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
뎌러코 四時(사시)에 프르니 그를 됴하하노라.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시조입니다. 대나무를 예찬한 것이죠. 윤선도는 시조에 뛰어나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대나무를 보면 특이한 것은 분명합니다. 풀[草]이기에는 나무[木] 같고 나무라고 하기엔 풀이 많이 자란 모습이기도 합니다. 꼿꼿하게 서서 사시사철 푸른데 속은 또 텅텅 비었습니다. 속빈 강정도 아니고 선비의 상징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데, 어쨌거나 선비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뒤죽박죽입니다.
어쩌면 대쪽 같은 선비니, 평생을 한 가지 생각에만 매달려 사는 사람들은 대나무처럼 속이 텅 빈 것은 아닐까요?
(1) 멀고도 먼 여행
지금까지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멀고도 먼 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기나긴 인간의 역사에서 그리고 수백 년에 걸친 자본주의의 역사를 이 정도로 돌아 본 것은 오히려 너무 가벼웠을 지도 모릅니다.
사실 지금 이 시대와 새로운 미래의 패러다임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저 혼자의 힘으로는 무립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에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저는 거대한 미래의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기초로서 우선 경제학의 패러다임에 국한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경제는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래 패러다임의 기초를 경제에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케인즈도 "경제학자나 정치 철학자들의 생각들은 그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세상은 이들이 거의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은 실용주의자라 그 어떤 영향도 안 받는다고 해도 그는 어느 죽은 경제학자의 정신적 노예일 것이다(<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고 했습니다. 그만큼 경제가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마치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심경으로 제 생각을 일단 정리해야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제 경제학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단순히 현상 분석에만 치우쳐 과학성이라고 치부만 하고 있을 시기가 아닙니다.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나라를 잘 다스려 수렁에 빠진 국민들을 구한다."는 신념의 표현이 경제학으로 구현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위기는 이 같은 정신을 무시하고 근대 경제학 즉 우파 경제학(Bourgeois Economics)이 오로지 기득권의 유지와 이윤 극대화를 위해 패러다임을 구성한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인류는 두 차례나 자기 파멸의 세계전쟁과 수많은 전쟁들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우파 경제학 즉 흔히 말하는 근대 경제학이라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과학성을 빙자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특정 세력의 기득권들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이론서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미 제국주의 침탈과 수탈로 불평등(inequality)이 만연하고 경제구조가 파괴되어있는데 그 원인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이 무조건 경기장에서 누가 어떻게 뛰고 있는 지 과학적이고 실증적으로 관찰만 잘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우파 경제학자들이 하는 꼴이라는 것이 마치 유명만화였던 <순악질 여사>(길창덕 작)의 스토리나 다를 바 없습니다. 한번 봅시다.
한 아줌마가 마당에서 고등어를 굽는데, 전화가 와서 마침 놀러와 있던 이웃의 '순악질 여사'에게 "고등어 좀 봐 주세요"하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고 와보니 고등어가 다 타버려서 온 동네에 생선 탄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어요?"라고 물으니, 순악질 여사가 하는 말, "타는 지 보라고 했잖아요."
이것이 우파(부르조아)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과학성입니다. 케인즈가 그 토록 찬양했던 맬서스 이후 거의 모든 부르조아 경제학자들이 추구한 본질은 과연 무엇입니까?
맬서스(Thomas Malthus, 1766~1834)는 신부의 본분을 망각하고 구빈법(救貧法, Poor laws)을 반대하였고,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불평등을 강화함으로서 오히려 인간은 위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이 이론을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가 그대로 원용하였습니다.
우파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은 골치 아픈 경제학 논쟁들은 경제학자들이 사회복지(Social welfare)를 논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므로 경제학이 과학이기 위해서는 몰가치적이고 가치중립적(價値中立的, value neutrality)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는 사람들의 먹고 사는 문제들의 집합체요 경제학은 이 문제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가치중립인 입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경제는 바로 정치행위와 직결되어있는 문제로 "그래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 결과 경제학은 더욱 현실과 유리된 수식의 틀 속에 머물기도 하고 경제학자들의 어용화 및 경제학의 민중으로부터의 유리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우파경제학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결국 '과학으로 위장한 정치(Science disguising politics)'에 불과했습니다(물론 좌파 경제학도 이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가치 논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 분석에 치우친 그 우파 경제학조차도 이제는 현상 분석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근본적으로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때입니다.
초기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이론가들 예컨대 시니어(Nassau Senior, 1790~1864) 류의 헛된 발상은 당시 팽배하고 있던 자연과학적 발전에서 나타난 부산물들을 섭취함으로써 자연과학과 인문ㆍ사회과학의 연구 방법론을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경제학은 원뜻 그대로 세상을 경륜하고 국민 대다수를 구성하는 민중들의 생활 향상에 그 목적을 두지 않을 때는 의미를 상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경제학을 단순히 시장 상황만 분석하려고 배우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1)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K.Marx, 1818-1883)의 패러다임이 온전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지요. 마르크스의 경제학(좌파 경제학)도 '과학으로 위장한 정치'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보면, 마르크스주의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지만 마르크스는 제자들에게 국제부문(국제주의)이라는 엄청난 이론적 부담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 이후 국제부문에 대해서는 거의 이론의 춘추전국 시대라고 할 만큼 많은 이론들이 봇물처럼 쏟아집니다. 이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자본주의 선진국들은 신속하게 자유민주주의, 자유무역이론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철저히 프로파겐다(propaganda)하면서 세계 전체를 장악해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반자본주의적 지식인들이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 정신없이 '안 되는 이론 개발'에 몰두하지 않고 차라리 각 나라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패러다임의 다양화를 강화했어야할 시기였습니다.
