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들이여 잠 좀 자라,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
OECD 국가들 중 한국의 노동시간이 가장 길다. 그러나 생산성은 꼴찌다. 도대체 원인이 뭘까. 한국은 왜 아직도 선진국 클럽에 가입하지 못할까.
삼성을 비롯한 한국의 대표적 기업들은 ‘창조경영’을 외치고,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에서는 한결같이 ‘창의시정’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창조적 행위를 위한 한국사회의 액션플랜은 일사불란 그 자체다. 그저 ‘열씨미 하자’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출근시간을 앞당기며 모든 공무원에게 ‘아침형 인간’이 되라 한다. 아, 정말 이건 아니다.
독일에서 13년을 산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라인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을 비교하는 일이다. 이건 한국인에 대한 정말 참을 수 없는 모독이다. 독일이 어떤 나라인가.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일으킨 나라다. 잠수함을 만들고, 탱크, 비행기를 만들던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나라다. 비록 전쟁에 패했지만, 그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한국은 어떠했는가. 보릿고개도 스스로 못 넘던 민족이다. 해외 원조로 살아가다가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치렀다. 그 전쟁도 다 남의 나라에서 빌린 무기로 했다. 그 후에도 한동안 굶주린 배 움켜잡고 나무껍질이나 벗겨 먹어야 했던 민족이다.
이런 대한민국과 독일은 그 출발점부터가 다르다. 물론 이제 한국과 독일은 많은 영역에서 대등하다. 한 급 아래로 내려보던 독일이 이제 내놓고 한국을 시샘한다. 그럼에도 ‘토끼와 거북이 달리기’ 수준의 게임인데 누가 감히 두 나라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역사상 대한민국 같은 경우는 없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우뚝 선 나라는 없다. 충분히 자랑스럽다. 하지만 그건 거기까지다. 빨리 흥한 나라일수록 빨리 망한다. 정말이다. 세계사 책의 연보만 살펴봐도 이는 분명하다.
근면성실한 사람이 불쌍하다
왜 그럴까. 한 시대를 발전시킨 동력은 그 다음 시대 발전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역사의 변증법’이라고 했다. 근대성이 역사적 발전을 가능케 했으나, 새로운 시대정신에 미치지 못한 유럽의 계몽주의는 결국 나치즘이라는 야만의 형태로 몰락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20세기 후반, 역사상 유례없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능케 한 동력은 다음 시대의 발목을 잡게 되어 있다. 산업사회의 압축성장을 가능케 한 근면, 성실이라는 가치가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를 가로막는다는 이야기다. 근면, 성실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참고 인내하는 근면, 성실은 아무 소용없다는 뜻이다. 참고 인내하는 방식으로는 아무도 창조적이 될 수 없다.
심리학적으로 재미와 창의성은 동의어다. 한국사회가 창의적이지 못한 이유는 사는 게 재미있는 사람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정치 문제가 아니다. 모여 앉으면 모두 정치 이야기뿐이다. 그 내용도 더 나은 사회의 신념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저 정치인들에 대한 욕뿐이다. 우리는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 그 한심한 정치인들을 모두 우리가 뽑았다는 사실이다. 이 과도한 정치적 관심의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내 일상의 삶이 재미없어서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지 아무도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에게 정치 이야기는 아주 중요한 여가 소비행동이 된다.
행복하면 죄의식을 느끼고, 재미있으면 불안해지는 각 개인이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다. 휴일 잠시 낮잠만 자고 일어나도 뭔가 찝찝하다. ‘이렇게 쉬어도 되는 건가’ 싶은 것이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 아이들과 함께 나선 놀이터에서도 손으로는 연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인터넷도 접속되는 신형 휴대전화로 업무 관련 기사검색까지 한다. 아, 이것도 정말 아니다.
