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晦齋의 道學的 詩世界

醉月 2013. 1. 24. 01:30
晦齋의 道學的 詩世界
李 東 歡

晦齋 李彦迪은 자신의 인생목적을 '養眞 經世'로 설정했다. 자신에 內在하는 天賦의 道德性을 涵養하여 聖人의 境域으로 나아가며, 여기에 의거하여 자기시대의 君民을 堯舜時代化하고자 하는 것을 자신의 人生理想으로 삼았다. 그의 이러한 이상은 21세 때 지은 <問津賦>에서 孔子의 濟世活動에 대한 열정적인 찬미를 통해 간접적이기는 하나 이미 표방되어 있었다. 즉 "道는 堯舜을 이어받고 仁은 萬物을 生育하는 天地와 나란해서 生民에 대해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고 天下에 대해 근심을 크게 하고서는" "宇宙를 經綸하고 民物을 化育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위대한 孔子"의 出仕의 의도를 일개 小丈夫的인 隱者인 長沮 傑溺 따위가 어떻게 알겠느냐는 논리와 호흡 속에서 晦齋 자신의 인생이상의 강렬한 投射를 읽을 수 있다.

 

특히 養眞의 이상은 그 뒤로 거듭 직접적으로 표명되었다. 24세 때 文科에 급제하고 첫 出仕를 위해 서울에 당도해 지은 <西征詩>에서 "평생토록 뜻이 구차하지 않으리니/希求하는 바는 오직 聖哲이라네."라고 한 것을 위시해서 27세 때 쓴 <元朝五箴> 중의 <篤志箴>에서 "학문을 하면서 聖人을 희구하지 아니하는 것, 이것을 일러 스스로 限界지음이라 하지."라고 한 것과 30세 때 쓴 <立箴>에서 "眞을 쌓아가고 힘씀을 오래 하면 聖人의 경역에 들어가기를 기약할 수 있으리."라고 한 것 등이 그것이다. 周濂溪가 "聖人은 하늘을 희구하고, 賢人은 성인을 희구하고, 士는 현인을 희구한다."고 했거니와, 성인을 희구함[希聖]은 道學者 일반이 다 갖는 이상으로서 유독 회재만이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희구의 독실함과 아울러 은연중의 자신감―그 信念化의 정도에 있어서 회재는 다소 남달라 보이는 듯하다. 圍籬安置라는 極限狀況 속에서도 "하늘을 섬김에 극진하지 못함이 있는가? 君親을 위함에 성실치 못함이 있는가? 마음 가짐에 바르지 못함이 있는가?"라고 一日三省했다는 그의 만년 謫所에서의 생활 같은 것도 그 端的인 예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러한 養眞의 인생목적에 설정된 이상적인 自我像으로서의 聖人에 대응하는 經世에서의 그것은 본인 자신 구체적으로 표명한 바는 없다.(실은 본인이 구체적으로 표명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退溪가 회재의 行狀에서 "(회재는) 항상 君民을 堯舜時代化하는 책임을 自任했다."고 한 말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그의 <問津賦>에 등장하는 伊尹 周公 后稷 契 같은 經世家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실은 회재 자신으로부터의 간접적인 示唆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西征詩>에서 "머리들어 北極을 바라보니/白日이 지척에 임했구나//風雲이 浩然히 가이 없으니/九萬里 하늘로 날개 떨칠만 하구나."라고 한 것, 그리고 27세 때의 작품 <孤松>에서 "기둥이며 들보 되려 하지만/도끼질들 해오니 어찌 하랴."라고 한 것이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다. 회재의 이 經世에의 의지는 동시대의 다른 도학자들, 이를테면 회재보다 2년위인 徐花潭과 10년아래인 李退溪 曺南冥 같은 이들이 養眞에만 치중했던 점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다. 그의 29세 때 趙靜菴의 참담한 좌절을 목격하고서도, 그리고 바로 그 자신 政變의 희생을 겪으면서도 下世의 마지막 순간까지 '堯舜君民'의 경세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던 회재의 인생 자세는 그의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에도 시사하는 바 크지만 16세기 思想史的 文脈에서도 유의해 볼 만한 점이라고 하겠다.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회재의 著作은 주로 그의 인생 목적이 養眞 經世라는, 개인 및 사회 차원에서의 實踐에 求心點을 둔 바로 이 점에 의해 주로 規定되고 있다. <元朝五箴>을 위시한 일련의 箴 銘과 ≪求仁錄≫은 개인차원에서의 실천인 養眞의 深化 내지 擴大에의 요구에, <一綱十目疏>를 위시한 일련의 疏 箚 啓 狀과 <進修八規> ≪中庸九經衍義≫ 및 그 ≪別集≫은 사회차원에서의 실천인 經世의 時務와 擴展에의 요구에 응해 나온 것이다. 그의 저작 중 理論性이 가장 높은 <書忘齋忘機堂無極太極說後> <答忘機堂書> 4편과 ≪大學章句補遺≫ ≪續大學或問≫도, 도학의 이론들은 기본적으로 실천지향성을 가지기는 하지만, 그 이론들의 總體에서 놓일 座標는 그 실천지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이다. 결국 회재의 저작 대부분은 그의 到底한 실천의식의 地平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결론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生涯에서 가지게 되는 하나의 疑案 ― 즉 金安老 일파에게 구축되어 山林에 隱居하던 그의 41세에서 47세 사이에 가령 [無極太極論]에 後續되는 이론적 저작이 나올 법 했음에도 어찌하여 나오지 않았던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의 한 단서도 얻게 된다. 즉 당시 우리 나라의 도학 수용의 정도가 가진 客觀的 限界에도 요인의 일부가 있었겠지만 회재 자신의 主觀的 立場에서는 자신의 실천이 감당할 만한 지평을 넘어서는 이론적 추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에 열거한 저작들과 함께 회재의 저작 중 중요한 一部가 되고 있는 그의 詩 作品도 그의 養眞 經世의 실천적 삶과 무관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특히 養眞과는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도학자들에 있어 詩를 짓는 일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道學의 思惟나 道學的 人格境界에는 확실히 審美情調를 유발할 素地나 일종의 審美的 局面이 있다. 生成과 和諧를 특징으로 하는 그 世界觀, 객관적 분석적이 아니라 直觀的 知覺的인 그 事物認識의 方式에는 思惟主體로 하여금 심미정조를 유발하게 할 契機들이 충분히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人格涵養의 과정이나 결과에서 체험하는, 흔히 '光風霽月'이라고 매우 詩的으로 묘사되는 精神境界는 自己超克에서 오는, 對自的으로는 自我의 自由의 상황, 對他的으로 자아의 世界와의 和諧의 상황을 涵有하고 있어, 興趣 悅樂이라는 일종의 藝術的 情感이 일어날 素地를 가지고 있다. 이 경계의 극치를 도학에서는 朱晦庵이 '與天地萬物上下同流, 各得其所之妙'라고 규정한 孔子의 유명한 '與點之嘆'에 묘사된 경계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 '與點之嘆'에 묘사된 경계는 실은 매우 예술적이다. 이로 보면 도학 내지 유학에서의 도덕적 인격의 성숙과정에는 일정한 藝術的 性向이 빚어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 경계를 現實的인 社會關係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實現하는 것이 도학 내지 유학에서의 삶의 기본 志向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音樂 또는 詩와 같은 藝術樣式으로서의 표현욕구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道德價値를 至上으로 추구하는, 더구나 '玩物喪志'를 경계하는 도학자들이 도덕가치와는 그 範疇를 달리하는 藝術價値에 속하는 詩作行爲를 하게 된 道學自體內에서의 經路다.

