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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마라, 핫소스…‘매운맛 문화권’의 확장과 타락

醉月 2008. 8. 1. 08:54

고추, 마라, 핫소스…‘매운맛 문화권’의 확장과 타락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서울 무교동의 낙지볶음과 베이징 둥즈먼의 마라샹궈(麻辣香鍋), 최근 수년간 도쿄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캅사이신 열풍’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동북아의 세 나라가 수천년을 엉켜 지내는 동안, 백성들의 살림살이와 문화 또한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모해왔다. 그 같으면서 다른 삶의 모습을 음식과 맛을 통해 풀어보는 새 연재를 시작한다. 각국 문화사(文化史)의 맨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이 독특한 시도의 첫 번째 순서는 나날이 기세를 더해가는 ‘매운맛’의 비밀이다.

 

최근 일본 도쿄의 젊은 직장인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모우코탄멘(왼쪽)과 가게 메뉴판.

2006년 1월23일 저녁 7시30분쯤, 도쿄의 이케부쿠루 역 서쪽 골목에 있는 ‘모우코탄멘(蒙古湯麵) 나카모토(中本)’ 이케부쿠루점에 도착한 나는 2층 식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줄지어 선 20~30대 일본인들 속에 끼여 있었다. 드물게도 1월의 도쿄에 눈이 내릴 만큼 예년에 비해 추운 겨울이었다. 한국인인 내가 느끼기에는 대륙풍이 불어대는 서울처럼 살갗이 따가울 정도의 추위는 결코 아니었지만, 왠지 몸에 냉기가 가득한 듯한 스산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추위 속에서 20분가량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음식 주문대 앞에서 각자의 메뉴를 선정하고 표를 받은 후, 식권 판매대 옆에 놓인 포켓휴지를 하나씩 집어 들고 다시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이 집은 매운 라멘(ラメン)으로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가게다. 그중에서도 모우코탄멘은 온통 빨간색 국물이다.

 

마침내 나도 자리를 잡았다. 옆에 앉은 일본인 고객들이 라면 먹는 모습을 보니 모두들 얼굴이 뻘겋고 연신 쏟아지는 땀을 닦느라 정신이 없다. 주문을 기다리며 하나씩 챙긴 포켓휴지는 바로 그 땀을 닦는 데 쓰인다. 옆에 앉은 다카야마라는 20대 회사원에게 맵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땀을 닦으면서 “매우 맵지만 먹고 나면 왠지 통쾌함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 먹게 된다”고 답했다. 겨울에 모우코탄멘을 먹으면 몸이 풀리는 기분이 들면서 마치 온천욕을 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다음날 저녁에는 도쿄의 고마바에 있는 ‘고이노보리(鯉のぼり)’라는 상호의 이자카야(居酒屋·일본식 선술집)에 갔다. 도쿄대학에 미리 와 있던 한국인 교수가 이 집에 매운맛과 관련한 꽤 재미있는 광고판이 붙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2층 실내로 들어가니 과연 흥미를 자극할 만한 선전 패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이 ‘죽음의 소스세트(Deathソスセット)’다. ‘매우 매운 기분을 제공한다’는 부제가 붙은 세트메뉴 설명에는 칠리페퍼를 재료로 만든 소스의 매운 정도에 따라 세 가지 단계로 나뉜다고 쓰여 있다.

 

그 아래를 보니 “가장 매운 것은 먹을 때에 주의하십시오. 믿기지 않는 매운 기분을 본점에서 느껴보십시오. 먹고 난 후에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는 본점에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매운 것이 좋더라도 아플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라는 문구도 적혀 있다. 흡사 경고문 같다. 얼마나 매우면 이런 무시무시한 경고까지 붙였을까. 백문이 불여일견, 바로 ‘죽음의 소스세트’를 시켰다.

그러나 세 가지 소스 어느 것도 내 입에는 그다지 맵지 않았다. 다만 칠리페퍼의 톡 쏘는 매운맛이 약간 자극적일 뿐이었다. 반면 함께 간 일본인 친구는 무척 맵다고 했다. 식당 주인 말에 따르면 ‘죽음의 소스세트’를 주문하는 고객은 많지 않다고 한다. 다만 객기를 부리는 대학생들이 와서는 서로 경쟁이라도 할 양으로 주문을 해 누가 더 매운 것을 먹는지 시합을 한다고 했다.

 

모우코탄멘이든 ‘죽음의 소스세트’든 요즘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매운맛은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이들이 즐겨 먹는 매운맛은 주로 칠리페퍼로 알려진 핫소스에서 나온다. 도쿄와 가까운 지바현 난소우 지방에 “고추를 먹으면 머리가 벗겨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매운맛을 경계하던 일본인들이다. 그러던 그들이 왜 갑자기 매운맛을 즐기기 시작했을까. 무슨 이유가 숨어 있는 것일까.

   

 

고추, 아메리카를 떠나다

도쿄의 한 이자가야에서 판매하는‘죽음의 매운맛 세트’메뉴.

