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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 DNA

醉月 2013. 4. 20. 01:30

NEO DNA

 



2013년은 생물학과 의학 분야 최대의 발견으로 꼽히는 DNA 이중나선 구조가 발견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네이처’ 논문 발표일은 4월 25일).

DNA 발견은 전통적인 생물학을 분자생물학으로 완전히 바꿨을 뿐 아니라, 생물을 유전자 중심으로 바라보게 하는 관점의 전환을 일으켰다. 이제 질병과 생김새, 성격과 심리 등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을 유전자와 연관지어 설명하려는 시도가 낯설지 않다.
이런 경향은 인간이 지닌 유전체 전체를 해독하려 한 인간게놈프로젝트로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정점에 달하면 모순도 커진다고 했던가.
역설적으로 인류는 인간게놈프로젝트에서 DNA의 한계를 봤다.
인간이 지닌 유전자는 고작 2만 5000개. 복잡한 생명현상을 일으키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수다.

더구나 전체 DNA의 거의 대부분은 유전자를 만들지도 않는다.
이제 인류는 DNA의 나머지 97%를 탐색하고 있다.

어렴풋이 새로운 DNA의 모습이 드러났다.
유전자는 아니지만 유전자를 조절해 복잡다단한 생명현상을 일으키는 조절자다.

이제 DNA 연구는 2막으로 들어섰다. 새로운 DNA, 즉 ‘네오 DNA’ 시대다.

 

 DNA, 미래를 설계하다

 



DNA는 더이상 생체 내에서 원래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지 않는다.
네오 DNA 시대를 이끄는 과학자들은 DNA를 세포 밖으로 꺼내 전혀 새로운 용도로 활용한다.
첫 번째는 차세대 컴퓨터를 실현하는 DNA 컴퓨팅 기술이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제주, 인천, 춘천, 전주 등 여러 개의 도시를 순환하는 판매원(세일즈맨)이 있다.
이 판매원이 최소의 경비(주행거리)로 중복 없이 모든 도시를 방문하는 경로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건이 있다.
모든 도시를 한번씩만 방문해야 하며, 총 이동 거리의 합이 최소가 되어야 한다.

얼핏 들으면 쉬워 보인다.
실제로 도시가 적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가 많아지면(예를 들어 1만 개) 현재의 슈퍼컴퓨터로도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진다.

그런데 1990년대에 이 문제를 색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밝힌 사람이 있다.
레너드 에이들먼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컴퓨터과학부 교수다.

그가 이용한 컴퓨터는 놀랍게도 슈퍼컴퓨터가 아니었다.
바로 작디 작은 생체 분자, DNA를 이용한 컴퓨터였다.

어떻게 DNA를 계산에 활용할 생각을 했을까.
DNA 분자에 어떤 특성이 있어서일까.
DNA는 먼저 스스로 결합하는 ‘자기조립’ 능력을 지닌다.
DNA는 온도가 높은 상태에서는 풀어져 단일 가닥이지만 온도가 낮아지면 A와 T, G와 C가 서로 결합해 이중 가닥이 된다.
이런 물리적, 생화학적 특성을 연산에 활용할 수 있다.

정보량도 월등하다.
1g의 DNA에는 1021개의 염기(A, T, G, C)가 포함돼 있다.
만약 이들을 하나의 기호로 보고 정보량을 계산하면 무려 10억 테라비트(1비트는 0.125바이트. 따라서 1테라비트는 125기가바이트)가
된다.

또 프로그래밍도 가능하다.
원하는 서열을 갖는 DNA 분자를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염기당 합성 비용은 현재 약 30센트(360원)이며 급격히 떨어지는 추세다.
더구나 중합효소 연쇄반응(PCR)을 이용해 무한 복제도 가능하다.
이런 특성을 잘 활용해 현재의 실리콘 기술에서 실현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현하는 컴퓨터가 바로 DNA 컴퓨터다.


