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평양 명기 계월향의 꿈과 김응서

醉月 2008. 9. 11. 09:04

… 역사는 자고로 민간문학을 쫓으며
… 선도는 자고로 민간습속을 쫓는다

한양에서 평양까지 500리의 멀고 먼 쏭바강 같은 길을 군관 김응서는 불철주야 쉬지 않고 달려서

드디어 닷새째 되던 날 저녁 평양 초입에 들어서는데 성공하였다.
평양이란 곳이 도대체 어떤 곳이더냐?
남북조 시절 한대국의 수도가 한양임에 비하여 화공국의 수도가 평양이었으며

그전에 역사적으로 고구려의 후기 수도로 또 남진의 전초기지로 명성이 뜨르르 하였고,

그후 고려조에 와서는 고구려의 옛 영광을 재현하려고 꿈꾸던 묘청 대선사에 의하여 개경에서 서경으로의 천도가 추진되던 곳.

고도로서의 영화와 애환이 서린 곳이 평양 아니던가. 

 
그러기에 갖가지 물산이 풍부하고 인물이 많이 나며 교통의 요지가 되는 곳. 인물이 많이나매 미색 또한 빼어나서 강계 강릉 개성과 더불
어 한대국의 4대 색향(色鄕)으로 손꼽히는 곳.  여자는 서울 말씨에 평양 인물에 강원도 살결이라야 한다  라 하여

미녀의 삼대 조건 중 하나인 곳 아닌가. 그래서 관리들이 외직으로 나갈 때면 가장 원하는 근무 지역이 평양이었고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 이라 하여 팔도감사 중에 평양감사를 으뜸으로 친 것은 그만큼 색향인고로 먹음직스럽고 박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런 조개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백리 가까운 길을 말을 타고 달려 온 김응서는 그 자신도 그의 애마 천총마(千聰馬)도 지칠대로 지쳤다.

몸에 비오듯 땀이 흘렀고, 목이 무척이나 말랐다. 어디 샘물이 없나 목이라도 축여야겠다 하고 두리번두리번거리는데 저쪽 건너편에

앵도나무가 심기워진 아래로 샘이 보이고 한 처녀가 물동이를 내려놓고 물을 긷고 있는 것이었다.
   옳다구나 됐다구나 땡이로구나 저 처녀에게 가서 물도 얻어먹고 평양지리도 좀 물어보자. 
  샘가로 다가간 김응서는 점잖게 물긷는 처녀에게 말을 건넸다.
   거기 앵도나무 우물가에 바람머리의 물긷는 동네 처녀, 나는 지나가는 과객인데 목이 몹시 마르니 물 한 바가지만 주시겠소?
  처녀가 쳐다보니 송충이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이며 이목구비가 쫘악 빠진 게 속으로도 감탄할 정도로 장부의 기상이 늠름하였다.
   우아! 세숫대야 하나 완죤히 끝내 주는구나! 그뿐인가 옷걸이도 저 정도면 어디 갔다 걸어놓아도 손색이 없겠어…
 
  처녀는 수줍은 듯 온갖 내숭을 다 떨며 표주박에다 샘물을 담아 가지고 샘가에 핀 앵도나무 잎사귀 하나를 따더니 살짝 물에 띄워서

김응서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고개를 살포시 돌린 채. 그때 보았다 김응서는. 아롱질듯 두 뺨에 물들은 복사꽃 고운 빛깔을.

이를 홍조라 하던가 수줍음이라 하던가. 둥둥 떠다니는 앵도나무 잎사귀를 훌훌 불어대며 물을 마시느라

김응서는 물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목은 마르고 물은 먹은 것 같잖고 은근히 짜증이 났다. 목마른 놈이 샘 파랬지만
이놈의 처녀가 남의 화급한 사정도 모르고 심통을 이렇게 부리다니. 그래서 응서는,    여보! 처자, 이 표주박의 물 좀 자셔 보시오.

이상하잖소?   하고 바가지를 건네주었다.

처녀는 깜짝 놀라며 바가지를 받아가지고는 앵도나무 잎사귀를 건져 내 버리곤 물맛을 보는 것이다.
 
   선비님!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이 샘물은 약수라고 해서 전국에 소문이 자자하옵고,

특히 일곱 구멍에서 쿨렁쿨렁 분출하는 샘물이옵기에 여늬 사람들은 칠공샘(七孔井)이라 하옵는데 혼자 마시다

둘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물맛이 기똥찹니다. 전설에 의할 것 같으면 사랑하는 남녀가 같이 마시면 부부지연을 맺는다는 샘물이라 하옵니다.
   낭자! 나는 물맛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방금 아가씨가 걷어낸 나뭇잎을 말하는 겁니다.

내가 먹을 땐 집어넣고 아가씨가 먹을 땐 걷어 내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선비님! 그건 다름이 아니옵고 옛말에 이르기를 접시 물에도 코박고 죽는 수가 있다 하오며, 엄벙덤벙하다가 물에 빠지는 수 있으며,

천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여자의 마음 속은 알 수 없다고 하였으며, 급히 먹는 물에 체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듭시라고 나뭇잎을 띄운 것이오니 언짢게 생각 마옵소서.
  김응서는 처녀의 슬기에 감탄을 하며 다시 한번 처녀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정신없이 물을 마시느라 인물에 신경 쓸 짬이 없었는
데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뜯어보던 응서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미인이 많이 나기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평양이라지만 이런 미인이 다시 없을 듯 싶었다.
 
  요요정정(妖妖貞靜)하여 월태화용이 세상에 무쌍하고 얼굴이 조촐하니 청강에 노는 학이 설월에 비친 것 같고

붉은 입술과 흰 이가 반쯤 열리니 별 같기도 하고 구슬 같기도 하였다.

연지를 품은 듯 아래 위로 고운 맵시 어린 안개 석양에 비치는 듯하고, 푸른 치마 아롱지니 무늬는 은하수의 물결과 같았다.

특히 시원스럽고 아담한 이마 아래로 그어진 검은 눈썹은 바로 언덕을 넘어가는 초생달의 형국인 월릉미가 아니던가.
 
  김응서는 갑자기 심장이 뛰고 뒷목이 뻣뻣해오며 혀가 알알이 굳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맘에 드는 여인을 만났을 때 항시 느끼는 고질적인 증세였다. 그러나 이 여인의 정체나 신분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는 지금 중대한 임무를 띠고 평양에 왔다. 언감생심 딴 생각을 품을 여유가 없다.

바삐 평양 빈민촌을 뒤져서 이대감이 말한 아기를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헤롯왕이 야소를 찾듯 바로왕이 모세(毛世)를 찾듯 찾아내어 가차없이 죽여야 하는 것이다.
   낭자! 물은 고맙게 잘 먹었소이다.
  그럼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기로 하고…
 
