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흘러 간 물줄기요
… 선도는 흘러 올 물줄기다
자, 그럼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시작하옵니다. 이번에는 순서를 바꾸어서 선소리를 하야 주옵소서. 대사님!
오냐, 알겠도다. 그러면 첫소리 들어간다…
정월은 맹춘(孟春)이라 입춘 우수 절기로다…
산중간학에 빙설이 남았으나 평교광야에 운물이 변하도다
어와! 우리 성상 애민중농 하오시니 간측하신 권농윤음 방곡에 반포하니
슬프다! 농부들아 아무리 무지한들 네 몸이 이해 고사하고 성의를 어길소냐
산전수답 상반하여 힘대로 하오리라 일년 풍흉은 측량하지 못하여도
인력이 극진하면 천재를 면하나니 제 각각 근면하여 게을리 굴지 마라
일년지계 재춘하니 범사를 미리하라 봄에 만일 실시(失時)하면 종년(終年)일이 낭패되네
농기를 다스리고 농우를 살펴 먹여 재 거름 재워 놓고 일변으로 실어내어
맥전에 오줌치기 세전보다 힘써하라 늙은이 근력없어 힘든 일은 못하여도
낮이면 이엉 엮고 밤이면 새끼 꼬아 때 미쳐 집 이으면 큰 근심 덜리로다
실과나무 버곳 깎고 가지 사이 돌 끼우기 정조날 미명시에 시험조로 하여 보라
며느리 잊지 말고 소곡주 밑하여라 삼춘백화시에 화전일취하여 보자
상원날 달을 보아 수한을 안다 하니 노농의 징험이라 대강은 짐작나니
정조에 세배함은 돈후한 풍속이다 새 의복 떨쳐 입고 친척 인리 서로 찾아
노소남녀 아동까지 삼삼오오 다닐 적에 와삭버석 울긋불긋 물색이 번화하다
사내아이 연 띄우고 계집아이 널뛰기요 윷놀아 내기하기 소년들 놀이로다
사당에 세알(歲謁)함은 병탕(餠湯)에 주과로다 엄파와 미나리를 무엄에 곁들이면
보기에 신신하여 오신채(五辛菜)를 부러하랴 보름날 약밥 제도 신라적 풍속이라
묵은 산채 삶아 내어 육미를 바꿀소냐 귀밝히는 약술이요 부름 삭는 생률이라
먼저 불러 더위팔기 달맞이 횃불켜기 흘러오는 풍속이요 아이들 놀이로다…
조오타! 얼씨구. 이월은 중춘(仲春)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
초육일 좀생이는 풍흉을 안다 하며 스무날 음청으로 대강은 짐작나니
반갑다 봄바람이 의구히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속잎이 맹동한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메 비둘기 소리나니 버들빛 새로워라
보장기 차려놓고 춘경을 하오리라 살진 밭 가리어서 춘모를 많이 갈고
면화밭 되어 두고 제때를 기다리소 담뱃모와 잇 심으기 이를수록 좋으리라
원림을 장점하니 생리를 겸하도다 일분은 과목이요 이분은 뽕나무라
뿌리를 상치 말고 비오는 날 심으리라 솔가지 찍어다가 울타리 새로 하고
장원도 수축하고 개천도 쳐올리소 안팎에 쌓인 검불 정쇄히 쓸어내어
불 놓아 재 받으면 거름을 보태려니 육축은 못다 하나 우마계견 기르리라
씨암탉 두세 마리 알 안겨 깨어 보자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요 소루쟁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다 창백출 당귀 천궁 시호 방풍 산약 택사
낱낱이 기록하여 때미쳐 캐어두소 촌가에 기구없이 값진 약 쓰올소냐?
