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미사일 고체연료화 완료… 한국군은 무용지물 ‘킬체인’ 유지
골든타임 5분인데 액체연료 미사일 기준 40분 전제로 방어체계 구축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최근 북한이 쏘는 중단거리 미사일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40년 넘게 주력으로 사용한 액체연료 방식 추진체를 포기하고, 새로 개발한 고체연료 방식 추진체를 썼다는 점이다. 북한이 처음 도입한 탄도미사일인 스커드는 액체연료를 사용했으며, 이후 개발한 미사일 대부분에서도 액체연료 방식을 고집했다. 옛 소련의 단거리 전술탄도미사일 OTR-21 ‘토치카’를 복제한 고체연료 미사일도 있었지만, 화성-5·6·7·9형은 물론 무수단과 그 후 등장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모두 액체연료를 사용했다.
북한이 액체연료 로켓을 주로 사용한 이유는 기술 검증이 끝난 데다 성능도 양호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첫 액체연료 로켓은 연료로는 케로신을, 산화제로는 부식 방지 처리된 적연질산(IRFNA)을 사용했다. 그 후 북한은 효율성이 비교적 높은 비대칭디메틸히드라진(UDMH) 연료와 사산화이질소(N2O4) 산화제를 자체 생산해 미사일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4월 2일 신형 중장거리 고체연료 극초음속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부식성 높은 액체연료
북한이 오랫동안 액체연료 방식에 집착한 또 다른 까닭은 비추력(specific impulse) 때문이다. 비추력은 1㎏ 연료가 1초 동안 연소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력을 뜻한다. 액체연료가 고체연료에 비해 비추력이 높다. 탄도미사일에 최대한 많은 탄두를 실어 가능한 멀리 날려 보내야 하는 북한으로선 미사일 대부분에 액체연료 방식 추진체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케로신+적연질산 조합이나 UDMH+사산화이질소 조합의 액체연료 미사일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UDMH, 적연질산, 사산화이질소 모두 맹독성 물질이고, 특히 산화제의 경우 부식성이 매우 강해 평상시 미사일 내부 탱크에 충전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산화제를 미리 넣어놨다가는 탱크가 부식돼 최악의 경우 미사일이 발사되기도 전 폭발할 수도 있다. 한국군의 북핵 대응 전략인 이른바 ‘킬체인(kill chain)’은 유사시 북한이 이 같은 액체연료 미사일을 쓰는 것을 전제로 한다.
킬체인은 1991년 걸프전 당시 미 공군의 시간 민감성 표적(TST) 대응 작전, 즉 ‘스커드 사냥(Scud Hunting)’ 개념을 가져와 발전시킨 것이다. 킬체인은 정찰기·위성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 조짐을 포착한 후 탐지→식별→결심→지시→타격→파괴 순서로 이뤄진다. 북한 액체연료 미사일은 발사 전 기립한 뒤 연료·산화제를 주입하는데, 이 과정에 40분가량이 소요된다. 이 틈에 전투기나 전술탄도미사일로 선제공격을 해 북한 핵미사일이 발사되기 전 파괴한다는 게 한국군 킬체인 전략이다. 그럴싸한 계획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현재 한국을 겨냥한 북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가운데 발사 준비에 40분이 소요되는 미사일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액체연료 로켓 추진체의 전술적 문제점은 옛 소련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일찌감치 해결책으로 부식 방지 처리된 적연질산을 개발했다. 사산화이질소를 사용한 후부터는 산화제 탱크에 최대 5년 수명을 가진 부식 방지 코팅이 적용되기도 했다. 북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른바 ‘연료계통 앰플(ampoule)화’ 기술도 개발했다. 액체연료와 산화제를 앰플, 즉 용기에 넣어 모듈화해 언제든 미사일에 장·탈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기립 후 연료·산화제 주입 시간을 최소화할 경우 이동식 발사차량(TEL) 정차 후 미사일 발사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7분 정도로 추산된다.
현무 미사일 300~500㎞ 비행에만 5분
2017년 6월 23일 충남 태안군 국방과학연구소 종합시험장에서 현무-2 미사일이 시험발사됐다. [국방부 제공]
한국군이 이 7분 동안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감시정찰자산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를 탐지하고 여기에 핵탄두가 장착됐는지, 또 북한이 정말 한국을 공격할 의지가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이어서 정보부대→합동참모본부 K2작전수행본부→국가안보실→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보고체계를 거쳐 다시 역순으로 공격부대 지정 및 표적 설정 후 미사일을 쏴야 한다. 국내 모처에 배치된 한국군 현무 미사일이 300~500㎞ 거리를 날아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5분 안팎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동향을 탐지한 뒤 의사결정, 미사일부대 타격 명령 수신까지 모든 과정이 기적적으로 1분 안에 이뤄진다 해도 실제 미사일부대의 발사 준비와 미사일 비행 소요 시간 또한 감안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킬체인으로 북한 핵미사일을 발사 전 저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한국군 당국은 북한이 연료 및 산화제가 주입된 액체연료 미사일을 보관·이동할 수 있음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2013년 봄 북한의 미사일 도발 당시 국방부는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북한 액체연료 미사일이 연료·산화제 주입 상태에서 갱도진지와 발사진지를 오가며 무력시위를 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 전 반드시 40분 이상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는 킬체인의 전제가 무너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군은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킬체인 전략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 고체연료 방식 미사일을 대량 도입하기 시작한 뒤에도 킬체인 전략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2018년 2월 러시아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유사한 고체연료 방식 전술탄도미사일을 처음 선보였다. 그 후 다양한 유형의 고체연료 미사일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기존 스커드 미사일을 대체할 사거리 수백㎞의 전술미사일은 물론, 서태평양 미군 거점과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에도 고체연료 방식 모델이 배치됐다. 고체연료 방식 미사일은 발사 전 연료 주입이 필요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이동식 발사차량 정차 후 5분 내 발사가 가능하다는 데도 이견의 여지가 없다.