21세기 가장 불쌍한 사람은 근면성실하기만 한 사람이다. 왜? 근면성실해서 되는 일들은 이제 기계가 다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구조조정할 때, 가장 먼저 정리되는 부서는 근면성실하기만 한 부서다. 그런 종류의 일들은 이제 아웃소싱으로 해결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우리가 1960, 70년대에 중동으로 달러를 벌기 위해 나갔던 것처럼, 우리보다 훨씬 근면성실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기업의 CEO들은 직원들에게 여전히 근면성실하라고 한다. 고속성장의 산업화 시대에 성공을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인내가 쓰면 열매도 쓰다
21세기를 20세기적으로 경영하는 한국식 ‘언밸런스’의 압권은 ‘아침형 인간’이다. 남보다 먼저 일어나면 성공한다는 이야기에 이 땅의 사내들은 흥분해 다시 허리띠를 부여잡는다. ‘그래. 우리는 새벽종이 울리면 너도 나도 일어났어. 맞아. 그래야만 해.’ 이제까지 참고 인내하는 삶을 살아온 사내들은 오래된 ‘새벽의 추억’을 되살린다. 성공은 하고 싶은데, 아는 방식이라고는 근면성실한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방식이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방식으로는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그 방식이 옳다면 이미 성공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아침형 인간’이라는, 새마을운동 혹은 천리마운동의 재림을 주장하는 어설픈 일본어 번역책이 60만부가 팔려나가는 동안,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내 역작은 고작 2만부 팔렸다.
사는 게 재미있으면, 일하는 게 재미있으면 근면성실하지 말라고 해도 근면성실해진다. 순서를 바꾸라는 이야기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인내가 쓰면, 열매도 쓰다. 도대체 열매의 단맛을 봤어야 그 단맛을 즐길 것 아닌가. 21세기엔,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하다. 지금 사는 게 재미있는 사람이 나중에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 21세기의 핵심가치는 ‘재미’다. 노동기반사회의 핵심원리가 근면, 성실이라면 지식기반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원리는 재미다. 창의적 지식은 재미있을 때만 생겨난다.
요즘 나는 ‘창조경영’에 대한 기업의 강연요청으로 정말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족히 6개월 강연 일정은 앞서 채워지는 것 같다. 좀 멀다 싶은 곳은 헬기까지 타고 간다. 창의적이 되려면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잘 놀아야 한다고 강의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놀 시간이 전혀 없는 지경이 됐다. 아, 이 또한 정말 아니다.
이 굴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이 연재를 시작한다. 내 생각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글을 쓰는 일이다. ‘신동아’는 이런 문제를 공유하기에 아주 훌륭한 매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쓰기가 내겐 매우 행복한 놀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원고를 쓰고 나면 수십번도 더 읽는다. 그리고 매번 스스로 감동한다. ‘아, 정말 이 글을 내가 썼단 말인가’ 하면서. 글의 객관적 평가와는 아무 상관없다. 그저 이렇게 스스로 즐거울 따름이다. 삶이 괴로울 땐, 근거 없이 뻔뻔한 나르시시즘이 우릴 구원하기도 한다.