초거대 연산부터 인공지능까지

DNA 컴퓨터는 위에 설명한 복잡한 연산에 강점을 보인다.
하지만 기존 전자컴퓨터로는 아예 해결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특성의 문제들을 푸는 데도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최근 환자로부터 추출한 DNA를 직접 처리해 유전 질병을 판단하는 분자 진단이 시도되고 있다.
기존에는 추출한 DNA 서열을 분석한 뒤, 컴퓨터에 저장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을 해 질병 여부를 진단했다.
이 경우 바이오 정보를 전자 정보로 바꾸는 장비가 필요하고, 전자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큰 디지털 컴퓨터도 필요하다.

그러나 DNA 분자로부터 직접 정보를 처리하는 미세유체역학 액체 컴퓨터인 DNA 컴퓨터를 사용하면 이러한 진단을 하나의 작은 칩 위에서 끝낼 수 있다.
방법이 간단하고 값이 싼 것은 물론이다.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도 유리하다.

진짜 인공지능을 만들려면 뉴런으로 구성된 신경계를 모사해야 한다.
사람은 1000억 개의 뉴런을 갖고 있는데, 이들이 각각 1000~1만 개의 다른 뉴런과 연결돼 정보를 전달하고 처리한다.
기존 컴퓨터로는 뉴런 수천 개 수준의 상호작용을 모사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어려웠다.

최근 DNA 컴퓨터를 이용해 1000억 개의 DNA 분자로 신경계와 비슷한 복잡한 정보처리망을 구성하려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수의 분자들이 조직된 망을 ‘초상호작용망(하이퍼네트워크)’이라고 하는데, 생명체처럼 진화 알고리듬을 이용해 정보 환경에 적응하면서 스스로 구조를 조직해 나간다.

비록 DNA 분자 하나는 정보 저장과 처리 능력이 단순하지만, 많은 수가 모여서 상호작용하면 복잡계의 특성을 보이며 완전히 새로운 정보 능력을 갖게 된다. 이 능력은 지금까지 인공지능 컴퓨터가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각정보나 언어정보처리에 적용할 수 있다(아래 예).



양자 컴퓨터 vs. DNA 컴퓨터

지금까지의 컴퓨터는 순차적 정보처리 방식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폰 노이만 방식으로 만들었다.
차례차례 계산을 하는 이런 방식을 넘어 새로운 컴퓨터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폰 노이만 자신도 이미 1956년 병석에서 집필한 저서 ‘뇌와 컴퓨터’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컴퓨터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컴퓨팅의 모델로는 신경망 컴퓨팅, 진화 컴퓨팅, 분자 또는 DNA 컴퓨팅, 양자 컴퓨팅 등이 있다
(양자 컴퓨터에 대해서는 2011년 10월호 특집 ‘양자역학과 춤을’ 참조).

신경망 컴퓨팅과 진화 컴퓨팅은 자연현상을 실리콘 컴퓨터에 시뮬레이션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분자 컴퓨팅과 양자 컴퓨팅은 매체(양자와 DNA 분자)의 물리적인 특성을 활용하기 때문에 근본부터 다르다.
DNA 기반 분자 컴퓨터는 초병렬 정보처리(여러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양자 컴퓨터와 비슷하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가 원자 수준에서 계산을 하는 고난도의 양자 소자를 개발해야 하는 데 비해, 분자 컴퓨터는 기술적으로 훨씬 실현하기 쉽다. DNA 컴퓨터는 최근 들어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과 접목된 융합기술로 발전하고 있다.
이미 나노기술과 접목해 나노 패터닝이나 나노 구동 장치의 프로그램 역할을 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생명공학과 의약학 분야, 뇌를 모사하는 인공뇌, 인공지능까지, DNA 컴퓨팅이 열 새로운 미래가 기대된다.



스스로 결합해 구조를 이루는 자기조립 성질은 DNA에 연산 기능만 준 것이 아니다.
벽돌처럼 견고하고 털실처럼 유연한 성질을 갖게했다.
그 결과, 유연하고도 섬세한 미래형 나노 소자 개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여기 현미경 사진을 한번 보세요.”
이종범 서울시립대 화학공학과 교수가 논문의 사진을 가리켰다.
털실을 돌돌 말아 놓은 것 같은 구조물이 보였다. 대략 지름이 2μm(마이크로미터)였다.

