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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_13

醉月 2012. 7. 29. 08:48

담음(痰飮)으로 인한 일체의 질환 치료

보리밭의 보배 반하(半夏)

겉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린 반하.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40~50대라면 더러 보리밭에서 반하(半夏)를 캔 기억이 있을 것이다. 5~6월경이면 보리농사가 끝난 밭에서 반하를 캐는 일에 할 일 없는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이 죄다 나서곤 했다. 반하가 돈이 됐기 때문이다. 한줌이라도 캐서 한약방에 들고 가면 용돈이 됐다. 장터에 나가도 곧장 돈으로 바꿨다. 반하가 현금이나 진배없었다. 머리가 좀 커진 애들은 반하를 판 돈을 조금씩 모아 연애할 때 쓰거나 가출자금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햇볕에 말리려고 장독 위에 올려둔 반하를 몰래 훔쳐가는 반하 도둑도 더러 있었다.

 

사람냄새 물씬 풍기던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기 전의 일이다. 개발과 발전이란 미명하에 온 천지를 자본의 탐욕에 종속시키기 전의 세상. 세상이 정말 많이 변해버렸다. 도시는 비대해지고 그 도시의 숨통이 턱턱 막히는 화차(火車) 안에서 인간들은 빠져나오지 못하지만, 푸른 생명이 살갑게 숨 쉬는 시골엔 사람이 없다. 화차 안에서 웰빙 타령들을 한 덕에 반하 캐던 보리밭이 좀 늘긴 했다.

 

6월 초. 야산 밭의 둔덕 아래에서 반하를 캤다. 손을 안 탄 덕에 씨알들이 굵다. 씨감자만큼이나 큰 ‘왕건이’도 있다. 꽃이 피었다가 진 알뿌리들이 대체로 크다. 햇볕을 꺼려 그늘지고 물기가 좀 있는 곳을 좋아한다. 반하를 캐다가 나무 아래 그늘을 찾아 누웠다. 온 산천이 푸른데 바람이 한 번씩 불면 금은화(忍冬) 꽃향기가 은은하다. 무상의 행복감. 둔덕의 바위 위에 마구 뒤엉켜 큰 넝쿨을 이룬 마삭줄(絡石藤)도 향기로운 흰 꽃들을 피워냈다. 마삭줄 꽃도 이 계절이 아니면 보기 어렵다.

 

반하는 우리말로 ‘끼무릇’이라 한다. 꿩이 밭에서 이 반하를 먹고 배 속을 뜨겁게 해 알을 낳는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꿩의 무릇’이라고도 한다. 끼무릇도 아마 그런 뜻이겠다. 꿩을 뜻하는 ‘끼’가 잘 먹는 무릇이란 정도.

 

반하 毒 다스리는 생강 법제(法製)

 

‘본초강목’은 ‘예기(禮記)’ 월령(月令)을 인용해 “5월에 반하가 나오는데 이때가 대략 여름의 절반이 되므로 반하라고 했다”고 적고 있다. 수전(守田), 수옥(水玉)이란 이명이 있다. 단전으로 기를 내린다 해서 수전이라고 한다는 고상한 해석도 있지만 그냥 밭을 지킨다는 뜻으로 소박하게 해석해도 되겠다. 그 생김새가 둥글둥글하므로 수옥이라 했다. 보리농사가 끝나는 하지 이후에 주로 채취한다. 콩알만한 둥근 덩이줄기를 캐어 잔뿌리를 제거하고 물에 담가 겉껍질을 벗겨서 햇빛에 말린다. 이것이 생반하(生半夏)다. 그러나 이 생반하를 그냥 먹으면 큰일 난다. 조금만 먹어도 입과 목구멍이 견딜 수 없이 아리고 조직의 마비감이 온다. 반하의 독성 때문이다.

 

반하 독은 구강 같은 점막조직을 주로 자극한다. 심하면 조직 괴사도 초래한다. 그러나 생강즙에 하룻밤 정도 담가서 불린 다음 그늘에 말리면 그 독성이 없어진다. 여기에 백반을 소량 넣는다. 생강을 도와서 반하의 독을 제거하고 담(痰)을 없애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이를 강반하(薑半夏)라고 한다. 반하를 약용할 때는 이 강반하를 쓴다. 반하를 잘 먹는 꿩도 반드시 밭 주변의 생강을 쪼아 먹고 반하 독을 다스린다고 한다. 그만큼 생강 법제가 중요하다.

