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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선 저마다 확연히 모습이 다르다. 또 같은 형태의 무늬라고 하더라도 서로 느낌이 다르고, 조화롭게 배합된 무늬들이 아름다운
조형미(造形美)를 뽐낸다. 겉에서 속으로 들어갈수록 뛰어난 예술성을 음미하게 되고, 우리 민족만이 지녀온 심오한 정서와 생활철학의 편린들을 만나게 된다. 깊은 산속에 홀로 핀 들꽃 같다. 누가 봐 주지 않아도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허세가 없고 평범한 무늬 같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살갑고 정겨운 무늬들이 그득하다.
예부터 선조들은 떡을 “하늘을 받드는 신성한 제물(祭物)로 귀하게 여겨왔다. 이런 귀물(貴物)을 아름답고 먹음직스럽게 만들려는데 떡살을 써 왔다. 그러나 선조들의 마음 씀씀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삶을 살아가면서 부닥쳐야 할 온갖 욕구와 희망을 담았다. 내세극복의 주술적 효과를 기대하는 소박한 정신을 새겨 넣었다. 천태만상의 다양한 무늬가 절제된 언어로 함축된 떡살이 뒤늦게 요즘에 와서 「한국판 중세기의 판화」로 극찬을 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족의 혼이 서려있는 떡살의 주요 무늬를 살펴보자.
◇ 빛살무늬
가장 단순한 무늬이다. 일명 줄무늬 빗살무늬라고도 한다. 신석기시대 토기에서 부터 나타나 우리 생활속에 폭넓게 쓰여왔다. 단순 명쾌한 무늬이면서도 다양한 이미지가 연출된다. 신석기시대에 생명의 원초적 에너지원으로 태양을 숭배해 온 마음이 담겨있다.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바라는 기구(祈求)의식이 배어 나온다.
◇ 사군자(四君子) 무늬
세한삼우(歲寒三友·松 竹 梅) 가운데 소나무를 빼고 대나무와 매화에 국화와 난초를 더한 것이다. 명나라 진계유가 사보(四譜)에다 「사군자」라고 부른데서 비롯됐다. 가장 먼저 꽃눈을 피우는 설중매, 그늘에서 청향을 뿜는 난과 모진 서릿발에서 꽃을 피우는 국화. 언제나 곧은 지조를 지키는 대나무는 고려시대부터 선비정신의 표상이었다.
◇ 전통글씨 무늬
선조들은 글자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 다양한 글꼴이 무늬로 즐겨 쓰이고, 예술의 한 장르를 이루고 있다. 목숨 수자(壽) 아자문(亞字紋) 쌍희문(雙喜紋)과 수복강령(壽福康寧)을 비는 많은 문자무늬들이 떡살에 담겨있다. 상형문자의 간결성이 극대화되어 강한 추상성과 고상한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뛰어난 조형성이 독특한 한국미를 느끼게 한다.
◇ 기하(幾何) 무늬
선과 삼각형 사각형 원 점과 같은 기하학적인 무늬들은 일찌기 구석기시대 유물에서 부터 나타났다. 둥근 원은 남성, 타원형은 눈을, 삼각형은 불을, 사각형은 물질적인 완벽성과 단단한 이미지와 안정감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하학적인 무늬들은 사람들의 무의식과 깊이 닿아있어 강한 추상성을 내포하고 있다.
◇ 연꽃무늬
7, 8월에 피는 연꽃은 단순 대담 단아한 느낌을 준다.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영원불사의 심벌이었다. 선인들이 연꽃을 이처럼 높이치고 사랑하였던 까닭은 여느 꽃보다 화려하고 많은 종자를 맺어 기복(祈福)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학자들은 떡살에 연꽃무늬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불교예술의 영향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 오얏꽃(李花) 무늬
다산과 번영의 심벌로 꼽혀온 오얏꽃은 다섯개의 꽃잎을 가지고 있다. 봄과 함께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듯 청초한 꽃잎을 피우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꽃무늬이다. 이화(李花)의 「李」자가 조선왕조와 같아 양반들이 즐겨 써 왔지만 서민들에게도 길상무늬로 널리 쓰여 떡살무늬로도 많이 나타난다.