조오치! 절씨구. 삼월은 모춘(暮春)이라 청명 곡우 절기로다…
춘일이 재양(載陽)하여 만물이 화창하니 백화는 난만하고 새소리 각색이라
당전(堂前)의 쌍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화간(花間)의 범나비는 분분히 날고기니
미물도 득시하여 자락(自樂)함이 사랑흡다 한식날 성묘하니 백양나무 새 잎 난다
우로에 감창(感滄)함은 주과(酒果)로나 펴오리다 농부의 힘드는 일 가래질 첫째로다
점심밥 풍비하여 때 맞추어 배불리소 일군의 처자권속 따라와 같이 먹세
농촌의 후한 풍속 두곡(斗穀)을 아낄소냐 물꼬를 깊이 치고 도랑 밟아 물을 막고
한편에 모판하고 그나마 삶이 하니 날마다 두세 번씩 부지런히 살펴보소
약한 싹 세워낼 제 어린아이 보호하듯 백곡 중 논농사가 범연하고 못하리라
포전(浦田)에 서속(黍粟)이요 산전에 두태(豆太)로다 들깻모 일찍 붓고 삼농사도 하오리다
울 밑에 호박이요 처맛가에 박심그고 담 근처에 동과(冬瓜) 심어 가자(架子)하여 올려보세
무우 배추 아욱 상치 고추 가지 파 마늘을 색색이 분별하여 빈 땅 없이 심어 놓고
갯버들 베어다가 개바자 둘러 막아 계견(鷄犬)을 방비하면 자연히 무성하리
외밭은 따로하여 거름을 많이 하소 농가의 여름 반찬 이밖에 또 있는가
뽕눈을 살펴보니 누에 날 때 되겠구나 어와 부녀들아 잠종을 전심하소
잠실을 쇄소하고 제구를 준비하니 다래끼 칼 도마며 채광주리 달발이라
각별히 조심하여 내음새 없이 하소 한식 전후 삼사일에 과목을 접하나니
단행(丹杏) 이행(李杏) 울릉도며 문배 참배 능금 사과 엇접 피접 도마접에 행차접을 잘 사느니
청다대 정릉매는 고사에 접을 붙여 농사를 필한 후에 분을 올려 들여놓고
천한백옥 풍설 중에 춘색을 홀로 보니 실용은 아니로되 산중에 취미로다
인가의 요긴한 일 장 담는 정사로다 소금을 미리 받아 법대로 담그리라
고추장 두부장도 맛맛으로 갖추하소 앞산에 비가 개니 살진 향채(香菜) 캐오리다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랏 어아리를 일분은 엮어 달고 이분은 무쳐 먹세
낙화를 쓸고 앉아 병술로 즐길 적에 산처(山妻)의 준비함이 가효(佳肴)가 이뿐이라…
조오타! 절씨구… 사월이라 맹하(孟夏)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비 온 끝에 볕이 나니 일기도 청화하다 떡깔잎 퍼질 때에 뻐국새 자로 울고
보리이삭 패어 나니 꾀꼬리 소리한다 농사도 한창이요 잠농도 방장이라
남녀노소 골몰하여 집에 있을 틈이 없어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
면화를 많이 가소 방적의 근본이다 수수 동부 녹두 참깨 부룩을 적게 하소
갈 꺽어 거름할 제 풀 베어 섞어 하소 무논을 써을이고 이른모 내어보세
전량이 부족하니 환자 타 보내리라 한 잠 자고 이는 누에 하루도 열두 밥을
밤낮을 쉬지 말고 부지런히 먹이리라 뽕 따는 아이들아 훗그루 보아 하여
고목은 가지 찍고 햇잎은 제쳐 따소 찔레꽃 만발하니 적은 가물 없을소냐
이 때를 승시하여 나 할 일 생각하소 도랑 쳐 수도내고 우루처 개와하여
음우를 방비하면 훗 근심 없나니 봄낳이 필 무명을 이 때에 마전하고
베 모시 형세대로 여름옷 지어두소 벌통에 새끼 나니 새 통에 받으리라
천만이 일심하여 봉왕을 옹위하니 꿀 먹기도 하려니와 군신분의 깨닫도다
파일에 현등함은 산촌에 불긴하나 느티떡 콩찌니는 제 때의 별미로다
앞내에 물이 주니 천렵을 하여 보자 해 길고 잔풍하니 오늘 놀이 잘되겠다
벽계수 백사장을 구비구비 찾아가니 수단화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촉고를 둘러치고 금란옥척 후려내어 반석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 내니
팔진미 오후청을 이 맛과 바꿀소냐…
올커니! 지화자… 오월이라 중하(仲夏)되니 망종 하지 절기로다.
남풍은 때 맛초아 맥추(麥秋)를 재촉하니 보리밭 누른 빛이 밤 새이 나거고나
문 앞에 터를 닦고 타맥장(打麥場) 하오리라 드는 낫 뷔여다가 단단이 혜쳐놓고
도리깨 마죠 서서 즛내여 두다리니 불고 쓴 듯하던 집안 졸연이 흥셩하다
담석에 남은 곡식 하마 거의 진할러니 중간에 이 곡식이 신구상계(新舊相繼) 하겟고나
이 곡식 아니러면 여름 농사 엇지 할고 천심을 생각하니 은혜도 망극하다
목동은 노지 말고 농우를 보살펴라 뜨물에 꼴 먹이고 이슬플 자로 뜻겨
그루가리 모심으기 제 힘을 빌니로다 보리집 말니우고 솔가지 만히 싸아
장마 나무 쥰비하야 임시 걱정 업시 하쇼 잠농(蠶農)을 마찰 때에 사나희 힘을 비러
누에 셥도 하려니와 고치나모 작만하쇼 고치를 따오리라 청명한 날 갈희여서
발 우헤 엷게 널고 폭양의 말리우니 아 고치 무리 고치 누른 고치 흰 고치를
색색이 분별하여 일이분 씨를 두고 그 남아 켜오리다 자위를 차려 놓고
왕채에 올녀 내니 빙설같은 실오리라 사랑흡다 자위소래 금슬을 고르는 듯
부녀들 적공 드려 이 재미 보난고나 오월 오일 단오날에 물색이 생신(生新)하다
외밭에 첫물 따니 이슬에 져졌시며 앵도 익어 붉은 빛이 아침 볕에 바희도다
목 매친 연계(軟鷄) 소리 익임벌노 자로 운다 향촌에 아녀들아 추천은 말려니와
청홍상 창포비녀 가절을 허송마라 노는 틈에 하올 일이 약쑥이나 비여 두소
상천(上天)이 지인(至人)하샤 유연이 작운하니 때 맞춰 오난 비를 뉘 능히 막을쏘냐
처음에 부슬부슬 믄쥐를 적신 후에 밤드러 오난 소래 패연히 드리운다
관솔불 둘너 안자 내일 닐 마련할 제 뒤논은 뉘 심우고 압 밭은 뉘가 갈고
도롱이 졉사리며 삿갓은 몇 벌인고 모찌기는 자네 하소 논삼기는 내가 함세
들깨 모 담배 모는 머슴아해 맡아내고 가지 모 고초 모는 아기딸이 하여라
맨도람 봉선화는 네 사천 너무 마라 아기어멈 방아 찧어 들바라지 점심하소
보리밥 파잔국에 고초장 쌍치쌈을 넉넉히 능을 두어 식구를 헤아리쇼
쉴 때에 문에 나니 개울에 믈 넘난다 메나리 화답하니 격양가 아니런가…
지화자! 잘 넘어 간다… 주둥이로만 농촌 농촌하는 게 아니라 농촌의 생활을 직접 보는 거여.
