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문신미술관 뒤편의 회원현 성터에 세워진 누각인 망루.
마산 일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다.
해발 143m로 산이라기에는 좀 민망한 높이지만, 망루가 서 있는 곳은 환주산 정상이다.
문신미술관에서 15분이면 오를 수 있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창원시 마산 구석구석 ‘레트로 탐험’
시간을 지켜온 맛
오동동 통술, 신선한 안주 가득
옆테이블 손님과도 술잔 부딪쳐
꾸덕꾸덕 말린 아구찜 ‘감칠맛’
복국·꼼장어도 실패 없는 메뉴
4~5월만 맛볼수 있는 미더덕회
국내유일 양식산지 진동항 별미
시간이 겹쳐진 공간
좋은 물 있어 무학소주 등 탄생
주류박물관엔 70년대 술집 재현
남성동·오동동 3·15의거 흔적
창동엔 한일합섬때 노포 그대로
새명소 ‘장수암’ 바다 조망 일품
바다낀 카톨릭교육관 최고 경관
마산=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국내여행은, 해외여행보다 재미가 덜하다 느끼는 이들이 있다.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드는데도 해외여행을 가는 이유다. 사실 여행하는 재미의 절반 이상은 도시에 있다. 도시 여행은 흥미롭다. 해외인 경우에 특히 그렇다. 반면 국내 도시를 흥미롭게 여행하는 건 쉽지 않다. 도시 안에서 흥미로운 목적지를 골라내는 것도, 효율적인 동선을 짜는 것도 어렵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도시 여행에 딱 맞는 도시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래서 추천한다. ‘마산으로 떠나는 도시 여행’. 통합창원시의 출범으로 지금은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 두 개의 구(區) 이름으로만 남은 옛 마산시로 떠나는 여정이다. 마산으로 떠나는 도시 여행의 중심에는 ‘레트로(복고풍)’가 있다. 마산을 여행한다는 건 과거의 시간을 탐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산 여행을 다른 도시 여행과 구분 짓는 특징은 ‘남성성’이다. 마산은 남성적이다. 시간도, 공간도 선이 굵다. 소녀 취향의 카페보다 시끌벅적한 통술 대폿집이, 낭만적인 브런치보다 시원한 복국 해장이, 와인보다는 소주가 더 잘 어울린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감각적인 여행지가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는 세태에서, 마산은 거의 유일한 ‘남자 여행지’라 할 수 있다.
마산 오동동 통술거리의 조형물.
술병을 얼음 담은 플라스틱 양동이에 넣어 주는 게 통술집의 ‘전통’이다.
# 시끌벅적한 남자 술집…마산 통술
마산의 원도심이라 할 수 있는 시내 한복판 오동동에는 ‘통술 거리’가 있다. ‘통술’은 1인당 가격을 내면 주인이 알아서 갖가지 안주를 차려 내는 술집이다. 메뉴가 아니라 음식, 아니 안주를 내는 방식으로 특화한 술집이란 얘기다. 근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던 ‘오마카세(맡김요리)’와 비슷한 듯 다르다. 술집 주인에게 메뉴 구성의 전권을 주는 건 똑같지만, 음식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내주는 게 일본식 오마카세라면, 통술집에서는 상 위를 다 덮어버리듯 한꺼번에 안주 접시를 차려 내는 방식이다.
통술은 오동동의 요정문화에서 시작했다. 근래 신마산 쪽에도 성업 중이지만, 통술집이라면 누가 뭐래도 오동동이다. 오동동 통술집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림통술’에서 받았던 차림이 이렇다. 생선회, 산낙지, 간장게장, 문어숙회, 가리비찜, 전복회, 멍게회, 병어조림, 갈치구이, 전복 미역국, 부추전, 봄동무침…. 기억나는 절반쯤의 메뉴가 이 정도다. 가짓수도 그렇지만 더 감탄하게 되는 건 재료의 신선함이다. 새벽같이 어시장이나 청과물 시장에 나가 그날그날 가장 좋은 걸 사들이는 주인의 부지런함이 통술집 술상 맛의 비결이다.