이 강반하에 석회와 감초를 더 넣어 법제한 것을 법반하(法半夏)라고 한다. 생반하를 생강 없이 백반으로만 법제하기도 한다. 청반하(淸半夏)라고 한다. 조금씩 쓰임새가 다르다. 누룩처럼 만드는 반하곡(半夏)이라는 것도 있다. 강반하를 가루 내어 통밀가루, 적소두(팥), 행인(살구씨) 등을 넣고 발효시켜 만든다. 여기에 조각자(?角子)의 즙을 더하거나 죽력(대나무에 열을 가해 추출한 목초액), 또는 백개자(겨자씨)를 더 넣기도 한다. 닥나무잎에 싸서 바람에 말려 약용한다.

 

천지가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주역(周易)에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란 말이 있다. 흔히 궁하면 통한다고 한다. 그러나 주역의 이 말은 모든 현상은 변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궁하면 언젠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거라는 위안을 주는 말이 아니다. 달이 차면 이지러지게 되어 있다. 이지러진다는 것은 돌이켜 순환한다(變)는 것이다. 차기만 하고 이지러지지 않는다면 불통이고, 이지러졌다 차는 것은 통(通)이다. 그 통의 프로세스가 곧 지속(久)이다. 지속가능한 것은 모두 돌이키는, 순환하는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 이성은 자연의 생명력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생산해냈다. 그것을 진보라고 역설해왔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만들어놓고 돌이키자니 세상이 아득하다. 사람도 암과 같은 큰 병의 진단이 떨어지면 다들 피부를 가르고 살과 장기를 적출하고 최악의 상황도 감수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여류감독 콜린 세로의 ‘뷰티플 그린’이란 영화는 이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상상력을 통해 돌이킨다. 머나먼 우주 한 행성이 봉착했던 문명의 문제들을 ‘신문예부흥’이란 이름의 대수술을 통해서. 한때 그들 문명도 지구의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과 똑같은 문제들에 봉착했다. 다름 아닌 화폐와 시장, 거대도시, 자동차와 가전제품, 과학기술공학, 핵, 석유 문명과 물질 환원주의, 환경오염, 자본가, 부패한 정치인, 국가체제다. 쓰레기 처분하듯 이들을 내다버렸다. 이 모두를 추방하고 불매하고 거부하는 전 행성인의 필사적인 무브먼트를 통해서. 고고학 교과서에 나오는 오래전의 일이다. 프랑스식 코미디로 웃음을 자아내는 이 영화보다 더 불온한 상상력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콜린 세로가 그려낸 ‘뷰티플 그린’의 세상은 그렇게 화폐와 자동차를 박물관 진열장에 집어넣고도 물물교환과 4시간 정도의 노동만으로 자급자족하는 말 그대로 ‘로하스’의 세상이다. 국가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이 그랬듯이 대표자들이 모여 산상회의를 한다. 굳이 말하면 아나코 코뮤니즘이다. 자연 속에서 욕심 없이 살아서 이곳의 인간은 평균수명도 300살로 늘어났다. 학교에선 텔레파시로 사물과 대화하는 정신감응력을 배운다. 거의 천인(天人) 수준으로 진화했다고나 할까.

동양에서는 천지(天地)와 인간이 하나다. 천지가 탈이 나니 사람의 몸과 마음도 탈이 나고, 사람의 심신이 아프니 천지가 아프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 멀쩡하지 않은데 그의 몸과 마음이 도대체 멀쩡할 리가 없다. 그의 몸과 마음이 천지요, 천지가 그의 몸과 마음이다. 일(一)이 다(多)요, 다(多)가 일(一)이다.

 

체액이 정체돼 생기는 담음(痰飮)

반하는 역(易)에서 말한 궁즉변, 변즉통을 한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을 돌이킨다. 무슨 말인가. 반하는 담음(痰飮)을 치료한다. 담음이란 우리 몸의 수기(水氣), 물이 순환하지 못하고 한 곳에 머물러서 흩어지지 않게 된 것을 가리킨다. 하천의 물이 흐르지 않고 고이면 걸쭉해지고 종내는 썩어 악취를 풍기는 오수가 된다. 몸의 물인 체액(體液)도 흐르지 못하면 엉키고 썩어서 온갖 병을 부른다.