세계의 경제 현황을 보면 그래도 이슬람권 국가들이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보다도 절대적, 상대적 빈곤이 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물론 이 지역의 조사 통계가 부족하고 풍부한 석유자원이 있기 때문에 판단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것은 종교나 사회문화적 요소가 서유럽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일방적 침투를 막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것이 옳고 그러고는 제3자가 판단할 문제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토대로 보면 현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일원론(一元論, monism)적인 패러다임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선진국과 후진국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단일의 패러다임(Monistic Paradigm)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진국은 자기에게만 유리한 패러다임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니 신현실주의(Neo-realism)니 하는 말 자체가 후진국들에게는 감언요설(甘言妖說)이요 허구(虛構)입니다. 후진국은 막연히 세계적인 추세나 선진국형 패러다임을 따라가서는 안 되고 자국의 경제 현실과 자원 부존도나 생산요소 부존도(production factor endowment) 및 기술 수준에 합당한 패러다임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적 또는 다원론(多元論, pluralism)적 패러다임을 지향해 가야 합니다.
후진국 또는 저개발 국가들에게는 그들에게 유리한 경제모델과 패러다임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경제개발 모형을 좀 더 제대로 연구 분석하여 이들 나라들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면, 토지개혁(봉건유제타파) - 신중상주의적 모델(국내산업보호와 자본축적) - 유치산업의 보호(경쟁가능 산업육성) - 제한적 세계시장 진입 - 수출지향(노동 집약에서 시작하여 자본 집약적으로 확장) - 철저한 금융 산업 보호(2) 등을 적절히 배합하여 경제개발 모델을 만들고 대외적으로 선진국들의 자본 침탈이나 경제 침략에 대응해야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많은 연구들이 나와야 하겠지요.
(2)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기초
저는 현재의 자본주의 패러다임은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현상분석도 실패하고 있다는 말씀을 지속적으로 드렸습니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의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이미 자본주의 경제학(우파 경제학)은 정상과학(normal science)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어노멀리(anomaly)는 중심부(center)에서보다는 주변부(periphery)에서부터 나타나기 쉽습니다. 패러다임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중심부에서 나타나기는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원래 마르크스가 봉건제도(Feudalism)의 물적 토대로 상정하였던 고전 장원(古典莊園, classical manor)은 유럽사회에서도 거의 발견되지 않으며 13세기 영국도 비장원 촌락이 전체의 40%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가장 선진적인 형태 또는 지배적인 사회구조를 가지고 이론화하게 되면, 나머지의 다른 부분에는 적용하기가 어렵지요. 어떤 의미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은 자기 자신의 말대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만 타당한 이론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현재의 자본주의 패러다임은 주변부(periphery)는 물론이고 중심부(center)에서도 극심하게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보시면, 주변부는 기존의 자본주의 패러다임으로 결코 행복한 사회(happy society)를 꿈꾸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중심부에서 잘 적용되던 이론들도 인터넷 혁명과 정보통신 혁명으로 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찢겨지고 너덜너덜해진 그 이론들을 자꾸 기워서 사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왜 부도덕하고 효용성마저 상실한 패러다임을 끝까지 지키려 안달합니까? 그래서 제가 현재 세계 전반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자본주의 4.0'을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한 것입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패러다임을 아예 새롭게 정립해가야 합니다.
저는 경제학 패러다임과 관련하여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패러다임은 동양의 사상에서 나타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정신이라고 누차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 경세제민도 어떤 의미에서는 철저한 기득권 옹호를 위한 정치적 구호일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패러다임의 구성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진시황(秦始皇)의 실제 아버지로 알려진 여불위(呂不韋, ?∼235BC)와 그의 아버지의 대화가 오늘날까지 전합니다.
"농사를 지으면 이윤이 얼마나 됩니까? 그야 10배지, 그러면 보석을 팔면 얼마가 남습니까? 100배 정도, 나라에 군주를 세우면 이윤이 얼마나 됩니까? 그것은 헤아릴 수 없지.(<戰國策> 卷7「秦策」)"
이것은 경세제민의 정신과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은 항상 이론을 넘어 있고(걷는 이론 위에 뛰는 현실이 있죠?) 어쩌면 "모든 이론은 회색"이라는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군요.
오늘날에도 공산당의 중국에서조차 다음과 같은 노래가 유행하기도 합니다.
"마오쩌둥 병사는 청렴결백하고 공정했네(毛澤東的兵 廉潔從公)
훠꿔펑의 병사는 그저 그랬네(華國鋒的兵 平平庸庸)
덩샤오핑의 병사는 백만장자라네(鄧少平的兵 百萬富翁)"(3)
▲ [그림①] 왼쪽부터 마오쩌둥, 화꿔펑, 덩샤오핑 |
동양에서 경제(經濟)라는 말은 사용된 적이 없고, 근대 일본에서 영어의 Economy를 번역한 말입니다. 그 원래의 의미는 인간이 각종의 재화를 이용하여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체의 행위로 정의되었습니다.(4) 동양에서는 주로 경세제민(經世濟民) 또는 경국제세(經國濟世)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 단순히 재화와 부(富)만 추구하는 개념은 상위개념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경제라는 것은 단순히 재화의 생산과 유통을 통해서 이익을 챙기려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국부(國富)의 증진과 민생(民生)의 안정을 이룰 수 있는가"하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일찍이 관자(管子, ?∼BC 645)는 "무릇 범인(凡人)의 정은 이익을 보면 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이 때문에 이익이 있는 곳이라면 7∼8천 척의 높은 산이라도 오르지 못할 곳은 없고 아무리 깊은 물속이라도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管子>「禁藏」)"고 하여 인간이 이익을 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창고 안이 충실해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倉庫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管子>「牧民」)"고 했습니다. 즉 사람들이 예절을 지키고 순응하는 것도 먼저 잘 살고 볼 일이라는 말입니다.
관자는 백성을 편안하게 살게 하는 것이 치국(治國)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그것은 경제의 발전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관자는 중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꼽히는 사람으로 후일 공자(孔子)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에게 <삼국지>로 유명한 제갈량(諸葛亮)의 롤모델(role model)도 바로 이 관자였습니다. 관자는 부국강병으로 당시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던 제(齊) 나라를 최고 강국으로 만든 사람입니다.