자동차 배기가스에 섞여 나오는 미세 먼지 중 특히 작은 ‘극미세먼지’가 지름이 2.5μm이니 대단히 작은 크기였다.
확대한 사진을 보자 비슷한 크기의 털실 뭉치가 가득 모여 구멍이 많은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스폰지를 보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이 물질의 재료는 DNA다.
중합체인 DNA를 뭉쳐서 자연스럽게 엉키게 만들자 동글동글한 모양에 크기가 일정한 구조물이 만들어졌다.
이런 구조물이 다시 서로 연결돼 속에 구멍이 많은 물질이 된 것이다.

“재밌는 동영상을 보여 드리지요.”
샬레가 보였다. 안에는 꼭 물에 적셔 풀어 놓은 분홍색 솜 같은 물질이 있었다. 모양은 불규칙했다.
그런데 스포이트로 물을 떨어뜨리자 변화가 일어났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모양을 갖춰나갔다. ‘DNA’라는 분홍색 입체 글자였다(위 사진).

“아까 보여드린 물질로 만들었어요. 형태를 기억하고 있다가 물이 들어가면 원래 모양으로 돌아갑니다.”
이 교수는 이 물질을 ‘DNA 메타 하이드로겔’이라고 불렀다.

겔은 담는 용기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 물질이다.
별 모양의 용기에 담으면 별이, 하트 용기에 담으면 하트가 된다.
‘DNA’라는 글자 틀에 넣으면 그 글자가 된다.
마치 석고로 부조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물이 담겨 있을 때 이야기다.
물을 빼면 물먹은 솜처럼 흐물흐물해진다. 다시 물을 부으면 형태를 회복한다.

이 교수는 이 물질을 독창적인 방법으로 만들어 지난해 12월 2일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발표했다.
DNA 나노 재료로는 일명 ‘DNA 오리가미(종이접기)’라고 불리는 나노 기술이 잘 알려져 있다.
DNA를 가는 종이로 비유하면, 풀에 해당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리가미 기술에서는 그 역할을 스스로 하거나 DNA 연결효소(리가아제)가 한다.
연결효소가 외가닥 DNA 종이 조각을 끌어서 이리 저리 접거나 휜 뒤 서로 결합시키는 식이다.
이런 방법으로 기하학적인 모양부터 도형까지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었다(과학동아 2012년 4월호 참조).

하지만 이 교수는 전혀 다른 방법을 썼다. 고리형으로 만든 DNA를 준비한 뒤 DNA 조각으로 된 시작부위(프라이머)를 주고 DNA 중합효소(폴리머라아제)를 넣었다. 중합효소는 시작부위를 인지해 거기서부터 DNA를 복제하는 효소다.
오리가미 기술의 연결효소를 풀에 비유했다면, 중합효소는 거미줄을 잣는 거미에 비유할 수 있다.
거미가 고리 DNA를 돌면서 계속 거미줄 같은 DNA를 복제해낸다.

외가닥 DNA는 염기 서열이 맞으면 서로 결합한다. 같은 가닥 안에 있는 DNA도 예외가 아니어서, 많은 양의 DNA가 마치 솜처럼 얽히고 설킨 모양이 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모여서 2μm 지름의 DNA 털뭉치가 되고, 이 털뭉치가 다시 모여 스폰지 구조가 된다.
“저절로 뭉쳐서 다공성(안에 구멍이 많음) 재료가 되도록 했어요.”
놀랍게도 원래 길이의 5배까지 늘여도 될 정도로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고, 형태도 기억하는 신비한 재료가 탄생했다.

다공성 물질이라 안에 넉넉한 공간이 있어 세포를 키울 수 있다.
이 교수는 생체 조직을 만드는 데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캡슐처럼 안에 약물을 넣어서 몸 안에 넣을 수 있지요.
몸안에서 DNA를 분해시키면 자연스럽게 약물이 나오죠.
염증 치료에 이용할 수 있을 거예요.”
최근에는 RNA를 활용한 연구도 진행했다.