… 역사는 세상을 헤쳐가는 지팡이
… 선도는 하늘로 올라가는 동아줄
유월이라 계하(季夏)되니 소서 대서 절기로다…
대우도 시행하고 더위도 극심하다 초목이 무성하니 파리 모기 모여들고
평지에 물이 괴니 악머구리 소리난다 봄보리 밀 귀리를 차례로 베어내고
늦은 콩 팥 조 기장을 베기 전 대우 들여 지력을 쉬지 말고 극진히 다스리소
젊은이 하는 일이 김매기뿐이로다 논밭을 갈마들여 삼사차 돌려 맬 제
그 중에 면화밭은 인공이 더 드나니 틈틈이 나물밭도 북돋아 매 가꾸소
집터 울밑 돌아가며 잡풀을 없게 하소 날 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 막혀 기진할 듯 때마침 점심밥이 반갑고 신기하다
정자나무 그늘 밑에 좌차(坐次)를 정한 후에 점심 그릇 열어 놓고 보리 단술 먼저 먹세
반찬이야 있고 없고 주린 창자 메운 후에 청풍에 취포하니 잠시간 낙이로다
농부야 근심마라 수고하는 값이 있네 오조 이삭 청태콩이 어느 사이 익었구나
일로 보아 짐작하면 양식 걱정 오랠소냐 해진 후 돌아올 제 노래 끝에 웃음이라
애애한 저녁 내는 산촌에 잠겨 있고 월색은 몽롱하여 발길에 비최거다
늙은이 하는 일도 바이야 없다 하랴 이슬 아침 외따기와 뙤약밭에 보리널기
그늘 곁에 누역치기 창문 앞에 노꼬기라 하다가 고달프면 목침 베고 허리 쉬움
북창풍에 잠을 드니 회황씨 적 백성이라 잠 깨어 바라보니 급한 비 지나가고
먼 나무에 쓰르라미 석양을 재촉한다 노파의 하는 일은 여러 가지 못 하여도
묵은 솜 들고 앉아 알뜰히 피워 내니 장마 속의 소일이요 낮잠자기 잊었도다
삼복은 속절이요 유두는 가일이라 원두밭에 참외 따고 밀 갈아 국수하여
가묘에 천신하고 한때 음식 즐겨 보세 부녀자 헤피 마라 밀기울 한데 모아
누룩을 디디어라 유두곡을 혀느니라 호박나물 가지김치 풋고추 양념하고
옥수수 새맛으로 일 없는 이 먹어 보소 장독을 살펴보아 제맛을 잃지 말고
맑은 장 따로 모아 익은 족족 떠내오라 비 오면 덮기 신칙 독전을 정히 하소
남북촌 합력하여 삼구덩이 하여 보세 삼대를 베어 묶어 익게 쪄 벗기리라
고운 삼 길쌈하고 굵은 삼 바드리소 농가에 요긴하기로 곡식과 같이 치네
산전 메밀 먼저 갈고 포전은 나중 가소…
조오타! 잘 넘어 간다. 덩뎌둥셩 덩뎌둥셩… 칠월이라 맹추(孟秋)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
화성은 서류하고 미성은 중천이라 늦더위 있다 한들 절서야 속일소냐
비 밑도 가비얍고 바람 끝도 다르도다 가지 위의 저 매아미 무엇으로 배를 불려
공중에 맑은 소리 다투어 자랑는고 칠석에 견우 직녀 이별루 비가 되어
섞인 비 지나가고 오동잎 떨어질 제 아미 같은 초생달은 서천에 걸리거다
슬프다 농부들아 우리 일 거의로다 얼마나 남았으면 어떻게 되다 하노
마음을 놓지 마소 아직도 멀고 멀다 골 거두어 김매기 벼 포기에 피고르기
낫 버려 두렁깍기 선산에 벌초하기 거름풀 많이 베어 더미지어 모아놓고
자채논에 새 보기와 오조밭은 정의아비 밭가에 길도 닦고 복사도 쳐 올리소
살지고 연한 밭에 거름하고 익게 갈아 김장할 무우 배추 남 먼저 심어 놓고
가시울 진작 막아 서실함이 없게 하소 부녀자들도 헴이 있어 앞일을 생각하고
베짱이 우는 소리 지네를 위함이라 저 소리 깨쳐 듣고 놀라서 다스리소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하고 의복도 포쇄하소
명주오리 어서 몽져 생량전 짜아 내고 늙으신네 기쇠하매 환절 때를 조심하여
추량(秋凉)이 가까우니 의복을 유의하소 빨래하여 바래이고 풀 먹여 다담을 제
월하의 방추소리 소리마다 바쁜 마음 실가의 골몰함이 일변을 재미로다
소채 과실 흔할 적에 저축을 생각하여 박 호박 고지 켜고 외 가지 짜게 절여
겨울에 먹어 보소 귀물이 아니 될까 면화밭 자로 살펴 올다래 피었는가
가꾸기도 하려니와 거두기에 달렸느니…
올커니! 얼쑤얼쑤.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팔월이라 중추되니 백로 추분 절기로다…
북두성 자로 돌아 서편을 가리키니 선선한 조석 기운 추의(秋意)가 완연하다
