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제(炮製)와 약성(藥性)
한약을 포제(炮製)하고 약을 만드는 제형(劑型) 역시 한의학에서 아주 중요하다. 약물(藥物)의 특수한 효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한의학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약물을 포제했다. 고(膏), 환(丸), 단(丹), 산(散), 탕(湯), 액(液), 요(醪), 예(醴) 등은 각기 다른 작용이 있다. 예를 들어 환제를 만들 때도 꿀이나 쌀, 밀가루나 물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했다. 또, 탕제는 깨끗이 쓸어내는 탕척(蕩滌)작용이 있고 환제는 완만하고 부드러운 작용이 있다.
한약의 포제(炮製)와 제제(製劑)
전통 한의학은 약물의 특수한 효능이 제대로 작용하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약을 포제해왔다. 한약의 포제는 치료 효과에 있어어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약의 포제방법 중 불로 가공하는 방법은 4가지가 있다. 전문용어로 이를 ‘화제유사(火製有四)’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煆), 외(煨), 구(炙), 초(炒)가 그것이다. 여기서 하(煆)란 직접 불에 사르는 것을 말하며, 외(煨)란 약을 불 위에 놓고 굽는 것이다. 구(炙)란 꿀을 섞어 볶거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액체보조재를 넣고 약재를 볶는 것이며 초(炒)란 액체보조재 없이 그냥 약재만 볶는 것을 말한다.
또 물로 가공하는 방법에 3가지가 있는데 이를 ‘수제유삼(水劑有三)’이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漬), 포(泡), 세(洗)가 그것이다. 이는 약재를 물속에 넣고 찌꺼기를 제거하거나 거품을 제거하거나 혹은 이물질을 씻어버리는 가공법을 말한다. 물론 물이 아니라 술과 같은 액체보조재를 이용해 가공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술로 씻는 포제법을 주세(酒洗)라 한다.
또, 물과 불을 동시에 사용해 가공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수화공제(水火共製)’라 한다.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약재를 증기로 찌는 증(蒸)과 삶는 자(煮)가 있다. 양자의 차이라면 전자는 물이 직접 닿지 않고 증기만으로 찌는 것이고 후자는 물속에 넣고 가공하는 것이다.
다양한 포제법의 효과(效果)
(1) 주제(酒製)
약재를 술로 가공하면 약효를 위로 올라가게 한다. 다시 말해 약재의 효과를 위로 끌고 올라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머리나 가슴이 아프다고 호소할 때 한약의 효능을 위로 올라가게 하고 싶을 때 이 방법을 사용한다.
(2) 강제(薑製)
생강을 이용해 약재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생강은 맵고 따뜻하며(辛溫) 흩어주는(散) 약이다. 생강으로 포제하면 따뜻하게 흩어주는 온산(溫散) 작용을 한다. 또 반하와 같이 독성이 있는 약물에 더해 독성을 완화하는 작용도 있다.
(3) 염제(鹽製)
짠 맛이 나는 소금은 단단한 것을 부드럽게 만든다. 또 오행(五行) 중에서 수(水)에 해당해 같은 오행의 장부인 신(腎)으로 이끈다. 다시 말해 어떤 약재를 소금으로 포제할 경우 신(腎)으로 가게 만들 수 있다. 한의학 용어로는 이를 인경(引經)작용이라고 한다.
(4) 초제(醋製)
신맛이 나는 식초는 오행 중 목(木)에 해당하며 목에 해당하는 장부인 간(肝)으로 가게 한다. 신맛은 또 수렴작용이 있어 식초로 포제한 약재는 간으로 가거나 혹은 수렴시키는 작용을 돕는다.
(5) 동변제(童便製)
남자 어린이의 소변을 이용해 한약을 포제하는 것으로 12살 미만 남자 어린이의 소변을 사용한다. 이 방법은 약재의 나쁜 성질을 없애고 또 아래로 내려가는 작용을 돕는다. 왜냐하면 소변 자체가 아래로 내려가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6) 미감제(米泔製)
미감이란 쌀을 씻고 난 후 남는 쌀뜨물이다. 이것은 촉촉하게 만드는 작용이 있어 지나치게 건조한 약을 부드럽게 녹여 중화(中和)한다.
(7) 유제(乳製)
유(乳)란 우유나 사람의 젖 등을 가리킨다. 약재를 우유로 가공하면 마른 것을 윤택하게 하고 피를 생기게 한다. 젖에 풍부한 단백질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른 것을 부드럽게 적셔주는 작용이 있어 약물의 건조한 성질을 없애고 피를 생기게 한다.
(8) 밀제(蜜製)
밀은 꿀을 가리키는 데 단맛이 있다. 오행 중 중앙인 토(土)에 해당해 여러 가지 약재의 성질을 중화(中和)시킨다. 그러므로 꿀로 가공한 약물은 부드럽게 완화하거나 원기(元氣)를 돕는 작용을 한다.