앞서 만난 다카야마라는 일본인 친구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괴로운 표정까지 지으며 매운 모우코탄멘을 먹는 모양을 보고, 나는 혹시 최근 5년 사이에 일본에서 유행하는 매운맛의 비밀이 일본의 으스스한 겨울에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알다시피 일본의 주택에는 온돌이 없다. 대부분 냉난방 겸용 에어컨이 있다고는 해도 하루 종일 켜두기에는 전기요금이 비싸다. 결국 다다미방에서 전기담요 한 장을 상 위에 덮은 고타쓰로 한기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예전에 지어진 집은 방한 시설도 별로다. 으스스한 겨울 날씨를 견디는 방법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온천욕이 거의 유일하다.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 매운맛이 갑자기 유행한다는 언론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것이 한국 김치로 인해 생긴 결과라고 예단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직접 일본에 가서 탐문하고 다니면서 그건 잘못된 생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매운맛’ 하면 반드시 한국 음식만을 떠올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 음식이 단지 매운맛의 하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매운맛 음식만을 소개하는 수십 권의 책자에는 한국 음식을 비롯해 중국의 쓰촨(四川) 음식, 태국 음식, 멕시코 음식, 심지어 인도 음식까지 들어 있다.

 

최근 일본어에 새로 생긴 말이 ‘피리피리(ぴりぴり)’다. 즉 ‘얼얼하다’는 뜻인데, 매운맛 음식을 먹고 나서 느끼는 몸의 반응을 가리킬 때 쓴다. 매운 음식을 주로 판매하는 식당은 아예 메뉴판에 빨간 고추로 매운 정도를 표시해두곤 한다. 보통 다섯 개의 고추를 붙여 매운 정도를 5단계로 나눈다. 한국 음식에는 보통 3~5개의 고추가 표시돼 있다. 이렇듯 일본인의 매운맛은 일정 부분 고추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하지만, 반드시 한국 음식에 들어 있는 고추만이 매운맛의 제공처인 것은 아니다.

 

주지하듯 고추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이다. 15세기 말 서유럽 사람들이 이 대륙에 왔다가 돌아가는 배에 고추를 실었다. 무역선을 따라 고추는 아프리카의 가나 만에 도착하고, 다시 유럽으로 건너갔다. 이때 고추를 후추와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유럽인들은 ‘빨간 후추(red pepper)’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고추는 담배나 코코아, 토마토만큼 유럽 전역에서 환영받지는 못했다. 후추에 비해 너무 매우면서도 분말로 만들기 어려운 단점 때문에 음식에 들어가는 향신료의 자리를 얻는 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다만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관상용으로 정원에 고추를 심기도 했다. 열매가 열리고 색깔이 변해가는 모습이 아름다웠으니까.

 

무역선을 타고 남아시아에 도착한 고추는 인도 북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식용 대상이 됐다. 다시 동남아시아를 그냥 지나쳐 중국의 닝보(寧波)에 온 고추는 새로운 작물로서 어느 정도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고추의 맛은 매운맛에 익숙지 않았던 지금의 창강(長江) 하구 지역 주민들에게 별 인기를 얻지 못했다. 창강은 내륙의 충칭(重慶)까지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이 교통로를 따라서 고추도 이동했고, 마침내 환영을 받은 첫 번째 도착지가 바로 우한(武漢)이었다. 고추는 강물로 인해 늘 습윤한 분지 지역인 우한에서부터 서쪽으로 점을 찍어가면서 정착지를 만들어갔다. 그것이 충칭을 넘어 청두(成都), 윈난(雲南)과 구이저우(貴州)를 거쳐서 광시(廣西)까지 전해졌다.

 

 

‘水吉公의 高麗胡椒’

한편 닝보를 떠난 포르투갈 무역선은 1543년 일본 규슈의 나가사키에 고추를 내려놓는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별로 인기를 누리지 못한 고추는 곧장 배를 다시 타고 쓰시마지마(對馬島)로 간다. 거기서도 정착에 실패한 고추는 쓰시마의 사신들 배에 실려 지금의 부산 동래에 도착한다. 이미 마늘이나 산초(山椒) 같은 매운맛을 즐기고 있던 조선 사람들은 고추를 그냥 두지 않았다. 재배해 알코올 도수 40도가 넘는 소주에 타 마시다가 죽은 사람도 생겼고, 관상용으로 심는 사람도 생겼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의 일이다.