귀또라미 맑은 소리 벽간(壁間)에 들리누나 아참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백곡을 성실하고 만물을 재촉하니 들구경 돌아보니 힘들인 일 공생하다
백곡의 이삭 패고 여믈 들어 고개 숙여 서풍에 익는 빛은 황운이 일어난다
백설같은 면화송이 산호같은 고초다래 처마에 너러시니 가을볏 명랑하다
안팎 마당 닦아놓고 발채 망구 작만하소 면화 따는 다래끼에 수수 이삭 콩가지요
나무꾼 돌아올 제 머루 다래 산과로다 뒤동산 밤 대추는 아이들 세상이라
알밤 모아 말리어라 철대어 쓰게 하소 명주를 끊어내여 추양(秋陽)에 마전하고
쪽 드리고 잇 드리니 쳬홍이 색색이라 부모님 연만하니 수의를 유의하고
그 남아 마르재어 자녀의 혼수하세 집 우희 굿은 박은 요긴한 기명(器皿)이라
댑사리 비를 매아 마당질의 쓰오리라 참깨 들깨 거둔 후에 중오려 타작하고
담뱃줄 녹두 말을 아쇠야 작전(作錢)하랴 장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 것 잊지 마소
북어쾌 젖조기로 추석 명일 쇠아 보세 신도주(新稻酒) 오려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의 제물하고 이웃집 난화 먹세 며느리 말미받아 본집에 근친갈 제
개 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 초록 장옷 반물 치마 장속하고 다시 보니
여름지어 지친 얼굴 소복이 되었느냐 중추야 밝은 달에 지기 펴고 놀고 오소
금년 할 일 못다 하여 명년 계교하오리라 밀대 베어 더운갈이 모맥을 추경하세
끝끝이 못 익어도 급한 대로 걷고 가소 인공(人功)만 그러할까 천시도 이러하니
반각도 쉴 새 없이 마치며 시작느니…
지화자! 절쑤절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얄라… 구월이라 계추(季秋)되니 한로 상강 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기러기 언제 왔노 벽공에 우는 소리 찬 이슬 재촉는다
만산의 풍엽은 연지를 물들이고 울밑의 황국화는 추광을 자랑한다
구월 구일 가절이라 화전하여 천신하세 절서를 따라가며 추원보은 잊지 마소
물색은 좋거니와 추수가 시급하다 들마다 집마당에 개상에 탯돌이라
무논은 베어 깔고 건답은 베 두드려 오늘은 점그벼요 내일은 사발벼라
밀따라 대추벼와 동트기 경상벼라 들에는 조 피 더미 집 근처 콩 팥 가리
벼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 비단조차 이부꾸리 매눈이콩 황부대를
이삭으로 먼저 잘라 후씨로 따로 두소 젊은이는 태질이요 계집사람 낫질이라
아이는 소 몰리고 늙은이는 섬 욱이기 이웃집 울력하여 제 일하듯 하는 것이
뒷목 추기 짚널기와 마당 끝에 키질하기 일변으로 면화 트니 씨아소리 요란하다
틀 차려 기름짜기 이웃끼리 합력하세 등유도 하려니와 음식도 맛이 나네
밤에는 방아 찧어 밥쌀을 장만할 제 찬서리 긴긴 밤에 우는 아기 돌아볼까
타작 점심 하오리다 황계 백주 부족할까 새우젓 계란찌개 성찬으로 차려놓고
배추국 무나물에 고추잎 장아찌라 큰 가마에 안친 밥이 태반이나 부족하다
한가을 흔할 적에 과객도 청하나니 한 동네 이웃하여 한 들에 농사하니
수고도 나눠하고 없는 것도 서로 도와 이 때를 만났으니 즐기기도 같이 하세
아무리 다사하나 농우를 보살피라 핏대에 살을 찌워 제 공을 갚을지라…
어허! 잘 넘어 간다. 더러둥셩 다리러더러 다리러더러 다르러거디러 다르러…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농촌이 무엇인지 감이 잡힐끼다.그네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직접 봄으로써…
과연 필링(必隣)이 느껴지는지 모르것네…
예, 말로만 농촌 농촌하던 사람들도 농가월령가를 들어보면 농사일의 종류 농기구의 종류 농촌 인심 농촌 풍물 농촌 작물 농촌의 기후와
절기 농촌의 각종 음식! 이런 것들을 직접 피부로 접하게 되오니, 농촌의 실체를 알게 된다고 할까나요 본질에 접근한다고나 할까나요.
