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족의 '인류 조상' 나반과 아만
자미원에서 온 조상
동이족의 누에와 북극성이 하화족과 왜족에게 건너가서 개로 폄하
그래서 민족이 이동을 할 때는 언제나 북두칠성이 머리 위에 뜨는 간방이라는 통로를 따라서 이동하였다. 계속해서 간방으로 가면 나중에 만나는 곳이 서남곤방이었다. 동북간방에서 서남곤방에 이르는 통로가 민족 이동통로였던 것이다.
한국시대에 이 민족 이동통로 주변에 12 나라가 자리를 잡았다. 이들 나라 중에서 중심에 있는 나라가 동쪽에 있는 한인의 나라인 한국이었다.
파나류산 밑에 한인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天海: 은하수) 동쪽의 땅이다. 파나류의 나라라고도 하는데 그 땅이 넓어 남북이 5만 리요 동서가 2만여 리니 통틀어 말하면 한국이요 갈라서 말하면,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 사납아국, 선비국, 수밀이국이니 합해서 12국이다. 천해는 지금의 북해(北海)라 한다. 7세에 전하여 역년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삼성기> 하편 임승국 역)
<삼성기三聖記> 하편과 <삼성밀기三聖密記>의 저자는 우리나라의 기원을 한국으로 보고 기록하였다. 오랜 세월을 구전으로 전해 오던 것을 글로 옮겼다고 생각되는 글이다.
천하 동쪽의 나라라면 은하수 동쪽에 있는 나라로 볼 수 있다. 이들 12 나라는 적게는 3천3백1 년을, 많게는 6만 3천 182년을 존속했다고 한다.
조선에 속한 나라들
우리 무가巫歌 12 거리 중에 <창부거리>가 있다. 필자는 <창부거리>에 등장하는 창부를 단군왕검의 아들 부루 태자로 보고 있다.
그는 순임금의 요청을 받아, 홍수로 시달리는 우禹를 찾아 가서 도왔다.
|
그때 단군왕검이 그에게 내린 관직 명칭이 창수사자蒼水使者 부루태자夫婁太子였다.(<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그의 관직 명칭을 줄이면 <창부>가 된다. 그래서 <창부거리>를 창수사자 부루태자의 거리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단군왕검이 조선을 세우고 다스렸던 때가 중원에서는 여러 인종이 가장 치열하게 활동했던 조선역사의 여명기였다. 이 시기에 단군왕검은 먼저 나라를 세웠고 관경을 정했고 농사를 시작하였고 치수를 하였다.
처음 치수를 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기록한 책이 금간옥첩金簡玉牒이다. 단군 왕검의 아들 부투 태자는 먼저 오행을 배워 치수에 활용하였다. 그러고 나서 우(후에 우임금이 됨)에게 이 비법을 가르쳤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제왕년대역帝王年代歷>에서 단군조선이 진에게 멸망했을 때 대국이 9국, 소국이 12국이 남아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아마 부루태자의 금간옥첩이 이들 21개 나라에 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들의 공동조상은 누구였을까?
동이족의 조상 나반과 아만
동이족이 내세우는 인류의 조상은 나반과 아만이다. 그러나 동이족에서 갈라져 나간 지나인은 자기의 조상인 나반과 아만을 버리고 유치하게도 반고盤古를 만들어 인류의 조상으로 내세웠다. 자기의 조상인 동이족과 결별하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마음을 품게 된 동기는 그들이 동이족을 이끌어갈 종손의 지위에 있지 못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들은 5천년 가까운 세월을 그렇게 가짜 조상을 내세우며 절치부심하며 살아왔다.
<반고신화>가 처음 기록된 책은 삼국시대 오吳 나라 때 서정徐整이 지은 삼오역기三五歷記와 오운역년기五運歷年記이다.
후대에 나온 책에 인류의 조상신화가 실려 있으므로 학자들은 이 신화가 가짜일 것이라고 의심하였다.
반고 신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이들 신화를 여기에서 들먹거리는 이유는 이들 두 신화 중에서 한 신화가 우리의 조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구려인의 조상은 개?
|
고신高辛 씨 때 왕궁에 사는 어떤 노부인(註: 괄호는 필자 삽입, 제곡고신의 할머니라면 항아이다)이 귓병을 얻어 얼마의 시일이 지나갔다. 의사가 귀 속을 후벼서 치료하여 머리에 사는 벌레(누에)를 끄집어냈는데 크기가 고치(누에고치)만 했다.
