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금강.금산 "봄의 절정을 찾아서"

醉月 2020. 5. 2. 08:03

 



봄꽃·초록으로 물든 협곡 20㎞

양각산-갈선산 구간 가슴 두근


눈부신 풍경 보려면 적벽강으로

385m벼랑 ‘함바위’도 조망명당

수통대교밑 오솔길선 신록 만끽


신안사 가는 길엔 조팝나무꽃

홍도마을 일대엔 홍도화 만발

도로변 4㎞ 붉은 꽃길 매혹적


진악산 보석사일대는 이제 ‘봄’

1100년 은행나무 새잎 돋아나



전북 장수의 작은 샘에서 발원한 금강은 무주와 충북 영동, 충남 부여 등을 적시며 흐릅니다. 금강의 물줄기는 굽이쳐 흐르면서 무주에서는 무주구천동을, 영동에서는 양산팔경을, 부여에서는 낙화암을 빚어내지요. 때로는 거울 같은 수면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급한 여울로 흘러내리면서 금강은, 어디서는 경관과 풍류를, 또 어디서는 역사를 새깁니다. 금강은 무주의 것이기도 하고, 영동이나 부여의 것이기도 하지만, 봄날만큼은 금강의 주인은 충남 금산입니다. 금강과 금산은 둘 다 ‘비단 금(錦)’ 자를 씁니다. 금강은 ‘비단 강’이고, 금산은 ‘비단 산’입니다. 새삼스럽지만 금강과 금산은, 같은 이름을 가진 강과 산인 것이지요. 금강과 금산이 봄꽃과 신록으로 이름처럼 둘 다 비단을 두르고 있을 때, 그때가 바로 지금 같은 만춘(滿春)입니다.


# 봄날의 비단강이 가장 눈부신 자리

우리나라의 큰 강은 모두 서쪽이나 남쪽으로 흐르는데, 금산 땅에서 금강은 내내 북쪽으로 흐른다. 금산에서 금강 구간은 직선거리로 겨우 30리(12㎞)에 불과하다. 하지만 물길은 100리(40㎞)가 넘는다. 개발의 삽날에도 강의 원형을 잃지 않고 S자와 U자를 반복해 그리며 유유자적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금산의 금강 구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는 곳은 바로 무주를 흘러온 금강이 금산 땅으로 막 건너온 방우리에서 강변 마을 수통리와 도파리로 이어지는 50리(20㎞) 남짓한 구간이다. 이 구간의 강은, 봄날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눈이 부시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풍경을 보여주는 구간이 지렛여울에서 수통리까지, 금강이 양각산과 갈선산 사이 협곡을 흘러내리는 구간이다. 이 구간은 협곡의 지형 탓에 차로도, 걸어서도 접근이 불가능하다. 늦은 산벚꽃과 복사꽃이 분분히 지고, 연두색 신록은 하루하루 짙어져 가는 그득한 전인미답의 협곡. 여울을 넘어온 물이 숨을 고르는 사이에, 때 이른 뻐꾸기 울음소리가 슬며시 끼어든다. 하류 수통리 쪽에서 먼발치서 보는 협곡의 봄 풍경은, 말 그대로 ‘그림’이다. 맑은 날에는 수채화 같고, 흐린 날에는 수묵화 같다.

협곡 구간의 강변 풍경을 보려면 적벽강으로 가야 한다. 거대한 주발을 엎어놓은 듯한 금강 변의 적벽(赤壁)은 말 그대로 붉은 바위 절벽이다. 거기서 상류 쪽으로 적막한 강 풍경을 볼 수 있다. 이런 경관과 무릎을 탁 칠 만큼 잘 어울리는 당나라 시인 소동파의 시가 있다. ‘공산무인(空山無人)’ 텅 빈 산에 사람 없어도, ‘수류화개(水流花開)’ 물은 흐르고 꽃이 피네. 그래. 마음 쓰지 않아도, 봄날의 꽃은 피고 강물은 흘러내린다.




적벽강을 끼고 있는 뿔뿔이산(양각산)의 바위봉우리 함바위와 그 아래로 흐르는 금강. 함바위 정상에 서 있는 사람의 크기를 보면 풍경의 규모가 짐작된다.


