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전의 역사는 1901년 국제요트경기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요트대회의 인기는 매우 높았기에,AP통신사는 마르코니의 무선통신을 사용하여 우승의 결과를 신속히 알리고자 했다. 한편 마르코니의 경쟁사이던 아메리칸 와이어리스 텔레폰 & 텔레그래프(American Wireless Telephone and Telegraph Company)사는 마르코니의 송신기보다 더욱 강력한 송신기를 인근에 배치했다. 그 결과 AP통신이 보낸 모르스 부호는 아메리칸 와이어리스 장비의 무전간섭으로 그 내용을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불과 3년만인 1904년 러시아는 러일전쟁에서 자군 기지를 포격하려는 일본군 함선사이의 무선통신을 방해하면서 최초로 전자전을 실전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자전은 거듭 발전해왔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가 되자 이제 전자전은 육해공군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필수적인 전쟁역량으로 성장했다.
미 해군은 특히 2차대전 후반부터 전자전 함재기를 운용해왔다. 시작은 TBM-3E 어벤져로 일부 기체가 일본군의 항공탐색레이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자장비를 탑재했었다. 그리고 1945년 후반이 되자 미 해군은 이들 전자전기를 TBM-3Q로 재명명하고, 전후 배치되는 항모항공단에 반드시 포함시키는 전력으로 자리잡도록 했다. 이후 한국전 시기에는 더글러스 AD-1·2·3·4Q 스카이레이더스를 배치하면서 운용했는데, 이들 기체는 다른 항공기들과 동일하게 폭탄을 장착하고 전선에 투입되면서 진정한 일선 전자전기로 활약했다.
6.25전쟁 이후에는 역시 스카이레이더스 기체를 바탕으로 하여 AD-5Q를 전자전기로 운용했으며, 이들 기체는 드디어 'EA-1F'로 재명명되면서 전자전기로 본격적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제트기 시대를 맞아 부족한 전자전 전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미 해군은 KA-3B 급유기를 개조하여 각종 전파수집장치와 재밍 장치를 장착했으며, 이 기체는 EKA-3B로 분류되어 EA-1F를 교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진에 대한 공격이 증가하고 특히 북베트남의 지대공 미사일 공격으로 항공기를 잃는 사례가 증가하자 미 해군은 좀더 본격적인 전자전 기체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깨달았다. EA-10B는 물론이고 이미 퇴역하던 EA-1F까지 끌어모으면서 전자전 전력을 준비해야만 했다. 이에 따라 미군은 우선 A-6 인트루더 공격기에 부가장비를 장착하여 EA-6A 일렉트릭 인트루더를 선보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기체의 재설계도 동시에 추진하여 A-6 인트루더를 4인승으로 개조한 EA-6B 프라울러를 1969년부터 배치하기 시작하면서 전자전 전력을 완성시켰다.
프라울러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각종 분쟁에서 맹활약하면서 전자전 기의 중요성을 몸소 입증해왔다. 특히 1991년의 1차 걸프전이나 1999년의 코소보 전쟁 중에서는 미 공군의 EF-111A 레이븐과 함께 적 방공망을 무력화시키면서 개전초 공습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프라울러는 스텔스 전투기가 본격적으로 배치되지 못한 상황에서도 주요한 공습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전자전기의 역할을 입증했다. 게다가 1998년 EA-111이 퇴역하면서 미 해군의 프라울러는 임무 부담이 급증했다.
임무부담의 증가와 기체의 고령화가 더해지자 미 해군은 프라울러를 대체할 플랫폼으로 미 해군의 주력인 F/A-18E/F 슈퍼호넷을 선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자전기의 개발에 나섰다. EA-18 AEA(Airborne Electronic Attack) 개념실증기로 불린 이 기체는 2001년 11월 15일 초도 비행에 성공했으며, 2003년 미 해군은 EA-18G 그라울러(Growler)를 도입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양산은 2004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첫 양산기체인 EA-1은 2006년 8월 15일 초도 비행을 실시했다.
특징
EA-18G 그라울러는 기본적으로 F/A-18F 슈퍼호넷 복좌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슈퍼호넷과 그라울러는 약 90% 정도 동일하다. 나머지 차이는 전파방해 및 기만장치, 안테나 및 그의 수납을 위한 리딩엣지 등의 일부 부품이 변경되었다. 특히 20mm 기관총을 제거한 대신에 그 위치에 주요 전자전 장비들을 대부분 매립함으로써 기체의 변화를 최소화 하도록 했다.
전자전 기체이니 만큼 핵심은 AN/ALQ-99 다대역 전술재밍포드와 AN/ALQ-218 광대역 수신기이다. ALQ-99는 배면의 파일런에, ALQ-218은 윙팁에 장착하는데, 이 두 장비의 조합으로 EA-18G는 적의 레이더를 무력하고 지대공 미사일 공격을 방해하는 등 전방위 전자전 능력을 보유하게 되며 그 범위는 약 400k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ALQ-99포드는 최대 5개까지 장착가능하나 통상 3개를 장착하며, 여기에 더하여 무장으로 AIM-120 암람(AMRAAM)이나 AGM-88 함(HARM)을 2발 장착한다.
