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다시 시작된 여행...그리웠던 그 섬 홍도

醉月 2022. 4. 15. 20:34
홍도 남쪽의 양산봉 방향에서 바라본 홍도 전경. 가운데 잘록한 부분에 들어선 마을이 여객선이 닿는 홍도 1구 마을이다. 마을 너머로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가 깃대봉이다.


코로나 탓 관광객 발걸음 끊겨 2년간 ‘텅빈 섬’ 으로

다시 홍도 유람선 뜨고 찾아오는 손님에 활기 돌아

침대있는 숙소 전무… 30년전 유행했던 ‘나이트’도 영업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투자 쉽지 않아 변화 더뎌

유람선 타고 한바퀴 돌고 트레킹하며 ‘속살’ 만끽

韓 100대 명산 깃대봉·90년 넘은 등대도 들러야



여행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져 되도록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전남 신안의 홍도와 흑산도입니다.
더 먼 섬도 있긴 하지만 대중적 여행지로는 가장 먼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리가 멀고 바닷길이 거칠어
홍도와 흑산도는 큰맘 먹어야 갈 수 있는 로망의 여행지입니다.
시간과 비용이 적잖이 드니 효도 여행이나
계 모임의 단골 목적지였던 곳이기도 하지요.
지금은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철 지난 낡은 여행지쯤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다지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것이 반갑기도 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둘러본 홍도와 흑산도 이야기가 차고 넘쳐서
두 번에 걸쳐 나눠 전해드립니다.
흑산도 얘기는 다음 주로 미뤄두고 이번 주는 홍도입니다.

# 홍도에 내리지 못하고 되돌아간 사연

2020년 4월 초. 그러니까, 벌써 2년 전의 얘기다. 세상이 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에 짓눌려 있을 때였다. 대구에서 온 60대 초반의 부부가 목포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홍도항에 도착했다. 그때 대구는 코로나19 확진자의 폭발적 증가로 정부가 선포한 ‘특별재난지역’이었다. 대구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2주간 격리되는 일이 있었고, 심지어 서울의 한 대학병원은 대구 환자를 받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대구에서 온 부부 여행자가 홍도에 도착한 것이었다.

승선권을 사면서 부부가 제시한 신분증으로 거주지가 대구라는 걸 확인한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는, 홍도 1구 이장에게 ‘대구 사람이 홍도로 가고 있다’고 긴급하게 연락을 했다. 확진자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대구 시민이었는데도 말이다. 지금이야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대구에서 왔다는 것만으로도 시한폭탄 취급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쾌속선이 홍도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최성진(52) 홍도 이장이 배 안으로 들어갔다.

최 이장은 배에서 내리려는 부부를 설득했다. 마침 홍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보름이면 보름, 한 달이면 한 달, 아예 배를 오가지 못하도록 하자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한 달까지는 아니었지만, 실제로 몇몇 섬은 그렇게 했다. 최 이장은 섬 주민들의 사정과 분위기를 상세히 설명했다. 부부는 이런 설명을 듣고는 타고 온 쾌속선에서 내리지 않고 목포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한 달쯤 뒤 최 이장은 대구의 부부에게 사죄의 전화를 했다. “정말 미안했습니다. 배에서 아예 내리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됐으니 그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전화를 걸어 백배사죄를 한 뒤에 최 이장은 홍도에서 거둔 미역이며 멸치 등을 선물로 보냈다. 가장 좋은 것들로만 골랐다고 했다. 선물과 함께 ‘꼭 다시 한 번 방문해달라’는 초대의 내용을 담은 편지도 동봉했다.

아직 다녀가지 않았지만, 최 이장은 그때 되돌아갔던 대구의 부부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다시 오시면 정말 반갑게 맞이해드릴 겁니다. 그동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어려운 상황은 이해와 연대를 통해 ‘함께 이겨나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최 이장이 기다리는 건, 대구의 부부뿐만 아니다. 어디서 왔건 홍도까지 그 먼 길을 찾아와주는 모든 이를 환영한다.

홍도에서는 지금까지 스무 명 남짓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300명 정도인 섬 상주인구에다 대면 적잖은 숫자이고 아직 코로나19가 다 끝난 것도 아니지만 먼 뱃길 때문에 그런가, 홍도에 가면 어쩐지 ‘코로나19에서 더 멀리 떠나온’ 느낌이다. 오랫동안 텅 비었던 섬은 이제 하나둘씩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훈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직도 민박집 태반은 불이 꺼진 채지만, 아침마다 홍도 유람선이 뜰 정도는 된다. 지난 2년의 적막에다 대면 그래도 이게 어딘가. 최 이장은 “섬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섬사람들이 그동안의 경험으로 다 느꼈다”고 했다.


