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 땅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당하고 냉정하고 느긋하게 임해야 조갑제
獨島(독도)는 우리 땅이다. 우리가 영유하고 있다.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억지다. 논리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그렇다.
일본은 전쟁을 하지 않는 한 독도를 빼앗아갈 수 없다.
<「외교적 전쟁 불사한다.」는 강경대응으로 우리가 얻은 결과 무언가?>
일본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대응하다가 보니 국제분쟁 꺼리도 안 되는 것을 분쟁꺼리로 만든 점이 없었나,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신이상자의 횡설수설에 대해서 교수가 논리적으로 대응하면 지켜보는 이는
정신이상자가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5000만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생각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한국인들한테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설득할 필요는 없다. 일본인들한테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주장할 경우
얼마나 많은 일본인들이 설득당할까? 영토문제는 타협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가진 독도이고, 영유권을 뒷받침할 모든 논리적, 사실적 근거를 지닌 한국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억지를 부려도 우리는 당당하고 냉정하고 느긋하게 임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발음했던 최초의 대통령이다. 그가 일본 시마네 현의 獨島(독도) 영유권 관련 억지 주장에 대해서 “외교적 전쟁을 불사한다.”는 식으로 강경 대응한 결과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오히려 독도문제를 너무 키운 것이 아닌가?
<일본은 잘게 나오더라도, 우리는 우직하고 당당하고 냉정하고 느긋하게! 시간과 진실이 우리 편이니까>
우리는 독도를 포기할 수 없고, 일본정부는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정부가 독도를 무력으로 빼앗겠다고 나설 가능성도 없다(있다고 가정하고 대비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몫이다).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독도 문제로 양국이 단교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한국이 이사를 갈 수도 없다.
연간 500만 명 이상의 한국인과 일본인이 상호 방문한다.
아무리 독도문제로 외교관계가 나빠져도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과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이 봉변을 당하지는 않는다.
두 나라가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덕분이다.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은 잘게 나오더라도,
우리는 우직하고 당당하고 냉정하고 느긋하게! 시간과 진실이 우리 편이니까. 독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 땅이다.
◆이것은 민족공조인가, 민족 반역공조인가? 남한좌익은 촛불난동 북한좌익은 관광객 살해
남한 좌익은 촛불亂動(난동), 북한 좌익은 관광객 사살. 남북한 좌익이 대한민국을 협공하는 데 공조한 셈이다.
촛불 집회 자들은 관광객이 피살되어 국가적 초상이 났는데도 야간 시위를 했고,
그 핵심주동단체 관계자는 “잘잘못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논평을 했다고 한다(연합뉴스).
6.15 선언의 ‘우리민족끼리 통일한다.”는 말이나 이를 요약한 ‘민족공조’의 정체가 이번에 나타났다.
필자는 6.15 선언에서 말하는 민족은 민족반역자를 뜻하므로 ‘민족반역공조’가 본뜻이라고 말해왔다.
즉 민족반역에 공조한다는 뜻이다. 이 분석이 이번에 적중했다. 남북한 좌익은 대한민국의 헌법체제를 부정하는 반역집단이다.
이들이 이명박 정부와 국가체제를 공격하는 데 공조한 것이다.
6.15 선언을 폐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정일과 김대중이 6.15 선언을 존중하라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는 이유도 알 만하다.
李 대통령은 ‘우리민족끼리’나 ‘민족공조’라는 말을 쓰지 않도록 全공무원들에게 지시해야 할 헌법상 의무가 있다
◆세계 唯一(유일)의 나라, 아! 대한민국
01. 일본을 우습게 보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02. 미국산 쇠고기를 독극물 수준으로 보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03. 좌익이 공산국가에서보다 더 힘이 센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04. 동맹국을 主敵(주적)보다 더 미워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05. 미국에 10만 명이 넘는 유학생을 보낸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그 미국을 미워하라고 가르치는 교사들이 수만 명을 넘는 나라.
06. 애완견이 죽으면 눈물을 흘리지만 同族(동족) 300만 명이 굶어죽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살빼기에 여념이 없는 나라.
07. 국민평균 IQ는 세계최고인데, 새빨간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부문에서도 1위인 나라.
08. 국가가 되어 가는 방향에 대해서 레바논 수준으로 불만이 많은 나라(87%).
09. 민족의 탄생(신라의 삼국통일)과 민주국가의 탄생(대한민국 건국)을 저주하면서 一流(일류)국가가 되겠다고 설치는 나라.
10. 700만 학살 정권을 진보세력이라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
그런 지식인들이 양심가로 대접 받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11. 조국의 생일도 없고, 기념하지도 않는 세계 유일의 나라.
12. 敵(적)이 핵실험을 해도 놀라지 않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13. 同族(동족)의 3분의 2는 키다리, 3분의 1은 난장이가 된 세계 유일의 나라. 남자 평균키의 차이가 13cm!
14. 돌도 안 된 아기가 데모를 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
15. 폭동으로 경찰관이 500명이나 부상했는데, 폭도들은 13명만 구속한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16. 쇠파이프로 무장한 폭도들에게 경찰이 물대포를 쏘았다고 욕을 하는 언론이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17. 돈을 쓰려고 찾아온 관광객을 등 뒤에서 사살하고도 사과를 하지 않는 세계에서 유일한 집단의 수괴를
‘지혜로운 분’이라고 칭송해도 비판하는 언론이 없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18. 공영방송이 ‘공공의 敵’(적)이 된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19. 독도를 지켜낸 李承晩(이승만)과 애국가를 작곡한 安益泰(안익태)와 근대화의 기수 朴正熙(박정희)를 親日派(친일파)로 모는 것을
業(업)으로 삼아 먹고 사는 인간들이 적지 않은 나라.
20. 建國(건국) 대통령의 동상과 기념관을 세우지 않고, 건국에 반대한 인물의 동상과 기념관부터 먼저 세운 세계 유일의 나라.
21. 인테넛 보급률은 세계 1등인데, 문맹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漢字文盲(한자문맹)으로 국어의 70%를 암호화하여 쓰면서
영어교육에는 몰입하는 이상한 나라.
◆‘관광객 射殺(사살) 지령’ 김정일을 국제 형사 재판소에 고발해야. 수단 대통령 기소할 정도라면 김정일은 백번 고발당해도 싸다.
국제형사재판소 검찰이 수단의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을 대학살과 反인도 범죄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고 미국의 소리 방송이 보도했다.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국제형사재판소 검사는 바시르 대통령이 살인과 성폭행 등 반인도 범죄를 저지르고 다르푸르 지역에 거주하는 푸르와 마살리크, 자가와 부족들을 강제 추방했다고 비난했다.
모레노 오캄포 검사는 다르푸르 지역에서 수단 친정부 민병조직인 자자위드의 만행을 멈출 수 있도록 국제형사재판소가 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단 정부는 국제형사재판소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지만 수단 외무부 대변인은 다르푸르 평화 유지 활동에 계속 협력하고 自國內 유엔 직원들을 보호할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에 밝혔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1998년 7월 유엔에서 채택돼 2002년 발효된 ‘국제 형사 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에 따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됐으며 대량학살과 전쟁, 反인도적 범죄 등을 저지른 책임자들을 재판하는 독립적인 국제재판소이다. 현직 국가원수를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단 대통령을 기소할 정도라면 김정일의 학살과 反인류범죄도 당연히 이 재판소가 다룰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 국내외에서 제기되고 있다(아래 자료). 특히 이번에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사살 사건은 김정일의 직접 지시로 이뤄진 것이 확실하므로 그의 범죄를 구성하는 추가 증거가 된다. 국제 형사 재판소는 그러나 2002년 7월1일 이후에 일어난 범죄를 다룬다.
