼을 돌리는 방식이 시간도 더 걸리고 불편했다. 가장 편리한 기능은 블루투스 기능에 의한 전화걸기와 받기. 운전 중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선을 연결하지 않고도 전방을 주시하며 통화를 할 수 있다. 전방 사각지대 감지 카메라는 신호등이 없는 골목길을 다닐 때 특히 유용한데, 실제로 시승 중 길을 잃었을 때 이 카메라의 덕을 톡톡히 봤다.
홍보영화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은 007이 집이나 차에서 듣는 오디오 시스템이 세계적 브랜드인 ‘렉시콘’이라는 점. 현대차는 롤스로이스에만 장착된다는 렉시콘 오디오를 제네시스에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차량 내부에 장착된 스피커만 17개, 11채널 앰프에 최대출력이 528W에 달한다.
우선 음질이 가장 떨어지는 MP3로 렉시콘 카 오디오 시스템을 감상했다. 콘솔 박스 안에 있는 USB 단자에 음악파일이 담긴 USB를 꽂자 내부 MP3가 작동되면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볼륨을 계속 올렸더니 스피커가 눈에 보일 듯 울려댔지만 음은 전혀 갈라지지 않았다. 동석한 장 기자는 “꼭 나이트클럽에 온 기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러 차례의 시험결과 렉시콘 오디오는 중저음뿐 아니라 초저음도 부드럽게 재생해냈고, 특히 바깥 소음에 따라 음의 높낮이를 자동 조절하는 기능이 이채로웠다.
현대차는 제네시스에 장착할 오디오를 최종 결정하기까지 렉시콘 브랜드를 생산하는 하만베커사(社)에 삼고초려를 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아예 퇴짜를 당했고, 두 번째는 차량의 콘셉트와 모양을 본 하만베커사가 승낙을 했으나 계약조건이 안 맞아 파기됐고, 다음에 다시 계약조건을 맞추고 난 후에야 브랜드 공급을 약속했다는 것. 현재 제네시스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 것도 이 오디오 시스템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네시스는 1월8일 판매된 이후 1만2000여 대의 예약이 몰려 있지만 차를 바로바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 판매대수가 당초 예상보다 몇 배로 늘어난 데다 예상외로 DIS 시스템 옵션(스피커 17개)을 선택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현대차 홍보실 관계자는 “수요 예측을 잘못해 고객에게 죄송하다”며 “예약고객은 평균 한 달, 길어도 두 달 안에는 제네시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많은 사람이 다소 무리해서라도 독일 명차를 구입하는 이유엔 주행성능, 디자인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실용적 관점에서 본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차량의 안전성이다. 수입차 소유자를 대상으로 국산차 대비 수입차 상품성 인식조사를 해보면 그들은 수입차가 가진 국산차 대비 강점으로 안전성을 주행성능과 같은 정도로 꼽는다. 서울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자유로 등 속력을 웬만큼 낼 수 있는 자동차 전용도로에는 무수한 ‘독일차 신화’가 흘러다닌다. ‘공중으로 날았다 떨어져 다른 차 몇 대와 부딪치고 전복됐는데 운전자가 다 찌그러진 차에서 멀쩡히 걸어 나오더라’ ‘콘크리트 중앙분리대를 정통으로 박고 차를 폐차시켰는데 운전자는 다친 곳이 하나도 없어 다음날 똑같은 독일차를 샀다더라’….
안전성 실험 논란
그래서일까. 현대차는 제네시스 첫 프리론칭 광고를 아우디 A8과의 정면충돌 장면으로 시작했다. ‘최고로 가는 길에 타협은 없다’는 타이틀을 깔고 보여준 충돌 광고는 적잖이 충격적이다. 제네시스와 충돌한 독일차는 전면부가 대파됐고, 제네시스는 후드만 조금 우그러지는 데 그쳤다. 적어도 화면상으로는 그랬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독일차가 대파되는 장면을 늦은 화면으로 다시 보여준다. 30초의 러닝타임 동안 ‘2007년 11월 남양종합기술연구소’ ‘독일 명차와의 시속 100km 실차 정면 충돌테스트’라는 자막만 깔릴 뿐이고, 목소리 카피는 “독일 최고의 차를 넘어서기 위해” 단 한 마디밖에 없다.
