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독골공원에 한 사나이가 앉아 있다. 모든 것이 멈췄다. 눈동자도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는다. 눈빛만이 빛난다. 조그만 체구다. 그러나 무게는 산과 같다.
산중 무예 기천문의 ‘사부’인 박대양씨다. 우리 민족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심신수련법이라는 기천문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다. 워낙 어렸을 때 스승의 손에 이끌려 설악산으로 올라가 수련만 했기에 자신의 정확한 나이도 알 수 없다는 그다. 그는 60년대 말 1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나이에 속세에 나왔다. 불과 155㎝단구에 54㎏의 몸무게다. 산중에서 제대로 곡기를 잇지 못해 20~30대 때는 37~38㎏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런 골격으로 치기어린 수많은 도전자들을 꺾었다니 신비로운 일이다. 무술계에선 전설적인 인물로 꼽히지만, 매스컴엔 거의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던 그가 도심 공원에서 웬 칼춤일까.
그가 여제자 강난숙(37)씨에게 북두칠성검법을 전수하고 있다. ‘북두칠성검’으로 이름 붙여진 칼은 싹둑 자를 수 있는 평면날이 아니다. 삼각형이다. 피라미드처럼 끝은 뾰족하니 창으로 쓸 수도 있다. 그래서 북두칠성검은 상대를 죽이는 살인검이 아니라 상대의 막힌 혈을 뚫어 사람을 살리는 데도 쓰니 활인검이다. 임금이 어사에게 호신용으로 하사했다는 칼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산중에서 ‘원혜상인’이라는 스승에게 배웠지만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는 박씨는 이 검법을 1년2개월 전부터 기천본문 도장 옆의 이 공원에서 비밀리에 새벽에 강씨에게 전수해왔다. 7법 가운데 1법을 모두 전수한 이날 모처럼 ‘사부’가 검을 든다. 간혹 한 동작씩만 가르쳐주는 사부가 연속적으로 검무를 추는 것은 유일한 전수자인 강씨로서도 좀체 보기 어렵다.
‘사부’가 조용히 칼을 든다. 짐승 같은 감각은 첫 순간부터 번쩍인다. 그가 뺀 것은 칼이 아니라 칼집이다. 거창한 손짓으로 칼을 뽑는 게 아니라, 왼손으로 가볍게 칼집을 뒤로 빼니, 벌써 완벽한 방어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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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난숙씨가 외발로 서서 칼끝을 겨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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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끝은 무엇을 겨누는가. 정신을 하나로 모은 칼날이 번뇌를 자르는 취모검인 듯하다.
정신이 모아진 칼은 한 번 움직이니 산을 옮기는 듯 엄중하다. 작은 체구의 무게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속기운을 쌓는 ‘내가신장’으로 얻은 공력일 것이다. 내가신장은 말타기 자세로 양손을 앞으로 쑥 뻗은 채 서는 기천문의 기본 동작이다. 이 자세는 운동선수라도 5분을 서기 어려워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따라서 얻어지는 공력도 그만큼 크다. 이 자세로 10분이 지나면 얼굴에서 땀이 바닥으로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한다.
몸은 산 같되, 이미 발자국이 옮겨지고 있다. 벌써 칼도 허공을 가르고 있다. 사람이 칼을 움직이는가, 칼이 사람을 움직이는가, 천지의 기운이 사람과 칼을 움직이는가. 기천은 곧 천기. 맑은가했더니 흐리고, 어느새 폭풍우 같은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 같다. 나는 말과 같은 비마축지법으로 왼발과 오른발이 눈에 보이지 않을만치 빠르게 교차한다. 걸음 걸음이 나는 구름 같다. 그림자조차 쫓기 어렵다.