김정일 정권의 범죄에 대한 추가 정보수집이 필요하다.
<김정일에 대한 가장 강한 국제적 압력은 그를 국제 형사 재판소에 고발하는 것이다>
국제형사재판소의 검찰은 다음 세 가지 경우에 수사를 개시한다.
1. 각국의 정부가 고발할 때.
2. 유엔 안보리가 고발할 때.
3. 국제형사재판소의 豫審部(예심부)가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얻은 정보에 근거하여 검사에게 수사를 명할 때.
한국정부가 김정일을 고발하지 않더라도 인권단체가 고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수단은 북한처럼 ICC에 가입하지 않고 있으나 ICC는 수단에 대한 재판 관할권을 확인했다. 북한도 ICC에 가입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김정일에 대한 재판권이 없다는 주장을 할 수 없다. 김정일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국제적 압력은 그를 국제 형사 재판소에 고발하는 것이다. 한국은 ICC 가입국이다.
◆ 한국이 세계 제1위 인 또 다른 것들
01. 전기가 잘 들어오는 데도 세계에서 양초를 제일 많이 소비하는 나라
02. 대로에서 확성기로 한 달 내내 떠들어도 아무도 안 잡아가는 나라.
03. 경찰을 거지보다도 얕잡아 보는 나라.
04. 광우병은 구경도 못했으면서 제일 무서워하는 나라.
05. 공산국가도 아니면서 좌익이 제일 판치는 나라.
06. 대통령 알기를 초등학교의 반장 정도로 아는 나라.
07. 우리를 때려잡겠다고 무시무시한 무기를 열심히 만드는 이웃에게 있는 것 몽땅 아낌없이 퍼다 주는 나라.
08. 교육비는 제일 많이 쓰면서 되먹지 못한 아이들만 양산하는 나라.
09. 국가와 교육 이념이 다른 집단이 학교를 쥐고 흔들어도 도무지 어쩌지도 못하는 나라.
10. 새장 같은 아파트가 폼 나는 독립주택보다도 비싼 나라.
11. 아무리 떠들어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자기 할 짓만 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 나라.
12. 자기 멋대로 뉴스를 만들어서 온 국민에게 마구 방영해도 아무 책임도 안지는 나라.
13. 웬만한 개인 빚은 조금만 기다리면 국민세금으로 다 탕감해주는 나라.
14. 웬만한 죄는 기념일 몇 번만 기다리면 다 방면되는 나라.
15. 평균 국민 IQ는 세계에서 최고인 나라가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데도 세계 1등.
16. 30개월 이상짜리 쇠고기를 먹는 그 입으로 30개월 이상짜리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린다고 소리쳐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드문 나라.
17.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은 퇴학시키면서 등원을 거부하는 국회의원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나라.
◆《赤化(적화)통일》은 비호하면서, 《自由(자유)통일》은 꺼려하는 이 넋 나간 분위기를 깨야한다 김성욱 / 본지 편집위원
김정일의 核(핵)개발은 우리를 외통수 길로 몰았다. 싫든 좋든 자유통일을 서둘러야 한다. 북한 핵을 그대로 두고는 우리가 살아남기 어렵고, 자유통일 외에는 북한 핵을 제거 할 길이 없다.
<김정일 核개발은 우리를 외통수 길로 몰았다 자유통일 외에는 북한 核(핵)을 제거 할 길이 없다>
핵폭탄을 짊어진 김정일과 좌익들의 간접 침략에 한반도 赤化(적화)의 길을 터줄 것이냐? 아니면 살기 위해 싸울 것이냐?
선택은 이미 내려진 상태다. 반세기 이상 지속된 분단의 모순은 북한 핵으로 限界狀況(한계상황)에 부딪쳐 버린 셈이다.
가장 먼저 해결할 일은 김대중(DJ)식 『햇볕』에 마취된 한국을 깨우는 일이다.
《적화통일》은 은근히 비호하면서, 《자유통일》은 꺼려하는 이 넋 나간 분위기를 깨야 한다.
자유통일 반대논리는 간단하다. 「전쟁하자는 것이냐?」, 「難民(난민)이 수백만씩 몰려온다.」,
「통일비용이 몇 백조다」 獨逸(독일)통일의 부작용을 사례로 들기도 한다.
통일비용 논리는 허구에 불과하다. 북한의 예산은 한국의 《전남 구례군》 수준에 불과하다.
東獨(동독)과 善(서독)의 통일과 차원이 다른 문제다. 100정도 살던 나라가 80정도 살던 나라를 끌어안으면,
80정도는 살게 해줘야 하니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90정도 살던 나라가 5만큼도 못 살던 나라를 끌어안는다고 힘이 들진 않는다.
당장 굶어죽고, 맞아죽고, 얼어 죽는 사람만 없게 해도 통일은 성공한 셈이다.
북한은 국가예산의 40%를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에 전용하고, 그 보다 많은 액수를 무기개발에 사용한다.
이런 「미친 짓」을 중단시킨 뒤, 對北(대북)지원이 특권층이 아닌 주민들에게 분배될 수 있게만 관리하면,
당장이라도 북한은 일정 궤도로 일어설 것이다.
<돈이 드는 게 아니라 돈을 버는 게 자유통일이다>
무엇보다 자유통일은 남북 양쪽이 물고 있는 分斷費用(분단비용)을 없애버린다.
경제적 손실, 안보상 위협, 국가적 자존심 훼손 등 천문학적 비용이 중단된다. 돈이 드는 게 아니라 돈을 버는 게 자유통일이다.
북한을 中國(중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신명나는 일이다.
抑壓(억압)과 搾取(착취)가 없다면 모든 인간은 자신을 생존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국가적 배급체제에서 벗어난 시장경제 생활자들이 절반 가까이 달한다.
이들은 북한 붕괴 시 規制(규제)와 統制(통제)만 사라져도, 활발하고 독자적인 노동활동으로 북한경제의 기반을 이룰 것이다.
북한은 매력적 投資處(투자처)로 변모할 것이다. 이익창출은 천문학적 수준이 될 것이다.
북한지역이 未(미)개발 상태인데다, 시장경제라는 체제전환과 함께 들어가기 때문이다.
북한에 市場(시장)과 工場(공장)과 企業(기업)을 만들 주체는 폭압 당하던 북한 동포와 함께 한국의 청년들이다.
취업문제로 고민하던 실업자들은 월남특수, 중동특수에 이은 북한특수를 누리게 될 것이다.
좁은 땅, 많은 인구, 적은 기회로 서로 치고 받고 싸우던 사람들은 개발시대의 환희를 맞보게 될 것이다.
<열린 北韓, 청년들의 「엘도라도」>
열린 北韓(북한), 이어진 北方(북방)은 청년들의 「엘도라도」이다.
그들은 海洋(해양)과 草原(초원)과 大陸(대륙)을 오가는 주역이 될 것이다.
프랑스의 碩學(석학) 기 소르망을 비롯해서 「통일한국이 선진강국들을 따돌리고 세계 6, 7위의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전문가도 많다. 이것은 듣기 좋은 덕담이 아니다.