‘홍도 10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남문 바위와 홍도 유람선.

# 홍도에는 아직도 나이트클럽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달라지지 않은 여행지’를 뽑는다면 1등은 단연 ‘홍도’다. 자연 풍경도 그렇고, 관광시설도 그렇지만, 가장 달라지지 않은 건 ‘관광하는 방식’이다. 지금이나 10년 전이나, 그로부터 또 10년 전이나 홍도를 여행하는 방식은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예전과 똑같다’는 얘기에는 부정과 긍정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부정적 평가는 낡고 오래된 방식의 여행으로 여행자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것. 젊은이들이 주로 이런 반응이다. 홍도의 숙박업소 중에서 침대를 갖춘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걸 믿을 수 있을까. 홍도에서는 누구나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야 한다. ‘그야말로 옛날식’ 여행이다. 반면 중년층 이상은 홍도 여행에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르다. 오래된 방식의 여행이 불편하긴 하지만, 아련한 추억쯤으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과거 홍도를 여행하는 방법이 어땠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나이트클럽이다. 30년 전쯤 홍도 곳곳에는 나이트클럽에 여럿 있었다. 손바닥만 한 섬 안에서 나이트클럽만 예닐곱 곳을 헤아렸다. 아리랑, 백제, 홍도, 해변, 로얄, 대한, 동백…. 나이트클럽은 늘 관광객들로 꽉 찼다. 넉넉지 않은 형편 탓에 긴 여행이 쉽지 않았던 시절. 비용이며 시간이 적잖이 드는 홍도 여행은 계 모임이나 효도 여행이 아니면 쉽지 않았다. 계 모임으로 떠나왔거나 자녀들이 큰맘 먹고 보내줘서 오랜만에 떠난 여행. 흥이 날 대로 난 계원들은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아까울 따름인데, 이 작은 섬에서 밤에는 딱히 할 게 없으니 나이트클럽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의 나이트클럽이 다 사라졌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한 곳이 아직 남아있었고, 더 놀랍게도 나이트클럽 테이블에는 손님들이 있었다. 선착장 근처에 하나 남은 ‘해변나이트클럽’이다. 실내에는 미러볼도 돌아가고, 반주를 해주는 1인 밴드도 있었지만, 나이트클럽이라기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노래방 같은 술집이었다.


# 10년 전과 10년 뒤가 똑같은 풍경

홍도 선착장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지중해 연안의 마을을 닮은 홍도 1구 마을의 경관이다. 외양은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정작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근사한 카페는커녕 커피 한잔 마실만한 곳이나 변변한 식당을 찾기도 쉽잖다.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다. 비탈진 골목 양옆을 꽉 채운 건 온통 1층은 식당, 2층은 노래방, 3층은 여관으로 쓰는 낡은 건물들이다. 마을에 편의점은 하나도 없고, 슈퍼마켓의 물가는 바가지 수준이다.

홍도는 왜 이렇게 변하지 않을까.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홍도를 바꾸려면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홍도에 투자하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우선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할 수 없는 게 많다. 섬 안의 무허가 건축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문제도 있다. 어찌어찌 호텔이나 리조트를 짓는다 쳐도 겨울 시즌에는 섬이 텅 비고, 다른 계절에도 풍랑으로 결항이 잦아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쉽잖다. 지역주민들과의 갈등도 예고된 난제다.

변하지 않는 이유가 이렇게 많으니, 홍도는 앞으로도 좀처럼 변화할 것 같지 않다. 지금의 모습이 10년 전의 모습이고, 10년 전 모습은 그 이전의 10년 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10년 후의 모습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섬사람들은 안달하지 않는다. 관광객들이 물밀 듯이 들어왔던 1980~1990년대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는 해도, 굳이 변화의 속도를 높이고 싶은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낙후된 관광지로 낙인찍혀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뜸하다 해도 뭐 어쩌랴. 홍도 주민들은 그래도 홍도의 빼어난 자연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나 홍도에서의 추억이 있는 이들은 찾아올 것을 믿는다.

그렇게 홍도가 추억에 머물러 있는 동안, 다른 관광지들은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르게 변모했다. 출렁다리와 케이블카,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여행소비의 주축이 된 젊은이들은 내로라하는 여행지를 하나둘 접수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홍도나 흑산도는 아직도 중년 이상의 여행자 영역의 여행지다.


홍도 1구 마을에서 깃대봉 가는 길. 상록림이 그득한 숲길이다.