한편 EA-18G의 전자전 능력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업그레이드를 바라보고 있다. 우선 그라울러 3대를 사용하면 적대적 무선전파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데, 심지어는 핸드폰의 신호까지도 탐지해낼 수 있다. 2015년 12월 보잉은 이러한 능력을 구현한 록웰 콜린스(Rockwell Collins)의 TTNT(Tactical Targeting Network Technology, 전술 네트워크표적화 기술)을 EA-18G에 적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하여 아예 신형 재밍 포드의 개발도 진행중이다. 기존의 ALQ-99 재밍 포드는 자가진단 기능의 잦은 고장으로 고장난 상태로 임무에 투입된 경우가 허다하며, 그라울러가 운용하는 AN/APG-79 AESA 레이더의 강력한 전파로 인하여 재밍 기능이 장애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재밍 포드의 크기나 형상이 너무 커서 항공기의 최고속도에 제한이 생기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미 해군은 완전히 새로운 포드를 개발하는 차기 재머(Next Generation Jammer; NGJ) 사업을 시작했다. NGJ는 저대역, 중대역, 고대역의 3가지 재밍 포드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AESA 기술을 활용하여 원하는 곳으로 재밍을 집중하는 능력을 포함하는 등 획기적인 전파방해능력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NGJ-MB(Mid Band)는 레이디온 사의 ALQ-249 포드가 시험운용중이다.
그라울러는 원래 IRST를 장착하지 않았는데, 호주 공군이 레이디온의 ATFLIR 포드를 채용하면서 표적에 대한 시각적 식별능력을 추구했다. 이에 따라 결국 그라울러도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IRST를 장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운용 현황
EA-18G 그라울러는 2006년 8월 15일 양산1호기(EA1)의 초도비행 이후 2007년부터 초도양산형 기체가 만들어졌다. 특히 항모에 함재기로 배치하기 위하여 VAQ-129와 VAQ-132가 함대준비비행대대로 임무를 맡아 2009년까지 각종 작전비행평가를 실시했다. 그 결과 2009년 10월 VQA-132가 최초의 그라울러 작전비행대대로서 초도작전능력을 인증받음으로써 본격적인 배치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미 해군은 모두 161대의 그라울러를 도입했다.
EA-18G 그라울러는 현재 미군이 보유한 유일한 유인 전술용 전파방해무기체계이다. 실전 투입은 2011년 오디세이의 새벽 작전이 최초로 5대의 그라울러가 이탈리아의 아비아노 공군기지에서 출격하여 적군 대공망 마비와 표적식별 임무를 수행했다. 항모항공단 소속으로 항모에 배치된 60여대의 함재기 가운데 4~5대는 그라울러인데, 미 해군은 4.5세대 기체 위주의 항공전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하여 그라울러 전력을 중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9년 5월 미 해군은 기존에 도입한 EA-18G의 성능을 개량하는 그라울러 블록2 사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호주는 2013년 도입을 결정하고 2015년부터 모두 12대의 그라울러를 도입했다. 그러나 2018년 1월 28일 미국 넬리스 공군기지에 훈련차 참가했던 호주의 그라울러가 이륙절차 중 엔진화재로 소실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조종사들은 무사했으나, 기체는 심각한 화재여파로 기골이 무너져 내려 수리불가 판정이 내려졌으나, 이를 대체할 기체의 도입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한편 일본도 슈퍼호넷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2018년 6월에는 항공자위대의 식별을 장착한 그라울러가 가와사키 T-4 훈련기와 함께 목격된 사진이 나돌기도 했었다. 그러나 2019년 중기방(중기방위력정비계획)에는 EA-18G의 도입이 명시되지 않았으며, 2020년 예산 가운데 (수송기 기반의) '스탠드오프 전자전기'의 개발에 207억엔을 할당함으로써 현재로선 도입가능성은 불투명하다.
EA-18G 그라울러, F-15K 등 한미공군 대규모 항공전역 훈련 맥스썬더 풀영상 <출처: 유용원의 군사세계>
파생형
EA-18G 그라울러 : 최초로 양산된 기본형으로 블록1으로 구분.
그라울러 블록 2 : 어드밴스드 그라울러(Advanced Growler)로 불렸으며, 그라울러에 슈퍼호넷 블록3의 업그레이드를 적용한 기체. 차기 재머(NGJ)가 장착되며, AN/ALQ-218(V)4 RF수신기, AN/ALQ-227(V)2 통신 대응장비 등이 장착된다. TTNT의 통합은 물론이고, 10x19인치 대형디스플레이 장치 등 슈퍼호넷 블록3의 개선사양도 그대로 통합된다.
항전장비: AN/APG-79 AESA 레이더 AN/ALQ-99 전자전 재밍 포드 AN/ALQ-218 탐지용 포드 전자전공격용 AES 미션컴퓨터
승무원: 2명 초도비행: 2006년 8월 15일 기체가격: 6,820억불 (2012년 Fly-Away Cost)
저자 소개
양욱 | Defense Analyst
본 연재인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다.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 교관을 역임했고, 아덴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하다 일선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WMD 대응센터장으로 재직하면서,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과 신안산대 등에서 국제정치, 군사전략과 대테러실무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해·공·육군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통 국제협력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