◇ 태극무늬
태극(太極)은 우주구성의 최고원리이다. 역경에서는 우주생성의 기본원리를 뜻한다. 태극(쫛)과 음양(쫼)이 조화를 이룬 무늬는 유교철학 사상인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에 행복을 나타내는 표식으로도 널리 쓰였다. 조선시대에는 하늘(天)에 대한 강한 믿음과 모든 존재의 근원이 태극에 있다고 믿어 집안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데 주로 썼다.
◇ 물고기 무늬
예부터 붕어는 다산유복(多産有福)을 기원하는 무늬로 즐겨 쓰였다. 또 붕어나 물고기 꿈을 꾸면 「재수가 좋다」고 풀었다. 그래서 생동감있게 물살을 차고 오르는 붕어의 모습은 민화에서 뿐만 아니라 사찰지붕에 매달려 있는 풍경과 곡식을 그득 넣어둔 뒤주의 붕어자물쇠 등 여러 곳에 담겨 있다.
◇ 별(星)무늬
다섯개의 뾰족한 모가 나와서 방사상(放射狀)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큰 별 무늬 주변에 우주에 떠 있는 무수한 작은 별을 점(點)으로 표현한 것도 있다. 이름하여 성좌무늬이다. 아무 의미없이 거칠게 만든 것 같다. 하지만 천상의 별이 어우러져 무한한 추상성을 나타내 영적욕구를 충족시키려 했던 의미를 읽게 한다.
◇ 화조(花鳥) 무늬
선조들은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새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무척 탐닉하여 왔다. 숭고한 자연의 신비스러운 조화를 즐겨 노래했다. 그래서 시중화(詩中畵) 화중시(畵中詩)가 등장하고 한국화의 주축을 이루어왔다. 무궁화무늬가 석류무늬와 같이 자손번영을 뜻하듯 모든 화조무늬가 저마다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프롤로그
『없는 것이 너무 많아. 자원이 그렇고 우리 역사가 그래…』 항시 이런 자탄속에 팔장에 영자지만 끼고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이 친구가 변해버렸다. 우연히 선조들의 손때가 묻은 민속품에 몰입한 이후부터다. 요즘은 거꾸로 남에게 없는 귀한 것이 주변에 널려 있다는 투로 확 바뀌었다.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우리도 한번 겉으로만 훑어 보았던 떡문화의 속내를 까발려 보자. 그 친구가 찾았음직한 보물을 건져내자.
화전(花煎)놀이와 피크닉
금수강산은 봄이 되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 산 저 산에 핀 꽃들이 겨우내 움츠러 들었던 마음을 향해 손짓한다. 어느새 식욕이 솟구친다. 그러면 들로 산으로 천렵과 화전놀이를 하러 나간다.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는 이른 봄, 진달래 꽃으로 시작해 양수(陽數)가 겹치는 중양절(음력 9월 9일)의 국화꽃잎까지 이어진다. 화전을 만들어 산과 들에 나가 아름다운 자연의 변화를 즐기며 시를 읊고 그림을 그렸다. 서양의 피크닉(Picnic)은 이에 견줄바가 못된다. 그러나 푼주에 놓인 화전과 약주잔에 띄워진 진달래 꽃잎 하나에 천하를 얻은 것 같이 도도했던 선조들의 기품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동지헌말(冬至獻襪)과 어버이 날
선조들은 상고시대에 동지(冬至)를 설날로 삼았다. 일명 아세(亞歲)라고도 불렀다. 훗날에는 “작은 설”이라고 하여 팥죽을 쑤어 먹었다. 그렇지만 이날이 바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우리 고유의 「어버이 날」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미국의 영향을 받아 1956년 5월 8일을 첫 어머니날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그후 1973년 어버이날로 확대 시행되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효(孝)를 으뜸으로 여겨온 우리나라에 정작 어버이의 가이없는 사랑을 기리는 날조차 없었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옛날 슬하의 자식들은 동짓날을 앞두고 버선 한 켤레를 정성껏 지어 부모에게 올렸다. 이것이 바로 동지헌말이다. 이런 유풍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다. 지금은 동짓날 지내는 차례가 자취를 감춰버리듯 사라져 버렸다.