“DNA 메타 하이드로겔과 똑같은 아이디어로 RNA 스폰지 구조물을 만들었어요.
먼저 유전자를 억제해 치료 효과를 내는 RNA 조각(siRNA)을 포함한 긴 RNA를 준비해요.
이를 중합효소로 복제해 지름이 일정한 털뭉치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었어요.
이 물질이 세포 안에 들어가면 치료용 RNA조각을 만들어 냅니다.
치료용 RNA를 나르는 캡슐인 셈이죠.”
작년 2월 ‘네이처 머티리얼’에 실린 이 연구는 DNA 메타 하이드로겔을 만들던 중에 얻은 부수적인 성과다.

하지만 이 교수는 RNA 연구는 단지 ‘곁다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세계적으로도 유전자 치료가 점차 RNA 연구로 넘어가는 추세입니다.
DNA보다 불안정하고 어려워서 그 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거든요.”

DNA를 이용한 생체 나노 소재에 새 장이 열린 것만큼, ‘RNA 바람’ 역시 거세질 것 같다.








미생물학은 DNA 연구를 이끈 동력이었다.
최근 미생물의 DNA를 일일이 배양해 길러 분석하지 않고도 한꺼번에 분석하고, 이를 이용해 질병 진단과 종 동정에 이용하는 DNA 바코드 기술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012년 12월 구글재단은 미국 스미소니언 연구소에 우리 돈 30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2000종의 멸종위기 동물을 포함해 1만 종의 동물에 대한 ‘DNA 바코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DNA 바코드는 오랜 세월 진화를 겪은 생물종이 지닌 자신만의 유전자 문자열, 즉 염기서열이다.

동물의 DNA 바코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면 몇 천 원의 비용으로 간단히 DNA 염기서열을 해독할 수 있어, 누구나 멸종 위기 종을 바로 구별해 낼 수 있다.
전문 지식은 전혀 필요 없다.
더구나 아주 미량의 시료만 있으면 가능하다.

시장에서 파는 고래 고기가 불법 포획된 멸종 위기 종인지를 알기 위해서 고래 전체를 볼 필요가 없다.
눈곱만한 살점만 얻으면 된다.
식당에서홍어와 가오리를 구분할 수 있고, 야생동물의 대변을 이용해서 그 동물이 섭취한 다양한 식물의 종류를 알 수 있다.



‘메타지노믹스’로 미생물 가린다

미생물 DNA 바코드 기술은 다른 생물보다 더욱 중요하다.
미생물은 30억 년 이상을 지구에서 살아 왔지만 우리가 존재를 인식하게 된 것은 겨우 35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 후 약 300년 이상 우리는 미생물을 실험실에서 인공 배양한 뒤 관찰하고 실험해 성질을 이해했다.

감염 질환에 걸린 환자를 진단할 때도 마찬가지 방법을 썼다.
하지만 자연계 미생물의 극히 일부분(경우에 따라서는 0.1% 이하)만 인공배양이 가능하다.

흙 한줌, 바닷물 한 숟가락, 폐렴 환자의 침 한 방울, 이런 시료에 있는 미생물을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서는 배양 없이 미생물을 동정하는 기술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제안된 방법이 바로 ‘메타지노믹스’이다. 메타지노믹스는 배양 과정 없이 시료 안의 미생물에서 바로 DNA를 추출해 해독한다.

주로 DNA 바코드 기술을 이용하는데, 세균의 경우에는 16S 리보솜 RNA(rRNA) 유전자를 주로 쓴다.
메타지노믹스를 연구하면서 인류가 깨닫게 된 게 있다.
작은 공간에도 수많은 미생물이 군집을 이뤄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관악산 아무 곳에서나 흙 한 숟가락을 퍼도 그곳에서 1만 종 이상의 세균과 고세균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토양 곰팡이까지 더하면 ‘숟가락 크기 생태계’의 생물 종 다양성은 훨씬 커진다.

그런데 우리가 100년 이상 탐사해 알고 있는 전체 세균의 종류가 1만 종밖에 안 되며, 관악산 흙 한줌에 사는 세균 중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종은 5%에 불과하다.
나머지 95%의 세균은 인류가 한 번도 연구실에서 키워보지 못한 새로운 종이다.