# 경치가 아름다워 정자를 불태우다

적벽강은 수통리에 있다. 강물이 가로막아 끊어지는 막다른 길 끝. 금산 부리면 소재지에서 강물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마지막 다리 적벽교를 건너면 수통리 마을이다. 지금은 폐교됐지만 수통리에는 한때 120명의 아이가 다니던 번듯한 초등학교 분교가 있었다. 적벽 앞은 깊은 소(沼)다. 옛날 선비들이 여기서 배를 띄우고 시회(詩會)를 열었고, 젊은이들은 천렵했으며, 아이들은 멱을 감았다.

지금도 캠핑족들이 알음알음 찾아드는 적벽 주변은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거대한 습지와 늪이었다. 강변 한쪽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래찜질을 즐기던 너른 백사장도 있었다. 주민들은 여기다 둑을 쌓아 물길을 막아 6만여 평의 농토를 만들었다. 둑을 쌓으면서 용이 살았다는 전설의 대늪은 작은 웅덩이 신세가 됐다. 드넓었던 백사장도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만들면서 싹 쓸어갔다. 적벽강을 찾아오는 이들은 지금의 경관에 감탄하지만, 주민들은 예전의 청취에 대면 어림도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왜 안 그럴까. 강변 마을의 지나간 시절은, 거기서 자란 사람의 추억 때문이라도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법이니….

손대지 않아 강이 원형의 모습을 갖고 있던 시절. 마을 주민들은 그때 금강이 얼마나 근사했는지를 증명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어질 때 강원 삼척과 제주에서 주민들이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유채꽃밭을 아예 밀어버린 일을 기억하시는지. 여기 금강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적벽강 하류 쪽에는 ‘동그란산’이란 이름의 재미있는 바위 지형이 있다. 지금은 흐려졌지만 그 일대에 솔숲과 강돌, 금빛 모래밭이 어우러진 강변이 펼쳐졌다고 했다. 가장 경관이 빼어난 자리에는 귀래정이란 정자가 있었다. 한 번은 충남, 충북, 전북의 도지사가 여기 모여서 금강에서 호사스러운 뱃놀이를 했고, 일대 주민들이 그 시중을 드느라 며칠간 총동원됐단다. 그런 뒤로 행세깨나 하는 이들이 경치에 취해 귀래정에 모여들면서 민폐가 늘자 급기야 주민들이 정자를 불태워버렸다고 했다. 불타서 사라진 귀래정은 아직도 ‘금산 8경’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없는 정자가 포털사이트 지도 위에도, 차량용 내비게이션에도 남아 있다.


충남 금산의 홍도마을은 봄이면 붉은 개복숭아꽃인 홍도화가 만발한다. 마을에서 무주로 넘어가는 635번 지방도로 4㎞ 구간에 홍도화가 환하게 피어났다.


# 수직 암봉과 수평 오솔길… 강을 보다

금강의 협곡 구간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는, 산에 있다. 소의 뿔처럼 두 개의 봉우리를 가졌다고 해서 ‘뿔뿔이산’이라고도 불리는 양각산에는 금강이 깎아낸 까마득한 바위 절벽이 있다. ‘함바위’ 혹은 ‘한바위’로 불리는 암봉이다.

이름나기로는 그 옆의 30m 높이의 직벽으로 일어선 적벽강이 으뜸이지만, 웅장한 풍모로 겨루자면 해발 385m의 바위벼랑인 ‘함바위’가 몇 수 위다. 함바위는 ‘한바위’에서 변한 이름이다. 후백제군의 망국의 한(恨)이 깃들어 있다고 해서 ‘한바위’라고 했다고도 전하고, 크다는 뜻에서 ‘한바위’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양각산 펜션이 있는 산행 들머리에서 30분 남짓이면 함바위에 오를 수 있다. 함바위는 양각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에서 비껴 있어 보통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길에 그쪽으로 돌아가는 길을 잡는 게 보통인데, 금강을 굽어볼 요량이라면 그냥 함바위만 다녀와도 좋겠다. 마지막 구간에서 밧줄을 붙잡고 오르는 구간도 있지만, 거기만 빼면 길은 순하다. 함바위에서는 적벽강 상류 쪽 금강의 양각산과 갈선산 사이의 협곡 구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협곡을 이룬 두 산은 지금 온통 연두색 신록으로 물들어 있고 그 초록의 사이를 진청색 강물이 흘러내린다. 발바닥이 간질간질할 정도로 아찔한 고도감이 느껴지는 함바위에 서면 누구든 발아래로 펼쳐지는 봄날의 강변 풍경에 탄성을 터뜨릴 게 분명하다.

