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봉신연의[封神演義]_09

醉月 2010. 8. 5. 08:51

상용이 구간전에서 절개를 위해 목숨을 버리다

 

▲ 삽화 권미영

  

뇌개가 50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남도를 향해 추격해 가는데, 뒤쫓는 것이 번개가 치고 구름이 달리는 것 같고, 바람과 비가 휘몰아치는 듯하였다. 뒤쫓다가 날이 저물자 뇌개가 명을 내렸다.

“군사들은 밥을 배불리 먹도록 하라. 밤새 추격하였으므로 그들은 아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군사들은 명령에 따라 밥을 배불리 먹고 나자 또 추격에 나섰다. 밤 2경까지 추격하게 되자 연일 강행군으로 인한 피로가 엄습해와 병졸들은 말 위에 앉아 피곤에 지쳐 하마터면 말위에서 굴러 떨어질 뻔하기도 하였다.

뇌개가 가만히 생각해본다.

“밤새 추격해 왔으므로 아마 우리가 오히려 앞질러 왔을 수도 있다. 만약 皇子황자 전하들이 뒤에 있다면, 우리가 오히려 앞에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공연히 몸과 마음만 수고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밤을 쉬고, 내일 기운을 차려 추격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뇌개가 좌우에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나아가 쉴만한 마을이 있는지 살펴보아라. 잠시 하루 밤을 쉬고 내일 추격하도록 할 것이니라.”

군졸들은 연일 추격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쉬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군사들은 두 줄로 횃불을 높이 들고 사방을 비추어 보는데, 앞쪽에 소나무가 빽빽이 우거진 곳에 시골 장원이 하나 보였다. 다가가서 확인해보니 사당 건물이었다. 군졸이 돌아와 뇌개에게 보고했다.

“앞쪽에 오래된 사당 하나가 있습니다. 장군님! 잠시라도 남은 밤을 이곳에서 보내시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뇌개가 말했다.

“그러는 것이 좋겠다.”

군사들이 사당 앞에 도착하자 뇌개가 말에서 내려 고개를 들어 현판을 처다 보니 ‘軒轅廟’헌원묘라고 쓰여 있다. 안에는 사당지기가 없어 군졸들이 문을 밀고 일제히 사당 안으로 들어가 횃불을 비추어 살펴보고 있는데, 헌원 황제 신상 좌대 아래 한 사람이 코를 골며 곤히 자고 있었다.

뇌개가 앞으로 다가가 보니 바로 둘째 왕자인 殷洪은홍이었다. 탄식하면서 말했다.

“우리가 만약 이곳에 오지 않고 계속 추격했다면 아마 놓쳐버리는 실책을 저질렀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운수가 아니던가?”

뇌개가 “전하, 전하!” 큰소리로 불렀다.

은홍은 이때 깊이 잠들어 있다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는데, 횃불과 등불을 든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말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 중 은홍이 아는 사람은 뇌개 뿐이었다. 은홍이 “뇌장군!”하고 소리쳤다.

뇌개가 대답했다.

“전하, 신은 천자의 명을 받들었사온데, 전하가 궁궐로 돌아가시기를 청하옵니다. 지금 백관들이 모두 전하를 구하려는 상주문을 올렸사오니, 전하께서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은홍이 말했다.

“장군은 더 이상 다시 말하지 마시오, 나도 이미 모두 다 알고 있소, 이 큰 어려움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구려. 나는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다만 줄곧 걸어왔으므로 심히 처지가 딱하여 걷기마저 어렵소. 장군이 당신의 말을 나에게 주어 타고 가도록 해주면 안 되겠소?”

뇌개가 그 말을 듣고 서둘러 대답했다.

“전하께서 신의 말을 타시옵소서. 신은 걸어서 뒤따르겠습니다.”

그때 은홍이 사당에서 나와 말위에 오르고, 뇌개는 걸어서 호송을 하는데, 뇌개와 은파패가 헤어진 삼거리까지 왔다.

한편, 은파패는 東魯동로을 바라보며 큰길을 따라 추격하는데, 하루 이틀을 달려 風雲鎭풍운진에 닿았고, 다시 십리를 가자 그곳에 八字팔자모양의 흰 담장에 황금편액이 걸려있는데, 편액 위에는 ‘太師府’태사부라고 쓰여 있다. 은파패가 고삐를 잡아 당겨 말을 세우고, 편액을 보고서야 바로 은퇴한 재상 商容상용의 사저임을 알았다. 은파패가 말안장에서 구르듯이 내려와 곧장 태사부 안으로 상용을 만나러 들어갔다.

상용은 원래 은파패를 조정에 천거한 장본인이며, 은파패야말로 상용의 문하생이므로 바로 말에서 내려 상용을 알현하러 가는데, 사실 태자 은교가 그때 태사부 대청에서 밥을 먹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은파패는 문하생이므로 사전 통보도 없이 곧장 대청 앞까지 갔는데, 은교 전하가 마침 그곳에서 밥을 먹으며 재상 상용과 함께 있었다.