   

일본 백화점의 한국식품 판매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혼슈(本州)의 왜군들이 대거 한반도로 몰려온다. 점령과정에서 고추라는 식물이 조선반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왜군이 북으로 밀고 올라가면서 피난민들의 짐 보따리와 함께 고추도 옮겨갔다. 7년 전쟁이 끝나고 나서 서울 근처에서도 고추를 볼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해서 이수광(1563~1628)은 1614년에 편찬한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처음으로 고추가 조선에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이 고추가 일본에서 온 것이라 하여 ‘왜개자(倭芥子)’라 한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혼슈에서는 고추가 조선에서 온 것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1709년에 편찬된 ‘대화본초(大和本草)’라는 책을 보면, ‘고서에는 보이지 않지만 근래의 책에서 말하기를 옛날에 일본에는 고추가 없었는데, 수길공(水吉公·도요토미 히데요시)이 조선을 칠 때 그 나라에서 종자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름을 고려호초(高麗胡椒)라 부른다’는 구절이 나온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자면 당시 조선국이나 일본국은 통합된 하나의 체계 내에 들어 있었기에 고추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논평을 낸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당시 일본 사회는 여러 개의 번(藩)으로 나뉘어 각 지방의 소식이 중앙으로 통합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땅인 나가사키에서 쓰시마를 거쳐 조선에 간 고추가 다시 혼슈로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한참을 지나서야 그것이 남쪽에서 들어온 ‘번초(蕃椒)’임을 알게 되지만, 그래도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은 중국과 조선을 상징하는 ‘토(唐)’를 붙여서 고추를 ‘토가라시(唐辛子)’라고 부른다.

 

조선에서 혼슈로 다시 건너간 고추는 이후 어떤 운명을 맞았을까. 에도시대인 1814년에 나온 ‘진총담(塵塚談)’이란 책에는 ‘번초(蕃椒)는 이빨을 훼손하는 독이 있다. 먹으면 안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즐겨 먹는다. 이것을 좋아하여 즐겨 먹는 사람들을 보면, 장년이 되어 치아가 약해지고 어떤 사람은 치아가 빠져서 음식을 먹을 수도 없게 된다’고 적혀 있다. 이 책에는 지금의 도쿄도(東京都)에 속하는 고시카와라는 곳의 풍습이 주로 담겨 있다. 그러니 당시의 에도 근처 사람들이 고추를 즐겨 먹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추를 많이 먹으면 치아가 상한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시치미와 와사비

그렇다면 정말 일본인들은 역사적으로 결코 고추를 먹지 않았을까. 답부터 먼저 말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모두 분식집이나 고급 일식집, 일본식 우동을 판매하는 식당의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고춧가루 통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한국 사람들이 고춧가루를 좋아해서 그 통을 놓았다고 생각했다면 오해다. 그것은 일본에서 우동이나 소바를 먹을 때 사용하는 향신료인 ‘시치미토가라시(七味唐辛子)’다. 일본의 웬만한 슈퍼마켓에 가보아도 이를 줄여 ‘시치미’라고 부르는 향신료가 후춧가루와 함께 향신료 코너의 한 쪽에 어엿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인은 시치미를 일종의 ‘조미료’라고 생각한다. 시치미는 이미 17세기 초반에 만들어졌다. 왜 일곱 가지 맛의 고추인가. 고추, 후추, 산초, 겨자, 채종(菜種), 마(麻) 열매, 진피(陳皮) 등 일곱 가지 향신료를 말려 가루를 낸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사실 시치미는 오사카 사람들이 주로 쓰는 말이고, 도쿄 사람들은 일곱 가지 색깔이라 하여 ‘나나이루토가라시(七色唐辛子)’라고 부른다. ‘진총담’에서 고추를 즐겨 먹는 사람이 많다고 한 것도 알고 보면 이 시치미 때문일 수 있다. 특히 겨울에 뜨거운 우동국물에 파와 시치미를 넣어서 먹으면 그 맛의 절묘한 조합으로 온몸에 열기가 난다고 믿는 일본인이 많다. 앞서 소개한 모우코탄멘을 먹는 느낌은 아니더라도, 시치미와 우동국물을 통해 이미 17세기 이래 일본인들은 어느 정도 고추에 적응해온 것이 분명하다.

 

보다 더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와사비(山葵)’다. 와사비를 식용했다는 기록은 10세기 초반에 나온 ‘본초화명(本草和名)’이나 ‘왜명유취초(倭名類聚抄)’ 같은 일본 책에 이미 등장한다. 일본인들의 표현을 빌리면 사시미(刺身)를 먹을 때 매운맛이 나는 와사비를 곁들이면 콧구멍이 뚫리면서 순간적으로 비린내를 없애준다고 한다. 부연할 필요도 없이 스시(생선초밥)에도 와사비가 들어간다. 와사비를 스시의 향신료로 본격 사용한 때는 19세기 초반으로 알려져 있다. 스시는 조선 후기에 해당하는 에도시대에 도시 상가에서 상인이나 신사 참배객을 위해서 만든 일종의 패스트푸드였다.

   

베이징의 마라샹궈. 붉은 고추가 냄비를 가득 덮었다.