  김응서가 마악 말에 올라타고 떠나려 할 때였다. 여덟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샘가로 다가서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징그런 웃음을 흘리며 김응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처녀를 향아여 수작을 건네는 것이었다.
   으헤헤! 이거 노류장화가 여기까지 출장을 나왔구만…
   요즈음 티켓 영업하는 모양이지?
   아이고! 평양 화류방의 콧대 높기로 소문난 계월향이 아닌가?
   잘 만났다. 얘들아! 나 오늘 여기서 구멍장가 좀 들 터이니 너희들 들러리 좀 서라. 하하하하하…
   너희들 기생을 왜 화류계(花柳界)라 하는 줄 알어?
   꼿꼿한 걸 버들버들하게 해주기 때문이여.
   얘들아 수수께끼다. 들어갈 땐 꼿꼿하다가 나올 땐 버들버들한 게 뭔지 알기나 알어?
   으하하하하하, 난 대가리가 안 돌아서 모르겠는데…
   두 자리가 어떻게 알겠냐? 그게 다 밤에 해봐야 아는 거다…
   아니 밤에 어떻게 해를 보냐?
   아이구! 저 골통은 못 말린다니까…
  그려그려 딱지도 안 떨어진 놈이야,
  밤엔 해 볼일 없고 낮엔 별 볼 일이 없겠지.
  자지(自知)면 만지(晩知)고 보지(補知)면 조지(早知)라 했으니
  혼자 골통으로 알아내긴 심들거다. 히히히…
   우헤헤헤… 저눔의 이빨은 드라큐라도 울고 간다니까…
   말은 인품이랍는데 농담이 지나치시옵니다.
  듣기 심히 민망하옵니다. 길이나 비켜 주시옵소서.
   우헤헤헤 웃기는구나. 서 있는 사람이 비키냐?
  지나가는 사람이 비켜서 가야지. 어디 밀고 가 보더라고…
  난 접촉사고만 나면 좋더라. 히히!
   남녀가 유별하옵는데 점잖으신 분들이 왜 이러십니까?
   아이고, 야 봐라 문자 쓴다. 문자 하면 용팔아 네가 대답해라.
  그래도 우리덜 중에서 니가 가방끈이 가장 긴 놈 아니냐.
  허지만 용팔이 니는 암만 용써봐야 그게 8cm 라면서? 하하하…
   저런 빌어묵을 자슥! 임마 니는 땡칠이 아니냐.
  암만 땡겨봐야 7cm 밖에 안되는 자슥이…
  1cm 차이면 계집이 극락과 지옥을 왕복하는 거여 자슥아.
   이런 놈들 보게 영구썽님 앞에서 못하는 소리들이 없구만…
   아이고 죄송혀라. 영원한 9cm 앞에서 저그들이 주둥이질을 했지 않기요? 에…또… 흥삼아! 그렇다고 너무 기죽지 말그라.

하기사 암만 흥분해도 3cm라면 살고 싶은 맘도 안날끼지비. 나가 흥을 돋군다는 의미에서 문자를 써서 시 한 수를 짓기요.

자알 들어보시기요.
 
     월향이 얼굴은 복실복실
     월향이 젖통은 타실타실
     월향이 볼기는 몽실몽실
     월향이 조개는 맵실맵실
 
실타령이지비. 이만하면 어때? 과연 명시 아니겠숨? 하하하…    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우 하하하하하하하하.
  그놈 정말 실없는 놈일쎄. 하하하하…
 
  계월향은 울상이 되어 어쩔 줄을 모르고 여덟 명의 사내들은 통쾌한 듯 폭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김응서는 터지는 울화통을 달래며 점잖게 말하였다.
   거 형씨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이 아이는 내 동생이니까 더 이상 시비하지 말고 다른 데로 가 보시지요.
   어쭈구! 이거 어디서 굴러 온 말뼈다귀야! 
  쨔샤, 기생의 오래비면 기둥서방 아니야?
  헛소리하는 걸 보니 맛 좀 보여 줘야겠군.
 
  한놈이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이런 악소패 불한당들이 나면서부터 용력을 타고 나고 더군다나 병조의 정식 무술교관인

김응서에게 적수가 될 수는 없었다. 가볍게 몸을 반원으로 돌리면서 내뻗은 주먹을 감싸안으며 뒤로꺾기의 술기를 넣은 다음

손칼을 넣어 내리치니 손목이 부러졌다고 오두방정이다.
   얘들아! 이놈은 보통놈이 아니다.
  한놈씩 덤비지 말고 여럿이서 동시에 공격해라.
 
  김응서는 놈들의 발놀림을 주시했다. 일대일의 상전에서는 상대의 눈을 일대이의 상전에서는 상대의 허리를

일대삼 이상의 상전에서는 상대의 발을 보라는 것이 무술의 기본이다.

그리고 상대가 아무리 많아도 십방향 이상의 공격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10인 격파술만 터득하면 집단 공격은 얼마든지

 방어해 낼 수가 있으나 다만 체력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평소에 체력을 강인하게 연마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계미년 무과에 올라 북쪽 변방에 가서 성을 쌓으며 철저히 몸단련을 한 응서에게는 체력에 관한 한 염려할 것이 없었다. 축성의 공로로 그
는 이미 절충장군(折衝將軍)의 품계를 받은 것이다. 정면에서 달려드는 놈을 반달차기의 술기로서 뒤꿈치로 회백혈 급소를 내리찍고 그 여
세를 몰아 왼쪽에서 들어오는 놈의 경동맥을 옆차기로 질렀다. 그런 다음 뒤에서 오는 놈의 명치에 팔꿈치 가격을 주고 오른쪽에서 공격하
는 놈을 이지관수로 눈을 후비고 일회전하면서 돌려차기로 두놈의 턱주가리를 돌려놓았다.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번개같은
공격이었다. 여섯놈이 나뒹굴며 아우성이었다. 멀찍이 있던 두놈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쫄아 있었다.


   다섯 셀 동안 내 눈 앞에서 모두 사라져. 하나 둘 셋… 
    후다닥 여덟 놈들은 쌍방울 소리도 요란하게 도망을 갔다.
   낭자!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고맙습니다. 선비님이 아니었으면 큰 봉변을 당할 뻔 했습니다.
   참, 이래서 하루속히 성폭력 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니까요. 지금 형조에서 기본안 10개항을 완성했다 하더이다.
   오! 그래요? 어떤 내용이라고 하옵니까? 


   첫째, 외모에 대해 말하는 것.   야하게 생겼니 색시(sexy)같이 생겼니 하는 등등이죠.
  둘째, 여자를 보고 징그럽게 웃는 것.   마치 제 마누라하고 한탕 뛰고 난 것처럼 야릇하게 웃어 보이는 것이죠.
  셋째, 얼굴 이외에 시선을 주는 것.   예컨대 엉덩이를 본다든가 허벅지를 들여다 본다든가 하복부를 뚫어져라 응시한다든가 하는 것이죠.
  넷째, 여자 옆에 근접하는 것.   옆에 와서 살을 댄다던가 만진다던가 하는 거죠.   특히 떡판을 들어준다고 뒤에서 접근하면 이건 즉발이죠. 

  다섯째, 음담패설을 하는 것.   여자에게 ≪신선의 아들≫에 나오는 배놀이 말타기 양물 음물의 종류같은 이야길 들려주면 여지없이 걸리죠.
  여섯째, 함부로 대이투(對而偸)를 신청하는 것.   특히 야간에 신청하면 납치 감금 강간음모죄까지 옴팍 뒤집어쓰는거죠.
  일곱째, 사적인 관심을 표시하는 것. 속곳의 빛깔이나 젖싸개의 크기를 묻는 것이죠. 사생활 보호법까지 위반한 걸로 병합처벌을 받게 되죠.
  여덟째, 여자와 단둘이 있는 것.   감금 및 추행의 혐의를 받게 되죠.
  아홉째, 함부로 선물을 하는 것.   여자에게 함부로 젖싸개 다리속곳 등을 선물하는 건데, 머리 속으로 맘대로 나체를 만든 죄가 적용되죠.
  열번째, 여자에게 술을 권하는 것.   여자를 방심하게 만들어서 사고칠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 정도면 여성들이 맘 놓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호호호! 차라리 여자들보고 생과부로 살라는 게 낫겠습니다.

겉으론 그래도 남정네들이 찝쩍거릴 때 사는 보람을 느꼈는데 이젠 무슨 재미로 살며 화장이야 의상이야 무슨 소용이 있다지요?

이젠 몽당치마에 망사속곳 입는 재미도 없어졌네요.
  저놈들 때문에 공연히 괜찮은 남정네들까지 두리뭉수리로 당하는 군요. 저놈들이 바로 평양에서 그 유명한 팔공자랍니다.

부모 잘 만나서 하는 일없이 백수로 놀면서 매일 여자들만 귀찮게 한답니다.
   오렌지족 야타족 난데족보다 더 나쁜 녀석들이로군요!
   기실 직장에서도 성희롱이 자심하답니다.
   오호! 그렇습니까? 어떤 식으로 성희롱을 하는지 궁금하군요.
 
   첫째, 괴롭힘형이 있죠.
  남정네들이 능청스럽고 야한 농담을 걸거나 야릇한 표정으로 뚫어지게 바라보기를 즐기는 거죠.