은파패가 대청에 올라 아뢰었다.

“은교 전하, 승상 나으리! 소장은 천자의 어지를 받들어 은교 전하를 모시고 조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상용이 말했다.

“은장군! 때마침 당신 잘 왔소. 내가 생각해보니, 朝歌조가(은나라 서울)에는 사백여명의 문무관원이 있는데, 단 한명의 관리도 천자에게 직간하는 사람이 없소. 문관들은 입을 다물었고, 무관들은 말을 할 수 없으니, 벼슬만 좋아하고 이름만 탐을 내며, 관직에 있지만 하는 일 없이 녹봉만 축내고 있으니 세상 꼴이 어찌 되겠소!”

늙은 재상이 한창 화가 나서 꾸짖는데, 어찌 수긍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때 황태자 은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얼굴이 황금 종잇장과 같이 누런 얼굴을 한 채, 앞으로 나와 말했다.

“승상께서는 크게 노여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은 장군이 이미 나를 붙잡으라는 어지를 받들었는데, 아마 이번에 잡혀가면 반드시 살아날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말이 끝나자 눈물이 비 오듯이 흘러내린다.

 

- 지난 줄거리 -

주왕이 천년 묵은 여우 달기에게 홀려 정사를 돌보지 않자 도인 운중자가 여우를 제거할 계책을 알려준다. 그러나, 주왕은 달기의 꾀에 넘어가 나라를 돌보지 않고 옳은 것을 고하는 신하들을 죽이거나 귀양을 보낸다.


참된 천자의 도리를 알려 준 황후마져 달기의 질투로 목숨을 잃게 된다. 이에 태자 은교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달기를 죽이려하자 주왕은 당장 두 아들을 잡아오라는 어지를 내린다. 쫓기게 태자형제는 방필과 방상 장군의 도움을 받아 궁을 떠난다. 황비호가 어지를 받아 태자형제를 뒤따라 잡았으나 두 형제의 가슴 아픈 처지에 차마 잡지 못하고 돌아온다. 달기는 우환을 없애지 않으면 앞으로 화근이 된다며 당장 없애야한다고 주왕에게 이야기한다. 주왕은 옳다고 여겨 은파패와 뇌개에게 삼천 명의 군사를 주어 잡아오라 명하지만, 황비호가 병든 병사와 말을 골라 주어 뒤쫓은 무리의 가는 길은 더디기만 하다.


한편, 은교와 은홍, 방필과 방상 형제는 서로의 안위를 위해 각자 헤어져 길을 떠난다. 은홍은 쉴 곳을 찾다가 헌현묘 사당에서 잠이 들게 되고 , 태자 은교는 주왕의 방탕한 생활에 실망을 하고 조정을 떠난 태사부 상용을 만난다. 한편 은파패와 뇌개장군은 병든 말과 군사는 머물게 하고 정예부대만을 골라 두 갈래 길을 나누어 태자 형제를 뒤쫒는다.

 

 

▲ 삽화 권미영

 

 

태자 은교가 흐느끼는 것을 보고 재상 상용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전하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이 늙은 신하가 아직 상소가 완성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천자를 알현하게 될 때를 대비해 아뢸 말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이어 집안의 가축을 관리하는 사람을 불러 “길을 떠나도록 말을 준비하고, 행장을 꾸리도록 하여라. 내가 친히 천자를 배알하도록 하겠다.”한다.


은파패는 상용이 조가로 가기 위해 수레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천자의 문책이 두려웠다. 은파패가 상용에게 말했다.

“승상께 아룁니다. 卑職비직의 이 몸이 어지를 받들어 태자 은교를 모시러 왔으니, 전하와 함께 먼저 돌아가서 조가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승상께서는 한걸음 뒤 따라 오십시오. 이 문하생이 보기에는 천자의 명이 우선이고, 사사로운 정은 그 다음이므로 승상께서는 저의 청을 가히 들어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상용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은 장군, 내가 그대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네. 내가 그대와 동행하면, 그대는 사사로운 정을 용납한 책임으로 천자의 문책이 두려울 것이네.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세, 은교 전하! 전하께서는 은 장군과 동행해서 먼저 출발하시면, 노부는 뒤따라서 곧 갈 것입니다.”


은교가 상용의 저택을 떠나는데, 가려다가 멈추고 눈물이 흘러내려 마를 틈이 없었다.

상용이 은파패에게 말했다.

“어진 제자여, 내가 훌륭하신 전하를 그대에게 맡겼으니, 그대는 공이 높아지기를 바라지 말라. 君臣군신의 대의를 상하게 되면 그 죄는 죽음으로 감당할 수 없다네.”


은파패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문하생이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어찌 감히 망령된 행동을 하겠습니까!”