 

晦齋의 詩作의 動因도 주로는 이 도학자체내의 경로에 있었다. 그러므로, 진실로 도학을 지향한 사람이라면 거개 그러하겠지만, 회재는 詩를 쓰기 위해 자신의 平常的 삶의 자리를 떠나 따로 自我의 立地를 마련하지 않았다. 자신의 평상적 삶의 地平이 곧 詩의 지평이다. 東洋藝術의 일반적 성향이 대개 그러했지만 특히 도학자들, 이 중의 한 사람인 회재는 原初의 '詩言志'觀에 매우 투철했던 셈이다.

晦齋는 모두 248題―390首의 시작품을 남겼다. 그의 文集의 編次에 의거하면 이들 작품은 그의 24세에서 작고하던 63세까지 40년에 걸쳐 지어진 것이다. 이로 보면 그는 詩作에 매우 節制的이었던 셈이다. 절제적이었다는 것은 시작을 한갓 閑事로 보았다는 뜻이 아니라 거꾸로 시작에 임하는 자세가 매우 眞摯했음을 뜻한다. 이 점은 그의 작품 전체에서 社交的인 酬酌으로 보이는 작품이 점하는 비율이, 詩를 專業으로 하지 않은 과거 識字人들의 詩集에 보이는 일반적인 情況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며(20여 題 정도) 이들 작품도 대부분 虛套가 아니라 '言志'的 진실을 표명하고 있는 데에서도 端的으로 드러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도학자들의 시가 文學史에서 餘他 作家들의 작품성향과의 사이에서 辨別的인 認識이 요구된다면 그것은 그들의 시에 있어서의 道學的 思惟나 體質과의 연관성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회재의 시는 한 典型的인 面貌를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작품 중 質的 成就度가 상대적으로 높은 작품들은 대부분 도학적 사유, 특히 그 世界觀 思惟 자체를 詩的 思惟로 삼은 경우다. 忘機堂 曺漢輔와 無極太極 문제를 爭論한 27 8세로부터 마지막 謫居時期에 이르기까지 도학의 세계관 사유가 그의 시적 사유의 基調로 흐르고 있는 가운데에 특히 忘機堂과의 논쟁 이후 몇 해 동안과 40代 隱居期 6 7년 동안에 지어진 작품들에 이 방면의 작품이 일정한 量的 密集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質的 成就度에 있어서는 은거기의 작품들이 단연 두드러져 보인다. 여기에서 우리는 회재의 은거기 생활에 대한 퇴계의 묘사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精密함을 다듬고 思索을 깊이 하여 고요함[靜] 가운데에 功을 들임이 그 이전에 비해 더욱 깊고 專一하였다. 이러고 난 뒤에야 종래에 듣기만 하고 마음에 썩 契合되지 못했던 문제들이 비로소 心神에 融會되어 자상하고도 절실하게 體驗됨이 있었다.  恬한 意趣를 涵養하여 오랜 세월을 두고 쌓으면서 性理에 沈潛하여 聖賢들의 進修의 방도를 따르고 高明의 境界에 마음을 놀아 솔개 날고 고기 뛰어 오르는 天理流行의 오묘함을 즐겼다.

 

그런데 회재는 정작 퇴계의 이러한 묘사에 상응할 만한 도학 관계의 이론적 저작을 남긴 바 없다. 오직 1권 분량의 시작품만 남겼을 뿐이다. 결국 그는 이 시기에 哲學으로 詩를 짓고, 詩로써 哲學을 사색했다고 함직하다. 퇴계의 위와 같은 묘사도 아마 회재의 이 시기의 詩作品에 나타난 바에 의거해서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철학으로 시를 지었다는 것은 유독 그의 은거기의 작품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의 道學詩 전반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작품으로서의 성취도가 이 방면의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밀도를 보이는 점에 유의하여 本稿에서는 이 방면의 작품을 대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먼저 회재 도학시의 일반적인 특성을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검증에는 역시 회재의 대표작으로 공인되어 온 <林居十五詠> 중의 <無爲>를 例로 드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萬物變遷無定態   철따라 萬物은 새론 모습 나투어 오는구나,
一身閑適自隨時   내 사뭇 閑適해 절로 따라 사네.
年來漸省經營力   이즈막엔 점차 일 꾀하는 힘 줄이어,
長對靑山不賦詩   길이 靑山 마주하고 詩조차 짓지 않네.
[文集 卷二]

 

보다시피 이 작품은 詩로서의 形象的 表現이라고는 끝 行의 '長對靑山'정도일 뿐 全篇이 주로 槪念的 陳述로 되어 있다. 진술된 내용으로서의 詩想 자체도, 마지막 행이 가진 實際와의 逆說性(이 詩를 지으면서 짓지 않는다는)이 주는 일정한 緊張을 제하고 나면 별로 참신하다고 할 것도 없는, 평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新鮮하고 重厚한 感動力을 가지게 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이 진술을 받쳐주고 있는 浩然한 氣의 力量에 의해서다. 호연한 氣에 실림으로써 평범해 보이던 진술 내용에 隱藏되어 있던, 春 夏 秋 冬 四時의 變換으로 대변되는 宇宙運行과 여기에 平行하고 있는 詩的 自我[즉 作者]의 삶의 태도가 巨大한 하나의 이미지로서 떠오른다.

 

그리고 거대한 이 우주운행의 이미지는 그 속에 도학적 관점에서의 우주의 屬性―즉 永遠과 無限, 그리고 無作爲의 沈默 속에서의 萬物生成의 持續的인 움직임에의 喚起를 함유하는 한편, 이 宇宙態에 全幅으로 平行 一致하고 있는 詩的 自我의 삶의 태도[無爲의 삶]는 이러한 삶이 至高의 聖的인 삶의 境界로 인식되어 온, 作品外의 文化的 文脈에 의해 價値論的 共感을 일거에 전폭으로 울려줌으로써 작품의 意味가 완결된다. 氣의 받침에 의하여 진술 내용이 함유하고 있던 이러한 의미가 발휘될 때 끝 행의 역설성이 갖는 긴장이 비로소 의미의 발휘를 비상하게 提高시켜 주는 효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평범해 보이던 진술 내용을 詩的인 形象的 意味로 완결케 한 氣의 역량은 작품의 어느 요소를 媒介로 작용해 오는가? 이것은 주로 韻律을 매개로 해서다. 작품의 形式要素에 대한 작자의 裁量幅이 극히 제한적인 近體詩의 경우 작자가 운율에 재량할 수 있는 곳은 주로 글자의 소리 및 소리의 連結樣式과 이것이 빚어내는 呼吸에 있다. 이 例詩의 경우 특히 첫 행과 끝 행에서 그 소리의 효과가 고도화되어 있다.