노부인이 간 뒤 벌레를 표주박에 두고 쟁반으로 덮었다. 잠깐 만에 귀에서 꺼낸 벌레가 개(狗는 句이다. 개는 북극성이다.)가 되었는데 그 무늬가 다섯 색깔(별빛)이었다. 인하여 반호(盤瓠: 누에나 북극성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라 하고 그것을 길렀다.
반호는 비록 개(북극성)지만 융오적戎吳族의 적장을 죽이고 머리를 물고 돌아오는 공을 세워 천자의 막내딸을 얻어 궁을 나갔다. 천자가 안타깝게 여겨 신하들을 뒤에서 따라가게 하였으나 하늘에서 문득 비바람이 일고 산이 진동하고 구름이 끼고 날이 어두워 막내공주가 있는 곳에 이르지 못했다. 공주는 3년이 지나 6남 6여를 낳았다. 반호가 죽은 뒤 자녀들이 서로 짝을 지어 부부가 되어 나무껍질로 베를 짜고 길쌈질 하고 풀 열매로써 염색했다. 그들은 오색의 옷(색동 옷)을 좋아하고 옷을 만들 때는 다 꼬리 형상이 있었다.
그들의 옷은 색체가 무늬지고 번들거리며 말은 알아듣기 어렵고 마실 때는 쭈그려 앉으며 산을 좋아하고 도시를 싫어하였다. 천제가 그들의 뜻에 순응하여 명산과 넓은 못을 내려주고 그들을 만이蠻夷라 이름하였다.
만이는 어리석었으나 속으로는 약았고 토속적인 것을 편안히 여기고 옛 전통을 중시하였다. 그들이 천명에 의하여 보통 사람들과 다른 기氣를 받았기에 평범하지 않는 법으로써 제帝로부터 대우를 받았다. 농사 짓는 사람이든 장사하는 사람이든 관문關門을 지날 때 비단으로 만든 증명표와 통행증이 필요 없었고, 조세를 낼 필요도 없었다. 그들의 갓은 수달가죽으로 만들었고 수달을 본떠서 물에서 음식을 구했다.
오늘날의 양주梁州, 한중군漢中郡, 파군巴郡, 촉군蜀郡, 무릉군武陵郡, 장사군長沙郡, 여강군廬江郡의 만이족들이 모두 그들이다.
그들은 쌀죽에 물고기와 짐승고기를 섞어서 말구유를 두드리고 부르짖으면서 반호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그 풍속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허벅지를 드러내고 짧은 아래옷을 입은 이들은 반호의 자식이다.' 라고 말한다. (<수신기> 전병구 역)
반고盤古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거인이었다. 그는 이 칠흑처럼 깜깜한 혼돈 상태의 계란 속에서 잉태되어 무려 1만8천년 동안이나 계속 잠을 잤으며 잠자는 동안 쉬지 않고 자라나고 있었다. 어느 날 반고는 잠에서 깨어났다. 반고는 도끼를 하나 들고 혼돈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거대한 계란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는 계속해서 도끼를 휘둘렀다. (<중국 고대신화> 김희영 역)
|
夷족이 고신의 후예라는 신화가 앞에 나온 신화이다. 고신은 황제의 증손자이고 김씨족의 조상인 소호김천의 손자이다. 나이 많은 부인은 그의 할머니 항아일 가능성이 많다.
귀 속에서 벌레가 나왔다는 것은 항하가 그의 어머니 뉘조의 대를 이어 누에를 기르고 있다는 말로 해석이 된다. 그러니까 그의 할머니가 잠실에서 누에를 길렀다고 보는 것이다.
누에 한 마리가 커져 개가 되었다는 것은 잠실을 지키는 문지기가 있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상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고신의 할머니 항아가 누에를 기르고, 누에를 기르는 잠실 밖에 잠실을 지키는 군인이 한 사람 있었다는 말로 해석된다.