관자는 부국강병 정책을 이루기 위해서 강력한 사치(奢侈) 억제정책을 동시에 실시합니다. 관자는 특히 "나라를 다스리는데 (지도층이) 사치하면 국고(國庫)를 낭비하게 되어 백성들이 가난하게 된다. 백성들이 가난해지면 (불가피하게) 그들은 간사한 꾀를 내어 나라를 어지럽힌다(<管子>「八觀」)"라고 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강조합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지나치게 부유하면 부릴 수가 없고, 지나치게 가난하면 염치를 모르기(<管子>「侈靡」)" 때문에 관자는 재화가 고루 분배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공자도 "적은 것이 걱정이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이 걱정이다(不患寡而患不均, <論語>「季氏」)"라고 하였습니다.
▲ [그림②] 관자와 공자 |
공자(孔子)는 "부귀는 사람의 바라는 바(富與貴是人之所欲, <論語>「里人」)"이고 또 백성들은 잘 살아야 하지만 재물 자체를 탐해서는 안 되고 교육을 받아야 함(<論語>「子路」)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대학(大學)>에서는 "어진 사람(仁者)은 재물로서 몸을 일으키고, 어질지 못한 사람들은 몸을 망치면서 재물을 일으킨다.(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고 하여 부(富)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즉 재물을 모으면 민심(民心)은 흩어지고 재물을 나누면 민심이 모이게 되는데 어진 사람들은 자기가 모은 재물을 처지가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 덕(德)을 실천함으로써 사회가 안정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순자(荀子)도 "사람들이 잘 살지 않고서는 그들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생길 리 없다(不富 無以養民情,<荀子>「大略」)."라고 하여 경제의 요체는 반드시 민생의 안정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공자는 "소박하게 차린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 베고 누워도 즐거움이 그 속에 있다. 의롭지 않는 방법으로 부귀를 누리는 것은 뜬구름과 같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 如浮雲,<論語>「述而」)" 그래서 이익을 취함에 앞서 먼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생각해야한다(見利思義,<論語>「述而」)는 것입니다. 맹자(孟子)는 "위와 아래가 오로지 서로의 이익만을 취하려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될 것이다.(上下交征利 而國危矣, <孟子>「梁惠王」上)"라고 하면서 이런 경우에는 서로 빼앗고 뺏기는 약육강식의 장이 될 것(苟爲後義而先利不奪不饜)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관자(管子)는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중시했고 공자(孔子)는 정신적인 요소를 중시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이것이 하나의 범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사상은 향후 동양의 경제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 대부분의 논의들도 그 용어상의 차이나 시대적 개념상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충신이 순절(殉節)하고 은사(隱士)가 바위굴에 은거하고 병사가 성을 공격할 때 먼저 성에 오르고 돌과 화살을 무릅쓰고 전진하는 것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司馬遷<史記>卷129「貨殖列傳」). 나아가 경제문제에 관해서 "먼저 재물이 백성들의 손에 들어가야 나라가 부강해진다."고 역설했습니다. 즉 나라의 경제는 국민이 먼저 잘 살아야 나라도 잘 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경제를 운영하는 주체들이 개인의 사익(私益)뿐만 아니라 의리(義理)를 가져야 한다는 의리병중론(義理倂重論)을 강조합니다.(5) 하지만 "재물이 지나치게 풍족해지면, 인간은 교만해져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추구하여 오히려 도덕이 무너진다.(司馬遷<史記>「平准書」)"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마천은 개인이 영리를 위해 생산과 무역 활동에 종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가 혹은 관리가 이런 부문에 종사하는 것은 국민과 이익을 다투는 해위이므로 가장 나쁜 정책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을 선인론(善因論)이라고 한답니다.(6)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마천의 생각이나 관자의 사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절제되지 않는 인간의 욕망(desire)은 인간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마천은 국가는 일정한 정도의 거시적인 조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인정합니다. 예를 들면 국고를 충실히 하기 위해 죄인이 재물로 속죄하게 한다거나 일반인들도 곡식을 바쳐 요역을 면제받을 수 있으면 굳이 세금을 거두지 않아도 국고가 충실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합니다.(7)
나아가 사마천은 "사물이란 극에 이르면 쇠락하는 것인데, 쇠락이 극에 이르면 또 다시 변화하여 한 시기에 질박하면 다른 시기에는 사치하게 되는데 이것이 서로서로 시종 변화하는 것이다(事變多故而亦反是 是以物盛則衰 時極而轉 一質一文 終始之變也, 司馬遷<史記>「平准書」)"라고 하여 경기변동과 이에 따른 사회적 변동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가지는 문제점을 단적으로 나타난 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동양의 수많은 제국들의 쇠퇴와 멸망도 결국은 같은 꼴입니다. 예컨대 서진(西晉)의 멸망을 보면 지배층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자기의 부(富)를 자랑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서진왕조의 창업 일등공신 중 한 사람인 하증(何曾, 199~278)은 식도락(食道樂)으로 재물을 탕진했는데 하루에 1만전(萬錢)을 썼다고 합니다. 위진시대(魏晉南北朝) 귀족들의 일화모음집인 <세설신어(世說新語)>(「태치편(汰侈篇)」)에는 왕조의 창업공신(왕개, 석숭, 왕제)들이 앞을 다투어 호화 방탕의 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를 투부(鬪富)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왕개(王愷)가 쌀을 쪄서 말린 것으로 밥을 짓자, 석숭(石崇)은 양초로 밥을 짓고, 왕개가 푸른 능견으로 안감을 댄 보라색 비단으로 길이 40리가 되는 장막을 만들자, 석숭은 50리나 되는 비단 장막으로 대응하였다."고 합니다. 왕제(王濟)는 "황제(사마염)가 방문하자, 모두 칠보 유리인 청보석 그릇을 사용하고, 백여 명 남짓한 시녀는 전부 비단 바지와 웃옷을 입고 음식물을 손으로 바쳤다."고 합니다. 이 만찬에서 삶은 돼지고기가 특이한 맛이 나 황제가 그 까닭을 물으니 사람 젖으로 돼지고기를 키웠다고 대답합니다. 이러니 이 나라가 온전할 리가 있겠습니까? 서진은 건국된 지 50여 년도 채 되지 않고 망하고 맙니다.