통술집은 한 상 기준으로 인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2명이면 1인 4만 원. 4인이면 1인 3만 원이다. 이 돈을 내면 상이 차려지는데, 술값은 따로 받는다. 예전 통술집에서는 기본 상차림에 소주, 맥주 합쳐 5병을 기본으로 제공했었다. 기본 안주를 깔아주고 술 주문을 더 할수록 점점 좋은 안주를 내주는 식이었는데, 술은 안 마시고 안주만 탐하는 이가 많아서 통술집은 다들 지금의 방식으로 방침을 바꿨다.
마산을 ‘남자 여행지’로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가 거기 통술집이 있어서다. 허름한 선술집 분위기인 통술집의 손님은 압도적으로 남자가 많은 ‘남초(男超)’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나 근사한 브런치 레스토랑이 대부분 ‘여초(女超)’인 것과 대비된다. 사실 거의 모든 여행을 주도하는 건 대부분 여성이다. 인기 여행지 대부분이 여성 취향의 공간이다. 그런데 통술집은 다르다. 시끌벅적하다. 그래야 술맛도 난다. 테이블 건너 모르는 사이와도 술잔이 오가기도 한다. 불콰하게 취한 주당들의 소란스러움으로 가득한 통술집. 어떤가. 이 정도면 ‘남자끼리 여행’에서 로망의 공간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광주리마다 싱싱한 해산물로 그득한 마산어시장.
# 무엇을 택하든 만족스러운 한 끼
이번에는 안주 말고 마산의 음식 얘기. 도시 여행에서 ‘만족스러운 한 끼’는 필수다. 인가가 드문 호젓한 자연 명소에서는 밥집 찾기부터 쉽지 않고, 뜨내기손님에 익숙한 관광지 식당은 애초부터 선택의 폭이 좁고 메뉴가 뻔해 실패가 다반사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다르다. 메뉴도 다채롭고 알려진 맛집도 많은, 도시에서의 한 끼 식사는 승률이 높다. 그런 만큼 실패가 주는 아쉬움과 타격도 크긴 하지만, 내로라하는 마산에서라면 걱정을 접어두어도 좋다.
‘마산의 맛’을 마산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답은 세 가지 메뉴로 정해져 있다. 우선 아귀찜. 마산에서는 아귀를 ‘아구’라 하니 ‘아구찜’이다. 마산의 복국도 알아준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복집이 마산에 있다. 아귀나 복에 비해 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숯불에 구워내는 바닷장어와 꼼장어도 마산이 내세우는 맛 중 하나다. 아귀와 복, 그리고 장어. 이 세 가지 메뉴가 마산에 ‘골목’을 만들었다. 마산어시장과 마산의 원도심이라 할 수 있는 오동동 사이쯤에 ‘아구찜 거리’와 ‘복요리 거리’ ‘장어 거리’가 있다. 각각의 메뉴를 내는 식당들이 마주 보며 줄지어 늘어서 있는 골목이다.
음식이나 식당에 대한 마산 주민들의 자부심은 남다른 데가 있다. 전통의 음식이, 마산이 산업화를 이끄는 중심도시였던 시절의 추억과 정서를 떠올리게 해서 그런 듯하다. 지난 1월 아구찜 골목의 ‘오동동아구할매집’ 권삼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회장(社會葬) 얘기까지 나왔던 것도 그래서였다. ‘아구할매’라 불리던 권 할머니는, 3대를 이어가고 있는 이 식당의 2대 장인(匠人)이었다.