심지어는 거시기까지 다 드러난 여성의 나체그림을 태연하게 보여주기도 해요. 얼굴을 붉힐라치면 뭐가 좋은지 호탕하게 껄껄거린답니다.
  둘째, 유혹형이 있죠.
  자기 부인하고는 속궁합이 안 맞는 것 같다는 둥 암만해도 재미를 못 느껴서 불행하다는 둥 별별 고백을 해오며 당신같은 여자와

하룻밤만 자도 행복할 거라는 둥 하면서 치근대는 거죠.
  셋째, 뇌물형이 있죠.
  밥 사준다 술 사준다 연극 영화 같은 거 같이 보러 가자 심지어는 옷 사준다 화장품 사준다 하면서 물량공세로 나오는 거죠.
  넷째, 협박형이 있죠.
  무작정 대이투(對而偸)를 신청하는 거죠. 안 만나주면 재미없을 거라고 겁을 주며 남의 사생활을 마구 침해하는 거죠.
  다섯째, 성행위 요구형이 있죠.
  몸에다 손을 대거나 애무를 시도하는 형이죠. 어느 틈엔가 곁에 와서 어깨를 짚는다거나 팔뚝을 잡거나 심지어는 엉덩이를 더듬기까지
하고 치맛속으로 손이…    그런 일을 당할 때의 심정은 어떻습니까?
   당혹감을 느낀 적이 36分, 분노심을 느낀 적이 28分, 우울감을 느낀 적이 26分, 모독감을 느낀 적이 24分, 굴욕감을 느낀 적이 18分,
  그리고…
   그리고 뭡니까?
   그리고 짜릿한 적이 64分이었습니다.
   하하하 기분 좋은 적이 더 많았군요?
   호호호 그런 재미에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직업이 워낙 그렇다보니까요
   직업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그건 나중에 찬찬히 말씀드리기로 하지요.
  그런데, 선비님은 어디 먼길을 가시는 중이옵니까?
   아, 아닙니다. 평양에서 누굴 좀 찾아야 합니다.
   그럼 날도 저물고 했으니 저의 집에 가서 하루 묵으시지요.
  소녀가 뫼시겠습니다. 오늘 너무도 고마워서요.
   이거 초면에 폐가 되지 않을런지요?
   그런 말씀하지 마셔요. 저를 따라 오셔요.
  이리하여 김응서는 예기찮게 계월향이라는 기생을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 역사는 무릇 모든 학문의 제왕이며
  … 선도는 무릇 모든 종교의 조종이다
   
  계월향(桂月香)이 앞장을 서서 인도하여 대문 중문 다 지나고 후원을 돌아가니 해묵은 별초당(別草堂)에 등촉을 밝혔는데,

버들가지 휘휘 늘어져 불빛을 가린 모양이 구슬 발이 갈고랑이에 걸린 듯하고,

왼편의 벽오동은 맑은 이슬이 뚝뚝 떨어져 학의 꿈을 놀래주는 듯하고,
오른편에 섰는 선인장(仙人掌)은 청풍이 건듯 불면 노룡이 꿈틀거리는 듯하더라.
 
  또 창 앞에 심은 파초 일란초 봉미장(鳳尾長)은 속잎이 빼어나고 수심여주(水心如珠) 어린 연꽃은 물밖에 갸우 떠서 옥로는 비껴 있고,

한무 같은 금붕어는 눈깔을 꿈뻑꿈뻑 하면서 때때로 물결을 쳐서 출렁출렁 굼실굼실 놀고 있더라.
 
  새로 피는 연잎은 처녀 속가랭이처럼 오봇하게 벌어지고 급연상봉 석가산(石假山)은 층층이 쌓였는데,

계하의 학두루미는 사람을 보고 놀래어 두 쭉지를 떡 벌리고 긴 다리로 징검징검 낄룩 뚜루룩 소리하며,

계화(桂花) 밑에 풍산개는 멍멍 짖는구나.
이 풍산개가 어떤 개인고?  남에는 진돗개 북에는 풍산개라 하여 한대국의 2대 명견 아니더냐.

이놈 둘이면 호랑이도 잡는다는 무시무시한 개가 바로 네로구나.
 
  그 중에 반가운 것은 못 가운데 쌍오리는 손님 오시노라 두둥실 떠서 기다리는 모양이요,

처마에 다다르니 그제야 월향이 돌아온 줄 알고 몸종이 사창(絲窓)을 반쯤 열고 나오더라.
   아기씨! 이제 돌아오시니까.
   그래 오월이냐? 오늘은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으니 대문간에 절패(絶牌-손님 마감)를 내걸고 문을 걸어라.
  그리고 목욕물 다 데워 놓았으면 어서 저녁 진짓상 차리거라.
 
  오월이를 따라 뒤안으로 돌아드니 어느 새인가 목욕물이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모든 준비가 너무나도 완벽하여 김응서는 더럭 두려운 맘과 함께 의심이 버쩍 들었다.
   여보시게 오월 낭자!
  도대체 그대는 내가 올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듯 하구려…
  도대체 이 집이 뉘집인가?
  마치 대감댁처럼 화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구나.
   호호호! 손님은 여우에게 홀리신 겁니다.
  이제 백년 묵은 여우가 손님의 간을 빼먹을 것이옵니다. 호호호…
   음! 사내 대장부가 여우쯤을 두려워 하겠는가마는 죽을 때 죽더라도 연유나 알고 죽어야지 원통하지나 않을 것 아니겠느냐?
  얘야, 네 이름이 오월이라 했지?
  이 집이 뉘집이며 너희 아기씨는 어떤 분이냐?
   호호호! 말씀 드릴 수 없사와요.
  아기씨로부터 함구령이 내렸걸랑요.
  어서 옷이나 벗으시고 목욕이나 하셔요.
  등을 밀어 드리라는 아기씨의 명이니 어서 등이나 돌리셔요.
   아니, 오월아! 여기가 무슨 터키탕이냐? 아니면 사우나(思友裸)냐? 
  왠 부르지도 않은 때밀이 아가씨냐?
  아서라! 때는 내 혼자 얼마든지 씻을 수 있으니 넌 나가거라.
   아니됩니다. 아기씨의 명을 어겼다가는 저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어서 옷 벗으시고요 등을 돌려 대십시오.
  등만 씻어 드리고 그 이상의 수패살(手佩煞) 서비수(瑞備手)는 안할께요.
   나도 짱배다. 너희 아기씨가 어떤 분인지 이 집이 무엇하는 집인지 갈쳐주지 않는다면 나도 목욕을 거부하겠다.
   좋아요. 그럼 약속을 꼭 지키셔야 해요.
   아따! 넌 속아만 살아봤느냐? 남아일언중천금이라 하였느니라.
   요즈음은 남아일언풍선껌이라 하더이다.
  저희 아기씨는 기명(妓名)이 계월향이라고 하는 평양 제일의 일패 기생이옵고요, 이 집은 바로 아기씨의 집이랍니다.
  우리 아기씨가 남정네를 야밤에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이건 완죤히  선대이 한양(先代夷漢陽) 이나  수타 채날(囚墮彩捺) 에  나올 기사감이지요.

수많은 선비들이야 권문세가의 자제들이 천만금   을 싸 갖고 와서 아기씨와 하룻밤 연분을 맺으려 하였지만 아기씨는 
 왠일인지 모주리 예주리 딱지를 놓았답니다.
  그래서 약이 오른 그들은 악소문을 퍼뜨렸답니다.
   악소문이라니…? 어떤 악소문을…?
   호호호. 계월향이는 고녀래요... 9멍없는 고녀래요....
   우하하하! 네 말이 우습구나. 정말 너희 아기씨는 고녀라더냐?
   원 손님도 오늘 밤 손님이 확인해 보시면 될 거 아녜요?
  가죽침은 뭐 심심해서 달고 다니나요?
   으 심하다. 오월아! 너 이렇게 야하게 말할 수 있냐?
  그러다 윤리위원회에 걸리면 책임질 거여? 책임질 거냐고?
  넌 마치 내가 아기씨하고 오늘 밤 뭐 썸씽이라도 있을 걸로 아주 단정지어 말하고 있구나?
   야하면 짜르라지요 뭘. 짜르면 뭐 나 손해인가요.
  선도나 역사가 안 전해진다면 이건 백성적 손해죠. 그리고 난 다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어떤 일이 생길지…

당구 삼년이면 오백점, 아니 폐풍월이라 했어요. 제가 이 집에서 시중든지 삼년이란 말이예요. 눈치 코치에 구치까지 다 터졌단 말이예요...
  오늘 아침부터 아기씨는 안절부절 못했어요. 간밤의 꿈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면서요. 그리고 한나절이 지나도록 화장만 하고 있었어요.
  오늘은 화류방(花柳房)에도 나가잖고요. 마치 오랜 서방(書房)님을 기다리는 각시(覺是)처럼요.