 

첫 행의 경우 일곱 글자의 終聲이 모두 有聲音系인데다가 첫 두 글자의 初聲까지도 有聲子音系여서 全行의 소리 感覺[또는 호홉의 樣態]이 막힘없는 흐름의 그것으로 되어 진술 내용인 '自然物象들의 계절에 따른 변화의 흐름'이란 의미와 혼연히 合致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끝 행의 경우 특히 '장대청산(長對靑山)' 네 音節 중 세 음절이 'ㅇ ㅇ ㄴ'과 같은 강한 유성 종성음에 'ㅈ ㅊ ㅅ'과 같은 강한 무성 초성음이 對極的으로 어울리는 데에서 오는 높은 긴장은 소리의 映象을 특히 강화시켜 全行을 압도함으로써 진술된 내용에 대한 강한 眞實感을 부여해 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둘째 행은 무성음계에 대한 유성음계의 비율이 첫 행에 비해 급격히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첫 행의 의미를 더욱 高揚시키고 있으며, 셋째 행에 이르러서 그 비율이 다시 높아지면서 끝 행의 강한 소리 영상의 絶頂을 향하는 高潮感이 마련되어 있다. 소리 효과의 詩行 사이의 虛實 按配다. 그런데 이 시의 文脈上의 意味의 비중은 끝 행에 가장 크게 놓여 있고 (絶句體의 일반 준칙이기도 하지만) 그 다음으로는 첫 행이다. 이 문맥상의 의미 비중이 소리의 詩行間의 虛實 안배와 일치됨으로써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 시의 작자가 시를 지을 때 위에서 分析해 보인 바와 같은 소리의 효과를 세세히 저울질해서 안배해 지었다고 볼 수는 없다. 객관적으로 명확히 立證할 수는 없지만, 이 例詩뿐 아니라 晦齋詩의 전반적인 表現感覺에 비추어 보건대 지배적으로는 氣의 자연스러운 流出에 의지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

 

그렇다면 東洋藝術論에서 主要 範疇의 하나인 이 氣의 實體는 무엇인가? 孟子는 "氣는 사람의 몸에 충만되어 있는 그 무엇이다.(氣, 體之充也)"라고 했다. 즉 사람의 몸에 충만되어 있는, 生理要素의 하나 ― 生命의 精粹的 要素로서의 일종의 에네르기다. 그런데 순전한 생리 요소로서의 氣 자체만으로는 예술 작품의 효과와는 무관하다. '養氣'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養氣는 한마디로 生理作用의 精神化다. 또는 정신의 생리작용화다. 孟子가 "志는 氣의 統率者다.(志, 氣之帥也)"라고 한 논리에 근거해서 바꾸어 표현하면 생리작용에 대한 정신의 支配力의 擴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은 어떤 성질의 價値든 가치에 대한 일정한 志向性을 가진다. 따라서 도학자들에게 있어 養氣란 그들이 생각하는 道德價値에 지향된 정신으로 자신들의 생리작용을 길들이는 일이다. 회재의 養眞이란 다름아닌 바로 이 養氣다.

 

그러나 도덕가치에 지향한 정신이 아무리 높은 정도로 자신의 생리작용을 지배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바꾸어 말하면 人格涵養이 아무리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이 자체로서는 그 수준에 상응하는 수준의 예술작품의 産出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表現技能의 修鍊이 가담되어야 한다. 기능의 수련도 결국 氣 즉 生理作用의 技能化, 또는 기능의 생리작용화다. 일종의 養氣인 것이다. 정신의 생리작용화에는 선천적인 稟性이 作用力을 가지듯이 기능의 생리작용화에는 선천적인 才質이 작용력을 지닌다.

 

정신과 기능과의 관계는 한 主體의 氣를 각각 다른 방향에서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구분되나 支配領域을 共有하고 있다는 조건에 의해 有機的인 連繫 結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을 연계 결합시켜 주는 媒介者가 表現欲求 또는 創作衝動이다. 예술작품은 결국 한 주체의 氣에 대한 정신과 기능의 두 지배력이 표현욕구의 매개로 연계 결합된 결과의 産物이다. 그러므로 작품의 感動力의 强弱은 정신과 기능이 도달한 수준의 높낮이와 이 둘의 氣의 영역에서의 結合 정도의 높낮이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이 둘의 결합 정도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것은 표현 욕구 또는 창작충동의 眞實性의 정도다.

 

퇴계가 회재를 두고 "力學能文"이라고 했거니와 회재는 文學에 대한 일정한 선천적인 才分과 그리고 科擧制度下의 士子의 한 사람으로서 표현기능에 대한 일정한 수련이 있었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 보는 바로는 養眞에 의한 정신역량, 즉 精神化된 氣의 역량과 표현욕구의 진실성에 더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李芝峰과 申紫霞의 "문학을 專業으로 하는 사람들의 미칠 바가 아니다."라고 한 評言도 역시 그의 시의 이런 風格에 着目해서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회재의 人格에 대한 퇴계의 묘사를 想起해 볼 필요가 있다. "말은 입밖에 내지 않을 듯, 몸은 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할 듯 했으나, 姦邪를 물리치고 나라의 危疑를 안정시켜야 할 階梯에 이르러서는 곧바로 앞으로 나아가 두려움이라고는 없는 품이 孟賁 夏育같은 勇士라 하더라도 그 精神을 빼앗지 못할 정도였다."라고 했다. 柳西厓의 "그 세운 바가 우뚝히 솟아......평생 直道로써 行하고, 돌리고 꼬는 바가 없었다."라고 한 묘사도 아울러 참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리고 회재 자신 흔히 '靑山' '靑松'을 가지고 스스로 眺望하는 自我像을 비유해 표현하기도 했다.

 

회재의 人格境界에 대한 이러한 타인들의 묘사나 자신의 조망이 위의 例詩에서 感覺되는 風格의 형태와 상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과 작품과의 일치를 강조해 온 것이 동양예술의 主潮였거니와 회재와 그 시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그 전형적인 한 예를 보게 된다.

晦齋의 道學詩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主題는 宇宙生命과 自我와의 交感이다. 도학의 世界觀은 기본적으로 生命 和諧의 生機論的 性格이 강하고 보면 도학의 이 세계관 사유를 자신의 詩的 思惟로 삼은 회재 도학시의 당연한 趨向이라고 할 수 있다.
萬象紛然不可窮 森羅萬象   어지러워 종잡을 수 없더니,
一天於穆總牢寵 深遠         한 하늘[一天]이 모두를 주무르고 있는 걸.
雲行雨施神功博                신령한 공덕 넓기도 해라, 구름 다니며 비 내리게 하네.
魚躍鳶飛妙用通                오묘한 작용 두루 사무쳤구나, 고기는 뛰고 솔개는 날게 했네.
雖曰有形兼有跡                형상으로 있고 자취로 있다 하나,
本來無始又無終                본래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걸.
沈吟默契乾坤理                나직히 乾坤理와의 默契 읆조리며,
獨立蒼茫俯仰中                창망한 天地 가운데에 홀로 섰네.
[感興, 文集 卷一]

 

이 시는 회재의 31세 때의 작품으로 도학에서의 '天道流行' 또는 '化育流行'이라는 本體界의 萬物生成의 壯觀을 향한 '感興'을 詩化한 것이다. 詩想은 도학의 세계관 사유의 전형적인 틀의 하나이고, 詩語와 語法과 또한 도학에서 恒茶飯으로 쓰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일정하게 詩的 轉換에 이르게 된 것은 滔滔하게 抑揚하는 韻律의 呼吸이 '深遠한 한 하늘[一天]'의 만물생성의 장관에 부합하면서 이러한 호흡과 함께 마지막 聯에서의 自我의 宇宙와의 感慨하게 高揚된 만남이 意味의 餘韻을 남겨 주기 때문이다.