마산 아구찜은 다른 지역의 아귀찜과 맛이 좀 달라서 호불호가 갈린다. 꾸덕꾸덕 말린 아귀를 쓰고, 전분을 넣지 않는다. 말린 아귀의 쫀득한 식감은 알겠는데, 좀 더 맵고 어딘지 약간 쿰쿰한 향이 있다. 외지에서 온 젊은이나 여성들은 거북해하는 경우가 적잖지만, 마산 사람들은 이런 향을 ‘감칠맛’이라 표현한다. 이걸 불편해했다가 ‘먹을 줄 모른다’는 타박이 돌아오더라도 이해하자. 아구찜은 마산 사람들의 ‘소울푸드’니까.
# 봄날에 즐기는 마산의 맛
지금 마산에 간다면 꼭 맛봐야 할 ‘봄의 맛’이 있다. 미더덕이다. 마산 진동만은 미더덕의 주생산지다. 해물탕이나 된장찌개에 넣어 끓인 탱탱한 미더덕을 깨물다가 뜨거운 물이 툭 터져 입천장을 데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겠고, 아귀찜이나 해물찜의 매콤한 양념이 버무려진 미더덕의 맛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탕에 넣거나 찜에 넣는 것만 알고 있지만, 사실 미더덕 최고의 맛이라면 봄에 맛보는 ‘미더덕회’다. 미더덕을 회로 먹는 줄 몰랐다고? 당연한 일이다. 미더덕을 회로 맛볼 수 있는 곳은 양식 미더덕의 산지인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 진동항뿐이라서 그렇다. 그것도 4월부터 5월까지 딱 두 달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미더덕은 양식으로 기르는데, 갓 수확한 미더덕을 색연필 벗기듯 돌려 벗겨 깎고 탱탱한 물주머니를 터뜨린 뒤 내장과 뻘을 제거해서 회로 낸다. 미더덕회는 향을 음미하며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 게 요령이다. 그래야 향이 짙게 느껴진다. 맛은 멍게와 비슷한데 여기다 오도독거리는 특유의 식감이 더해진다. 멍게보다 미더덕회가 맛이 좀 더 부드럽고 달다. 뒷맛의 여운도 길다.
국내 최대 미더덕 산지인 진동항은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항구다. 물양장 주차장을 끼고 이어지는 도로 이름이 아예 ‘미더덕로’다. 이즈음 미더덕로 주변에서는 종일 미더덕을 깎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더덕은 수확 후에도 손이 많이 간다. 가장 고난도의 작업이 미더덕 겉껍질 깎는 일이다. 미더덕의 얇은 속 막을 터뜨리지 않고 껍질만 깎아내려면 오랜 경험과 숙련이 필요하다. 작업장에는 눈은 딴 곳을 보고, 잡담까지 나누며 손을 바삐 놀리며 미더덕을 깎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이 정도면 보통 경력이 20년이 넘는다.
진동항의 미더덕로를 끼고 미더덕회와 미더덕 무침, 미더덕 덮밥 등을 내는 횟집 예닐곱 개가 늘어서 있다. 미더덕 덮밥은 미더덕 속살을 잘게 다져서 밥 위에 김, 몇 가지 채소와 함께 얹어낸다. 고추장이나 간장을 대신해 짭짤한 풍미의 미더덕이 장의 역할을 한다. 갯가재를 넣고 끓인 된장국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어느 집이나 가격이나 상차림이 비슷비슷하지만, 그중 한 곳을 꼽는다면 ‘청용횟집’이다. 해마다 봄이면 1년을 기다려온 미더덕회를 맛보려는 손님들이 밀어닥치는 집이다.
무학에서 운영하는 술 박물관 ‘굿데이뮤지엄’.
박물관 가득 세계 각국의 다양한 주종의 술을 모아놓았다.
