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을 기다린 어머니
무심코 길을 가다 웬 백발노인이 여러분을 보고 “아버지.” 혹은 “어머니.”하고 덥썩 끌어안았다면 어떻게 할지……. 아마도 백이면 백 “이 분이 실성하셨나.”하고 무시하고 지나갈지 모른다. 그런데 이 사건은 실제 있었던 일로 이 얘기 속 주인공은 바로 내 친구의 이모님이다.
그러니까 사건은 해방을 앞둔 19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무 살을 갓 넘은 새색시였다는 이모님은 그날따라 바삐 인사동에서 교동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한다. 잰걸음으로 인사동 골목을 빠져나가 큰길로 나가려던 찰나 갑자기 떡장수 할머니가 자기를 보더니 “어머니!”하고 덥석 안는 게 아닌가. 그 자리가 지금의 한빛은행 앞 사거리이다.
이모님은 ‘이 할머니가 실성했구나’ 싶어, “할머니, 이거 놓으세요.”하면서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할머니는 좀처럼 이모님을 놓지 않고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20년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하며 이젠 아주 통곡까지 하는 것이었다.
스무 살 갓 넘은 새색시가 백발의 떡장수 할머니의 어머니라니……. 이쯤 되자 행인들도 구경거리 났다 싶어 한두 명씩 떡장수 할머니에게 모여들었고 이모님은 ‘떡을 팔려고 이러나보다’는 생각에 “제가 이 떡 다 사드릴테니까, 제발 이러지 마세요.”하고 움켜 안은 할머니의 팔을 억지로 떼어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모님은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 통곡하며 자신을 끌어안고 놔주질 않는 할머니를 달래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를 보고 어머니라 하시는 거죠?”하고 물어보았다 한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통곡을 멈추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머니, 저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3개월 전부터 이 자리에 나와 떡을 팔았습니다.”라고 고백하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할머니의 충격적인 고백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평생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해드린 어머니께서 억울하게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절을 좋아하셨기에 절에서 조촐하게 장례를 올려 드렸지만 어머니를 그렇게 보낸 제 한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할머니는 절에서 돌아가신 어머님을 위해 부처님께 108번 정성스레 절을 올렸지만 사무치는 그리움에 자신도 모르게 절 뒤에 있는 낭떠러지를 향해 걸어갔다는 것이다. 마침내 낭떠러지 앞까지 다다른 그녀.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막 몸을 던지려는데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 자신을 확 끌어당기는 것이 아닌가. 주지스님이었다.
자살이 실패하자, 그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어머니를 뵈고 싶어요. 따라 죽게 해주세요.”하며 통곡했고, 그런 그녀를 보던 스님은 “쯧쯧. 어리석은 것.”하면서 한동안 허공만 바라보시다 “1943년 모월 모일 모시에 서울 인사동에 가면 스무 살이 갓 넘은 새색시가 네 앞을 지나갈 터. 그녀의 성은 인동 장씨니 네 어미가 환생한 몸이니라.”
“네?” 그녀가 놀라 말을 잇지 못하자, 스님은 “내, 너를 살리기 위해 천기를 누설하고 말았구나. 업보로다 업보…….”라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나셨다는 것. 그로부터 22년간 할머니는 오로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기나긴 기다림의 세월을 견뎌 나가셨고 비로소 오늘 어머니를 만났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자 할머니는 이모님의 손을 꼭 잡으며 “혹시, 성이 어떻게 되시는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모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울음을 삼키며 “인동 장씨에요.”라고 말하고는 할머니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날 이후로 떡장수 할머니는 자기보다 30년이나 어린 젊은 어머니를 70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정성껏 모시며 효도 못한 한을 푸셨다고 한다.
환생한 어머니와 딸과의 만남을 년, 월, 일, 시까지 정확히 맞춰 주선해주신 주지스님의 예지력. 이로써 전생의 미스터리가 조금은 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밀스런 전생이 있다는 것은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대학 합격 비방
“법사님! 우리 애가 이번에 시험을 보는데요, 합격할 수 있는 비방이 있으면 좀 가르쳐주세요.”
매년 입시철만 되면 이렇게 물어오시는 학부모님들로 후암정사는 발디딜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책으로, 아예 ‘대학 합격 비방’을 책에 공개하고자 한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비방책을 물어오는 분들의 수가 조금은 줄 것이 아니겠는가. 거두절미하고 자제분을 꼭 대학에 합격시키고자 하신다면 이 글을 찬찬히 읽어 오늘부터 실천에 옮겨 보시도록.