이것이 현대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입니까? 아닙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하루 밤 자는데 수천만 원 들어가는 호텔(hotel)도 있고 한국은 명품 시장의 규모만도 5조 원에 달합니다. 물론 "절약은 바늘로 흙을 뜨는 것과 같고 낭비는 물로 모래 부스러기를 치우는 것과 같다(節約好比針挑土 浪費好比水推沙 : 절약은 그만큼 어렵고, 낭비는 쉽다는 뜻)"고 해도 이것은 좀 지나칩니다.
중국인들은 고래로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려서 맷돌을 돌릴 수 있다(有錢能使鬼推磨, 魯褒 「錢神論」)"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재물을 중시합니다. 그렇지만 입에 올리기는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라 조심하지만, 속으로는 돈 모으기를 적극적으로 추구합니다. 당나라 때 장설(張說)은 「전본초(錢本草)」를 지었는데 "돈을 쌓아놓고 흩뜨리지 않으면 도적의 화가 생기고 흩뜨리고 쌓아두지 않으면 추위와 배고픔이 있을 것이다. … 돈을 알맞게 모으고 주는 것을 의(義)라고 하고,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는 것을 예(禮)라고 하며, 널리 베풀어 뭇사람을 구제하는 것을 인(仁)이라고 한다.(張燕公集)"는 것입니다.
이 글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돈을 다스리는 금언(金言)으로 유명 합니다. 즉 재물을 모으면 반드시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청나라때 편찬된 책(<사상요람>)으로 상인들의 지켜야 하는 수칙을 모은 「사상십요(士商十要)」에서도 "가게를 너무 화려하게 꾸미지 말고, 항상 근신하고 조심하라. … 술자리에서도 동네사람들에게 겸손하고 양보하여야하고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라고 하여 지나친 정도의 영업활동을 경계하고 항상 근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나아가 "토끼는 집근처의 풀을 먹지 않는다(兎子不吃窩邊草)"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무분별하게 장사하여 주변에 큰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재벌들이 새겨들어야할 금언(金言)입니다.
이상을 보면 현대의 경제문제나 고대의 경제문제가 결국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만 그 패러다임이 문제겠지요. 현대 경제의 패러다임은 재화의 생산과 운영에 집중되는 반면에 동양의 전통적인 경제사상에서는 항상 국가적인 안정과 민생의 안정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무분별하게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아편전쟁을 도발한다거나 오늘날같이 단기성 투기자금(hot money)의 활용이나 가만히 앉아서 세계의 돈을 다 긁어모으려는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에 대한 연구에 몰두한다거나 하는 짓은 애당초 연구대상도 되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동양 사회에서는 고래로 상인(商人)을 매우 천시했습니다. 상인에 대해서는 <한서(漢書)>에 "한 사람의 농부가 밭을 갈지 않으면 누군가 굶주리게 되고 한사람의 직녀(織女)가 길쌈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 추위를 당한다. 그러나 지금은 농업을 등지고 수공업과 상업만 쫓아서 식량을 소비하는 자가 많으니 이는 천하의 큰 도적(大賊)이다."라고 하였습니다.(<漢書>「食貨志」). 실제로 진(秦)나라 때에 상인들은 범죄자로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진시황(秦始皇)은 상인들을 변방지역의 군인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한나라의 고조 유방(劉邦)은 상인들이 비단옷과 같은 화려한 의복을 입을 수 없고 말이나 마차를 타지 못하게 했습니다(<漢書>「高帝紀」下). 물론 이러한 생각은 반드시 옳은 생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의 실물중심으로 경제가 운용되던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동양의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중농억상(重農抑商 : 농사를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함)을 역설했고 이 같은 기조는 청나라 때까지도 지속되지만, 명나라 때 대학자 왕양명(王陽明, 1472∼1529)이 "사대부(士大夫)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농민(農民)은 구양(具養)을, 공인(工人)은 이기(利器)를 상인(商人)은 통화(通貨)를 각자 자질과 능력에 맞도록 직업으로 삼아서 마음을 다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살리는데 유익한 데 있다.(王陽明, 「節庵方公墓表」)"라고 하여 경제 발전에 기여합니다. 이러한 사상은 후에 청나라 때 위원(魏源, 1794∼1857)의 '상업부국론(商業富國論)' 등으로 발전합니다.
