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코리안 루트’ 1만km 대장정_02

醉月 2010. 2. 9. 10:55

솔롱고스 부족과 동명성왕의 사연
태무진과 훌란 공주의 몸에도 솔롱 고스의 혈맥이 뛴다

훌룬부이르 몽골 초원은 물과 목초가 풍부한 곳이다. 동명성왕으로 추정되는 고올리 칸, 칭기즈칸과 발해 공주 이야기 등의 무대이기도 한다. <김문석 기자>
7월 21일 오후 4시께 에벵키 민족박물관에서 환호성과 함께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나로서는 17년 여를 애타게 찾던 ‘솔론’이라는 족제비과 짐승의 박제된 실물을 처음 보는 것이라 단연 특종감이었다. 역시 오랫동안 이를 찾아 헤매온 현지인 성빈(成斌·70) 선생의 수고 덕분이었다. 그간 서울대 이항 동물유전자은행장과 흑룡강성 동물자원연구소 박인주 교수(62)의 탐문으로도 찾을 수 없었다.

한갓 박제된 동물 하나에 이렇게 매달린 것은 ‘조선’이 아침의 나라라는 전거도 전혀 없는 허황된 해석과 맞먹는, ‘솔롱고스’가 무지개의 나라라는 한국인의 그릇된 지식을 바로잡을 아주 긴요한 실물 자료기 때문이다. 몽골학의 거장 펠리오가 맨 먼저이를 문제로 제기했다. ‘솔롱고스’는 ‘솔롱고’의 복수로, 솔론을 잡아 모피(Fur) 시장에 팔아서 먹고사는 부족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몽골비사’에도 이런 식으로 부족의 이름을 붙이는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칭기즈칸 ‘출생의 비밀’ 담긴 어원
에벵키 민족박물관에 전시된 솔롱고스 박제. 한국인의 원류와 한·몽 관계의 그릇된 지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긴요한 실물 자료다. <김문석 기자>
솔론은 누렁 족제비다. Baraga(바라가)가 Bar(호랑이)라는 명사에 ‘aga’가 붙어 ‘호랑이를 가진’이 되듯이, Solongo (솔롱고) 또한 Solon(솔롱)이라는 명사에 ‘go’가 붙어 ‘누런 족제비를 가진’이 된다. Solongo에 ‘s’가 붙어 복수가 되면 부족 이름도 된다. 훌룬부이르 몽골 초원 원주민들은 애호(艾虎)나 황서랑(黃鼠狼)이라고도 부른다. 보통 정도로 가늘고 긴 족제비과 동물로 서식권역이 매우 넓어서 각종 생태 환경에 모두 적응 능력이 있다. 삼림, 초원(스텝), 하곡(河谷), 소택(沼澤)이나 농작물 생산지와 백성들이 사는 지대에서도 혈거(穴居)한다. 새벽이나 황혼녘에 먹이를 찾아 활동한다. 주된 먹이는 설치류 동물, 개구리류나 새의 알과 병아리 등이다. 내몽골 중동부 및 동북의 대부분 지역, 한국, 몽골과 시베리아 일대에 분포돼 있다.

몽골에서 한국인을 솔롱고스라고 부르는 연원은 칭기즈칸의 ‘출생의 비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이 바이칼 호로 흘러드는 셀렝게 강 일대에 자리 잡은 메르키드족 가운데 우두이드 메르키드 톡토아베키의 아우인 예케 칠레두가 아내를 빼앗기는 사건이 일어난다. 약탈자는 칭기즈칸의 호적상의 아버지 예수게이이고, 약탈당한 여인은 칭기즈칸-테무진의 어머니 후엘룬이다. 그는 물이 대흥안령 북서부 부이르 호수로 흘러드는 황하 강 지역의 처가에서 데릴사위로 있다가 그들의 관행에 따라 임신한 아내 후엘룬의 출산을 위해 고향으로 함께 귀가하던 길에 오논 강변에서 아내를 빼앗긴 것이다. 이 때문에 테무진의 생부는 예수게이가 아니라 예케 칠레두라는 것이 비공식적으로는 거의 공인된다. 칭기즈칸이 몽골 혈통이 아니고 메르키드 핏줄이라는 얘기다. 다구르족 몽골학자 아르다잡 교수는 메르키드는 발해의 말갈(靺鞨)이라고 고증한다.