 

십중구담(十中九痰)이란 말이 있다. 질병이 10가지면 9가지가 담음으로 인한 병이란 말이다. 실체론적인 양의학과 달리 순환론적인 세계관의 산물인 한의학은 담음을 그렇게 크게 여긴다. 생각해보자. 우리 몸무게의 50~60%를 수분이 차지한다. 몸의 절반 이상이 물, 체액이다. 끊임없이 순환하기 때문에 썩지 않는다. 이 체액이 움직이지 않고 걸쭉한 가래 같은 것이 되어 몸의 이곳저곳에 고여 있다면 어떻게 될까. 동의보감에 나오는 왕은군의 ‘담론(痰論)’을 보면 그 증상들이 이렇다.

 

“담으로 인해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럼증이 생기는데 눈앞이 아찔하고 귀에서 소리가 나고 입과 눈이 푸들거리고 눈썹과 귓바퀴가 가려워진다. 팔다리에 유풍(부종)이 생겨 단단하게 부어서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은 듯도 하며, 혹은 잇몸이 부으면서 뺨이 가렵고 아픈데 일정치 않다.

혹은 트림이 나고 신물이 올라오며 명치 밑이 쓰리고 구역질과 딸국질이 난다. 목이 메고 끈끈한 가래가 있는 듯해 뱉어도 나오지 않고 삼켜도 넘어가지 않는다. 목구멍으로 나오는 가래의 색깔이 그을음 같고 복숭아나무 진 같고 조갯살 같기도 하다. 혹은 명치 밑에 얼음이 있는 것 같고 왼쪽 젖가슴이 때때로 싸늘하면서 아프다. 발목이 시큰거리고 약해지며 허리와 등이 갑자기 아프기도 하고, 팔다리의 뼈마디도 여기저기 안타깝게 아파서 굴신하기가 어렵다. 힘줄이 땅겨 다리를 절기도 한다.

 

등뼈 가운데 손바닥 크기의 얼음이 있는 듯 시리면서 아프고, 온몸에 스멀스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도 같다. 혹은 눈 둘레가 검고 눈시울이 깔깔하거나 가렵고 입과 혀가 잘 문드러진다. 목둘레에 멍울이 생기기도 하고 가슴과 배 사이에 두 가지 기운이 뒤엉킨 듯하며 머리와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기도 한다. 정신을 자주 놓는 전광증(정신분열증)이 생긴다. 중풍이 되어 팔다리가 뒤틀리기도 한다. 폐결핵처럼 밭은 기침이 잦다.

 

혹은 명치 아래가 들먹거리고 놀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며 누가 잡으러 오는 것처럼 무섭다. 숨이 차면서 기침이 나고 토하기를 잘 하고 군침이 잘 고인다. 푸르스름한 물과 검은 즙 같은 것을 뱉는다. 치질이 되어 대변에 피고름이 섞여 나오기도 한다. 꿈속에서 괴이한 것들이 나타나는 악몽에 시달린다. 이와 같이 몸의 안팎에 생기는 병이 몇 백 가지인지 알 수 없는데 모두 담으로 인한 병이다.”

반하는 이와 같이 담음으로 생긴 일체의 병을 다스린다. 몸 안의 수기(水氣)가 순환되지 못하고 머물러 담음으로 굳어진 것을 녹여서 본연의 수기로 되돌리기 때문이다. 또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된 것들도 흩뜨리고 삭혀 몸 밖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하는 걸까.

 

몸 안의 물을 돌이키다

 

 

반하의 잎.

약리적인 설명 대신 반하의 기미(氣味)로만 보자면 이렇다. 반하의 겉껍질을 벗기면 속 알맹이는 점액이 많아 매끄럽다. 그 맛(味)은 목구멍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맵다. 반하는 그 매끄러움(滑)으로 거스르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내려서(下降) 돌게(宣通)하고, 매운맛으로 고여서 굳어진 것을 열고 내보낸다(開泄). 이를 ‘개선활강(開宣滑降)’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돌지 않아 머무르고, 뭉쳐서 돌이킬 수 없게 된 몸 안의 물을 신통하게 돌이킨다.

