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제2의 창군’ 국방혁신 4.0

醉月 2024. 6. 10. 10:50

“병력은 줄어도 군사력은 증강할 것”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 AI 기반 첨단 과학기술, 국방혁신 4.0의 핵심
⊙ ‘北 핵·미사일 발사 전 교란·파괴’ 킬웹 발전시킨다
⊙ ‘우주 경쟁 본격화’… 중장기적 관점에서 우주 전력 강화
⊙ 전력 증강 프로세스 재정립… 10~15년 걸리는 무기 획득 프로세스 단축
⊙ 2027년 초급 간부 연봉 2023년보다 14~15% 상승(일반 부대 기준)
⊙ “국방혁신 4.0, 우리 군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
2023년 1월 경기 파주 무건리훈련장에서 열린 ‘아미타이거 시범여단 연합훈련’에서 육군 아미타이거 시범여단 대원들이 분대 전술훈련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국방부가 ‘제2의 창군 수준’의 개혁에 돌입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5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방혁신위원회 출범식에서 ‘제2의 창군 수준’으로 국방태세 전반을 재설계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국방혁신 4.0’으로 이름 붙은 국방개혁이 2024년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월간조선》의 취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방혁신 의지는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7월 정부 출범 이후 2개월 뒤 발간한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 보고서에 국방혁신 추진 계획을 명시했다. 이어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가 만들어졌다. 2023년 5월 위원회 출범에 앞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국방혁신위 부위원장으로 ‘깜짝’ 내정됐다. 김 전 장관이야말로 국방혁신을 성공으로 이끌 적임자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방혁신 4.0 기본계획은 첨단 과학기술을 군에 적용해 전쟁에서 이기는 강군 육성을 골자로 한다. 오는 2040년 완성을 목표로 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다. 2028년까지 진행될 제1차 5개년 추진 계획에 약 110조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국방부는 “국방혁신 4.0 이행을 위한 소요를 충실히 반영해 선택과 집중을 통한 재원 배분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국방혁신 4.0은 5대 중점과 16개 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5대 중점 분야로는 ▲북핵·미사일 대응 능력 획기적 강화 ▲군사전략·작전개념 선도적 발전 ▲AI 기반 핵심 첨단 전력 확보 ▲군 구조 및 교육훈련 혁신 ▲국방 R&D(연구개발)전력·증강체계 재설계가 꼽혔다. 각 분야 모두 기반구축-가시화-가속화의 3단계로 추진된다.
 
  《월간조선》은 6회에 걸쳐 국방혁신 4.0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본다. 2024년 1월호에서는 국방혁신 4.0의 개념과 실시 배경, 필요성, 주요 내용 및 추진 전략 등을 분석한다.
 
 
  국방혁신 4.0, 文 국방개혁 2.0 대체
 
국방혁신 4.0 로드맵.
  우리 군은 미래 국방환경이 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래 국방환경이 맞닥뜨릴 도전 요인으로는 ▲북핵·미사일 비대칭 위협의 현실화 및 고도화 ▲미중패권 경쟁에 따른 불안정성 증가 ▲전쟁 패러다임 변화와 기술패권 경쟁 심화 ▲인구절벽에 따른 병역자원 감소를 꼽았다. 군은 문재인 정부 시기 추진한 기존 국방개혁 2.0 접근 방식으로는 이런 도전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대응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 바로 국방혁신 4.0이다.
 
  국방혁신 4.0과 국방개혁 2.0은 ‘위협’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를 두고 큰 차이를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7월 27일 국방개혁 2.0을 발표하며 상비병력 및 부대 수를 대폭 감축했다. 북한의 위협이 점진적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예측은 완전히 어긋났다. 2020년 6월 북한은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그해 9월 서해에서 표류된 우리 공무원을 피살(被殺)했다. 그럼에도 문 정부는 이듬해 5월 보도자료를 내고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가 추진해온 다양한 정책 개혁 가운데서도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분야”라고 자화자찬(自畵自讚)했다.
 
 
  4차 산업혁명 첨단 과학기술 적용
 
  반면 국방혁신 4.0은 북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현실화됐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무인로봇, 3D 프린팅, 빅데이터, 인공지능, 드론 등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를 활용해 군의 질적 향상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국방혁신 4.0은 4차 산업혁명 첨단 과학기술이 우리 안보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봤다. 한국의 발전된 과학기술 역할이 군의 질적 향상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방혁신 4.0의 ‘4.0’ 또한 4차 산업혁명 첨단 과학기술과 역대 4번째 국방개혁 계획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0년도 기술 수준 평가에 따르면, ICT·SW, 국방, 소재·나노, 우주·항공·해양 등 11대 중점 과학기술 분야를 종합한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미국의 80.1% 수준이다. 80.0%인 중국을 앞선 수치다. 2022년 1월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발간한 〈2021 국가별 국방과학기술 수준 조사서〉 역시 한국의 국방과학기술 수준을 세계 9위 수준으로 집계했다. 1~3위는 각각 미국, 프랑스, 러시아가 차지했다. 중국은 6위, 일본은 8위였다.
 
  군은 우리나라의 강점인 4차 산업혁명 첨단 과학기술력을 활용해 한국형 3축체계 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전 영역 통합작전을 구현해 병역자원 감소 해결은 물론 전시 인명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군사 위성 역량 강화
 
  군의 최우선 과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 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먼저 한국형 3축체계 운영 태세를 강화한다. 국방부는 “고도화되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은 가장 심각하고 현실적인 위협”이라며 “이에 대한 확실한 억제 대응 능력을 최우선으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형 3축체계는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선제 타격하는 킬체인(Kill Chain), 북한 미사일을 공중에서 탐지·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 북한 핵·미사일 공격 시 보복하는 한국형 대량응징보복(KMPR)으로 구성된다. 국방혁신 4.0은 여기에 더해 킬웹(Kill Web)을 발전시키기로 했다. 킬웹은 사이버 작전 등을 이용해 북한의 핵·미사일을 발사 전에 교란·파괴할 수 있는 작전 개념이다. 그물망이나 거미줄처럼 지휘통제체계를 구축해 최적의 타격 수단을 찾아내도록 인공지능(AI)이 실시간 의사 변경을 도와주는 체계다. 기존의 킬 체인이 최정상 지휘자의 판단에 따랐다면, 킬웹은 중간 지휘자들도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작전 도중 표적 타격 수단을 더 적합한 것으로 변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의 경우 최근 ‘발사의 왼편(Left of Launch)’이란 개념도 쓰고 있다. 발사의 왼편이란 상대국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 사이버 공격, 전자기탄(EMP) 등을 통해 교란을 일으켜 미사일 발사 자체를 막거나 엉뚱한 곳에 떨어지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선 해킹이나 컴퓨터 바이러스로 적 미사일의 지휘통제소나 표적장치를 공격해야 하는데, 이는 미국이 정찰위성을 포함한 압도적 감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작전이다. 우리 군 역시 발사의 왼편이나 소프트 킬(Soft Kill) 방안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북한의 미사일 변칙 발사 전술에 대비해 기반체계 역시 강화된다. 이를 위해 군사 위성을 띄워 정보감시정찰(ISR) 역량을 확충하고, AI 기반 지능형 통합 전술지휘자동화체계(C4I)를 발전시킬 계획이다.
 
  효과적인 전략 운용을 위해 군은 지휘체계도 개편한다. 합참 내 ‘핵·WMD(대량살상무기) 대응센터’를 ‘핵·WMD 본부’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어 2024년 전략사령부가 창설된다. 전략사는 우주·사이버·전자기전을 포함한 주요 전략자산의 지휘체계를 일원화해 한국형 3축체계의 효과적인 지휘통제 및 전력 발전을 주도한다.
 
 
 
 
‘바다부터 우주까지’
 
  군사전략과 합동 작전 개념 등 ‘소프트웨어’도 변화한다. 군사전략은 미래 안보 위협에 대비해 전 영역 역량을 통합하는 형태로 고도화된다. 합동 작전 개념 역시 ‘전 영역 통합 작전’ 형태로 발전한다. 북한의 무인기 침투, 사이버심리전 등 비대칭 도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를 바탕으로 해양-지상-공중-우주로 이어지는 종적 영역과 해안-해상-군항-기지로 연결되는 횡적 영역에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를 구축해 빈틈없는 안보망을 갖추게 된다. 경계 작전의 경우, 경비여단을 중심으로 AI 기반 무인경계체계가 시범운영된다. 이후 평가를 거쳐 확대 여부가 결정된다.
 