전 아기씨가 그렇게 정성들여 화장하는 걸 처음 봤어요.
  분꽃가루내어 분 바르고, 잇꽃[紅花] 꽃잎으로 연지 바르고, 보리 깜부기 털어 눈썹 그리고 봉선화로 손톱 물 들이고…
  그런데 손님이 오신 거예요. 아기씨는 샘에 가면서 목욕물 데우고 저녁상 준비하라고 이르고 가셨어요.

마치 그 누군가가 꼭 오는 것처럼… 그러니까 오늘 밤 분명히 썸씽하고도 수패살한 일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손님은 너무너무 잘 생겼다!!!
  장우성 감찬우 김병훈 이동건을 한꺼번에 비벼놓은 것 같아요.
  자, 어서 옷을 홀라당 벗고 등을 돌려대세요.
   난 섬신 수패살보다 십하소(十霞沼) 리갈(梨葛)이 더 좋은데…
   어머! 십…하…소…리…갈… 어감이 너무 야해요.
  첫음절에 악센트를 주면 안 되겠지요?
  최음 효과까지 지닌 무척 독한 술이라죠?
  높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술이라죠? 적어도 대왕마마 어영대장 도승지 내금위장 이런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그때 그 사람하고 함께 먹다가 서로 한잔 더 먹으려고 쌈박질하는 술이라 하데요…
   오월아! 그런 정치색 짙은 말은 삼가거라.
  정치라는 게 치정처럼 지저분하기가 미친년 석달된 속곳 같니라.
  그건 그렇고 너희 아씨가 어젯밤 꾸었다는 꿈이야기나 좀 해보려무나.
   호호호 꿈이요? 호호호, 아유 우스워라.
  꿈이야기를 해 달라니까 아기씨가 얼굴이 빨개져갖고는 꿈이야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하며 안 해주는 거예요.
  그렇지만 난 다 알아내는 수가 있지요
   어떻게 알아냈는데?
   아기씨가 꿈이 너무 이상하고 요상하니까 좀이 쑤셔서 못 견디신 거죠. 그래서 건넌마을 강판수를 불러다 해몽을 했지요.

강판수라고 하면 홍계관의 재생이라 할 정도로 점복에는 귀신 아닙니까?
  강판수에게 해몽 풀이하는 걸 방문 옆에서 모두 엿들었지요.   호호호…
 
  홍계관(洪繼官).
  이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선대왕이신 명종 때에 천하 제일이라 명성이 자자했던 점쟁이가 아니던가? 무당이니 점쟁이니 중이니 신선이니 하는 등의 소리를
소위 개소리 미신이라고 지극히 싫어하신 명종 임금은 이를 타파할 명분으로 홍계관을 대궐에 직접 부르시어 그를 시험하였다.

홍계관은 얼마나 신통하게 점을 잘 쳤는지 그에게 점복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예약된 손님이 일평균 300명이었는데 하루 100여명 밖에는 볼 수가 없었던 고로 밀린 손님이 평균 3개월치만 잡는다손쳐도 계산하면

200명 3월 30일=18000명. 한양의 유명 종합병원 학박사 의원보다 더 심하였더라.
  이 소식을 전해 들으신 명종 임금은 어리석은 중생들이로다 탄식하시고 내 반드시 이런 폐단을 일소하리라 

작심하시고선 홍계관을 불렀다. 그러고선 궤짝 하나를 내놓고,   이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맞추어 보라  고 명하였다.
 
  장님 봉사 맹인 시각장애자인 홍계관이었지만 산통을 한번 가볍게 흔들더니만, 쥐새끼가 들었다고 정확히 맞추었다.
  명종은 내심 놀랐다.
   아 이건 미신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그 무엇이 있구나 
  그러나 앞 못보는 병신에게 일국의 대왕이 꿇릴 순 없다는 오기가 강하게 발동하여 다시 한번 시험을 하였다.
   우연 홍수 후록구일지도 모르지 
 
   좋다. 쥐새끼는 쥐새낀데 몇 마리가 들었느냐? 
  홍계관은 다시 산통을 흔들었다. 이번엔 아까처럼 가볍지가 못하였다. 그리고 어떤 혼란이 왔다.
   두 마리… 아니 세 마리이옵니다. 
  궤짝을 여니 거기엔 암쥐 숫쥐 단 두 마리만 있었다.
   여봐라! 혹세무민하는 저 고약한 놈을 당장 끌어내다 사형에 처하렸다. 
  그리하여 홍계관은 광나루 웅화대 밑 참수장으로 끌려갔다. 참수대 밑에서 너무나도 억울했던 홍계관은 다시 한번 점괘를 뽑아 보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점괘, 죽어도 다시 한번이라는 점괘였다. 아아 그런데 한식경만 버티면 산다는 점괘가 나온 것이다.

홍계관은 우선 품 속에 있던 돈을 탈탈 다 털어서 망나니를 주고 사정을 하였다. 쪼깨만 기다려 달라고.
 
  망나니는 흐뭇해서 말했다.
 아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 소원을 못들어.
  그럼 딱 한식경이야…
 
  홍계관을 형장으로 보내고 명종은 찝찝했다.
   단판 승부로 했으면 내가 진거야.
  서로 한판씩 이겼으니까 비긴 건데 죽이라고 한 건 심했구나. 
 
  그리고서 다시 쥐를 담은 궤짝을 우연히 들여다보니 아니 이게 웬일. 암쥐가 어느 틈에 새낄 한 마리 쳤구나.
   그럼 아까 이 쥐는 포태 중이었고 홍계관은 그 사실까지 알아 맞춘 거구나!
   어이 거기 선전관은 들라. 당장 형장으로 달려가서 홍계관의 사형을 중지시켜라. 
  선전관은 조지 빠지게 달려가고... 한식경이 다 되어갈 무렵 망나니는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인마를 보았다.
  선전관은 숨이 턱에 닿아 외쳤다.
  집행중지라고.
  그러나 숨이 너무 가빠서 중지는 목에 걸려 나오지 않고 집행만 망나니의 귀에 들렸다. 망나니는 번쩍 칼을 들어 그대로 홍계관의 목을
내리쳤다. 떨어져 피를 콸콸 쏟으면서도 홍계관의 모가지는 행복스런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훗날 홍계관의 억울한 죽음을 두고 세간에서는 다음과 같은 속언이 생겼다고 한다.
   쥐졸 같은 게 생사람 죽이고 있어.

  
  계월향이는 혼자 모란봉엘 올라갔다. 거기서 평양 저자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소변이 몹시도 마려웠다.

그래서 산꼭대기에서 엉덩일 훌러덩 까고 산밑을 향하여 오줌을 갈기는데 얼마나 시원한지 온 몸이 짜릿짜릿할 정도로 오르가즘을 느꼈다. 엉덩이를 보름달처럼 홀딱 까고 소변을 보는데도 이상하게도 부끄러운 마음이 당최 나지를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시원하고 통쾌한지라 더욱 아랫배에 힘을 주고 오줌을 누는데 이놈의 소변이 끊이질 않고 계속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불나써국의 여광대 소피 마렵소가 어릴 때 그렇게 오줌발이 셌다는소문이 자자하지만,

그래서 불여우 오줌발에 맞은 남정네는  홀려 죽게 된다는 속신(俗信)도 있다지만,

그래서 불여우(佛女優) 오줌발을 견딜수 있는 것은 소나무(蘇男優)밖에 없다지만,

처녀의 오줌발이라서 그런지 오줌줄기가 떨어지는 곳마다 무려 한자씩 흙이 푹푹 패이는 것이었다.

