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의 시간을 넘어 단숨에 여기로 건너온 ‘백제의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곳.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입니다. 지금 미륵사지전시관은 미륵사지 석탑 해체과정에서 나온 사리장엄 유물들을 모두 공개하고 있습니다. 황홀한 문양의 금제(金制) 사리 항아리와 금, 은, 수정으로 정교하게 만든 구슬들, 그리고 1400년의 어둠에서 깨어났다가 곧 복원하는 석탑 안으로 다시 들어가 다시는 볼 수 없을 반짝이는 사리 13과도 마지막으로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한 달 남짓. 석탑 복원 일정에 맞춰 공개는 3월 말까지만 이뤄집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은 1997년 이래 지금까지 해체·복원 중입니다. 탑 하나를 고쳐 세우는 일이 이리도 지루하고 신중합니다. 해체를 시작한 지 무려 1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막 복원의 첫 돌을 다시 놓을 준비가 끝났으니 말입니다. 하기야 석탑이 건너온 유장한 세월에다 대면 17년이란 눈 깜빡하는 찰나와도 같은 시간이긴 합니다. 2009년 미륵사지에서 있었던 놀라운 발견. 해체 중인 석탑의 기단부에서 나온 사리장엄 일체는 입을 딱 벌어지게 했습니다. 조심스레 돌을 들추자 탑 조성의 내력이 새겨진 금판과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작은 금제 사리 항아리가 나타났습니다. 금제 항아리 안에 다시 작은 금항아리가 들어 있었고, 그 안에 깨진 유리병과 사리 13과를 비롯해 9900여 점의 유물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금판의 글씨를 해독하자 누가 언제 무슨 의미를 담아 이리도 거대한 석탑을 세웠는지가 뚜렷해졌습니다. 1400여 년 만에 꺼내진 시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해체한 미륵사지 석탑을 다시 맞추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1400여 년 만에 빛을 본 13과의 사리가 다시 탑 속으로 들어갑니다. 아마 다시는 세상으로 나오지 않을 것들입니다. 백제 사람들의 기원과 정성은 이제 깊은 시간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길고 긴 영겁의 세월을 보낼 것입니다. 남녘에서부터 올라오는 봄소식을 밀쳐 두고 익산으로 갔던 건 영겁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미륵사지 석탑의 유물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곧이어 3월 중순쯤에는 익산의 왕궁리 석탑에서 나온 사리와 유물들을 공개하는 ‘익산전’이 왕궁리유물전시관에서 열립니다. 출토된 후 죄다 전주박물관으로 실려간 왕궁리의 유물들을 50여 년 만에 제자리로 가져와서 여는 흔치 않은 전시입니다. 전북 익산에서 잇따라 열리는 미륵사지 석탑과 왕궁리 석탑의 유물전은 백제 무왕시대의 빛나는 자취를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공주와 부여의 위세에 밀려 눈길 한번 변변히 받지 못했던 익산에 스며 있는 백제의 시간은 이 두 개의 석탑 말고도 도처에 있습니다. 백제의 무왕이 선화공주로부터 미륵사 창건의 청을 받아들였던 미륵산의 사자암이 있고, 미륵의 기원을 담은 사찰 북쪽을 경계하던 거대한 산성이 있으며 미륵산성 아래 구룡마을에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컸다는 너른 대숲도 있습니다.
#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건너와 다시 1000년의 시간 속으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탑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이다. 신라의 선화공주와의 로맨스로 알려진 백제의 무왕이 아내의 청으로 세운 거대한 탑.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전제할 것 한 가지. 여기서 미륵사지 석탑이라 함은 새 석조물처럼 멋대가리 없이 복원한 동탑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이겨 붙인 시멘트로 겨우 서 있던 서탑을 말하는 것이다.