그리 되옵는거지요.
오냐! 맞다. 그거니라.
자 그럼 나머지를 하기 전에 울나라 농사 속담에 어떤 것이 있는지 잠시 알아볼거나?
그러시지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이런 것들이 있니라.
농사꾼이 굶어 죽어도 종자는 베고 죽는다
마파람에 곡식이 혀를 빼물고 자란다
김매는데 주인이 아흔아홉 몫 맨다
가을마당에 빗자루 몽당이를 들고 춤춰도 농사 밑이 어둡다
가을 판에는 대부인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
귀뚜라미 풍류한다
이런 속담이 왜 생겼을까 잘 생각해 보거라.
호호호, 정말 정곡을 찌르는 재미있는 속담이군요.
그럼 이번에는 절기와 관련있는 속담을 말씀해 주시어요.
거기엔 또 이런 것들이 있느니라…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
이월에 보리 환상(還上) 갔다 얼어 죽겠다
꽃샘 잎샘에 반늙은이 얼어 죽는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보리누름에 선늙은이 얼어 죽는다
오뉴월 소나기는 쇠등을 두고 다툰다
오뉴월 볕은 솔개만 지나도 낫다
오뉴월 더위에는 암소 뿔이 물러 빠진다
달무리 한지 사흘이면 비가 온다
넉달 가뭄에도 하루만 더 갰으면 한다
백일 장마에도 하루만 더 비왔으면 한다
칠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달 장마엔 못 산다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
삼년 가뭄에 하루 쓸 날 없다
처서에 비가 오면 항아리의 쌀이 준다
여름비는 잠비 가을비는 떡비
여름비는 더워야 오고 가을비는 추워야 온다
가을 비는 장인의 나루 밑에서도 긋는다
보은(報恩) 아가씨 추석 비에 운다
가을에 무우 꽁지가 길면 겨울이 춥다
추운 소한은 있어도 추운 대한은 없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갔다가 얼어 죽었다
눈 온 뒷날은 거지가 빨래를 한다.
호호호, 정말 재미있군요.
자아, 그럼 농가월령가의 마지막 부분으로 들어가자. 예, 또 시작하시지요.
… 민속의 근본은 무속이요
… 무속의 근본은 농속이다
시월은 맹동(孟冬)이라 입동 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공을 필하도다
남의 일 생각하여 집안 일 마저 하세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정히 씻어 염담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 양지에 가가(假家)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박이무우 알암말도 얼재게 간수하소 방고래 구두질과 바람벽 맥질하기
창호도 발라 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로 터울하고 외양간에 떼적 치고
깍짓동 묶어 세고 과동시 쌓아 두소 우리집 부녀들아 겨울 옷 지었느냐
술빚고 떡하여라 강신(講信)날 가까웠다 굴 꺽어 단자하고 메밀 앗아 국수하고
소 잡고 돝 잡으니 음식이 풍비하다 들마당에 차일치고 동네 모아 자리 포진
노소 차례 틀릴세라 남녀 분별 각각 하소 삼현 한패 얻어오니 화랑이 줌모지라
북치고 피리부니 여민락이 제법이라 이풍헌 김첨지는 잔말 끝에 취도하고
최권농 강약정은 체괄이 춤을 춘다 잔진지 하올 적에 동장님 상좌하여
잔 받고 하는 말씀 자세히 들어 보소 어와 오는 놀음 이 놀음이 뉘 덕인고
천은도 그지없고 국은도 망극하다 다행히 풍년 만나 기한을 면하도다
향약은 못하여도 동헌이야 없을소냐 효제 충신 대강 알아 도리를 잃지 마소
사람의 자식되어 부모 은혜 모를소냐 자식을 길러보면 그제야 깨달으리
천신만고 길러내어 남혼여가 필하오면 제 각각 몸만 알아 부모 봉양 잊을소냐
기운이 쇠패하면 바라느니 젊은이라 의복 음식 잠자리를 각별히 살펴드려
행여나 병 나실까 밤낮으로 잊지 마소 고까우신 마음으로 걱정을 하실 적에
중중거려 대답 말고 화기를 풀어 내소 들어온 지어미는 남편의 거동 보아
그대로 본을 뜨니 보는 데 조심하소 형제는 한 기운이 두 몸에 나눴으니
귀중하고 사랑함이 부모의 마음이라 간격 없이 한통치고 네것 내것 계교 마소