요사이 우리가 알고 있는 스시는 냉장시설이 보급된 20세기 중반 이후의 작품이다. 이전의 스시는 삭힌 생선과 밥을 결합시켰기 때문에 생선의 비린내가 매우 강했다. 이 비린내를 상쇄시키는 데 와사비는 결정적인 기능을 발휘했다. 일본인들은 와사비를 먹으면 순간적으로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맵다고 느끼면서 동시에 상쾌함도 느낀다. 오늘날을 기준으로 보면 와사비는 시치미보다 더 즐겨 먹는 일본 매운맛 유행의 원천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음식의 색이 빨개질 정도로 고추를 많이 넣은 음식은 만들지 않는다. 시치미는 단지 하나의 재료로 고추를 이용할 뿐이다.

 

이를 두고 사회학자 가토 히데토시는 “일본은 고추문명에서 조금 고립되어 있었다”는 평가를 한 적이 있다. 그는 그 이유가 옛날부터 일본인들이 담백한 맛을 즐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사이에 칠리페퍼로 만든 핫소스와 한국 김치를 비롯한 매운 음식이 레스토랑의 고정 메뉴로 자리 잡았다. 이제 일본은 더 이상 ‘고추문명권’의 외곽지대가 아니다. 어쨌든 일본을 ‘고추문명권’으로 들어오게 하는 데 한국 김치가 일정부분 기여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캅사이신의 위력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해 세계적인 식품회사가 된 니신(日淸)식품에서 2000년에 소비자 800명을 대상으로 고추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800명 중 37%에 해당하는 300명 가까운 사람이 고추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알고 있다고 답했다. 즉 고추에는 비타민A, C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매운맛을 내는 성분인 캅사이신은 지방대사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어 다이어트에 좋다는 내용이다. 사실 니신식품에서 이러한 설문조사를 한 데는 한국 김치를 이용해 캅사이신의 건강법을 적용시킨 컵라면 ‘돈가라시멘(とんがらし麵)’을 판매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돈가라시멘에 들어간 매운맛은 한국에서 수입한 고추를 기본재료로 사용해 낸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매운맛의 단계를 올릴 때는 여기에 중국산 천응(天鷹) 고추와 오키나와의 소립종(小粒種) 고추를 보탠다. 이들 두 가지 고추가 한국 고추보다 훨씬 맵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고추는 그 맛에 따라 핫페퍼(hot pepper)와 스위트페퍼(sweet pepper)로 구분된다. 핫페퍼는 매운맛이 강한 품종으로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아는 고추가 여기에 해당된다. 스위트페퍼는 피망이 대표적인 예다. 핫페퍼에 비해서 매운맛이 훨씬 약하기에 이름도 그렇게 붙여졌다. 핫페퍼는 다른 말로 레드페퍼, 칠리페퍼, 혹은 캅사이신페퍼(capsicum pepper)라 한다. 보통 길이와 매운 정도, 생산지에 따라 분류되는 고추의 품종은 50여 종이 넘는다.

 

이 가운데 핫소스의 대명사는 칠리페퍼다. 이것은 한국 고추의 매운맛이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맵다. 그러니 앞에서 소개한 ‘죽음의 소스’도 오로지 칠리페퍼만 사용해서 만든 것은 아니다. 여기에 각종 감미료를 첨가하여 매운 정도를 낮췄다. 그래도 보통의 일본인들은 이를 맵다고 여긴다. 일본이 비로소 ‘고추문명권’에 들어섰다고 해도 아직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칠리페퍼와는 다른 매운맛을 내는 김치에 대해서는 핫소소와 다른 평가를 내린다.

가고시마의 한국 마니아 에리코씨는 한국 김치의 매운맛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다.

“처음에 한국 김치를 먹으면 정말 맵다. 하지만 먹을수록 마치 과일에서 나오는 것 같은 단맛이 느껴진다. 그 맛이 좋아서 한국에서 수입한 김치를 사 먹고 직접 한국에 가기도 간다. 다른 한국 음식도 마찬가지다. 단순하게 맵기보다는 재료의 원래 맛이 그 매운맛에 어우러져서 좋다. 이것은 핫소스와는 엄연히 다르다.”

 

지금은 30대 후반이고 20대 때는 미국 유학 경험도 있는 그녀가 내린 평가는 보통의 일본 여성들이 공통으로 가진 생각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 음식에 양념으로 자리 잡은 고추는 칠리페퍼가 뿜어내는 매운맛의 본색과는 분명히 다르다.

나는 2000년에 출판한 ‘음식전쟁 문화전쟁’이란 책에서, 일본의 김치 붐은 단지 다쿠앙(澤庵)으로 대표되는 자국 쓰케모노(漬物) 산업의 사양길을 막기 위해 일본 절임업체들이 찾아낸 대안에 지나지 않다고 밝혔다. 너무 짜고 시기만 한 쓰케모노와 달리 김치는 고추를 비롯한 각종 양념이 섞여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주목을 받았다. 처음 김치를 먹어본 일본인들은 그 매운맛에 통증을 호소하지만, 에리코씨처럼 맛을 보면 볼수록 단맛을 느낄 정도로 친숙해진다. 그런데 그들은 처음 먹을 때 그토록 매운맛으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왜 계속 한국 김치를 먹는 것일까.

   

 

다이어트! 다이어트!