은교는 상용과 이별하고 은파패와 동행해서 말을 타고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은교는 말위에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내가 비록 몸이 죽는 것을 사양하지 않는다고 하나, 아직 아우 은홍이 있으니 오히려 이다음에 억울함을 해결하고 원한을 갚을 날이 있을 것이다.”


출발한지 하루가 되지 않아 헤어졌던 세 갈래 길에 도착했다. 미리 도착해 있던 뇌개가 군졸의 보고를 받고 진중 문 앞으로 나와 바라보니 은교 전하와 은파패가 말위에 앉아 있었다.


뇌개가 말했다.

“전하께서 돌아오심을 경하 드립니다!”

은교가 말에서 내려 진영으로 들어가니 장막 아래 동생 은홍이 높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은홍이 “전하가 왔다”는 보고를 듣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형인 은교가 그곳에 있었다.


은교도 또한 동생 은홍을 보자, 심장을 칼로 베고 목을 매는 듯하며, 마음은 기름으로 지지는 듯하였다. 앞으로 다가가 은홍을 붙잡고, 목을 놓아 울면서 말했다.


“우리 두 형제가 생전에 천지에 무슨 죄를 지었던가? 동남방향으로 각각 도망하였으나 멀리 탈출할 수 없었고, 마침내 그물망에 걸려들었구나! 두 사람이 사로잡혔으니, 우리 어머님의 원수와 함께 하늘을 이고 같이 살고 있는데,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모두 수포로 돌아갔구나.”


발을 동동 구르고 가슴을 치며 후회하였으니, 마음이 아파 뼈를 자르는 것 같았다.

“가련하구나! 우리 어머님이 무고하게 죽었는데, 이제 자식조차 죄 없이 죽는구나!”


막 두 형제 전하가 슬피 울자, 이를 보고 듣는 삼천병졸들도 마음이 쓰라린 듯 눈시울을 적셨다. 은파패 등 두 장군도 어찌할 수 없어 병사와 말을 재촉하여 조가를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 광경을 읊은 시가 남아 있다.

“하늘은 어찌해서 상세히 구명(究明)하지 않았는가? 형제가 재난을 피해 고향을 떠났다. 군대를 빌려 크나큰 원한을 갚으려 하였으나, 중도에 승냥이를 만나 사로잡힐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모친을 생각하니 하늘을 찌를 듯한 의기가 가슴에 가득한데, 아첨하는 무리들을 베고 원한을 갚으려는 것이 모두 헛되게 되었구나! 이날 두 형제가 모두 사로잡히는 함정에 빠졌으니, 길가는 행인들도 이를 보고 천 가닥 눈물을 흘렸다.”


한편, 은파패와 뇌개 두 장군이 태자 은교 형제를 붙잡아 조가에 도착해서 영채를 세우고 군사를 쉬게 했다. 두 장군은 어지에 회답하러 성안으로 들어가면서 암암리에 성공을 기뻐했다.


이때 정탐병이 무성왕 황비호의 원수부에 와서 보고했다.

“은, 뇌 두 장군이 이미 두 분 전하를 체포하여 성안으로 천자께 보고하러 갔습니다.”


황비호가 보고를 듣고 크게 노했다.

“이 필부 같은 놈들! 너희가 공을 이루기를 바라고 있으나 成湯성탕의 후사를 돌아보지 않았도다. 내가 너희들의 천섬 봉록을 칼과 검으로 누리지 못하도록 하겠으며, 공에 대한 포상이나 작위를 받지 못하게 하고 옷을 피로 물들게 하겠다!”


황명 ․ 주기 ․ 용환 ․ 오겸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나와 함께 여러 전하들과 많은 문무백관을 청해서 모두 오문에서 모이도록 전하라.”


네 명의 장군이 명을 받고 떠났다. 황비호가 오색신우 위에 올라타고 곧장 오문으로 갔다. 막 오문에 도착해 신우에서 내리는데, 문무관원들이 태자 은교 형제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분분히 오문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 삽화 권미영

 

얼마 되지 않아 아상 比干비간微子미자箕子기자微子啓미자계微子衍미자연伯夷백이叔齊숙제, 상대부 膠鬲교격趙啓조계楊任양임孫寅손인方天爵방천작李燁이엽李燧이수 등 백관들이 나타났다.

 

무성왕 황비호가 말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 전하, 대부 여러분! 오늘의 안위는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승상과 여러 대부들께서 의론하셔서 가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武臣무신이어서 간언하는 언로가 없사오니, 지금 바로 계책을 마련하시기를 바라옵니다.”

백관이 모여 의론이 분분할 때 태자 은교 형제가 군졸들에게 둘러 싸여서 오문에 도착했다. 백관들이 앞으로 나아가 전하를 외친다.