21세기 세계화 시대는 나라의 덩치부터 커야 자기 몫을 챙길 수 있다. 소위 강대국 위주의「制限(제한) 주권시대」다.
자유통일만 달성되면 우리도 2.2배의 국토에 7천만 국민, 7백만 해외동포를 갖게 된다.
이미 전자·반도체·통신·자동차·철강·조선·중화학·섬유 등 주요 산업에 있어서 모두 세계 10위권에 드는 남한은
북한을 흡수해 민족적 에너지를 폭발시킬 것이다.
우리는 우수한 두뇌를 가진 민족이다. 자유통일로 체제전복을 꾀해 온 煽動(선동)과 欺瞞(기만)의 모든 공작이 중단되고,
和合(화합)과 團結(단결)의 기운이 다져진다. 여기에 세계최고의 교육열과 신바람으로 무장한 국민이 있다!
선진국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자유통일로 한반도는 새 세상이 될 것이다.
동 아시아 역시 문명의 비약을 이룰 것이다. 이곳엔 세계 2위의 일본, 세계 5위의 중국, 세계 11위의 한국, 12위의 러시아가 몰려 있다.
블랙홀이었던 북한의 참여는 「하나의 시장(One Market)」을 완성하고, 동북아경제공동체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도로·철도·해로를 따라 사람과 물류와 정보가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문명의 르네상스가 펼쳐진다.
<東(동) 아시아 역시 문명의 비약을 이룰 것>
동아시아는 2018년이면 한국(2조 달러), 일본(9조), 중국 황해 및 동북3성(6조) 러시아 연해주 지역을 포함해 10억 인구,
18조 달러의 세계경제의 병기창이 될 것이다.
자유통일을 꺼려하며 難民(난민)이나 戰爭(전쟁)을 들먹이는 것 역시 지엽적이고 기만적이다.
한계에 다다른 김정일 정권을 정리하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난민관리 역시 차고 넘칠 정도의 代案(대안)이 마련돼 있다.
정치체제가 다른 형태로 분단된 국가들의 경우 통일은 예외 없이 한 쪽이 다른 쪽의 체제를 흡수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독일과 예멘은 공산주의체제가 무너지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통일이 이뤄졌고, 베트남은 그 반대였다.
한반도도 마찬가지이다. 자유통일 아니면 적화통일, 그 이외 제3의 길은 있을 수 없다.
◆ 누가 김정일의 후계자일까? 아들 김정남인가 매제 장성택 인가? 박갑동 /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 상임의장
-- 북한정치에 정통한 박갑동 前 북한 남로당 조직부장의 분석--
지난 5월 27일자 일본 산케이신문(産經新聞)은 만약 5년 이내에 김정일이 自然死(자연사)하면은 張成澤(장성택)과 金正男(김정남)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한국 국방연구원이 예측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나의 친구 成有慶의 외손자 김정남>
한국 국방연구원이 왜 무슨 이유로 장성택 과 김정남 두 사람을 한정하여 아무 설명도 없이
그중에 누군가 한 사람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한국국방연구원이 예측한 김정일의 후계자 중에도 우선적으로 거명한 장성택은 김일성의 자식도 아니고 김정일의 자식도 아니고
김씨집안의 핏줄도 아니다. 이러한 장성택을 첫번째의 후계자로 예측한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김정일의 큰아들 김정남, 둘째아들 김정철, 셋째아들 金正雲(김정운)은 자기들이 정통적 후계자라고 확신하고 있을 것인데
가만히 있겠는가.
한국국방연구원이 북한의 세습독재자 김정일의 아들 3형제의 존재를 무시하고 장성택의 이름을 첫번째로 올리고 있는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1945년이래 63년간 부자세습 1당독재로 외국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북한 내부의 실정을 정확히 알아낸다는 것은 유명한 미국 CIA나 한국국방연구원이라도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사실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의 큰아들 정남은 나의 고향친구 成有慶(성유경)의 딸 成惠琳(성혜림)의 아들이며 성유경의 외손자다. 김정남의 외조부 성유경의 고향은 경상남도 창녕군이며, 나의 고향은 경상남도 산청군이다.
성유경은 대지주의 아들로 동경의 호오세이(法政)대학에 유학하였고 그때 나도 동경의 와세다 대학에 유학하여 재동경 경상남도 학우회의 회원으로 자주 만났다. 내가 보기에는 셩우경은 동경 유학생이라 하지만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라기 보단 노는 유학생 같았다.
그는 졸업도 하지 않고 서울에 돌아가서 종각근처에서 카페를 경영하고 있었다.
나는 서울에 가면 그의 카페에 가서 그와 酒食(주식)을 같이 하였다.
<김정일의 장모가 된 유경의 처 김원주>
성유경은 서울에서 金源珠(김원주)라는 평안도 진남포 출신의 처녀와 알게 되었다.
창녕 고향집에서 혼자 집안일을 하고 있던 조강지처를 버리고 평안도 처녀 김원주와 결혼하여 1936년에 큰딸 혜랑을,
다음해 37년에 혜림을 낳게 되었다. 이 둘째딸 혜림이 김정일의 아내가 되어 출산한 아들이 지금 문제가 되어있는 김정남이다.
1945년 8월 소련군이 38선 이북의 땅을 점령하여 김일성이란 자를 데리고 오자 김원주는
김일성이 자기와 같은 평안도 사람이라고 친척이나 된것같이 남편과 두 딸을 서울에 남겨두고 혼자 평양에 가버렸다.
김원주는 미인일 뿐만 아니라 달변을 무기로 사람들을 밀어내고 남의 앞에 서는 여성이었다.
그 후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나 김일성軍(군)이 서울을 점령하였을 때 나는 서울에서 뜻밖에 평양에 가 있던 김원주와 만났습니다. 그때 그녀는 김일성군의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가족을 데리러 왔는가?」고 물으니 「예, 그래요. 그들을 안전한 東北(동북)지방(만주)에 소개시키고
나는 강원도 춘천에 로동신문 지국을 설치하라는 지령으로 왔습니다.」는 대답이었다.
<어느 날 밤 남의 집 유부녀를 납치해 데리고 산 김정일>
1953년 7월 한국전쟁이 휴전이 되니 성유경 가족은 평양에 가서 영주하게 되었다.
성혜림은 평양에 가서 연예학교에 들어가 영화배우가 되었다. 성혜림 주연의 영화는 평판이 다 좋아 인기가 점점 높아져 갔었다.
“안개 흐르는 언덕”이란 영화에 주연하여 국민적 스타가 되었다. 이 영화는 외국에 수출된 첫 번째 영화다.
특히 이 영화를 캄보디아에서 상영할 때 주연 여배우로서 인사하러 캄보디아에 갔을 때 시아누크 국왕이 높이 평가하는 멧시지를 김일성에게 보냈기 때문에 김일성도 자기나라의 명예라고 성혜림을 북한을 대표하는 제일가는 여배우라고 평가하게 되었다.