북한이 4월 2일 발사한 중장거리 고체연료 극초음속탄도미사일이 이동식 발사차량에 실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북한은 미사일 전력 고도화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4월 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든 사거리의 전술·작전·전략급 미사일들의 고체연료화·탄두조종화·핵무기화를 완전무결하게 실현했다”고 선언했다. 단거리 전술탄도미사일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고체연료 방식으로 바꾸고, 여기에 핵탄두 장착 능력까지 부여했다는 의미다. 지난 6년간 북한은 이동식 발사차량 종류와 수량 모두 폭발적으로 늘렸다. 그 덕에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수단을 통해 한국 쪽으로 핵미사일을 기습 발사할 수 있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군도 ‘플랜 B’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킬체인을 폐기하는 대신 보완 차원에서 새로운 전략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북핵 네트워킹 무력화’다.
핵탄두 평양에 모아놨다는 ‘추정’
최근 한국군 당국은 올해 하반기 연합훈련 때부터 사이버전을 통해 북한 핵미사일 발사를 사전에 막는 시나리오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발사 징후를 포착해 선제 타격에 나서는 3축 체계 킬체인만으로는 요격 시차 등 허점이 있을 수 있어 이를 보완한다”는 취지다. 그렇다면 북핵 네트워킹 무력화 전략으로 킬체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NO)’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
북핵 네트워킹 무력화 전략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김정은이 있는 평양 인근에 배치했다가 유사시 일선 부대로 분배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가 쿠데타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기에 모든 핵무기를 평양 인근에 쌓아놨다가 유사시 미사일부대로 보낼 것이라는 ‘추정’이 바탕이다. 실제로 북한이 이런 방식으로 핵무기를 운용한다면 핵탄두가 저장시설에서 운용부대로 옮겨지기까지 여유시간이 있을 테다. 한국군 당국은 이 틈을 타 김정은과 핵무기 저장·수송·사용부대 간 지휘통신 시스템을 교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가 쿠데타를 우려한 나머지 모든 핵무기를 평양 지근거리의 단일 저장시설에 보관할 것이라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 핵무기 저장·발사시설은 유사시 최우선 공격 목표다. 따라서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이 그랬듯 넓은 지역에 분산시키는 게 상식이다. 백번 양보해 북한이 정말 핵무기를 평양 인근에 집적해놨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한국군 당국의 계획처럼 사이버공격을 하기보다 핵무기 저장시설과 수송 차량을 공격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일시적인 발사 지연 효과만 기대할 수 있는 지휘통신 시스템 교란보다 핵무기 자체를 파괴하는 게 근본 해결책 아닌가.
각종 정황 증거를 종합해봐도 유사시 북한이 한국군 예상처럼 핵무기를 운용할 것 같지는 않다. 지난해 9월 북한은 ‘서부지구 전략순항미사일 운용부대 전술핵공격 가상 발사 훈련’을 감행했다. 당시 북한은 “새벽 불의의 시간에 발사 명령을 내리고 해당 부대의 핵공격 명령 인증 절차와 발사 승인 체계의 기술적·제도적 장치를 점검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핵공격 명령이 하달되면 외부에서 핵탄두를 공급받아 발사 준비를 하는 게 아니라, 평시 핵탄두를 가지고 있다가 명령이 내려오면 인증 절차를 거쳐 발사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이다. 올해 3월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명의로 국방성과 미사일총국에 하달된 ‘포치’에도 핵무기 저장이나 유사시 분배 프로세스에 대한 내용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았다. 북핵 네트워킹 무력화라는 새 전략의 전제가 된 추정이 틀렸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군의 군사정찰위성 2호기가 4월 7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스페이스센터 발사장에서 발사되고 있다
유사시 ‘참수작전’으로 핵 사용 의지 제거해야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유사시 핵무기 사용 결정권을 가진 ‘의지’, 즉 김정은을 제거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여럿 가진 데다, 투발 수단인 탄도미사일과 발사 플랫폼도 셀 수 없이 많아진 상황에서 ‘수단’을 공격하는 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그럼에도 한국군이 유사시 김정은을 제거하는 전략을 직접 거론하지 못하고 통신·발사 시스템 파괴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남북평화와 대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참수작전처럼 이른바 ‘최고 존엄’에 대한 직접적 위협을 용납하지 않는 국내 정치권 일각의 압박 때문일 공산이 커 보인다. 국민의 생명 및 재산을 지키는 일에 직결된 군의 전략 수립과 의사결정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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