연재할 내용은 창조경영의 문화심리학적 토대에 관한 것이다. 이를 나는 ‘재미학(Funology)’이라고 이름 붙인다. 재미의 문화심리학적 분석은 네 가지 기본 개념으로 구성된다. 이야기(storytelling), 관점(perspective), 정서(affect), 의식(ritual). 우리가 재미를 느끼는 문화심리학적 메커니즘이다. 줄여서 재미의 ‘SPAR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문화심리학적 개념들이 창조적 사고와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가능한 한 쉽게 서술하도록 애써보겠다. 나는 스스로는 이해하고 썼는가 싶은, 정말 난해하기 그지없는 글을 쓰는 교수들을 아주 경멸한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세기 내내 지속되던, 그 잔인하던 이데올로기 투쟁이 끝났음을 알린 독일 통일이라는 엄청난 사건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하고 싶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11월9일 밤, 서베를린으로 넘어온 동독인들이 한결같이 줄지어 만나려 한 한국인이 한 명 있었다. 이에 대해 한국의 국정원도 전혀 아는 바 없고, 통일부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사실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동독 주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베를린 슈판다우 외곽지역으로 몰려갔다. 그곳에는 그해 여름 동독을 탈출한 그들의 가족들이 모여 살던 난민수용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민수용소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저녁 7시 이후에는 야간경비원의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난민수용소 밖으로 길게 줄을 섰다. 그러나 왜소한 체격의 동양인으로 보이는 야간경비원은 상부의 지시가 없기 때문에 출입을 허용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텼다. 그 야간경비원이 앞서 이야기한 바로 그 한국인이다. 눈치 빠른 이는 혹시나 했을 것이다. 그 경비원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당시 서베를린의 한국 유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아르바이트는 야간경비원이었다. 주말마다 공장이나 관공서의 경비실에 앉아 공부하고 오면 한 달치 생활비는 가뿐히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그 손쉬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겪은 것이다. 무전기로 아무리 본부사무실에 지시를 요청해도 연락이 되질 않았다. 난민수용소의 철문을 뒤로하고 버티는 내 앞으로 동독의 트라비 자동차는 갈수록 길게 줄을 섰다. 2기통 엔진을 단 트라비 특유의 매캐한 매연을 참지 못할 지경이 됐다.
갑자기 젊은 녀석 하나가 내 앞으로 왔다.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커 보였다. 녀석은 느닷없이 권총을 꺼냈다. 허름해 보이는 동양인이 자신들의 역사적 가족상봉을 막고 서 있는 것을 도무지 못 참겠던 모양이었다. 총부리가 옆구리에 닿는 느낌은 정말 희한했다. 마치 면도칼이 두꺼운 옷을 뚫고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등에 식은땀이 죽 흘렀다.
그 순간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떠올렸다. 암기교육은 그토록 무서운 것이다. 조국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야 할 내가 지구 반대편에서 고작 야간경비원 하다 총 맞아 죽는 것으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녀석에게 철문의 열쇠뭉치를 던져줬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냅다 뛰었다. 어디에선가 본 기억은 있어, 갈지자로 왔다갔다하며 뛰었다. 권총으로 사람을 맞히기는 정말 어려운 일인 것이다. 군대 시절, 우리 대대장은 20m 앞의 과녁도 잘 못 맞혔다. 그 이튿날 나는 바로 해고당했다.
‘가치는 노동에서만 나온다’
독일 통일은 우연히 다가왔다. 1989년 여름, 고르바초프의 개혁노선에 따라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쪽 국경을 개방한다. 동구권 국가로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헝가리로 여름휴가를 떠난 동독 주민들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개방된 국경을 통해 아예 동독을 탈출하려 한 것이다. 복잡한 외교적 협상과정을 통해 헝가리는 동독 주민들의 탈출을 허가한다. 그때부터 동독인의 탈출은 걷잡을 수 없게 돼버렸다.
동독 공산당은 동독 주민을 달래기 위해 여행자유화 법안을 통과시킨다. 원래 이 법에 관한 내용은 11월10일 발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9일 저녁 동독 공산당을 대표해 언론 브리핑을 주관하던 귄터 샤보브스키라는 정치국원이 아주 엉뚱한 실수를 저지른다. 기자회견장에서 법안 통과에 관한 메모를 전달받은 샤보브스키는 아무 생각없이 바로 여행자유화를 선언해버린다. 흥분한 기자들이 질문했다. 언제부터인가? 샤보브스키는 아주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지금부터다. 누구나 신청하면 서독을 비롯한 서유럽을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다.”
라디오와 TV를 통해 이 소식을 들은 동베를린 주민들은 떼지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왔다. 베를린 장벽을 지키던 국경경비대원들은 총부리를 동베를린 주민들에게 겨누고 경비대장의 눈치만 봤다. 전화기를 들고 어쩔 줄 모르던 경비대장은 부하들에게 철수를 명령했다. 동베를린 주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도끼와 망치로 수십년간 버텨온 베를린 장벽을 부숴버렸다.