성혜림의 아버지 성유경은 딸이 이미 30세가 가까이 되니 남조선 출신의 유명한 농민작가로서 조. 소 문화협회장인 李箕永(이기영)의 장남 李平(이평)과 결혼시켰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던 성혜림의 인생은 하루 밤에 암흑의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어느 날 밤 자기 집 앞에 고급자동차가 정거하더니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측근의 장군들이나 당과 정부의 고관들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자기 경호실의 자동차를 밤중에 보내 데리고 오는 습성이 있었다. 그 날 밤의 자기의 거처를 알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을 알고 있던 성혜림은 무슨 만찬회에 부르는가 싶어 의심도 하지 않고 그 차에 탔었다.
평양의 밤길은 전등도 없는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캄캄한 밤길을 두시간 이상이나 달리다가 드디어 숲속의 큰 집 앞에 정거하는 것이었다.
성혜림은 평양시에서 수백 리 떨어진 먼 곳에 있는 별장인지 짐작하였다.
자동차에서 내리기 전에 수명의 경호인이 경례를 하며 마중하여 주는 것이었다.
그날 밤 그곳에서 밤늦게까지 연회가 있어 결국 그곳에서 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날 밤부터 자기 집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성혜림의 평양 집에서는 남편 이평과 아들 玉乭(옥돌)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혜림은 남편과 아들 생각을 하니 자살을 하고 싶었으나 감시하고 있으니 죽을 수도 없었다.
<1971년 5월 성혜림은 제왕절개 수술로 김정일의 아들 정남을 낳았다>
성혜림은 그날부터 김정일 품에서 탈출할 수 없어 드디어 1971년 5월 10일 제왕절개 수술의 난산으로 아들을 출산하였었다.
이 아이가 김정남이다. 지금 김정일의 후계자 후보자의 유력한 한 사람으로 되어있다.
김정일은 이때까지 많은 미인들과 놀고 있었지만 성혜림만이 남조선의 이름난 양반집 딸이었다.
교양도 있고 영화배우로서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국왕도 알고있는 성혜림이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납치하여 왔던 것이었다.
김정일은 첫아들 정남이 일어서 한발 두발 걷게되니 육군대장의 군복과 같은 것을 입혀 자기가 스스로 경례를 하며 “육군대장님”하며 부르며 사용인들에게도 정남에 대하여 육군대장이라고 부르라고 하였다 한다.
정남은 외할머니 김원주, 큰 이모 성혜랑, 이종형님 李一男(이일남) 이종누이 李南玉(이남옥)과 평양의 대궐 같은 큰 집에서 자랐다.
이모인 혜랑이 가정교사가 되고 이종누이 이남옥과 놀면서 모두 다 남한에서 온 사람들 속에서 컸기 때문에 정남의 말씨는 평안도 사투리가 아니고 경상도 사투리라 한다.
성혜림은 정남이가 자기가 낳은 아들이지만 자기 손으로 키울 수가 없었다.
자주 만나 볼 수도 없었다. 적적한데 前(전)남편이었던 이평과 남기고 온 아들 옥돌을 생각하니 불면증 신경쇠약 불안발작으로
1976년 드디어 치료를 받기 위하여 모스크바로 가게 되었다.
김원주는 딸 혜림이 병 치료차 먼 소련의 모스크바로 가버리니 외손자 정남이 걱정이 되었다.
김정일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남쪽에서 온 혜림의 편은 없었다.
그러므로 소중한 외손자 정남을 먼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는지 1980년 봄 김정일의 누이동생 김경희를 통하여 김정일에 부탁하여 정남을 제네바의 국제학원에 유학시켰었다.
김정일은 아들 정남에게 세 사람의 노동당 중앙부부장, 경호원, 운전수, 요리인, 사진기사 등 수십 명의 특별 수행 단을 붙여주었다.
<경상도 사투리 쓰는 김정남>
정남이 입학한 제네바의 국제학원은 프랑스 지역이므로 정남은 프랑스어를 배우게 되었었다.
김원주는 외손자 정남의 안전을 위하여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스위스에 유학 보내어 안심했는가는 몰라도 그것이 도리어 정남에게 불행을 가져왔었다.
김정일은 첫사랑 성혜림이 병 치료로 소련으로 떠나가 버린뒤에 첫아들 정남이가 점점 커가는 것을 눈앞에 보는 것을 樂(낙)으로 삼았는데 소련보다 더 먼 구라파의 나라로 떠나고 나니 너무나 적적하여 일본에서 온 제주도 출신의 高英姬(고영희)라는 춤추는 기쁨조 여자와의 사이에 정철 정운이란 두 아들을 가지게 되었다.
정남이 평양에 돌아오니 생각하지도 않은 여자가 계모가 되어있을 뿐 아니라 배다른 두 동생이 있어 정남은 실망하여 술을 먹고 여자를 불러들이기도 하였다.
김정일은 간혹 큰아들을 만나면 「야! 그러지 말아! 내 말 안 들으면 석정리 농장에 보내겠어.」라는 꾸중을 하였다 한다.
1956년 소련 수상 후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으로 김일성에 불만 불평을 품고 있던 고급 간부들 수십 명이 모스크바에 탈출하고 있었다.
이북에 간 남로당 간부는 1953년 3월에 미국의 스파이라고 전원 구속당하였다.
나도 체포되어 어디인지도 모르는 산중에 감금되었다가 후루시쵸프 소련수상의 스탈린 비판 덕택으로 석방되어
1957년 중국으로 탈출하여 내가 7년간 유학한 일본에 망명할 수 있었다.
<왕산 허위장군 손자 許眞(허진)이가 모스크바에서 성혜림 망명시키자고...>
일본에 망명한 나는 와세다 대학 동창생들의 도움을 받아 소련으로 망명한 북한의 고급 간부들과 연락을 취하였다.
그 가운데 許雄培(허웅배) 일명 許眞(허진)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1905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보호국으로 하여 주권을 박탈하자 의병대장이 되어 일본침략군과 싸워 큰 공로를 세운 의병대장 旺山(왕산) 許偉(허위)장군의 손자다.
해방 후 설립된 우리나라 역사박물관에 허위 장군실이 설치되었으며 박정희대통령이 동대문에서 청량리까지의 도로를 왕산로라 命名(명명)하였다.
1991년 나는 허진을 동경으로 초청하여 평양에서 탈출한 간부들을 집합하여 망명단체를 조직하도록 의논하였다.
소련체제가 완전히 해체된 후 1992년 1월에 나는 처음으로 모스크바로 가서 그들과 만나 망명단체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을 조직한 후 그가 나를 모스크바 시내를 안내할때 「아! 박의장! 이 백화점에서 우연히 성혜림을 만났습니다.」고 하므로
「당신이 성혜림을 어떻게 아오?」하고 물으니 「내가 평양에 있을 때 내무성에 있었습니다.
그때 딴따라패(연예인들)를 지도하고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성혜림이 특별히 유명하고 나와 같은 경상도 출신으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지도하였습니다. 그녀도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하였습니다. 몸이 불편하다는데 어떻소? 하니 저의 병은 낫는 병이 아닙니다.
하므로 그러면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소 하고 물으니 생활은 걱정 없습니다. 평양에 있는 것 보다 마음은 편합니다.
정남이가 자주 문병하러 옵니다. 그때마다 미국돈을 많이 갔다주어 지금은 금고에 꽉 찼습니다.
정남이가 참 효자입니다. 저는 정남이를 보고 죽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라고 합디다.
박의장! 내가 그 돈좀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줄 것입니다. 좀 빌려 쓸까요. 박의장을 허가를 받아야 하겠으니까 요.