교묘하게 상대편 차의 엠블렘을 가렸지만, 대파된 차가 아우디의 최고급 사양 중 하나인 A8이란 건 첫 광고가 나간 지 몇 시간 만에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광고가 나가자 인터넷에선 난리가 났다. ‘현대차가 하다하다 안 되니 이젠 노이즈 마케팅(이슈와 화젯거리를 만들어내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마케팅 기법)을 한다’거나 ‘정면충돌이 아니라 측면충돌인데 현대차가 거짓말을 했다’ ‘아우디가 더 많이 부서졌지만 그만큼 충격 흡수력이 좋다는 의미다. 운전석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는 등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이 광고를 제작한 광고회사 이노션의 최우석 부장은 “정확한 의미에서의 정면충돌은 아니지만 옵셋충돌도 정면충돌의 범주에 속한다. 이후 확인해보니 제네시스나 아우디 모두 운전석 등 내부 공간과 더미(운전자 인형)엔 별 영향이 없었다. 둘 다 매우 안전한 차임이 입증됐다. 제네시스가 화면 전면에 나오도록 앵글을 잡았을 뿐 조작은 일절 없었다”고 해명한다. 그는 또 “노이즈 마케팅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아우디 측으로부터 광고를 중단해달라는 정식 항의는 없었다”고 했다. 아우디는 현대차의 노림수를 간파하고 아예 대응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이런 광고를 만든 데에는 제네시스의 안전성에 대한 현대차의 강한 자부심이 자리 잡고 있다. 정면, 측면, 후면 충돌에 대비해 차체 구조 자체를 바꾸고 충격분산 장치를 곳곳에 설치했으며 모든 모델에 8 에어백 시스템을 적용했다. 제네시스의 에어백이 펼쳐진 사진을 보면 운전자와 승객의 무릎을 제외한 모든 신체 부위를 에어백이 감싸게 돼 있다. 또한 뒤에서 충돌했을 때는 뒷머리 받침대(헤드 레스트)가 센서에 의해 자동으로 앞과 위로 올라가 목뼈가 부러지는 등의 손상을 방지한다. 이 시스템도 최초로 적용됐다.
여기에 위기상황에서 급제동을 하거나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잘못 꺾는 경우 각 차륜의 센서가 이를 감지하고 브레이크 압력과 엔진출력을 자동 제어해 차량이 미끄러지거나 밀리는 현상을 막아주는 차체 자세 제어 장치도 추가됐다. 타이어의 공기압이 떨어지면 이 또한 자동으로 인식해 계기판에 알려준다. 시속 100km 속도에서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제동거리는 벤츠 E350 41.4m, 제네시스 ES350 41.5m, BMW 530i 42.7m 순.
100% 신뢰성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차 남양연구소의 수입차 비교 충돌테스트 결과를 보면 제네시스의 안전성이 단연 우수하다. 자체 기준 실험에서는 제네시스가 벤츠 E350과 렉서스 ES350에 비해 안전도가 같거나(정면) 더 우수했고(측면),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HS) 기준실험에서는 두 차와 같거나(정면, 측면) 조금 더 우수(후면)했으며, 국내 기준으로는 거의 비슷했다는 게 현대차의 주장이다.
디자인, 승차감은 좋지만…
그렇다면 일반 소비자와 자동차 전문가들의 평가는 어떨까. 제네시스 신차발표회를 한 달여 앞둔 12월5일부터 이틀 동안 현대차는 기자단 71명과 VIP 고객 70명, 애널리스트 62명 등 200여 명을 초청해 벤츠 E350, BMW 530i와 제네시스를 비교 시승하고, 이 중 VIP와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설문 문항은 외관 디자인, 인테리어, 계기판, 정숙성, 발진가속성능, 승차감, 제동력, 조정안정성, 가격대비 가치 등 9문항.
평균연령 43세의 VIP 고객 70명은 9개 항목에서 모두 제네시스의 손을 들어줬다. VIP 고객은 건교부 관리와 변호사, 교수, 기업대표, 연예인 등으로 구성됐는데, 연예인 참가자는 카레이서로 유명한 탤런트 이세창씨와 배우 전도연씨였다. 이에 비해 평균연령 35세인 애널리스트 62명은 외관 디자인과 발진가속성능, 제동력, 조정안정성은 독일차에 비해 미미하게 떨어진다고 답변했고, 인테리어와 계기판, 정숙성, 승차감, 가격대비 가치는 제네시스가 큰 차이로 앞선다고 평가했다.