▲ [그림③] 왼쪽이 맹자, 오른쪽이 정약용 |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선생은 맹자(孟子)의 「방벌론(放伐論)」을 발전시킨 「탕론(湯論)」을 통해 국민의 뜻(民意)을 배반하는 통치자는 언제라도 추방할 수 있다는 현대적 의미의 군주제(君主制)를 표방하고 잘못된 제도와 법률은 철저히 개혁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8) 다산은 토지의 균등한 분배 없이는 바르고 고른 세상은 올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손부익빈(損富益貧 : 부자의 것을 덜어서 가난한 사람에서 더해야 한다)를 주장하고 토지의 국유화나 공전(公田) 제도를 구체적 방법으로 제시합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복지제도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이 복지제도의 구현은 각종 제도적인 개혁에 달려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적으로 말한다면, 다산은 경제학의 최종 목적을 복지국가(welfare state)의 실현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본사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산의 핵심 사상인 인본주의(人本主義)는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애민(愛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민(民)은 각계 각 층에서 경쟁에서 밀려난 수많은 사회적 약자(Loser)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사상은 유교적 국가주의의 한계를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동양의 경제사상은 어느 특정인이나 특수집단에 의해 재화(財貨)나 부(富)가 집중되는 것을 철저히 반대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국가가 앞장 서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획일적이거나 절대적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양에서는 상하(上下), 빈부(貧富), 귀천(貴賤)이 있는 것은 자연의 질서이자 우주의 법칙이라고 봅니다.(9)
고래로 어느 정치가들이든지 위민(爲民)을 내세우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실천한 사람들은 극히 드문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이전에 일부에서 제기되었던 유교(儒敎) 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유교는 교육, 가족, 근면성, 도덕성 등을 토대로 하여 한 나라의 경제발전에 효과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예를 들면 화교 자본의 성공은 바로 근면성과 가족경영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변질되면, 이내 부패, 정경유착, 관료주의의 폐단이 극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유교 자본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한 것도 문제지요. 유학에서 말하는 사상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종교나 사상에서도 쉽게 접하는 종류이지 유교만의 독특한 개념이라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단순히 그 동안 중국의 지식인층이나 일부 한국인들에게서 유행했던 식으로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반박이나 반발의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지향점을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이 인본주의(人本主義)와 현대적 개념인 휴머니즘(Humanism)을 다시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패러다임을 구성해야만 합니다.
이 휴머니즘 또한 좌파와 우파 사이엔 많은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좌파나 우파가 머리를 맞대어 우리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existence)과 생활(life)의 개념을 정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좌우를 모두 망라하여 무엇이 궁극적으로 인류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를 따져서 패러다임을 다시 구성해야만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서양의 학문식으로 말하면, 좌체우용(左體右用)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휴머니즘과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고 참된 복지국가의 실현을 몸체로 삼고 현상분석 기법들은 우파 경제학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여 새로운 형태의 경제학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존의 경제학을 변증법적으로 해체하고 그 발전적 해체의 과정에서 보다 나은 원리와 패러다임을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를 위해 그 동안의 경제의 이론적인 패러다임을 비교 검토하면서 더 나은 세계 경제 패러다임의 구성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3)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학이라고 하면 자본주의(우파) 경제학 또는 부르조아 경제학(Bourgeoisie Economics)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경제 이론은 철저히 약육강식(弱肉强食), 효율성(效率性)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세계경제의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이론 체계를 먼저 살펴봅시다.
▲ [그림④] 자본주의 경제학 이론체계. |
[그림④]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본주의 경제학의 이론 체계는 가치 개념이 도외시된 이론체계로 매우 위험한 이론체계입니다.(10) 특히 세계 경제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인 분석이 없고 오로지 중심부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세계 경제를 지탱하는 패러다임으로서의 이론적 가치가 없는 이데올로기 체계입니다. 머리(가치)는 없고 몸통(현상분석)만 있는 형상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들은 경제 현상에 대한 분석 능력이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론체계는 발전적인 해체를 해야 하지만, 그 방법론은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마르크스 경제학 즉 사회주의(좌파) 경제학의 이론적 구조를 살펴봅시다.
▲[그림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이론체계. |
[그림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회주의 경제학은 마르크스의 <자본론(資本論 : Das Kapital)>과 <공산당 선언(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을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고 인간 소외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 개념의 튼튼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은 가치법칙,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계급투쟁이론 등입니다. 그리고 세계경제를 세계체제라는 큰 범주에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빈곤과 저개발 등의 문제들을 비교적 손쉽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들은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 현상을 "있는 그대로(as it is)"제대로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순수한 의미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경우에는 경제학만 초점을 맞추고 연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합니다. 머리(가치)만 있고 몸통(현상분석)이 없다고나 할까요?
무엇보다도 이들 우파나 좌파 경제학 이론들의 특징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 한쪽이 이익을 얻으면 한쪽은 손해)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유럽 중심의 경제사적 관점이나 경제체제에 경도되어있기 때문에 통합적인 시각이 부족하고 그 어느 쪽도 세계경제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쌍방이 약탈적인 이론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투쟁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머리 없는 맹수(猛獸)와 같이 날뛰고 있는 듯합니다. 그 안타까운 모습이 마치 형천(刑天)을 연상시킵니다.(11)
그래서 앞으로 세계평화를 달성하고 세계적인 빈곤, 저개발 들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세계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과 이론체계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 [그림⑥] 새로운 경제학 이론체계. |
