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행정의 경계선으로 여행 목적지를 추천하기란 쉽지 않은 곳입니다. 360만명이 산다는 도시의 규모도 그렇거니와 부산이 가진 다층적인 이미지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갈치시장으로 대표되는 항도, 해운대의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마천루, 달빛이 운치있는 달맞이고개, 6·25전쟁 피란시절의 애환이 담긴 영도다리와 남포동…. 거친 바다를 끼고 도는 빼어난 해안 도보 코스부터 주택가의 작은 미술관까지 부산의 명소는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부산이 비춰내는 스펙트럼이 이처럼 다양하니 부산의 여정을 한 두름으로 모두 꿸 재주는 없습니다. 부산의 역사라 하면 대개 강화도 조약으로 인한 부산 개항 무렵까지만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산은 만주행 대량이주의 시발지이기도 했고, 화교들의 정착지였으며 최대의 일본인 거류민 지역이었습니다. 또 해방 직후에는 귀환동포들이 몰려들었고, 6·25전쟁 때는 임시수도이자 피란민의 거주지였습니다. 워낙 드라마틱한 근대의 역사를 건너온 도시라서일까요. 근대 이전의 부산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부산의 오래된 곳들을 찾아나선 까닭이 이랬습니다. 부산의 오래된 곳들. 먼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산성이라는 금정산성입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 남해안과 낙동강 하구를 통해 침입해 오는 왜구들을 막기 위해 지은 성인데 그 길이만 무려 17㎞에 달합니다. 성곽에 오르면 해운대의 바다, 구포대교와 낙동강, 너른 김해평야, 푸른 물빛의 회동지까지, 부산이 가졌거나 두른 것들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습니다. 북문 아래 쪽으로 내려서면 동래입니다. 지금이야 부산의 16개 구군 중 하나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행정과 국방의 중심지였던 곳. 일제강점기 부산부(府)가 설치될 때까지만 해도 ‘동래’는 바로 ‘부산’을 뜻했다는군요. 더불어 지금은 마천루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해운대도 부산의 역사를 짚어볼 수 있는 곳입니다. 신라말 최치원이 마흔셋의 나이에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운명을 예감하고 가야산으로 들어가면서 들렀던 곳. 해운(海雲)이란 이름도 최치원의 호에서 따온 것입니다. 조선 영조 때 겸재 정선이 인근 청하현감으로 재직하던 중 태종대, 몰운대, 영가대와 함께 해운대를 그림으로 담아서 ‘교남명승첩’을 펴내기도 했지요. 해운대 일대의 수많은 세련된 레스토랑과 낭만적인 카페들 중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을 골라보았습니다. 여기다가 부산 사람들이 해운대나 광안리해수욕장을 제쳐두고 ‘진짜 바다’라고 일컫는 송정해수욕장을 거쳐서 멸치잡이 어선의 대변항을 들르고 내친 김에 월전, 죽성까지 올라갔습니다. 그곳의 해안에는 미역을 말리는 한적한 어촌마을의 풍광과 함께 비록 자그마하지만 따스한 소규모 문화공간들이 곳곳에 비밀처럼 숨어있었습니다. 부산이 아니고서는 만날 수 없는 풍경이 거기 있었습니다.
# 부산에 갔다면 꼭 가봐야 하는 곳… 금정산성 금정산성은 부산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명소로 꼽히는 곳이지만, 외지인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진 곳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객들의 입장에서야 부산까지 와서 바다가 아니라 산을 찾는 것부터가 낯설기 때문이겠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금정산성이야말로 부산에 갔다면 꼭 찾아가야 할 곳이다. 자갈치시장을 놓친대도, 해운대를 못 보았대도 금정산성만큼은 꼭 올라봐야 한다는 얘기다. 낙동강과 수영강의 물길을 나누는 금정산은 해발고도가 800m를 겨우 넘을 정도지만 일찍이 부산의 진산으로 꼽혀왔다. 서울사람들에게 북한산이 그렇듯 부산사람들에게 금정산은 단순한 산의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조선시대를 거슬러 신라 때까지 올라가는 산성의 묵은 시간 때문이기도 하겠고, 빼어난 산세와 압권인 조망 때문이기도 하겠다. 산성에 올라서면 구포 쪽 낙동강의 S자 물길과 그 너머의 드넓은 김해평야, 해운대의 마천루와 바다, 회동지의 푸른 물빛이 다 굽어보인다. 바다와 강, 호수와 평야를 한 자리에서 다 볼 수 있는 자리가 여기 말고 또 있을까 싶다. 게다가 산자락 아래는 유서깊은 허다한 절집들까지 거느리고 있으니 해발 고도는 비록 모자라지만, 고산준령이 가져야 할 풍모와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금정산성은 총 연장거리가 17㎞이고 성 안의 면적은 8.2㎢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큰 성이다. 숫자만으로 보자면 그저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실제로 올라보면 그 거대한 성곽의 규모에 입이 다 딱 벌어진다. 구불구불 산자락을 타넘고 또 넘어도 성벽의 끝은 아스라하다. 성이 어찌나 큰지 세우는 것도 세우는 것이지만, 지어놓고도 웬만한 병력으로는 성을 지킬 엄두도 내지 못했을 듯하다. 