 

‘신농본초’에선 반하가 “상한으로 인한 한열과 심하(心下)가 딴딴하게 굳어지고 맺혀서 그득해진 것을 치료한다. 기를 내린다. 인후가 붓고 아픈 것을 다스린다. 머리가 어지럽고 아프고 기가 위로 치밀어 기침하는 것, 가슴속이 꽉 차 숨도 못 쉬게 답답하고 속이 메스꺼운 증상을 치료한다. 또 배 속이 막혀 배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과 화(火)가 올라와 땀이 나는 것 등을 다스린다”고 했다. 모두 반하가 ‘개선활강’해 담음으로 변한 수기를 되돌리기 때문이다.

 

환자를 보다보면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심한 어지러움과 두통, 메스꺼움을 호소하면서 늘 위장이 체한 듯해 늘 ‘끄륵’ 소리를 내고 배변도 불쾌해져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지만 호전되지 않는다. 진단이라고 해야 어지러움이 심한 경우는 이석증이라고 하거나 위장장애는 역류성 식도염, 혹은 영양부족, 스트레스성 혈액순환장애, 일반적으로는 신경성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도 이들 환자는 갈수록 고통이 심해진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눈앞이 안개가 낀 듯 어른거리거나, 한 물건이 두 개 이상으로 보이는 시야장애를 호소한다. 어느 순간 심한 피로감이 들고 산소가 부족한 듯 전신이 무력해지고 숨통이 막힌다. 음식물을 못 먹는 것은 아니나 위장이 딱딱하게 굳어진 듯해 소화 장애가 극심하다.

 

신물이 오르고 가래와 같은 걸쭉한 이물이 목구멍으로 올라오기도 하고, 몸 이곳저곳이 마비되기도 한다.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이상도 느낀다. 몸에서 느껴지는 한열(寒熱)이 다른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머리엔 열이 나는데 수족과 배, 등은 시리다. 건망증이 심해지기도 한다. 더러 혼절도 한다.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다. 요즘에야 그렇지 않겠지만 전에는 귀신이 들렸다고 푸닥거리를 하기도 했다.

 

창출, 복령, 진피 등과 함께 써야

사실 담음으로 인한 병은 요즘에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우선 스트레스가 심하다. 또 하나는 먹을거리의 문제다. 현대인은 온갖 유해 첨가물이 범벅된 음식물에 노출되어 있으며, 먹을거리가 흔해져 과식과 폭식을 되풀이하고 식사시간도 일정치 않다. 노폐물이 누적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노폐물들이 몸 안의 체액을 이루고 흘러 다니는데 그 몸이 멀쩡할 수가 있을까. 어찌 보면 현대인의 몸은 과학문명이 만든 과로와 스트레스, 온갖 감언이설로 분식한 혼탁한 먹을거리와 화학물 의약품이 조장한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오염물질로 썩은 하천인 것이다.

 

물론 반하 홀로 이 담음을 다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하가 아니면 이들을 딱히 해결할 수 없다. 반하는 창출(삽주)과 복령, 진피 등과 잘 어울린다. 반하곡은 담음이 굳어져 담적(痰績)이 되어서 병이 중해진 경우 이를 삭혀서 대소변으로 따라 나가게 하거나 흩뜨려서 창(瘡)이 되게 해 치료한다. 더 이상 수기로 되돌리기 어려울 때 반하곡을 쓴다.

 

반하는 천남성과에 속한다. 5월경 독특한 생김새의 꽃이 핀다. 긴 혀를 내민 뱀의 머리를 닮은 것도 같고 혹은 두루미의 머리를 닮은 것도 같다. 천남성과의 꽃들이 대체로 특이하다. 남성(南星)의 꽃들은 여지없이 킹코브라가 혀를 날름거리는 형상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몸의 차크라를 열어 의식의 각성에 이르게 하는 쿤달리니가 뱀의 형상이다. 임맥과 독맥을 주천하는 대소주천도 뱀의 움직임으로 그려진다. 커다란 뱀이 제 꼬리를 문 원형(圓形)의 우로보로스가 원초적인 합일을 의미하듯, 뱀은 순환하는 힘을 상징한다. 반하의 꽃이 그 뱀의 머리를 닮아 보이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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