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단체&요결

無心論

醉月 2013. 2. 8. 01:30

 

無心論
1
夫至理無言이나 要假言而顯理하고 부지리무언이나 요가언이현리하고
지극한 이치는 말이 없으나
말을 빌려야 그 이치가 드러나고,

 

大道無相이나 爲接而見形하나니
대도무상이나 위접이견형하나니
큰 도는 모양이 없으나
사물을 통해서 그 형체를 드러낸다.

 

今且假立二人하야 共談無心之論矣노라.
금차가립이인하야 공담무심지론의노라.
이제 여기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고
'무심'에 대해서 함께 논해보기로 하자.

 

2

弟子問和尙曰 有心가 無心가 答曰 無心이니라.제자문화상왈 유심가 무심가 답왈 무심이니라.
제자가 스승께 물었다.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마음이 없다."

 

問曰 旣云無心인댄 誰能見聞覺知며 誰知無心고
문왈 기운무심인댄 수능견문각지며 수지무심고
"마음이 없다고 하신다면
무엇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알며,
무엇이 무심인 줄을 압니까?"

 

答曰 還是無心이니라.
답왈 환시무심이니라.
"도리어 이는 무심이다.

 

旣見聞覺知나 還是無心能知無心이니라
기견문각지나 환시무심능지무심이니라
이미 보고 듣고 느끼고 알지만
도리어 이 무심이 무심임을 능히 안다."*

 

問曰 旣若無心이면 卽今無有見聞覺知니
문왈 기약무심이면 즉금무유견문각지니
"마음이 없다면
지금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없어야 할텐데,

 

云何得有見聞覺知오.
운하득유견문각지오.
어째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있게 됩니까?"

 

答曰 我雖無心이나 能見能聞能覺能知니라.
답왈 아수무심이나 능견능문능각능지니라.
"나는 마음이 없으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다."

 

問曰 旣能見聞覺知면 卽是有心이어니 那得稱無오.
문왈 기능견문각지면 즉시유심이어니 나득칭무오.
"보고 듣고 느끼고 알 수 있다면
마음이 있는 것인데,
어떻게 없다할 수 있습니까?"

 

答曰 只是見聞覺知나 卽是無心이니
답왈 지시견문각지나 즉시무심이니
"그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그
대로가 무심이니,

 

何處更離見聞覺知하야 別有無心고
하처갱리견문각지하야 별유무심고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말고
어디 따로 무심이 있겠느냐.

 

我今恐汝不解일새 一一爲汝解說하야
아금공여불해일새 일일위여해설하야
그대가 이해하지 못할까 하여,
내 낱낱이 설명하여

 

今汝得悟眞理하노라.
금여득오진리하노라.
진리를 깨닫게 하겠다.

 

假如見은 終日見이나 由爲無見일새 見亦無心이며
가여견은 종일견이나 유위무견일새 견역무심이며
가령 보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종일토록 보나
그것은 보는 것 없는 데서 나오므로,
보는 것 역시 무심이다.

 

聞終日聞이나 由爲無聞일새 聞亦無心이며
문종일문이나 유위무문일새 문역무심이며
듣는 것도 마찬가지로 종일토록 들으나
그것은 듣는 것 없는 데서 나오므로
듣는 것 역시 무심이다.

 

覺終日覺이나 由爲無覺일새 覺亦無心이며
각종일각이나 유위무각일새 각역무심이며
느끼는 것도 종일토록 느끼나
그것은 느낌없는 데서 나오므로
느끼는 것 역시 무심이다.

 

知由爲無知일새 知亦無心이며
지유위무지일새 지역무심이며
알아보는 것도 종일토록 무엇을 알아보지만
그것은 느낌없는 데서 나오므로
느끼는 것 역시 무심이다.