 

이 시의 사유에서 특히 유의할 局面은 셋째 연과 넷째 연에 있다. 셋째 연에서의 고기며 솔개 같이 '형상으로 있고 자취로 있는' 것이 '본래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라 했다. 이것은 구체적 個體로서의 現象界의 만물 各者는 孤立的이고 有限한, 따라서 虛妄한 存在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永遠한 實在인 宇宙生命의 現前者임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世界內 구체적 개체들의 生滅은 고립적인 허망한 一回事가 아니라 과거로는 '처음도 없고' 미래로는 '끝도 없는' 우주생명의 永遠性을 涵攝하고 있는 것이 된다. 더구나 도학적 관점에서 人間은 우주생명의 온전한 稟受者, 따라서 만물 가운데 가장 빼어난 現前者다. 그 究極의 地位는 天地의 化育도 協贊할 수 있어서[可以贊天地之化育] 천지와  立할 수 있는[可以與天地參矣] 자다. 넷째 연에는 宇宙의 主體로서의 自我에의 이같은 비전이 含蓄되어 있다. 특히 끝 행의 '홀로 섰네[獨立]'에는 宇宙生命秩序에 닿은 超人으로서의 主體的 自我에의 眺望이 강하게 함축되어 있다. 자아를 우주생명과 함께 영원하며 우주와 병립하는 비전에서 감개로운 高揚으로 인식하는 것은 우주생명과의 卽自的 合一, 바꾸어 말하면 內的 超越이다.

 

회재의 시에는 몇 가지 특정 낱말이 빈번하게 나오고 있어 그의 시세계의 이해에 요긴한 단서가 되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獨立'의 '獨'은 그 중의 하나로, 自我의 강한 主體意識을 징표하는 하나의 모티프로 되어 있음을 본다. 그리고 이 자아의 강한 주체의식은 世俗的인 것으로부터의 超脫 孤高나, 宇宙生命과의 合一의 비전에서 자아를 인식하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위의 시가 거의 같은 視角으로 쓰여진 그의 45세 때의 다음 작품을 음미해 보자.
乘興逍遙展眺遐    흥겨워 거닐다 머얼리 바라보니,
暮天雲盡碧山多    저녁 하늘 말끔해 산빛 더욱 짙구나.
茫茫宇宙無終極    茫茫한 宇宙는 끝남이 없어라,
俯仰長吟浩浩歌    굽어 보고 우러러 보며 느긋이 '넓기도 해라 하늘이여[浩浩其天]' 읊조리네
[樂天, 文集 卷二]

 

자아와 우주와의 관계 설정의 시각에 있어서나 內含하고 있는 詩的 思惟의 脈絡에 있어서나 위의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전반적으로 위의 작품에 비해 內向的이면서 다분히 靜的이다. 위의 작품에서의 現象界 萬物을 매개로 한 '深遠한 한 하늘'의 거대한 生成의 壯觀이 이 시에서는 구름 한 점 없이 透明하고 靜的인 하늘의 영상에 融解되어 裏面化되어 있다. 따라서 '말끔함'이 단순히 虛가 아니라 至實을 함유하고 있으며, 靜 가운데에는 生成의 거대한 動의 持續이 함유되어 있다. '말끔한 하늘'에 함유된 이 우주생명의 實狀은 이 시의 끝 행에 이르러 全幅으로 自我에게로 內面化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회재 자신의 ≪求仁錄≫ 중의 다음과 같은 按說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聖人이 人倫의 道를 극진하게 발휘하여 天下 後世에 法이 되는 것은 모두 至誠 懇惻한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도탑기도 해라 그 仁이여'라고 한 것이다. 그 性이 된 바 本體를 온전하게 하여 치우치거나 기울어지는 폐단이 없이 眞源이 고요하고 깊어서 그 내놓음이 다함이 없기 때문에 '깊기도 해라 그 深淵이여'라고 한 것이다. 本性을 극진하게 발휘하여 天命에 도달하여 至誠 仁愛의 마음이 天地가 萬物을 造化 生育하는 功에 默契됨이 있어 그 德이 넓기가 마치 하늘이 덮어 주지 않는 것이 없음과 같기 때문에 '넓기도 해라 그 하늘이여'라고 한 것이다.
이 詩 끝 행의 '넓기도 해라 하늘이여'에는 이 按說에서와 같은 思惟가 함축되어 있다. '끝남이 없는' '茫茫한 宇宙'를 '굽어 보고 우러러 보며' 이미 '天命에 이른' 聖人의 德을 읊조리는 詩的 自我의 몸짓에는 그 聖人의 자리에 自我를 들여 세움으로써 영원하고 무한한 宇宙生命을 자아 안에 涵攝, 內在化시키는 契機가 움직이고 있다.

 

宇宙 普遍生命의 함섭으로 天地의 化育에 契合하는 삶 ― 구체적으로는 仁의 고도한 實現 ― 이 곧 天命에의 도달이다. 이러한 천명에의 도달을 향한 上昇으로 세속적인 榮辱에의 관심과 有限한 個別者로서의 인간의 현실적인 조건을 넘어서는 자리에 道學的 樂天의 삶이 있다. 이 시에 '樂天'이라 제목한 緣由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주어진 삶의 조건을 消極的으로 順受하는 태도의 樂天과는 다른 성격의, 말하자면 積極性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樂天으로 귀결되는 晦齋의 이 詩에서의 우주와 자아와의 관계는 가령 唐代의 시인 陳子昻의 <登幽州臺歌>같은 작품을 떠올려 보는 데에서 보다 선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前不見古人     앞으로는 옛 사람들을 보지 못했고,
後不見來者     뒤로는 오는 이들을 보지 못하리.
念天地之悠悠   天地의 悠悠함 생각하노라니,
獨愴然而涕下   홀로 구슬피 눈물이 흘러 내리네.

 

다같이 우주와 자아와의 관계를 다루면서도 陳子昻의 시에서는 한 個體의 삶이 우주의 영원함으로부터 游離된, 따라서 虛妄한 一回事로 되어 있음을 본다. 그래서 陳氏의 시에서의 '獨'은 한없이 矮小하고 孤獨한 존재로서의 영상을 함유하고 있어, 晦齋의 시에서의 '獨'이 우주에 맞닿으려는 超人으로서의 영상을 함유하고 있음과는 對極的으로 다름을 아울러 알 수 있다.

 

앞에서 든 작품에서의 '感興'이나 위의 작품에서의 '樂天'의 '樂'은 모두 우주생명과의 교감에서 오는 즐거움을 가리킨다. 굳이 題目으로 표출해 두지 않은 그의 여타 도학적 사유의 어느 작품에서나 이 즐거움의 情感이 흐르고 있어 그의 도학시 전반의 基調 情感이 되고 있다. 우주생명과의 교감에서 오는 晦齋詩에서의 이 즐거움의 정감을 필자는 '宇宙的 愉悅'이라고 일컫고자 한다. 이 우주적 유열이 실은 회재 도학시 창작의 근본 동인이다.