서울 무교동의 낙지볶음 식당에서 매운맛을 즐기는 젊은 직장인들.

이미 서구화한 음식습관으로 건강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젊은 여성들에게 한국 김치는 다이어트 효과가 대단한 캅사이신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역시 알고 보면 하나의 판매전략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김치를 수입하던 일본의 절임회사에서는 이 ‘이상한’ 음식을 어떻게 선전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결국 찾아낸 해답이 한국의 배추김치를 식품영양학적으로 실험해보는 것이었다. 당연히 김치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의 영양성분을 분석하는 게 가장 쉬웠다. 여기서 가장 주목받은 재료가 바로 고추였다. 앞서 밝힌 고추의 효능이 이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퍼져나간 것이다.

 

한국 여성들이 날씬한 것은 고추가 든 김치를 매일같이 먹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강조됐다. 캅사이신의 다이어트 기능을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린 것이다. 이러한 기능성을 내세워 김치를 자신들의 쓰케모노와는 결코 같지 않은 채소절임음식으로 인식시켰다. 이 작업에는 식품업체들뿐만 아니라 매스컴도 한몫을 했다. 공영방송인 NHK를 제외한 상업방송들은 구체적인 상품을 대상으로 평가하고 소비자의 반응을 살피는 프로그램을 자주 방영한다. 이것을 두고 비평가들은 방송에서 ‘게임처럼 음식을 다룬다’고도 한다. 한국에 직접 찾아가 김장 담그는 장면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해 보도하기도 하고, 각종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김치의 비밀을 찾는다는 토픽을 내세워 그 기능성을 선전하기도 한다.

 

그중에서 김치를 통해 캅사이신을 섭취하는 방식은 그들이 가장 쉽게 접근하는 매운맛 다이어트의 한 방식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일본내 ‘김치 붐’은 오늘날 단순히 ‘붐’이라고 말할 단계를 넘어섰다. 텔레비전에서는 거의 매시간 김치를 밥과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다는 선전이나 김치찌개 소스를 마치 일본식 샤브샤브처럼 맛있게 먹는 젊은이들 모습을 담은 광고가 나온다. 김치 맛을 넣은 매운맛의 낫토(納豆)까지 개발됐다. 도쿄 혹은 오사카에서나 겨우 찾을 수 있던 김치는 이제 일본 열도 어디에나 있는 슈퍼마켓이나 ‘콤비니(편의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고추의 캅사이신이 지닌 기능성은 이렇듯 여러 차원의 사회문화적 요인과 결합되어 각종 음식에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결국 요사이 젊은 일본 여성들이 즐겨먹는 매운맛은 주로 한국 음식에 들어 있는 고추를 이용해 만들어진 것이지 칠리페퍼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은 2000년 이래 연간 5000t 이상의 고추를 외국에서 수입한다. 그런데 이 가운데는 한국 고추보다 중국산이나 남미산이 더 많다. 이것은 핫소스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심지어 각종 과자나 면류에도 고추가 들어간다. 그런데도 캅사이신의 효능을 이야기할 때는 한국 김치를 내세운다. 김치맛 낫토도 결국 고추 국물을 넣은 것에 지나지 않다. 이제 ‘고추문명권’에 들어간 일본의 식품업체들은 매운맛을 판매전략으로 활용하고, 한국 음식은 매운맛을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다. 비록 한류(韓流)로 각종 한국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지만, 그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 모른다. 왜냐하면 김치는 이제 매운맛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쓰촨 마라탕

이제 중국의 경우를 보자.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인의 왕래가 그렇게 많았지만, 중국에서는 한국 김치가 자국 음식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2006년에 만난 베이징의 한 중국인 주방장은 “불고기는 퓨전화한 중국 음식의 코스에 집어넣을 수 있지만, 김치는 아직 어느 자리에 앉혀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불고기는 육고기를 좋아하는 중국인의 입맛에도 맞고 하나의 독립적인 음식이 되지만, 김치는 냉채(冷菜)에 넣기에도 어울리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음식에 딸려서 내기에도 중국식에 걸맞지 않다. 더욱이 쓰촨 음식에는 강력한 매운맛이 있어 일본처럼 굳이 김치를 통해 캅사이신을 소비해야 할 이유도 없다.

2006년 5월 나는 중국의 매운맛 유행을 조사하러 베이징에 갔다. 음식점 거리로 새롭게 부상했다는 베이징의 둥즈먼(東直門) 구이제(·#54451;街)에서 몇몇 식당을 조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구이제에 들어서면서 나는 길 양쪽에 들어선 간판이 온통 붉은색인 것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간판마다 ‘마라탕(麻辣?)’ 혹은 ‘마라샹궈(麻辣香鍋)’란 글자와 그릇이 그려져 있는 것도 특이했다.