남남끼리 모인 동서 틈나서 하는 말을 행신에 먼저 할 일 공순이 제일이라
내 늙은이 공경할 제 남의 어른 다를소냐 말씀을 조심하여 인사를 잊지 마소
하물며 상하분의 존비가 현격하다 내 도리 극진하면 죄책을 아니 보리
임금의 백성 되어 은덕으로 살아가니 거미 같은 우리 백성 무엇으로 갚아 볼까
일년의 환자 신역 그 무엇 많다 할꼬 한전(限前)에 필납함이 분의(分義)에 마땅하다
하물며 전답 구실 토지로 분등하니 소출을 생각하면 십일세도 못 되나니
그러나 못 먹으면 재(災)주어 탕감하니 이런 일 자세 알면 왕세를 거납하랴
한 동네 몇 호수에 각성이 거생하여 신의를 아니하면 화목을 어찌할꼬
혼인대사 부조하고 상장 우환 보살피며 수화도적 구원하고 유무칭대 서로 하여
나 보다 요부한 이 용심내어 시비 말고 그 중애 환과고독 자별히 구휼하소
제 각기 정한 분복 억지로 못 하나니 자네들 헤어 보아 내 말을 잊지 마소
이대로 하여 가면 잡생각 아니 나리 주색잡기하는 사람 초두부터 그러할까
우연히 그릇 들어 한번 하고 두번 하면 마음이 방탕하여 그칠 줄 모르나니
자네들 조심하여 적은 허물 짓지 마소.
어허 절씨구! 저허 얼씨구! 십일월은 중동(仲冬)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가을에 거둔 곡식 얼마나 하였던고
몇 섬은 환자하고 몇 섬은 왕세하고 엄마는 제반미이요 얼마는 씨앗이며
도지도 되어내고 품값도 갚으리라 시계돈 장리벼를 낱낱이 수쇄하니
엄부렁하던 덕이 나머지 바이 없다 그러한들 어찌할꼬 농량이나 여투리라
콩기름 우거지로 조반석죽 다행하다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一陽)이 생하도다
시식으로 팥죽 쑤어 인리(隣理)와 즐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내년 절후 어떠한고
해 짧아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공채 사채 궁 당하니 관리 면임 아니 온다
시비를 닫았으니 초옥이 한가하다 단구에 조석하니 자연히 틈 없나니
등잔불 긴기 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고 잣고 짜네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아이 노는 소리 여러 소리 지껄이니 실가(室家)의 재미로다
늙은이 일 없으니 기직이나 매어 보세 외양간 살펴보아 여물을 가끔 주소
깃 주어 받은 두엄 자로 쳐야 모이나니…
에헤라! 막 넘어간다. 십이월은 계동(季冬)이라 소한 대한 절기로다.
설중의 봉만들은 해저문 빚이로다 세전에 남은 날이 얼마나 걸렸는고
집안의 여인들은 세시의복 장만하고 무명 명주 끊어내어 온갖 무색 들여내니
진주 보라 송화색에 청화 갈매 옥색이라 일변으로 다듬으며 일변으로 지어내니
상자에도 가득하고 횃대에도 걸었도다 입을 것 그만 하고 음식 장만 하오리라
떡쌀은 몇 말이며 술쌀은 몇 말인고 콩 갈아 두부하고 메밀쌀은 만두 빚소
세육은 계를 믿고 북어는 장에 가서 남평일 창애 묻어 잡은 꿩 몇 마린고
아이들 그물 쳐서 참새도 지져 먹세 깨강정 콩강정에 곶감 대추 생률이라
주준에 술 들이니 돌 틈에 새암 소리 앞뒷집 타병성은 예도 나고 제도 나네
새 등잔 새밭심지 장등하여 새울 적에 윗방 봉당 부엌까지 곳곳이 명랑하다
초롱불 오락가락 묵은 세배 하는구나 어와! 내 말 듣소 농업이 어떠한고
종년근고 한다 하나 그 중에 낙이 있네 위으로 국가봉용 사계로 제선봉친
형제 처자 혼상대사 먹고 입고 쓰는 것이 토지소출 아니러면 돈지당 뉘가 할꼬
예로부터 이른 말이 농업의 근본이라 배 부려 선업하고 말 부려 장사하기
전답 잡고 빚 주기와 장판에 체계놓기 술장사 떡장사며 술막질 가게보기
아직은 흔전하나 한번을 실수하면 파락호 빚꾸러기 살던 곳 터도 없다
농사는 믿는 것이 내 몸에 달렸느니 절기도 진퇴 있고 연서고 풍흉 있어
수한 풍박 잠시 재앙 없기야 하랴마는 극진히 힘을 들여 가솔이 일심하면
아무리 살년에도 아사를 면하느리 제 시골 제 지키어 소동할 뜻 두지 마소
황천이 인자하사 노하심도 일시로다 자네도 헤어 보아 십년을 가령(假令)하면
칠분은 풍년이오 삼분은 흉년이라 천만 가지 생각 말고 농업을 전심하소
하소정 빈풍시를 성인이 지었으니 이 뜻을 본받아서 대강을 기록하니
이 글을 자세히 모아 힘쓰기를 바라노라…
얼쑤얼쑤~ 햐, 조오타~ 잘 넘어 간다.