은교와 은홍은 눈물을 흘리면서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

“여러 皇伯황백 皇叔황숙 어른들, 여러 대신 여러분! 가련한 成湯성탕의 31세 후손이 하루아침에 몸이 屠戮도륙 당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東宮동궁으로서 덕을 잃은 적이 없으며, 설사 죄악이 있다 하더라도 내쫒기는 것에 불과하며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러 대신 여러분, 사직을 중히 여기시기를 바라오며, 이 몸의 남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몹시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미자계가 대답했다.

“태자 전하! 염려 놓으십시오. 백관들 모두 상주문을 올려 천자께 아뢸 것이니, 응당 무사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한편, 은파패 ․ 뇌개 두 장군이 수선궁으로 들어가 어지를 기다렸다.


주왕이 말했다.

“반역한 자식들을 붙잡아 왔으니, 짐이 만나볼 필요가 없다. 속히 오문에서 斬首참수하여 법을 바로잡으라. 시체는 수습하여 매장토록 하라. 그리고 난후 다시 결과를 보고하라.”


은파패가 아뢰었다.

“신은 형을 집행하는 어지를 받지 못했사오니, 감히 문서로 처결을 내려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주왕이 곧 어필을 들더니 ‘형을 집행하라’(行刑)는 두 글자를 내린다. 은파패와 뇌개 두 장군은 형을 집행하라는 어지를 받들어 서둘러 오문으로 왔다.

이때 황비호가 이를 보고 화가 가슴에서 치솟아 오르고, 노기가 쓸개로부터 올라왔다. 오문 정중앙에 서서 은파패 등 두 장군을 저지하면서 고함을 질렀다.


“은파패, 뇌개! 당신들이 태자를 사로잡은 공로를 축하한다. 하지만 전하를 죽여야 작위를 얻는다! 그러나 당신들은 벼슬이 높아지면 필시 위험이 따르고, 벼슬을 중히 여기는 자는 몸이 위태로울 것이다!”


은파패와 뇌개가 이 말에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상대부 趙啓조계가 앞으로 뛰어나와 손을 한번 휘두르는데, 은파패가 받들고 온 형을 집행하라는 어지를 낚아채더니 발기발기 찢어버렸다.


이어서 조계가 큰소리로 말했다.

“어리석은 임금이 무도하고 필부가 악을 조장하는데, 누가 감히 어지를 받들었다고 동궁 태자를 함부로 죽일 수 있으며, 누가 감히 보검을 들었다고 동궁을 망령되이 참수할 수 있는가? 이제 조정의 기강이 크게 변했고, 예의마저도 없어졌다!


나이 많으신 원로 전하, 여러 대신 여러분, 이곳 오문은 국사를 의논하는 장소가 아니오니, 마땅히 대전으로 갑시다. 대전에서 종을 울리고 북을 두드려 천자의 수레를 청해 조정에 오르도록 합시다. 함께 직간하여 임금의 권위를 침범하더라도 나라의 근본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은파패와 뇌개 두 장군은 여러 관원들이 격분한 것을 보게 되자 다시 천자의 뜻을 이야기할 수 없었으며, 놀라서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황비호가 황명‧주기 등 네 장군에게 태자인 은교 및 은홍 형제를 지키게 하여 암암리에 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방비하였다.


여덟 명의 봉어관이 은교 형제를 꼭꼭 묶어서 형벌을 집행하라는 어지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백관들에게 가로막힐 줄을 누가 알았으리요?백관들이 일제히 대전에 올라 종을 두드리고 북을 쳐서 천자가 대전에 오르기를 청했다. 주왕이 수선궁에서 종과 북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그 연유를 막 물어보려고 하는데, 봉어관이 아뢰었다.


“문무관원들이 합세하여 폐하께서 대전에 오르시기를 청하였사옵니다.”


주왕이 달기에게 물었다.

“이것은 별일은 아닐 것이나, 다만 역적질한 자식들을 위하여 백관들이 몰려와 구원을 상주하려 할 것이다. 이를 어찌 처리하면 좋겠는가?”

달기가 대답했다.


“폐하께서 어지를 전하도록 하시옵소서. 오늘 태자를 베어 형을 집행하시고, 백관들은 내일 조회에서 만나십시오. 한편으로는 어지를 전달하시고, 한편으로는 은파패에게 결과를 보고하도록 재촉하십시오.”


천자의 명을 받은 봉어관이 대전에서 어지를 읽어 내려가자 백관들은 이를 경청했다.


“조서에 이르노라! 군명이 떨어지면 바로 따르며, 군주가 죽음을 내리면 감히 살려고 하지 않는다.… 은교 형제는 검을 들고 명을 받은 관리를 추격하여 죽이고, 아비를 죽이려고 하였다. 이는 이치를 어그러지게 하고 윤리를 거슬렸으며 자식의 도리가 다 없어졌다. … 경들은 역적을 돕고 악을 보우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만약 국가의 정사에 관한 일이 있다면 내일을 기다려 대전에 올라 논의하여 처결토록 하라. 고로 이에 조서를 내리노니 마땅히 알아서 따르기를 바라노라.”