  AI 기반 첨단 과학기술은 국방혁신 4.0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핵심 중의 핵심이다. 군은 AI에 기반을 둔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미 각 군은 시범부대를 운영하고 있다. 육군25보병사단 아미타이거(Army TIGER)여단은 유·무인 복합 지상전투 작전을, 해군5기뢰·상륙전단은 유·무인 복합 기뢰제거 작전을, 공군20전투비행단은 유·무인 편대기 운용을, 해병대1사단은 유·무인 복합 상륙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군은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를 단계별로 구축할 예정이다. 1단계 원격통제형 중심, 2단계 반자율형 시범, 3단계 반자율형 확산 및 자율형 전환 등 총 3단계로 구성된다.
 
 
  南北, 우주 패권 두고 경쟁 본격화
 
2023년 11월 24일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23일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 발사 성공 경축 연회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는 딸 김주애와 부인 리설주도 참석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국방혁신 4.0은 우리 군의 활동 영역을 우주로 넓혀 작전수행 능력 향상을 도모한다. 최근 각국은 우주 패권을 두고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요국은 이미 군·정부용 고해상도 정찰위성을 우주에 보내 주변국의 군사 동향을 들여다보는 정찰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 군과 북한 역시 우주 패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2023년 11월 북한의 군사정찰위성(만리경-1호)과 12월 우리 군의 정찰위성 1호기가 지구 궤도에 진입했다. 군이 개발한 고체 추진 우주발사체의 위성 발사가 성공하면서 남북 간 군사 대결이 우주까지 확대된 것이다. 군은 우주 전력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발전시킬 방침이다.
 
  사이버전력 또한 고도화된다. 사이버전력 강화를 위해 군은 민간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방향과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석좌교수는 2023년 9월 국방부 주최로 열린 ‘제18회 국방보안컨퍼런스’에서 “기술적 조치만으로는 AI에 기반을 둔 군 사이버보안 역량 강화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군 지휘부의 전반적인 인식 개선과 의지가 바탕이 돼야 전군 사이버보안 강화 역량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기 스펙트럼 작전, 北 지통체계 무력화
 
  전자기 스펙트럼 작전 수행 역량도 증진한다. 전자기 스펙트럼은 주파수와 파장에 따라 고도로 분화된 전자기파의 연속체로, 무기체계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은 전자기 스펙트럼을 다영역 작전 수행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군은 북한의 인터넷 기반이 약하다고 판단해 방해 전파를 이용, 지휘통제체계 무력화를 노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전자기 스펙트럼 무기체계 개발 및 그에 맞는 조직 편성을 계획하고 있다. 이미 육군은 2022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 주도로 전자기 스펙트럼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2023년 6월에는 ‘전자기 스펙트럼 작전 전투발전 TF’가 교육사령부에 창설돼 작전 수행 개념을 정립해왔다. 군 관계자는 “국방혁신 4.0 추진과 연계해 전자기 스펙트럼 작전의 개념·교리 발전은 물론 조기 전력 보강 달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지휘통제체계도 개편된다. 군은 합동 지휘통제·통신(JADC2) 종합발전 계획을 완성하고, 핵심 능력을 전력화해 JADC2 구축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JADC2는 전장의 모든 요소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실시간 전장 가시화와 상황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AI가 지휘 결심을 보좌하며 작전 흐름의 속도를 높인다. 지상, 해상, 공중, 우주, 사이버 공간의 전투 정보를 통합해 합동군 관점에서 신속히 대응하는 것이 핵심이다. JADC2는 킬웹 운용을 도울 수단으로도 평가된다. 미군 역시 JADC2를 미래전의 승패를 가를 핵심 전력으로 분류해 전력화에 나서고 있다. 주한미군이 가장 공들이고 있는 분야 역시 JADC2 구축이다.
 
  ‘제2의 창군 수준’이라는 말답게 국방혁신 4.0은 군 구조를 송두리째 바꾼다. 먼저 합참·연합사·각 군 본부의 지휘구조가 최적화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하고 무기 획득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2023년 11월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COTP·Conditions-based OPCON Transition Plan)’에 명시된 이행 과업 추진 경과를 검토한 후 미래연합사로의 전작권 전환을 위한 추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 2015년 한미 국방장관은 전작권 전환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 기존 ‘시기에 기초한 전환 방식’을 ‘조건에 기초한 전환 방식’으로 변경하고,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에 합의한 바 있다.
 
  부대구조 역시 개편된다. 특히, 드론 전력을 대폭 끌어올린다. 2023년 9월 1일부로 드론작전사령부가 창설된 것도 이 때문이다. 군은 드론작전사령부를 필두로 일선 부대까지 드론 전력을 배치·운용할 계획이다.
 
  인구절벽에 대비해 병력구조도 개편된다. 무인체계의 병력 대체효과, 병력자원 공급 확대를 위한 제도 시행 가능성 등을 판단해 점진적인 전환을 추진할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병력은 줄어도 군사력은 증강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실질적인 병력 감축이 이루어지기 전에 첨단 과학기술 기반 전력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초급 간부 복무 여건 개선
 
2023년 10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연천군 육군 제25사단을 찾아 철책을 시찰했다. 사진=대통령실
  교육훈련 분야에서도 혁신은 이뤄진다. 군은 가상모의훈련체계 및 과학화 훈련장을 구축하고, 데이터 분석 기반체계를 마련할 예정이다. 또한 사관학교와 각급 부대에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해 과학기술 전문인력을 육성한다.
 
  예비전력 정예화를 위한 개혁도 추진된다. 지역예비군 전투수행 개념을 재정립하고 예비전력용 무기·장비·물자 지원도 이루어진다.
 
  군은 병과 초급 간부 복무 여건도 개선한다. 2027년 일반 부대 초급 간부 연봉은 2023년보다 14~15%, 전방 경계부대 초급 간부는 28~30% 오른다. 이에 따라 소위의 연 총소득은 2027년까지 일반 부대 3900만원, 경계부대 5000만원 수준으로 인상되고, 하사의 경우 일반 부대 3800만원, 경계부대 4900만원 수준까지 늘어난다. 주거 및 생활 개선도 추진된다. 기존 8~10명이 사용하던 병사 생활관은 2~4인 통합형 생활공간으로 조정되고, 간부숙소는 1인 1실이 제공된다. 간부 가족이 거주하는 관사의 경우 4인 기준 28평형에서 32평형으로 늘어난다.
 
 
  美, 신속 획득 프로세스 도입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의 명장(名將) 손자는 ‘속전속결(速戰速決)’을 강조했다. 빠른 결정과 적극적인 행동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군의 신기술 수용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무기 소요를 결정하고 이를 실전에 배치하기까지 평균 10~15년가량 소요된다. 국방혁신 4.0이 국방 R&D전력·증강체계 재설계를 5대 중점 과제에 포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군은 첨단 과학기술의 신속한 적용을 위해 평가 요소 중 중복되는 항목을 삭제해 획득 프로세스를 단축할 방침이다.
 
  관련 연구 기관 역시 우리 군의 무기 획득 프로세스가 오래 걸린다고 지적한다. 장원준 산업연구원(KIET)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연구위원은 2022년 12월 보고서를 발간하며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국방혁신 4.0의 성공적 추진과 민간 IT 기업의 방위산업 진입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한국형 신속 획득 프로세스’ 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신속획득법(가칭) 제정, 신속 획득 무기체계 유형 신설, 신속 획득 전담기관 지정, 관련 예산 확대 및 각종 규제 제거, 인센티브 강화 등의 다각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 역시 무기 획득 프로세스를 단축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주변국들이 첨단 무기체계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어 군사적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4년부터 신속획득법을 개정해왔다. 그리고 신속 획득 프로세스 신설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 신속획득법은 2~5년 내에 무기체계 개발이나 개발된 무기의 실전 배치를 가능하게 한다.
 
  R&D 예산도 2027년까지 전체 국방 예산의 10% 수준으로 확대한다. 또 군·산업·학계·연구기관의 다자 협력체계와 한미 국방과학기술협력 협의체를 구성해 국방 전력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국방혁신위는 출범 이후 혁신에 대한 각계각층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움직여왔다. 혁신 방향과 추진 계획을 놓고 군 내 제대별·신분별 현장 토의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또 국회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20차례, 예비역 단체 및 유관 기관을 대상으로 16차례 설명회를 개최하며 국방혁신의 필요성을 설명해왔다. 국방혁신위는 “설명회와 교육을 통해 각계각층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해 국방혁신 4.0을 현실화할 계획이다.
 