물질 순환, 정화 등 지구생태계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토양 미생물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 너무나 적다.
앞으로 우리가 밝혀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



내 몸에 미생물 게놈 있다

메타지노믹스와 DNA 바코드 기술은 인간의 건강에도 활용 가치가 높다.
우리 몸은 우리 자신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미생물과의 공생체다.

한 사람의 몸은 수십조 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는데, 우리 몸 미생물의 수는 열 배에 달한다.
몸무게의 10%, 대변의 30%가 미생물이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을 중심으로 인간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컨소시움이 지난 3년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몸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종의 세균이 살고 있다.

가장 다양하고 많은 세균이 살고 있는 부위는 대장으로, 약 2000종 정도가 발견된다.
소장, 피부 등 다른 환경까지 고려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은 걸어 다니는 거대한 미생물 생태계다.
그래서 우리의 ‘두 번째 게놈(Second Genome)’이라고 부르는 우리 ‘몸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 이 의학 연구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분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술도 DNA 바코드다.
한 번에 한 시료씩 분석하는 동식물과 달리 미생물은 하나의 시료 안에 많게는 수천 종이 있다.
DNA 바코드 기술은 이들을 한꺼번에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DNA 바코드 기술은 새로운 감염 진단 기술로도 활용할 수 있다.
그 동안의 진단 기술은 하나 또는 몇 개의 병원성 미생물 정도만 검출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폐렴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폐렴 구균 진단키트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진단키트를 사용하는 식이다.

이 방법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어떤 병원성 미생물이 원인인지 예측해서 거기에 맞는 진단키트를 선택해야 한다.
또 우리가 모르는 병원균은 진단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 한 환자가 여러 개의 병원균에 감염되는 중복 감염도진단이 어렵다.

하지만 메타지노믹스와 DNA 바코드 기술은 환자의 가검물 안에 있는 병원성 미생물의 DNA를 모조리 해독하기 때문에 미리 어떤 미생물이 시료 안에 있는지를 예측할 필요가 없다.
중복 감염돼도 모든 미생물을 한꺼번에 검출해낼 수 있다.
게다가 읽어낸 유전자 서열로부터 항생제나 약제 내성과 같은 치료에 도움이 되는 귀중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이 기술이 널리 이용되기 위해서는 비용을 낮추고 분석 시간을 줄이며, 다양한 미생물의 DNA 바코드 데이터베이스를 미리 구축하는 등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천문학적인 양의 유전자 서열정보가 생산되니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 기술같은 첨단 IT 기술도 여기에 접목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마음을 유전자에 담을 수 있을까








서정선 서울대 의대 교수는 “DNA는 우주가 시간에 대항하는 물질로 선정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초기 지구가 처음부터 DNA를 선택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처음의 원시 생명체는 DNA 이전에 RNA를 먼저 선택했으리라는 예측이 있다.
이것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대중화된 ‘RNA 세계’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생명체는 최초에 RNA와 지방 막으로 구성된 어설픈 형태였다.
이후 유전물질을 DNA로 갈아타서 현재의 DNA 중심의 세계가 됐다.
현재 대부분의 생명체는 DNA를 유전물질로 하고 있고 레트로바이러스 등 극히 일부만 RNA를 활용하고 있으므로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왜 생명체는 RNA 세계를 버리고 DNA 세계로 넘어오게 됐을까.
“RNA는 한계가 있었죠. 안정성이 떨어지는, 오류가 많은 시스템이었어요.”
서 교수에 따르면, RNA 시스템은 생명을 크게 확장하는 데 문제가 많았다.
RNA를 복제하는 RNA 중합효소(폴리메라아제)는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대략 염기서열 1만 개를 복제하는 데 1개꼴로 오류를 일으킨다.
이 말은 유전물질의 염기서열 수가 만 단위를 넘기 어렵다는 뜻이다.
바이러스 정도의 작은 생명체라면 모를까, 커다란 생명체의 유전물질이 되기는 어렵다.

“반면 DNA 중합효소는 오류가 월등히 적습니다. 약 10억 개 중 1개꼴로 오류가 있어요.
오류를 자체 수정하는 능력도 강력하지요.”
따라서 RNA와 달리 DNA는 십억 개 단위까지 염기서열을 늘어놓을 수 있다.