 

終日造作이나 作亦無作이니 作亦無心이라.
종일조작이나 작역무작이니 작역무심이라.
알아보는 것도 종일토록 무엇을 알아보지만
그것은 앎이 없는 데서 나오므로
아는 것 역시 무심이다.
또 종일토록 짓고 만드나
짓는 것이 지음이 없으므로,
지음 역시 무심이다.

 

故云 見聞覺知總是無心이니라.
고운 견문각지총시무심이니라.
그러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하는 것이
모두가 무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3

問曰 若爲能得知是無心고. 문왈 약위능득지시무심고.
"어떻게 무심인 줄을 알 수 있습니까?"

 

答曰 汝但仔細推求看하라.
답왈 여단자세추구간하라.
"그대가 자세히 추구해보면 된다.

 

心作何相貌며 其心復可得가.
심작하상모며 기심복가득가.
마음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마음이란 것이 과연 얻어질 수 있는 것인가?

 

是心가 不是心가.
시심가 불시심가.
마음인가,
마음이 아닌가?

 

爲復在內아 爲復在外아 爲復在中間가.
위복재내아 위복재외아 위복재중간가.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아니면 중간에 있는가?

 

如是三處推求하나 覓心了不可得이니
여시삼처추구하나 멱심료불가득이니
이렇게 세 군데로 따져서
마음을 찾아보나 전혀 얻을 수 없고,

 

乃至於一切處求覓하야도
내지어일절처구멱하야도
나아가 어디서나 찾아보아도

 

亦不可得이니 當知卽是無心이니라.
역불가득이니 당지즉시무심이니라.
아무데서도 얻을 수 없으니,
무심인 줄을 알아야 한다."

 

4

問曰 師韻旣云一切處總是無心이면
문왈 사운기운일절처총시무심이면
"스승께서 모든 것이 다 무심이라고 하셨으니,

 

卽合無有罪福이어늘
즉합무유죄복이어늘
그렇다면 죄도 복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何故衆生이 輪廻六趣하야 生死不斷고.
하고중생이 윤회육취하야 생사불단고.
그런데 어째서 중생들은 육취에 윤회하며
생사가 끊기지 않습니까?"

 

答曰 衆生迷妄하야 於無心中而妄生心하야
답왈 중생미망하야 어무심중이망생심하야
"중생이 어리석어 무심 가운데서
헛되이 마음을 내어

 

造種種業하야 妄執爲有하야
조종종업하야 망집위유하야
갖가지 업을 짓고
헛되이 있다고 집착하여,

 

足可致使輪廻六趣하며 生死不斷이니라.
족가치사륜회륙취하며 생사불단이니라.
마침내는 육취에 윤회하며
생사가 끊기지 않게 된 것이다.

 

比有人於暗中見 爲鬼하고
비유인어암중견 위귀하고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어두운 데서
나무 그루터기를 도깨비로 보거나

 

見繩爲蛇하야 便生恐怖하나니
견승위사하야 편생공포하나니
새끼줄을 뱀으로 보아
공포심을 내는 것과 같다.

 

衆生妄執도 亦復如是니
중생망집도 역복여시니
중생의 망집도 그러해서

 

於無心中에 妄執有心하야
어무심중에 망집유심하야
무심 가운데서
헛되이 마음이 있다고 집착하여

 

造種種業하나 而實無不輪廻六趣니라.
조종종업하나 이실무불륜회륙취니라.
갖가지 업을 지으나,
실제로는 육취에 윤회하지 않음이 없다.

 

如是衆生이 若遇大善知識하야
여시중생이 약우대선지식하야
이런 중생이 만일 대선지식을 만나

 

敎令坐禪하야 覺悟無心하면
교령좌선하야 각오무심하면
지도를 받고 좌선을 하여 무심을 깨치면,

 

一切業障이 盡皆銷滅하야 生死卽斷하나니라
일절업장이 진개소멸하야 생사즉단하나니라
모든 업장이 다 녹아 없어져 생사가 끊긴다.