 
  혁신 위한 공감대 형성
 
  ‘선진 정예 강군 육성’을 기치(旗幟)로 내건 국방개혁은 창군 이래 지속돼왔다. 1980년대에는 장기 국방태세 발전방향이, 1990년대 5개년 국방발전계획이, 2000년대는 국방개혁이 추진된 바 있다. 그러나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는 것이 국방혁신위의 판단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강력한 개혁 의지와 김관진 국방혁신위 부위원장의 전문성과 경험이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혁신위는 보다 현실성 있는 혁신을 위해 무기 획득 프로세스 개선과 한국형 3축체계 강화를 이번 5개년 계획의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방침이다. 국방부 역시 “국방혁신 4.0은 우리 군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면서 “전투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군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 성장에 기여하도록 국방혁신 4.0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병법 36계는 전쟁에서 가장 이상적인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不戰而勝)’이라고 말한다. 또한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적의 우두머리를 잡아야 한다(擒賊擒王)’고 가르친다. 국방혁신 4.0의 핵심 역시 병법 36계의 전략과 들어맞는다. 과연 국방혁신 4.0은 북한 김정은의 숨통을 조이고, 수뇌부를 타격해 승리를 거둘 필승 공식이 될 수 있을까.⊙
 
 

‘北 광폭 원천 봉쇄’… 무기 실전 배치 속도 높인다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 “절차의 투명성에 초점 맞추니 무기 배치 늦어져… 효율성 높여야”
⊙ “年 평균 약 1조8000억원의 국내 방산수요 창출, 4조8000억원의 산업생산 효과”
⊙ 무기는 軍이 쓰는데… 정작 軍 요구 사항 반영 어려워
⊙ “핵심 성능 충족한 무기, 실제 사용해가며 성능 향상시킬 것”
⊙ 민군(民軍) 공동 연구개발 기관 설립… “한국형 국방혁신단(DIU) 설립 연구 중”
⊙ “무기체계 획득, 국방부가 중심 돼야”
⊙ “방산 수출 K-9 자주포, K-2 전차, 천궁-Ⅱ에 집중… 첨단 무기라고 보긴 어려워”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한국형 전투기 KF-21. 사진=조선DB
 
  첨단 과학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전쟁의 승패를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 군(軍)의 무기 실전 배치 속도가 지금보다 더 빨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5월 출범한 국방혁신위원회는 국방혁신 4.0 계획을 수립하면서 평균 14년 이상 걸리는 현행 절차를 7년으로 대폭 단축할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우리 군을 신속하게 첨단 무기체계로 무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지난해 12월 20일 국방혁신회의 3차 회의를 주재하며 “무기체계 평균 획득 기간을 대폭 단축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어 윤 대통령은 “공정한 접근 기회, 부패 소지 방지 등을 고려한 일반적 절차를 전력(戰力) 획득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철 지난 무기를 배치하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이는 재정 낭비일 뿐 아니라 안보 무능”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광폭 행보를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군은 첨단 무기를 활용해 북한의 군사 도발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방침이다.
 
현행 무기체계 획득 절차. 소요 기획 후 사업에 착수하는 과정에만 평균 4년 2개월이 걸리고, 무기를 실전 배치하기까지 14년 이상이 걸린다.
 
  민간 기업, 방산 사업 참여 부담스러워해
 
  무기를 실전 배치하기까지, 이렇게까지 긴 기간이 걸리는 까닭을 먼저 살펴보자. 국방부 관계자는 “무기 하나를 도입하려면 소요 결정부터 소요 검증, 사업 타당성 조사, 시험평가까지 수많은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현행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에 따르면, 무기체계 획득 절차는 소요 제기 및 결정-선행(先行)연구-소요 검증-사업추진방법 결정-연구개발-시험평가-최초 양산 및 야전운용시험-후속 양산 및 배치 순서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딸린 세부 검증 과정을 모두 더하면 그 단계는 자그마치 150~200개에 이른다. 연구개발이 아닌 기존 무기체계를 구입하는 방법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기체계 최종 수요자는 군이지만, 정작 군의 요구 사항 반영이 제한된 점도 문제다. 현행 규정상 군은 무기체계 소요 제기만 할 수 있다. 선행연구는 방위사업청이, 사업 타당성 조사는 기획재정부가 맡는다. 방산(防産) 비리 예방을 목적으로 단계마다 각기 다른 기관을 검증 주체로 둔 것이다. 이전 단계에서 검증한 항목을 각 기관이 다시금 검증하면서 실전 배치가 늦어지는 풍선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비교적 단순한 무기체계를 도입할 때나 이미 전력화된 무기체계의 성능을 개량하는 과정 역시 같은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이 때문에 첨단 무기가 알맞은 때에 보급되기 어렵고, 보급되더라도 이미 ‘철 지난 무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군 관계자는 “과도한 반복 검증 탓에 사소한 불량 문제라도 방산 비리로 낙인찍힐 우려가 크다”며 “첨단 과학기술을 갖춘 민간 기업이 방산 분야 사업 참여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중복 검증 과정 개선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1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방혁신위원회 출범식에서 하태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에 국방 전문가들은 무기체계 획득 절차를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 획득 절차 효율화 ▲무기체계 특성에 맞는 획득 방법 다변화 ▲민간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 마련 ▲방산 비리 프레임 제거 ▲무기체계 획득 거버넌스 개편 등이다.
 
  먼저 군은 기존 무기체계 획득 절차를 효율화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소요 결정 이후 진행되는 선행연구와 소요 검증을 소요 결정 이전에 ‘통합 소요 기획’으로 묶어 추진할 방침이다. 현행 규정은 선행연구와 소요 검증을 군 외부 기관이 맡아 검증하도록 하고 있다.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앞선 과정에서 이미 검증한 항목을 중복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사업 지연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해군 중장 출신인 김판규 국방혁신위원회 민간위원은 “나날이 발전하는 첨단 과학기술을 무기체계에 신속히 적용하려면 중복 검증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속한 무기체계 도입에 걸림돌이 됐던 사업 타당성 조사 역시 지금보다 유연해진다. 군은 사업 타당성 요구 시기를 연 2회에서 연 4회로 늘리고, 연구개발 사업 타당성 조사를 끝마친 경우 양산 사업 타당성 조사를 생략할 방침이다. 사업 타당성 조사에 쓰이는 사업비 규모가 작다는 것도 문제다. 사업 타당성 조사 기준은 지난 2011년 설정됐지만, 사업비는 지금까지 제자리걸음이다. 그사이 조사 대상 사업 건수는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제한된 예산 탓에 소요 대비 약 60%만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사업 타당성 조사가 지연되면 무기 실전 배치는 자연스레 늦어질 수밖에 없다.
 
  국방혁신위원회 민간위원인 하태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요 기획 후 사업에 착수하는 과정에만 평균 4년 2개월이 걸린다”면서 “선행연구와 소요 검증을 통합하고, 사업 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 규모를 현행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작전운용성능 수정에 융통성 부여
 
  무기체계 소요는 결정하기도 까다롭지만, 한 번 결정되면 수정은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연구개발을 거치며 최초 소요 기준을 그대로 따르기 어렵다는 점이다. 군 관계자는 “연구개발 중간에 기준을 변경하게 되면 방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 감사를 받기도 한다”며 “이 때문에 단계별 검증 주체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군은 작전운용성능(ROC) 설정과 수정에 융통성을 부여할 방침이다. 기술발전 추세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기획 단계에서 작전운용성능을 설정하고, 연구개발 단계에서 이를 최종 검토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법제화할 예정이다.
 
  무기의 시험평가 항목 역시 보다 유연해진다. 현행 규정은 ‘합격’ 또는 ‘불합격’만으로 무기 도입을 결정한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이런 이분법적 규정이 무기 도입을 지연시킨다고 비판해왔다. KUH-1 수리온 헬기 시험평가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7년 시험평가 당시 수리온 헬기가 영하 40도 이하의 안개 낀 지역에서 장시간 비행하면 기체에 얼음이 생겨 비행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모든 필수 성능 평가에는 합격했는데, 이 기능을 충족하지 못해 도입이 늦어졌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극한 환경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평가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예산 수백억원을 추가로 들여 미국 오대호(五大湖) 지역으로 헬기를 가져가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군은 ‘조건부 적합’ 항목을 추가해 무기체계의 전력화 지연을 막겠다는 심산이다.
 
