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外之士

列仙小傳_老子

醉月 2009. 7. 7. 00:02

列仙小傳_ 老子

 

                              ⓒ 삽화 박영철 

 

태어나면서부터 백발

시대는 중국 전국시대의 초(楚)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름이 이 이(李耳), 자(字)는 백양(伯陽)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성(姓)씨의 내력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어느 날 밤, 눈앞에서 손을 펴도 다섯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칠흑같이 어두웠다. 홀연히 떨어지는 유성 하나가 공중에서 긴 포물선을 그리면서 지나가는데 노자의 어머니가 그것을 보다가 놀라며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장장 72년간을 임신해서 아이가 고고성을 울리면서 태어났다고 한다(일설에는 81년간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고 한다). 이가(李家) 집에서 태어나서 어머니의 성씨를 따라서 이(李)씨를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이 있는데 노자의 어머니가 오얏나무(李) 아래서 그를 낳았고, 노자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말을 했는데 오얏나무(李)를 가리키면서 "나는 이 나무(李)를 나의 성(姓)으로 하겠다."라고 하여 이(李)씨가 되었다 한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그를 '노자(老子)' 또는 '노담(老聃)'이라고 불렀다. 원래 노자는 어머니의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며, 인간 세상에 강림해오자마자 이미 머리 전체가 하얀 백발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놀라면서 그 영문을 몰라 했다고 하며, 그래서 그를 노자(老子)라고 불렀다.

또 관상과 관련해서 전해져 오는 전설이 있는데 노자의 피부색은 황백(黃白)색이었고, 짙은 눈썹에 큰 눈을 하고 네모진 입에 두터운 입술, 얼굴 하관이 넓고 전체적으로 얼굴이 장방형에 둥근형이었다고 한다. 두 귀는 커서 어깨까지 드리워졌고, 귀 윗부분에는 3개의 작은 구멍이 있었으며, 코는 두 개의 뼈가 지지하여 특별히 살집이 좋고 컸다고 한다.

길을 걸을 때는 발은 12지지(地支: 子丑寅卯…)를 밟았다고 하며, 손에는 천간(天干:甲乙丙丁…)을 잡았고 몸에는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 물이 흐르는 듯하였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노자는 주(周) 문왕 때 수장사(守藏史)를 맡았다가 周무왕때에는 주하사(柱下史)란 직책을 역임했다 한다. 그때 사람들은 노자의 기이한 행동과 풍모, 수명이 매우 긴 것을 보고는 노자(老子)라고 불렀다 한다.

그럼 왜 노자를 노담(老聃)이라고 하는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노자의 귀는 특별히 크고 길었다. 다만 귀의 형태만 있고 귀 바퀴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귀를 곧 담(聃:귀 바퀴 없을 담)이라고 불렀으므로 곧 노담(老聃)이라고 호칭했다 한다.

또 어떤 일설에 의하면 노자가 서쪽으로 함곡관을 지나가는데 함곡관을 지키는 책임자 윤희(尹喜)는 노자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노자를 좇아 도를 배우고자 하였다. 노자는 종래 일반인을 대상으로 도를 설법한 적이 없었는데, 함곡관 책임자 윤희의 간곡한 청이 노자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그 설법하는 자태가 나이 많은 사람의 특이한 모습이어서 이때부터 노담(老聃)이라고 호칭하였다는 설도 있다.

道, 可道, 非常道

 

[대기원]

  ⓒ 삽화 박영철

아득한 옛날부터 여러 모습으로 화신

갈홍(葛洪)이 쓴 신선전(神仙傳)을 보면, 노자는 아득한 옛날 상삼황(上三皇) 때에 현중(玄中)법사로 화신하였고, 하삼황(下三皇) 때에는 금궐제군(金闕帝君)이라 하였으며 복희(伏羲)씨 때는 욱화자(郁華子)였다고 한다. 신농(神農)씨 때는 구령요자(九靈堯子)였으며 축융(祝融)씨 때에는 광수자(廣壽子)로 화신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황제(黃帝) 때에는 광성자(廣成子)였으며, 전욱 때에는 적정자(赤精子), 제곡 때에는 녹도자(祿圖子), 요(堯)임금 때에는 무성자(務成子), 순(舜)임금 때는 윤수자(尹壽子), 우(禹)임금 때는 진행자(進行子), 은(殷)나라 때에는 석칙자(錫則子), 주(周)문왕 때는 문읍(文邑)선생이라 칭하면서 화신하였다 한다.

태상노군 즉 노자의 출현은 아득한 옛날부터 세상에 나오지 않은 때가 없었다고 하니 그 근원이 아득하여 범인의 시각으로는 측량할 길이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범려(월나라의 재상으로 오나라와 싸움에서 승리로 이끈 사람) 또한 노자의 화신이라고 한다. 이러한 것은 당연히 시정에 떠도는 잡설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노자의 종적에 대하여 헤아릴 길이 없는 범인에게 가지가지 억측이 나도는 가운데 한(漢)나라 때가 되면 도교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도교 각 문파에서는 일제히 노자를 개산(開山)조사로 받들어 모셨다.

이때부터 "혼원황제태상도덕노군(混元皇帝太上道德老君)"이라는 존칭을 사용하였는데, 간략하게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고 불렀다.

노자는 일생동안 마음을 가라앉혀 도학공부에 전념(一生潛深于道學)하여 성정(性情)이 무사태평하고 명예나 이익을 탐내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장생불노(長生不老)만 구하였고 다른 어떠한 욕망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노자는 주나라 때에는 벼슬을 맡지 않았으며 명예도 구하지 않았다 한다. 도(道)를 얻자 곧 초연히 떠나기로 하였다.