그렇다면 칭기즈칸의 혈통적 소속은 발해 유민국, 곧 당시의 솔롱고스가 된다. 그런데 당시의 몽골 고원에서는 아내를 빼앗기면 반드시 보복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래서 20여 년 후에 예수게이의 호적상 아들 테무진도 20대에 예케 칠레두의 아우 칠게르 부쿠에게 아내 보르테를 뺏긴다. 당시에 약체였던 칭기즈칸은 맹렬하고도 노회한 외교로 부족들의 연합전선을 구축해 자신의 친아버지가 되는 예케 칠레두의 혈족 메르키드를 섬멸시키고 뺏긴 아내를 되찾는다. 그렇게 되돌아와서 낳은 아들이 장자 주치다.

몽골 역사상 전설적 미인 훌란 공주
한·몽 관계사의 첫 유적이라고 할 수 있는 헤름투. 칭기즈칸과 발해 유민국의 훌란 공주가 총야를 지낸 이곳에 지금은 붉은 버드나무로 만든 오보(서낭당)가 서 있다 <최낙민 제공>
‘주치’란 손님이란 뜻으로 아내 자궁의 주인이 아니라는 점을 암시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주치는 칭기즈칸의 장자로 관행상 칸 위의 승계자임에도 불구하고 형제들이 ‘메르키드의 사생아’라는 치명적인 저주를 퍼붓는 가운데 소외되고 셋째 아들 오고타이가 계승자로 선택된다. 칭기즈칸 생전의 일이다. 칭기즈칸과 그는 호적상으로는 부자 간이지만 혈통상으로는 종형제 사이다. ‘몽골비사’의 관계 내용들을 간추려본 것이다. 칭기즈칸은 자신의 반렵반목의 메르키드 혈통과 단절하기 위해 그 피가 흐르는 주치와 훌란 카툰의 아들마저도 철저히 소외시켰다. 애초부터 아예 멸족을 감행하며 제 혈통의 완벽한 부정을 통해 스텝의 온전한 순수 몽골 혈통으로 다시 나기 위해 일생을 오로지 끝없는 정복으로만 일관해야 했다. 이런 시각에서 예리하게 칭기즈칸의 일생을 천착해낸 몽골 영웅 일대기가 일본의 역사소설가 이노우에 야스이(井上靖)의 불후의 창작품 ‘푸른 이리’다.

메르키드를 섬멸한 후 칭기즈칸도 메르키드족의 아내와 딸들을 차지했다. 더러는 딸은 자기가 갖고 어미는 아들에게 주기도 했다. 우와스 메르키드 다이르 우순 칸의 딸인 훌란 공주도 헌납됐다. 훌란 공주는 몽골사상 전설적인 미인으로 알려지고 있어 원말의 기황후와 함께 한국 여인은 아름답다는 인상을 몽골인들에게 깊이 각인시킨 솔롱고스, 즉 고려 여인이다. 당시의 솔롱고스는 발해 유민국이었고 발해는 외교문서 상에 고려로도 자칭했다.

알려진 대로 훌란 공주는 17세기 문헌인 ‘몽골원류’와 ‘알탄톱치’에 솔롱고스의 공주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당시의 솔롱고스가 발해이고 메르키드가 솔롱고스로 기록됐다면, 메르키드는 말갈일 수 있고 메르키드의 공주 훌란은 솔롱고스 공주가 된다. ‘알탄톱치’는 놀랍게도 훌란 공주의 아버지 다이르 우순 칸을 보카 차간 한이라고 적고 있다. 보카이(Booqai)의 보카란 ‘늑대’의 존칭어로 몽골에서 발해를 일컫는다. 차간은 ‘하얀’의 뜻으로 젖색을 상징하는 귀족 색깔이다. 즉 발해(渤海) 백왕(白王)이 되는 것이다.