김정일 돈으로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까.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도 외국에 망명하였고 조카도 망명하였으니 성혜림도 외국에 망명시킬까요.」하므로
나는 「그런 농담은 하지 마시오. 혜림이가 외국에 망명하면 정남이가 어떻게 되겠소. 정남의 어머니 외조부가 한국 사람이요.
그가 후에 김정일의 후계자가 되면 김일성과 같이 전쟁은 도발하지 않을 것이오. 우리나라 남북 간에는 평화가 절대 필요하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김일성은 나의 처자 여섯 명을 몰살시키고 말았소. 내 마음이 어떻겠소.」
<김일성 후처(김성애) 움직여 김일성 딸과 결혼한 다음 김성애를 배신한 장성택>
허 동지는 이다음에도 성혜림을 만날 수 있을 것이오. 정남이를 잘 교육시키며 정남이를 위하여서라도 오래살고 평양에 돌아가서 충고해주시오」하니 허진은 웃으면서 「저도 농담입니다. 혜림이는 지금 큰 빌딩의 두 개 층을 쓰고 있습니다. 아래층에는 경호원. 경리원, 윗층에는 그녀와 가정부 등 세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고 알려줍디다.
장성택은 함경북도에서 출생하여 평양 김일성대학에 다닐 때 김정일의 누이동생(김경희)과 알게 되었으나 김일성의 딸이며 김정일의 누이동생인 김경희에는 경쟁자가 많이 있었을 뿐 아니라 김일성이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하니 장성택이 그리 훌륭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장성택은 출세를 하자면 김일성의 사위가 되어야겠다고 아는 사람을 통하여 김일성의 둘째부인 김성애에게 줄을 대어 운동을 하였다.
김성애는 김일성의 전처, 즉 김정일. 김경희의 어머니 김정숙과 같이 혁명경력이 없기 때문에 장성택과 김경희의 중매를 해주어 자기편을 만들기 위하여 열심히 김일성을 설득하여 드디어 결혼시켜 주었다. 장성택은 김경희와 결혼하자마자 김성애를 배신하였다.
김일성이 평양시내 여러 곳에 토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 한곳의 모퉁이에 김성애의 어머니(김일성의 장모)집을 김일성에 알리지 않고 집을 지은 것을 알게 된 장성택이 김성애의 어머니 집이 아니라 김성애의 오빠(해군중장)가 집을 지었다고 무고하여 김성애의 오빠를 철직시켰다. 이렇게 하여 김일성에 충성한다는 것을 알렸다는 것이었다.
장성택은 2003년에 한국경제시찰단장으로서 20명의 단원을 인솔하여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장성택은 한국공장을 정력적으로 시찰하여 특히 삼성전자 공장을 시찰하고는 놀라 이런 공장이 남조선에 있다니?
우리나라는 100년 가도 이런 공장은 지을 수 없다고 한탄하더라는 것이었다.
<장성택, 한국에서 돈 모아 갖고 가 김정일에겐 한 푼도 안주어 철직당해>
이러한 정력적인 시찰보고서를 김정일에 제출하였는데도 김정일이 화를 내어 장성택을 철직시켜 버렸다.
내가 한국에 가서 들은 말은 장성택이 김정일의 매부이며 중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었음으로 한국의 정치. 재계 간부들이
다 장성택 옆에 모여 막대한 헌금(뇌물)을 주었는데도 장성택이 평양에 돌아가 김정일에 문서로만 보고하고
한국의 정치. 제계에서 받은 뇌물은 감추고 김정일에게는 돈 한 푼도 주지 않아 김정일이 화를 내어 철직시켰다는 것인것 같다.
이상은 내가 모스크바와 서울에서 들은 말이고 다음은 1997년 한국에 망명한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측근이었던 중앙당 국제비서 황장엽씨의 사돈인 전 중앙당 조직지도부 지방지도과 지도원 박아무개가 1998년에 쓴 “장성택이 선택해야할 길”이란 문서를 간단히 인용하겠다. 이 문서는 우리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 모스크바 사무국에서 입수한 것이다.
김정일정권의 제2인자라 할 수 있는 중앙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장성택은 결코 둔한 인간은 아니다.
그는 국제정세와 김정일의 장래에 대하여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의 마음은 무겁다.
최근 그의 아내인 김경희와 이런 저런 문제로 사이가 틀어지고 질녀의 시아버지인 황장엽(중앙당국제비서)이 김정일을 배신하고 남조선에 망명하였기 때문에 장성택은 고민하고 있다.
원래 장성택과 김정일의 사이는 김정일이 자기 누이동생 김경희의 말만 듣고 장성택이 사업에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강성제강소에 보내 재훈련시킨 일과 1980년 중간 국가보위부장 李珍洙(이진수) 사망 후 그 후임에 장성택을 임명하였다가 장성택이 보위부장이 되면 김정일의 지위가 위태롭게 된다는 부하들의 말을 들은 김정일이 당장 임명을 취소하였었다.
원래 장성택이 출세한 것은 1970년경 김성애(김정일의 계모)의 친정집을 공격한 공로로 평양 시당 지도원에서 일약 중앙당조직부 6과장에 올라갔었다.
이상과 같이 장성택의 심보는 좋지 못하고 김정일 김경희 등 김씨 집안사람들과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
그런 중에도 그의 질녀의 시아버지인 황장엽이 중국의 북경에서 한국으로 망명하고 있다. 이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김일성. 모택동 시대부터 북조선 인민이 남조선으로 망명할 수 없게, 가령 연소한 아이라도 중국 정부가 체포하여 북조선에 돌려보내는 협정이 되어있다. 이러한 일은 장성택에 대단히 불리한 일이었다.」고 전 중앙당 조직지도부 지방지도과 지도원 朴某(박모)가 쓰고 있다.
김일성은 혁명투쟁의 동지였던 전처 김정숙이 낳은 김정일과 후처인 김성애가 낳은 김평일이 있었다.
1994년 6월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 김일성은 김정일을 배석시키지 않고 후처인 김성애를 배석시킴으로써 김정일은 자기를 없애고 배다른 동생 평일을 후계자로 하지 않겠는가? 크게 의심하였다.
그 뿐 아니라 그는 경제건설의 전책임을 지고도 큰 실패를 하여 그의 아버지 김일성의 눈 밖에 났었다.
그래도 그는 김일성의 후계자가 되었다. 장남 상속이 조선의 가족상속제의 전통적 풍습이기 때문이었다.
김정일 자신도 배다른 동생과 누가 상속을 받을까 고생해본 일이었다.
<‘김정남 정권’은 親韓정권 되기 쉬워 중국은 장성택을 후계자로 밀고 있다>
왜냐하면 조선왕조의 역사에 있어서나 일반민가의 역사에 있어서나 혈통주의이며 사위양자제도도 없다.
장성택이 반란을 일으켜 김정일 정권을 탈취하지 않는 한 장성택 정권은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정일이 미치지 않고 자기 아들들을 두고 매부에게 정권을 물려줄 사람은 아니고 정일이 죽고 난 뒤에도 김정일 부하와 정남, 정철, 정운 3형제가 장성택 밑에 들어갈 리가 없다고 본다.
김정남이 정권을 획득할 경우 외가가 있는 한국의 경상남도 창녕군에는 성씨가 많이 살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김정남 정권은 결국 친한 정권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국과 북조선관계는 지금과는 반대가 될 것이다.