산성의 수비는 동래부사가 맡았다는데 유사시에 동래는 물론이고 양산, 기장의 군인과 사찰의 승려들을 차출했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그 정도로는 역부족이지 싶다. # 북문에서 동문까지… 금정산성 트레킹 산성을 따라가는 트레킹은 능선을 따라 나있는 동서남북의 4곳 문(門)은 물론이고 문 사이 사이의 봉우리나 망루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 그중 추천할 만한 코스가 바로 북문에서 시작해서 동문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이 구간이 금정산성 트레킹의 단연 백미다. 출발지점인 북문까지는 범어사 쪽에서 들어도 좋겠고, 범어사 반대편 자락의 산성마을쪽에서 올라도 좋겠다. 양쪽 모두 북문까지의 거리는 비슷하지만 범어사 쪽에서 오르는 길은 거친 바위 계단 길인 대신 범어사를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산성마을쪽 길은 산장까지 차량이 오르내리기도 하는 유순한 길이지만 지루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어찌됐던 북문에서 출발해 단숨에 원효봉까지 차고 오르면 여기서부터 금정산성의 높이가 보여주는 최고의 전망과 만나게 된다. 의상봉과 무명바위쪽으로 구불구불 산성이 올라붙고 그 뒤쪽으로 3망루쪽의 나비바위가 아스라하다. 구불거리는 산성을 따라 의상봉에 오르면 다시 제법 너른 초지가 산중 정원처럼 펼쳐지고 부채바위의 기암이 눈앞에 가득 펼쳐진다. 한발 한발 고갯마루를 오르거나 굽이를 돌 때마다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다. 일정이 여유롭고 체력만 뒷받침된다면 산성을 한바퀴 다 도는 8시간 남짓의 트레킹을 완주하는 것이 좋겠지만, 북문에서 동문까지의 하이라이트 구간만 돌아본다면 동문쪽에서 호국사를 거쳐 금강공원쪽으로 내려서는 편이 좋겠다. 지금 금강공원 일대는 팝콘 튀듯 타탁타탁 튀어오른 벚꽃들로 온통 환하다. 게다가 온천1동의 이른바 ‘스파윤슬길’에는 두 곳의 무료족탕 시설도 있다. 뜨거운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잠깐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동래를 들렀다면 일제강점기이던 1940년대 일본인 부호의 별장이었다는 ‘동래별장’ 구경을 놓치지 말자. 일본 전통 양식에다 절묘하게 한옥의 느낌이 결합된 동래별장은 당당한 규모에다 빼어난 조경을 갖추고 있다. 해방 이후 동래별장은 군정사무를 관장하던 군정청이 됐다가 6·25전쟁 직후에 민간에 넘겨져 온천, 요리점 등으로 사용됐다. 지금은 결혼식이나 회갑연, 돌잔치 등을 하거나 궁중한정식을 내는 식당이지만, 이곳 동래별장은 한때 부산지역의 정·재계 거물들이 모이는 최고의 요정으로 꼽혔다. 산성마을에서 북문을 거쳐 동문을 돌아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도 고려해봄직한 것은 단 한 가지 트레킹 이후에 맛보는 ‘산성막걸리’ 때문이다. 산성막걸리의 역사는 조선시대 금정산성 축성 당시 주민들이 군졸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막걸리를 빚으면서 시작됐다. 혼분식 장려운동을 펼치며 쌀막걸리 제조를 엄격하게 단속하던 시절이던 197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성막걸리만은 지역특산물로 지정해 예외로 인정해줬다. 지금이야 제한없이 내다팔고 있지만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산성막걸리의 외부출하가 금지돼 산성마을 안에서만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는 조건도 유명세에 한몫을 했다. 탄산이 가미되지 않아서인지 막걸리는 알싸한 맛 대신 혀끝에 부드럽게 감긴다.
# 새롭게 떠오르는 해운대의 명소들 부산의 해운대는 이른바 첨단의 유행과 트렌드가 활보하는 ‘핫 스팟’이다. 치솟은 마천루만큼이나 유행의 속도는 빠르다. 새로운 개념의 요리를 앞세운 레스토랑과 빼어난 조망의 카페가 하루가 다르게 문을 열고 또 닫는다. 유서깊은 맛집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로라하는 맛집들도 유행을 따라 돌고 돈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또 다르다. 봄날 붉은 동백이 뚝뚝 떨어지는 해운대의 동백섬이나 밤 벚꽃이 환하게 핀 달맞이고개야 익히 유명한 명소니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알 일. 그렇다면 새롭게 떠오르는 해운대의 명소는 어디 있을까. 해운대의 현지인들에게 물어물어 ‘놓치고 가면 아쉬울 곳들’을 꼽아봤다. 첫번째로 단연 손꼽는 곳은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의 야외스파 ‘씨메르’다. 기왕에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입지에다 해송이 우거진 공간으로 명성이 높았던 노천온천을 4개월여 동안 대대적으로 손을 봐서 지난 6일 새로 문을 열었다. 노천탕에 앉으면 마치 동남아 휴양지의 느낌처럼 해운대의 바다와 온천이 연결되는 듯한 이른바 ‘인피니티풀’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바도 있고, 건식 사우나도 있고,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다. ‘씨메르’에서만큼은 해운대가 여름이 아니라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겠다. 투숙객들에게 개방된다는 것이 좀 아쉬울 따름이지만 오는 5월까지 투숙객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두번째와 세번째로 꼽힌 명소는 해운대 달맞이고개에서 일본풍 도시락 메뉴를 내는 ‘무겐’(051-747-6843)과 카페 ‘빈’(051-746-8853)이었다. 두 곳 모두 음식과 커피 맛도 좋지만 테라스에서의 바다전망이 빼어난 곳이다. 주상복합 팔레드시즈 건물 내의 ‘이대명과’(051-747-3402)도 부산 사람들이 꼽아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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