道, 可道, 非常道(道를 道라고 할 수 있는 것은 常道가 아니다)

어느 날, 노자는 행장을 꾸려서 서쪽으로 관(關)을 나가 다시 곤륜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관은 지난번에 언급한 함곡관(函谷關)으로 보이며 이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혹자는 방위상으로 고찰해보건대 보계(寶鷄) 서남의 산관(散關)으로 주장한다.

이곳을 관장하던 책임자 윤희(尹喜)는 어느 날 점(卜)을 쳐보고는 신선이 이곳 함곡관을 지날 것을 알았다. 그래서 밤을 새워 아침까지 몸을 돌보지 않고 사십리나 되는 길을 깨끗이 청소하고 기다렸다 한다.

어두운 하늘이 막 밝아오는데 신선이 하늘로부터 표표히 나부끼면서 내려왔다. 오랫동안 공손히 기다리고 있던 윤희는 앞을 한번 올려다보면서 노자가 출현한 것을 알았다. 서둘러 나아가 예를 취하고 문안 인사를 하였다. 윤희의 이러한 지극한 정성과 경건함에 노자는 깊이 감동했다. 노자는 윤희가 능히 득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동안 중국에서 도를 가르치지 않겠다는 규율을 깨뜨리고 잠시 함곡관에 머무르면서 매일 도를 전수하기 시작했다.

이때 노자가 약 오천 글자로 된 경전을 남기는데, 이것이 바로 해내외(海內外)에 명성이 자자한 도덕경(道德經)이다. 도덕경은 처음에 "道, 可道, 非常道, 名, 可名 非常名"으로 시작한다.

태현청진부(太玄淸眞符)

 

집안의 머슴, 노임을 달라고 하다
노자 집안에 이름이 서갑(徐甲)이라고 부르는 머슴이 한 명 있었다. 서갑은 어려서부터 머슴으로 고용되었는데 처음 들어올 때 구두로 노임을 정하였다. 노임은 하루에 일백전으로 정했다. 서갑이 머슴이 된 지 어언 이백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노자는 노임을 한 푼도 지불하지 않았다.
밀린 노임을 계산하니 칠백이십만전이나 되었다. 이때 서갑은 노자가 함곡관을 지나 멀리 여행한다는 것을 알고는 밀린 노임을 받을 길이 없어지고 자기의 이백년간 피와 땀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서갑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부탁하여 편지 한 통을 쓰게 했다. 이 사람을 시켜 편지를 함곡관에 있는 노자에게 보여주고 노임을 받아 오게 하였다.

심부름하던 사람은 마음속으로 서갑이 받을 많은 노임을 부러워하면서 그 큰 돈으로 서갑이 여생을 잘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자기의 딸을 서갑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 딸은 용모가 아름다웠고, 서갑은 한번 보자 첫눈에 푹 빠졌다. 이 사실을 함곡관의 책임자인 윤희가 알고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서갑이 이미 이백살이 넘었으며 예전에 결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즉시, 노자 거처로 찾아가서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였다.

태현청진부(太玄淸眞符)가 땅으로부터 솟아올라

며칠이 지난 후, 노자가 서갑을 불렀다. 서갑에게 “이치로 보아 너는 일찍이 인간세상을 떠나 벌써 죽었어야 한다. 옛날 그 당시 나는 너의 집이 심히 가난하고 일자리가 없는 너를 보고 가엾게 여겨 우리 집에서 일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너에게 한부의 태현청진부(太玄淸眞符)를 주었다. 그것 덕분에 너는 정해진 운명을 지나 지금까지 장수하며 살게 되었다.”

노자는 계속해서 꾸짖기를 “그런데 너는 이제 은혜를 잊고 의리를 저버렸다. 오히려 나를 핍박하여 노임을 돌려 달라고 하였다. 그럼 좋다! 먼저 너를 저승으로 돌아가게 한 후 다시 너의 노임을 황금으로 상환하겠다. 이제 너는 더는 낙심하지 않아도 된다.”하면서 서갑에게 얼굴을 땅에 대고 크게 입을 벌리게 하였다.

잠시 후 땅에서 태현청진부가 천천히 솟아 올라왔다. 태현청진부의 글자와 먹의 색깔도 전과 다름없이 선명하였다. 곧 뒤따라 서갑은 한 무더기 말라빠진 백골로 변해버렸다. 이 자리에서 윤희는 이 광경을 보고 놀랍고도 당황하였다. 어찌할 줄 모른 채 멍하니 서 있다가 곧 머리를 땅에 조아리면서 노자에게 애걸하였다. “노자 선생님, 서갑을 환생시켜 주십시오, 그 밀린 노임은 제가 대신 상환해드리겠습니다.”

노자는 이 말을 듣고 말없이 한동안 깊이 생각에 잠기더니 태현청진부를 손에 쥐어 땅에다 획 던졌다. 순식간에 서갑의 말라빠진 해골 무더기가 사라지면서, 서갑은 환생하여 땅에서 부시시 일어났다.
윤희는 이때 자기 돈 칠백만전을 가져와 서갑에게 주고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노자는 윤희의 마음 씀씀이가 바르고 선량한 것을 보고 정식으로 제자로 삼았다고 한다. 윤희는 집으로 돌아온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덕경(道德經)을 대조하여 수련하였다. 수련한 지 오래지 않아, 신선으로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