 

如暗中에 日光이 一照하면 而暗皆盡하나니
여암중에 일광이 일조하면 이암개진하나니
마치 어두운 곳에 햇빛이
한 번 비치면 어둠이 싹 가시듯,

 

若悟無心하면 一切罪滅도 亦復如是니라.
약오무심하면 일절죄멸도 역복여시니라.
무심을 깨칠 때 모든 죄가 없어지는 것도
그러하다."

 

5

問曰 弟子愚하야 心猶未了하니 문왈 제자우하야 심유미료하니
"제가 어리석어 마음이 아직도 석연치 않습니다.

 

審一切處六根所用者 應答曰語와
심일절처륙근소용자 응답왈어와
6근이 작용하는 모든 곳, 즉 대답하고 말함과

 

種種施爲煩惱菩提 生死跡槃이 定無心否아
종종시위번뇌보리 생사적반이 정무심부아
갖가지 움직임과 번뇌·보리와
생사·열반이
무심이란 말입니까?"

 

答曰 定是無心이니라.
답왈 정시무심이니라.
"그럼, 무심이다.

 

只爲衆生妄執有心하야
지위중생망집유심하야
다만 중생이 마음이 있다고 헛되이 집착하여

 

卽有一切煩惱生死菩提跡槃이니
즉유일절번뇌생사보리적반이니
번뇌·생사·보리·열반 등 모든 것이 있게 된 것이니,

 

若覺無心하면 卽無一切煩惱生死跡槃이니라.
약각무심하면 즉무일절번뇌생사적반이니라.
만일 무심을 깨치기만 한다면
번뇌·생사·보리·열반 등이 모두 없어진다.

 

是故如來爲有心者說有生死하니
시고여래위유심자설유생사하니
그러므로 여래는
마음이 있는 자를 위해 생사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菩提는 對煩惱得名이요 跡槃者는 對生死得名이니
보리는 대번뇌득명이요 적반자는 대생사득명이니
마찬가지로 보리는 번뇌를 상대로 생긴 개념이고
열반은 생사를 상대로 생긴 개념으로서,

 

此皆對治之法이라.
차개대치지법이라.
모두가 다스리는[對治] 법이다.

 

若無心可得하면 卽煩惱菩提亦不可得이며
약무심가득하면 즉번뇌보리역불가득이며
그러므로 얻을 마음이란 것이 없다면
번뇌·보리도 얻을 것이 없고,

 

乃至生死跡槃도 亦不可得이니라.
내지생사적반도 역불가득이니라.
나아가 생사·열반도
얻을 것이 없다."

 

6

問曰 菩提跡槃도 旣不可得이면 문왈 보리적반도 기불가득이면
"보리도 열반도 얻을 것이 없다고 한다면,

 

過去諸佛이 皆得菩提니 此謂可乎아
과거제불이 개득보리니 차위가호아
과거 부처님들이
모두 보리를 얻었다는 말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습니까?"

 

答曰 但以世諦文字之言으로 得이요
답왈 단이세체문자지언으로 득이요
"다만 세속 이치[世諦]인 문자로 말해서
얻었다는 것이지,

 

於眞諦에는 實無可得이니라.
어진체에는 실무가득이니라.
진실된 이치[眞諦]에서는
사실상 얻을 것이 없다.

 

故維摩經에 云
고유마경에 운
그러므로 {유마경}에서도

 

菩提者不可以身得不可以心得이라 하고
보리자불가이신득불가이심득이라 하고
'보리란 몸으로도 얻을 수 없고
마음으로도 얻을 수 없다' 하였고,

 

又金剛經云 無有少法可得이니
우금강경운 무유소법가득이니
{금강경}에서도 '조금도 얻을 법이 없으니,

 

諸佛如來但以不可得而得이라 하니
제불여래단이불가득이득이라 하니
모든 부처 여래는
다만 얻을 것 없음으로 얻으신다' 하였다.