  김판규 위원은 “현행 시험평가는 민간 개발 업체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부수 기능 평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시험 평가가 지연되면 업체는 막대한 규모의 지체상환금을 내야 한다”면서 “첨단 과학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민간 기업이 방산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무봉 국방혁신위 특별 보좌관은 “이와 같은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무기체계가 핵심 성능을 충족한다면 실제로 사용해가며 성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등도 무기 획득 절차 간소화 노력 중
 
한화디펜스가 개발한 ‘미래형 장갑차’ 레드백.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군은 무기체계 획득 절차를 기존 2가지(구매·연구개발)에서 3가지(신속 소요·시범사업 후 획득·소프트웨어 획득)를 더해 5가지로 다변화하겠다고 밝혔다. 먼저 신속 소요 획득 제도를 보자. 이 제도는 2023년 8월 신설됐다. 획득 방법과 획득까지 걸리는 시간에 따라 긴급 소요, 중기 소요, 장기 소요로 나뉜다. 무기 소요 제기부터 실전 배치까지 각각 2년 이내, 3~7년, 8~17년이 걸린다. 신속 소요 획득 제도가 적용된 주요 사업에는 F-22 성능 개량 사업, 사거리연장포(ERCA) 사업, 공중발사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사업, 통합시각훈련장비 사업 등이 있다.
 
  성능이 입증된 기술을 활용하는 무기체계 역시 기존 일반 획득 절차를 축소 적용할 방침이다. 한화디펜스가 개발한 장갑차 레드백이 대표적이다. 레드백은 월등한 공격 능력과 최첨단 방호설비를 갖추고 있어 ‘미래형 장갑차’로 불린다. 군 당국은 신속 소요 획득 제도를 적용해 3년 이내에 레드백을 전력화할 계획이다. 개발이 완료된 기술을 활용해 무기체계 성능을 개량하는 경우에도 신속 소요 획득 제도가 적용된다.
 
  이와 함께 시범사업 후 획득 제도가 신설됐다. 신속 소요 획득 제도가 적용됐더라도 실제 무기 도입 시 따르는 어려움을 보완하려는 방안이다. 무기 소요 결정 이전에 군이 민간 혁신 무기를 시범 운용해보고, 활용성이 입증되면 5년 내로 이를 획득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찰, 경계용 다족보행 로봇과 상용 저궤도 위성 기반 통신체계가 대표적이다.
 
  미국 등 국방 강국 역시 무기 획득 절차를 줄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14년 신속획득법(OTA)을 개정하며 신속 획득 절차 신설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신속획득법은 2~5년 내에 무기체계 개발이나 개발된 무기의 실전 배치를 가능하게 한다. 2016년에는 사업 착수 이후 5년 이내 전력화가 가능한 기술을 도입하는 내용의 중간 단계 획득(MTA) 제도를 만들어 기존 체계를 보완했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 역시 미국의 중간 단계 획득 제도와 유사한 제도를 만들어 긴급 소요와 중기 소요 사이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말했다.
 
  미 육군은 무기 도입 절차에 참여하는 부서와 기관을 통폐합해 미래사령부(AFC)를 신설했다. 이를 바탕으로 무기 도입 기간을 5년에서 1년으로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미 국방부는 앞으로 무기 도입 기간을 더 줄여 인공지능(AI)과 군집 드론을 탑재한 차세대 전투기 개발부터 드론 결합 장갑차, 극초음속 유도무기 등 미래전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를 도입할 계획이다. 영국의 국방혁신센터(IRIS), 프랑스의 국방혁신국(DIA)도 무기 도입 기간을 줄이려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한국형 DIU 설립 추진
 
소프트웨어 획득 제도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정책 연구를 거쳐 2024년 내 관련 법규가 개정될 예정이다. 사진=방위사업청
  소프트웨어 획득 절차 역시 개편된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성능을 개선하려면 일반 획득 절차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는 상황에서 기존 방식만으로는 외부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군 안팎에서 제기돼왔다. 군은 기존의 요구-설계-개발-시험-배치 단계를 거치는 계단식 절차를 요구부터 배치까지의 과정이 능동적으로 지속되는 구조로 바꿀 계획이다. 군은 소프트웨어 획득 절차를 올해 창설 예정인 국방 AI 센터 운영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국방 AI 센터는 국방 사업 기획, 데이터·플랫폼 구축, 체계 개발 및 신속 적용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국방 AI 관련 총괄 기관이다. 무기체계·전력지원체계·정보화체계 획득 시에도 소프트웨어 획득 절차가 적용된다.
 
  김판규 위원은 “항공기나 함정 같은 무기체계는 한 번 도입하면 이삼십 년은 쓴다”면서 “무기체계 특성에 맞는 획득 방법이 마련됐다면, 무기 수명 주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시스템 또한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군과 민간 기업이 협업할 수 있는 연구개발 생태계도 조성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간한 2022년도 연구개발활동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민간 기업의 R&D 투자금액은 89조4213억원으로 전체의 79.4%에 달했다. 같은 해 공공연구기관은 12조9186억원, 대학은 10조3061억원을 R&D 비용으로 사용했다. 사실상 민간 기업이 국내 R&D 업계를 이끄는 셈이다. 이런 사실에 비춰볼 때 민군(民軍) 공동 연구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윤 대통령 역시 지난해 5월 열린 국방혁신위 출범식에 참석해 “민간 과학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신기술이 국방 분야에 도입될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DIU(Defense Innovation Unit·국방혁신단)를 벤치마킹한 한국형 DIU가 설립된다. 미국의 DIU는 미 국방부 연구공학차관실 산하 전문기관으로 실리콘밸리 내 첨단 IT 기업과 협업해 군이 필요한 기술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 현재까지 우리 돈 약 1조3000억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다.
 
  현재 50개 이상의 민간 기업이 DIU와 협업하며 AI, 자율화, 사이버, 휴먼 시스템, 우주 능력 분야 기술개발에 힘쓰고 있다. 전투원 건강상태 확인용 손목시계, 소형 드론, 무인 잠수정 등이 DIU의 결과물이다.
 
  첨단 기술이 반영된 장비가 시험 평가를 거쳐 납품되기까지 불과 1~2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도 DIU의 장점이다. 유무봉 특보는 “한국형 DIU는 군이 현장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가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산 비리 프레임’ 제거해야”
 
  무기체계 획득 절차 개선은 꾸준히 있었지만, 실제 결과는 정반대였다. 지난 2006년 방사청이 설립됐을 당시 129건이었던 무기체계 획득 관련 규정은 2020년 204건으로 약 58%가량 불어났다. 이에 대해 하태정 위원은 “무기 획득 절차를 투명성에만 초점을 맞춰 진행하다 보니 관련 규정이 계속해서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착화된 ‘방산 비리 프레임’을 제거해야 무기체계 획득 절차 단축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하 위원은 “방위사업감독관실(감독관실)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독관실은 정부 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의 ‘방위사업 비리 근절 우선 대책’의 목적으로 지난 2015년 12월 설립됐다. 비리를 근절하겠다는 설립 목표는 달성했지만, 도리어 실무자들이 경직돼 업무 효율성이 저하됐다는 게 하 위원의 생각이다. 하 위원은 “자신이 감찰 대상이 될 수 있는데 누가 책임져야 하는 업무를 맡겠느냐”면서 “가장 신속하고 혁신적으로 움직여야 할 국방 관련 실무자들이 오히려 가장 늦게 움직인다”고 지적했다.
 
  감독관실을 폐지하면 비리가 늘어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하 위원은 “방산 관련 실무자의 윤리 의식은 이제 선진국 수준 이상”이라면서 “마치 비리 집단인 양 군 조직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건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지금은 투명성 때문에 군과 일을 못 하겠다는 민간 기업이 많다”며 “무기체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판규 위원도 “해군 함정을 만들 때에도 첨단 기능 장착을 고민하는 대신 비리가 발생하지 않는 쪽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며 감독관실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군의 무기체계 획득 기간이 목표대로 단축된다면 경제 효과 역시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하 위원은 “목표를 달성한다면 한 해 평균 약 1조8000억원의 국내 방산 수요 창출과 4조8000억원의 산업생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2023년도 방위력개선비(무기체계 획득에 필요한 비용)가 약 16조9000억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매우 의미 있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방위사업법 개정… 각군 소요 결정 가능
 
  국방혁신위가 지난해 출범한 뒤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기고 있다. 지난해 8월 신속 소요 획득 제도가 도입됐고, 지난 2월 6일에는 ‘방위사업법’이 개정 시행됐다. 육·해·공군 등 각군이 일부 무기체계에 대해 소요를 직접 결정해 신속 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법에 따라 사업 규모가 크지 않고 각군에서 단독으로 필요한 무기체계에 대해선 각군 총장이 소요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사업은 국방부가 결정해 기재부 협의를 거쳐 사업 타당성 조사를 면제받는다.
 
  또한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7월 ‘방위력개선사업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을 개정했다. 개정안에 따라 신산업 분야의 우수 기술력을 갖춘 기업의 방산 사업 참여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군의 신속 시범 사업에 과제를 제안해 채택되고 해당 과제의 수행기관으로 참여한 방산기업은 제안서 평가 때 가점 1점을 받는다. 또 신속 시범 사업에 제안한 과제 중 군사적 활용성이 인정돼 군이 후속 구매사업을 추진하면, 해당 과제를 수행한 기업이 얻는 기종 결정 종합평가 가점이 현행 1점에서 3점으로 늘어난다.
 