더구나 파격의 연속이다. 오른쪽을 치는가 했더니 칼은 왼쪽으로 향하고 있다. 휘어도는 손이 화려한 꽃봉오리다. 이어 닭이 외발로 서 있는 것과 같은 금계독립 자세에서 바닥을 치고 오르더니 칼이 공중에서 땅을 향해 도리깨질 친다. 눈 앞에 별똥별이 튀기는 듯하다. 흐름은 물처럼 부드럽지만 칼이 집중하는 곳은 불 같은 열기가 쏟아진다. 춤처럼 부드럽지만 이렇게 강한 힘을 내는 비결은 손목과 발목 등을 비트는 ‘역근’에 있다. 더구나 그는 산중에서 거친 바람과 함께 노닐고 달과 함께 자면서 나무와 바위와 부대끼며 공력을 쌓았다.
이런 가운데 자연의 흐름과 몸의 흐름을 터득했기에 무도인으로선 상식을 깰 만큼 적은 골격으로 이만한 무도를 구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경찰계 검도의 달인으로 꼽혀온 박성권씨, 수벽치기의 전인 육태안씨, 해동검도 총관장 김정호, 나한일씨 등도 그로부터 무예를 배운 적이 있다.
그러나 자만은 상대를 베기에 앞서 자신을 벤다. 산중의 기운으로 세상을 살기 어렵기에 안광을 없애려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쑤셔 안경을 쓰게 됐다는 그다.
그는 세속에 나온 지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산중의 동자승처럼 천진한 모습이다. 욕심과 힘 자랑하는 세상을 희롱하듯 바람처럼 허허롭게 웃음을 실어 공중을 휘감는다. 칼이 물결처럼 부드럽다. 기천 동작의 원리는 하나같이 반장이다. 태극문양처럼 에스 자로 혹은 원으로 공중을 가른다. 사악한 마귀를 처단하듯 양쪽으로 가르는가 싶더니, 다시 하나로 엮어내고, 원으로 품어 안는다. 무술이라기보다는 춤이다.
어떤 강함이 이 부드러움을 누를 것인가. 칼은 강하고, 또 이렇게 부드럽다. 칼은 사람을 죽이고 또 능히 살린다. 지금 그 칼이 춤춘다.
북두칠성 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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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 모양이어서 ‘삼성검’으로도 불리는 북두칠성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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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 모양 창포검 막힌 피도 뚫어내
박대양씨는 북두칠성검을 산중 수련 뒤 하산할 때 갖고 내려왔으나 분실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증언을 들은 제자들은 삼각형으로 된 칼이 창포검으로 전해져왔음을 국방연구소 자료 등을 통해 발견했다. 창포잎처럼 생겨 창포검으로 불렸으며, 칼이나 창으로 사용하던 호신용 무기로, 내공이 강한 사람이 사용하면 천하무적이라는 것이다.
박씨는 우리 민족 정기의 발원지인 백두산의 백두는 북두에서 나온 말이며, 북두칠성검에는 대륙을 호령하던 조상들의 얼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지금이 어느 때보다 한민족의 얼이 필요한 시기여서 30여년간 공개하지 않던 검법을 우리 얼의 ‘지킴이’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한 강난숙씨에게 전수하게 됐다는 것이다.
‘사부’로 부터 1년여간 이 검법을 전수받은 강씨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두고 내가 전수받는 게 부담이 너무 컸다”며 “사부님은 여자라고 봐주는 법이 없어서 정신이 팔릴 때는 여지 없이 맞아가면서 배웠다”고 말했다. 검술은 어느 무예보다 공력이 필요하다. 몸이 너무 허약해 기천을 시작했던 그는 1년 전에 비해 놀라울 만큼 공력이 늘었다. 혼자 몸으로도 서기 어려운 내가신장을 무거운 두 남자를 등과 어깨에 태우고 설 수 있을 정도다. 도곡동 기천본문에서 강씨는 3월15일부터 매주 토요일 6주 동안 북두칠성검법의 전수에 나선다
발가는대로 붓가는데로 대학동아리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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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무술이여 참으로 젊은 그대들 을 기대하노라 !
장강의 도도함은 뒷물이 앞물을 밀기 때문이다.