결국 훌란 공주는 발해(유민국) 공주이고, 그래서 솔롱고스(한국) 공주라고 썼음이 자명하다. 몽골인에게 메르키드-말갈은 타이가에서 활을 쏘아 사냥하고 전투하며 사는 숲속의 사람들이다. 메르겐(麻立干: Mergen)이라는 명궁수의 복수형에서 유래된 부족명으로 이족(夷族)이랄 수도 있다. 따라서 메르키드는 흥안령 북부나 스텝과 타이가가 혼재하는 셀렝게 강 일대에서 연해주에 이르는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발해와 역사적으로 밀착 관계를 맺어왔을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발해의 고급 문명을 체득하고 철의 주산지인 셀렝게 강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강력한 무력을 과시했다. 더군다나 이 지대는 솔롱고스 부족의 원주지로 알려진 곳이 아닌가. 솔론족은 바이칼 호 동쪽에서 헨티 산맥에 걸치는 지역을 원주지로 하면서 초원의 주변으로 동진하기도 하고 초기에는 주로 셀렝게 강을 타고 서진한 것으로 보인다. 훌란은 셀렝게 강과 오르홍 강의 합류지점에 살던 우와스 메르키드 다이르 우순 칸의 공주다.

근하지역은 북부여를 세운 고리국 터
몽골 도로노드 아이막 할힝골 솜온 숑크 타반 톨로고이에 있는 석인상. 현지 원주민들이 '순록치기 임금'이라는 뜻인 '고올리칸 훈촐로'로 부르는 이 석인상을 수미야바아트르 교수는 동명성왕으로 비정하고 있다. <도브도이 바야르 교수 제공>
‘알탄톱치’에서는 칭기즈칸의 본거지인 헨티 산맥 일대에서 이들을 공격하면서 ‘해뜨는 쪽’의 메르키드를 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쪽인데 동쪽을 쳤다고 해서 이를 오기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해 뜨는 쪽’이라는 관용구는, 코리족 시조 탄생 전설이 얽힌 바이칼호 알혼 섬이 이 지역 몽골로이드들의 주신을 모시는 중심지여서 그냥 따라붙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솔롱고스의 메르키드 부족이 헨티 산맥의 서쪽 셀렝게 강 일대에 있든 동쪽인 훌룬부이르 초원 근하(根河) 일대에 있든 그대로 ‘해뜨는’, 즉 ‘동명(東明)’이라는 형용구가 따라붙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솔론-솔롱고스의 본거지는 애초에 물이 북극해로 흘러드는 바이칼 호-셀렝게 강 일대에 주로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1921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교과서에 솔롱고스라고 찍어내기 전에는, 물이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훌룬부이르 호 대만주권에서는 한국을 ‘고올리’라고만 불렀지 솔롱고스라는 호칭은 전혀 몰랐다.

7월 23일에 탐사단원들은 근하에 들어섰다. 영하 40~50℃까지도 내려가 호랑이가 못 사는, 대흥안령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다. 근하는 ‘껀허‘로 발음되는데, ‘껀’은 물이 ‘깊다’는 군(gu:n)이 아니라 빛이 ‘밝아오다’나 물이 ‘맑아지다’라는 뜻의 게겐(gegen)이라고, 구몽문(舊蒙文)인 내려 쓴 꼬부랑 글씨로 적힌 위구르친 비칙 현지 팻말을 보고 에르덴 바타르 교수가 지적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르 가라크’-‘해 뜨는’이라고 하여, 솔롱고스라는 국명이나 종족명 앞에 으레 따라붙는 수식구와 동일한 내용의 이름이어서다.

나는 이미 이 지역을 동명왕이 말치기 노릇을 하다가 도망 나와 동남하해서 북부여를 세운 고리(槁離: Qori=순록)국 터로 추정해본 터여서 더욱 그랬다. 껀허의 ‘껀(根)’이 ‘동명(東明)’의 뜻을 가지리라고 이전에는 미처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역시 바이칼 동남쪽이 원주지였던 솔롱고스 부족에 붙어내린 관용구에서 비롯된 이름일 터다. 수미야 바아타르 교수가 1990년 5월에 몽골 문화사절단 통역으로 따라와 내게 건네준 첫마디가 부이르호 남쪽 호반에 선 고올리 칸 석인상이 바로 ‘솔롱고스’ 임금인 ‘동명’ 성왕이라는 것이다. 이는 필자를 경악케 했다. 몽골 스텝엔 발도 들여놓아본 적이 없는 농경권 붙박이인 당시의 내게는 기마 양 유목민의 거리 개념이 있을 턱이 없어서다.

실로 이때까지 필자는 바이칼 동남부 셀렝게 강변의 메르키드 공주 훌란이 훌룬부이르 몽골 스텝의 하일라르 강변에서 칭기즈칸에게 헌상되고 헤름투라는 곳에서 초야를 보냈다고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너무나도 먼 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농경적 거리 관념에만 매몰되었기 때문임을 유목 현지 답사 경력을 쌓아가며 점차로 깨달았다.