모란봉 꼭대기에서 흘러내린 소변은 어느덧 일곱 줄기의 물줄기가 되어 평양 저자로 요란한 소릴 내고 흘러가더니 단번에 저자를 홍수에
잠기게 하는 것이었다. 어느 틈엔가 저자를 다 잠군 홍수는 이젠 모란봉까지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때서야 계월향이는 더럭 겁이 나서 속곳이 벗어지는 것도 잊고 어쩔 줄 몰라 갈팡질팡하는데

갑자기 누런 물 가운데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백룡 한마리가 치솟아 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굼실굼실 거리면서 날아오더니 계월향이 벌거벗은 가랑이 밑에 와서 콧김을 내뿜으며 타라는 시늉으로 널부죽히 엎드리는 것이
다. 그런데 엎드린 백룡의 등판을 보니 거기엔 일곱별이 박혀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계월향은 어쩐지 황홀한 마음이 들어
덥석 백룡을 올라탔는데, 올라타자마자 하늘 높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느 덧 그녀는 하의를 걸치는 둥 마는 둥, 단속곳 고쟁이 다리속곳 속치마 겉치마 등을 몽땅 벗어버린 채 아랫도리는 완전히 알몸이 되었
다. 그러나 부끄러운 마음은커녕 그렇게 시원하고 황홀할 수가 없어서 이번에는 저고리에다 속적삼 젖싸개까지 마구 벗어 젖혔으니 이것이
문헌에 기록된 울나라 최초의 스트리킹이 아닌 최초의 누드플라잉인 것이다.
  백룡이 높이 날아오를수록 쾌감은 더욱 강하게 온몸으로 파고들어 백룡의 몸뚱아리에 걸친 다리에 으썅 힘을 주었다. 갑갑하여선 지 백
룡이 몸을 뒤채기 시작하였다. 그럴수록 아랫도리로 파고드는 쾌감에 겨워 계월향은 감창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견딜 수 없는 엑스타시에 다리가 비비꼬이기에 용을 쓰는 순간 용이 전신을 크게 흔들며 몸을 뒤채었다. 그 순간 백룡의 몸에서 떨어져 나
간 계월향은 수천 길 아래로 아스라이 떨어지면서, 으아악… 비명을 지르다 잠을 깼다. 온몸이 식은땀 투성이였고 이부자리엔 허연 애액
(愛液)에 소변까지 질펀하게 한무데기로 싸놓은 채였다.
 
  꿈이야기를 방 밖에서 엿듣던 오월이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아기씨가 방에도 못 들어오게 하고 소제야 빨래야 혼자 법석을 떠신 거구나.

호호호… 아기씨가 시집도 가기 전에 노망이 나셨나? 오줌을 다 싸시게… 그런데 얼마나 좋았으면 오줌을 다 쌌을까?

그런데 강판수란 작자는 뭐라고 해몽을 할까? 그게 더욱 궁금하구나! 귀를 방문 가까이 갖다 대고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 보아야겠네.
 
   대단한 길몽이여, 시집 갈 꿈이로군.

백룡을 만났으니 귀인(貴人)을 만나게 될 게야! 더군다나 백룡을 올라탔다니 그 사내와 정분을 맺게 되겠구만.

평양 저자가 모두 자기가 싼 오줌으로 홍수에 잠기게 하였다니 훗날 평양을 위해 큰일을 하겠구만, 물이란 게 생명의 근원이니까!
  그래서 강물을 소중히 생각하고 오염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이야.

그런데 오줌을 싼 거마다 일곱 줄기 강물이 됐다 했으니 칠공정(七孔井) 샘물에서 좋은 연분이 있겠구만…
  오늘부터 그리로 나가서 보초를 서. 그런디 마지막에 백룡의 등에서 떨어진 게 좀… 
 
  강판수는 거기까지 풀이하고는 더 이상 입을 다물었다. 계월향이 아무리 사정하고 복채를 얹고 꼬셔도 묵묵부답이었다.

불길한 내용이어도 좋다고 하여도 강판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월향, 그 이상은 천기요. 그 이상 누설하면 내 명이 온전하지를 못해!

굳이 더 알고 싶다면 난 말할 수 없으니 안중선 선생이나 윤태현 선생에게 가서 물어보도록 하게나.
   안중선 선생이 누굽니까?    아, 천기누설의 저자도 몰라?
   그럼 윤태현 선생은 누굽니까?    그 양반이 바로 토정가장결의 저자라네.
  여타의 토정관련 서적들은 부실하기 짝이 없고 그것만이 진본일세!
  참, 잊을 뻔했는데… 그 인물은 칠성의 정기를 타고 난 사내일거야.
칠성의 정기를 타고나면 나라의 큰 인물이 되지! 등에 일곱 별이 빛났다고 했으니 칠성점이 몸뚱아리 어디에 있을 거야 찾아보라구. 
   
   그래서 오월이 너, 내 등의 때를 밀어주겠다고 한사코 떼를 썼구나?
   호호호! 예 그렇사옵니다. 때 밀고 싶어 떼를 썼지요…
  그런데 지금 등을 밀면서 보니 정말로 등에 칠성점이 박혔군요.
  손님은 아기씨가 꿈에 본 백룡이 틀림없사옵니다.
   오월아! 확인이 되었으면 이만 목간을 끝내자. 이거 남녀가 유별한데 남정네만 벗고. 이런거 성폭행까진 안간다 해도 성희롱이 아닌가?
   나리는 신체 다지기(Body Building)를 하셨나 보죠?
  왜 이리 몸이 좋아요. 마치 목멱산의 소나무처럼 철갑을 두른 듯 기상과 기백이 뚜렷하네요.
  옴마! 난 나리 몸에 손만 대도 짜릿짜릿한 게 오줌이…
   오월아! 이 집엔 오줌싸개들만 사느냐? 본편 시작부터 상당히 야하게 시작되었는데 너까지 이렇게 진하게 나오면 정말 짤리고 만다.

중간에 짤리면 독자들이 얼마나 안타깝겠느냐? 적당히 하자.
   나리! 그런 말씀 아예 마세요.
  애독자들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보세요 누가 작품추천서 하나 써 주나요?
  혹시 자기에게 무슨 누가 미칠까 명예나 훼손되지 않을까 요런 눈치나 살살 보면서 감언이설로 점잖은 사양만을 하고 있지요.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느니라. 항상 말없는 다수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느니라.

이 세상의 역사란 묵묵하지만 그러나 깨어있는 다수의 힘으로 밀어 올려진 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단다. 

지금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이 다소 판매부수를 올린다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오뉴월의 똥파리요 칠팔월의 메뚜기와 같으니라.

그래도 독자들의 기억 속에는 노력하는 작품, 진실을 밝히려는 작품이 영구히 남는 거란다.
  ≪신선의 아들≫은 우리에게 포기할 수 없는 꿈, 마지막 큰 꿈을 일깨워 주는 작품이란다… 반드시 그 진가가 밝혀지는 날이 올 것이고
국민 필독서가 될 것이다. 
 
   나리! 나리는 세숫대야랑 옷걸이뿐만 아니라 속내까지 꽉 찬 분이시네요. 아씨는 정말 좋겠다…

오늘 밤 야식 드시고 찌끄래기라도 좀 남겨 주지…
   우하하하! 오월아 겨우 찌끄래기냐? 남정네든 계집이든 목욕 한번 하면 항상 신품 아니겠느냐?  하하하…
  오월아! 그런데 너희 아기씨는 어찌하여 그렇게 인기가 높다더냐?
   참! 나리는 그믐밤이라도 동짓달 그믐밤이네요…
  평양일대에 소문이 자자한 계월향이란 이름도 모르는 남정네가 다 있네요. 잘 들으셔요.

우리 아기씨는요 기생 중에서도 일패(一牌)기생이어요.
   일패기생이라는 게 뭐냐?
   하이고 들어는 봤나? 일패기생! 놀아는 봤나? 일패기생!
   허허 고얀년 같으니라구. 네가 양반을 능멸하려고 하느냐?
   호호호! 역정을 내시긴요. 기생에 삼등급이 있사온데…
 
  삼패기생은 일명 구멍기생이라 하옵지요.
  주로 몸으로 손님을 맞는 창기와 다름이 없어 천기라 하죠. 이런 기생은 단가도 싸고 품격도 낮죠.  손님이 와서 술을 마시다가 생각이 나
면 언제고 골방으로 데려 가죠. 골방으로 가서는 업음질 말타기 소타기 맷돌질 등치기 벽치기 배놀이 등을 하는데… 어떤 수포추(狩捕醜)
를 했느냐에 따라 견적이 다르답니다.
 