기천동아리들이 함께 모여 야외공연을 하고 있다. 대학은 달라도 정신과 슬기는 하나로 계승되고 있다. |
- 경희대학교
유의극치가 곧 강이다 정의 무술가치 한의학 논리전개
정의사랑 불의 용납 못하는 무도정신
편집자주:왕수원논설위원은 본지 객원으로 창간사우이며 고무술연구가이다. 본지의 여러사업계획 중 무술 장학금을 내겠다는 뜻을 밝혀 온 바있으며 대학동아리 전국 무술시범대회도 한번 열어 보겠다는 의욕이 대단한 무술계의 원로다.
한의대에서 출발(1992년)하여 94년 정식동아리로 인가를 얻어 어떤 동아리 못지 않게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며 한의학도적 입장에서 기천무예에 대한 소감을 피력하는 우완용(한의대 본과3년) 군을 만나보았다. 강과 유의 반복적 동작을 통한 유의 극치가 곧 강의 정의가 아니겠는가라며 특히 내가신장의 경우 수승화강의 대표적 수련법으로 두한족열이 건강의 척도라 할때 참으로 뛰어난 무술 이전의 건강법으로서도 진가를 보인다는 한의학도 특유의 해석에 탐방인 역시 크게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덧붙혀 [기침단전진기내싱]을 유도하는등 내가신장에 대한 해박한 한의학적 논리전개와무술적 가치에 대한 열변에 그가 얼마나 기천에 매료되어 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것 같았다. 또 역근법수련으로 마치 생고무와 같은 탄성을 지닌 근육을 만들고 극한 정지상태에서 내기를 최대한 심화 시키므로써 강철같은 뼈대와 질기디질긴 혈관들을 가지게 할수있는 정중력의 수련법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역설하기도 하였다.
아뭏든 어려운 한의학적 지식을 쉽게 풀어 일반 무술인들도 이해할수 얐겠끔 설명하는 우완용군을 보면서 역시 우리 민족무술들은 최고의 지성인으로 존경받게 될 젊은 세대 더구나 대학생 사회에서 계승 발전 되어야 함은 필연일 뿐 아니라 대학 무술인들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라는 확신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무술인의 한사람으로써 그 흐믓함을 누를길 없었다. 현재 동아리 회장은 박찬규(94학번무역학과)군이며 회원은 45명이다.
수련은 화선교와 대운동장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주말마다 서근동, 김문섭군등이 기천 본원으로부터 집중지도를 받고 있다고 하며 금년겨울 방학기간중 동계훈련을 보름간 실시할 예정이라 전하기도 했다. 소위 난치병이라 불리우는 것도 수화불제 즉 수기가 화기를 억제치 못하고 상하의 교류가 불통하여 분리된 상태를 일컫는 바 기천무예의 기초인 반장은 음과 양이 바뀌고 또 합일이 교차 되는 극히 평범하면서도 심오한 동양철학이 내재된 수련법이란 설명이었다.
어디 인체뿐이 겠는가 우리의 사회현실도 불통.분리 등등의 이유들로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느끼게하는 해석을 들으면서 탐방을 마무리 지었다.
수제불화 즉 수기가 화기를 제압하지 못함이 난치병이라면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용납치 못하는 무도정신 이야말로 병든사회를 극복하고 새로운 신천지를 이루어 낼수 있는 원동력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탐방인 소감으로 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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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무예수련통해 민족혼 계승 동작하나 하나 고유의 몸짓
기천동아리 40여명 하루두시간 행공
요즘 젊은이들은 이나라 이민족을 이끌어갈 보배같은 존재이자 이시대를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처방이라고 할 수있다. 민족무술을 사랑하는 지성. 대학인들과 교류해 보면 느끼는바가 크다. 일부 몰지각한 [젊은 것]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티끌만한 존재를 갖고 전체를 매도하여서는 안될것이라고 생각한다. 탐방인 자신도 현실에 대한 실망감을 느낄때가 있지만 무술을 사랑하는 한사람으로써 타락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 대학동아리의 젊은 그대들에게 속죄하는 뜻으로 요즘 젊은이 특히 민족무술을 사랑하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대학 무술인을 위하여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할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탐방 후기에 붙여본다.