김정일 후의 북조선을 지금과 같이 친중 정권으로 유지하자면 어떻게 하든지 장성택 정권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장성택 뒤에는 중국이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김정일은 5년 후 71세 되고 장성택도 68세가 된다.>
김정일은 2003년부터 세계2대 강국의 미국과 중국의 합작으로 시작한 6자회담에 할 수 없이 참가하였으나 도리어 6자회담을 이용하여 핵무기를 가지고 말았다. 외교술을 볼 때에 김정일 밑에 우수한 인재가 있는 것 같다.
김정일은 중국이 왜 장성택을 자기의 후계자로 만들려고 하고 있는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문제로서 중국과 정면충돌 하는 것을 피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아는바에 의하면 (1)국가보위부, (2) 인민보위성, (3) 인민군보위부, (4) 중앙당 연락부, (5) 통일전선부 등 5부로서 국가안전위원회를 조직하고 있다.
김정일은 이 국가안전위원회를 자기의 큰아들 김정남 다음에 차남 김정철, 그 다음에 이때까지의 사이가 좋지 않던 삼촌 김영주까지 넣어 집안을 단결한 후에 중국의 체면을 봐주어 3대 1로 장성택을 참가시켜준 것 같다.
김정일도 5년 후에는 71세가 되고 장성택도 68세가 된다. 정남은 42세가 되고 정철은 31세가 된다.
정남은 이미 국가안전보위부 등의 공직의 경험이 있다.
김영주는 1937년 중국의 산중에서 그의 형 성주(김일성의 본 이름)와 같이 있다가 만주국군의 토벌대에 체포되어
미성년으로서 사형을 면하고 일본사람 상점의 점원으로 있었다.
그후 일본군 지원병으로 출정하여 중국군과 싸우다가 일본이 패전, 소련군이 만주와 북한을 점령하자 친일파였던 그는
평양의 고향에 갈 수 없어 상해에서 미국 배를 타고 부산으로 와서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1년동안 지냈다.
평양에 온 김일성이 자기 형인 줄은 꿈에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평양에 가서 곧 소련유학을 갔었다.
1992년 내가 모스크바에 갔을 때 韓마르크스라는 학자가 자기가 김영주의 모스크바 유학을 봐주었다고 나에게 이야기 하였다
<개념 없는 애국심을 비판한다.>
◆‘사상이 다르다’고 탄압하면 안 된다던 과거의 운동권 (지금의 좌익),
그들은 몇 배 더하지 않은가 ? 이상민 / 서울대 재학생
인터넷상의 게시물을 읽다 보면 개념리스, 개념탑재요망 등의 표현을 담으며 힐난하는 댓글이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도덕성이라는 말이 많이 언급된다는 사실 자체가 도덕성의 부족과 실종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개념 글, 개념 충만 이라는 표현을 쓰며 극찬하는 댓글도 찾아볼 수 있다.
개념이라는 말이 참으로 많이 쓰이는 오늘날이라고 단평을 내릴 만하다.
이렇게 개념 운운이 범람하니 10여 년 전 한 유행어에 얽힌 일화가 다시금 떠오른다.
도덕성이라는 말을 누구나 입에 달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크게는 신문과 방송에서 늘 상 도덕성을 언급하고,
작게는 시중의 오가는 대화나 개인 간의 이야기에서도 도덕성을 주제로 한 담론이 화제가 되기도 하던 그 때,
색다른 발언이 나온 적이 있었다. 도덕성이라는 말이 많이 언급된다는 사실 자체가 도덕성의 부족과 실종을 보여준다는 요지의 발언이 바로 그것으로, 중론의 편향성에 내재된 함정을 뼈아프게 지적한 사례로 지금도 인용되는 예가 없지 않다.
나는 요즘의 상황에 대해 한동안은 아무런 의견표출도 하지 않고 관망을 지속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왜 그랬을까?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합리적 무시라는 것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작은 손해를 입었는데 그 손해를 보상받기 위해서 들이는 비용이 기존의 손해를 크게 상회할 때는 그냥 손해를 감수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은행에서 하루의 업무를 끝내고 나서 일일결산을 하는데 아무리 계산해도 100원, 200원 정도의 소액이 모자라는 경우가 있다면 많은 경우 담당 행원이 자기 돈으로 메 꿔 넣는 식이라든지, 부주의하게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가 물웅덩이를 밟는 바람에 물이 튀어 옷을 버렸을 경우 운전자에게 세탁비용을 청구하는 소송을 내지 않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특히 예견되는 결과가 명백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돈을 걸고 승부를 걸자. 단 너는 무조건 진다”라고 하는 경우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시합을 왜 할까? 그래서 한동안은 관망했으나 지금이 이성적인 논의를 풀어 갈 때라고 판단되기에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한국, 한국인은 외국, 외국인에게 민감하다. 외침이 많았던 역사 그리고 무역에 국민총생산의 2/3 가량을 차지하는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상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고, 따라서 국가차원의 행동이든 개인차원의 행동이든 그것이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한미군의 범죄에 사람들이 아주 민감한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한국. 한국인은 외국. 외국인에게 민감하다>
그런데 과연 그렇기는 한 걸까? 단정하기에는 反例(반례)가 너무도 많은 것을 어떡할까.
미국 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논란과 연일 벌어진 촛불시위 사태를 보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물론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 없이 이명박 대통령이 방미 도중 독단적으로 미국 산 쇠고기의 전면개방을 표명한 것은 비판받아야 할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광우병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가 진행 중이고,
여러 학설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될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怪談(괴담)을 金科玉條(금과옥조)인양 떠받들고 그에 휩쓸리면서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
비판하는 사람들을 역적 삼족 멸하듯이 후려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미 어떤 연예인은 시위에 대해서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가 온갖 여론재판을 당한 후에는 지금도 시선이 전혀 곱지가 않다.
<과거 운동권은 ‘사상이 다르다’고 탄압해선 안 된다더니 지금의 좌익(과거의 운동권)은 몇 배 더하잖은가>
그리고 이른바 조. 중. 동이라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3대 메이저 신문의 보도방식과 논조가 시위대의 생각과는 배치된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비속어를 써가며 비난하고 폐간시켜야 한다는 식의 선동을 늘어놓고, 전화협박 등으로 광고게재를 방해하는 것은, 과거 운동권들(지금의 좌익)이 사상이나 애국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탄압해서는 안 된다고 하더니 지금 그들은 몇 배 더하지 않은가.
게다가 인기영합 차원에서였을까 미국 산 쇠고기를 청산가리 같은 독극물에 비유한 한 연예인이 파격적인 주장으로 환호를 받았지만 말과는 달리 이전에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는 사진이 나오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뿐인가. 이제는 쇠파이프도 모자라 회칼을 들고 시위에 나서는 자도 있고 시위지역인 광화문 상인들을 향한 무차별 사이버테러가 자행되어 애꿎은 피해자만 양산하고 있다. 자신만이 정답이고 나머지는 무조건 오답이라는 식의 논리에 이런 식의 공포분위기로 무슨 이성적인 담론이 오갈 수가 있는가. 더군다나 사람 목숨에 스페어도 없는 이상, 그들의 주장에 異見(이견)이 있으면 침묵 이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시위의 양상을 보니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어떤 주제에 어떤 식으로 반대하고 있는지 판단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독단을 비판하는 것인지, 국민의 건강주권을 지키자는 것인지조차도 분명치 않은데다 정권퇴진 구호에 뒤이어 비정규직 철폐, 주한미군 철수 등등의 난외의 주제가 끼어드는가 하면 결국은 효순. 미선 추모제까지 끌어대고 만다. 원래 시위라는 것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강렬하게 집중적으로 보이는 것인데, 그런 개념도 무시하고 질질 끌어대는 것이 시위의 원래 목적에 부합하기라도 하는가?