  이패기생은 일명 주물럭 기생이라 하옵지요.
  가촉(可觸)기생이죠. 손님이 주무르는 대로 몸을 허락하죠. 그런데 어딜 주물렀느냐에 따라서 계산이 다르게 나온답니다. 가슴은 100냥
엉덩인 200냥이고요....
 
  일패기생은 일명 예기(藝妓)라고 하옵지요.
  주로 가무와 서화를 하지요. 손님들과 풍류를 짓고 사군자를 치고…
그래서 손님들도 학문이 높은 선비들만 찾아오고 단가도 엄청나답니다. 하룻밤에 최저 500냥이온데도 줄을 선답니다. 술버릇이 고약하다
거나 무식하다고 소문난 선비는 차례도 안 온답니다. 항상 예약된 손님만 받는답니다.
   그렇다면, 평양에서 너희 아기씨만이 일패기생이라더냐?
  그렇진 않을 것 아니냐?
   우리 아기씨는요, 일패기생일 뿐만이 아니오라 거기다가...
  장강(莊姜)의 색과
  임사의 덕행과
  이두(李杜)의 문필하며
  태사의 화순하는 심덕과
  이비(二妃)의 정절을 품었으니…
 
  금천하의 보배요 만고여중의 군자로 소문이 자자하와 숱한 방첨사(方僉使) 병부사(兵府使) 군수 현감 관장님네들이…
 
  중족(中足)이 발기하고
  양물(陽物)이 흥분하고
  신물(神物)이 토설하고
  옥경(玉莖)이 신장하고
  신경(腎莖)이 확장되고
  남경(男莖)이 좌불안석
  양경(陽莖)이 좌충우돌
  양도(陽道)가 술렁술렁
  좌장지(坐藏之)가 울끈불끈하여…
 
  천만금을 싸 갖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하룻밤 인연을 맺으려 하였으나 독도도 임자가 있고 짚신도 짝이 있는 법이라며 모조리 툇자
를 놓았답니다.
 
   대단한 여자로구만!
  하기사 여자란 대가리만 단단해서는 안되고 마음이 단단해야 하는 것이니라.  그리고 무슨 꼴리단 표현을 저렇게 많이 주절댄단 말이냐.
도대체 몇 가지냐?
   호호호호호…
   예끼! 고얀년 같으니라고.
  아하하하하 으하하하하…
   그런데, 선비님은 화류계에 대해 너무 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선비님! 기방에서 기생들이 반기는 인기 손님의 순서를 아시어요?
   아니, 기방 손님에도 가요 톱텐처럼 등위가 있더란 말인가?
   아이고, 선비님도… 조선국이 전통적인 서열사회인 바 기방에도 철저한 서열이 있답니다.
  제일 반기는 손님은 염서방이라 해서 소금장수입죠. 소금이 워낙 귀해서 곡식이나 돈보다 얻기 어려워서죠. 

그러길래 오죽하면  평양감사보다 소금장수 라고 하오며  소금장수 사위본다  라는 속담이 다 있을려고요? 그 다음은요 공서방인데요…
   아니 오월아. 왜 말을 더듬고 못하냐? 공서방인데, 공서방이란 어떤 사내를 말함이냐?
   호호호 공서방이란 수태미나(首泰味邏) 서방이라 하는데요…
   어허 답답하구나 냉큼 말하지 못하구! 수태미나 서방이란 게 뭐냐?
   호호호 양물의 대가리(首)가 커서(泰) 한번 맛보면(味) 돌게(邏) 하는 서방이란 뜻입죠.

그런데 소녀가 지금 보오니 서방님이 바로 공서방님이 아닌가 하옵니다.
   우하하 정말 고얀년일쎄! 등만 밀어 주겠다고 하더니…
  어느 새 남의 보물을 다 훔쳐보았더란 말인가? 그 다음은 어찌되는가?
   그 다음은 돈을 화채(花債)로 가져오는 은서방, 곡식을 화채로 가져오는 복서방입지요.
   그런데 오월아! 네가 약조를 어기고 내 것을 다 훔쳐보고 말았으니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양물에는 음물이라고 나도 너의 것을 보아야겠다.
   호호호 선비님도… 시시하게 제 것을 볼 게 무에 있습니까?  더 기가 막힌 아기씨 것을 보면 될 터이온데요.
   무어라고? 아하하하 고년 이바구하고… 요리조리 빠져나가기는 미꾸라지 논구멍 나듯 하고 풀방구리 집구멍 들듯 하는구나   
 
  호탕하게 목욕을 마친 응서가 욕조에서 나오니 어느 틈에 장만하였는지 새옷을 싹 준비하였는데…
  성천(成川) 수주(水紬) 접동배 세백저(細白苧) 상침바지 극상세목(極上細木) 겹버선에 남갑사 대님 육사단(六紗緞) 겹배자 밀화단추 통
행전(筒行纏) 영초단(影梢緞) 허리띠 모초단(毛梢緞) 도리낭 당팔사 매듭고 쌍문초(雙紋梢) 긴 동정 중추막에 도포 흑사 띠 육분당혜(肉粉唐
鞋)… 완비하였다가 갈아 입히더라.
 
  오월의 안내를 받아 안방으로 드니 기다리고 있던 계월향이 다소곳이 맞이한다. 방 가운데를 둘러보며 벽 위를 살펴보니…
  
  …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뿌리없는 나무요
  … 선도를 모르는 인종은 샘이없는 물이다
   
  상당한 기물들이 놓여 있다. 용장 봉장 가께수리 여기저기 벌려 있고 그림을 그려 붙여 있으되 각종 춘화(春畵)가 어지러이 걸려 있어 흑
심을 돋우기도 하고 색시럽게 하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도 아무러케국 마동나(馬童裸)의 똥고빌라도가 죽여 주고 게다국 미야자와 리애(李
愛)의 산타패(傘打貝)와 연실 실연만 당한다는 한대국 유씨녀의 이부(二婦)의 초상은 그것도 누도화라고 하는 건지. 장난같더라.
 
  조선의 내노라하는 4대 명필, 김구(金球) 한호(韓護) 양사언(楊士彦) 안평대군(安平大君)의 글씨가 붙어 있고 그 사이에 걸린 명화 다 후리
쳐 던져두고 월선도(月仙圖)라 이름한 신비한 그림들이 걸렸는데 그 화제(畵題)는,
 
  임금이 높이 앉아 군신의 조회를 받는 그림 상제고강항조절도(上帝高絳降朝節圖),
  보칠산 김신선 황학전(黃鶴殿)에 꿇어앉아 황정경(黃庭經) 읽는 그림,
  백옥루 상량문 짓는 그림,
  칠월 칠석 오작교에서 견우직녀 상봉하는 그림,
  광한전(廣寒殿) 달밝은 밤에 약을 찧던 항아(姮娥) 그림,
  층층이 붙였으니 광채가 찬란하여 정신이 산만하였다.
 
  또 한 곳을 바라보니 월향이 일부종사하려고 시 한 수를 지어 궤안 위에 붙여 놓았으되…
 
       풍상이 섟거친 날에 갓피운 황국화를
       금분에 가득 담아 옥당에 보내오니
       도리야 꽃인 줄 마라 님의 뜻을 알괘라
 
   기특하고나 월향아. 이 글의 뜻은 낙목한천(落木寒天)의 오상고절(傲霜高節)이라 하여 국화의 절개를 노래한 자상특사황국옥당가(自上
特賜黃菊玉堂歌) 라는  면앙정 대감의 시절가조(時節歌調)로구나…
  그런데 그대는 이 작품이 지어진 유래를 아는고?
 