  국방혁신위 측은 이런 변화를 반기면서도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선 무기체계 획득 거버넌스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방부 주도로 무기체계 획득 절차가 진행된다면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하태정 위원은 “이를 위해 수많은 법률이 개정돼야 하고, 여러 이해당사자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면서도 “미국·영국·프랑스·이스라엘 같은 국방 강국처럼 우리 역시 무기체계 획득체계 거버넌스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韓 수출 무기, 첨단이라고 보기 어려워”
 
신원식(오른쪽 세 번째) 국방부 장관이 2월 5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세계방산전시회(WDS)에 참여했다. 사진=국방부
  국방부와 방산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방위산업 수출 규모는 약 140억 달러(약 18조6000억원)로, 2년 연속 방산 수출국 세계 톱 10에 이름을 올렸다. 당초 목표였던 200억 달러에 미치지 못했고, 전년도 실적인 173억 달러보다 줄어든 규모지만, 질적으로는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방산 수출 대상국이 2022년 폴란드 등 4개국에서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핀란드, 노르웨이 등 총 12개국으로 늘었고, 수출 무기체계도 6개에서 12개로 다변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긴 이르다”고 입을 모았다. 하태정 위원은 “우리가 수출한 무기체계를 들여다보면 주로 K-9 자주포, K-2 전차, 천궁-Ⅱ에 집중돼 있다”면서 “이들 무기를 첨단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꾸준히 성능 개량이 이뤄지고 있지만, K-9 자주포는 1999년, K-2 전차는 2014년, 천궁-Ⅱ는 2020년 각각 실전 배치됐다. 하 위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 충격으로 생긴 틈새시장에서 ‘가성비’로 승부를 본 것”이라며 “성과를 평가절하해선 안 되겠지만, 우리가 첨단 무기체계 글로벌 경쟁력을 가졌는지는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판규 위원 역시 “한국은 북한이라는 위협 때문에 다른 국가보다 준비된 상태였다”며 “오늘의 성공에 취하지 말고, 우리 군의 첨단 무기체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병력은 1/3, 전투 능력은 향상”… AI ‘GOP의 눈’ 되다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 감시·감지·탐지·식별·추적, AI 도움받는다… “오·경보 확률 1% 수준”
⊙ 피아(彼我) 식별 가능… 敵 공격엔 반격도
⊙ “시범 운용 결과 만족스러워… 2030년께 全軍 적용”
⊙ 美·이스라엘 등 군사 강국 벤치마킹… “우리 안보 환경 맞게 최적화할 것”
⊙ “경계 임무도 ‘즉강끝’ 원칙… 적 도발 시 더 큰 손해”(정연봉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 “AI 효과 높이려면 지휘관 복무 여건 개선 함께 이뤄져야”(유무봉 국방혁신위 특보)
지난해 12월 GOP 장병들이 눈 쌓인 철책을 점검하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 사진=국방부
 
  장병 10만여 명, 육군 10여 개 사단이 GOP 일대 경계 작전에 투입되고 있다. 국군 전체 병력 5분의 1에 달한다. 이들 부대의 최우선 관심사항은 경계 작전이다. 초과근무나 비상대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연스레 장병 사기가 저하된다. 반면 가장 주안점을 둬야 할 교육 훈련 시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해지고 있다.
 
  군은 과학화 경계작전체계를 운용하고 있지만, 이들 장비는 단순 탐지 및 감시·감지 기능만 제공한다는 한계가 있다. 군 당국이 경계 작전 병력을 계속해서 증원하는 이유다. 이들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무 여건은 개선되지 않는데 책임져야 할 일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방부는 AI 기반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은 AI 드론, AI 로봇, AI 무인 초소가 철책을 경계하고, 소수 병력이 이 장비를 관리해 적의 침투·귀순 등의 상황에 대응하는 체계를 뜻한다. 이는 국방혁신4.0 계획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다. 이 시스템이 전력화되면 현재 장병이 수행하는 감시, 탐지, 식별, 추적에 AI의 도움을 받게 된다. 경계 병력 역시 지금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군 데이터 200만 건 입력
 
AI 경계센터 상황실 내부. 사진=국방부
  지난 2016년 군은 1700억원을 들여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도입했다. GOP 철책 전 구간에 CCTV와 열상감시장비(TOD), 광망(光網)을 설치한 것이다. 그러나 특정 물체를 구별하고 판단하는 건 여전히 사람 몫이다. 이 때문에 장병들은 유사시 상황을 구분하기 위해 24시간 내내 모니터를 응시해야 한다. 또한 광망이 오·경보를 울리진 않을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군 관계자는 “해외 연구에 따르면 모니터를 육안으로 12분 이상 주시할 때 움직이는 물체를 놓칠 확률이 45%”라면서 “22분 이상 주시할 때는 그 확률이 무려 95%까지 올라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학화 경계 시스템 도입 이후에도 철책선이 뚫리는 귀순과 월북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시스템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계속 제기돼왔다. 대표적인 예가 2020년 11월 발생한 ‘점프 귀순’ 사건이다. 당시 CCTV와 TOD가 귀순자를 포착했지만,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사람도, 기계도 이상 상황을 판별해내지 못한 것이다. 잦은 장비 고장 역시 문제다. 2017년부터 5년 동안 육군에 공식 접수된 고장 건수만 800건이 넘는다.
 
  육군 중장 출신인 정연봉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은 “과학화 경계 시스템 도입 후 경계 병력이 줄기는커녕, 감시 장비 유지와 관리를 위해 오히려 병력 10~20%가 증원됐다”고 지적했다.
 
  군 당국이 도입을 추진하는 AI 기반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은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대체할 체계다. 고성능 카메라가 장착된 이동식 레일로봇, 수풀을 투과할 수 있는 레이더, 감시 카메라, 정찰 드론 등의 감시 장비가 수집한 데이터를 AI를 활용해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감시·감지·탐지·식별·추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한다.
 
  AI 학습을 위해 군 당국은 200만 건 이상의 군 관련 데이터와 20만 건 이상의 지형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 데이터를 경계 장비에 입력해 AI의 상황 인식 정확도를 높일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데이터의 양과 질이야말로 경계 작전의 성패를 좌우할 요소”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데이터를 축적하고 입력하는 초기 단계에선 시스템이 조금은 불안정할 수도 있다”면서도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문제점을 보완해 기술 완성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지난해 한 정책 연구에 따르면 AI 기반 체계에서 경보 신뢰성을 좌우하는 오·경보 확률은 1% 수준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피아 식별… 적 공격엔 반격도
 
  AI 기반 경계 장비는 무장공비 침투부터 귀순 시도, 동물 이동 등 다양한 시나리오도 학습하게 된다. 야간이나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날씨 속에서도 군사분계선(MDL) 북쪽 멀리 있는 물체를 또렷이 식별·추적할 수 있다. 영상분석체계는 이 데이터를 받아 해당 물체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판단한다. 나아가 이 물체가 아군인지 적군인지까지도 구분해낼 수 있다고 한다. 적의 공격에 반격할 수 있는 무장도 탑재된다. 경계 병력은 줄이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군 관계자는 “AI 기반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으로의 이행은 선택이 아닌, 군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저출산 탓에 해마다 병력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군이 2035년까지는 상비 병력 50만 명 수준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지만, 이후 인구절벽이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20년 33만4000여 명 수준의 입영 대상 병력 자원은 2035년 22만7000여 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2041년부터는 약 13만 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에도 지금과 같이 10개가 넘는 보병사단, 병력 10만여 명을 GOP 경계 작전에 투입하기엔 무리가 있다. 군이 AI 기반 장비 정식 도입 목표 시기를 2030년대로 잡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군 관계자는 “경계 작전과 관련해 획기적인 군 체질 개선이 급선무”라고 했다.
 
 
  전투·교육 훈련 여건 마련
 
  AI 기반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 도입 과정은 어떻게 될까? 먼저, 군은 미래 GOP 경계 작전 개념과 작전수행체계를 정립해왔다. 이 과정은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군사 전문가들은 철책 전방에서 적을 발견해 격멸하는 기존의 선(line) 개념을 일정 지역(Zone) 내에서 적을 발견해 격멸하는 개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AI 기반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 소요 결정과 GOP 과학화 경계 시스템 성능 개량은 단계별로 나뉘어 추진된다. 또 많은 양의 군 데이터가 경계 장비에 입력된다. 이동식 레일로봇 등 민간 첨단 기술이 신속 획득 절차에 따라 도입돼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의 중추를 이룬다. 신속 획득 절차란 무기체계 도입이 지연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절차를 간소화하는 제도를 뜻한다.
 