# 좋은 물이 만든 좋은 술 이야기
안주 얘길 했으니 술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마산은 일찍이 깨끗한 물로 유명했다. 마산 하면 떠오르는 몽고간장도, 무학소주도 다 마산의 ‘좋은 물’이 있어 만들어진 것이다. 창원 의창구로 옮겨가기 전에 몽고간장은, 마산합포구 서성동에 공장이 있었다. 고려 말 일본 정벌에 나섰던 원나라 군사들이 주둔하면서 팠다는 우물 ‘몽고정(蒙古井)’ 바로 옆이다. 몽고간장은 이 우물에서 시작했다.
좋은 쌀과 좋은 물이 있었고, 술빚기에 적합한 기후까지 갖췄으니, 일제강점기 마산에는 청주를 빚는 양조장이 속속 들어섰다. 1904년 일본인이 마산에 처음 아즈마(東)주조장 문을 열었고, 이듬해 이사바시(石橋)주조장을 개업했다. 1906년에는 고단다(五反田)주조장과 엔무(永武)주조장이 들어섰다. 1920년대 중후반으로 접어들었을 때 마산은 전국 최대의 주류 생산 도시였다. 그 시절 마산에는 청주를 빚는 주조장만 13곳에 달했다. 일본에서 최고의 명주로 꼽히던 것이 ‘나다자케(灘酒)’였다는데, 이에 필적할 만하다는 뜻에서 마산의 술을 ‘조선의 나다자케’라 부르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도 일본인들로부터 술 공장을 넘겨받으면서 마산 술의 전통은 이어졌다. 1973년 정부의 군소 주조업체 통합 조치로 경남지역 35개 회사가 무학소주로 통폐합됐지만, 그 직전까지만 해도 마산에는 소주 생산 공장만 5개였다. 1975년 마산에서 독일식 맥주를 표방한 ‘이젠백(Isenbeck)’ 맥주를 만들었던 적도 있다. 경영난으로 조선맥주에 합병되기는 했지만, 이젠백은 한때 국내 맥주 시장의 15%를 차지하기도 했다.
술이 유명했던 마산에는 국내 최대 주류 박물관이 있다. 주류 생산 기업 무학이 지역상생 활동 차원에서 2015년 개관한 ‘굿데이 뮤지엄’이다. 박물관에는 다양한 주종의 술을 대륙별로 나눠 전시하고 1970년대 마산의 주조장과 술집을 재현해 놓았다. 박물관에는 주당이라면 특히 재미있어 할 이야기가 많다.
마산의 반월중앙동 민원센터에도 옛 주조장 흔적을 모아놓은 문화역사 작은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는 1909년 문을 열어 1973년 폐업한 삼광청주 주조장 건물을 2011년에 철거하면서 수습한 물건을 전시하고 있다. 독특한 모양의 주조장 금고 등은 볼 만하지만, 공간이 옹색하고 전시물도 적을뿐더러 관리마저 부실해서 굳이 가볼 것까지는 없겠다.
김주열 열사 동상.
# 역사가 첩첩이 겹쳐진 도시
마산을 여행하는 재미는, 거기 겹쳐진 시간을 펼쳐보는 과정에 있다. 청춘의 추억과 흥청거리던 시절의 기억이 거기 있다. 고향이 꼭 마산이 아니라도 그렇다. 그 시절 삶의 모습은 어디라도 다 비슷했으니까. 이제 와서 되돌아보면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레트로 느낌의 공간이 마산 곳곳에 있다. 부러 꾸미고 만든 곳도 있지만, 대부분 자연스럽게 시간이 쌓인 곳들이다. 도심 한복판 골목에도 오래된 시간이 묻어 있어서 어쩐지 따스한데, 그런 감정에는 쇠락한 것이 주는 ‘안쓰러운 느낌’이 한 스푼 들어 있기도 하다.