 

 

▲ 삽화 권미영

 

봉어관이 조서 읽기를 마치자 백관은 어찌할 수 없었으며, 분분히 의견을 내었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고, 또한 감히 그 자리를 해산하지도 못하였으며, 형을 집행하라는 어지가 이미 오문으로 나간 것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편, 주역에서 하늘(上天)은 象상을 드리우고, 이에 따라 아래로는 興衰흥쇠가 정해지는데, 은교와 은홍 두 분 전하는 封神榜봉신방에 이름이 올라 있었으므로 이 때문에 아직 목숨이 끊어져서는 안 되었다.

 

그 당시 太華山태화산 雲霄洞운소동의 赤精子적정자와 九仙山구선산 桃源洞도원동의 廣成子광성자가 있었다. 다만 지난 1,500년간 신선으로 있었는데, 두 신선은 殺戒살계를 범하고 말았다. 그로 인하여 崑崙山곤륜산 玉虛宮옥허궁에서 道法도법을 장악하고 正敎정교를 선양하시던 성인 元始天尊원시천존이 강연을 폐하시고 도덕을 설교하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두 신선들도 일이 없어 한가로이 三山삼산을 두루 즐기고, 흥이 일어나 五嶽오악을 노닐고 있었다.

 

마침 다리로 구름 빛을 밟고 朝歌조가(은나라 수도) 상공을 지나는데, 홀연 은교 및 은홍 두 분 전하 머리위에서 솟아오르는 두 줄기 빛이 두 분 큰 신선이 타고 가는 발아래 구름 빛을 가로막았다. 이에 두 분 신선은 구름 끝을 열고 하계를 내려다보는데, 조가의 오문에서 올라오는 살기를 보고, 참담한 구름을 말아 올렸다.

 

두 분 신선은 일찍이 그 뜻을 알았다. 도원동의 광성자가 적정자를 보고 말했다.

“道兄도형, 成湯성탕의 왕기가 장차 끝나가려 하는데, 西岐서기의 聖主성주는 이미 출현했습니다. 도형이 보다시피 저 빽빽이 둘러싸인 사람들 가운데 두 사람이 묶여있습니다. 붉은 기운이 하늘을 찌르는데, 목숨이 끊어져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모두 姜子牙강자아 휘하의 명장이 될 사람이 아닙니까? 도형과 저의 도심은 자비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어찌 그들을 한번 구하지 않겠습니까? 도형이 한명을 데리고 가고, 제가 한명을 데리고 산으로 돌아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강자아가 공을 이루어, 동쪽으로 다섯 관문(五關)을 진격하는 것을 돕게 한다면 이 또한 일거양득이 될 것입니다.”

 

적정자가 대답했다.

 “그 말에 일리가 있으니, 꾸물거려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됩니다.”

 

광성자가 급히 黃巾力士황건역사를 불러 명령했다.

“나는 두 분 전하를 낚아채어 산으로 돌아갈까 하니 지시대로 따르라!”

 

황건역사가 신선들의 法旨법지에 따라 놀라운 神風신풍을 불러일으키자, 흙과 먼지가 흩날리고, 모래와 돌이 구르는 것이 보이는데, 천지가 암담하게 변했다. 이때 한 소리 굉음이 울리는데, 마치 華岳화악이 붕궤되어 열리는 것 같고, 泰山태산이 끊어져 꺼꾸러지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싼 삼군과 칼을 든 병졸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사형 집행을 감시하던 은파패 장군도 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허둥지둥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때 바람이 소리 없이 불어와 두 분 전하를 어디론가 데려 갔는데, 종적조차 없었다.

겁에 질린 은파패는 혼이 몸에 붙어 있지 않은 것 같았으며, 모든 것이 몹시 괴이할 뿐이었다.

 

오문 밖 한 무리 군사들도 일제히 괴성을 질렀다. 황비호는 그때 대전에서 천자의 조서를 읽고서 마침 의론이 분분한데, 홀연 괴성소리를 들었다. 비간이 바로 무슨 소리인지를 물었다. 그때 주기가 대전으로 와서 황비호에게 보고했다.

“막 큰 바람이 한바탕 불고, 이상한 향기가 길에 가득하더니, 모래와 돌이 날고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한차례 높고 우렁찬 큰 소리가 들리고, 은교 ․ 은홍 두 분 전하가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매우 이상한 일로서 진실로 괴이할 뿐입니다!”

 

문무백관이 이 말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탄식하면서 말했다.

“하늘은 원한을 품은 아들을 죽이지 않고, 땅도 成湯성탕의 맥락을 끊지 않는구나!”

백관들이 모두 희색이 만면한데, 은파패 장군만 황망하게 궁으로 들어가 주왕에게 이 괴이한 일을 아뢰었다.

 

후세의 사람들이 이 일을 감탄하며 시를 남겼다.