역사는 늘 이런 식이다. 샤보브스키의 엉뚱한 브리핑이 없었더라면 베를린 장벽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실제로 동독지역에서 동독 공산당과 맞서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던 그룹은 더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원했을 뿐이다. 그들에게 자본주의는 절대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실제로 독일 통일이 일방적인 자본주의로의 통합으로 진행되자 그들은 거세게 저항한다. 그러나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이렇게 역사는 필연적 인과관계보다는 아주 황당하고 우연한 방식으로 변화한다. 한반도도 분명 예외는 아니다.
“지식인은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지금은 남대문에서 안경점을 하는 사학과 선배는 확신에 차 이야기했다. 가치는 노동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노동자는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가치가 자본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님에도 자본가가 주인처럼 행세하는 자본주의는 해체돼야 한다. 그 사회변혁의 주체는 물론 노동자다. 그럼 대학생인 우리는 역사변혁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인가. 열정적인 그 선배는 없다고 했다.
1980년대 초, 안암동 병옥이네 자취방 앞 좁은 골목의 차가운 겨울안개는 내 가슴만큼이나 무거웠다. 사회학과를 겨우 졸업하고 최근까지 경실련 사무총장을 했던, 머리가 유난히 큰 데다 고수머리인 병옥이는 조심스럽게 이불 속에 숨겨둔 문건을 내왔다. 한국사회 계급구조 분석도였다. 우리는 고려대 경영관 뒷문의 복사집에서 그 문건을 복사해 나눠가졌다. 주인아저씨는 짐짓 모른 척하며 가게 한구석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골목을 돌아나오며 나는 중얼거렸다. 가치는 오직 노동에서만 나온다.
새마을운동은 마르크스적
마르크스가 옳았다. 산업사회에서 가치란 투여된 노동시간에 비례해 나온다. 근면과 성실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야기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가치는 분화된다. 물건의 사용가치와 그 물건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교환가치, 즉 화폐로 나눠지는 것이다. 문제는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치의 자본주의적 왜곡이다. 이는 곧바로 상품생산의 전 과정에서 노동자가 소외되는 인간소외현상으로 이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가치가 마치 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난다는 게 마르크스 가치론의 핵심내용이다.
노동의 기본철학만 본다면 마르크스 이론은 산업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훌륭한 이론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산업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은 쉬지 않고 일하는 노동뿐이다. 자본 축적을 위한 근면, 성실한 노동의 가치가 마르크스의 가치론에서만큼 확실하고 분명하게 설명된 경우는 없다. 막스 베버가 설명하는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마르크스의 가치론에 비하면 한 급 아래다. 천국의 보상을 믿고 현실에서 참고 인내하며, 현실의 ‘직업(Beruf)’을 하늘의 ‘소명(Berufung)’으로 받아들이는 프로테스탄트적 이념이 잉여가치의 축적을 가능케 했다는 베버의 주장은 아주 서구 중심적이다. 동양의 자본주의 발전이 늦었던 이유는 프로테스탄트 정신의 부재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사회변혁 이데올로기로서 마르크스의 후기 이론을 제하고 살펴보면,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동은 매우 마르크스적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노동하는 시간만큼 가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동, 북한의 새벽별보기운동, 천리마운동 등은 산업사회의 동일한 철학에 기반을 둔 쌍둥이들이라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좌파정권’을 종식한다며 나타난 이명박 정권의 ‘아침형 인간’도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좌파정권이 되어버린다.
20세기 초, 러시아를 무너뜨리며 호기롭게 시작한 사회주의는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과 함께 붕괴되기 시작해 21세기가 시작되기 직전, 흔적도 없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마르크스 이론이 21세기가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사라진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21세기에는 노동시간이 더 이상 가치를 창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은 노동시간이 아닌, 지식이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시대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낭만적인 이론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배후에는 아주 거대한 시대정신의 등장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차이트가이스트(Zeitgeist)’, 즉 시대정신이란 표현은 자유, 민주와 같은 엄숙한 단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 삶의 구체적 내용을 결정짓는 또 다른 가치들이 21세기에는 시대정신이 된다. 재미와 행복은 21세기의 ‘차이트가이스트’다. 독일 통일 사건은 이 시대정신의 변화를 아주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설명해준다.