이쪽의 금강 구간에서 강변의 신록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또 있다. 금강에 바짝 붙어 물길을 거슬러 걷는 이 길이 어찌나 근사하던지, 낯모르는 이들마저 소매를 붙들고 데려가고 싶어지는 곳이다. 부리면 소재지에서 적벽강이 있는 수통리까지 가려면 수통대교와 적벽대교를 차례로 건너는데, 먼저 건너는 도파리의 다리 수통대교 아래에 그 길의 들머리가 있다. 수통대교를 건너기 전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면 강물에 바짝 붙어 나란히 가는 오솔길이 있다. 얕은 여울을 이루는 강변을 끼고 이어지는 길이다. 마치 ‘신록의 터널’로 들어가는 것 같은 이 길은 한 눈에도 특별해 보이는데, 정작 도파리 주민들은 무심하다. 길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고, 그 길이 왜 처음 놓였을까. 주민들을 붙들고 물어도 도무지 아는 이가 없다.

강변 길은 신록의 숲사이로 이어진다. 오솔길 초입에는 낚시꾼들이 드나들면서 낸 것이 분명한 차량 바퀴 자국이 뚜렷한데, 갈수록 길은 흐려지고 적요해진다. 호젓함을 넘어서 ‘비밀의 길’ 같은 느낌이다. 강에 바짝 붙어서 이어지는 이 길 위에는 습지와 신록의 나무 그리고 초록의 풀들로 가득하다. 더 길었으면 좋겠는데, 오솔길은 강을 끼고 2㎞쯤 이어지다가 끊어진다. 물소리를 듣고 신록을 감상하며 천천히 걷는다면 왕복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이 길은 되도록 오후에 가시길…. 이 길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오후 나절, 그러니까 오후 세시 이후다. 강변 버드나무의 연두색 이파리와 금강의 여울이 모두 역광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일 때가 그때쯤이다.


금강의 물길을 끼고 있는 충남 금산의 오지마을 적벽강 강변. 신록의 초록이 하루가 다르게 진해지고 있는 고즈넉한 강변에 아직 지난해의 억새가 남아있다.


# 홍도화 화려한 꽃길을 달리는 맛

봄날의 정취에서 꽃을 빠뜨릴 수는 없는 일. 금산에는 이맘때면 온통 산벚꽃으로 주위를 두르는 ‘보곡산골’이 있다. 보곡산골이란 서대산과 창령산, 대성산, 방화봉, 국사봉으로 둘러싸인 분지마을인 보광리, 상곡리, 산안리 등의 산간마을을 한데 일컫는 이름이다. 산 사면에 자연군락을 이룬 산벚이 그득 피어날 때면 9㎞ 남짓의 보곡산골 임도는 온통 꽃길이 된다. 수수한 산벚은 꽃이 늦는 편인데, 올해는 유난해 개화가 일러서 ‘사회적 거리 두기’의 와중에 봐주는 이 없이 피어났던 산벚은 아쉽게도 거의 다 지고 말았다. 벚꽃이 지고 난 뒤에 병꽃나무가 꽃을 피웠고, 산딸나무, 국수나무도 뒤를 잇겠지만 보곡산골은 내년을 기약하는 편이 낫겠다. 산을 넘는 포장도로가 새로 나고, 임도 구간 한복판에 거대한 버섯재배시설이 들어선 것을 비롯해 곳곳에 삽질의 흔적이 산벚꽃이 아니라면 가려지지 않는 탓이다.

산벚꽃은 없지만 그래도 동곡리에서 길곡리를 거쳐 절집 신안사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지금 조팝나무꽃이 한창이다. 논둑마다 드문드문 피는 조팝나무가 슬금슬금 묵은 논과 밭으로 기어들면서 아예 꽃 사태를 이뤘다. 개나리처럼 낭창낭창한 가지마다 작은 흰 꽃이 다닥다닥 피어나는 조팝나무가 군락을 이룬 모습은 마치 폭설이 내려 쌓인 듯하다.

금산에는 아직 지지 않은 봄꽃이 늘어선 길이 하나 더 있다. 남일면 신정리의 홍도마을에서 목사리치를 넘어 전북 무주로 이어지는 635번 지방도로에는 지금 절정을 넘긴 홍도화가 줄지어 피어있다. 홍도화는 짙은 붉은색으로 피는 개복숭아꽃이다. 붉은색의 꽃이 어찌나 선명하고 화려한지 농염한 느낌마저 든다.