“신선이 한바탕 바람을 일으켜 이상한 향기를 불러왔고, 흙과 티끌을 흩날리게 하여 밝은 태양을 가렸다. 황건 力士역사가 신선의 밀지를 받고 도술을 펼치자, 장군도 지킬 수 없고 병사조차 있으나마나였다. 공연히 鐵騎철기 병사들이 바람 그림자만 쫓고 있는데, 아첨하는 말만 가득하고 모두가 쓸모없었다. 흥하고 망하는 것은 다 정해진 운수가 있는데, 주나라 팔백년 역사가 이미 생겨나고 있었다.”

 

은파패 장군이 수선궁으로 들어가 주왕에게 아뢰었다.

“신이 형 집행을 감찰하라는 어지를 받들고, 바로 형 집행 어지를 내리려고 하였사온데, 갑자기 한 바탕 광풍이 불어 두 분 전하가 바람에 날려갔사옵니다. 종적도 자취도 없사옵니다. 몹시 이상한 일인지라, 폐하께서 결정을 내려주시기 바라옵니다.”

주왕이 그 경과를 듣고 깊이 생각에 잠긴 채 말이 없다. 암암리에 생각해본다.

“기이하고도 괴이한 일이로다!”

마음속으로 머뭇거리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 삽화 권미영

 

한편, 승상 商容상용은 은파패 일행을 뒤따라 서둘러 도성인 朝歌조가로 들어왔다. 오는 도중에 바람이 갑자기 불어와 은교와 은홍 두 분 전하가 종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하는 조가 백성들의 말을 들었다.

 

상용은 심히 괴이하다고 여기며, 오문으로 갔다. 사람과 말이 빽빽이 모여 있고, 군사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상용은 곧바로 오문으로 들어와 구룡교를 지나는데, 그때 비간이 상용이 앞에 다가오는 것을 보았으며, 백관들이 모두 나와 승상을 외치며 영접했다.  

 

상용이 말했다.

“여러 전하, 대부 여러분! 저 상용이 죄를 지어 전원으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누가 천자가 失政실정하여 자식을 죽이고 처를 살해하며, 음란하고 무도할 줄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당당한 재상부와 대단하신 三公삼공들께서 애석하게도, 이미 조정의 복록을 받아먹고, 마땅히 조정의 일을 해야 함에도, 어찌하여 천자에게 만류하라고 간언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까?”   

 

황비호가 대답했다.

“승상, 천자께서는 깊은 내궁에 칩거하고 계시고, 대전에 나오지 않으시며, 어지가 있으면 문서로 내려 받들고 있으며, 여러 신하들이 임금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진실로 임금과의 거리가 만 리 나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은파패와 뇌개 장군이 은교 형제 전하를 체포하여 도성으로 들어와 어지를 기다리고 있으며, 오문에 전하 형제가 포박을 당하고 있는데, 형을 집행하라는 어지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대부 조계선생이 어지를 갈가리 찢었으며, 백관들이 종을 울리고 북을 두드려 천자께서 대전에 오르시기를 청하여 대면하고 간언하려고 하였습니다. 다만 내궁에서 어지를 전했는데, 오늘 전하의 목을 베고, 내일 백관들의 상주문을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안과 밖이 통하지 않으니, 君臣군신 사이가 가로 막혔으며, 대면하여 아뢸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어찌해야할 지 모르고 있을 때, 도리어 하늘은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따른다고 한바탕 광풍이 불어 두 분 전하를 어디론가 데려 갔습니다. 은파패가 어지를 받으러 지금 궁으로 들어갔는데,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노 승상께서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은파패가 나오기를 기다리면 그 자초지종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은파패가 대전으로 걸어 나오다가 상용을 보자 인사를 올리려고 하는데, 상용이 앞을 향해 먼저 말을 던졌다.

“전하가 바람에 날려 가버렸다. 너의 공이 높고 임무가 중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머지않아 열사로 분봉을 받겠구나!”

 

은파패는 몸을 앞으로 구부리면서 절을 하였다.

“승상, 소장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임금의 명령을 받은 몸으로서, 제 몸의 사욕을 위할 수가 없사오니 승상께서 저를 책망하셔도 어쩔 수 없사옵니다.”

 

상용이 백관들에게 말했다.

“노부가 이번에 온 것은 천자의 얼굴을 뵙고, 정녕 살지 못하고 죽음만 있더라도, 오늘은 반드시 천자의 안색에 개의치 않고 직간을 하여 몸을 버려서 국가를 위할 것이오. 그래야 하늘에 계시는 선왕의 영전 앞에 면목이 있을 것이오.” 

 

집전관에게 종과 북을 울리라고 하였다. 집전관이 종과 북을 일제히 울리자, 봉어관이 음악을 연주하여 천자께 대전에 오르기를 청하였다. 그때 주왕은 궁궐 안에 있다가 바람에 태자가 날려갔다는 보고를 듣고 마음이 울적하던 차에 또 대전에 오르라는 奏樂주악을 들었고, 등청을 요구하는 종과 북이 울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주왕이 크게 노하였으나, 수레에 올라 대전에 오를 수밖에 없었으며,  마침내 대전의 보좌 위에 올랐다.