독일 통일은 언론담당 정치국원의 ‘오버’에서 비롯된 우연적이고도 지엽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더 큰 틀에서 본다면 근면, 성실이라는 20세기적 가치의 몰락을 의미한다. 그리고 ‘재미’와 ‘행복’이라는 21세기기적 가치의 등장을 의미한다. 문화심리학적 시각에서 본다면 사회주의가 망한 이유는 단순하다. 재미가 없어서다. 더 재미있는 사회를 가능케 하는 정치시스템에 대한 동경이 동독의 몰락을 가져왔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동독은 절대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1989년 동독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 이상이었다. 당시 한국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었다.
차와 섹스에 무릎 꿇은 사회주의
동독 사람들이 정말 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통일 후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들을 살펴보면 된다. 장벽을 뚫고 서독으로 넘어온 다음날부터, 서독 시내의 섹스숍은 동독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붉어진 얼굴로 섹스숍을 나서는 그들에게 기자들이 느낌을 묻자, 그들은 그랬다. 망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인데, 오히려 사회주의가 망했다고. 인간의 섹슈얼리티를 단지 노동력 재생산의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동독의 현실 사회주의는 인간 욕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했다. 왜 인간에게 발정기가 없는지를. 인간은 매일이 발정기이고, 섹스는 행복과 재미를 보장해주는 가장 즐거운 놀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자본주의는 아주 교묘하게 이를 상품화한다.
장벽 붕괴 1년 후 동독과 서독은 법과 제도적으로 하나의 나라가 된다. 이후 동독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독 자동차를 구입한다. 오직 차를 사기 위해 장벽을 무너뜨린 것처럼 보였다. 동독 사람들은 모이면 새로 산 차 이야기로 열을 올렸다. 한때 동독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가 있었다. 트라반트, 애칭으로 트라비라고 불리는 자동차다. 1957년에 개발된 이 자동차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로 개발됐다. 2기통이지만 시속 120km를 달렸다. 효과적인 연비는 물론이고,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차체 역시 세계적인 화젯거리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동독 공산당은 더 이상 빠른 차는 자본주의의 사치라고 했다. 사회주의적 인간에게 더 예쁜 차는 필요없다고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트라비의 디자인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더 빠른 속도를 위한 기술개발도 없었다. 그 사이, 서독의 메르세데스 벤츠, 베엠베, 폴크스바겐은 매년 새로운 차를 만들어낸다. 그 차들은 시속 200, 300km까지 달린다. 서베를린과 서독 본토를 잇는, 동독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아우토반에서 바람처럼 달리는 서독의 차들을 트라비를 탄 동독 주민들은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볼 따름이었다. 통일이 되자, 그들은 트라비를 농장 한구석에 처박아버린다. 그리고 서독의 번쩍이는 차를 사서 서유럽으로 한없이 달려 나아갔다.
나는 지금도 시속 200km 이상 달리는 자동차를 사는 짓은 정말 무의미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에서 시속 200km 이상으로 달려본 사람은 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그 재미를, 그 감동을. 그래서 나는 지금도 언제든 그 무의미한 짓을 할 준비가 돼 있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심리학적 이유는 이렇게 단순하다. 재미와 행복이라는 21세기의 시대정신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섹스숍과 더 빠른 자동차를 만들어내지 못해 사회주의가 망했다면 ‘나름 지식인’들은 입을 삐죽거린다. 그렇지 않다. 인간의 경험은 아주 구체적인 감각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감각의 변화는 의식의 변화로 이어진다. 인간의 의식은 구체적 경험에서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의 몰락은 구체적인 감각으로 느껴지는 재미와 행복을 생산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사람의 입맛까지 바꿔버린다. 이북 출신 어르신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오리지널’ 평양냉면은 이제 서울 변두리 냉면집 맛보다 못하다.