  군은 현재 경기도 연천군 소재 전방 1개 사단을 지정, AI 기반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 시범 운용을 준비하고 있다. 모니터를 확인하는 인력 3명이 각각 3km 경계 구간을 책임진다. 군은 1년6개월의 시범사업 기간 결과를 꼼꼼히 분석한 뒤 부족한 점을 보완할 방침이다. 2030년대 전군 정식 운용을 목표로 두고 있다. 군 관계자는 “병력은 3분의 1 이하로 줄이면서 영상 감시 자동 식별과 경보 능력은 100%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대급 인력으로 대대급 임무를 대체할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병력의 효율적 운용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군 당국은 기대한다. AI 도입으로 1개 대대가 하는 경계 작전을 1개 중대가 맡게 되면 나머지 중대들은 전·평시를 대비해 전투·교육 훈련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군 고위 관계자는 “절약된 시간과 병력을 전투 준비 태세 향상과 실전 교육 훈련에 투입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장병의 삶의 질도 보장된다”고 밝혔다. 이어 “AI 기반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 구축에 활용된 기술은 민간 기술로도 파생돼 국가 과학 기술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GOP뿐만 아니라 해안 부대에서도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이 시범 운용되고 있다. 지난 2020~2023년 군은 160억원을 들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협업, ‘AI+X’ 사업을 추진했다. 육군 35사단 1개 부대가 선정돼 해군, 해경과 함께 경계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해안 부대에는 AI가 탑재된 경비정이 추가로 운용된다. 군 당국에 따르면 시범 운용을 거치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군은 올해 AI 고도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결과를 토대로 기타 해안경계부대에도 사업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이 밖에도 육군 후방부대, 해군 2함대사, 공군 20전투비행단 등에서도 AI 기반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이 시범 도입된다. 군 관계자는 “아직 개념 발전 단계에 있는 부대가 많지만, 유·무인 복합체계의 효과가 입증된 만큼 시범사업 확대엔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美, 소수 인원이 국경 장벽 통제
 
 
정연봉 부원장은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의 신속한 도입을 강조했다. 그는 “AI 기반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이 정착되면 군의 평시 경계 작전과 전시 작전 준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GOP 경계 작전에 모든 지휘 역량이 투입되고 있는 현재의 왜곡된 부대 운용을 정상화할 것”이라며 “전시 대비 태세 유지와 교육 훈련에 매진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군사 선진국의 첨단 경계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과 이스라엘의 스마트 장벽, 이른바 ‘아이언 월’이 대표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밀입국 및 밀수 방지를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 3000km에 2~3중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 공약은 현실로 이어졌다. 6~9m 높이의 국경 장벽이 세워졌고, 그 위엔 레이더, 근거리 카메라, 중적외선 카메라 등이 설치됐다. 우리 군이 추진하는 AI 기반 철책과 유사한 구조다.
 
  감시센터에는 이를 통합 운영 관리하는 소프트웨어(Lattice OS)가 상시 작동하고 있다. 미군과 정부 기관은 방산기업 안두릴(Anduril)사(社)와 협업해 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1000여 대 이상의 감시·감지 센서, 무인 정찰기 등을 시스템 하나에 통합해 소수 인원으로도 상황 감시가 가능하다.
 
  지난해 이 국경 장벽을 현지 답사한 우리 군 고위 관계자는 “감시센터에서 근무하는 인원 외에 장벽 근처에서 경계 근무하는 인력은 없었다”면서 “순찰차 1~2대가 이 지역을 돌다가 유사시 감시센터가 지시를 내리면 현장에 즉시 투입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아이언 월 실패? 우리 군과 상황 달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봉쇄하기 위해 설치한 ‘아이언 월’. 이 장벽은 감시 카메라와 센서 등을 갖추고 있었지만, 지난해 하마스 기습 공격 당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사진=신화/뉴시스
  이스라엘은 지난 2014년 하마스와의 ‘50일 전쟁’ 이후 우리 돈 약 1조4000억원을 들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봉쇄하는 거대한 벽을 세웠다.
 
  2021년 높이 6m에 이르는 이 장벽이 완성되자 베니 간츠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를 ‘아이언 월’이라고 불렀다.
 
  아이언 월은 레이더, 카메라, 센서, 감지 장비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모든 감시센터가 실시간으로 동일 정보를 공유한다. 이 장비의 적 인식률은 90~95%에 이른다. 이 감시센터는 여군 2명으로 운영되는데, 감시센터 1개소가 약 25km 구역을 경계한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아이언 월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스라엘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국경 경계 작전을 아이언 월에 지나치게 의존했다고 분석했다. 아이언 월의 기능을 믿고 가자지구 접경 지역 경계 병력의 상당수를 서안지구로 옮겼다는 것이다. 이를 간파한 하마스는 먼저 드론에 폭발물을 실어 감시센터를 파괴했다. 이어 패러글라이더를 탄 하마스 대원이 담을 넘어 이스라엘 영토로 들어왔다. 그 뒤 불도저로 아이언 월을 밀어 돌파구를 만들었다.
 
  일각에선 “우리 군의 AI 기반 철책 역시 북한의 기습 공격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한다. 그러나 군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스라엘과 상황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군 관계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달리 남북한 사이엔 DMZ라는 4km 완충 공간이 존재한다”면서 “적이 경계초소에 접근 시 원거리부터 탐지와 경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계초소가 일부 무력화되더라도 북한군이 DMZ를 통과하기까지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면서 “DMZ 후방의 우리 군이 상시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어 대응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같은 차이가 있다고 해서 방심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규모 지상 침투는 어렵더라도 모터 패러글라이더나 저고도 침투용 AN-2기 등 레이더로 포착이 어려운 비대칭 전력을 이용해 철책을 넘어 공중 침투해오거나 소형 드론을 활용해 도발해올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군 당국도 북한이 AN-2기 300여 대를 활용해 1, 2, 3차에 나눠 100여 대씩을 순차 침투시키는 방식의 ‘파상공격(波狀攻擊)’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군 당국은 이스라엘의 아이언 월 운영 시스템을 참고하되, 우리 안보 환경에 맞는 작전 체계를 정립해 경계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겠다는 계획이다.
 
 
  “거부적 억제·보복적 억제 병행해야”
 
지난해 1월 조 바이든(왼쪽 두 번째)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주의 미-멕시코 접경지대를 찾아 장벽 옆을 걷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AI 장비만 갖춘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정연봉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은 첨단 장비의 운용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계 작전 개념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 부원장은 “우리 국민은 북한군이 철책선만 통과해도 작전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면서 “경계 작전 전체 맥락에서 이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부원장은 “경계 작전 전체를 분석해 실수에 의한 것인지, 불가항력 요소에 의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면서 “작전 실패에 대한 기준을 분명히 세워 책임 추궁의 한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그만 잘못도 군 기강 해이나 안보 실패로 매도하고 최상위 지휘관까지 문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 부원장이 무엇보다 강조한 건 경계 작전 패러다임 변화다. 그는 “현재 우리 군은 적이 우리 철책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거부적 억제’ 형태로 경계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보복적 억제’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북한군이 철책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침투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고, 침투 도발 시 손해가 더 크다는 것을 확실히 경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강조한 단호한 대북 대응 방식,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 원칙과 맞닿아 있다.
 
  정 부원장은 “두 방식을 적절히 섞어 경계 작전 개념을 발전시킨다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면서 “이 개념이 잘 정착한다면 일선 부대 지휘관들 역시 전투 준비와 교육 훈련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쏟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유무봉 국방혁신위원회 특별 보좌관은 지휘관 복무 여건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AI 기반 유·무인 복합체계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한 마리 사자가 이끄는 양 떼가 한 마리 양이 이끄는 사자 떼를 이긴다’는 말처럼, 지휘관의 역할은 실전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전방 경계 부대 지휘관이 마주한 현실을 고려할 때 실전에서 제대로 된 지휘가 가능하겠냐는 게 유 특보의 지적이다.
 