 

백관들의 하례가 끝나자 천자가 말했다.

“경들은 무슨 주청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때 상용은 붉은 섬돌 아래 말없이 엎드려 있었다. 주왕도 붉은 섬돌 아래 한 사람이 엎으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몸에는 소복을 입었고, 조정의 대신이 아니었다.

 

주왕이 물었다.

“거기 엎드려 있는 사람은 누구시오?”

 

퇴임한 재상 상용이 대답했다.

“벼슬에 물러나 죄를 기다리고 있는 수상, 상용이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주왕이 상용을 보더니 깜짝 놀라 물었다.

“경은 이미 산림으로 돌아갔지 않았소. 지금 다시 도성으로 돌아 왔는데, 조칙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대전에 들어 왔구려. 어찌 스스로 이처럼 진퇴를 모른단 말이오!”

 

상용이 팔꿈치와 무릎으로 기어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처마 앞까지 다가와서 울면서 아뢰었다.

“신은 옛날에 재상의 위치에 있었으나 나라의 은혜를 갚지 못하였사옵니다. 소신이 듣자오니, 근자에 폐하께서 방탕한 생활을 하시고 주색에 빠지셨으며, 도덕이 전무하시고, 참언을 들으시고 바른 것을 내쫓는다고 하옵니다. 하여 기강이 문란하여 五常오상이 무너지고 떳떳한 윤리가 더럽혀지고 임금의 도가 이지러지고, 재앙과 어지러움이 이미 잠복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신은 칼날을 만 번 받더라도 죽음을 피하지 않을 것이며, 상소를 갖추어 천자께 올리오니, 폐하께서 받아들이시기를 비 오며, 진정으로 구름을 헤치고 해를 보시고, 온 세상에 성덕이 끝이 없기를 우러러 바라옵나이다.”

 

상용이 상소문을 올리자 비간이 상소를 받아 천자의 책상위에 펼쳐 놓았다. 주왕이 상소문을 읽어 내려갔다.

“상소를 갖추어 신 상용이 아룁니다. 조정이 실정하여 三綱삼강이 이미 다 끊어졌고, 倫紀윤기가 전부 어그러졌으며, 사직이 꺼꾸러질 위기에 있고, 화란이 이미 생겨나는데, 남모르는 근심스런 백가지 일이 일어나고 있사옵니다.”

 

▲ 삽화 권미영

 

주왕은 상용의 상소문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신은 들었습니다. 천자는 도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며, 근검절약하고 게으름을 피워 나태하지 않으며, 조석으로 삼가고, 하늘과 종묘사직에 제사지내므로 이에 반석과 같은 안정과 금성철벽의 굳건함을 얻을 수 있사옵니다.

 

옛날 폐하께서 처음 보위를 이었을 때 인의를 닦으셨고, 편안할 사이가 없었으며, 감히 일을 싫증낸 적이 없었으며, 제후를 예로서 존경하고, 대신을 긍휼히 여기셨고, 백성의 노고를 우려하시었으며, 백성들의 재물을 아끼셨고, 지혜로 사방의 오랑캐를 감복시켰으며, 위엄은 멀고 가까이에 미쳤고, 비가 순하게 내리고 바람이 고르게 불었으며, 만백성이 생업을 즐겼는바, 진실로 堯舜요순임금에 뒤지지 않았사온데 아무리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군주라 할지라도 이보다 못할 정도였습니다.

 

뜻밖에 폐하께서는 근자에 간사한 무리들을 믿으시고, 바른 길을 닦지 않으시며, 조정의 기강을 황폐하게 어지럽히고, 제멋대로 흉악하고 고집을 부리며,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 하고 어진 이를 멀리하고, 술과 여자에 푹 빠져 있으며, 날로 음악과 노래를 일삼고 계십니다.

 

참언하는 신하의 말을 들으시고 계략을 꾸미어 정궁을 죽임으로 인도가 어그러졌사옵니다. 달기를 믿으시고 태자에게 죽음을 내리시니, 선왕의 종사를 끊으려고 하시는데, 자애라는 것은 다 없어졌습니다. 충간을 하는 신하는 그 炮烙포락의 참형을 받았사온데, 군신간의 대의는 이미 없어졌습니다.

 

폐하께서는 三綱삼강을 더럽혔고, 인도가 함께 어그러졌으며, 그 죄는 하나라 桀王걸왕에 부합한데도, 황송스럽게도 임금 자리에 계시옵니다. 자고로 사람의 임금으로서 무도하여 이보다 지나친 자는 없었습니다.