 

회재의 시가 늘 巨視的인 시각으로만 우주생명과의 교감에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20代末에서 30代에 지어진 이 계열의 작품들에서는 대체로 外向的 巨視性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으나 40代 隱居期에 이르러서는 주로 山水의 局所的 景物을 媒材로 접근하면서 전자에 비해 보다 內面化로 沈潛하는 경향을 보임과 함께 作品의 精鍊度도 훨씬 높아진다. 이 시기 그의 생활에 대한 퇴계의 묘사에서 알 수 있는 바 그의 道學이 체험적으로 精熟하게 된 사실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春深山野百花新    봄 깊자 산과 들에 온갖 꽃들 새로워,
獨步閑吟立澗濱    한가로이 읊조리며 호올로 거닐다 시냇가에 선다.
爲問東君何所事    묻노니 봄의 神 한 일이 무엇이더뇨,
紅紅白白自天眞    붉은 꽃은 붉게 흰 꽃은 희게 피어 저절로 天眞일세.
[林居十五詠의 暮春, 文集 卷二]

 

시적 사유가 깊을수록, 그리고 그 情趣의 格이 높을수록 형식과 표현이 보다 단순해지는 것을 漢詩 일반에서 우리는 흔히 본다. 위의 작품도 그 文面에 나타난 바로는 詩想의 구도나 표현이 七言絶句體 치고도 단순한 편에 속한다. 이 단순함으로 해서 오히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脫俗的 隱者의 林居의 高雅한 情趣가 온전하게 전달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위의 작품은 한편의 성공적인 서정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서정시에서의 自然景物에의 인식도 단순히 感覺的 審美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고아한 정취의 基底에는 역시 작자의 우주 사유가 잠겨 있다. 이런 점에서 內面的으로는 여전히 巨視的 시각이다. 개념적으로 규정하면 '天道流行'과 '理一分殊'가 그것이다. 첫 행에서의 '새로워[新]'는 '온갖 꽃들'의 감각적인 新鮮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주생명의 '生生不息'으로부터 온 새로움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새로움은 또 '生生不息'으로부터 온 새로움을 감탄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는 자아의 삶에 대한 自己回視가 投射되어 있다. '나날로 새롭고 또 나날로 새로워라(日日新, 又日新)'가 그것이다. 끝행은 이 시에서 抒情性을 가장 짙게 감각케 하는 표현이다.

 

이 서정적 표현 속에는 그러나 '붉은 꽃'과 '흰 꽃'과의 인상적인 대조에서 '一理'의 각기 다른 具體生命으로서의 現前을 보는 감탄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 어구인 '저절로 天眞일세[自天眞]'에서는 각기 다른 具體生命들은 그 각기 다른 가운데에 宇宙의 普遍生命을 함께 涵攝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서 보편생명이 각기 다른 면모의 구체생명으로서 現前함은 어떤 主宰者도, 作爲도 없는 自然 그 자체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自然態로서의 삶 ― 無爲의 삶 ― 이 存在者의 최고의 存在方式이라는 哲學的 信念과 이 신념에 따르는 자아의 그러한 삶에 대한 興趣를 傳하고 있다. 둘째 행 '호올로 거닐다'의 '호올로[獨]'에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超出 孤高한 自我의 象이 投射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그 구도와 표현에 있어 단순화 방향으로 정련된 한 편의 서정시로서, 그 抒情性을 높은 수준에서 발휘하면서 도학의 대표적인 두 세계관 사유를 整體的으로 함유하고 있어서 詩로서는 哲學的 깊이와 넓이를, 철학으로서는 詩的인 興趣를 가지게 한, 詩와 哲學과의 融合의 한 典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위의 시가 暮春의 경물을 媒材로 하고 있거니와 회재의 시에는 '봄[春]'이 主要한 象徵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봄에 관련되는 意象이 특히 빈번하게 나온다. <林居十五詠>에서도 四時 가운데 유독 봄에 대해서만은 <早春>과 <暮春> 2首나 編入시키고 있다. 회재의 시에 등장하는 봄이나 봄에 관련되는 의상은 물론 거의 예외없이 生命과 和諧의 表象으로서다.
그런데 생명과 화해를 '봄[春]'으로 표상한 것은 회재로부터 시작되었거나 회재에게만 있었던 특징은 아니다. 실은 도학에서 오래전부터 있어온 하나의 慣用的인 것이다. 주지하듯이 그것은 '元-春-仁'으로 定式化한 데에 의거한 것이다. 문제는 회재는 바로 이 정식을 그의 思惟의 中心에 놓고 있었던 듯 한 데에 있다.

 

여기에서 이 문제를 길게 논의할 수는 없거니와 요컨대 그의 思想은 仁을 至上으로 표방 실천했고, 生命 문제에 깊이 관심했다. 그가 같은 시대의 다른 도학자들에 비해 天人相感論에 특히 敏感했던 것도 당시 政治史的 요인도 작용했겠지마는 그의 사유의 生機論的 偏向에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에서 生命과의 交感이라는 주제를 즐겨 다루게 된 연유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있었다고 하겠다.
'春'과 함께 회재의 시에 자주 나오는 말로서, 위의 시에도 나왔지만, '新' '眞'이 있다. '新' '眞'도 '春'과 마찬가지로 그의 시적 사유의 중심에 놓인 우주생명과의 교감과 긴밀하게 연관된 말들이다.

 

'新'에 관해서는 위에서 이미 언급했거니와, 요컨대 生命實體의 부단한 創生的 움직임에의 志向을 보여주는 모티브의 기능을 하고 있다.
'眞'의 경우는 단순하지가 않은데, 이것과 관련해서는 '眞'[명사형] '天眞' '眞源' '眞興' '眞樂' 등의 말이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 '眞' '天眞' '眞源'은 理 또는 太極의 人과 物에 부여된 차원에서의 일컬음으로서 논리적으로는 결국 '性' 내지 '心'과 같은 개념이다. 논리적으로는 같은 개념인 이 前後者 사이에 語感上으로는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性 心'자가 抽象的 枯槁感이 없지 않음에 대해 '眞' '天眞' '眞源'은 상대적으로 具象的 生氣性이 짙다. 詩에서이니까 추상적 枯槁感이 있는 말을 피하는 것이라 예사로 보아 넘기기 쉬우나, 흥미로운 점은 회재는 散文으로 된 다른 저작에서도 특히 '性'자는 쓰기를 되도록 회피한 듯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性'자를 써서 마땅한 자리에도 '本然之天'이라는 말을 주로 썼다. 그리고 드물기는 하나 '在己之天'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그의 思惟性向의 시각에서 유의해 봄직한 문제다. '眞' '天眞' '眞源' '本然之天' '在己之天'이 갖는 공통점은 槪念語로서 具象的 生氣性이 '性 心'자에 비해 짙은 점 외에, 論理的 感覺에 있어 '性 心'자가 本體인 '天'으로부터의 일정한 脫離性을 가지고 있음에 대해 전자 계열의 말들은 '바로 本體 자체임'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계열 말들에 대한 회재의 偏向的 嗜好는 '自我가 가급적 本體이고자' 하는 性向의 한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사유 성향이 그의 詩에서 自我와 宇宙生命과의 合一 志向의 構圖를 즐겨 설정하게 했던 것이다.