 

當知有心卽一切有하고 無心하면 一切無니라.
당지유심즉일절유하고 무심하면 일절무니라.
그러므로 마음이 있으면 모든 것이 있고,
마음이 없으면 모든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7

問曰 和尙旣云 於一切處盡皆無心이라 하니 문왈 화상개운 어일절처진개무심이라 하니
"스님께서는 모든 것이 다 무심이라고 하셨습니다.

 

木石도 亦無心이니 豈不同於木石乎아.
목석도 역무심이니 기불동어목석호아.
그렇다면 나무나 돌도 무심인데
어째서 (마음은) 목석과 다릅니까?"

 

答曰 而我無心은 心不同木石이니 何以故오.
답왈 이아무심은 심불동목석이니 하이고오.
"내가 무심이라 할 때
그 마음은 목석과는 다르다.
어째서 그런가?

 

如天鼓 雖復無心이나
여천고 수복무심이나
마치 하늘 북이 전혀 마음이 없으나

 

自然出種種妙法하야 敎化衆生하며
자연출종종묘법하야 교화중생하며
갖가지 묘한 법을 저절로 흘려내어
중생을 교화하듯,

 

又如如意珠하야 雖復無心이나
우여여의주하야 수복무심이나
여의주가 전혀 마음이 없으나

 

自然能作種種變現하나니
자연능작종종변현하나니
갖가지 변화된 모습을 자연히 지어 보이듯,

 

而我無心도 亦復如是하야
이아무심도 역복여시하야
나의 무심도 그러하여 비록 마음이 없으나

 

具眞般若하야 三身自在하야
구진반약하야 삼신자재하야
제법실상을 잘 깨달아 참된 반야를 갖추어,
3신이 자재하여

 

應用無妨하나니 故寶積經云하되
응용무방하나니 고보적경운
응용에 막힘이 없다.
그러므로 {보적경}에,

 

以無心意而現行이라 하니 豈同木石乎아.
이무심의이현행이라 하니 기동목석호아.
'마음[心意]이 없이 행동을 나툰다'고 하였으니,
어찌 목석과 같겠는가.

 

夫無心者는 卽眞心也요 眞心者는 卽無心也니라.
부무심자는 즉진심야요 진심자는 즉무심야니라.
이 무심이란
곧 진심을 말한다.
진심이
바로 무심인 것이다."

 

8

問曰 今於心中作이니 若爲修行고. 문왈 금어심중작이니 약위수행고.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마음 속에 짓는 것이 있으니, 어찌 수행해야 합니까?"

 

答曰 但於一切事上에 覺了無心하면
답왈 단어일절사상에 각료무심하면
"무엇에서든지 무심을 깨닫기만 하면

 

卽是修行이니 更不別有修行이니라.
즉시수행이니 갱불별유수행이니라.
그것이 바로 수행이지 따로 수행을 둘 것이 없다.

 

故知無心하면 一切寂滅하야 卽無心也니라.
고지무심하면 일체적멸하야 즉무심야니라.
그러므로 마음이 없으면
일체가 적멸하여
그대로가 무심이다."

 

弟子於是에 忽然大悟하야
제자어시에 홀연대오하야
제자가 여기서 홀연히 크게 깨쳐,

 

始知心外無物하며 物外無心하야
시지심외무물하며 물외무심하야
마음 밖에 물건 없고
물건 밖에 마음 없음을 비로소 알았다.

 

擧止動用皆得自在하야 斷諸疑網하야
거지동용개득자재하야 단제의망하
모든 행동에 자재를 얻어 의심의 그물을 끊고,

 

更無障碍하야 卽起作禮而銘無心하니
갱무장애하야 즉기작례이명무심하니
다시는 걸림이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어나서 절을 하고
무심을 마음에 새기고는

 

乃爲頌曰
내위송왈
노래로 읊었다.

 

心神大寂하야 無色無形하니
심신대적하야 무색무형하니
신령한 마음 아주 고요하여
빛깔도 없고 형체도 없나니

 

覩之不見하고 聽之無聲이라.
도지불견하고 청지무성이라.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소리 없어라.