걸교(乞巧)와 발렌타인 데이
칠월칠석은 헤어졌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다. 이날 조상들은 걸교라는 행사를 가졌다. 저녁에는 마을 아이들이 모여 견우와 직녀 두 별에 찰떡을 만들어 올렸다. 그리고 길쌈과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이는 바느질이 잘 되도록 빌었다. 이것이 걸교(乞巧), 또는 걸교전(乞巧奠)이다. 처녀 총각들은 이날 만든 찰떡을 들고 나와 그동안 마음에 새겨두었던 상대에게 넌지시 찰떡을 건네 주었다. 서로 찰떡을 주고 받는 의례(?)를 가진 후 서로 마음이 끌리면 사랑을 꽃피우는 계기로 승화시켰다. 고소하고 맛깔진 찰떡이 은근한 사랑을 맺게 하였던 미풍이었다. 단옷날 춘향의 그네 뛰는 모습에 반한 이몽룡이 두 달 후인 칠월칠석에 이 찰떡을 받았을까?… 젊은이들이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라고 해서 초콜릿과 사탕을 주고 받는 서구 풍습보다 얼마나 운치가 있고 멋들어진가.
찹쌀경단과 디저트
서양에서는 식사를 마친 후 과자나 과일 같은 것을 먹는다. 이름하여 디저트(dessert)이다. 그러나 피자를 우리 음식으로 알고 있는 요즘 아이들은 왜 한식에는 디저트가 없느냐고 투정이다. 그러나 전래 식사방식에도 훌륭한 후식문화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원소병이라는 선조들의 후식용 떡이다. 선조들은 상을 물리기전에 꿀물이 담긴 화채그릇에 손톱크기만한 형형색색의 찹쌀경단을 잣과 함께 띄워 먹었다. 또 어느정도 배가 불렀다는 기별이 오면 들깨에 살짝 굴린 찹쌀경단을 입안에 넣어 고소한 맛을 즐겼다. 그리고 모자라는 배를 알맞게 채웠다. 어디 그뿐이가. 한번 빚거나 쪄 놓으면 어제 어디서고 한동안 간편하게 입맛을 즐길 수 있는 떡은 겨레의 대표적인 별식이요, 간식으로서도 훌륭한 몫을 하지 않았던가… 이런 의미에서 관찰하면 떡은 겨레의 대표적인 디저트였을 뿐만 아니라 허기진 배를 언제 어느곳에서건 간편하고 알맞게 채워주어왔던 대표적인 간식이요, 별식이었다.
에필로그
김치와 된장이 식탁에 오르는 횟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아파트 숲속에서는 베란다가 장독대 구실을 대신하지만 규모가 이제는 날이 갈수록 작아진다. 달고 기름진 외국음식이나 인스턴트 식품에 깃들여진 신세대들은 점차 남의 나라 음식에 입맛을 빼앗겨 가고만 있다. 이제는 시골의 고풍스런 마을과 종가집을 찾아가도 옛맛과 멋을 구경하기조차 힘들어졌다. 우리 전통한과와 떡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식품박람회의 국제식품상을 받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품질인증제의 영예스런 금상을 수상했는데도 나이드신 노인들의 이야기로만 치부되고 있다. 동남아와 세계 각국에서 우리네 전통음식과 요리법을 로열티를 내면서까지 수입해가고 있는데 정작 우리 새싹들은 허접스런 피자나 햄버거 문화에 몰입해 가고 있다. 찬란한 우리 문화의 뿌리나 깊이를 모르니 남의 것이 무조건 좋아 보일 수 밖에. 그러니 조국을 떠나 이민을 가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나오게 되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 아닐까. 「맥도날드화(化)」에 떡의 세계화를 이뤄낼 떡브랜드를 만들어 보자.