색깔 론을 제기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그런 소리가 듣기 싫으면 그런 여지를 만들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 옳은 법이다. 시위 초기에는 그러한 움직임이 많았고 자율적으로 질서도 유지되어서 시위문화가 성숙된 것 같이 보였지만 며칠이 지난 후 그 판단을 철회하기로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시위하는 사람들은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건강주권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6.25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테러를 저지르다 급기야 올해 금강산 관광객을 살해하는 만행까지 저지른 평양정권에 대해서는 언제나 따뜻한 시선으로 무한한 민족화해의 의지를 보이는데, 그 마음이 대한민국을 향해서는 갑자기 꺾여 버리고 탈이라도 났다는 말인가?
미국에 대해서 건강주권을 침해받고 싶지 않겠다는, 그리고 위험 식품을 배격하겠다는 의지는 그 대상이 미국이 아니고 다른 나라, 특히 중국이 되면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다.
유럽의 한 생활용품 제조업체가 “중국제 아님(Not made in China)”이라는 상표를 만들어서 중국 측에서 항의를 했다는 외신보도도 있을 만큼, 중국제 물건의 폐해는 심각하다. 최근 중국 상하이의 영자신문에서도 지하수의 50%가 오염됐다고 개탄하는 기사를 실었다.
<서울 한복판 중국인 테러에 대해 나서는 꼴을 못 보았다>
역사상 특정 국가의 물건이 전 세계 경제의 전 영역, 오지 구석구석에까지 깊은 영향을 준 사례는 未曾有(미증유)의 것으로, 이제는 세계 어디서나 중국제 물건이 팔리는 형국이 되었다. 문제는 이 중국제 물건 중 외자 계 기업들의 외주생산품 이외의 것, 즉 중국기업이 생산한 물건 중 제대로 된 것보다는 쓰지 못할 것은 물론인데다 위험하기 짝이 없기까지 한 물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올해 초 일본에서 문제가 되어 일본과 중국의 정상회담에서까지 논의된 바 있는 제초제 오염 만두사건이라든지, 2005년 국내에서 문제가 된 기생충 알이 든 중국산 김치, 사용자를 죽게 만들기까지 하는 부동액 함유 치약 및 가짜 감기약, 납 성분이 들어 만지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유해한 유아용 완구, 충돌테스트 사상 최초로 0점을 기록한 중국제 자동차 등 언급만도 몇 십 년은 족히 걸릴 만한 위험 유해물 등이 있다.
이것은 실생활에서 늘 일어나는 식중독이나 교통사고만큼이나 빈도가 높고 위험도도 만만치 않다. 물론 외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단번에 죽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그 실체도 명백하다. 길을 걷다가 운석에 머리를 맞을 확률의 광우병에 대해 보인 분노라면 충분히 중국에게 압력을 넣어 불량품을 수출할 거면 아예 그만두라고 당당히 요구할 만한데, 정작 그에 대해 아무런 목소리도 없는 것이 이상할 수밖에 없다. 언제 중국이 한국인의 건강주권을 침해하여 위험한 소비재를 수출할 권리라도 얻었던 적이 있었는가?
게다가 더욱 이상한 것은, 올해 4월 27일 중국 유학생들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한국인, 티베트인, 백인들을 무차별 폭행한 사태에 대해서 과문의 탓인가 이름 있는 단체들이 나서는 꼴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총학생회에 중국인 학생폭거 왜 坐視좌시하나, 항의했더니 ‘그럼 가서 때려요?’ 냉소로 응답 >
북경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 도중, 세계 각국에서 성화가 지나가는 곳마다 중국인들이 티베트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무차별 폭행하거나 현지인들을 위협하는 등의 온갖 추태를 부리고 말았다. 폭력사범에 대해 집중 조준사격으로 대응하는 미국이나 폭도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로의 진압실력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에서는 그나마 덜했으나 한국에서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주한중국대사관 지령 하에 버스로 단체이동 후, 오성홍기는 물론이고 스패너, 망치 등의 공구까지 지참하여 결국은 사람들을 향해서 마구잡이로 집어던지는 등의 폭거를 감행하고 말았다.
그들이 진압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애꿎은 사람들만 몸과 마음을 상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이웃 일본에서는, 중국인들이 난동을 부리자 폭력단원들이 그 중국인들을 추적하여 보복하였다고 하는데, 도대체 한국은 어떻게 된 것인지 그렇게 피 끓는 애국심으로 무장한 청년 대학생 단체들이며 시민단체, 운동권, 가스통까지 들고 나와 시위하기까지 하는 보수단체들을 가리지 않고 침묵할 따름이다.
대체 그 얼마나 대단한 애국심 이길래, 세계 1위의 국력을 자랑하는 초강대국 미국에는 그렇게 잘 맞서면서 고작 세계 4위밖에 안 되는 중국 앞에서는 그렇게 조용해 질 수 있는가? 일본에서는 폭력단원들까지도 자국 내에서의 중국인 만행에는 분노할 줄 아는데,
그럼 한국인의 애국심은 일본 폭력단원들의 것보다 더욱 숭고해서 자국민이 외국인의 부당한 폭거에 맞고 상하고 아무렇게나 취급당해도 침묵하는가?
나는 사건 직후 한 대학 총학생회에 전화를 하여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니냐고 중국인 폭거에 저항하자는 목소리를 전했지만, 전화 너머에서는 “그럼 가서 때려요?” 하는 비웃음 섞인 대답만이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고는 대학 총학생회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고 그들의 주장은 위선 투성이 로 보기로 했다.
독재정권에 항거하고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등 온갖 용감한 척은 다 하고, 비정규직 철폐, 인권옹호, 양성평등 등 세상의 온갖 고민은 다 떠안은듯하면서 정작 현실에서 일어난 사태에는 완전히 눈감아버리는 그들이 무슨 행동하는 지성인이고 젊은 애국자인가. 그게 지성이고 애국이면, 이완용은 전쟁의 참화 속에 민족이 피 흘리고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일합방을 주도한 영웅이라고 하는 편이 옳지 않은가?