현재 23쌍의 염색체를 지닌 사람의 염기서열 수가 1벌에 30억 개다(한 쌍 있으므로 총 60억 개).
DNA 중합효소가 오류 없이 복제할 수 있는 서열 수 단위와 비슷하다.
사람을 포함, 동식물이 나타날 수 있던 것도 어느 정도는 DNA 중합효소 덕분이다.
이쯤 되면 생명의 주인공을 DNA가 아니라 DNA 중합효소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그렇다면, DNA가 RNA보다 더욱 우수하고 진일보한 형태의 유전물질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DNA의 강점인 견고함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경직성이다.
유전정보를 안전하게, 그리고 많이 오래 보존하는 체계일 뿐 이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합성생물학 전문가 조병관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DNA는 그저 하드디스크일 뿐”이라고 비유한다.
정보가 담겨있다고 해서, 컴퓨터에서 정수에 해당하는 장치가 하드디스크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DNA 역시 마찬가지다.

22번째 단백질에서 인공 DNA로

합성생물학자로서, 조 교수는 또다른 관점에서 DNA를 바라본다.
“이미 인류는 DNA를 완전히 인공적인 방법으로 합성해 박테리아 안에 이식한 경험이 있습니다(미국의 생물학자 크레이그 벤터가 2010년
박테리아 인공 게놈 합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DNA 외의 세포 기구들은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그건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조 교수에 따르면, DNA 합성은 이미 쉬운 일이 됐다.

염기서열 1000개(1kbp)의 DNA는 수십만 원 정도면 합성할 수 있다.
하지만 세포의 나머지 부분은 아직 ‘신의 영역’이다.
“이제 합성생물학에서 관심을 갖는 대상은 DNA 자체가 아닙니다.
목적도 DNA 합성이 아니라, DNA를 이용해 정보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지요.”

DNA의 정보가 표현된 것이 단백질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정보(유전자)를 바탕으로 새로운 단백질을 합성하는 것이 합성생물학의 다음 관심사라는 뜻이다.
기존에도 DNA를 조합해 원하는 단백질을 얻는 연구를 했다.
하지만 그 수준을 넘는 합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DNA는 4개의 핵산을 3개씩 조합한 정보로 20개의 부호로 된 아미노산을 합성한다.
만약 21, 22번째 아미노산을 더 도입한다면 다양성은 더 커질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원래 DNA에는 전사(단백질 합성)를 끝내도록 하는 종료 코돈이 3개 있다.
만약 이 가운데 1개만 전사를 끝내는 원래 용도로 쓰고 나머지 두 개를 새로운 아미노산을 합성하도록 조작하면 된다.

최근에는 유전물질로 DNA 대신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다.
DNA의 구조를 보면 인산기가 붙은 핵산이 견고한 이중나선의 골격을 이루고 그 사이를 A, T, G, C 네 개의 염기 중 두 개가 맞물려 채우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구조의 일부를 다른 물질로 대체한 새로운 DNA 물질을 만들 수 있다.
인공 DNA, 일명 ‘XNA’다.
이 분야에 도전하는 대표 과학자는 필립 홀리거 영국 분자생물학연구소 의학연구위원회 교수다.
홀리거 교수는5개의 탄소와 산소가 고리 모양으로 결합한 DNA의 구조에서, 원자를 조금씩 바꾸거나 고리 모양을 변형한 분자를 6개 만들었다(아래 그림).

‘ANA, FANA, TNA’ 등으로 이름 붙인 이 분자는 DNA와 거의 비슷하다.
최고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DNA 중합효소조차 이들을 DNA로 착각하고 끼워 넣을 정도다.
2012년 4월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중 고리형 핵산 구조를 한 CeNA라는 분자를 포함한 DNA는 99.6%의 정확도로 복제가 가능했다.

정확도만 따지면 더 뛰어난 인공 DNA도 많다.
2011년 ‘미국화학학회저널’에 발표한 스티븐 베너 미국 응용분자유전재단 박사의 인공 DNA가 포함된 DNA는 99.8% 정확도로 복제할 수 있었다.