융오족이 고신의 나라를 침범하여 고신은 융오적을 물리쳐야 했는데, 졸병(신화에서는 개)인 잠실지기가 싸움터에 나가서 적장의 목을 베어(물고) 이기고 돌아왔다. 그는 그 공으로 고신의 막내딸과 결혼하여 독립하였다. 그에게서 퍼져 나온 후예들을 만이라고 하였다.
잠실 지기는 당시의 누비혼인 풍습으로 보아서 신농의 후손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방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고, 색동옷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고, 전통을 중시하였다. 그들이 살았다는 파군과 촉군은 파촉 지방으로 김해 김씨들이 한 나라 때 김해로 이주해 온 곳(김병모 교수)으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에 신농의 손자인 전욱고양은 제곡고신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전욱고양의 아들 중여가 딸 간적을 제곡고신에게 시집보낸 누비혼인의 관계에 있었다. 제곡고신은 전욱고양의 사위이자 곤의 사위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위 신화는 반고의 풍습에, '쌀죽에 물고기와 짐승고기를 말구유에 넣어 제사를 지낸다'고 했는데, 장인인 곤과 사위인 제곡고신과 관련이 있는 듯 보이는 신화다. 곤鯀이라는 이름에 물고기가 들어가고 있고, 또한 곤이 유망가楡罔家에서 제관祭官의 지위에 있었으므로 그를 조상으로서 기리는 제사 풍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만이의 조상이 되는 반호는 곤의 후손으로 볼 수 있다. 이 신화에서 만이가 야만족처럼 묘사된 이유는 후대에 지나족이 예절 바른 이족夷族을 폄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인용한 반고 신화는 지나족이 우리 선조가 가지고 있는 인간창조신화인 나반과 아만 신화를 능가하는 신화를 자기들 나름대로 만들려고 잔재주를 피워 만든 신화로 볼 수 있다. 이 신화에서 반고가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그가 난생족卵生族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난생족은 아리안(에어리안)족이다. 요즈음 아리안을 외계인이라 한다.
개는 북극성의 화신
앞의 신화를 해석하는 데 열쇠가 되는 부분은 벌레가 개로 둔갑했다는 막내공주의 신랑이다. 개는 한자로 쓰면 견犬자 또는 구狗자가 되는데, 견자는 사람이 별을 어깨에 이고 있는 문자이고, 구자는 북극성을 뜻하는 구句자와도 통한다. 그러므로 고신의 사위는 개가 아니고 별 즉 북극성이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지나족이 고구려의 조상을 폄하하기 위하여 원래의 신화를 변조해 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본문 가운데에서 개를 북극성으로 바꾸면 (개)는 졸병, (목을 물고)는 목을 베어라는 말로 대치하여 읽을 수 있다.
|
女節感大星 乃生小昊摯(여절감대성 내생소호지). 여절은 북극성에 감응하여 소호 지를 낳았다.
여절은 앞장의 인용에서 보았듯이 황제의 부인이다. 그가 감응한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북극성이라는 최고의 지위에 있는 별이다. 만일 별이 인간을 상징하고 있다면 그의 남편인 황제가 된다. 위 글은 소호 지가 아버지인 황제와 어머니인 여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말이다. 위에 인용한 본문에서 도출한 소호 지를 신화에 등장하는 개에 대비시킨다면 개는 소호 지이다. 여절이 낳은 소호 지가 북극성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개로 풀이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신화에 등장하는 개가 소호 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왕이거나 왕에 버금가는 신분에 있는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일본 카마쿠라시의 엔카쿠지(圓覺寺)가 소장하고 있는 고려 불화 지장보살도에도 삽살개가 그려져 있다. 세로 239.4 Cm, 가로 130 Cm . 현존하는 고려 불화 중 가장 큰 작품으로 손꼽힌다.
<코마이누> 삽살개는 고대 일본에서 이렇게 불렀다. <코마>란 우리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 고구려를 지칭했던 것인데, 차츰 고대의 한국을 통틀어 부른 총칭이 되었다. <이누>는 개이다. 따라서 <코마이누>는 한국 개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코마이누> 즉 한국 개는 왜왕과 신들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왕궁 안 지밀 곳곳에 황금 빛 도자기 <코마이누>를 두었고, 우리 나라의 사당이나 서낭당과 같은 신사의 문전 좌우에는 의례 것 <코마이누>의 석상을 안치하였다.