# 관광하는 방식…같은 것과 달라진 것

홍도에서 달라지지 않은 것 또 하나는 유람선이다. 홍도의 최고 매력은 해안절벽의 아름다움, 이른바 ‘해벽미(海壁美)’다. 크고 작은 무인도와 갯바위, 깎아지른 절벽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절경이야말로 홍도에 가야 할 이유다. 그러니 홍도 관광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유람선 관광이다.

보통 관광객들은 홍도에서 1박, 흑산도에서 1박을 하게 되는데, 흑산도를 거쳐 홍도로 먼저 들어가서 1박을 하는 게 보통이다. 홍도 유람선만큼은 꼭 타야 하는 것이니 홍도부터 가는 것이다. 먼저 홍도로 들어가 숙박하는 경우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도착하자마자 오후에 유람선을 탈 수도 있고, 이튿날 오전에 유람선을 탈 수도 있다. 홍도에 도착한 당일 날씨가 좋다면 만사 제쳐 두고 유람선부터 타고, 날씨가 좋지 않거나 연무가 끼었다면 다음 날 오전에 유람선을 탄다.

홍도 유람선 관광은 섬 주위의 해안절벽과 바다 위에 떠 있는 바위섬을 돌면서 2시간에 걸쳐 이뤄진다. 촛대바위, 칼바위, 남매 바위, 독립문 바위, 주전자 바위…. 바위들이 빚어낸 절경도 절경이지만, 까마득한 절벽에서 흙 한 줌 없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노송의 자태도 빼어나다. 가만 보면 관광객이 감탄해 마지않는 풍경은 정해져 있다. 독립문 바위처럼 기이하게 구멍이 뚫렸거나, 칼바위처럼 바다 위에 우뚝 솟은 바위다.

마이크를 잡은 가이드가 바위의 생김새를 거북이며 사자, 물개, 원앙, 제비에다 비유하며 그럴듯한 전설까지 덧붙여 이야기를 풀어내면 예전에는 관광객들이 저마다 목을 빼고 ‘어디, 어디…’하며 가이드의 시선을 쫓았는데, 이제는 그런 얘기에 좀 심드렁하다. 트로트 곡을 틀어주면 배 위에서 즉석 춤판이 벌어지곤 하던 것도 옛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청산유수처럼 쏟아내던 가이드의 해설이 절반쯤으로 줄었다. 대신 가이드에게 주어진 다른 역할이 있다. 건네받은 휴대전화로 기념사진을 열심히 찍어줘야 한다는 것. 필름카메라 시절에도 사진을 찍어주긴 했지만, 그때야 필름이 아까워서 몇 장 찍을 수도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찬탄을 자아내는 홍도 주변의 기기묘묘한 풍경이다.


# 홍도를 능동적으로 보는 법…트레킹

홍도 관광은 예나 지금이나 수동적이다. 유람선이 데려다주는 대로, 가이드가 설명하는 대로 섬을 보게 되니 그렇다. 그렇지만 홍도를 능동적으로 보는 방법도 있다. 다름 아닌 ‘섬 트레킹’이다. 홍도의 트레킹 코스는 홍도 남쪽의 홍도 1구 마을에서 고치산 능선을 타고 산 정상 깃대봉(367m)을 넘어 섬 북쪽 홍도 2구 석기미 마을까지 이어지는 4㎞ 남짓의 산길이다. 이 길을 걷기 시작하자 비로소 섬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람선에서 가이드 안내로 보는 홍도가 차 창밖을 내다보는 느낌이었다면, 트레킹 코스 위에서 홍도는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사실 홍도 1구에서 2구 마을까지 가는 건 걷는 것보다 뱃길이 훨씬 더 빠르고 편하다. 그래서 두 마을 주민들은 주로 배를 타고 오갔다. 하지만 파도가 높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산길을 이용해야 했다. 바람이 잦고 바다가 거칠어지는 겨울에는 더 그랬다. 그렇게 두 마을을 잇는 산길은 끊어지지 않았고, 그게 그대로 트레킹 코스가 됐다.