   

 

원래 마라탕은 쓰촨과 충칭 사람들이 즐겨 먹는 ‘훠궈(火鍋)’의 일종이다. 보통 큰 솥에 태극 모양으로 중간을 갈라서 한 곳은 맵지 않은 닭 국물을, 다른 한 곳은 아주 매운 돼지고기 국물을 담아 낸다. 그러면 손님들은 마치 일본식 샤브샤브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각종 고기와 해산물, 채소 등을 주문해 뜨거운 국물에 넣어 익혀서 먹는다.

 

1997년 쓰촨의 청두에 머문 적이 있다. 그때 제법 고급 식당에서는 앞에서 말한 방식으로 훠궈가 나왔다. 그러나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먹는 훠궈는 두 가지 소스로 국을 나누지 않고 오로지 매운 소스 하나만 나왔다. 여기에 칠리페퍼같이 작은 고추가 통째로 솥 위를 가득 메웠다.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이 훠궈에 당시 한국 돈으로 단돈 50원도 하지 않는 익히지 않은 꼬치를 플라스틱 바구니에 가득 담아뒀다가 샤브샤브처럼 먹는 식이었다. 세상 걱정을 다 잊을 정도 맛이 좋지만, 그 매운맛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강했다.

 

이 훠궈가 얼마나 인기 있었던지 청두 시정부에서는 위장에 좋지 않으니 덜 먹자는 캠페인을 벌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겨울에도 길거리에 나 앉아서 훠궈를 먹었다. 당시 시정부 자료에 의하면 청두의 20대 이상 시민 가운데 70% 가까운 사람들이 대장염 초기 증세를 보였다. 청두 KFC에서 나오는 프라이드치킨도 상하이나 베이징에 비해서 맵다. 게다가 별도로 제공되는 소스 중에는 고춧가루가 들어 있는 팩도 있으니 청두 사람들이 매운맛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매운 것은 모두 다

나도 그해 청두에서 지낸 이후 잠시 대장염을 앓았다. 그래서 가능하면 청두의 훠궈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베이징의 마라탕이 바로 1997년에 청두에서 먹었던 훠궈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로 된 큰 솥에는 온통 마른 고추가 덮여 있다. 국자로 건더기를 들춰내고 냄비 바닥을 보니 한국어로 산초(山椒)라 부르는 것도 있고, 후추 알맹이도 보인다. 매운 것은 온통 다 들어갔다.

 

이를 쓰촨 사람들은 마라(麻辣)라고 한다. 이 맛을 내기 위해서는 고추와 후추, 천초 세 가지를 적절하게 조합해야 한다. 마라의 매운맛 중 ‘마(麻)’의 맛은 천초와 후추에서 나온다. ‘라(辣)’ 맛을 내는 것이 고추다. 또 진피(陳皮), 초마(椒麻), 초장(椒醬), 강즙(薑汁), 산향(蒜香), 마장(麻醬), 개말(芥末) 같은 매운맛 향신료도 들어간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매운맛 향신료는 모두 모아 고기기름 국물에 넣어둔 식이다.

한때 청두를 찾은 한국 관광객 중에서 전날 술을 많이 마신 사람이 이 마라탕 국물로 해장을 하려고 마셨다가 졸도해 병원에 실려 간 일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의 매운탕이나 국물이 많은 닭볶음탕과 비슷해 해장국으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마라탕은 돼지기름과 뜨거운 물이 보태져 매운맛을 더욱 강하게 낸다. 여기에 재료를 넣었다가 다 익은 후 꺼내서 먹는데, 이미 꼬치에는 마라의 매운맛이 온통 범벅된 상태다.

 

쓰촨 사람들이야 없어서 못 먹지만, 베이징이나 상하이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기겁했다. 그래서 적어도 1990년대 말까지는 이렇게 매운 훠궈를 베이징에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2002년까지는 그다지 맵지 않은 소스를 넣은 훠궈를 판매하는 집도 드물었다. 그런데 2006년 봄에 다시 찾은 베이징에는 길거리마다 쓰촨 혹은 충칭 훠궈를 판매하는 식당들이 즐비했다. 맵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아예 간판도 붉은색으로 가득 채웠다. 중국인들이 아무리 붉은색을 좋아한다지만, 훠궈 하나를 두고 왜 이렇게 난리법석을 피우는 것일까.

 

2001년 여름 산둥(山東)반도의 신흥 공업도시 칭다오(靑島)에서는 쓰촨의 마라 맛이 나는 음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본래 파나 마늘의 매운맛도 참지 못하던 칭다오 사람들이 어떻게 그 매운 쓰촨 음식을 즐겨 먹게 됐는지를 두고 칭다오대학의 중국인 교수 두 사람과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그들은 산둥 사람들이라 예전에는 쓰촨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즈음 칭다오에 식당이 급격하게 늘면서 쓰촨 음식 전문점도 덩달아 생겼다. 값이 비교적 싸고 산둥이나 베이징 음식과 달리 돼지고기를 이용해 다양한 맛을 내기 때문에 맵지만 맛있어 간혹 와서 먹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칭다오의 경기가 전에 비해 좋아졌고 여러 지방의 외지인들이 공장에 와서 일을 하고 있어 모두의 입맛을 맞추는 데는 쓰촨 음식이 가장 무난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에 매운맛이 유행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분석을 내놓았다. 나는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생긴 심리적 불안정이 매운맛을 유행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육체적 혹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해결하는 데는 술 다음으로 매운맛이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이는 19세기 한국 음식이 갑자기 매워진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풍요한 사회라 해도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적 불안정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럴 때 매운맛이 개입하면 온 사회가 거기에 열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고도성장의 뒤안길