개를 왜 <이누>라고 하는 것일까. <이누>라는 말은 일본 고대어로 <잔다>는 말이기도 하다. 개를 왜 <이누>라고 하는지 잠자는 행위는 왜 <이누>인지, 우리말만 알면 그 수수께끼는 간단히 풀린다. <잇따라(계속) 눕는다>는 뜻의 우리 옛말 <잇눕> 또는 <잇누>가 이 <이누>의 어원이다. <계속 누워 있다>는 것은 결국 잠자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래서 <잇누>라는 우리 옛말이 <잠자다>는 뜻의 일본 옛말 <이누>가 된 것이다. (<노래하는 역사> 이녕희 <조선일보>)
이 일본의 고대 이야기는 지나의 신화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개가 왕궁 지밀의 문지기를 한다는 것, 일본의 개 <이누>가 만족의 신화에서처럼 <누에>라는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누>는 우리의 고대어인 <잇누>에 어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계속 누워서 자는 누에와 연결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일본의 <이누>는 유망시대의 <누에>로 연결이 되고, <누에>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누에>와 <개>라는 말에서 <동이족>과 <지나족>과 <왜족>의 삼각관계를 알 수 있다. 모계 사회에서 누에는 신령스런 여자 조상을 상징하는 상징물이고, 개는 이 여자 조상을 지키는 자로서 하늘에서 보내 준 북극성이다. 북극성은 왕족 출신의 남자이다. 누비혼인으로 신령한 여자가 시집을 갈 때 북극성은 호위무사로 신령한 여자를 따라가서 뿔이 달린 신격화 된 <코마이누>와 같은 개로 형상화 되는 것이다.
누에 (동이족) ─→개 (지나족, 왜족)
북극성(동이족) ―→개 (지나족, 왜족)
우리는 위 도식에서 동이족의 누에와 북극성이 하화족과 왜족에게 건너가서 개로 폄하되고 있음을 본다. 하여간 <누에>가 북극성의 <메타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왜왕들은 구애를 하거나 청혼을 할 때, 개를 선사했다. 주로 하얀 개였다. … 하얀 개를 골라 보낸 데는 까닭이 있었다. <백(白)>자는, 우리의 고대 이두 표기인 이두로 <살오>라 읽혔다. <사뢰다> <고하다> <고하다>라는 뜻의 옛 말이다. 그러니까 백견(白犬)은 <함께 자자고 사룀>을 뜻하게 된다. '이렇게 마냥 땅에 누워서 용서를 비는 뜻으로 진상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일본서는 개에게 천을 휘감아 입혀서 하인과 함께 진상한다. (<노래하는 역사> 김영희 <조선일보>)
이 글을 고신의 신화와 맞추어 보면, 고신의 신화에 무엇인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 신화에 등장하는 개가 혹시 누군가가 고신에게 사죄의 뜻으로 하인과 함께 딸려 보낸 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앞의 해석과는 좀 색다른 해석을 하기로 한다. ‘신령한 여자를 지키는 개'가 아니라 '신분 높은 개를 따라간 하인이 시중을 드는 개'라고 해석을 해보자는 것이다.
신화에 나오는 문지기 개는 신령한 여자를 지키는 개가 아니라 개를 모실 하인을 딸려 보낸 신분이 높은 개이다. 그러니까 융오족이 고신의 나라에 쳐들어왔을 때 고신의 왕궁에는 하인의 시중을 받는 꽤 신분이 높은 개가 한 마리 있었다는 말이다. 개는 신분이 높으므로 융오족이 고신의 나라에 쳐들어왔을 때 출정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래서 하인 무사가 개를 모시고 출정하게 된 것이다.
