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한국인의 茶_05

醉月 2012. 9. 15. 08:46

좋은 차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덖음차 만들기 과정과 도구

한국인들은 거의 모든 음식물의 섭취 목적을 높은 영양가에만 국한하지 않고 생명력의 약동하는 기백과 현상학적인 향기와 색상과 맛에 둔다. 이른 봄의 차를 비롯하여 산에서 자생하는 산나물들이 그 대표적인 표본들이다.

찻잎 널기와 고르기
자생차밭에서 따온 찻잎은 멍석 위나 마루 또는 대청의 맨바닥에 헤쳐 넌다. 찻잎 자체에서 나는 열기를 식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창이기一槍二旗자생 찻잎은 녹차의 우전이나 세작을 만들기 위해 어린 잎만을 따온 것보다 활기찬 생명력의 중단 상태가 훨씬 크기 때문에 발효작용이 빠르다.
대개 한국인들은 발효작용이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찻잎으로는 덖음차를 만들지 않았다. 발효가 시작되면 찻잎이 차나무로부터 끊어진 단절면이 누르스름하게 된다. 거기서 더 진행되면 채취해온 찻잎 색깔이 노랗게 되고 더하면 불그스레해진다. 발효가 조금이라도 진전되면 찐차나 발효차를 만든다. 찻잎을 널어 열기를 식힌 후 잘못 딴 찻잎을 비롯해 묵은 잎과 티끌 같은 것을 고르고 정돈한다. 찻잎의 고르기가 엄격할수록 양질의 차를 만들 수 있다.



덖음차의 도구 준비
차 만드는 곳은 유달리 깨끗해야 하며, 차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가 순서에 따라 적절하게 쓸 수 있도록 가까이에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함께 차 만드는 사람들이 각기 자기가 맡은 역할에 따른 도구를 편리한 곳에 두되 서로 유기적으로 사용이 가능해야 한다. 일단 찻잎을 덖기 시작하면 초를 다툴 정도로 바빠진다. 다음 과정 준비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큰 차질이 생긴다. 고열의 초벌 덖기부터 마지막 볶기까지 잠시도 쉴 틈 없이 일사분란하게 작업이 이어지기에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 또한 차 만드는 곳 부근에 음식물을 두거나 음료를 취하는 등 다른 냄새가 차에 흡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마솥의 손질
그 해 차 덖기를 처음 시작하기에 앞서, 가마솥 손질을 잘 해놓아야 한다. 차를 덖을 가마솥에 물을 가득 넣어 두세번 끓여낸 다음 물을 비워내고 물기를말린다. 이는 솥의 미세한 불순물과 잡냄새를 제거하는 일이며 차를 덖을 때 열이 가해지는 것을 미리 솥에게 예고하는 일이다. 만약 차 전용의 솥이 아닐 때는 사나흘 전부터 계속 솥에 물을 끓여내야 차 만들기에 적합한 솥의 구실을 할 수 있다. 차솥은 물을 끓여낸 후 행주로 닦은 다음 뚜껑을 덮어 먼지가들지 않게 해야 한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차솥은 물과 왕겨를 가득 넣고 10여 회 이상 삶아내야 한다. 왕겨를 넣고 이틀 동안 끓이고 솥에서 사흘 동안 식힌 후 퍼낸다. 다시 물과 왕겨를 넣어 끓이고 식히고 퍼내는 반복을 10여 회 하자면 한 달이 넘게 걸린다. 새 솥은 쇳기가 강하여 가하는 열의 전도가 급하므로 좋은 차만들기에 장애를 준다. 이를 다소 완화시키기 위해 한 달이 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차솥은 옥돌이나 무쇠솥을 썼으며 요즈음은 스테인리스솥을 쓰기도 한다. 오래된 무쇠솥은 장작불을 넣었을 때 바닥의 열이 조밀하고 고르게 퍼져 열의 전도나 유지가 좋기에 전통 자생차 만들기에 최상의 솥으로 꼽지만 미세하게나마 쇳가루가 벗겨질 수 있다. 새 솥은 차가 검어질 우려가 있으니, 찻잎을 덖어 퍼낸 뒤 젖은 행주로 솥바닥을 닦아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옥돌이나 스테인리스솥은 무쇠솥에 비하여 깨끗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빠르게 달궈지고 빠르게 식으며 솥바닥에 받는 열이 고르지 않아 좋은 덖음차 만들기에 마땅하지 않다. 무쇠솥의 두께는 2cm 이상은 되어야 하며, 솥바닥은 넓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비스듬하게 오르막으로 경사진 것이 차 덖기에 좋다. 그리고 솥전에서부터 위로 갈수록 완만하게 오므라들거나 바로 선 것이 좋다. 차를 덖고 볶는 일이 끝나면 가마솥에 물을 부어 끓여낸 다음 잘 씻어서 마른 행주로 닦는다. 그후 숯이나 깨끗하게 말린 천 조각을 가득 담아 건조를 유지함으로써 미세한 녹이 생기지 않게 잘 보관해야 한다. 구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고려나 조선시대의 가마솥이면 최고이다.