   예, 선대왕이신 명종대왕께서 어느 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아 궐내를 산책하시던 중 옥당에 이르렀을 때 야심한대도 자잖고 책을 읽는 낭랑
한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기특하여 그 선비와 대화방에 가셔서 공개방을 만드신 후 대화를 하셨는데 아주 박학다식하고 경륜이 높은 걸 알게 됐지요.

 돌아오신 후 다음 날 옥당에 황국 일분(一盆)을 하사하시고 즉시 시절가조를 지어 올리라 명하셨죠.
  그때 옥당에는 쟁쟁한 교리(校理)들과 한림(翰林)들이 많았죠.

이를테면 최승국, 유영무, 장영석, 이상열, 박진배, 장세연, 차양현, 조기연 등은 한대국  8가 문장(八家文章)이라 하여 문장에 아주 뛰어나고 선도에도 조예가 깊어 앞으로 국가를 짊어질 동량지재(棟梁之材)라고 촉망을 받았지요.
 
  주상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여 모두들 갈피를 잡지 못해 허둥지둥하며 붓방아를 찧을 때 면양정 송순 교리가 가비얍게 지어 올린 시절
가조인 줄 아옵니다. 그 후 면양정님은 명종대왕의 총애를 입어 대감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되었죠.
   그러면 이 작품 속에 담긴 상징 의미도 다 알더란 말이냐?
   예 도리(桃李)란 소인배 간신배를 뜻함이옵고…
  황국(黃菊)은 지조 있는 신하를 뜻한다고 생각하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이 시절가조를 지어 붙인 이유는 절개를 지키는 기녀가 되겠다는 뜻이구나! 매우 기특한 아이로구나 하하하.
이렇듯 칭찬하니 월향이 대답하되,
   부끄럽사옵니다. 소녀 비록 기적에 몸담고 있는 해어화(解語花)라곤 하지만 어찌 함부로 정을 주겠사옵니까.

문무에 겸전하신 선비님을 오늘 이렇게 맞이하고 보니 정말 기쁘기 그지없사옵니다.

그러나 소녀 아직도 선비님의 함자조차도 모르오니 그 점이 서운하옵니다.
   월향아! 여자란 게 규수도 믿기 어렵거늘 항차 기생의 정절을 어찌 믿겠느냐?

그건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함이요, 돼지우리에서 진주를 구함과 같다고 할 수 있잖겠느냐?
 
   으윽! 이렇게 심한 목간적인 언사를…
  선비님 들어보소서. 어찌 충효 열녀에 상하가 있으리오? 기생으로 말하오리다. 충효열녀 낱낱이 아뢰올 터이니 자상히 들으시고 옳으면
소녀의 머리를 올려 주시고 그르다면 머리를 뽑아 주시옵소서…
 
   해서(海西) 기생 농선(弄仙)이는 동선령(洞仙嶺)에 죽어 있고
   선천(宣川) 기생 일타홍(日陀紅)은 칠거(七去) 학문 들어 있고
   진주(晋州) 기생 논개(論介)는 충렬로서 촉석루에 모셔 있고
   청주(淸州) 기생 화월(花月)이는 삼층각(三層閣)에 올라 있고
   송도(松都) 기생 명월(明月)이는 송도삼절로 시서화 능해 있고
   강릉(江陵) 기생 홍장(紅粧)이는 홍장고사 관동별곡 올라 있고
   남원(南原) 기생 춘향(春香)이는 절개로서 정렬부인 되어 있고
   안동(安東) 기생 일지홍(一枝紅)은 생열녀문(生烈女門) 지은 후에
   정경가자(貞敬加資) 있사오니 기생을 너무 흑싸리 껍데기 보듯 하지 마옵소서.
 
   월향아! 그러나 말이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합천 기생을 물리쳤으며,
  정암 조광조 선생이 종룡 선생의 기생 유람을 꾸짖으셨으며,
  하서 김인후 선생이 기생을 보고도 요동치 않았으며,
  간재 박응남 선생이 관서 기생의 추파에 불변하였으며,
  우계 성혼 선생이 송강 정철 선생의 관기 사랑함을 나무랐으며,
  화담 서경덕 선생이 송도 명기 황진이의 유혹에 초연했으며,
  토정 이지함 선생이 제주 기생을 멀리했으며,
  한강 정구 선생이 영천 미기(美妓)를 외면했으며,
  동주소선 성제원 선생이 보은 기생을 불범하였으며,
  호서감사 한지는 청주 기생과 무관하였나니....
  내 어찌 이런 성현들의 모범을 본받지 아니하리요?
 
   선비님, 그러하오나...
  회재 이언적 선생도 경주 기생에게서 얻은 아들이 있사오며,
  율곡 이이 선생도 황주 기생 유지(柳枝)에게 시를 써서 주었으며,
  동악 이안눌 선생도 기생에게 시를 써서 주었으며,
  백호 임제 선생도 부채에 시를 써서 기생에게 주었으며,
  전라관찰사 송인수 영감이 부안 기생을 항상 곁에 수행케 했으며,
  농암 김창협 선생이 관서 기생 계향이가 손잡는 것을 허락했으며,
  하담 김시양 선생이 종성 기생을 얻어 생남하였으며,
  고산 윤선도 선생이 예순 승례 두 기생에게 감탄하였으며,
  경원부원군 김명원이 기생을 사랑하여 월장하였으며,
  찬성 박충좌가 승평고을 기생의 애도시를 썼으며,
  평사 백광홍은 기생을 지극히 사랑하여 득병까지 하였으며,
  모재 김안국은 성산 기생 심향지에게 시를 써서 주었으며,
  경림부원군 김명원은 기생을 사랑하여 월장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숱한 군왕과 종친들이 기생을 사랑하였사오니  성종대왕은 형인 월산대군과 더불어 기생을 불러 곡연을 즐겄사옵고,
  연산군은 상산 기생을 사랑하여 궁중으로 아주 불러들였사오며,
  양녕대군은 동궁시절부터 기생을 좋아하여 밀행을 하였으며,
  수양대군은 이미 14세부터 기방 출입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안평대군은 소릿기생을 좋아하여 담담정에 불러 소릴 들었으며,
  효녕대군의 아들 영천군은 평생을 두고 주색에 탐닉했으며,
  종실 파성령은 남원 기생이 비암이 되도록 연모함을 허락했으니
 
  이처럼 명문거유들이 사랑하고 군왕 종친들이 총애한 기생들을 일개 군관이 천대함은 어인 일이옵니까?

심히 서럽고 원통하와 눈물이 콧물이 되고 콧물이 눈물이 되어 쌍루가 종횡하옵니다.
 
   음!… 월향이 곶깝게 생각말게. 내 그대의 굳은 마음을 시험해 보느라 한번 떠본 걸세.

그대의 굳은 마음을 알았으니 고마우이! 그대의 마음이 정히 그러하다면 우리 오늘 서로의 맘을 터놓고 연분을 맺어가며 밤새도록 마셔보세.
  인생이란 게 무엇이겠는가?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게 인생 아니냐?
마시고 또 마시고 취하고 또 취해서 이 밤이 다가도록 춤을 추며 즐겨 보자꾸나…
   좋사옵니다, 서방님!!!
  까짓거 기타부기로 마셔봅시다.
  얘, 오월아! 주안상 준비되었으면 들여라…
 
  계월향의 분부가 떨어지자마자 상다리가 휘도록 차린 주안상이 들어오는데 우선 안주 등물 살펴보면…
  대양판 가리찜 소양판 제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두동 나는 매초리탕 동래 울산 대전복   대모장도(玳瑁粧刀) 잘 드는 칼로 어슥비슥 오려놓은 염통 산적 양볶음 춘치자명(春雉自鳴) 생치다리 고박사집 냉면 춘천 닭 갈비 전주 비빔밥에 생밤 찐밤 잣송이며…
  천안 호도과자 대추 석류 유자 준시 앵두 탕기같은 청슬이(靑實梨)   술병 치레 볼짝시면 티끌없는 백옥병 푸르른 산호병 엽락금정(葉落
金井) 오동병 목이 긴 황새병 자라병 당화병 쇄금병 소상동정 죽절병  주전자로는 상품질 은으로 만든 은전자 적동자 쇄금자 등이 놓였고
 