|
개를 의미하는 견犬이라는 문자에 보면, 뿔을 이마에 달고 있다. 일각견一角犬인 것이다. 견犬자가 바로 뿔을 하나 이마에 달고 있는 개를 의미한다. 이러한 개들은 보통의 인간보다 지위가 높아서 하인의 시중을 받는다고 보므로 하인이 개를 모시고 출정하였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를 모시고 출정한 하인이 보통 하인이 아니라 당당한 무사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가 개에게 충성을 다 바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적진에 뛰어 들어 적장의 목을 벤다. 무사는 적장의 머리를 개에게 바친다. 개는 적장의 목을 물고 개선장군이 되어 고신의 왕궁으로 귀환한다. 따라서 "개를 시중드는 하인이 개와 함께 출정하여 적장의 목을 베어 머리를 개로 하여금 물고 올 수 있게 하였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반고 신화에 나오는 지나 사람이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 반고의 다른 이름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때에 반고(盤固)라는 자가 있어 괴상한 술법을 즐기며 길을 나누어 살기를 청하매 한웅 천왕이 이를 허락하셨다. 마침내 재물과 보물을 꾸리고 심간십이지十干十二支의 신장神將들을 이끌고 공곡 유소 유수와 함께 삼위산의 라림동굴에 이르러 군주가 되니 이를 제견諸畎이라 하였다. (<삼성기전> 하편 임승국 역 정신세계사)
우리 쪽 기록에서 반고盤固를 달리 제견(諸畎이라 하였는데, 반고의 고固자는 지나의 반고盤弧와 의미상의 차이는 없는 것으로 생각 된다. 발음 나는 대로 기록하였을 것이다. 우리쪽의 기록에 반고를 견畎이라 한 것과 지나쪽에서 견犬이라 한 것도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 지나 두 나라에서 畎과 犬으로 기록된 것이 의미는 같으며, 이들 <견>이 뿔이 한 개씩 달려 있다는 점에서 일본 신사에 세운 <이누>와도 연결이 된다고 하겠다.
남은 것은 도끼를 휘두르며 알에서 나온 반고盤古가 지나인의 시조가 되느냐 하는 문제인데 이 이야기는 위의 이야기와는 격이 맞지 않는 다고 보아서 누군가 만들어 끼운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세 갈래의 시조신화
우리 시조로 볼 수 있는 분은 한인계열에서는 한인 한웅 단군으로 이어지고, 유망계열에서는 전욱고양 중여 성축 등으로 이어지고, 황제 계열에서는 소호김천 제곡고신 요 순 우 등으로 이어진다.
유망계 문자인 금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청동기 제기에 새겨진 문자를 연구하여 우리의 조상과 관련이 되는 문자를 찾아낸다. 이 문자를 연구한 결과 여러 사람의 신농계 조상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한국문자학회>에서는 전욱고양을 고구려 사람의 조상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그에게서 처음으로 고구려를 의미하는 고高자가 발견 되기 때문이다.
고구려 고분에는 유망, 회화와 항아, 전욱고양으로 이어지는 유망계 조상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황제 계열의 조상들은 하나도 그리지 않았다. 이는 지나족이 고구려인의 조상이 아니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어머니의 원형 뉘조, 하백녀, 웅녀
우리 상고사에서 여자로서 걸출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군왕검의 부인인 비서갑의 하백녀와 웅심국왕의 딸 웅녀, 유망의 딸인 뉘조를 들 수 있다. 다음에는 유화와 항아가 나온다. 이 분들이 우리 어머니의 원형들이다.
웅녀는 후세에 칠성신앙을 퍼뜨렸다. 덕교에는 삼신과 칠성이 들어 있다. 삼신과 칠성은 굿의 삼신거리와 칠성거리를 탄생시킨다.
칠성신앙이 웅녀의 나라인 웅심국의 신앙이었으므로 이 신앙이 후손에게 전해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뉘조는 양잠을 후손들에게 가르쳤다. 뉘조 할머니가 누에를 길러 양잠을 처음 시작한 분임을 잊지 않기 위하여 우리의 할머니들은 수천 년 동안 대대로 뉘조 할머니에게 제사를 올렸다. 제관은 임금님의 부인인 왕비 마마이었다. 서울의 성북동에 있는 선잠단이 그 유적으로 남아 있어서 지금 이 나라의 내 노라 하는 차꾼들이 여기에 와서 잠신蠶神이 된 뉘조 할머니에게 차를 올리고 싶어 한다
'문화&사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영배 기자의 풍수와 권력_05 (0) | 2014.08.25 |
---|---|
忠南 천주교 聖地_두번째 (0) | 2014.08.13 |
음식과 藥의 道를 말하다_25 (0) | 2014.08.01 |
안영배 기자의 풍수와 권력_04 (0) | 2014.07.29 |
新 한국의 명장_07 (0) | 2014.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