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은 4極으로 '덕교'라는 국가 철학 완성
'홍익'은 우주 운행의 결실(利·益)인 '덕'을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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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웅천왕이 세운 배달나라는 <천부경>에 나오는 ‘일석삼극의 사유체계’를 가지고 완성한 [태백진교太白眞敎]라는 국가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삼극三極이라는 ‘하늘의 도’를 ‘땅의 도’인 ‘재세이화在世理化의 도’로 완성한 것이다. 이것이 치덕治德, 화백和白, 책화責禍였다. 이 시대까지가 삼신三神의 시대였다. 천문에서는 한국의 하늘을 의미하는 태미원, 배달나라의 하늘을 의미하는 천시원, 조선의 하늘을 의미하는 자미원의 시대였다.
태백진교의 사상은 천부天符였고, 국가체제는 신시神市였고, 의사결정은 화백和白이었고, 정치는 치덕治德이었다. 치덕의 결과는 임금이 책임을 지는 책화責禍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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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이 세운 조선은 <천부경>의 <일석삼극一析三極의 사유체계>를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의 사유체계>로 발전시켰다. 삼극을 사극四極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사극으로 덕교德敎라는 국가철학을 완성하였다.
‘운삼사성환의 원리’는 태양이 공전하여 사계절을 완성하는 원리를 말한다.
이 원리에서 원형이정元亨利貞,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철학적인 체계가 완성되었다. 이런 것들을 다른 말로 덕교라 하였다.
태백진교가 발전하여 덕교가 된 것인데, 덕교가 내포하고 있는 사상은 덕을 밝히는 明德이었다. 명덕은 덕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사계절이 돌아가는 이치를 달리 표현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자연이 순환하는 이치인 원형이정元亨利貞에 따르고, 사계四季를 숭상하는 검덕儉德을 내세웠다.
태백진교는 <천지인삼신사상天地人三神思想>을 완성하고, 이 천지인삼신사상은 후대에 와서 한족이 받아들여 <천지인삼재사상>이 되었다. 같은 천지인임에도 불구하고 동이는 천지인이 신神에서 오는 것임을 믿고, 한족은 천지인이 심心에서 오는 것으로 보았다.
태백진교는 수리數理로 보면 3을 숭상하는 사유체계이다. 하나에서 셋이 나온다는 것으로 삼태극, 음양조화, 삼신사상이 이 안에 있다.
우리는 태백진교를 세상에 펼침으로써 <재세이화在世理化의 도>를 이룩하였다. 조선에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이론체계가 서기전에 이미 신시배달나라에서 <재세이화의 도>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재세이화의 도>는 태백진교라는 다른 말로 표현되고, <홍익인간>은 덕교라는 다른 말로 표현되었다.
태백진교는 수리數理로 보면 3을 숭상하는 사유체계이다. 이를 다른 말로 <삼신신앙三神信仰>이라고 하였다. <삼신신앙>이 실현되는 사회가 <재세이화의 도>가 실현되는 사회이다.
덕교는 수리로 보면 4를 숭상하는 사유체계이다. 1에서 시작한 3이 황도黃道로 불리는 궤도를 공전하면서 완성하는 수가 4이다. 이를 원형이정이라한다.
<천부경>에서 4가 운행하여 우주에 생겨나는 것이 황도상에 1년에 한번 생기게 되는 춘하추동 사계이다. 사계는 인간을 이롭게 하여 홍익弘益의 근본이 된다. 홍익이 되게 하는 이치가 원형이정이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고 해서 <홍익인간>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이롭게 하는 사회성에서 나오는 홍익인간이 아니라 우주의 원리에서 나오는 이익利益 됨이 <홍익인간>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아전인수로 무턱대고 인간을 이록게 한다는 엉터리 해석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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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한웅천왕이 세운 신시배달나라를 <재세이화의 도>를 실현하는 나라로 보고,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나라를 <홍익인간>을 실현하는 나라로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형이정은 사덕이다. 사덕이 가시화되는 것이 사계절이다. 사계절이 인간을 이롭게 함으로 사덕이 인간을 고루 이롭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덕은 태양이 태양의 공전궤도인 황도를 운행하면서 생겨나는 결과이다.
우리가 봄(元)에 씨 뿌리고, 여름(亨)에 성장하고, 가을(利)에 결실을 거두게 되는 이치(貞)가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성地星인 지구는 이러한 우주의 원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 원리에 균형을 잡아주는 이치가 있다. 지구가 23.5도 동북쪽 간방艮方으로 기울어져 있으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이유가 균형을 취하게 하는 어떤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구가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 쓰러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힘을 중용中庸이라 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용의 덕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중용이 덕이 된다고 하였다.
中庸之爲德 其至矣乎 民鮮久矣
중용지위덕 기지의호 민선구의 (<論語> 雍也)
(중용의 덕이 됨은 참으로 지극한 것이다. 조선의 백성이 지켜 온지 오래 이다.)
위 문장을 지금까지 "중용의 덕이 됨은 참으로 지극한 것이다. 중용을 능히 행하는 이가 적은지 오래다."라고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 해석이 제대로 된 해석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民鮮>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다시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조선을 폄하하기를 좋아하는 공자가 조선을 폄하하자는 불순한 의도로 선鮮자를 조선의 의미로 쓰지 않고 <적다>는 의미로 바꾸어 썼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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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조선의 백성이 지켜 온지 오래 되었다."로 다시 해석하였다. 이렇게 다시 해석하면 <중용의 덕이 됨>이 <조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미 덕교의 생성과정과 그 의미를 살펴보았으므로 “조선이 중용을 행함으로써 중용의 덕을 천하에 알린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중용지위덕中庸之爲德>은 단군왕검이 국가철학으로 선포한 덕교의 핵심이 된다. <중용이 덕>이라는 말에 엄청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논어의 <民鮮>은 당연히 중용의 덕을 실천해 온 조선의 백성이나 조선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단군조선시대엔 중용의 덕을 실천하였다. <단군세기>에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德敎漸得偉廣
덕교점득위광(<단군세기> 단군왕검조)
(교는 점점 위세를 얻고 널리 퍼져나갔다.)
<단군세기>에 단군왕검시대에 덕교가 있었음을 기록한 것이다. 단군왕검시대인 경사 93년(BC2241)에 덕교가 제주도까지 퍼져나갔다는 놀라운 기록이다.
덕에 관한 기록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역경>이다. 덕의 뜻을 풀어 원형이정이라고 하였고, 원형이정을 <역경>의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와 둔괘屯卦의 머리에 올려놓았다.
<역경>에 나오는 위정중位正中이 바로 중용이다. 여섯 효 중에서 가운데 두 효를 말한다. 초효와 2효는 삼태극의 화火인 적赤이고, 3효와 4효는 삼태극의 토土인 황黃이고, 5효와 6효는 삼태극의 수水인 흑黑이다. 6효 중에서 삼태극의 토인 황이 바로 위중정이 되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 옹야편에서 삼태극의 토인 황의 덕를 말하고 있다. 삼태극의 토인 황은 우주만물의 중심에 있어서 음과 양을 조화시킨다. 조화가 바로 덕이다.
단군왕검이 말한 사덕인 원형이정에서는 덕의 주제가 되는 것이 이利이다. 이는 조화의 결실이다. 우주가 운행을 하면서 일구어내는 결실이 바로 이利이다. 이는 바로 익益이 된다. 이는 이를 더하는 것을 뜻한다. 이가 널리 퍼져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는 것이 홍익弘益이다. 이렇게 홍익은 덕을 펼친다. 누가 단군왕검이 원형이정을 말했다고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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