제가 제시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은 [그림⑥]과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제가 휴머니즘(Humanism)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휴머니즘도 구체적인 의미를 찾아가기에는 논쟁을 거쳐야 합니다. 설령 공통성을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끝없는 이론적인 투쟁이 지속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삶은 '인간'이 그 주체입니다. 따라서 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여 우리의 삶을 개선해가야 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가장 주요한 과제입니다. 인간이 쓰고 있는 가치(value), 진보(progress), 발전(development)이라는 개념들은 모두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도출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고나면서부터 차이(difference)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차이가 끝없이 차별(discrimination)을 낳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차별들을 제도적으로 완화시키는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차별이 심화되면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14세기말에서 16세기 초에 발생했던 유럽의 농민전쟁(農民戰爭) 당시의 사정을 보면, 차별이라는 것이 피차별대상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엄청난 분노를 주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한 무리의 농민들이 기사를 그 가족의 눈앞에서 죽여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굽는 장면도 있다. 그리고 열 명 내지 열 두 명의 농민이 그의 아내를 집단으로 강간하고 남편의 살을 강제로 먹이고 나서 그녀와 자식들을 살해하였다. 반란에 가담한 농민들은 결국 더욱 잔인한 방법으로 귀족들에게 살해되었다."(12)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사회적 차별이 심화되면 당연히 치를 수밖에 없는 사회적 댓가(social cost)들입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얼마나 많은 머슴들이 그 주인들을 고발하고 살해했습니까? 이 같이 차별이 극대화되면, 그 사회체계를 그나마도 유지해주던 사회적 기구들이 제 역할을 못하므로 분노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켜 보다 더 가속화된 차별을 양산하게 됩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 나타나는 좌우 대립도 그 연원들을 더듬어 가면 60년도 더 지난 빛바랜 한국전쟁(1950)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생존의 기로에 선 대다수 피차별 대상 사람들은 원상회복을 요구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의 반복이 인간사회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잘못된 현실을 그대로 참고 견디는 것도 문제입니다. 미국의 정치사회학자 브링턴 무어( Barrington Moore Jr., 1913∼2005)는 프랑스 대혁명기에 정부에 의한 무력탄압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추정해보면 약 35,000명에서 40,000명에 이를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구제도의 질곡 속에서 모순된 사회경제적 구조에 의한 사망률은 아마도 혁명에 따른 피해보다 높지는 않더라도(그러한 방식으로 계속 유지되었다면) 최소한 그와 동등한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즉 폭력의 사용은 그 대가와 이득을 환산할 때 위험한 것이나, 억압적 현상을 참는 것 또한 위험하다는 것을 그는 보이려 한 것이죠.(13)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중남미 국가들 중에 18세기와 19세기 동안에 내란을 겪지 않은 유일한 나라는 파라과이(Paraguay)였습니다. 이 안정의 대가는 바로 독재정치였습니다. 독재자 중의 하나인 프란시스코 로페즈(Francisco Solano López, 1827~1870)는 국민들을 아르헨티나, 브라질 그리고 우루과이와의 전장으로 내몰았고, 그 결과 파라과이 인구는 1865년 52.5만명에서 1871년 22.1만명으로 격감했으며, 이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잔인한 대파괴에서 살아남은 남자들은 단지 2.8만 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경직된 사회구조가 어떠한 내란이 가져올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커다란 폭력을 국민에게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14)
인간과 자연이 대립적이지 않고 인간사회가 무차별성의 확대 및 생존과 생활공간의 확대방향으로 전개되어가는 것을 '발전(development)' 혹은 '진보(progress)'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그러한 방향의 행위를 하게 될 때, 그 행위는 '가치(value)'라는 새로운 개념을 가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 혹은 사회가 전체 인간사회의 무차별성과 생존(existence) 및 생활공간(life space)을 확대시킨다면, 그 행위는 '가치로운 것'이 된다는 말이지요.
여기서 제시되고 있는 생존(existence)과 생활(life)에 대한 개념을 집고 넘어갑시다.
역설과 낭만의 사상가 루소(Rousseau, 1712~1778)는 "우리는 두 번 태어나는 셈이다. 한 번은 생존하기 위해 태어나고, 또 한 번은 생활하기 위해서 태어난다. 즉 한 번은 남자나 여자로서 태어나 고, 또 한 번은 인간으로서 태어나는 것이다.(<에밀>제4부)"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여러 면에서 우리가 가야할 방향들을 제시합니다.
인간의 신체는 일정한 내부 환경 즉 혈당의 농도, 혈액 속의 산소량, 세포속의 수분의 균형 등 많은 생리적 요소들의 일정한 한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생존의 필수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생존의 필수조건을 확보하기 위하여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ship)를 맺으면서 살아가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외부적(사회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향들 중에서 자기 안정성(stability)을 강화시키는 것들을 선택하게 됩니다.
대개의 경우 개별인간의 자기 안정성 확보는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나 도덕(morality)과는 역방향이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social problem)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은 근원적으로 인간이 생득적으로 스스로가 그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작용들(가령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존재적인 기생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정된 재화에 대하여 서로가 자기 안정성의 확보를 위해 대립경쟁하게 되는 것이죠.
쉽게 말해서 한 인간이 적어도 다음 주까지 만이라도 살려고 하면, 최하 수준이라도 의식주가 공급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만약 그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안정성은 하락하고, 그 문제가 양적으로 확대된다면 그것은 사회전체의 안정성(stability)을 하락시킵니다. 마르크스의 사회적 존재의 사회적 의식 결정성이라든가 심화된 차별상태 속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계급투쟁은 생존(existence) 개념을 토대로 성립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모두 다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또 다른 본질적 요소 즉 생활(life)에의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까뮈의 말을 들어 보시죠.
"신들이 시지프스에게 가한 형벌은 쉴 사이 없이 바위를 굴리어 어느 산정에까지 운반하는 것이지만, 일단 산꼭대기에 도착하면 바위는 바위 자체의 무게 때문에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다. 무익하고 희망이 없는 노동만큼 무서운 형벌이 없다고 신이 생각한 것은 확실히 당연한 일이었다."(알베르 까뮈,<시지프스 신화>)
이와 같이 인간에게 있어서 그 생존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될 경우에는, 생리적인 욕구 말고도 내적 요인과 더불어 경험이나 학습과 같은 사회적 요인이 결합하여 새로운 욕구가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이 욕구들은 연구자에 따라 매우 다양하겠지만 그 큰 흐름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가령 아브라함 매슬로(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의 예를 든다면, ①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 ② 안전에의 욕구(Safety Needs) ③ 소속감, 사랑에의 욕구(Belongingness and Love Needs) ④ 자존심의 욕구(Esteem Needs) ⑤ 자기실현의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 등으로 발전하다고 합니다.(15) 인간은 이 욕구의 목표에 대한 접근이 막히거나 시도가 좌절될 때는 개별인간 사이에서 갈등과 긴장이 발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불안, 퇴행, 거부, 억압, 은폐, 합리화 등이 나타나는 것이죠.