 

似暗非暗이며 如明不明하야
사암비암이며 여명불명하야
어두운 듯하나 어둡지 않고
밝은 듯하나 밝지도 않아

 

捨之不滅하고 取之無生이로다.
사지불멸하고 취지무생이로다.
버려도 없어지지 않고,
가져도 생기지 않네.

 

大卽廓周法界요 小卽毛端不停하니
대즉곽주법계요 소즉모단불정하니
크기로는 법계를 감싸고
작기로는 털끝도 용납치 않나니

 

煩惱混之不濁하며 跡槃澄之不淸하니라.
번뇌혼지불탁하며 적반징지불청하니라.
번뇌로 뒤섞어도 흐려지지 않고
열반으로 맑혀도 맑아지지 않네.

 

眞如本無分別하나 能辯有情無情하니
진여본무분별하나 능변유정무정하니
진여는 본래 분별이 없으나
유정과 무정을 가려내니

 

收之一切不立하고 散之普遍含靈하야
수지일절불립하고 산지보편함령하야
거둬들이면 아무것도 설 자리 없고
흩어놓으면 모든 중생에 두루하여

 

神妙非知所測이며 正覺絶於修行이니라.
신묘비지소측이며 정각절어수행이니라.
그 신묘함은 앎으로 헤아릴 바 아니며
정각에는 수행이 끊겼네.

 

滅則不見其壞하고 生則不見其成이니
멸칙불견기괴하고 생칙불견기성이니
없어져도 그 무너짐을 보지 못하고
생겨나도 그 이뤄짐을 보지 못하니

 

大道寂兮無相하고 萬像窈兮無名하야
대도적혜무상하고 만상요혜무명하야
대도는 고요함이여! 모양이 없고
만상은 그윽함이여! 이름 없어라.

 

如斯運用自在하고 總是無心之精이로다.
여사운용자재하고 총시무심지정이로다.
이처럼 자재한 운용이 모두가
그대로 무심의 정묘[精妙]함이로다.

 

9

和尙又告曰 諸般若中에 화상우고왈 제반약중에
스님께서 다시 일러주셨다.

 

以無心般若而爲最上하나니
이무심반약이위최상하나니
"여러 가지 반야 중에 무심반야가 으뜸이다.

 

故維摩經云 以無心意無受行하나
고유마경운 이무심의무수행하나
그러므로 {유마경}에서는
'心意도 없고 受行도 없으나
而悉催伏外道라 하고 이실최복외도라 하고
외도를 모두 꺾어버린다'고 하였다.

 

又法鼓經云 若知無心可得하면
우법고경운 약지무심가득하면
또 {법고경}에서는
'만일 얻을 마음이 없음을 알면

 

法卽不可得이며 罪福亦不可得이며
법즉불가득이며 죄복역불가득이며
법도 얻을 것이 없으며,
죄도 복도 얻을 것이 없으며,

 

生死跡槃亦不可得이며 乃至一切盡不可得이니
생사적반역불가득이며 내지일절진불가득이니
생사도 열반도 얻을 것이 없다.
나아가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으니,

 

不可得도 亦不可得이니라
불가득도 역불가득이니라
얻을 것 없다는
그것마저도 얻을 것이 없다'고 하였다."

 

乃爲頌曰
내위송왈
그리고는 노래로 말씀하셨다.

 

昔日迷時爲有心하야
석일미시위유심하야
지난날 미혹할 때는 마음이 있더니

 

今時悟罷了無心하니
금시오파료무심하니
이제 깨닫고 나니 무심이어라.

 

雖復無心能照用하야
수복무심능조용하야
무심이긴 하나 비추고 쓰나

 

照用常寂卽如如로다.
조용상적즉여여로다.
항상 고요한 비춤과 쓰임은
그대로 여여하여라.