 

신은 도끼로 죽음을 당하는 것을 피하지 않으며, 임금의 귀를 거스르는 말을 헌상하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 속히 달기에게 궁궐에서 자결하도록 명을 내리시어, 억울하게 죽은 황후와 무고한 죄로 죽게 되는 태자의 원통함을 풀어주시고, 참언하는 신하를 저자거리에서 목을 베고, 참형으로 잔혹하게 죽은 충신의사들의 고통을 씻어 주시옵소서.

 

그러 하오면 백성들이 우러러 복종할 것이오며, 문무관원들이 기뻐할 것이고, 조정의 기강이 정연하게 될 것이오며, 궁궐 안도 엄정하고 깨끗하게 될 것이옵니다. 그때는 폐하께서는 앉아서 태평을 누리실 것이오며, 만년이라도 평안할 것이옵니다. 신이 비록 죽는 날이 되더라도, 오히려 살아있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옵니다. 신이 주청을 올림에 임하여 황송하게도 명령을 가만히 기다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사옵니다! 삼가 상소를 올리옵니다.”

 

주왕은 상소를 다 읽고 나자 크게 화를 내면서 상소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시립해 있는 당가관에게 어지를 전했다.

“저 늙은 필부를 오문으로 끌어내어, 金瓜금과로 때려 죽여라!”

 

양쪽에 시립해 있던 시위들이 상용을 모시려고 하자 상용이 처마 밑에 서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누가 감히 나를 끌어내려고 하느냐! 나는 삼대에 걸친 股肱고굉의 신하이고, 선왕으로부터 지금의 천자에 대해 보살펴 돌보라는 부탁을 받은 대신이노라!”

상용은 손가락으로 주왕을 가리키면서 꾸짖었다.

 

“어리석은 임금아! 너는 마음이 주색에 미혹되어 국정을 어지럽혔으며, 유독 선왕의 근검과 덕을 수양하여 밝은 천명을 받은 것을 생각지 않았다.

 

이제 어리석은 임금이 상천을 공경하지 않고, 먼저 종묘사직을 내팽개치면서 악을 행하는데 두려움이 없고, 공경을 하는 것도 부족하다. 다른 날 몸이 시해당하고 나라가 망하여 선왕을 욕되게 할 것이다. 또 황후는 본부인인데, 천하의 국모로서 덕을 잃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달기에 비해 친근한데 참혹한 형벌로 죽였으니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이미 잃었다.

 

동궁 전하는 무고함에도, 참언을 믿고 죽이려 하는데 이제 회오리바람이 불어 자취도 없이 사라졌으니 부자간의 인륜이 끊어졌다. 충언을 막고 직간하는 자를 죽이고, 어진 신하에게 포락의 형벌을 가하니 임금의 도리가 전부 어그러졌다. 눈앞에서 재앙과 어지러움이 장차 일어나는데, 자연재해와 드물게 보이는 자연현상이 첩첩이 나타났다. 멀지 않아 종묘가 폐허가 되고 사직의 주인이 바뀔 것이다.

 

애석하구나! 선왕이 갖은 고생을 하며 바삐 돌아다녀 이룩하여, 자손만대의 기틀과 견고한 금수강산의 천하를 남겼는데, 너 이런 어리석은 임금 때문에 깨끗하게 끊어지는구나! 네가 죽어 구천지하에 가면 장차 무슨 낯으로 너의 선왕들을 뵈려고 하는가!”

 

이 말에 주왕은 책상을 내리치며 크게 꾸짖었다.

“저 필부를 빨리 끌어내어 정수리를 박살내어라!”

상용은 좌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는 죽는 것이 애석하지 않다! 帝乙제을 임금이시여! 늙은 신하는 오늘 사직에 책임이 있으나, 임금을 널리 구제할 수 없어, 실로 선왕 뵙기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너 이 어리석은 임금아, 천하는 다만 수년 사이에 하루아침에 잃게 되어 남의 손에 넘겨 줄 것이다!”

 

말을 마친 상용이 뒤를 한번 바라보더니 그대로 머리를 용반석 기둥위에 힘껏 들이 받아버렸다. 가련하구나! 75세의 늙은 신하가 오늘 충성을 다했는데, 기둥에 부딪친 머리에서 뇌수가 뿜어져 나왔으며, 피가 옷을 물들였다. 일세의 충신이며, 반평생 효자였는데, 오늘 죽었으니 이것은 전생에 이미 정해진 것이었을 것이다.

 

후세의 사람들이 시를 지어 이를 조문했다.

“마음이 무쇠와 같으니 포락의 형벌인들 어찌 사양했겠으며, 충언과 직간하는 그 뜻은 강철과 같다. 오늘 조정 금 계단 아래서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죽으니, 향기로운 이름을 만고에 남겨 놓았다!”

 

중신들은 상용이 계단아래서 부딪쳐 죽으니 서로 얼굴만 처다 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왕은 오히려 노기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봉어관에게 분부했다.

“이 늙은 필부의 시체를 도성 밖에 내다버리고, 땅에 묻지도 말라!”

 

시위관들이 상용의 시체를 둘러메고 도성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