<애국 주장하려면 먼저 국민 존중이 요구되는 것. 그런데 국민에 대한 예의도 없이 애국 논하나>
그리고 외국인의 한국 내 범죄에 대해서는 주한미군에 대한 잣대와 불법 체류 자에 대한 잣대가 다른 것 같다. 어쩌면 애국심의 사각지대가 바로 이 불법 체류자들의 세상같이 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경기도 양주에서 한 13세 소녀가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필리핀 출신의 불법 체류 자였는데, 자칫하면 이 사건이 묻혀 버릴뻔 하다가 뜻있는 소수의 사람들의 노력으로 겨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만일 이 범죄가 주한미군 병사가 저지른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리는 사고로 죽게 된 두 소녀의 경우는 참으로 불행한 사고임이 틀림없다. 아무리 주한미군 측에서 위로를 하고 보상을 하더라도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리는 없는 법이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법이다. 그런데 누가 유족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것을 반미 정치투쟁의 도구로 삼으라고 허가했나? 백 번 양보하여 애국이고 뭐고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좋다 치자. 그런데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는 법이다. 그 점은 과거의 운동권들도 동의하는 말이 아닌가? 그러니까 애국을 주장하려면 먼저 국민에 대한 존중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에 대한 예의도 없이 애국을 논하다니, 그것은 단 1kg의 아령조차 들지 못하는 자가 100kg이 넘는 역기는 쉽게 들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日製 불매하면 한국제도 불매해야 하는 것 알고 있는가? 일본군가에 다른 가사 붙여 쓰던 독립군도 매국노란 말인가>
게다가 불법 체류자에 대해서는 그저 피해자인 양, 그리고 법령에 의한 정당한 불법 체류 자 단속을 인권탄압인 것처럼 감싸기만 하는 것이 세계화, 전지구화의 조류에 부응하는 양 착각하는 단체들이 준동하고 있고, 불법 체류자들이 이들의 지원을 받아서 정치운동을 버젓이 하는 등의 비상식적인 행동까지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의 범죄에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면서, 불법체류자의 범죄는 쉬쉬하거나 옹호하는 태도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못 할 말로, 미친 것 아닌가?
또한 한동안 잠잠하다가 요즘 독도관련 문제로 다시 韓日(한일)관계가 시끄럽다.
미국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로 갈리고, 불법체류자에 대해서는 사각지대를 만드는 애국심이라지만 일본에 대해서만은 어떻게도 그렇게 잘 결집하는지 대단할 따름이다. 한 가수의 표현대로, 한국을 단결하게 만든 일본이 고맙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일본계 업체들이 요즘 전전긍긍한다고 한다. 불매운동 때문에 매출이 떨어지는 사태가 속출할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단체 사람들은 렉서스, 혼다, 인피니티 같은 일본 자동차회사의 전시장에서 일본제 자동차를 사지 말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자동차 동호회 게시판에서도 그런 주제의 글이 올라와서 많은 댓글을 불러오는 사례가 적지 않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자동차 동호회에서도 역시 일본차 불매 등의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관망하기만 했다. 그 대신 “네타가 썩었다? 라는 말만 입 안에서 맴돌 뿐이었다
(네타 란 화제, 단서, 초밥에 얹는 생선살 등의 의미. 원래 다네~種씨~를 거꾸로 부른 것).
일본제 불매운동이라는 말이 필요할 만큼, 말로만 일본 배격을 주장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정반대로 일본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이 널려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앞서 첫머리에서 말한 대로 개념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사회가 실제로는 무 개념의 극치를 달리고 있고, 과거 도덕성을 그리도 중요시하던 때에 도덕성이 가장 결핍되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을 상기해 보라.
<일본 도발에 대해북한, 러시아, 중국과 손잡고 격퇴해야 한다는 말은 제발 좀 그만했으면 한다>
그리고 일본제 불매를 하면 한국기업 제품도 같이 불매해야 하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알다시피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완제품 부품이나 원료, 생산설비 등을 상당부분 일본제에 의존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제 소비재는 한국에서는 고가의 제품이 많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본제를 사지 않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한 경우가 여전히 있다. 기업이 자기혁신을 통하여 일본 의존도를 줄이도록 노력하지 않는 이상 의미도 없고 도리어 역풍을 불러일으킬 법한 감정적 대응을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일본제품을 쓰면 매국노라는 사고방식으로 구일본군 99식 소총을 쓰고 일본군가에 다른 가사를 붙여 군가로 쓰던 독립군도 매국노라는 말인가.
그리고 일본제 불매운동 운운하기 전에 화투짝 만지는 버릇같이 못된 것부터 받아들이는 습관을 근절하는 것이 어떤가? 아무리 일본을 성토하고 천하의 추한 민족이라고 욕해도 독도논란 이후 국내 온라인 게임 사이트에서 화투게임 서비스를 중단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으며, 지금 이 시각에도 모여서 고스톱, 섰다, 월남 뽕, 나일롱 뽕, 도리짓고땡을 재미있게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은 분명하다. 다가올 추석연휴에 일가친척 다 모여서 화투짝을 만질 사람들이 어디 한둘일까. 관찰해 보면 일본의 좋은 것은 죽어라고 안 받아들이면서 화투라든지 원조교제, 섹스비디오, 풍속영업, 집단 괴롭힘 등은 참 잘도 받아들이고 그러면서 “변태 쪽 바리”라고 욕하거나 일본의 자연재해에 대해 저주하는 못된 버릇이 만연한 것 같다. 이런 民度(민도)로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일본의 도발에 대해서 북한, 러시아, 중국과 손잡아서 격퇴해야 한다는 말은 제발좀 그만했으면 한다.
<미국에는 히스테리, 중국에는 침묵, 일본에는 겉으로 욕하며 못된 짓은 따라하는 식의 한국인의 무 개념 ‘애국심’>
敵(적)의 적이 친구라고 생각하는 소박한 사고방식 그 자체도 문제이긴 하지만, 북한은 대한민국을 절멸대상으로 규정하면서 대한민국 영토 북부를 불법 점거하는 반국가단체이고, 러시아는 구소련 때 고려인 박해와 김일성의 6.25 전쟁도발 지원의 죄과가 있으며 중국은 특유의 중화주의로 한국을 멸시하는데다 동북공정을 통해 고대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는데 대체 누구와 손을 잡겠다는 말인가? 작은 惡(악)을 토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큰 악을 끌어들이는 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안일한 사고방식의 결과를 보라. 신라의 영토 북한계가 대동강-원산만으로 한정되고, 고려는 원에, 조선은 명과 청에 사대하지 않았는가. 명성황후의 참혹한 죽음으로 끝난 을미사변도 그리고 아관파천도 제정 러시아를 통해 일본을 견제하려 했던 전술의 결과가 아닌가? 이미 참담한 실패로 끝난, 이른바 썩은 네타를 재활용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애국심도 다 같은 애국심이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양심에 부합하는 애국심이 참된 애국심이다.
과거의 독립운동가 등 순국선열들이 지향한 주권국가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되새겨 보고, 참된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정립하자. 지금과 같이 미국에는 히스테리, 중국에는 침묵, 불법체류 자에는 예외, 일본에는 겉으로 욕하면서 속으로는 나쁜 것만 따라하는 식으로 주장하는 애국심은 무 개념 애국심이며, 순국선열들의 뜻을 더럽히는 나쁜 애국심이다. 이미 우리는 근대에 제국주의 시대 일본의 나쁜 애국심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쁜 애국심이 지속될 때, 국제사회에 아무리 우리의 입장을 호소하더라도 그 대답이 합리적 무시, 즉 한국의 입장을 들어주기보다는 그냥 못 들은 것으로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되어 행동하는 식으로 나타날 개연성은 보다 커지고, 그 때는 누구를 탓해도 후회막급일 것이다.
<개념 없는 애국심은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어리석은 행동>
그래서 한국인에게는 과제가 주어져 있는 셈이다. 대내적으로는 개인, 지역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뜨겁게 토의와 토론을 해야 할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제대로 된 주권국가이면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에 부합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일관성 있게 행동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참다운 애국이다. 개념 없는 애국으로 결과적 이적행위를 하여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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