 

여기에 비추어 생각하면 '眞興' '眞樂'의 의미는 自明해진다. 앞에서 말한 바 있는 '宇宙的 愉悅'에 다름아니다. 즉 外物에 의지하여 얻어지는, 따라서 外物과 함께 虛妄하게 사라질 수 있는 一時的 快感 또는 快樂이 아니라 永遠한 實在인 宇宙生命을 主體의 內面에 涵攝하는 데에서, 그리하여 自我의 深底로부터 오는 '眞實無妄한 興趣 또는 悅樂'이라는 의미다.
自我가 가급적 본체이고자 한 회재의 사유 성향이 보다 선명한 意象으로 표현된 작품이 다음의 시다.
唐虞事業巍千古 堯舜   이룩한 大業 千古에 우뚝하지만,
一點浮雲過太虛          한 점 뜬 구름 太虛를 지나감일세.
潚灑小軒臨碧澗          푸른 시냇물가의 조촐한 헌함에서
澄心竟日玩游魚          마음 맑히자고 종일토록 노는 고기 본다.
[觀物, 文集 卷二]

 

'千古에 우뚝한' '堯舜이 이룩한 大業'은 孔子 이래 儒者들이 지향해 마지 않았던 至上의 理想이었다. 그리고 작자 회재 자신의 經世意志의 궁극적인 目標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을 '太虛를 지나가는' '한 점 뜬 구름'이라 했다. 여기서 '한 점 뜬 구름'이 비유하는 바는 일반적인 그것과 다르지 않다. 즉 '지극히 輕微해서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堯舜의 대업을 '한 점 뜬 구름'이 되게 하는 그 相對는 무엇인가? 나에게 있는 本體인 마음[心]이 그것이다. 나에게 있는 본체인 마음을 全量으로 淸澄하게 가지는 것, 이것에 비하면 요순의 대업도 '한 점 뜬 구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지어진 것은 회재가 당시의 貴戚勢力에게 구축되어 仕宦에서 떠나 있은지가 4 5년이나 되는 때였다. 그렇다면 요순의 대업을 '한 점 뜬 구름'으로 본 것은 이 시기 회재의 現實虛無主義의 표현인가? 이런 심경이 당시 그에게 전혀 없었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이 시에 있어서의 진실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회재는 31세 때 <伊尹五就湯論>을 지어 伊尹의 天下에 대한 有作爲的 自任을 批判하면서 "天下를 가지고 自任한다면 天下가 무겁고 나에게 있는 것이 가볍게 된다."고 표명한 바 있다. '나에게 있는 것'이란 나의 마음을 가리킨다. 伊尹을 비판하는 한편으로 회재는, 孔子는 오직 '斯道'를 자임하고 天下의 문제에 대해서는 '無可 無不可'의 無爲的 態度를 취했다고 찬양하였다. 그리고 이 찬양은, 無爲의 態度는 '廓然大公한 天地'의 本態 그것이라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이 시의 첫 두행의 의미는 회재가 진작부터 가지고 있었던, 宇宙的 道德主體로서의 自我樹立을 絶對 優先視하는 人生觀에 연계되어 있다. 孔子가 자임했던, 그리고 회재 자신도 자임했던 斯道 그것의 本源은 나의 마음이고, 나의 마음은 곧 '在己之天'이다. 이 '在己之天'을 全量으로 淸澄하게 함으로써 宇宙本體인 '廓然大公한 天'의 無爲의 自然으로 되는 것에 비교하면 堯舜의 大業도 상대적으로 '太虛를 지나가는' '한 점 뜬 구름'일 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둘째 행의 '太虛'는 끝 행에 나오는 '마음 맑히자고'가 지향하는 '在己之天[마음]'의 究極境界를 상징하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뜬 구름'의 비유에 부속적 기능을 하면서 끝 행의 詩想에 연계되어 主要한 상징 기능을 兼해서 하는 '太虛' 이미지의 제시는 말을 절약하는 가운데 끝 행의 의미의 增幅을 가져오는 효과를 거두고 있어 技巧로서도 매우 洗鍊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끝 행에서의 마음 맑히는 것과 노는 고기 보는 것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 시에서의 '고기'는 '鳶飛魚躍'에서의 고기와는 다르다. 형태적으로 크기부터가 이 시에서의 고기는 微物로서의 그것이고, '魚躍'에서의 고기는 이것과는 대조되는 크기의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고기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 접근하는 視角에 있다. '鳶飛魚躍'에서의 고기는 存在者들의 '所以然之故'의 시각에서 본 것으로, 사람에게서의 '所當然之則'을 여기에 一致시키려는 前提 ― 즉 價値와 存在의 合一을 꾀하는 전제로서 접근된 것이나, 이 시에서의 고기는 宇宙 本源生命의 빠뜨림 없는 普遍  滿性의 啓示者로서 접근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본원생명의 生意의 現前으로서의 미물인 고기의 生命性 ― 즉 '노는' 상태인 것이다. 본원 생명의 生意의 보편 미만성의 啓示를 접하는 데에는 그것이 미물일수록 啓示力이 강하다. 그래서 이 시에서의 고기는 미물인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淸澄하게 하는 것에 미물의 생명성이 어떻게 연계되는가? 우리는 먼저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도학에서 事物認識의 방식으로 흔히 말해지고 있는 '觀物'의 樣式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物을 관찰하고 자신을 성찰한다는 것[觀物察己]은 物을 보고 나서 돌이켜 자신에게서 道理를 찾는다는 것입니까? 伊川先生이 말했다.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物我가 一理이므로 저쪽[物]에서 밝혀짐과 동시에 이쪽[我]에서도 밝혀진다. 이것이 內外[物我]를 合一하는 방도다."
伊川의 말의 취지는 觀物과 察己가 별개로 分離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契機 안에 合致되어 있는 同時的이라는 것이다. 즉 對象에 대한 客觀的 辨別로서의 認識이 아니라 主體的 認證으로서의 인식이다. 다시 말하면 자아가 대상에게로 나아감으로써 대상을 자아에게로 받아들이는 涵攝的 樣式이다.

 

이 詩의 詩的 自我는 일단 고기의 生命性에로 나아가고 고기의 생명성은 자아에게로 함섭된다. 物我間의 生命的 交通으로 一體에로의 지향이다. 그런데 여기서 시적 자아가 일체화를 꾀하고 있는 대상은 실은 고기 그 자체만이 아니다. 이 '觀物'의 場에서의 고기 ― 生意 발랄한 이 微物은 우주 보편생명이 그 한 곳으로 쏠린, 觸手와도 같은 現前者로 등장되어 있다. 시적 자아는 이 촉수와도 같은 현전자를 통해 깊숙이 宇宙 本源生命界에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자아 안에 깊숙이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실은 고기만이 아닌 萬物과의 一體에로 지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고기는 자아와 우주 본원 생명과의 교통을 매개해 주는 媒介者 또는 通路의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주 본원생명에로 나아감으로써 그것을 자아 안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기실은 자아 안에 이미 주어져 있는 生命原理 ― 仁의 認證에 다름 아니다. 仁의 인증은 곧 個體間의 온전한 교통을 가로막는 障碍인 人欲을 消去해 가는 과정과 表裏關係에 있다. 그러므로 仁體의 온전한 呈現에의 지향은 곧 人欲 淨盡에의 지향이다. 이것이 다름아닌 '마음을 맑히어 감[澄心]'이다. 마음을 淸澄하게 하는 것과 노는 고기 ― 微物의 生命性 ― 를 보는 것과는 바로 이렇게 연계되어 있다.

 

우주 본원생명계에로 보다 깊이 나아갈수록 仁의 인증은 보다 넓고 깊어진다. 바꾸어 말하면 마음 ― 즉 나의 深底에 있는 하늘[在己之天]은 더욱 넓고 깊어가서 마침내 廓然 淸澄하게 全量으로 열리기에 이른다. 이 전량으로 열린 나에게 있는 하늘이 바로 堯舜의 大業조차도 '한 점 뜬 구름'이게 하는 '太虛'인 것이다.