홍도의 트레킹 코스 주인공은 바다가 아니다. 멀찌감치 물러서서 산에서 내려다본 홍도의 바다가 근사하긴 하지만, 유람선에서 본 홍도 바다의 극적인 경관에다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홍도 트레킹의 주인공은 난대림 숲이다. 능선을 따라 좌우로 바다를 거느리며 걷는 곳도 있지만, 트레킹 코스의 3분의 2쯤은 난대림 숲을 지난다. 붉은 동백꽃이 후드득 떨어진 짙은 동백나무 숲 터널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가득한 구실잣밤나무로 한낮에도 어둑어둑한 길을 지나간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청아한 새소리였다. 숲길을 걷는 내내 새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홍도에는 숯가마터의 자취가 흔하다. 트레킹 코스에도 ‘정숙이 숯굴’이 있다. 일제강점기 ‘정숙’이라는 사람이 숯을 구웠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변변한 땅도 없고 낡은 배로는 고기잡이도 쉽잖았던 시절. 홍도에서는 구워낸 숯이 생명이나 다름없었다. 숯을 팔아 식량과 소금을 샀고, 숯을 항아리에 넣어 빗물을 정수해 마셨다. 숯이 마실 물이 되고, 먹을 밥이 됐던 시절이었다.

트레킹 코스 중에서 가장 빼어난 구간은 깃대봉에 오르기 직전이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황칠나무가 그득한 숲길인데, 푹신하고 평탄한 길이 길게 이어진다. 이 길에는 ‘연인의 길’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렇게 좋은 길은 마땅히 연인과 함께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트레킹 코스를 걷다 보면 잃어버렸다 되찾았다는 한 쌍의 돌미륵을 지나고, 푹 꺼진 구멍이 바다 밑으로 뚫려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숨골재도 지나고, 두 나무가 엉켜서 자라는 연리지도 지난다.


홍도 유람선이 홍도 해안 곳곳의 기이한 동굴을 기웃거리고 있다.

# 홍도 등대에서 보는 진짜 홍도.

트레킹 코스가 넘어가는 홍도의 깃대봉은 ‘한국의 100대 명산’ 중 하나다.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섬이 명산의 반열에 오르는 산을 가진 셈이다. 깃대봉 정상에 서면 흑산도와 가거도, 상태·중태·하태도가 또렷하게 보인다. 홍도 1구 마을에서 깃대봉까지는 편도 1시간 남짓. 깃대봉에서 홍도 2구 마을까지는 45분이 더 걸린다. 트레킹 코스의 종점인 홍도 2구 마을까지 가면 배를 대절해 홍도 1구 마을로 되돌아오거나, 산길을 고스란히 되짚어서 1구 마을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다. 홍도 2구에서 1구까지 배를 타면 6만 원은 줘야 하고,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4시간에 가까운 섬 산행도 힘에 부치니 트레킹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 홍도 2구 마을까지는 가지 않고 깃대봉만 찍고 돌아온다.

하지만 큰맘 먹어야 다녀올 수 있는 홍도까지 가서 홍도 2구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한국의 아름다운 등대 16경’에 드는 홍도 등대를 포기하는 건 아무래도 아쉽다. 홍도 2구 석기미 마을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작은 어촌마을이다. 주민들은 홍어 배를 타거나 김을 뜯고, 공동작업장에서 그물을 손질한다. 2구 마을에도 민박집이 있지만 홍도 1구가 외지인들로 미어터지는 성수기가 아니라면, 구태여 여기까지 넘어와서 묵어가는 관광객이 있을 리 없다.

홍도 등대는 일제강점기이던 1931년에 처음 불을 밝혔으니 90년이 넘었다. 등대는 높지도, 그리 크지도 않지만 초지의 언덕 위에 있어 존재감이 뚜렷하다. 등대 앞에 서면 망망한 수평선으로 넘어가는 낙조와 정면으로 마주 설 수 있다. 홍도란 이름이 석양의 노을이 기암괴석을 붉게 물들여 붙여진 것이라면, 홍도 등대에서는 석양에 물든 진짜 홍도를 볼 수 있는 셈이다. 낙조 시간에 맞춰 등대까지 가서 바라보는 경관은 유람선 위에서 본 더 나은 경치보다 오래 마음에 선명하게 찍힌다. 홍도 여행의 즐거움이 자연경관을 뛰어넘어 추억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 홍도 해안 벼랑 흰 점의 정체

유람선을 타고 홍도 해안을 둘러보면 바다 위 수직 벼랑에다 흰 페인트로 모스부호처럼 찍어놓은 점이 자주 눈에 띈다. 하나를 찍은 것도 있고, 세 개를 찍은 것도 있다. 돌미역이며 돌김 등을 채취하는 구간을 돔이라 하는데 그걸 표시해 둔 것이다. 이를테면 죽향리는 세 돔으로 나뉘니 점 세 개를 찍어놓는 식이다. 홍도 1구 마을은 섬 둘레를 56개 구간으로 나눠 돔별로 미역 등을 공동으로 채취해 분배한다. 어촌공동체의 대표적인 관행 어업이다. 홍도 선착장에서 주민들이 파는 미역과 돌김이 이렇게 거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