(9) 진벽토제(陳壁土製)
진벽토란 오래된 낡은 집의 벽에 있는 흙을 말한다. 옛날에는 집을 지을 때 진흙으로 벽을 만들었다. 진벽토로 약을 볶으면 흙에 있는 토기(土氣)로 인해 소화기 계통을 보호할 수 있다.
(10) 면리국제(麵裏麴製)
밀가루에 물을 넣어 끈적끈적하게 만든 후 이 반죽 속에 약재를 넣고 발효시켜 누룩을 만드는 방법으로 강한 약성을 제어할 수 있다. 약성이 지나치게 강해 인체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을 때 이 방법으로 가공하는 것이 좋다.
(11) 흑두감초탕제(黑豆甘草湯製)
주로 독성(毒性)이 있는 약재를 해독(解毒)할 때 사용한다. 검은 콩을 감초와 합하면 독을 풀어줄 수 있으며 약을 중화시킬 수 있다.
(12) 양수저지수제(羊酥豬脂酥製)
양수와 돼지비계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양수는 양연유를, 돼지비계는 돼지기름을 말하는데 모두 짠맛이 난다. 이를 약재에 바른 후 불을 가하면 호골(虎骨 호랑이 앞 다리뼈)과 같이 뼈로 된 약재 깊숙이 스며든다. 또 이런 뼈로 된 약재를 부수거나 가공하기 쉽게 만든다.
(13) 거양제(去瓤製)
양(瓤)이란 박의 속을 말한다. 어떤 약재는 그 속에 있는 양을 제거하고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수박 속을 들 수 있다. 과일의 육질을 과양(果瓤)이라 하는데 양을 제거하면 배가 빵빵해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14) 거심제(去心製)
연자(蓮子 연씨)나 맥문동과 같은 약재는 속에 있는 심을 제거하고 사용한다. 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할 수 있다.
제제(製劑)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효과
양방에서도 약을 만드는데 여러 가지 다양한 제제법이 있다. 가령 장에서 흡수될 때 가장 효과가 좋은 약은 캡슐을 입힌다. 만약 위에서 흡수될 때 가장 효과가 좋은 약이라면 겉에 위 점막 분비물을 입혀 위에서 녹게 한다. 또, 장에서 흡수될 때 가장 좋은 효과를 내는 약은 설탕을 입힌 당의정을 만드는 식이다.
한의학에도 다양한 증상을 치료할 때 그에 상응하는 다양한 포제와 제제법이 존재했다. 포제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했고 약을 만드는 제제(製劑)에도 특수한 방법을 사용했다. 가령 환약(丸藥)을 만들 때 물이나 꿀, 혹은 찹쌀밥으로 반죽해 만들기도 하고 주사(硃砂)를 겉에 입히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이미 몇 천 년 전부터 제제(製劑)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본초강목’ 제1권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약의 성질에 따라 마땅히 환(丸)으로 만들 것, 산(散)으로 만들 것과 물로 삶을 것(水煮), 술로 담글 것(酒漬), 기름으로 고를 만들 것(膏煎) 및 두 가지를 동시에 사용할 것, 또 탕으로 달이거나 술로 담글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약의 성질을 따르되 도를 넘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 약재는 그 성질에 따라 환으로 만드는 것, 가루로 만드는 것 등의 구별이 있으며 제제 방식에 따라 약의 효과도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남조(南朝) 양(梁)나라 때의 도사 도홍경(陶弘景)은 병의 종류에 따라 환으로 복용하는 약, 가루로 복용하는 약, 탕으로 복용하는 약, 술에 담가 먹는 약, 고를 만들어 먹는 약 및 몇 가지 방식을 겸해 먹는 약이 있다고 했다.
화타(華佗)는 질병에 따라 탕(湯)을 복용하는 경우, 환(丸)을 복용하는 경우, 산(散)을 복용하는 경우, 설사를 내는 경우, 구토를 내는 경우, 땀을 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중 탕, 환, 산은 약의 제재에 따른 구별을 말하며 설사, 구토, 땀을 내는 것은 병의 치료법을 가리킨다. 한의학에서는 특히 설사시키는 하(下), 구토를 내는 토(吐), 땀을 내는 한(汗)을 중시했으며 사기(邪氣)를 제거하는 3가지 주요 치법(治法)으로 보았다.
큰 병을 제거할 때는 탕을 사용
한약을 탕으로 복용하면 장부를 깨끗이 씻어낼(蕩滌) 수 있다. 다시 말해 오장육부에 신속히 충격을 가해 씻어 내린다는 뜻이다. 탕제(湯劑)는 장부를 씻어내고 경락을 소통하며 음양을 조화시키는 작용이 있다. 탕약은 효과를 내는 속도가 매우 빠른 까닭에 잘못 사용하면 장부를 손상시킬 수 있다.