제네시스를 소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차를 어떻게 평가할까. 3월8일 서울 서초구에서 열린 현대제네시스클럽 정기모임(운영자 김상준, http:// genesisclub. or.kr)을 찾아갔다. 7명의 회원이 제네시스를 끌고 나왔다. 아직 차가 많이 깔리지 않아서인지 모인 회원은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음식점 주차요원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아직 한번도 못 본 차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깜짝 놀랐다”며 “독일차처럼 주차타워에 들어가지 않아 처음엔 외제차인줄 알았다”고 말했다. 또 “스마트키를 받아드니 시동을 어떻게 거는지도 모르겠고, 주차 브레이크도 없어 당황했다”고 했다. 기자와 똑같은 경험을 한 것이다.
13명의 동호인에게 지난해 12월 현대차가 실시한 설문지를 돌리고 점수를 적어달라고 했다. 이들 대부분은 BMW와 벤츠를 몰아본 경험이 있었다. 그 결과 역시 주행성능에선 아직 수입차에 비해 조금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왔다. 외관 디자인과 인테리어, 계기판, 발진가속성능, 가격대비 가치에선 제네시스가 우위였지만, 정숙성과 승차감, 제동력, 조정안정성에선 작은 차이로 독일차가 앞섰다. 동호회 회원들은 현대차에 이러저러한 주문을 하기도 했다. ▲가격구조를 합리화하고 초기 품질 대응력을 강화해달라(문제점에 대한 솔직한 대책 공개) ▲실내등이 너무 어둡다 ▲옵션별 차종이 너무 많으니 배기량만으로(BH330, BH380) 종류를 한정해달라 ▲아웃사이드 미러가 너무 작다 ▲고속주행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웅’하고 소리가 난다 등이었다.
3월6일 밤 서울 외곽 자유로에서 실시한 동아일보 산업부 자동차팀의 제네시스, BMW, 렉서스(GS350)의 비교 테스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실내 및 외부 디자인에서는 제네시스가 나았고 승차감은 엇비슷했지만 주행성능은 조금 더 개선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스트에 참가한 자동차 전문가 이문성씨는 “성능은 기대 이상이고 상품성도 충분해 보이지만 서스펜션과 엔진 성능에선 아직 갈고 다듬어야 할 부분이 눈에 띈다”고 했다.
제네시스를 보내고…
제네시스 시승을 마치고 연비가 어느 정도 나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계기판을 보니 연료계 게이지가 절반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처음 시승할 때 연료가 가득 찬 상태(73ℓ)였고, 지금껏 400km 정도를 달렸으니 연비가 ℓ당 10km를 넘긴 셈이다(이 차의 공식 연비는 ℓ당 9.6km). 3월10일 차량을 인수하러 온 현대차 직원은 이런 주먹구구식 계산을 그 자리에서 바로잡았다.
“핸들의 디스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계기판에 주행거리와 순간 연비가 나옵니다. 자, 한번 볼까요. 남은 연료로 탈 수 있는 거리는 374km, 최 기자님 운행구간에서의 평균속도 시속 91km 연비는 ℓ당 10.1km….”
6일간 제네시스에 대해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했지만, 일주일 만에 공부를 끝내기엔 이 차의 기능이 너무 많았다. 스마트키를 넘겨주려는데 버튼을 잘못 눌러 트렁크가 열리는 망신도 당했다(시승할 때도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있었다). 기자가 보기에 이 차는 연세 있는 어르신이나 ‘차 공부’에 뜻이 없는 사람이 몰면 스트레스만 잔뜩 쌓일 것 같다. 그래서인지 현대차는 제네시스의 마케팅 주 타깃을 30대 중반~40대 후반의 ‘사회적으로 성공한 오피니언 리더’로 정했다. 지난 두 달간 판매실적을 봐도 이 부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간 걸로 나와 있다.
현대차 직원이 제네시스 시승차를 가져간 날 저녁, 기자는 오랜만에 ‘애마’를 몰고 퇴근했다. 시동을 걸자 ‘부르르’ ‘달달달’ 온갖 소음과 진동이 귓가를 때렸다. 가속페달에 발을 올리니 천근만근 힘이 드는 듯. 하지만 며칠 지나 다시 적응되자 소음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졌다. 주변에서 ‘똥차’니 ‘경운기’니 하며 놀려도 가장 좋은 차는 운전자의 수입과 격에 맞는 차가 아닐까. 그래도 행여 경품행사에 당첨돼 제네시스를 타게 된다면? 공부한 게 아까워서라도 감사하게 몰고 다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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