훌란 공주가 나이도 다른 아내들보다 어려 앳되고 아름다웠겠지만, 필시 고국 또는 고향의 동족이어서 칭기즈칸이 그토록 그녀를 사랑해 전장에까지 늘 함께 간 것 같다. 1990년 초에 몽골에 살면서 나는 몽골 소녀들을 많이 만났다. 그녀들은 저마다 자기가 한국 여자를 닮았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너는 많이 닮고 너는 조금 닮고 넌 아주 안 닮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몇 번인가 그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그녀들의 표정이 저마다 서로 달라지는 것을 알았다. 한국 여인을 닮았다는 게 아름답다는 말이 되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훌란 공주의 전설적인 미모를 떠올렸음이리라. 많아 닮았다는 말을 들은 소녀는 나를 대하는 눈빛이 금방 달라지며 반색했다. 지금 우리가 만나온 이곳의 바르쿠족 몽골 처녀들도 그랬다.

웅녀와 호녀의 ‘사랑싸움’ 이야기
툰드라 지역 순록치기 곰 토템족의 사냥꾼 범토템족 정복사

단군신화도 순록유목 태반사의 시각에서 해석해야 한다. 훌룬부이르 대초원의 양 유목. <김문석 기자>
코리안 루트 탐사에서 단(檀)족 군장들인 단군의 족적을 추적하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한반도 사관에 고착된 우리의 시각과 시야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살고 있으니 단군도 한반도에서 경영형 부농으로 입신한 인물쯤으로 상정하고 한민족의 창세기를 서술해내는 이야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군이 기원전 2000~ 3000년 전에도 고온다습한 태평양 중 한반도에서만 농사를 지어먹고 산 청동기인이라고 못박아놓아야 주체적이라며 안심하는 경향은 여전한 것 같다.

5000~60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은 많게든 적게든 움직이게 마련이다. 생업이 유목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튀어나온 광대뼈며 째진 눈과 염소 수염, 그리고 성형이 유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콧날이 거의 서지 않았던 많은 납작코 유형은 오랜 툰드라 생활사를 겪지 않고는 한반도나 발해 연안에서만 설계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신체 유형을 디자인해준 툰드라와 삼림 툰드라 태반사를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신석기시대 이래 순록치기 천하
시베리아 전도. 순록 유목 문화권인 오비·예니세이·레나 강은 북극해로 흐르고, 몽골고원에서 발원한 케룰렌강은 아무르 강과 연결돼 태평양으로 흐른다.
물이 북극해로 흘러드는, 만주의 북쪽에 있는 사하의 툰드라와 삼림 툰드라는 물이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대만주 권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광활하고, 순록의 먹이인 이끼(蘚)가 눈처럼 지천으로 깔려 있다. 그래서 놀랍게도 다른 식량 생산업과는 달리 본격적인 유목의 태초라 할 특수 목축인 순록 유목이 극북지역에서 대규모로 먼저 이루어졌다. 그곳은 너무 추워서 호랑이도 양도 거북이도 못 산다. 숫수달인 ‘부이르(Buir)’-예(濊)도 산달인 ‘너구리’-맥(貊)도 못 사는 그 동토지대에서 순록치기의 천하가 이미 신석기시대 이래로 경영돼왔다는 사실은 지금의 한반도 한국인이 보기에는 참으로 기상천외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예니세이 강의 ‘예니세이’는 원주민의 이름이다. 레나 강의 ‘레나’는 원주민어로 ‘큰 물’이라는 뜻이며 대만주권과 대사하권을 남북으로 가르는 장대한 스타노보이 산맥에서 아무르 강으로 흘러든 제야 강의 ‘제야’는 에벵키어로 ‘칼날’이라는 뜻이다. ‘아무르’는 에벵키 청년의 이름이다. 이를 아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흥안령에서 흐르는 눈 강과 백두산에서 기원하는 송화 강이 칭기즈칸이 마시고 자란 케룰렌 강을 발원지로 하는 아무르 강으로 유입해 마침내 한반도의 동해-태평양으로 흘러든다는 지리적 초보 지식을 익힌 이는 또 얼마나 될까. 케룰렌 강에서 종이배를 띄우면 한국의 동남해안 삼척이나 부산에도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2005년에 사하를 답사해 관계 정보들을 수집하고 나서는, 2006년 여름엔 마침내 툰드라~수림 툰드라 지역인 한디가 압기다 에벤족 순록 유목지를 답사하며 아주 놀라운 체험을 했다. 7월 11일에 연해주에서 출발해 스타노보이 산록을 돌아 바이칼 호수에 오는 동안 그간의 북극권 답사 기억들을 떠올리며 나름대로 정리해 이야기들을 나눠보았지만, 코리안루트 탐사대원들과 함께는 그 땅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바이칼호 알혼섬의 부르칸 바위에 코리족 족조 탄생 설화가 서려 있는 것은, 순록이라는 뜻인 ‘코리(槁離)’의 유라시아 최대 유목지대가 앙가라 강을 통해 예니세이 강으로 이어지는 지대와 전에는 물길이 열려 있는 흔적이 보이는 카축 일대를 통해 레나 강으로 이어지는 지대 사이의 북극해권이기 때문이다. 고원 건조지대 바이칼 호수면에 비친 따가운 햇볕이 반사돼 천상의 구름을 소멸시키기 때문에 거대한 호수지대이면서도 건조하고 하늘이 유난히 맑아 이곳에 제천단이 많이 세워지고 천문 관측이 잘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어느 천문기상학자의 견해가 새삼 생각난다.