금원사대가의 한 사람이자 보토파(補土派)의 시조인 이동원(李東担)은 병을 치료할 때 중초(中焦)인 소화기 계통을 아주 중시했다. 그는 “탕(湯)은 탕(蕩)으로 큰 병을 제거하는데 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탕(湯)이란 크게 씻어내는(蕩) 작용이 있어 장부 속의 나쁜 것을 빨리 씻어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부드럽게 치료하는 환약(丸藥)
환약(丸藥)은 풍냉(風冷)를 몰아내고 단단한 적취(積聚)를 부술 수 있다. 이동원은 “환은 완만한 것이다(丸者緩也)”라고 했는데 즉, 부드럽게 서서히 치료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성적인 질환에 환약을 먹으면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몸의 상부에 있는 병을 치료할 때는 밀가루로 환약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면 비교적 용해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오래 장에 남아 있다. 만약 인체 아래쪽의 병을 치료할 경우에는 환을 크게 만든다. 또 겉에 꿀과 같은 것을 입혀 반질반질하게 만들어 장에 머무는 시간을 길게 한다. 결론적으로 하초(下焦)를 치료할 때는 환약을 크게 만들어야 하며 중초(中焦)를 치료할 때는 이보다 작게 만들고 상초(上焦)를 치료할 때는 더욱 작게 만든다. 이처럼 환약은 가미되는 보조재료와 환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급성병을 치료하는 산제(散劑)
산제(散劑 가루약)는 풍한(風寒)과 서습(暑濕)의 사기를 제거한다. 다시 말해 감기와 같은 외감(外感) 질환에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산제는 주로 급성 외감병(外感病) 치료에 사용한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외감병이란 요즘의 감염증상 내지는 유행병을 뜻한다. 대표적인 처방에 은교산(銀翹散)이 있는데 은교산은 가루로 사용하거나 달여서 쓸 때는 약을 잘게 부수어 잠깐만 달인다. 한의학에서 무슨무슨 산이란 이름이 붙으면 가루로 만들어 사용하거나 혹은 달이는 시간을 짧게 한 것을 말한다.
이동원은 “산은 흩어내는 작용을 하므로 급성 질환에 사용한다(散者散也 去急病用之)”고 했다. 다시 말해 가루로 만든 약은 발산작용이 있어 감기와 같이 급성으로 생긴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한약(漢藥) 중에는 기(氣)를 사용하는 것이 있고 질(質)을 쓰는 것도 있다. 기(氣)를 사용하는 약은 달이는 시간이 짧아 향기만 있으면 된다. 반면 질(質)을 사용하는 약은 비교적 오래 달여야 한다. 만일 약효를 신체 속 깊숙이 들어가게 하려면 약을 오래 달여야 한다. 흔히 보약을 달일 때 오래 달이는 이유는 약재의 질(質)을 이용해 비교적 인체 하부에 있는 병을 치료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발산시키는 효과는 오히려 나빠질 수 있다.
한약 처방 중에 계지탕(桂枝逿)이 있는데 이 약은 이로 약재를 깨물어 잘게 부순 후 달였다. 또, 감기 초기에 주로 약물의 기를 위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래 달이지 않고 짧게 달인다. 만약 오장에 맺힌 것을 풀거나 소화기의 막힌 것을 풀려면 산제를 사용하면 된다. 물론 약을 달이는 데도 다양한 방법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동원도 약재를 깨물어 잘게 부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계지탕을 구성하는 약재로는 계지, 작약(芍藥), 감초(甘草), 생강(生薑), 대추(大棗)가 있다. 옛날에는 쇠나 칼이 드물었으므로 이것을 칼로 자르는 대신 사람이 입으로 깨물어 잘게 부순 후 탕으로 달였다. 이렇게 하면 약을 위로 올라가게 하거나 발산시켜 땀을 내게 할 수 있다.
“미세한 가루약은 경락을 순환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약을 너무 미세하게 만들어 산제(散劑)로 하면 약기운이 경락(經絡)으로 가지 못하고 가슴속이나 장부에 가서 쌓일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약의 기미(氣味)가 너무 강렬하고 두텁다면 백개수(白開水 맹물을 끓인 것)를 이용해 살짝 우려내어 마신다. 만약 기미가 비교적 약해 향과 맛이 그리 강하지 않다면 달여서 마시되 찌꺼기까지 함께 복용해 약의 힘을 강화시킨다.
중국 고대에는 이처럼 약을 만드는 방법을 매우 중시했고 그 방법도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고대의 의학이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선진적이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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