2006년 베이징까지 진출한 쓰촨의 마라 맛은 오늘날 중국의 사회적 현상을 반영한 결과다. 여기에 한몫 더하는 것이 외식업체의 양산이다. 베이징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식당이 문을 연다. 각종 토목공사가 온 시내를 뒤덮고, 건물 한 채가 들어설 때마다 식당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는다. 광둥(廣東) 음식은 너무 고급이라서 부담스럽고 베이징 음식은 만날 먹는 음식이라 지겨운데, 이럴 때는 입맛을 자극하는 쓰촨 음식이 가장 알맞다는 생각이 마라탕을 베이징에 퍼뜨린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외식을 자주 하게 된 중하 계층 사람들이 먹기에는 쓰촨 음식의 가격이 적당하다.

 

따지고 보면 중국 음식 중에서 쓰촨 것만이 유일하게 매운 것은 아니다. 후난(湖南)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각 지방의 매운맛 선호를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 “쓰촨 사람은 매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구이주이 사람은 매운 것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후난 사람은 맵지 않은 것을 무서워한다.” 심지어 후난 출신인 마오쩌둥이 “고추를 먹지 못하면 혁명도 못 한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초기 중국 공산당의 혁명인사 가운데 고추를 좋아한 사람을 꼽아보니 무려 40여 명에 달한다고도 한다. 대부분 후난, 쓰촨, 구이주이 출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모두 매운맛을 선전하려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쓰촨 음식이 인기를 누리자 후난 사람들이 이것을 질투해 자신들의 음식이 대도시에서 더 많이 팔리도록 하기 위해 퍼뜨린 말에 가까워 보이는 것이다. 사실 쓰촨 음식은 개혁개방 정책이 펼쳐진 1980년대 이래 대도시에서 크게 유행했다. 마침 그것을 주도한 덩샤오핑이 쓰촨 사람이긴 했지만, 지도자의 입맛이 온 사회로 퍼진다는 공식이 성립할 수는 없다. 오히려 앞에서 밝혔듯 고도 경제성장의 뒤안길에 숨은 사회적 불안정이 매운맛을 유행시킨 주범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불닭 열풍과 핫소스의 세계적 유통

쓰촨 사람들은 한국인처럼 고추를 통째로 먹지 않는다. 고춧가루를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경우도 드물다. 고추는 오로지 매운맛을 내는 소스로 쓰인다. 고추기름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니 베이징에 유행하는 쓰촨식 매운맛은 다른 말로 하면 칠리페퍼의 매운맛에 더 가깝다. 쓰촨의 매운 음식을 많이 먹으면 입 안이 얼얼하고 속이 쓰린 증세가 나타난다. 이것은 고추뿐 아니라 마라의 매운맛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런 면에서 쓰촨 음식의 매운맛은 핫소스도, 한국식 매운맛도 아닌 또 다른 매운맛이다.

 

지난 11월 개인별 건강을 체크하는 일본의 한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한국 개그우먼 조혜련씨가 등장했다.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오버’하는 태도에 약간 실망스러웠다. 도쿄의 한국 식당에서 촬영한 이 프로그램에서 조씨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신의 비법 중 하나로 매운 한국 음식을 소개했는데,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한국 음식들은 온통 빨간색이었다. 마침내 나온 벌건 김치찌개를 두고 조씨는 덜 맵다며 고춧가루를 더 가져오라고 법석을 떤다. 이미 끓여서 나온 김치찌개에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후 맛있다는 말을 자신 있게 했다.

 

이 프로그램을 우연히 본 나는 ‘도대체 한국인이 언제부터 저렇게 고춧가루를 아무 생각 없이 많이 넣어 끓이지도 않고 먹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한탄했다. 한국 음식은 지난 20년 사이에 매운맛이 점점 강해져왔다. 특히 식당에서 나오는 김치를 비롯한 반찬들은 온통 고춧가루 범벅이다. 매운 낙지볶음으로 소문난 서울 무교동 식당가는 이제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맵게 만드는 곳이 절반을 넘는다. 아무리 조개탕을 시켜 함께 먹는다고 해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맵다.