사실, 종교활동을 하는 분들 중에 자식이 대학갈 때 백일기도 한 번 올리지 않은 분들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백일기도라는 게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돈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절에서 기도를 올린다쳐도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는 게 아닌, 앞 사람 엉덩이에 대고 절하는 기분이니 과연 기도에 효과는 있을지 은근히 의심가신 적도 있으실 터.
과연 어떤 기도를 해야 우리애가 시험을 잘 보게 될까? 우선 시계가 자정이 되기를 기다린다. 자정이란 밤 12시를 말하는 것으로 자정이야말로 만물이 변화되고, 하루가 변하는 오묘한 기가 상충되는 시간이므로 기도를 드리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시계가 밤 12시를 가리키면 마음을 정갈하게 가라앉히고, 자신이 있는 방에서 수험생이 있는 방을 향해 정성을 다해 세 번 절을 올리면 끝!
무슨 기도법이 이렇게 간단하냐고 반문하실지 모른다. 하긴 돈 들일 필요없지, 시간낭비할 필요없지, 이 이상이 기도가 어디있겠는가. 하지만 여기 가장 어려운 단서가 하나 붙는다. 그 어려운 조건이란 반드시 수험생 몰래 기도하라는 것이다.
요즘 어머니들이 수험생에게 부담 안 준다 하면서도 얼마나 부담을 주는가. 그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 바로 백일기도. 영험하다는 데는 어찌 그리 잘 아시는지, 산꼭대기라도 찾아가 자식 대학 붙기를 기도 드리고선, 수험생에게 “그렇게 기도를 드렸으니 알아서 공부하라!”고 으름장까지 놓는다면, 과연 수험생이 어머니의 기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 기도법의 핵심포인트는 무엇보다도 ‘몰래’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며칠 남지 않은 기간만큼이라도 충실히 기도를 올리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물론 이렇게 기도를 해서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기도만으로 대학에 들어간다면 대학 못 가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별별 기도를 올리고, 하다 못해 굿까지 해도 평상시보다 훨씬 못한 성적을 받고 좌절하는 수험생도 있는 법이다. 그럴 땐 수험생을 탓하지 말고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어머니들의 경우에 만약 과거에 낙태하신 경험이 있다면 기도를 올리실 때, 수험생만을 위해 기도를 올리기보다는 낙태로 인해 죽게 된 자식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미 죽은 태아지만 그 태아를 위해 정성껏 기도를 올린다면, 수험생에게 좋으면 좋았지 나쁜 영향은 끼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기도는 바로 ‘자식과의 대화’인 듯 싶다. 며칠 남지 않은 기간이라, 수험생의 마음도 꽤나 싱숭생숭하고 초조해 이때만큼 공부가 안 되는 시기도 없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 못잡아 심란해하는 수험생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독이나 다름없으니 특히 삼가하고, 근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수험생과 함께 차 한 잔을 나누는 것보다 더 좋은 ‘기도’는 없지 않을까. 대화를 하는 동안 수험생과 간절한 바람의 에너지를 안고 대화에 전념한다면, 분명 그 강렬한 에너지는 수험생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가장 효과적인 기도가 될 테니 말이다.
설날 대화법
우리나라는 설만 되면 많은 분들이 설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곤 한다. 여자들은 하루 종일 부엌을 들락날락하느라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하고, 남자들은 먼 거리 핸들잡고 왕복하느라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만 연휴지 평일보다 더 피곤한 것이 우리네 명절이지 않은가.
거기에 명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싸움’ 탓에 마음 상해 고향 문턱을 빠져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니……. 말싸움의 유형도 가지각색. 부엌에서 시작해 사랑방으로 이어지는 부부단결형이 있는가 하면, 제사상 앞에서 음복하다 발생하는 제사상 엎어치기형, 전형적인 고스톱판 결투형, 애들 싸움이 집안 싸움으로 번지는 온가족 합심형 등 역사는 흘러도 명절날 싸움유형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 듯 싶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분명 설날만 되면 고향에서 한판 하는 분들이 꽤나 있을 터. 아마도 “내가 다시 고향가면 인간이 아니야!”, “당신, 다시 고향간다고 하면, 그날로 나랑 끝장이야!” 하는 식의 대화를 나누면서 귀경길 지루함을 달래지 않을까 하는데…….