장강의 도도함이여 ! 뒷물이 앞물을 밀기 때문이로다. 민족무술이여 ! 참으로 젊은 그대들을 기대하노라.
낙조와 함께 가을 단풍치장으로 더욱 수려한 관악산 기슭 서울대학교내 버들골에서는 오늘도 기천동아리(회장 홍성일93학번) 40여 회원들이 행공에 이념이 없다. 동아리는 1993년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있는 이정훈(92학년도 지리학과)군과 고시준비중인 영용표(92학번 법학과)군의 출발로 시작하여 1994년에는 가등록 동아리로 활동하다 1995년부터 정식동아리로 출범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련은 월요일 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두시간 비가오나 눈이오나 항상 수련하고 있다. 민족무예라는 측면에서 긍지를 가지고 민족혼의 계승을 무예수련을 통해 이어받을 수 있고, 고달프도록 힘든 수련에 매력을 느껴 이를 통하여 동아리 성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해 준다고 하며 공연 M.T 그리고 하계수련을 통해 고학년 선배들과 저학년 후배들간의 긴밀한 무우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수련은 입문과정에서 단배공. 내가신장. 대합단공. 개운기공(양수 역근법) 반탄체조. 심기단법. 검법의 육합을 거쳐 상급과정의 수낙어각. 풍낙어각. 허공추. 낚시걸이. 소도등천. 양수일권의 과정과 공인과정까지 단계별로 수련중이라고 한다. 현재는 지도교수님을 모시지 못하고 있으나 곧 영입될 것이라면서 이정훈군은 전공이 지리학 이라서가 아니라 오늘의 이나라 젊은이 그 누구든 통일에 지대한 관심과 염원을 갖지 않을 수 있겠냐면서 더욱이 민족무술 기천을 만나고 나서는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감출 수 없다고 말한다.
기천의 온갖 동작들이 우리 민족고유의 몸짓들이기에 앞서간 선조들에게 친밀감은 말할것도 없고 비록 자유는 없으나 북한 어디에서도 우리와 같은 몸짓으로 무술에 심취하는 젊은이들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얼굴을 알수없는 그들에게도 한없는 친밀감은 물론 통일된 그 순간 민족무술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일체감은 통일 후유증의 최소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주장이어서 통일 강의를 듣는 것 같았지만 참으로 마음 든든함을 느끼면서 초미의 민족적 관심사인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기성세대로서 부끄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무술 수련을 통하여 민족정기의 배양은 물론 민족 공동체 건설에 앞장서는 일꾼으로 나서겠다는 이정훈군의 당찬 포부를 들으면서 역사는 어느 누구도 후퇴 시킬 수 없으며 역류시킬 수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앞에 이시대의 주인공은 바로 오늘의 젊은 무인 그대들이라는 격려를 남기고 탐방을 마쳤다.
공부잘하는 대학생만을 연상했든 서울대학 동아리 탐방으로 엿볼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학문이전 젊은이 였으며 가슴은 뜨거웠고 이성은 냉철하였다는 것이고 어느 대학 동아리에 못지 않은 민족무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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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기천의 실체 무엇인가 연구" "우리조상의 강인한 힘, 외침 지켜온 저력" "활발한 토론 강도높게 수련"
전통무예를 통해 심,신의 조화를 도모하고 그로부터 건전가치관이 형성되며 민족에 기여할 수 있는 '최고 지성인'을 모토로 동아리가 탄생하였다고 하는 연세대학교를 찾았다. 회장 김영수(물리학 94학번)군은 회원수는 30여명에 불과하지만 구성원 하나하나가 남다른 탐구의욕으로 과연 민족무예 기천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고 조상 전래의 굿거리 장단과 기천 한복과 기천 사물놀이와 기천 심지어 째즈와 같은 서양음악과의 기천까지도 연구의 대상이 되며 氣天의 세계화는 어떠한가 등 무술문화의 창조와 정착을 위해 활발한 토론과 함께 강도높은 수련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수련은 매일 아침 6시에 노천극장에서 하고 있으며 매학기 방학때마다 1주일간의 기천 산중수련원(강원도 횡성소재)에서 집중적인 공력배양을 한다고 한다. 수련은 공력단련으로 시작하여 육함단공의 버티기를 배우고 기본 권법을 익히고 난 후 칠보절권과 기천검법을 익힌다고 하였는데 김군의 경우 기천공부의 시작인 마범내가신장은 3분도 서기 힘들었는데 방학중 집중수련을 통하여1시간씩 서는 단계를 이룰 수 있었고 기본수를 열심히 수련하여 많은 진보가 있었다고 전하였다.