 

한편 이 詩의 해석에는 또 하나의 다른 관점이 가능하다. 그것은 '한 점 뜬 구름'이 비유하는 바를 '지극히 輕微해서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無爲의 극치'로 보는 데에서 성립한다. 이 관점으로 보면 '千古에 우뚝한' '堯舜이 이룩한 大業'이란 엄청난 有爲의 결과가 아니라 반대로 '太虛를 지나가는' '한 점 뜬 구름'처럼, '無爲히 통치에 임한 결과'이자 구극적으로는 宇宙自然 原理의 無爲中의 한 顯現이고, '마음 맑히자'는 노는 고기 구경은 이러한 無爲의 境地에 이르기 위함이라는 뜻이 된다. 이 해석 관점 또한 회재의 시적 사유로 보아 위의 관점과 거의 비등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이 관점에 서더라도 셋째행 이하의 해석은 위의 해석 관점과 共有한다.

 

이상의 논의에서 중심 문제가 되어 왔던 우주 보편생명과 자아와의 교감은 개별성과 유한성에 제약된 자아가 現象 너머의 보편 무한 세계를 지향, 그것을 涵攝해 가는 교감이란 점에서 그 교감의 樣式的 性格을 內的 超越로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초월적 교감에는 어떤 悲願이나 崇敬의 정감이 아니라 興趣나 悅樂의 정감이 동반되고 있어 이를 宇宙的 愉悅이라고 앞에서 일컬은 적이 있었다. 이로써 우리는 晦齋詩의 중심 주제를 '宇宙生命과의 超越的 交感과 宇宙的 愉悅'이라고 결론할 수 있다.

晦齋의 詩的 思惟의 樣式으로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특성은 앞에서 이미 검증된 바 있는 巨視性과 超越性이다. 이 巨視-超越의 양식을 보다 분명하게 하면서 그의 시적 사유의 다른 특성도 아울러 이해하고자 한다.

 

회재의 시적 사유에서의 超越은 요컨대 天人一理와 物我一理를 전제로 한 '天人涵攝'의 양식이다. 즉 物을 媒材로 하여 自我가 物에게로 나아감으로써 天을 자아에게로 이끌어 들이어 內在化하는, 결국 앞에서 본 '觀物'의 양식과 같은 것이다. 天의 內在化는 도학적 논리로 바꾸어 말하면 자아에게 이미 있는 天을 인증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런 방식의 초월은 역시 道學 일반의 것으로 晦齋 특유의 것은 아니다. 가령 "誠은 하늘의 길이오, 誠하려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라는 ≪中庸≫의 유명한 命題에서 天人관계를 內面化시키면 바로 이러한 초월에 귀착된다.

 

그런데 이러한 초월을 특히 巨視的으로 보여준 것이 회재의 시적 사유의 특징이다. 회재시에 나타난 바로는 自我의 위를 둘러싼 하늘이 있고, 그리고 자아의 밑쪽에 이와 맞먹는 하늘이 열려 있다. 자아의 밑쪽에 있는 하늘은 物에게도 이어져 있으며 마침내 자아의 위를 둘러싼 하늘에게로 이어지는 그런 구조다. 자아와 하늘과의 이런 관계 구조는 論理的으로는 '天命之謂性'으로부터 근거해 왔겠지마는 天人이 直接된 그 거시적 비전은 다시 그대로 이 명제로 還元될 수 없는 意味를 함유하고 있다. 앞에서 회재의 사유의 특성의 하나로 '自我가 가급적 本體이고자 함'을 말한 바 있거니와 이 거시적 비전을 굳이 命題化한다면 '我卽天' 또는 '人卽天'이라고 함직하다. 여기에는 서로 逆으로 움직이는 두 가지 動因이 함유되어 있다.

 

그 하나는 天에 대한 我에의 巨視的 對待 認識의 동인이다. 여기에서 天으로부터 獨立해 나와 天에  立하는 超人으로서의 自我像이 세워진다. 회재의 시에서 모티브의 하나로 되어있는 '獨'이 이 점을 징표해 주고 있거니와 가령 다음의 詩句 같은 것은 이 '獨'이 징표하는 바를 잘 뒷받침해 주고 있다.
待得神淸眞氣泰    정신 맑아지고 眞氣 편안해지면
一身還是一唐虞    이 몸 역시 한 唐虞天地리이다.
[病中書懷寄曺容 , 文集 卷二]

 

즉 自我를 堯舜이 天下를 다스리던 和諧의 大時空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원문 '一唐虞'에서 우리는 宇宙的 巨視性을 쉽사리 읽을 수 있다.
회재의 이 자아에의 거시적 비전은 가령 ≪莊子≫에서의 "홀로 天地의 精神과 함께 오간다.(獨與天地精神往來)"에 나타난 바와 같이 天地에 對待하는 超人으로서의 自我像이라는 점에서는 상통하면서도 그 지향은 서로 달리하고 있다. 후자가 世界로부터의 자아의 大解脫을 지향하고 있다면 전자는 세계에의 자아의 大樹立을 지향하고 있다고 하겠다.

 

天과 我와의 對待는 兩者 사이의 區分을 전제로 한다. 이에 대하여 그 다른 하나의 동인은 양자 사이의 合一로 향하는 그것이다. 회재의 시적 사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無爲'의 사유가 여기에 해당된다. 天의 天다움은 萬物을 生成하면서도 無爲의 自然으로 하는 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無爲>詩가 바로 이 사유의 표현이거니와 그의 <無絃琴銘>(文集 卷六) 또한 이 사유를 集約的으로 보여 준다.
理契天載    理가 하늘의 일과 합치자,
樂寓吾心    즐거움 내 마음에 깃드네.
妙得其趣    그 意趣 오묘히 얻어진지라,
不假於音    소리로 표현할 수 없네.
冥然寂然    그윽하고 고요히 소리없는 소리에
萬物皆春    萬物은 모두가 봄.
神游太古    精神은 太古에 노니네,
手撫天眞    손으로 天眞을 어루만지자.

 

일견 莊子的 氣味가 농후한 이 銘에서의 '太古'는 存在의 根源으로서의 天에 대한 時間感覺的 表現이다. "그윽하고 고요히 소리없는 소리에/萬物은 모두가 봄"이란, 自我의 그 根源에의 復歸의 場이 갖는 無爲中의 和諧의 비전이다. 뿐만 아니라 회재의 시에서 하나의 象徵으로 설정되어 있는 '白雲', 또 하나의 모티브인 '閑'도 이 무위의 화해에로의 지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회재의 시적 사유에서 어떤 점에서는 가장 上位 範疇라고 할 수 있는 이 無爲의 사유에서 우리는 老莊의 그것과는 槪念을 일정하게 共有하면서도 다른 局面을 가지는 晦齋的 無爲思想을 만나게 된다.