수분 친화적 토템족 정착 성공
몽골 여시조 알랑 고아의 전설이 서린 바이칼호 알혼 섬의 부르한 바위. <김문석 기자>
IT, BT 시대에 ‘단군고기(檀君古記)’는 세계사적인 시각에서 세계 각지의 관계 정보를 충분히 소화하는 터전 위에 과학 언어로 그 순록 유목 태반사를 본격적으로 복원하는 차원에서 해독해야 한다. 어느 시대, 어떤 생태에서 뭘 해 먹고 살아왔느냐에 관한 엄밀한 논증 과정을 거쳐 논리 정연하게 사람 생명 살이 얘기로 다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그 ‘게놈’에 주목하며 조선 태반사를 복원해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우랄 산맥 중에 대통령이 집정하고 쿠마(錦: 熊) 강이 흐르는 ‘고미’ 공화국-곰 나라-이 있다. 요즈음도 일부 투르크계 종족이 살고 있지만 고대에는 주로 황인종이 원주민으로 살았는데 그 신화 내용이 ‘삼국유사’나 ‘제왕운기’에 기록된 것과 매우 비슷하다. 또한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박물관에는 아예 아기를 안은 청동 곰녀상까지 진열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민족 동류 루트 답사를 이끌고 있는 김영우 교수의 조언이다.

박정학 치우학회장은 환인에 대해 황의돈·송석하 소장본 ‘삼국유사’ 및 1902년 도쿄대 발행 활자본 등에는 분명히 모두 ‘환국(桓國)’으로 쓰여 있는데 1921년 교토대학의 영인본에만 ‘환인(桓因)’으로 되어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환웅은 환인의 아들이 아니라 북방 몽골로이드의 호칭 관행을 따라 환국(Khan ulus)의 서자라는 관직을 가진 칸(桓: Khan) 바아타르(雄: Baatar)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같은 동굴에 사는 웅녀와 호녀가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함은, 식량 생산 기원지인 서아시아에서 알타이 산을 넘어 사얀 산맥을 타고 동래한 선진 환웅족이 곰 토템족과 범 토템족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과정에서 그들 자신이 식량 생산 단계로 진입하려는 경쟁을 벌였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이들이 식량 채집자 사냥꾼만으로가 아니라 좀 더 편안하게 사람답게 사는 식량 생산자 순록치기가 되는 길을 모색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실은 전래하는 단군의 영정대로라면 그 긴 수염은 혹한지대인 극북의 몽골로이드의 것일 수 없고 따라서 그 혈통에는 당시의 선진 서아시아인적 요소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동굴 근거지 쟁탈전서 곰토템족 승리
다마스커스 박물관의 아기를 안은 곰녀상.
마늘과 쑥을 먹고 햇빛을 안 보고 100일간 견디기를, 사냥꾼의 식량 채집 단계에서 순록치기의 식량 생산 단계로 나아가는 시련 과정을 상징적으로 그려본 것으로 풀이해볼 수는 없을까. 물고기도 잡아먹는 수분 친연적인 곰 토템족이 이와 유사한 북극 생태 환경에 익숙한 순록을 유목 가축화하는 데 성공한 반면 북극의 혹한 생태 속에서 못 견디고 덜 수분 친연적인 범 토템족이 이에 적응해내지 못하는 과정을 설화로 만든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서 단군왕검이 다스리는 나라를 조선(朝鮮)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곧 그 생업을 지칭해 ‘순록치기의 나라’라고 했음을 말해준다.