  또한 각종 술이 고루고루 갖추어졌으니.....
  이적선(李謫仙) 포도주 안기생(安期生) 자하주(紫霞酒) 산림처사 송엽주(松葉酒)와 과하주(過夏酒) 방문주(方文酒) 천일주 백일주 금로주
(金露酒) 팔팔 뛰는 화주(火酒) 약주 향기로운 연엽주(蓮葉酒) 문배주 세곡주 보칠산의 진달래주 외에 특별히 보약주 25방이 마련되어 있었
으니,
 
  이에는…
  행인주(살구술) 상심주(오디술) 석류주 귤주 인동주 오가피주 매실주 구기주 치자주 목련주 산초주 영실주(찔레꽃술) 갈근주(칡술) 홍화
주(잇꽃술) 위유주(둥글레술) 삼구주 회향주 황련주(깽깽이술) 길경주(도라지술) 용아주(짚신나무술) 포송영주(민들레술) 개초주(쑥술) 당귀
주(승검초술) 용담주 박하주 등이 있는데, 이 중 삼구주 즉 삼지구엽주가 바로 석잔이면 고자라도 빳빳하게 해주고 고녀라도 뻥뻥하게 해준
다는 음양주가 아니더냐. 그러하니 암만 바빠도 어찌 지나칠 수 있겠는가?
 
  삼지구엽초는 매자나무과에 속하는 다년초로서 높이 한 자 가량이고 작은 잎은 난원형(卵圓形)에 가는 톱니가 있고 끝이 뾰족하게 생겼
다. 오월에 줄기의 끝에 홍자색 또는 흰색의 꽃이 닻을 드리운 모양으로 아련하게 핀다. 여름과 가을에 뿌리 줄기 잎 등의 전초를 채취하여
그늘에 말려 생약을 만드는데… 이렇게 만든 약재를 음양곽이라 한다.
  이 음양곽은 최음제(催淫劑)나 미약(媚藥)으로 쓰여왔는데 이를 술에 타서 한잔 마시면 남녀를 불문하고 흥분하기 시작하고 두 잔이면
발정하기 시작하며 석잔이면 마구 엉켜서…
 
   소녀 첫째 잔 인사주로 올리옵니다.
   오냐! 고맙다. 나는 병조에 정5품 과의교위(果毅校尉)로 있고 또 절충장군의 품계를 받은 바 있는 김응서라 한다. 병판대감의 특별 분부
를 받고 평양에 왔는데 이렇게 오동동술타령이나 하게 되어 걱정이 태산이구나…
   내일 일은 내일 근심하고 오늘을 즐기라고 성현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평양 일은 제가 처결해 드릴 터이오니 모두 잊으시고,

제게도 한잔 주옵소서… 오고가는 술잔 속에 싹트는 사랑이라 하였습니다.
   월향아! 두번째 잔은…
  합환주(合歡酒)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렷다?
   그럼… 소녀와의 연분주이옵니까?
   월향아! 우리가 서방(書房)과 각시(覺是)로 맺어진다는 말인가?
   하하하, 내 칠공정(七孔井) 샘가에서 이리될 줄 알았다니까
   아니, 어찌 이리될 줄 아셨단 말입니까?
 
   그것은 말이다 어찌 알 수 있었는가 하면은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하는 <샘물론>이라는 것을 잘 들어보면 학실이 알 수 있단다.
  더러는 상없는 자들이 방대한 이야기를 종횡무진 펼치니까 통일성이 없다느니 주제가 무엇인지 헷갈린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는데, 그것
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란다.
 
  소설이라고 다 똑같은 소설이라더냐?
  소설에도 단순이 킬링 타임용이 있고 스토리 텔링이 있고 씽크 모아가 있는 것이니라. 진정한 소설은 씽크 모아에서 나오는 것이니라. 그
대 무엇인가 생각하고 감동을 얻기 싫다면 당장 이 책을 덮으라.
  ≪신선의 아들≫이야말로 김용옥의 박학다식함, 김동길의 청산유수, 마광수의 야시러움, 이외수의 기발함!

이 모든 것의 시구마(是究磨) 혹은 인태구랄(引泰究剌) 아니겠느냐?
   오오, 그러하군요! 학문은 청나라의 육롱기(陸朧基)를 능가하고 문장은 왕사징(王士徵)을 방불하오며 박식은 고염무(顧炎武)를 추월하고
지절은 굴원(屈原)에 버금한다고 하겠습니다.
   깨달았으면 지금부터 펼쳐지는 샘물론을 자알 듣거라.
  나의 샘물론은...
  첫번째 왕건과 오다련이 만난 완사천(浣紗泉),
  두번째 이장곤과 버들녀가 만난 양류천(楊柳泉)이 될 것이니라.
  생면부지의 두 남녀가 샘물이라는 장소에서 만나 백년의 가약을 맺는 이야기를 통하여

샘물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라.

  이렇게 계월향과 김응서가 농탕하게 웃고 즐기는 가운데 평양의 밤은 조용하면서도 감미롭게 깊어만 가고 있었다.

 

다음 날 홍립과 월향의 전송을 받으며 응서는 평양을 떠났다.

나루터에서 대동강을 건널 때 작별을 아쉬워 하며 홍립은 시 한 수를 읊었다.
 
        우헐장제초색다 雨歇長堤草色多       비갠 언덕 위에 풀빛은 푸른데
        송군남포동비가 送君南浦動非歌       그대를 남포로 보내는 슬픈 노래여
        대동강수하시진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이야 어느 때나 마를꼬
        별루연연첨록파 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것을
 
  월향은 눈물지으며 아예 돌아 서 있다. 응서의 마음도 애틋하였다. 이러한 심정을 알았는지 홍립이 말한다.
   응서. 내년에 나는 내직으로 들어 가려하네. 자네가 이곳 평양의 외직을 지원하여 내려오게. 어차피 내년에 승진도 하게 되면 외직
으로 나와야 할 터, 이곳 조방장을 지원하면 되잖는가.
 
  응서는 월향의 손을 꼭 쥐었다.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월향이. 내가 떠나가도 몸만 가는 것이지 마음은 당신에게 있는 것이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요.
   서방님! 가는 곳마다 노류장화이옵고, 머무는 곳마다 청산이옵니다. 어찌 소녀와 같은 하찮은 것을 잊지 않으시겠습니까? 흑흑.
   월향아! 사랑은 믿음이니라. 나 또한 너를 두고 간다만 네가 나만을 사랑하여 주리라고 믿는다.

나는 너를 결코 의심하지 아니하니라. 나의 심정을 한번 들어 보겠느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투기하지 않으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이익을 쫓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흑흑 서방님! 소녀는 종신토록 서방님의 샘물이 되겠사옵니다.
 
    소녀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나미브 사막의 뜨거운 지표속을 흐르는 물이 된다든지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소녀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개씩 씻어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소녀가 서방님을 부르겠습니다
 
    서방님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소녀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서방님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서방님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 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까
    부디 서방님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서방님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셔지겠지요
    그러면 소녀는 서방님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소녀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연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응서는 도저히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으로 나룻배에 올랐다. 무심한 사공은 삿대를 지르고 노를 젓기 시작하였다. 선착장에서 배가
떠나는 순간 북받치는 감정을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한 계월향이 소리를 뽑기 시작하였다.
 
    위 두어령셩 다링디리
    닦은 데 아즐가 닦은 데 작은 서울을 사랑하지마는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여의기보다는 아즐가 여의기보다는 길쌈베 버리고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사랑하신다면 아즐가 사랑하신다면 울면서 쫓겠나이다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구슬이 아즐가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끈이야 아즐가 끈이야 끊어지리이까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천년을 아즐가 천년을 외홀로 가신들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믿음이야 아즐가 믿음이야 끊어지리이까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대동강 아즐가 대동강 넓은지 몰라서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배내어 아즐가 배내어 놓았느냐 사공아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네가 아즐가 네가 시름난지 몰라서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갈 배에 아즐가 갈 배어 얹었느냐 사공아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대동강 아즐가 대동강 건넌편 꽃을여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배타들면 아즐가 배타들면 꺾으리이다
    위 두어령셩 두어령성 다링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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