과연 과연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대사님! 좋으셨나요?
좋다마다 계집 살맛보다 열 배는 쫀득쫀득하다.
어디 랩숑이나 팝숑이 잘 튄다해도 발가락만큼이나 따라오겠느냐?
농학박사가 쓴들 절기마다 농가 행사를 교훈을 섞어가며 농속(農俗)을 이대도록 세세히 그려낼 수 있겠으며…
민속학자가 한들 풍물과 인심과 세태를 저대도록 오묘히 그려낼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먼훗날 400년이 지나면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 조선의 농촌도
우라질나운도(憂癩疾裸運盜)라는 걸 당하여 붕괴되고 피폐케 될 것이다. 훌쩍훌쩍, 어응어응…. 꺼이꺼이….
대사님! 그게 무삼 말씀이십니까? 우라질나운도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온지요?
우라질나운도라는 것은 나질(문둥병)처럼 근심되고 강도처럼 홀랑 벗겨간다는 운명의 협상이니라.
세상에 농자(農者)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는데 그런 일이 생긴단 말씀인가요?
그땐 농자는 천하지천본이 되느니라.
백성들은 싼맛 하나 때문에 뙤나라 쌀이나 갈로수(葛怒愁-갈등과 노여움과 근심덩어리)쌀로 밥지어 먹고 알젠친의 수입 쇠고기국을 먹
게 될 것이며 게다국 간장으로 간을 보고 뙤나라산 콩으로 밑반찬을 만들며… 식후엔 개리포니아(開里浦泥亞) 자몽(紫朦)으로 대저투(代齟
妬)를 하게 될 것이로다.
육조의 판서란 것들은 당파싸움만 하면서 괜찮다 , 안심하라 하면서 백성을 속이다가 나랏님의 노여움을 사는 일이 생길 것이다.
한 마디로 무능한 고위 관리들은 안하면 고립된당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기라. 불참에 대한 대안이 없시유…
라는 소리만 씨부렁거리면서 무책이 상책(No policy is best policy.)이라 말할 것이다.
이런 놈덜을 믿은 농민들의 운명은 쓰리고 피범벅이 되는 고통의 삶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농가는 빈집이 늘어 글자 그대로 빈가가 될것이다.
네상에… 대사님! 그게 무신놈의 마른 하날에 날벼락이고 청천벽력이랍니까? 우째 그런 일이 생기더란 말입니까?
그때에 전국의 농민협동계를 중심으로 백만 백성 연판장 만들기 움직임 이 있을 것이나 그것도 계주를 나라에서 구속함으로서 실효를
얻지 못할 것이니라.
또 아무러케국에 5대 곡슥 매이저(賣利貯)의 7대 패미리(悖米狸)들이 온누리적인 농간을 부리게 되느니라.
시상에 저런 쳐죽일 놈들이 있남유?
그래 세상에 사람이 먹는 걸 가지고 몹쓸 짓을 하다니요? 사람이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 했거늘 먹는 걸 가지고 장난질치는 놈덜은
죽어서 아귀지옥에나 갈 놈덜입니다. 그런 놈덜은 죽어 지옥에 가서 졸뼉다구도 못 얻어 먹을겁니다.
그렇느니라 본시 사람이라는 게 목구멍에서부터 똥구멍까지 그득하게 차 있으면 든든한 행복감을 느끼는 거란다. 그러기에 순임금의
격양가에도 내 배부르고 즐거운데 제왕이란게 무슨 소용이냐(함포고복含哺鼓腹 제력하유어아재帝力何有於我哉)고 하였느니라.
금녀야 우리의 食은 밥이고, 그 밥은 뭘로 만드느냐?
쌀이옵니다.
그 쌀은 어디서 나느냐? 쌀나무더냐?
호호호 대사님도. 저를 뭐 얼띠기 아파투(兒派投)촌 애들인 줄 아시나봐…벼지요 벼…
그렇다. 이 벼가 바로 우리를 규정짓는 그 무엇이다. 이 벼가 우리를 농경민족 정착민족으로 만든 것이다. 벼는 바로 우리의 삶 그 자체
이니라… 다음의 성부선인(盛夫仙人)의 시를 보아라.
벼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어떠냐? 이 시를 읽은 소감이?