연세대 기천 동아리는 1993년 정식등록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말이나 글에 집착하지 말고 몸으로만 수행하라"는 기천수련의 원리에 매력을 느껴 두뇌의 지식이 아닌 체험의 知를 추구하는 동아리라고 하며 기천의 수련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수련하는 공부라서 더욱 흥미로왔고 心法의 단계에 이르면 몸을 마음이 가는대로 허공에 그려내는데 춤사위와 같으며 武의 근원은 巫,武,舞의 三무에서 근원한 것이라고 하며 힘든 민족무예 수련을 통하여 조상들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고 그 힘이 수없는 외침에서도 우리민족을 지켜온 저력이 아니었겠냐며 강인한 생명력을 배양하는데에는 武의 수련이 최선이라고 주장하였다.
탐방인 역시 그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는 바이거니와 회원 각자가 그들의 전공은 말할 나위도 없겠거니와 무술에 대한 해박함과 그 靑春들의 뜨거움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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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광대학교
지도교수 자랑하며 기죽여 젊은 지성들 무술발전앞장
조상의 숨결 땀방울까지 느낀다 매료
총장님의 적극적인 지원과 고력준(88학번 수학과) 엄상혁(한의학과 2년) 최선욱(한의학과 1년)군등의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으로 1995년 새학기 들어 정식 동아리로 탄생하였다고 박성용(경영학 3년) 회장은 기천동아리를 소개하였다. 지도교수는 30대 중반의 우종양교수(국악)라고 한다. 기천이든 국악이든 모두 우리 민족 고유의 것으로 조상의 숨결이나 땀방울까지도 오늘에 느낄 수 있기에 더더욱 애착을 느끼며 수련에 정진한다. 지도교수님의 전공이 국악이라고 자랑하면서 타대학 무술동아리를 은근히 기죽인다는 대학인 특유의 유머감각도 투철한 강골의 무인이었다.
행공은 매일아침 6시30분부터 1시간, 오후 5시30분부터 1시간씩 하루 두차례 노천극장과 잔디밭에서 수련하며 회원은 여대생을 포함해서 50명이라고 한다. 면면히 활달하고 준수하며 민족이란 두글자가 자신들에게 주는 명제는 절대 그 자체이지 어떤 말로도 표현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는 강한 민족애를 지닌 대학무술 특히 민족무술 신봉자들이었다. 동아리탐방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전도된 가치관으로 영일이 없이 온갖 추태를 연출하고 있는 기성세대의 명망있는 인사들이 대학에 보다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을 것 같다.
젊은 지성 특히 무술인들의 정신적 성숙도며 민족애등의 실체를 만나 볼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겨울방학 중에는 강원도 횡성소재 기천산중 수련원(0371-731-6658)에 입소하여 기천 대학동아리 합동 수련을 실시하여 동아리간 친목과 우의를 다지는 한편 심도있는 수련으로 기천무예의 진수 터득에 온몸을 던져 보겠다며 무술사라의 남다를 각오들을 비쳐 보이기도 하였다. 회장 박성용군은 동아리 회원들의 메신저격으로 토요일은 서울에 와서 기천본원 박성대원장으로부터 직접 사사받는다며 민족정기를 이어 받는 여러형태의 수업들이 있겠지만 자신은 민족무술 기천을 그 지름길로 삼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런 든든한 무공인들이 이나라 도처에 존재하는한 우리의 장래는 밝고 오늘의 현실은 어차피 잠시일 뿐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아가고 있음을 생각하니 탐방인의 발길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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