이런 생각에 잠겨보니 어느 CF구절이 귓가를 때린다. “우리것이 좋은 것이여…”
그런데 미국 마이애미 의대 연구팀이 의학전문지 “자연신경과학” 최신호에 새로운 맛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사람의 미각아(味覺芽)세포에 있는 수용체가 입안에서 「제5의 맛」을 포착해 뇌에 맛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쥐의 실험을 통해서 확인되고 발견된 것이지만 이러한 연구는 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1908년 일본 도쿄에 있는 제국대학의 이케다 기쿠나에 박사가 해초의 특수한 맛을 내는 분자를 발견해 “우아미”(旨味·감칠맛)라고 이름을 붙여 제5의 맛이 있다고 주장하였었다.
지구촌의 수많은 산해진미가 미식가들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어 음식산업의 급격한 발달과 함께 요즘은 입소문이 난 먹거리를 찾아나서는 먹거리 여행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맛에 대한 우리말의 표현을 보면 아직도 우리 인간이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여러가지 맛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새콤하다」 「쌉싸름하다」 「시금털털하다」등 규명이 안된 수많은 맛의 실체들이 우리 생활속에서 통용되고 있지 않은가.
지구상에 있는 자원을 가지고 수없이 많은 먹거리와 볼거리를 만들어 낸 인간들은 지금도 유·무형의 가치를 미각과 시각적 요소로 환치시키려는 욕망을 끝없이 발산시켜온 것이 어제의 역사요 오늘의 현실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라는 명제와 「나는 본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언은 우리 인간이 지닌 여러가지 감각가운데 시각과 미각이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입증한다.
옷감을 고를때 코로 냄새를 맡거나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들이대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촉감보다 보기좋은 것을 선호한다. 컴퓨터나 브라운관이나 스크린 앞에서 코를 벌름거리거나, 부드러운 것을 찾는 사람은 더 더구나 없다. 누구나 유익하고 아름다운 것을 눈에 담아 인식의 근원을 충동하려고 한다.
인간이 발휘하는 에너지원(源)이요, 삶의 커다란 희열이 담겨져 있는 섭생을 보자. 모든 음식은 맛과 함께 먹음직스러운 때깔을 지니도록 매만져진다. 맛과 멋을 함께 추구하는 맛깔스러움이 우선하지 않는가.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옛말이 있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오감의 총체적 만족감을 지향하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시각과 미각 지향적 가치를 지니고 살고 있는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떡에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 넣는 질박한 떡살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겨레는 오래전부터 멋과 맛을 함께 추구해 온 민족임을 알게 된다. 선조들은 떡을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으로만 보지 않았다.
지상(地上)의 산물로 조리할 수 있는 첨상의 음식이요, 하늘에 바치는 제천(祭天)의 음식으로 귀하게 여겼다. 맛(味感)과 멋(視感)에 곁들여 떡살로 무늬를 새겨넣어 무병장수와 자손번창 부귀영화 등을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담았다.
단순하게 미각이나 시각적인 즐거움을 얻기 위해 떡살을 만들어 음식에 새겨온 것이 아니다. 마음이 기쁘고 편안하게 만들었고, 삶의 환희와 시심(詩心)이 샘솟도록 무늬를 갈고 다듬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꼬르륵대는 배의 끝없는 허기와 찌부둥하고 답답한 포만감에만 짓눌려 있다. 그러면서 지극정성을 담아 맛깔나게 떡을 빚는 과정을 귀찮고 복잡하다고 모두 외면만 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화(美德化)되면서 좋은 음식이 고(高)칼로리와 기름지게 포식하는 것으로 오도되어 「인스턴트화」(化) 경향으로 치닫고 있다. 기민의식이 그 뿌리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먹거리와 볼거리 문화란 예술이나 철학이 그런것처럼 편이성과 효율성만이 최우선이 아니다. 그 그릇에 삶의 깊이와 풍요를 가꾸고 지켜주는 역사와 문화적인 요소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일본은 햄버거와 피자 양과에 대응할 「모치(モチ)」문화를 오늘의 입맛에 맞도록 복원하여 세계 음식시장에 수출,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다.
지금이라도 반만년동안 겨레가 보듬고 가꿔온 떡문화를 되살려 먹거리와 볼거리시대에 부응해 나가자. 이것이 우리 문화의 정체성(正體性)을 되찾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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