멍석
찻잎을 덖을 때 중요한 것이 솥과 장작불이라면 덖어낸 찻잎의 유념, 즉 부비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주인은 멍석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짚으로 촘촘히 짠 깨끗한 멍석이 준비되어야 한다. 이렇게 잘 짜인 멍석은 솥에서 덖어낸 찻잎을 부빌 때, 그리고 부빈 찻잎을 털어서 널어 식힐 때 쓰인다. 차 만들기 전에 먼저 멍석을 펴놓고 깨끗한 빗자루로 쓸어낸 뒤 물기를 바짝 짠 행주로 닦아낸다. 찻잎을 덖은 뒤 부빌 때, 멍석보다 이상적인 것은 없다. 찻잎을 두 손으로 덩이를 만들어 밀고 끌어 당길 때 멍석의 요철이 잘 말아지게 하는 역할을 하며 손바닥과 멍석 사이에서 미끄러지거나 막히지 않게 한다. 부벼서 널어 식힐 때도 멍석의 요철이 공기를 잘 소통되게 하여 찻잎의 미세한 발효를 막아준다. 솥에서 막 나와 찻잎이 머금고 있는 습기가 오돌토돌한 공간 사이로 날아가면서 다음 덖음에 알맞게 건조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멍석은 덖음차를 성공시키는 최고의 기구이다. 차를 접하는 이들 중 위생상 멍석 위에 천을 깔아 그 위에서 찻잎을 부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흰 장갑을 끼고 부비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장갑을 낀 손으로 천 위에서 찻잎을 부비면 잘 말아지지도 않고 덖어진 찻잎의 수분이나 열기의 유통이 깔아진 천에 막히기에 좋은 차가 되기 힘들다. 덖음차를 만들 때 위생을 생각한다면 자주 손을 잘 씻고 주변을 청결히 하고 멍석을 행주로 자주 닦아주면 충분하다.

맑은 물과 물통
맑은 물은 차솥 온도를 측정할 때 쓴다. 또 차솥을 닦아내는 행주를 적시는 데도 필요하기 때문에 차 만드는 작업이 끝날 때까지 맑은 물을 통에 담아 솥옆에 두어야 한다.

물수건과 행주
아무리 오래된 좋은 솥이라 할지라도 처음 열 조절할 때, 솥바닥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그때 수건에 물을 적셔 솥바닥에 펴서 깔았다 거두면 솥 안의 온도가 전체적으로 일정해진다. 또 덖어낸 찻잎을 꺼낸 후에는 솥 안에 남은 부스러기를 쓸어내고 행주로 닦아낸 후 다음 덖기를 해야 한다. 특히 최후의 과정인 마지막 볶기를 하기 전후에 솥 안에 남은 미세한 찻잎가루를 닦아내지 않으면 탄 냄새를 유발한다.

빗자루와 티받이
멍석에 널어둔 생찻잎과 덖어서 유념한 찻잎을 큰 대바구니나 양푼에 담아 솥으로 보낸 뒤, 작은 빗자루로 멍석을 한 번 쓸어내고 다음 유념을 준비해야 한다.
멍석에서 쓰는 빗자루는 보통 크기의 빗자루면 무방하지만, 가마솥 안에 쓰는 빗자루는 솥 안에서 자유로이 쓸 수 있을 정도로 작아야 하고 벼로 만든 빗자루여야 한다. 찻잎을 솥에서 덖은 다음 두 손으로 들어낸 후 남은 잔량은 작은 티받이에 빗자루로 쓸어 담는다. 그래도 가루에 가까운 부스러기가 남아있으면 깨끗이 쓸어내야 한다. 마지막 볶기는 물론 8회에서 10회가 되는 덖는 과정에서 생긴 솥 안의 미세한 가루차는 매번 쓸어 티받이를 이용하여 담아낸다.



차주걱
찻잎을 솥 안에 넣고 초벌에서 네 번째나 다섯 번째까지 덖을 때는 찻잎의 수분이 남아 있어 부피가 어느 정도 있지만, 여섯 번째 이후는 수분이 줄어들고 부피가 적어지면서 말려진 상태가 된다. 이때부터는 손으로 뒤적거리기 어려우므로 차주걱을 솥바닥에 밀착시켜 조심스레 떠올려 차를 흩뿌린 후 바닥의 차를 주걱으로 고른다. 차주걱은 가벼운 나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오동나무를 켜서 판자로 만들되 여인이 두 손바닥을 편 넓이면 적당하다. 손으로 잡는 부분은 약간 두껍게 작은 나무대를 붙여두면 잡기에 편리하다. 이차주걱은 마지막 볶는 과정에서 더욱 더 필수적이다.

면장갑과 대바구니
초벌덖음 시 솥 안의 열기가 200℃가 넘기 때문에 맨손으로는 덖기가 불가능하므로 면장갑을 두벌 겹으로 끼고 한참 쓰다가 갈아 낀다. 찻잎의 습기에 장갑이 젖으면 뜨거워져서 손을 델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덖은 찻잎을 담아 나를 때는 대바구니나 양푼을 쓴다. 대나무는 습기와 열을 서늘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덖은 후 멍석으로 이동할 때 찻잎의 열기를 식히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기에 대바구니는 차 만드는 데 있어 찻잎의 발효 작용을 조금이라도 예방할 수 있는 도구이다.

깨끗한 보자기와 한지
찻잎의 유념, 즉 비비기는 채취한 곳이 습한 곳인가 건조한 곳인가에 따라 유념의 횟수를 더하거나 덜 할 수 있다. 6~10회째 솥에서 나온 건조된 차를 광목천위에 널었다가 마지막 볶기에 들어간다.
마지막 볶기는 향색미를 내게 하는 최종 마무리다. 찻잎에서 차가 되기까지는 덖는 과정과 볶는 과정이 있다. 덖는 과정은 보통 찻잎의 사정에 따라 10회 전후인 반면, 볶기는 단 한 번이지만 차를 완성시키는 70~80%의 결정적 역할을 한다. 볶은 후 차의 열기를 식히는 곳은 방안이여야 하고, 반드시 한지 위에서 식혀야 공기 중 습기의 침해를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잘 덖고 볶은 차도 관리가 잘못되면 십 년 공이 허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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