마산에 지층으로 남은 시간의 층위는 두 개다. 하나는 역사의 지층이다. 마산 현대사의 중심에 3·15의거가 있다. 부정선거에서 비롯된 시민 총궐기의 불길은 아직도 마산 사람들의 뜨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마산부두 한쪽에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 인양지가 있다. 1960년 4월 11일, 고교생이었던 그의 주검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여기서 건져졌다. 한때 내버려두다시피 했던 시신 인양지 앞에는 추모의 벽과 기념 조형물이 들어섰고, 2021년에는 동상까지 세워졌다. 인양지 주변에는 민주화운동 전반을 기념하는 ‘창원민주주의전당’ 공사가 한창이다.
마산 사람들에게 3·15는 여전히 현재형이다. 그 시절 이야기가 새겨진 공간이 곳곳에 있어서다. 남성동의 ‘보리수 다방’도 그중 한 곳이다. 3·15의거 당일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절명한 청년 오성원(당시 19세)은 보리수 다방 주위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구두닦이였다. 추모도 보상도 없는 원통하고 억울한 죽음. 그러나 묻힐 뻔했던 그의 생애는 3·15가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010년 마산의 문인과 연극인들에 의해 뮤지컬이 돼서 무대에 올려졌다.
3·15의거가 처음 일어난 오동동 옛 민주당사 부지에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특별한 팸플릿이 있다. 마산여고 학생들이 자율교육과정 시간에 ‘3·15의 의미’를 주제로 만든 과제물이다. 만든 학생이 기특하기도 하고 팸플릿의 완성도도 높아 기념관에 비치하기로 했단다. 마산에서 3·15는 이런 것이다.
마산의 쇠락한 반월시장 담에 그려진 옛 마산의 모습을 담은 벽화와 유행가 가사.
# 전설로 남은 마산의 노포들
마산에 또 하나의 지층으로 남아 있는 게 ‘압축성장의 시간’이다. 마산은, 우리의 압축성장 시기를 앞장서서 이끌었던 도시였다. 다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절.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마산에는 급격히 쇠락하면서 박제처럼 남겨진 자취가 곳곳에 있다. 뒤돌아볼 여유 없이 바삐 건너오면서 두고 온 시간이, 마산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마산의 전성기는 1970년 마산이 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기업들이 앞다퉈 마산으로 내려오면서 막이 올랐다. 한일합섬, 한국철강, 무학으로 대표되던 기업군이 앞다퉈 급성장하던 때가 마산의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마산을 대표하는 기업은 단연 한일합섬이었다. 마산의 도시 경기를 떠받치다시피 했던 한일합섬은 1973년 단일기업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1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그 시절 한일합섬은 지금으로 치면 반도체나 자동차 기업이었다. 동양 최대 규모였다던 한일합섬 마산공장은 흔적도 없다. 공장 부지는 두 개의 35층짜리 고층아파트 단지가 됐고, 아파트 단지 앞 공영주차장 귀퉁이에 ‘옛 한일합섬터’를 알리는 투박한 비석으로만 쓸쓸하게 남았을 따름이다.
한일합섬은 허망하게 사라지고 말았어도, 마산의 전성기 시절 추억은 원도심 ‘창동’ 골목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산만큼 노포(老鋪)가 많이 남아 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6·25전쟁의 와중에 풀빵 장사로 시작해 1970년부터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는 고려당 제과도, 콘티넨털 다방 자리에 들어서 고려당과 쌍벽을 이뤘다던 코아 양과점도, 마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라면 거기 얽힌 추억 하나쯤은 있다는 서점 ‘학문당’도, 40년 넘게 팥죽을 내는 ‘복희집’도 여전히 창동을 지키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개업해 3대째 자그마치 110년 역사를 지녔다는 복요리 전문 ‘남성식당’이나, 상호를 프롤레타리아에서 따와 ‘프로식당’으로 내걸고 개업했다가 훗날 간판을 바꿔 달았다는 ‘불로식당’의 역사는 그야말로 전설이다.
요즘 마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로 떠오른 암자 ‘장수암’.
법당 너머 공들여 조경한 마당이 있고 그 뒤로 바다가 펼쳐지는 곳이다.