흑흑, 너무나도 절절한 시이옵니다.
서러움을 맑게 다스릴 줄 아는 벼와 노여움을 덮을 줄 아는 벼 그리고 피묻은 그리움을 달래면서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자기희생의 벼를
통해서 우리는 말없는 백성들의 넉넉한 힘을 깨닫습니다.
그렇단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피묻은 그리움을 가지고 일어서서 제 스스로를 드리는 벼가 여문다. 피는 잘난 척 고개를 바짝 쳐들지만
베어져서 아궁이로 들어가고 벼는 고개를 푸욱 수그리지만 베어져서 곳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그것을 일용의 양식으
로 삼아 나날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벼는 우리의 생애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니라. 그러나 400년 뒤에는 우라질라운도 말고도 구린라운도 불루라운도 기술라운도 경쟁
라운도 등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대사님! 그 망할 놈의 매이저(賣利貯)인지 패미리(悖米狸)인지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온지요?
매이저(賣利貯)라는 건 글자 그대로 바가지 장사해서 이익을 왕창남겨 챙기는 놈덜이다 라는 뜻이고, 패미리(悖米狸)란 패악하게도 쌀
갖고 장난질하는 이리같은 놈들 이라는 뜻이니라.
우와! 저런 옘병을 하다 땀을 못내 꺼꾸러질 놈덜이 있나. 도대체 그런 놈덜이 어떤 놈덜이래요? 명단 좀 확 공개해 버리서요…
컨티넨탈사의 프리블가,
붕게의 히토슈가와 보른가,
카킬의 카킬가와 맥밀란가,
루이 드레퓌스의 드레퓌스가,
앙드레의 앙드레가들이니라.
이들이 어떤 식으로 울나라 농촌을 잡아묵나요?
먼저 저들은 대량생산에 의한 가격 저렴화 정책으로 우리 조선미의 1/5가격 정도로 수출을 하여 쌀시장을 장악한다. 백성들은 일단 싼맛
에 조선미를 외면하고 갈로수 쌀을 먹는다. 아주머니 떡도 싸야 사 먹는다잖느냐.
그리되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 우리 농촌은 쌀 생산을 외면하게 되고 농민은 유민으로 흐르게 된다. 옥토는 변하여 묵정밭이 되고 유민이
된 농민은 백수가 되어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킨다.
농촌 붕괴에 성공한 메이저들은 버려진 농토를 사 들인다. 그리고 유민이 된 농민들을 고용하여 옛날식의 소작농이 되는 거지. 메이저들
은 현지 쌀생산에 들어가면서, 이미 묵정밭이 된 땅을 초강력 금비로 토질개발을 한다.
그렇게 생산된 쌀을 이번에는 10∼20배의 가격으로 되판다. 이미 쌀 생산하는 곳이 없기에 독점가격 앞에 -왜냐하면 항우장사도 배고픈 건
당해내지 못한다니까- 굴복하여 사 먹어야 한다. 국가의 부는 다 빠져나가고 토지는 완전 사막화되는데 10∼20년 걸린다.
이 나라는 완죤히 절단나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때 저들은 그동안 챙긴 과실을 가지고 저들의 나라로 가버린다.
울나라는 빈껍데기만 남고 빈곤과 공해와 기아에서 처참한 살륙이 벌어지게 된다.
흐흑! 분하옵니다. 대사님! 그럼 대책이 없는 것이옵니까?
이제는 쌀도 양(量)이 아닌 질(質)로서 승부를 하여야 하느니라.
양이 아닌 질로 한다함은 어떻게 하는 것이옵니까?
흑향미(黑香米), 적미(赤米), 향미(香米) 등을 생산하여 승부를 하여야 하는 것이다.
아니, 대사님! 그게 무슨 쌀이당가요?
흑향미는 쉬운 말로 검은쌀이라 하는데, 이것을 먹으면 간장의 기능이 좋아지고 혈액순환이 증진되느니라. 따라서 술을 과음하는 사람
이나 간 기능이 나쁜 사람들에겐 최고의 쌀이 되느니라. 또 빛깔이 아름다운 적미(빨간쌀)나 구수한 맛이 난다는 향미 등은 입맛이 없을 때
식욕을 돋구어 주고 식혜 떡 과자류 등을 만드는데 사용이 되느니라.
따라서 가공함에 색소나 향료가 따로이 필요치 않느니라.
우와! 놀라웁군요. 그런 쌀을 어떻게 재배한다지요?
이러한 쌀의 효능과 재배법은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에 이미 나오는 것인데, 인공화학비료가 아닌 유기농법으로만 재배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느니라. 이 얼마나 놀라운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뇨?
그 유기농법이란 게 어찌 되는 것이옵니까?
벼에다 쌀겨 깻묵 어분 등을 섞어 발효시킨 천연퇴비를 주고 일백여 가지 식물로부터 추출한 백초액(百草液) 을 잎에 살포하는 방법으
로 재배하는 것이니라. 이것만이 우리가 유알을 이기고 살아남는 길이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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