   

 

심지어 2004년에는 ‘불닭’이라는 음식이 온 나라를 뒤흔들 정도로 유행했다. 나는 그 때 대학생들이 주로 가는 춘천의 닭갈비 식당에 들른 적이 있다. 당시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매운 닭갈비를 주문해서 한번 먹어보고는 다시는 젓가락을 대지 못했다. 그 매운맛이란 입 속에 넣자마자 곧장 고통으로 다가오는 수준의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한국 고추로 만들어진 음식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운맛의 자극이었다. 가령 갓 담근 김장김치를 많이 먹은 다음날 화장실에서 약간의 고통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잘 익은 김장김치는 아무리 고추가 많이 들어갔어도 그렇게 큰 고통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 음식이다. 그런데 불닭은 왜 그렇게 매운가. 2004년 8월18일자 ‘디지털타임즈’에 실린 성공한 불닭집 사장 인터뷰를 보면 그 원인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불닭집 사장은 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도쿄에 유학한 사람이다. 그때 일본에서 유행한 매운맛과 여성의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선전을 보고 불닭 점포를 내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 있는 소비자의 반응에서도 불닭의 매운맛은 결코 한국 재래의 매운맛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엔 그냥 맵구나 하는 정도인데, 나중엔 눈물 콧물이 날 정도로 정말 맵다’는 것이다. 앞서도 밝혔듯 한국 고추는 아무리 청양고추라고 해도 칠리페퍼에 비해 캅사이신 함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더욱이 당분도 비교적 많이 들어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여성들은 한국 김치에 양념으로 잘 녹아 있는 캅사이신을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나서고, 맵지만 단맛이 난다는 이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눈물 콧물이 나올 정도의 매운맛을 즐긴다. 이것은 모두 미국에서 시작된 핫소스의 유행이 도쿄를 거쳐서 서울에 진입한 결과다. 미국의 다국적 외식업체는 1990년대부터 멕시코 음식에 주목했다. 특히 핫소스를 듬뿍 넣은 멕시코 음식을 패스트푸드로 개발하면서 피자나 다른 패스트푸드에도 핫소스가 들어갔다. 당연히 핫소스 시장이 확대됐다.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와서 핫소스의 매운맛이 한국 김치의 매운맛과 함께 유행했다. 누누이 강조하듯 핫소스의 매운맛은 칠리페퍼에서 나오는데, 한때 유행하던 불닭의 매운맛은 이 칠리소스와 한국 고추를 혼합해서 만든 것이다. 칠리소스는 각종 과자에도 들어간다. 심지어 공장에서 만드는 매운맛 나는 재래 음식에도 칠리페퍼가 들어간다.

 

결국 오늘날 한국인이 소비하는 매운맛은 한국 고추만이 아니다. ‘글로벌’한 핫소스의 매운맛이 침투한 것이다. 서울 무교동 낙지볶음처럼 1960년대 이후 만들어진 매운맛 음식에는 물론, 전에는 결코 맵지 않게 먹던 통닭이나 곱창 등에도 핫소스가 들어간다.

오늘날 전세계는 하나의 식품 소비권에 편입되어 하나의 장바구니를 이용한다. 그것이 한국 고추든 한국 김치든 혹은 쓰촨 음식이든 일본 음식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이제 이 식품 소비권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최근 5년 사이에 일본과 한국에서 유행한 매운맛은 분명 칠리페퍼를 위주로 하는 핫소스 매운맛의 세계적 유통에 이들 나라의 젊은이들이 포섭당한 결과다.

그 재료인 고추도 마찬가지다. 세계적 유통이 현재에도 진행된다. 아울러 다국적 외식업체와 그들의 방식을 학습하는 소규모 외식업체, 그리고 식품회사는 고추에서 나는 매운맛을 ‘제6의 맛’이라고 선전하면서 그 건강법을 내세워 소비를 유도한다. 결국 매운맛은 더욱 강해진다.

 

 

한국 음식, 스스로 ‘매운맛’ 볼 수도

주영하
1962년 경남 마산 출생
서강대 사학과 졸업, 한양대 석사 (문화인류학), 중국 중앙민족대학 박사(민족학)
現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전공 부교수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규슈 지역 음식문화 현지조사 진행 중
저서 : ‘음식전쟁 문화전쟁’,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 ‘음식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역사’ 등

 

외국에서 인기를 누리는 한국 음식도 ‘맵다’는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한국 음식은 멕시코 핫소스와 달리 단순하게 매운 게 아니라 복합적인 맛을 품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 음식은 과도하게 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사회가 지속적으로 세계에 노출되면서 ‘한국 음식=매운맛’이란 도식이 생겨난 것도 사실이고, 한국인들 스스로가 이점을 더 강조하려는 경향도 있다. 고춧가루를 조금이라도 더 넣어 자극적인 음식으로 부족한 양념솜씨를 숨기려 하는 식당들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울 하늘 아래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매운맛의 자극에 대한 소비가 늘어간다. 불행한 것은, 이러한 상업주의가 결국 오래된 슬로푸드의 아름다움을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는 누구든 한류나 한국 음식의 외국 진출 소식을 접하면 찬사부터 보낸다. 그러나 한국 음식이 핫소스의 매운맛과 맞물려서 극단적인 매운맛으로 변한다면, 그렇게 본래의 맛을 잃어간다면, 언젠가 한국 음식이 ‘매운맛’을 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