# SNS 명소 된 암자와 전망대 된 성당
이번에는 마산에서 근래 떠오르는 ‘새로운’ 여행지 얘기다. 요즘 마산에서 가장 ‘핫’한 여행지는, 뜻밖에 암자다. 구산면 심리의 ‘장수암(將帥庵)’은 창건한 지 30년이 채 안 된 이른바 ‘신상’인데, 오로지 ‘바다를 내려다보는 경치’와 향나무를 잘 다듬어낸 조경으로 사람들을 구름처럼 불러 모으고 있다. 바다 경치가 훌륭하다고는 하지만, 풍경의 규모가 크거나 압도적인 건 아니다. 부러 숫자를 맞춰 만든 낮고 폭이 좁은 108개 계단 위에 법당이 있는데, 그 앞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장수암이 보여주는 풍경의 전부다. 법당 앞에 올라서면 올라온 계단과 주변의 향나무 그리고 그 아래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초라하다고 폄훼할 정도의 규모는 살짝 넘었다. 그걸 노린 건 아니겠지만, 아기자기한 SNS용 사진을 남기는 데 딱 최적화된 배경이다.
마산에는 장수암을 뛰어넘는 종교적 명소가 또 한 곳 있다. 구산면 남포리 봉화산 아래 있는 천주교 마산교구 카톨릭교육관이다. 교육관이 들어선 자리의 경치만으로 이곳은 특별하다. 어디서든 바다가 보이는, 마산 전체를 통틀어서 ‘최고의 바다 경관’을 보여주는 자리라고 단언할 수 있다. 점토 벽돌로 장식한 두 동의 건물은 201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기도 했는데, 빼어난 경관은 순례와 종교체험을 한층 더 숭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도시 여행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떠오른 공간이 동네책방이다. 주로 젊은 도시나 젊은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에 많은 동네책방이, 마산에 있을 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딱 한 곳 있었다. 마산합포구 육호광장 부근의 ‘백석이 지나간 작은 책방’이다. 책방 겸 커피숍인데, 늘 붙어 앉아 있는 노부부가 서점을 지킨다. 궁금했던 건 서점의 상호에 나오는 ‘시인 백석이 지나갔다’는 이야기. 사연인즉 이렇다. 백석이 사모했던 여인이 통영에 살았는데,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백석은 마산역까지 기차로 내려온 뒤에 마산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통영까지 갔고, 그때마다 육호광장 부근을 지나쳐 갔다는 것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라면 어디든, 바다를 끼고 있는 근사한 카페들이 즐비하다. 마산도 예외는 아니다. 단연 첫 번째로 추천하는 곳이 이국적인 해변 느낌의 카페 ‘샌드비치’다. 커피숍과 고깃집이 딱 절반씩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데 흰색 타프를 쳐 놓은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해변 느낌이 인상적이다. 두 번째는 마산합포구에서 마창대교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창원 성산구에 있는 ‘하우요커피’다. ‘하우요(夏雨謠)’는 고산 윤선도의 ‘고산 유고’ 중 한 대목으로 ‘여름비를 노래함’이란 뜻이다. 복잡한 일상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단다. 바로 옆에도 ‘갱고반지하’란 카페가 이제 막 새로 문을 열어서 손님들을 잔뜩 끌어모으고 있다.
■ 마산을 내려다보는 자리
마산에는 ‘고향 바다’의 서정으로 가득한 마산항 일대의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몇 곳 있다. 가깝게는 문신미술관 뒤편의 회원현 성터의 정자가 있고, 좀 더 발품을 팔자면 교방동 서원곡유원지 쪽에서 오를 수 있는 고운대(학봉)다. 회원현 성터 정자까지는 20분이 채 안 걸리고, 고운대까지는 30분 남짓이다. 성터의 정자에서는 마산항 일대가 손에 잡힐 듯 다가서고, 고운대에서는 마산 전체의 경관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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