따라서 인간의 생존 그 자체라고 하는 단순한 생리적인 단계를 넘어서 존재하는 새로운 차원의 개념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생활(life)에의 욕구입니다. 즉 앞에서 제시한 생물학적이고 생리적인 욕구를 생존(existence)의 차원이라고 한다면 후반의 욕구들은 생활의 차원이고, 이러한 생활의 욕구도 그 충족 과정에서 생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이 생존과 생활 개념은 우리가 휴머니즘(Humanism)의 본질을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인간과 노동, 가치론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경제학 패러다임에서는 동양과 이슬람권역의 경제체제와 제도 및 사상을 보다 긴밀하게 연구해야 합니다. 서유럽의 패러다임에서는 이슬람권역이 무시하고 과소평가되어 있지만 서유럽에 바로 붙어있으면서 유럽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체제에 그 만큼 시달린 셈치고는 사회가 비교적 안정되어있다는 점들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분명 종교(이슬람교)의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서유럽과는 다르다고 치부하여 문명의 충돌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가진 특성들이 인류의 미래와 세계의 평화에 유익할 수 있는 지를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 동안 경제학이나 경영학 등 대부분의 사회과학은 이를 너무 무시했습니다. 모르면서 그저 차별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유럽 학문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유럽이 가는 방향이 최고라는 것이죠.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유럽인들은 오직 그들 자신의 부(wealth)와 행복을 위해 대부분의 문명들을 파괴하고 세계 자원을 탕진하여 세계를 빈곤의 늪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들의 경제 자원들을 착취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안달일 것입니다. 이들에게 세계의 패러다임을 맡긴다는 것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자원 탕진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간단히 말하면 다소 엉뚱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세계 평화는 미국이나 여러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석유를 덜 소비하는 것으로부터 달성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미국은 중소도시를 개발하여 집중적으로 인구를 늘리고 대중교통을 활성화해서 차량 사용을 줄여야 합니다.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자랑삼아 보여주는 한밤의 위성사진에 미국과 유럽, 한국, 일본의 불야성(不夜城) 그림은 아찔한 자원 탕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현재의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더 방치하게 되면 인류는 자원 고갈로 인해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 봉착할 지도 모릅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현대 자본주의는 '당나귀 홍당무' 현상이 이미 심각합니다. 즉 나무 막대에 끈을 달고 그 끈에 홍당무를 메어단 후 당나귀를 타면 당나귀는 그 홍당무를 먹기 위해서 질주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지쳐서 쓰러지게 되지요. 그러면 사람도 다치고 당나귀도 죽게 됩니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마치 끝없는 식욕으로 결국 자기 자신까지 먹어버리는 에리식톤(Erysichthon)의 형상과 같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새로운 경제학 이론 체계에서 저는 경제의 현상분석에 앞서서 저개발 국가에 대한 개발론을 먼저 고찰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인류의 목표가 진정으로 세계평화(World Peace)와 인류의 행복(Happiness)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보다도 세계의 기아와 빈곤을 퇴치하는데 학문이 앞장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약육강식의 경연장을 만들고서 무슨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이 달성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현상 분석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 기나긴 패러다임의 논의를 통해서 제시했던 상품과 화폐에 대한 분석들을 바탕으로 수요와 공급의 시장이론과 생산 및 기업의 새로운 모델에 대한 이론적 체계를 구성해야합니다. 즉 변화무쌍한 상품이론과 화폐 이론을 기반으로 하여 기존의 수요이론(demand theory)과 공급이론(supply theory)의 타당한 원리들을 접합하여 시장이론을 현상분석의 토대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자본주의(부르조아) 경제학에서는 수요이론과 공급이론으로 바로 경제학이 시작되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없이 성립된 그 어떤 이론도 제구실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주장하는 탁월한 현상 분석력 역시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그 효용성이 상실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에 있어서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시장이 항시 자기 조절적 기능을 다 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입니다. 그 상태는 오히려 역사적으로 특수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우아함을 상징하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존재할 수 없는 특수한 가정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래쉬와 우라이(Scott Lash & John Urry)의 지적처럼 "사회란 위에서, 아래에서 또 내부에서 변형되고 있다. 조직화된 자본주의, 계급, 산업, 도시들, 국가, 민족, 모든 견고한 것들이, 세계조차도 공중으로 분해되고 있다."고 하는 상황입니다.
나아가 저는 경제학이 제구실을 하려면, 미래의 패러다임에 대한 연구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디지털 시대 이후에는 기술의 변화가 극심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은 단순히 현재 상황만 분석하고 해결하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인간의 소외론(疏外論)에서 출발한 마르크스의 경제학이 자본주의 경제학의 성과에도 못 미친 것은 마르크스의 제자들의 미래에 대한 충분한 이론적 대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구체적으로 보면, 세계 무역이 급팽창하고 국제금융이 확산되는 상황을 노동가치론을 기반으로 하여 이론적으로 해명하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4) 위기에서 기회로
지금 세계 경제는 다시 거대한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불과 70년 전이었다면 큰 전쟁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경제 전문가는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큰 경제 위기는 대공황이며, 그 후 최악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정말 재수 없는 세대"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1930년대의 위기처럼 '새 패러다임 없이는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안타까운 것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우리는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theoria)과 새로운 대안의 모색이 없이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니 케인지언(Keynsian)이니 하면서 그 많은 세월들을 허송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케인즈와 그를 이은 솔트워터(Saltwater) 학파나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그를 계승한 프레시워터(Freshwater) 학파 모두 세계금융위기를 맞아 확인되거나 반박되기는커녕 현실과 무관한 공허한 이론들임이 밝혀졌을 뿐입니다.(16)
우리가 지금까지 본대로 허술한 가치이론과 단순하고 상식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이 구축되어있다는 것은 희극이 아니라 비극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는 머리가 텅 빈 마네킹과 같이 정처도 없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주가 분석에 골몰하면서 일생을 보내거나 말도 안 되는 수리경제학으로 평생을 보내는 경제학자들이나, 타인의 돈을 호시탐탐 거들내려는 월스트리트의 천재들과 금융공학의 대가들이 이제는 동양의 경제제민의 정신을 공부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학은 이제 돈벌이나 돈세탁, 탈세, 투기 등의 학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경제학은 공공의 선을 위한 학문으로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17)
현대 사회는 학문 자체도 위기 상황입니다. 특히 인문 · 사회과학 자체의 패러다임의 위기가 심각하게 도래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경제학은 열심히 그래프만 그리고 있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자체를 제대로 성찰하고 있지 못합니다.