재미와 행복의 상품화에 한번 성공한 자본주의는 그 끝을 모르고 인간의 감각을 왜곡하 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사회주의는 망했고 자본주의는 여전히 멀쩡하다. 당분간 더 나은 대안도 없어 보인다. 나는 한국사회의 미래에 관해 어설픈 이데올로기적 대안을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왜 한국 사람들이 이토록 분노와 적개심에 가득 차, 재미라고는 하나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이 내 일차적 관심이다.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전망은, 왜 우리는 이토록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구체적 설명이 이뤄진 후에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지나가다가 자빠지기만 해도 사람들은 그랬다. “다 노무현 때문이야.” 그렇다 다 노무현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재미라는 시대정신의 산물이었지만, 그 재미를 아주 허접한 사회갈등론으로 해체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도 이제야 말할 수 있다.
21세기 초, 한국사회에서 가장 굵직했던 사회적 사건을 펼쳐보자. 바로 나온다. 2002년 월드컵과 붉은 악마. 노무현 정부는 바로 이 2002년 월드컵이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었다. 2002년 월드컵의 붉은 악마,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등장한 촛불시위의 심리학적 공통점이 있다. 재미다.
단군 이래 최초, 최고의 재미
2002년 월드컵은 한국 사람들이 경험한 단군 이래 최초, 최고의 재미였다. 붉은 옷을 입고 밤새 ‘대한민국’을 외치는 붉은 악마들을 보고, 참새 가슴의 독일 유학파 학자들은 나치즘의 한국적 부활, 국수주의 망령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오버’다. 그들이 외치던 ‘대한민국’은 모든 축구대항전에는 어쩔 수 없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의미 없는 응원용어일 따름이다. 국가대항전에서 ‘대한민국’을 외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단어를 외쳐야 하나.
당시의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라면 무슨 단어라도 상관없었다. 실제로 아들이 둘이나 구속되고, 임기 말 레임덕에 시달리던 김대중 대통령이 화면에 나오자 붉은 악마들은 ‘김대중’을 환호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 재미를 매개할 수 있는 구호라면 ‘짜장면(자장면)’이라도 외칠 수 있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바라봐야만 하는 태극기도 젊은 처자의 치마가 되고, ‘난닝구(러닝셔츠)’가 되고, 머리띠가 됐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삶의 재미였다. 이렇게 내놓고 즐거워해도 된다는 느낌은 정말 처음이었다. 삶은 그렇게 즐겁자고 사는 것이다. 이제까지 무의식 깊은 곳에서 억눌려온 삶의 기쁨과 재미가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껴지는 현상으로 드러난 것이다. 압축성장의 근대화과정에서 생략돼버린 삶의 기쁨과 재미를 근대화세대의 아들, 손자들이 이제야 다시 발견한 것이다. 20세기 후반, 민주화의 과정에서 ‘프티 부르주아’적 속성으로 낙인찍혔던 펄떡거리는 삶의 구체성을 386세대의 후배들이 제대로 구현해낸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어렵게 발견한, 피부 끝으로 느껴지는 재미는 정말 갖가지 즐거운 삶의 방식으로 이어져야 했다. 이를 혹자는 문화적 다양성이라 한다.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되는 재미가 문화적 구체성으로 연결됐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시청 앞 광장에서 경험한 집단적 재미의 강렬함은 너무도 컸다. 그 추억은 정말 강렬했다. 붉은 악마는 이제 떼를 지어야만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혼자, 혹은 소소하게 모여 나누는 재미는 더 이상 재미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무리를 지어 만들어낼 수 있는 재미는 별로 없다. 솔직히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월드컵 4강도 서울에서 했으니 가능했던 것이다. 아닌가? 그 후로 붉은 악마들은 국가대항 축구시합만 있으면 떼로 모여, ‘대한민국’을 외쳐댔지만, 그때 그 기분은 아니었다.