웅장한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부흥의 꿈이었고, 석탑에서 나온 쌀알 크기의 진짜 사리는 그 꿈에 심은 하나의 씨앗이었다. 백제는 무왕의 왕위를 이은 의자왕 때 덧없이 망하고 말았지만, 그 씨앗은 발아하지 않은 채 시간을 건너와 지금 여기 눈앞에 실재한다. 과연 이 사리는 어디서 온 것일까. 멀고 먼 서역의 땅에서 건너온 것일까, 아니면 평생 불법을 닦은 백제의 고승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것일까. 상상은 꼬리를 문다.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 특별전’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사리였다. 전시관 한쪽 유리벽 안에 12과의 자수정 한가운데 작은 결정이 바로 석탑에 안치됐던 사리다. 사리가 전시된 유리 진열장에 코를 대고 오래도록 바라봤던 건 그 사리가 건너온 시간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 다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려 17년에 걸쳐 해체된 석탑을 다시 짜맞춰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되면서 백제의 사리는 다시 탑 안의 캄캄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시 1000년 후에 세상에 나올 것인지, 아니면 영영 그 깊은 어둠 속에서 백제의 꿈으로, 무왕의 불국토의 기원으로 남게 될지 모를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사리가 복원이 끝나는 탑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적어도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는 그것으로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이번 특별전에서 공개되는 사리장엄은 발견되자마자 미륵사지를 떠나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져 여태 거기 있었다. 미륵사지 석탑 해체가 끝나고, 다시 석탑을 짜맞추는 복원작업이 시작되는 것을 계기로 이번 특별전이 기획됐다. 전시된 유물의 보험가는 175억 원. 익산시는 이 유물을 공개하느라 1500만 원이 넘는 보험금을 부담했다. 특별전이 끝나면 사리는 미륵사지 탑 속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유물들은 국립문화재연구소로 되돌아간다. 본래 제자리인 미륵사지전시관 대신 국립박물관이 유물보관청으로 지정된다면 이곳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셈이다. 다시 1000년이 넘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사리는 물론이거니와, 미륵사지 석탑의 사리장엄도 여기서 보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 특별전은 오는 3월 말까지다. 그러니 여러모로 서두를 일이다. # 백제 무왕이 꾸었던 불국토의 꿈을 찾아가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미륵사지 창건 내력을 들춰 보면 이렇다. “무왕이 어느 날 부인과 함께 미륵산의 절집 사자사에 향을 올리러 가다가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상을 발견한다. 가마를 멈추고 예를 올린 무왕은 ‘이곳에다 큰 절을 세우기 원한다’는 아내의 청을 허락한다. 사자사 주지인 지명법사에게 절 짓기를 청하자 신통력으로 하룻밤 만에 산을 깎아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그 땅에다 불전과 탑, 회랑을 각각 3곳에 세웠다. 신라 진평왕이 여러 사람을 보내 절 짓기를 돕게 하니 그 절이 지금도 남아 있다.”
사자암에서는 해우소가 미륵사지를 굽어보는 가장 빼어난 자리다. 너른 절집 터에 우뚝 선 동탑과 복원작업이 이뤄지는 가건물의 서탑 자리가 솔숲 너머로 내려다보인다. 더 멋진 전망을 보겠다면 폭신한 흙길을 짚어 미륵산을 더 오르면 된다. 미륵산 정상에서는 미륵사지의 전경과 함께 나지막한 구릉으로 이뤄진 익산 땅의 장쾌한 전망이 펼쳐진다. 동탑과 서탑, 그리고 그 사이에 거대한 크기의 9층짜리 목탑이 서 있고, 탑의 구획이 회랑으로 이어져 거대한 하나의 절집을 이뤘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면 백제를 일으켜 세우려던 무왕의 꿈이 느껴지는 듯하다. 사자암과 함께 둘러볼 만한 곳이 미륵산 북쪽 자락에 들어선 미륵산성이다. 조선시대까지 모두 여섯 번 고쳐 쌓았다는 기록 외에는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아무런 단서도 없다. 다만 향토학자들은 백제시대 미륵사지를 중심으로 한 익산을 방비하기 위해 산성을 쌓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무왕이 익산 땅에 미륵사를 세운 건 천도(遷都)의 목적이었다. 무왕은 세력기반이 없는 부여를 떠나 여기 익산으로 나라의 중심을 옮기려 했다. 그러자니 방비할 수 있는 성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래서 지어진 게 바로 미륵산성이란 추정이다. 성의 둘레는 1.8㎞ 남짓. 전체 성곽 중 3분 1 정도만 복원됐지만, 구불구불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곽의 규모가 대단하다. 산성 들머리 아래쪽에는 구룡마을이 있는데, 한때 한강 이남에서 최대로 꼽히던 대숲이 마을 한가운데 있다. 지난 2005년 혹독했던 겨울 추위로 냉해를 입은 뒤에는 예전만 못하다지만, 자연스럽게 자라는 울창한 대나무에서 청량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 50여 년 만에 되돌아오는 왕궁리 석탑의 시간 위용은 미륵사지의 석탑만 못하지만 익산의 왕궁리에는 빼어난 비례와 힘찬 자세로 서 있는 석탑이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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