정보통신 혁명과 인터넷 혁명으로 학문은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재화의 확산으로 경제학은 다시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아는 미시 경제 이론은 하나의 작은 부분의 일반론에 불구하기 때문에 하나의 분석 기법이나 기술로 생각해야지 그것을 미래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경제가 운용되어왔습니까? 황당한 왈라스적인 일반균형 이론(Walras' General Equilibrium)으로 사회를 설명하려고 합니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은 나라가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과신으로 범람했던 자유주의,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인터넷은 기술적으로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지식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대부분 지식들을 포괄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식이 이미 인터넷에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 안에 지식을 가두는 식의 공부는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모든 창조는 과거의 지식이 고농도로 농축이 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아이슈타인이 뉴턴 역학을 몰랐더라면 상대성 원리가 나왔을 리가 없었겠죠?
그렇지만 디지털 시대를 이전 시대를 기반으로 한 사고방식이나 패러다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때로 위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현재의 패러다임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래도 적용 가능한 패러다임을 구성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큰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항구적으로 살아있는 표현양식의 구성 조건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즉 항구적으로 살아있는 표현양식은 ① 존재양식의 변화를 항상 변수(variable)로서 구성할 수 있는 시스템적 구조를 가지고, ② 현재의 문제해결 능력의 기능이 탁월하면서도 현재에 지나치게 함몰된 요소들을 배제해야 하고, ③ 인간의 삶과 인식체계를 기준으로 형성되어야 하며, ④ 표현양식을 구성하는 기본 가정들이 유연(flexible)하면서도 구성원들의 충성도도 높아야 하며 ⑤ 과거ㆍ현재ㆍ미래를 관통해낼 수 있는 일반적인 경향성을 잘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인식체계를 바탕으로 하되, 변화 그자체가 표현양식의 일부로 수용이 되어 현재의 변화가 패러다임에 반영되는 구조를 가지면서도 보편적인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표현양식은 없다할지라도 가능한 한 많은 조건들이 충족되도록 패러다임은 설계되어야 합니다. 컴퓨터 공학 등을 이용하면 일정 부분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매우 강한 존재이기 때문에 생득적으로 한 가지 방식만으로 세상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하나 이상의 패러다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패러다임의 구속에서 해방될 수 있는 사람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갈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 필자 주석
1. Nassau Senior, Three Lectures on the rale of wages. (NY, Augustus M.Kelly, 1966), An Outline of Science of Political Economy.
2. 가장 간단한 예로 1990년대 후반 아시아에 밀어닥친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1년 전 세계은행은 시장자유주의의 모범사례로 '아시아 경제의 기적'에 대한 찬사를 보냈으나 결국 아시아 국가들은 거대한 금융위기를 맞았다. 이것은 세계화가 이 시대의 트렌드로서 불가피하면서도 유익하다는 것을 중심부 경제가 프로파겐다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외환거래를 철저히 규제한 말레이시아만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John Quiggin <경제학의 5가지 유령들(Zombi Economics)>(21세기 북스, 2012) 77쪽. 이들 아시아 국가들은 수십년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였고 각종 국제 금융기관과 개발전문가의 사랑을 받았던 곳인데 이 지역의 경제위기는 러시아로, 브라질로 퍼지더니 LTCM(Long Term Capital Management) 까지도 붕괴시키고 결국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고 가는 전초가 되었다.
3. 李玠 <老百姓的 知慧>211쪽.
4. 심백강 <동양고전에 있어서의 경제사상><정신문화연구>통권 제36호(1989)
5. 소준섭 <사마천 경제학>(서해문집, 2011) 24쪽, 43쪽.
6. 소준섭, 앞의 책, 53쪽.
7. 소준섭, 앞의 책, 63쪽.
8. 다산의 <경세유표>에 나타난 '신아구방(新我舊邦)'은 "오래된 나라를 새 나라로 바꾸기 위해서는 토지제도, 과거제도, 세금제도, 군제(軍制), 신분제도, 행정제도, 관제(官制)까지 총체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제도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9. 구체적인 내용은 심백강 <동양고전에 있어서의 경제사상><정신문화연구>통권 제36호(1989)
10. 원래 거시경제학은 케인즈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즉 케인즈의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 출판되기 전까지의 경제이론은 현재의 미시경제학으로 불리는 것이 전부였다. 다만 미시경제학은 오래된 이론이지만 현실성이 떨어지고 거시경제학은 연원은 짧지만 현실 설명력은 뛰어나다는 특성이 있다.
11. 형천(刑天, Hsing-t'ien)은 음악에 조예가 깊어 염제 옆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중국 고대전설에 등장하는 거인이다. 이 거인은 원래 이름이 없는데 '형천(刑天)'이란 머리를 베인 자라는 뜻으로 황제(黃帝)와 대결하다가 칼에 맞고 목이 떨어지자 젖꼭지를 눈으로, 배꼽을 입으로 삼아 끝까지 싸웠던 전신(戰神)이다.
12. Gras, A History of Agriculture in Europe (New York, Appleton, 1940) p.108.
13. B. Moore jr., Social Origins of Dictatorship & Democracy (Boston : Becon Press, 1966). pp.103∼104.
14. Hubert Herring, A History of Latin America (New York : Alfred A Knopt, 1957) pp.674∼675.
15. Abraham Maslow, Motivation and Personality(New York : Harper & Low, 1954) 및 Abraham Maslow,<욕구의 위계(hierarchy of needs theory)>(1967).
16. John Quiggin<경제학의 5가지 유령들(Zombi Economics)>(21세기 북스, 2012) 113∼115쪽.
17. 1970년대 이후 금융 부문은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거둬들이는 총수익에서 금융서비스 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대에는 10%에 불과했지만, 2007년에는 40%까지 치솟았다. John Quiggin, 앞의 책,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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