 

重曰
중왈
다시 노래로 말씀하셨다.

 

無心하야 無照亦無用하며
무심하야 무조역무용하며
무심하여 비춤도 없고 쓰임도 없나니

 

無照無用卽無爲로다.
무조무용즉무위로다.
비춤 없고 쓰임 없는 그것이 바로 무위로다.

 

此是如來眞法界며
차시여래진법계며
이것이 여래의 진실된 법계라

 

不同菩薩與僻支니라.
불동보살여벽지니라.
보살·벽지불과는 같지 않도다.

 

言無心者는 卽無妄想心也니라.
언무심자는 즉무망상심야니라.
여기서 무심이란 망상없는 마음을 말한다.

 

10

又問 何名爲太上고. 答曰 太者는 大也요 우문 하명위태상고. 답왈 태자는 대야요
또 물었다.
"무엇을 太上이라 합니까?"
"太는 크다는 뜻,

 

上者는 高也니 窮高之妙理故云太上也니라.
상자는 고야니 궁고지묘리고운태상야니라.
上은 높다는 뜻이다.
가장 높은 묘한 이치이므로 태상이라고 한다.

 

又太者通泰之位也니 三界之天이
우태자통태지위야니 삼계지천이
달리 말하자면
太는 크게 통달한[通泰] 지위를 말한다.
3계의 하늘들이

 

雖有延康之壽나 福盡할새
수유연강지수나 복진할새
수복강녕을 누리나
복이 다함으로써
是故終輪廻六趣하나니 未足爲太요 시고종륜회륙취하나니 미족위태요
결국 6취에 윤회하게 되니,
크다[太]할 수는 없다.

 

十住菩薩이 雖出離生死而妙理未極亦未爲太하며
십주보살이 수출리생사이묘리미극역미위태하며
10주보살도 생사는 벗어났지만,
묘한 이치를 다하지는 못했으므로
역시 크다 할 수 없다.

 

十住修心도 亡有入無하야
십주수심도 망유입무하야
10주 修心도 有를 없애고 無에 들어가,

 

又無其無有雙遣하나 不忘中道일새
우무기무유쌍견하나 불망중도일새
유무를 동시에 떨쳐버리는 것마저 없긴 하나,
중도를 잊지 못했으므로

 

亦未爲太며 又忘中道하야
역미위태며 우망중도하야
그 역시 크다 할 수 없다.
나아가 중도를 잊어

 

三處都盡하야 位階妙覺이라
삼처도진하야 위계묘각이라
세 곳이 모두 다해야만
묘각의 지위인데,

 

菩薩이 雖遣三處하나
보살이 수견삼처하나
보살이 세 곳을 다 떨어버리기는 했으나

 

不能無其所妙亦未爲太니라.
불능무기소묘역미위태니라.
묘하다는 당처를 없애지는 못했으므로
역시 크다 할 수 없다.

 

又忘其妙하면 則佛道至極도
우망기묘하면 칙불도지극도
그 묘함을 잊으면
지극한 불도라도

 

則無所存이요 無存思則無思慮라도
칙무소존이요 무존사칙무사려라도
설 자리가 없고,
생각을 용납하지 않으면 생각없다는 것마저도

 

兼忘하야 心智永息하고
겸망하야 심지영식하고
함께 잊어서,
心과 智가 영원히 쉬고

 

覺照俱盡하야 寂然無爲라
각조구진하야 적연무위라
覺과 照가 동시에 다하여 적연무위하니,

 

此名爲太也니라. 太是理極之義며
차명위태야니라. 태시리극지의며
이것을 크다[太]고 하는 것이다.
太는 이치가 극에 다다랐다는 뜻이며,

 

上是無等等也니 故云 太上하니라.
상시무등등야니 故云 태상하니라.
上은 견줄 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태상이라 하는 것이니,

 

卽是佛如來之別名也니라.
즉시불여래지별명야니라.
바로 부처·여래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