정말 다 노무현 때문이야!
허탈해 하던 붉은 악마들에게 또 다른 재미가 나타났다. 노사모다. 인적 구성을 살펴보면, 붉은 악마와 노사모는 상당부분 겹친다. 게다가 노사모는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새로운 장르까지 끌어들인다. 붉은 악마의 ‘대한민국’은 ‘노무현’으로 바뀐다. 기타 치며 눈물 흘리고, 시장 상인들의 막말도 거침없이 사용하는 노무현은 그들이 원하는 재미의 코드가 되기에 충분했다.
드라마틱한 연출도 있었다. 탄핵이다. TV에 연일 비치던 국회의원들의 처절한 몸싸움, 그리고 서류더미가 휘날리는 의사당 책상 위로 올라가 눈물 흘리며 비장하게 애국가를 부르던 국회의원들은 월드컵 4강 축구선수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월드컵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하나둘씩 시청앞 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붉은 티셔츠 대신 촛불을 들었지만 그 붉은색은 같았다. 그러니까 히딩크는 노무현으로, 월드컵 대표선수들은 여당 국회의원들로 대체된 것일 뿐, 붉은 악마와 노사모의 상징과 플롯은 같다. 우연이 아니다. 집단적 재미라는 마법 때문이다. 재미라는 시대정신의 한국적 구현은 이런 식으로 어긋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는 자신들을 집권할 수 있게 한 이 ‘재미’라는 가치의 사회, 문화적 구체화에 힘썼어야 했다. 개인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경험되는 재미의 구현이 구체적 정책이 됐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토록 어렵게 발견한 재미라는 시대정신을 어설픈 사회구성체 논쟁이나 계급투쟁론 정도로 퇴화시켰다. 여기에 재미를 추구하면 죄의식을 느끼도록 의식화된 386세대의 사회변혁을 위한 과도한 자기희생이 사람들을 더욱 부담스럽게 했다. 그 결과, 이제는 ‘아침형 인간’을 노래하는 새로운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그래서 다 노무현 때문인 것이다.
독일 통일과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글로벌리티(globality)와 붉은 악마, 노사모라는 로컬리티는 동전의 양면이다. 재미없으면 망한다는 경구가 새겨진 동전이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선진국의 조건이 뭔가. 좋은 물건을 비싸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려면 좋은 게 뭔지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자동차가 독일차에 상대가 안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독일차에는 우리차에서는 느낄 수 없는 ‘좋은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맛을 봐야 맛을 낸다
명품을 만져보면 뭔가 다르다. 명품을 단지 졸부들의 허영을 위한 것으로만 생각하는 한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 내게 몽블랑 만년필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물건이다. 싸구려 볼펜으로 글을 쓰는 것과 몽블랑 만년필로 글을 쓰는 것은 그 느낌부터 다르다. ‘글 쓰는 것이야 다 똑같지, 뭐’ 하는 이에게 나는 속으로 그런다. ‘먹는 거야 위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데, 왜 맛있는 것 먹으려 하는가.’ 내 이야기를 ‘있는 자들의 배부른 이야기’로 우습게 만드는 시니컬한 이들이 꼭 있다. 주로 머리 나쁜 친구들이 그런다. 모든 문제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환원시키고, 그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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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다른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선진국이다. 요즘 기업에서 ‘디자인 경영’을 많이 이야기한다. 이탈리아의 디자인이 다른 이유는 그 뭔가 다른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느낌은 각 개인이 갖고 있어야 한다. 사회구조는 느낌이 없는 추상적 개념일 따름이다. 각 개인이 그 좋은 것을 느끼고, 구체적인 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반영할 수 있어야 선진국이 된다. 선진국이 돼야 남을 도와주는 그 좋은 느낌도 누릴 수 있다. 좋은 느낌을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능력은 삶이 재미있는 사람에게만 있다. 맛있는 것을 먹어본 사람만이 맛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근면, 성실한 산업사회에서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 그러나 재미가 시대정신인 21세기는 다르다.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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