  유 특보에 따르면, 우리 군 GOP 대대장은 늘 ‘1분 대기조’ 상태에 놓여 있다. 관사로 돌아온 뒤에도 전투복조차 벗지 못하고 쪽잠을 자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수시로 발령되는 ‘경계 강화’ 지시 때문에 외출과 휴가를 반납하는 경우도 잦다. 책임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큰 책임을 져야 한다. 향후 인사이동에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부대별 전투지휘활동비가 소요보다 부족해 사비를 지출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GOP 대대장·여단장에겐 시간 외 근무수당도 지급되지 않는다. 이른바 ‘충성 페이’를 강요받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발생한 장성급 지휘관의 ‘공관병 갑질 논란’ 이후 이들의 생활을 돕는 관사 관리 인력도 더 이상 제공되지 않는다. 그 결과 일선 지휘관의 사기는 저하됐으며, 전투 훈련마저 여론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됐다고 한다. 심지어 과도한 경계 근무로 인해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장병이 지휘관을 겨냥해 음해성, 무고성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근 초급 간부 지원율이 급격히 하락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휘감독 책임 범위 기준 마련해야”
 
  유 특보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지휘관 임무와 야전 실상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지휘관이 언제 어디서나 전투 준비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명감 하나만으로 이런 어려움을 감당하기에는 시대가 변했다”면서 “군 당국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 특보는 ▲지휘감독에 대한 책임 범위 기준 마련 ▲음해, 무고성 신고에 대한 엄중 처벌 ▲지휘활동에 필요한 적정 예산 편성 및 지원 ▲장성급 지휘관에 한해 지급하는 보안 휴대전화를 GP장, 소초장, 중대장, 대대장에게도 지급해 지휘통제 여건 보장 ▲부지휘관 대리권을 보장해 지휘관의 휴식 보장을 지휘관 복무 여건 개선 방안으로 꼽았다.⊙
 
 

‘미래전은 속도전’… 超연결 네트워크로 전장 실시간 지휘한다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 JADC2로 전방 전투원 획득 정보, 합동참모본부까지 융합·공유… 즉각적인 전력 운용 가능
⊙ 러-우크라 전쟁, JADC2 미래 가치 가늠… “우크라, 암호화된 전자지도 접속해 실시간 전장 정보 확인”
⊙ “美 국방부, 기업처럼 ‘집중 전략’… 우리 군도 기업 경영 마인드 지녀야”(김인호 위원)
⊙ 전투 클라우드 구축… “네이버만큼의 보안, 카톡만큼의 유연성 동시에 갖춰야”(김승주 위원)
⊙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개발 위해 10대 분야, 30개 국방전략기술 선정, 국방연구개발 재원 배분
⊙ K-MOSA 추진… 전력 유연성·유지 보수 원활함·무인체계 저비용 획득 유지 가능
지난해 6월 해군이 부산 작전기지에서 ‘해양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적용 상륙작전’ 기동 시범을 선보이는 모습. 사진=해군
 
  속도가 미래 전장(戰場) 승패를 좌우할 요소가 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인 가운데 우리 군(軍)은 승리 공식 중 하나로 ‘유·무인(有無人) 복합전투체계’와 ‘합동 전 영역 지휘통제(JADC2·Joint All Domain Command and Control) 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JADC2란 육·해·공·해병대의 합동 전장 정보를 활용해 실시간 전장을 가시화하고, 인공지능(AI)이 지휘 결심을 도움으로써 작전 흐름 속도를 높이는 차세대 지휘통제 개념이다. JADC2 전략의 핵심은 군 전 영역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초(超)연결해 감시정찰에서 타격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국방혁신4.0을 통해 군은 합동 지휘통제·통신 종합발전 계획을 완성하고, 핵심 능력을 전력화해 JADC2를 구축할 계획이다.
 
  JADC2 구축은 국방혁신4.0 전체 16개 과제 중 8번째 과제다. 현재는 전문조직 편성과 인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단계로 2025년께 본격적인 체계 구축에 나설 전망이다. 이어 JADC2 미니어처 개념을 적용해 검증을 마친 뒤 시범부대를 선정, 적용할 계획이다. 군 한 관계자는 “네트워크 성능, 초연결 정도, 연결망 신뢰도, 결심지원 알고리즘 등 지휘통제체계의 질(質)이 작전 승패를 결정할 중요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는 육·해·공·해병대가 서로 다른 지휘통신체계를 사용하고 있어 실시간 지휘통제에 제한이 있다. 군에 따르면, 군내 정보 유통 구조는 ‘트리형’ 구조를 따른다. 각 군 일선 부대에서 특정 정보를 획득해 상급 부대로 전달한 뒤 합참에 최종 보고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타군의 작전 상황을 알기 위해선 정보 종착지인 합참으로부터 재가공된 정보를 받아야만 한다. 또한 같은 지휘통신체계라도 무기체계마다 소프트웨어 버전이 다른 경우가 있어 각 군 간 정보의 상호연동이 제한됐다. 심지어 육군이라도 보병부대가 활용하는 네트워크체계와 특수작전부대가 활용하는 네트워크체계가 독립 운용되는 경우도 있다.
 
  더욱이 2차 인구절벽으로 인한 병역자원 감소, 작전개념 변화,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구축이 본격화되면서 무인 무기체계와 운용 병력을 AI 네트워크로 연결할 수 있는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다.
 
전투 클라우드 구축 및 전장 인식 개념도. 사진=국방부
 
  美, 표적 처리까지 기존 20분→20초
 
  JADC2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선 스마트폰 메신저 애플리케이션과 이 메신저와 연동한 택시 서비스, 그리고 지도 서비스를 떠올리면 된다. 스마트폰만 갖고 있으면 해당 메신저를 통해 전 세계 사용자가 자유롭게 망을 구성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택시 서비스의 경우, 메신저 사용자가 목적지와 출발지, 원하는 택시 등급 정도만 설정하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인접 택시와 매칭해준다. 메신저 사용자는 택시의 위치를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또 메신저와 연동한 지도 서비스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AI가 실시간 교통상황을 고려해 최단거리 최단시간, 무료도로 등 최적의 루트를 지원한다. 사용자는 이 중 자신의 상황에 맞는 루트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JADC2도 이와 같다. 전방 전투원으로부터 획득한 정보를 합동참모본부 지휘부까지 필요에 따라 융합·공유할 수 있고 AI를 활용해 적시 결심 지원과 즉각적인 전력 운용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JADC2는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초융합·초지능 기술 집약체로 불린다.
 
  미군 역시 지난 2019년부터 JADC2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2021년 미 국방부는 육·해·공·해병대는 물론 우주군의 모든 지휘 센서를 하나로 결합하는 지휘통제 개념을 구상했다. 작전 공간을 지상뿐만 아니라 우주, 사이버 공간까지 확대해 말 그대로 ‘전 영역’ 지휘가 가능하도록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표적 획득부터 표적 처리까지 20분 이상 걸리던 기존 체계를 20초 이내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주한미군의 최우선 과제 역시 JADC2 구축이다. 우리 군 또한 현재 미군과의 연합방위태세 아래에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양측의 JADC2를 연계하는 등 상호운용성을 높이는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미군은 현재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에만 JADC2 표준을 공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 지휘통제체제 덕분에 저항 가능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5월 22일 오후 오산 미 공군기지의 항공우주작전본부(KAOC)를 함께 방문,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한미 정부는 경기도 평택 오산 공군 기지에 군사 5G 무선망을 구축하기로 합의하고, 참여 기업 선정 및 통신망 설치 계획 등을 수립했다. 상호 연계할 수 있는 JADC2 구축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초 미국은 JADC2를 미국과 기밀 정보 공유 동맹을 맺은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에 한해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앞으로 한국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군은 공군 F-35 스텔스 전투기 레이더가 감지하는 정보를 육·해군 등이 실시간으로 공유받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게 돕고 있는데, 이를 동맹국 차원으로 확대하는 길 또한 열릴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JADC2 의 미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사례다. 군사 전문가들은 군사력이 열세인 우크라이나가 항전할 수 있었던 이유로 지휘통제체계를 꼽는다. 미국 민간 인공위성 기업인 스페이스 X사의 스타링크 체계를 활용해 지휘통신체계를 복구, 이를 활용해 러시아의 공세를 막아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센서-슈터 자동화체계인 GIS ARTA체계를 운용해 개전 초기 군사력 열세를 극복했다. 바꿔 말하면 이 같은 지휘통제체계가 없었다면 전쟁은 러시아의 압승으로 순식간에 끝났을 가능성이 크다. 한 군사 전문가는 “우크라이나 지휘관은 암호화된 전자지도에 접속해 실시간 전장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적의 핵심 표적을 식별한 지휘관이 타격 수단을 결정하면 이 정보가 자동화체계를 통해 포병부대에 전송, 수분 이내 목표를 타격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전투 클라우드, 민간용 클라우드 구축보다 어려워
 
  군 당국에 따르면,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은 JADC2 구축의 핵심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란 인터넷을 통해 서버, 스토리지,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뜻한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이용하면 자신의 컴퓨터가 아닌 다른 컴퓨터로도 정보 처리가 가능하다.
 