신정리는 소반 위에 얹어진 붉은 복숭아의 지세라고 해서 홍도(紅桃) 마을이라 불리었다는데, 이름처럼 오래전부터 복숭아나무가 많기로도 유명했단다. 올해는 축제를 취소했지만, 홍도화 나무를 꾸준히 심으며 마을 가꾸기를 해 온 주민들은 해마다 봄이면 홍도화 축제를 열어왔다. 1박 2일의 짧은 기간에도 해마다 방문객이 2만 명을 웃돌 정도로 축제가 인기 있었던 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홍도화의 화려한 색감 때문이었으리라.

홍도마을 안쪽에도 꽃이 있지만, 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을 초입에서 목사리치 고개까지 이어지는 4㎞ 남짓의 꽃길이다. 보도가 따로 없는 차로여서 걷기에 위험하고, 차로 달리기에는 거리가 짧아서 아쉽지만 저마다 색감과 채도가 조금씩 다른 홍도화가 양옆으로 줄지어 피어있는 길은 매혹적이다.


금강 상류의 방우리 마을에서 적벽강까지 이어지는 협곡 구간의 강변에서 신록이 물들어가는 나무. 이맘때쯤 갖가지 색으로 물드는 신록은 꽃보다 아름답다.


# 복사꽃 만발한 무릉을 생각하다

금산에서 봄꽃과 신록은, 이미 절정을 넘겨서 뒤따라가기에는 여간 숨이 가쁜 게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봄이 더 차오르기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있다. 금산의 진악산 자락 수수한 절집의 보석사에는 입이 딱 벌어질 만한 크기의 은행나무가 있다. 마치 거대한 초식공룡을 연상케 하는 나무다. 은행나무에는 새잎이 아직 돋지 않았다. 나무의 수령은 1100년 남짓. 그만한 횟수의 봄을 건너온 나무가 이제 다시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은행나무는 노랗게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이 으뜸이지만, 봄날 작고 여린 새잎이 돋을 때의 은행나무도 볼 만하다. 이제 한 열흘쯤이나 남았을까.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건너온 늙은 나뭇가지마다 여린 새잎이 돋을 때가 말이다. 은행나무의 위용에는 어림없지만, 보석사 산문에서 이어지는 절집 숲길에 늘어선 아름드리 전나무의 청량한 기운도 좋다.

여기에 가볼 곳을 하나 더 보탠다. 금강의 물줄기가 봉황천과 합류하는 제원면 천내리의 제원대교 부근에는 ‘용호석’이 있다. 용호석은 용과 호랑이를 조각한 돌이다. 200여m의 간격을 두고 보호각 안에 서 있는 용과 호랑이는 무슨 의미일까. 고려 공민왕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고려 말 홍건적의 난으로 안동까지 피란을 내려온 공민왕이 지관을 시켜 자신의 능묘를 찾도록 명했단다. 명당을 찾아 나선 지관은 충청도 땅으로 건너와 금산 동쪽 20리 태백산 지맥이 흘러드는 길지를 찾아냈고, 공민왕은 능묘에 쓸 석물을 준비하도록 했단다. 용호석이 바로 그때 만들어진 석물이고, 홍건적의 난이 진압돼 공민왕이 개경으로 돌아갔으니 쓸모없어진 용호석만 덩그러니 남게 됐다는 얘기다. 이야기도 자못 흥미롭지만, 용호석은 그 자체의 미감만으로도 가서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호석(虎石)은 마치 민화 속의 호랑이 그림 같기도 하고, 용석(龍石)에서는 의인화의 상상력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궁금증. 유연한 금강의 물길이 굽이치는 금산에서 지관이 찾아냈다는 명당은 과연 어디였을까. 땅의 기운으로 발복하는 명당도 좋지만, 지금 금산은 복사꽃 만발한 이상향의 땅 ‘무릉’에 더 가깝다. 적어도 지금 같은 봄에는 말이다.


■ 고려충신 길재와 충남쌀

금산의 적벽강으로 가다 보면 청풍사(淸風詞) 앞을 지나게 된다. 고려에 절의를 지켰던 충신 길재를 모신 사당이다. 길재는 경북 선산 출신이지만 금산에서 벼슬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들어와 여기 살았고, 아버지가 죽자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청풍사 사당 앞에는 ‘백세청풍(百世淸風)’ 비석이 있다. 충남에서 나는 쌀의 상표 ‘청풍명월’이 이 글귀에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