 

我와 天과의 區分과 合一의 두 동인은 我와 天 사이의 關係 整體의 表裏양면일 뿐이지 둘이 별개로 游離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곧 '獨立'과 '無爲'는 한 自我의 두 存在樣式으로 그 한 자아 안에서 統合되어 있다. 회재는 <海月樓記>(文集 卷六)에서 弘遠한 바다의 德을 체득, 마음을 廓然하게 하여 '浩然之氣'가 天地 사이에 꽉 차도록 하고, 淸虛한 달의 德을 체득, 가슴을 깨끗하게 하여 '本然之天'이 마음에 그득히 차도록 하는 것이 海月樓를 지은 意義임을 말한 적이 있다. 그의 詩에서의 '獨立'은 이 記文에서의 '浩然之氣'에, 시에서의 '無爲'는 이 기문에서의 '本然之天'에 대응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회재의 無爲思想과 그의 經世意志와의 일면 矛盾되어 보이는 듯한 관계를 밝힐 필요가 있다. 이것은 길게 논의할 필요도 없이 儒學에서는 '成己'가 곧 '成物'이라는 명제에 의해 설명된다. 自我成就의 효능이 物 ― 모든 客體에 미치는 것이라는 이 명제의 내용에 의거해 말하면 自我의 無爲自然이 經世의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成己와 成物을 한 主體의 一生에서 先後 두 단계의 程序 관계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成己와 成物은 事爲의 한 契機 안에서 同時的으로 움직이는, 역시 涵攝關係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회재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회재에게 있어 無爲自然이란 我와 物과의 관계의 場에 있어선 '廓然大公'에 다름 아니다. 廓然大公과 經世行爲는 선후로 游離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경세행위와의 연계에서야 확연대공의 자아가 이루어지고, 확연대공과의 연계에서야 經世意志의 자아가 실현되는 그런 관계다. 회재의 무위자연이 老莊의 그것과 다른 局面이 바로 여기에 있다.

 

끝으로 회재의 시에는 그 境界에 自我가 등장하지 않는 작품은 거의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회재의 시뿐 아니라 도학자들의 시는 거개가 이러한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듯이 宋 嚴羽의 妙悟說에서 淸 王國維의 意境說로 이어지는 系列의 批評眼目으로는 詩의 境界에 자아가 등장하지 않는 작품 ― 즉 '無我之境'의 抒情詩를 品級에 있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아 왔다. 그래서 이 기준에서는 대체로 道 禪的 世界觀을 배경으로 한 無我의 空寂한 雰圍氣의 작품이 一級으로 평가되어 왔다. 이 안목으로 보면 적어도 도학자들의 시에서는 一級의 작품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도학자들의 사유로는 자아가 潛跡한 世界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회재의 山水景物詩에 無我之境의 작품이 한 편도 없다는 것은 역시 自我가 있음으로써 世界가 있다는 도학적 사유의 필연의 결과다. 바로 회재 자신이 曺忘機堂과의 논쟁에서 "이쪽[道學]에서 말하는 虛는 비었으면서도 있는 것이나, 저쪽[道 佛]에서 말하는 虛는 비었으면서 없는 것이다.(此之虛, 虛而有. 彼之虛, 虛而無.)"라고 밝힌 철학적 주장에 대응된다.

 

회재시에서 이 有我의 사유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매우 의도적으로 보이는 考慮의 한 가지는, 시의 境界를 空寂은 물론이려니와 靜寂의 분위기로 描出한 경우조차도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시의 題材上으로 보아 정적의 분위기를 묘출하기에 적합함직한 時空이나 事物을 쓰는 경우에도 어떤 형태로든 정적 그 자체로는 두지 않음을 쉽사리 엿볼 수 있다. 一例로 다음 작품을 보자.
山雨蕭蕭夢自醒     산 비 쓸쓸한데 꿈 저절로 깨자,
忽聞窓外野鷄聲     홀연히 들리는 창밖의 꿩 우는 소리.
人間萬慮都消盡     세상일 온갖 생각 모두 녹아 내리고,
只有靈源一點明     한 點 마음만이 초롱초롱해라.
[存養, 文集 卷二]

 

우선 이 시에 등장된 時空에서는 비상한 緊張을 불러 일으키는 '꿩 우는 소리'가 주목된다. 그런데 이 비상한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소리는 시에서 항용 靜寂을 더욱 심화시키는 효과로 기능하기 일쑤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끝 행에 와서 '한 點 마음만이 초롱초롱'한 自我를 등장시킴으로써 靜寂의 분위기를 靈活의 그것으로 전환시키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꿩우는 '소리'의 긴장이 끝 행의 초롱초롱이라는 '빛'의 긴장으로 轉移된 때문이다. '나에게 있는 하늘'인 마음을 '한 點'이라는 焦點化的 感覺으로 표현한 데에서 '꿩 우는 소리'의 긴장을 '한 點 마음'의 '초롱초롱'함의 긴장으로 전이시키고자 한 의도적 고려를 읽을 수 있다. 회재의 이런 시적 사유는 "잠잠히 움직이지 않다가 交感해서 天下의 일에 通한다.(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는 도학의 生機觀과 무관하지 않다. 바로 이 관점에 입각해서 曺忘機堂과의 논쟁에서 "이쪽에서 말하는 寂은 잠잠하면서도 교감하는 것이나, 저쪽에서 말하는 寂은 잠잠하면서 죽어있는 것이다.(此之寂, 寂而感. 彼之寂, 寂而滅.)"라고 한 자신의 이론적 견해에 대응된다고 하겠다.

 

이상의 논의에서 보듯이 晦齋詩는 主題와 아울러 그 詩的 思惟의 樣式에 있어서도 철저히 道學的이다.
晦齋가 시적 사유로 삼은 도학적 사유는 회재만이 아니라 도학자 일반이 共有했다는 점에서 다른 도학자들의 작품에서도 회재의 시에서 보는 바와 같은 주제나 사유 방식이 얼마든지 찾아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도학의 역사적 展開 양상에 따라서 도학적 사유 총체에서 그 특히 偏向하는 局面을 詩로 나타냄으로써, 그 표현이 갖는 個性的 국면은 제외하고서라도, 결코 천편일률로 귀결된 것 같지는 않다.

 

一例로 退溪詩의 경우는, 晦齋詩에 비추어 宇宙生命에로의 超越보다는 現象世界의 和諧의 국면에 더 비중이 두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宋儒들을 포함해서 道學家들의 詩文學에 대한 討究가 깊어지면 晦齋의 詩가 도학가 계열 시문학의 전체에서 놓이는 座標, 나아가 그 文學史的 位相도 보다 確然하게 드러날 것이지만 현재까지의 논의로도 그의 시가 적어도 道學이 거둔 文學的 成果의 현저한 사례의 하나로 규정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詩言志觀에 입각된 문학이 가지기 쉬운 일반적인 약점이기는 하지만 회재의 시 역시 일정한 理念的 틀을 벗어나지 않는 데에서 오는 文學的 想像力의 限界性을 불가피하게 가지고 있음도 함께 유념해야 할 것 같다.

 

도학자들의 시문학이 道學의 문학적 實現이란 점에서 이들 시문학을 단순히 文學史的 관심의 대상으로만 본다면 그것은 도학자체에 대한 이해의 深化에 적잖은 損失일 것으로 본다. 도학자들의 시문학은 道學이라는 학문의 生理를 깊이 알게 하는데에 寄與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個別 도학자들의 理論의 感覺이나 體質의 이해에도 일정한 효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필자는 회재의 無爲思想을 試論的으로 제기했거니와 晦齋의 思想에 대한 접근도 종래의 다분히 平面的인 시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보다 構造的 視角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가령 그의 일련의 銘과 經世 관계 著作에 주로 나타나는, 究極的 實在에 대한 畏敬의 태도와 여기 그의 詩에 나타난 愉悅의 그것과의 사이의 구조적 이해 같은 것도 당면한 과제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