히라오 이치로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 박사는 99.92%까지 복제가 가능한 물질을 선보였다.
2012년 7월 플로이드 로메스버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박사가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한 인공 DNA는 99.99%까지 정확하게 복제했다. 하지만 99.99%는 RNA 중합효소의 정확도에 불과하다.
로메스버그 박사는 2012년 11월 ‘네이처’에서 “우리의 최고 성과가 이제 자연의 가장 못난 성과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연구는 왜 하고 있을까.
새로운 물질을 만들기 위해서다. 새로운 재료나 치료제를 만들려면 체내에서 쉽게 분해되지 말아야 한다.
목표 조직이나 기관에 가기도 전에 분해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만약인공 DNA를 넣는다면 체내 분해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의 근원을 탐색하는 순수한 과학적 관심 때문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자.
최초의 생명체가 되고자 시도한 유전물질이 과연 RNA밖에 없었을까.
무수히 많은 유전물질 후보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이후 어떤 이유에선지 경쟁에서 탈락하고, 오로지 RNA만이 선택돼 생명체로 진화했을 수 있다.
RNA는 DNA에 유전물질의 자리를 물려준 대신, 보다 유연하고 다양한 기능을 하는 조절자로 역할을 바꾼다.

그렇다면 지금 과학자들이 탐구하고 있는 독특한 인공 DNA는 어쩌면 최초의 지구가 실험하던 숱한 유전물질 후보 중 일부일지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자들은 원시 지구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게 아닐까.






마음 유전자? 사회적 DNA의 탄생

일단 생겨난 DNA 또는 RNA는 거친 경쟁을 뚫고 생명체로 진화했다.
2004년 잭 조스탁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팀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는 이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을지 상상했다.

물이 있는 환경 속에서 지방 막으로 된 기포가 있다.
대개 이 막은 그냥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안에 유전물질이 있다면?
삼투압을 발생시켜 막을 팽팽하게 만들어 오래 견딜 것이다.

유전물질이 스스로 복제해 많아진다면 삼투압은 더 커지고, 큰 지방 막 기포는 보다 팽팽해진다.
안에 유전물질이 충분히 많으면 분리해 두 개로 나뉠 수 있다.
미생물이나 세포가 복제를 통해 증식하는 것과 유사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경쟁이 순수하게 물리적인 이유(삼투압)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최초의 생명체인 원시적인 단세포 생명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몸집 크기를 무기로 물리학적인 경쟁을 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경쟁 속에서 협력이라는 사회적 행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유전물질 사이의 협력이다.
많이 모여 있어야 그 지방 막 기포가 다른 지방 막 기포를 누르고 생존할 수 있다.
유명한 말대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유전물질이 생명체가 되기 위해 시도한 최초의 행위가 협력과 경쟁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초협력자’의 저자인 마틴 노왁 옥스퍼드대 교수는 2006년 사이언스 논문에서 진화를 위해서는 인간 사회뿐 아니라 동식물, 다세포 생명체, 조직, 세포 심지어 단백질과 핵산 수준에서도 협력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핵산이 바로 유전물질인 DNA와 RNA다.

오늘날 생존을 위한 경쟁, 그 속에서 유전자를 최대한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DNA는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전자가 오로지 이기적인 마음을 지닌 유전물질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초의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에 경쟁에서 살아남은 유전물질은 적절히 협력을 한(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협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질이다.
RNA 세계 가설이 맞다면 RNA가 그랬을 것이고, RNA를 계승한 DNA 역시 서로 돕는 마음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그 모습을 우리는 세포 안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유전정보를 담은 견고한 하드디스크 DNA와 다채로운 기능으로 새롭게 주목 받는 RNA, 그리고 아직 인류가 합성하지 못하고 있는 세포 내 기관 단백질들이 서로 정교하게 협력하고 있다.
이중나선 구조가 발견된 이후 DNA는 생명의 설계도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유일한 주인공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60주년을 맞은 오늘날, 이런 관점은 바뀌고 있다.
네오 DNA 시대에, DNA는 서로 도우며 조화롭게 생명을 유지시키는 수많은 주역의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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