실은 웅녀 전설도 2000년대 지식 산업 시대에는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레나 강 북극해권에는 호랑이는 추워서 못 살고 곰은 잘 사는데 특수 목축인 유목의 경우에 순한 순록의 유목이 먼저 시작되고, 아무르 강 태평양권 몽골 스텝에서는 북극권에서 역시 추워서 못 사는 양의 유목이 사나운 말을 타고나 대규모로 이뤄질 수 있다. 말은 금속 재갈을 물려야 탈 수 있으므로 청동기~철기시대 이후에나 그것이 가능했다. 레나 강 북극해 권에서 유목 생산을 먼저 시작한 곰 토템족은 힘이 넘쳐 아무르 강 태평양 권으로 진출하게 됐는데, 여기서 호랑이 토템 부족과 대흥안령 북부 선비족의 갈선동이나 고구려 집안(輯安)의 국동대혈(國東大穴)과 같은 동굴 근거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당연히 선진 곰 토템족이 범 토템족을 내쫓고 동굴을 독점해 살면서 환국의 서자 벼슬아치인 환웅과 결혼해 곰녀의 자손들을 낳게 됐는데, 그게 칸의 혈통을 타고난 알탄우룩(Altan urug: 黃金氏族=‘해’겨레)-천손족인 순록치기 한(韓: Khan) 민족일 수 있다.

사람이 다른 짐승과 달리 사람으로 다시 나게 된 것은 당연히 생명 생산과 사육의 원리를 터득해 식량 채집 단계에서 식량 생산 단계라는 생명 주관 과학 누리로 진입하면서다. 그래서 엔 베 아바예프 투바대학 교수는 “순록을 상징하는 젖을 주는 암사슴(Sugan-Soyon, 鮮)이라는 낱말에서 ‘사람’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본다. 웅녀는 환웅과 결혼해 사람 곧 ‘순록치기’-선인(鮮人)을 낳았던 터다”라고 말한다.

나는 일찍이 현지 답사 중에 이런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다. 파이호(巴爾虎)로 음역되는 바르쿠족은 호랑이 토템일 가능성이 있다. ‘바르(Bar)’가 몽골어로 범-호랑이인데 ‘쿠’는 ‘~을 가진’이란 뜻이므로 그런 가능성이 높다. 한자 음역에 ‘호(虎)’자가 든 것도 음역(音譯)과 의역(意譯)을 동시에 추구하기를 좋아하는 한인(漢人)들의 음사(音寫) 전통으로 보아 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예컨대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樂)으로 음역하고 고려를 멋진 2개의 뿔이 달린 사슴이란 고려(高麗)로 음역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실제로 바르쿠진 분지를 따라 내려오며 범내, 범바위, 범고개와 범골과 같은 호랑이 관계 지명이 많은데 바르쿠족 원주민들과 함께 하는 구체적인 조사-연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 답사 중에 7월 17일에 놀랍게도 셀렝게 강변 샤먼산 게세르 100년 기념비 앞에서 현지 원주민에게 1905년에 마지막 호랑이가 총살되었다는 정보를 확보해 마침내 이를 입증할 수 있었다. 금번 답사가 이룩한 작은 기념비적 업적이라 하겠다. 그 결과 이런 유목형 몽골의 여(女)단군-몽골 여시조 알랑 고아 탄생 설화가 다시 태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비사’에 실린, 코릴라르타이(순록치기: Qorichi 부족들)의 메르겐(麻立干: Mergen)과 바르쿠진 고아가 결혼해 몽골 여시조 알랑 고아를 낳는 이 탄생 설화는 실은, ‘코리(馴鹿)치’-순록치기가 돼 식량 생산 단계에 든 레나 강 북극해권의 선진 곰 토템족이 아직 식량 채집 단계에 머물러 있는 아무르 강 태평양권의 수렵민 후진 호랑이 토템족을 정복하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정녕 이 몽골 여시조 탄생 설화는 단군 탄생 설화의 유목형 전개라고 하겠다.

<주채혁 :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몽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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