  군은 전투 클라우드를 구축해 전군이 실시간 전장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선 전장 데이터 표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대용량 군사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전송·유통하기 위해서다. 전투 클라우드 환경이 마련되면 각 군은 단말기를 이용해 클라우드에 접속, 전략·작전·전술 정보를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다. 향후 군이 저궤도 초소형 위성 100여 기를 발사할 계획을 밝힌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다만 전문가들은 전투 클라우드 구축은 민간용 클라우드 구축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인 김승주 국방혁신위원회 민간 위원은 “전투 클라우드를 5G 환경 속에서 운영되는 일반 클라우드와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군 통신 환경에서 5G를 기대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만약 통신이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작전에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간보다 훨씬 악조건인 상황에서 네이버만큼의 보안과 카카오톡만큼의 유연성을 동시에 갖춰야 하는 작업”이라고 분석했다. 군 관계자 역시 “일반 자동차 자율 주행은 도로를 달린다. 그런데 전투용 무인 로봇은 도로가 아닌 야지(野地)를 돌아다녀야 한다”며 “도로 데이터는 존재하지만 야지는 그렇지 않다. 이 지역을 장애물을 극복해가면서 기존 병력과 보조를 맞춰가며 작전을 수행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어려움도 존재한다. 전투 클라우드 내 정보의 접근 및 사용 권한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부여할지에 관한 문제다. 김 위원은 “민간 기업들도 클라우드 데이터 접근 권한을 잘못 부여해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며 “정보 접근 권한은 보안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이 권한을 효과적으로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지난 4월 1일 문을 연 국방 AI 센터가 이 문제들을 보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軍, 민간 기업과 협업 필수
 
4월 1일 대전 국방과학기술연구소에서 열린 국방AI센터 현판식. 사진=국방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우수한 AI 기술력을 갖춘 민간 기업과의 협업이 필수다. 미 국방부는 JADC2 구축을 본격화하면서 아마존 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MS AZURE),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GCP) 등 민간 기업들의 멀티 클라우드를 도입했다. 에릭 슈미트 구글 전 최고 경영자(CEO)가 우리의 국방혁신위원회 격인 미 국방부 혁신자문위원회의 위원장에 임명, 실리콘밸리의 최신 정보·기술을 국방 기술에 적용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를 두고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사이버상 국가 안보 위협이 높아지면서 어느 때보다 실리콘밸리의 도움이 필요해졌다”고 분석했다. 김승주 위원은 “미 국방부는 자국의 메이저 클라우드 기업과 협업해 기술을 주고받으며 빠른 속도로 전투 클라우드 분야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과학연구소장을 역임한 김인호 국방혁신위원회 민간 위원은 “미국은 국방부를 기업처럼 ‘집중 전략’을 취한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은 “대기업은 신제품을 개발할 때 여러 부서의 유능한 인력을 모아 집중적으로 개발 업무에 투입한 뒤 결과물이 나오면 원래 부서로 이들을 돌려보낸다”며 “미 육·해·공군 역시 평시엔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다가 유사 상황이 발생하면 거기에 필요한 무기체계와 전력을 왕창 모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구조를 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군 역시 이 같은 기업 경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군과 기업의 교류가 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 실리콘밸리가 첨단산업단지로 태동할 무렵 미 국방부는 레이더, 반도체 등의 개발을 위한 초기 자금을 대면서 스타트업 기업들의 성장을 도왔다. 미 군산복합체의 대명사인 록히드마틴은 한때 마운틴뷰(현재 구글과 모회사 알파벳 본사 소재지)와 쿠퍼티노(애플 본사 소재지) 사이에 자리한 서니베일시에서 미사일을 만들었다. 우리 군 관계자는 “국방혁신4.0을 통해 4차산업 분야의 군 기술이 민간으로, 민간 기술이 군에 도입돼 상호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AI가 조종하는 6세대 전투기
 
  JADC2가 보이지 않는 전장 핵심 요소라면, 유·무인 복합전투체계는 눈에 보이는 전장 핵심 요소다.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구축 역시 국방혁신4.0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과제 중 하나다. 앞으로 등장할 6세대 전투기가 유·무인 복합전투체계의 대표적인 예다. 6세대 전투기는 뛰어난 스텔스 성능은 물론 AI 기술이 적용된 유·무인 복합체계로 운용된다. 유인기와 무인기 어느 쪽으로든 운용이 가능한 선택적 유인기(OPV)로 설계된다. 이미 미국은 차세대 공중 지배 전투기(NGAD)를, 영국·이탈리아·일본은 6세대급 차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GCAP)을 가동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지난 2월 차세대 공중전투체계 핵심 기술 개발에 1025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6세대 전장 체계의 핵심인 AI, 빅데이터, 자율·무인 등 첨단 기술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유·무인 복합전투체계가 효과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선 기반을 다지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군은 ▲상호운용성 확보 ▲군사작전에 필요한 주파수 확보 ▲보안·암호체계 구축 ▲광대역 통합망 등 네트워크 환경 구축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활용을 위한 교육훈련 및 정비체계 능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핵심 기술 개발도 추진된다. 무기체계는 첨단 기술의 결정판(決定版)으로 불릴 만큼 각국이 수년간 연구 개발한 결과물이다. 이 때문에 군사 선진국들은 무기체계를 개발했더라도 해당 무기에 투입한 기술의 이전이나 판매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지난 3월 국가 핵심 기술을 국외로 유출한 경우 최대 징역 18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보다 6년 더 높아진 것이다. 또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 등 선처를 받는 것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국방부는 지난해 4월 AI, 유·무인 복합, 양자, 우주, 에너지, 첨단소재 등 10대 분야, 30개 국방전략기술을 선정해 국방연구개발 재원을 우선 배분, 이를 집중 개발하고 있다. 국방전략 기술은 ▲국가안보 유지 ▲미래전장 선도 ▲국가 과학 기술 융합 관점에서 국방 목표 달성을 위해 전략적 투자와 육성이 필요한 기술을 의미한다. 전략적 중요성, 기술 혁신성, 개발 시급성, 확보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30개가 선정됐다.
 
  군은 민군(民軍) 기술 표준화에도 나선다. 군에 따르면, 민군 겸용 장비가 군에서 활용될 때 기술 표준화가 돼 있지 않아 유지 보수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미래 전장에서 활용 가치가 높은 무인 드론은 현재 기술 표준화가 돼 있지 않아 장비 업그레이드가 어렵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민군 겸용 기술 표준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군은 유·무인 복합전투체계의 신속한 전력화를 위해 시범부대를 선정할 방침이다. 야전에 도입해 장비를 사용해가며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적용 부대를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무인체계 계열화·모듈화
 
  군은 무인체계를 계열화·모듈화하는 이른바 K-MOSA(Korea-Modular Open System Approach)도 추진한다. 무인체계 ‘계열화’는 운용 목적과 작전 효과 및 탑재할 임무장비 등을 고려해 플랫폼을 크기, 종류, 구조 등의 형태로 분류하고 공통화하는 작업이다. ‘모듈화’는 계열화된 플랫폼에 다양한 장비가 공통으로 탈착(脫着)하거나 이종(異種) 플랫폼에 호환될 수 있도록 독립 기능이 가능한 단위로 탑재 장비를 세트화하는 것을 뜻한다. 계열화·모듈화된 장비를 손쉽게 교환함으로써 전력 유연성과 유지 보수의 원활함을 얻을 수 있다. 또 무인체계를 저비용으로 획득·유지하는 시스템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군 관계자는 “무인체계를 ‘모시고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면서 “쓰고 버리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생산단가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군은 소품종 대량 생산체계 전환을 위해 장비 표준화도 도입할 방침이다. 또 우방국 간 협력을 위한 군사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미국과 NATO 역시 MOSA를 국방 정책으로 추진하는 만큼 당사국 간 연합작전이나 방산수출 등이 확대될 전망이다.
 
  K-MOSA를 뒷받침할 제도 개선도 끝마쳤다. 지난 4월 10일 군에 따르면 국방부는 무인체계 계열화·모듈화 작업을 반영한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을 일부 개정해 전날 발령했다. 개정 훈령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각 군, 방위사업청 등이 무인체계를 소요 결정하거나 획득하는 과정에서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해 무인체계의 계열화 및 모듈화 방안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군 관계자는 “상호 호환 규격과 공통 소프트웨어가 적용돼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간 상호운용성이 증가하고 차후 성능 개량도 쉬워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인호 위원은 “국가 과학 기술이 ‘세계 최고 기술’을 지향한다면 국방 과학 기술은 ‘세계 최적 기술’을 지향해야 한다”면서 “오늘까지 개발된 기술 중 우리 전장 상황에 맞는 최적의 기술을 찾아 즉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