하지만 그런 분들치고 고향 땅 다시 안 밟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사실 고향에서 ‘혈투 한판’하셨다는 그 자체부터가 남들보다 고향에 각별한 ‘애정’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저 애정을 풀어내는 방법이 서툴러 목소리 볼륨만 높이다보니, 이것이 본의 아니게 ‘혈투’로 이어졌을 뿐 고향에 대한 애정을 꺾을 수야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싸우지 말아야지’하는 굳은 결심으로 내려가도 고향 얘기만 나오면 지나치게 애정만 앞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투장을 거쳐 동네 파출소에서 명절에 덕담은커녕 험담을 나누는 수위에까지 오르게 되기 일쑤다. 고향만 갔다하면 가족들에게 체면 깎여, 동네에서 망신당해, 돈만 쓰고 얻은 거 하나 없이 귀경길에 오르는 게 반복되다 보니 언제나 입버릇 마냥 고향 안 간다는 말만 할밖에…….
사실, 나는 그 분들을 보면 왠지 마음 한켠이 씁쓸하다. 물론 애들 보는 앞에서 화려한 한판 승부를 펼친 것엔 문제가 있지만 이 모든 게 그 분들 잘못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명절에 공짜로 화려한 한국판 액션무비를 감상하게 해준 장본인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싸움을 부르는 ‘한국식 대화법’. 생각해 보라. 어디 말없는 데서 싸움 나는 것 보았는가. 말이 있기에 싸움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란 걸 잘하면 그만인데, 잘하지 못하니 입으로 끝날 것을 주먹까지 동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행하게도 말 잘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중국인과 이탈리아인들은 대화법을 배우는 현장이 바로 식사시간이라 했는데 우리네 식사시간엔 오히려 말이 금지 되어 있었다. 식사시간에 어른들 앞에서 말을 했다간 당장에 멍석말이가 되어 마당에서 매를 맞기까지 했으며, 밥 먹을 때 쩝쩝거리는 소리를 냈다간 그날로 밥은커녕 물도 구경하기 힘들 정도로 교육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교육이 아닌가. 그러니 대화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지 못한 우리는 “우리 얘기 좀 하자.”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게, ‘쟤가 나한테 불만이 있었나’하면서 경직되기부터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대화하길 꺼려하는 민족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번 설에도 분명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은 있지만 사람이란 게 언제나 섭섭한 기억이 앞서는 법이라, 좋은 말이 섭섭한 감정과 만나, 듣는 이의 기분을 상하게 할런지도 모를 일. 이제부터는 좋은 말부터 꺼내는 습관을 갖는 게 어떨까.
명절을 ‘결투의 그날’로 착각하는 분들, 오늘부터 집에서 ‘배우자와의 15분 대화’에 도전해보시길. 아내와 혹은 남편과 매일 15분 동안 하는 사소한 대화가 여러분의 인생을 180도로 바꿔놓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차례의 참뜻
민족의 명절 설날이 오면 서양인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진풍경이 아시아에선 벌어진다. 다름 아닌 ‘인구 대이동’. 우리같이 좁은 땅덩이에 5천만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나라에서는 설날만 시작되면, 고속도로는 삽시간에 세계에서 가장 긴 주차장으로 변해 해외에선 해외토픽으로 보도되기 일쑤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왜 고향으로 가는 것일까. 서울 톨게이트에 줄 서 있는 차들에게 일일이 물어보면 하나같이 “차례 지내러 갑니다.”고 답할 것이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당연히 차례 지내러 가지.”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렇다. 설날엔 당연히 차례를 지내러 고향으로 향한다.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의 대대로 이어져 온 카르마(業)인 것이다.
차례상 안 차려본 여인네들이 없고, 차례상 앞에서 절 안 해본 남정네들이 없을 정도로 우리 민족은 차례없인 못사는 민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차례가 끝난 뒤 음복하며 “이거 정말로 할아버지께서 와 잡수셨을까?”라고 하면, “설마, 그냥 구정이니까 차례상 차리는 거 아니겠어?”라고 말을 돌리며 웃어넘기는 경우가 대다수.
그것도 모자라 내게 와서 이렇게 묻는 경우도 있다. “법사님, 정말 조상님이 오셔서 차례상을 드십니까? 그럼 저도 죽으면 차례상을 먹게 되겠군요?”라고. 물론 그 분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게 그런 말을 한 것이겠지만 나는 그런 말만 들으면 마음이 심란해 이렇게 답해드린다.
“어떤 소설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눈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본다 한들 기껏해야 물과 나트륨 뿐 무엇이 더 있겠는가? 그러나 눈물이야말로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최고의 언어 그 자체인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영혼의 세계도 다를 바 없습니다. 영혼 역시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증명한다는 것은 눈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것처럼 의미 없는 일이지요. 그러니 차례상 주인일랑 고민하지 마시고 이번 차례상에는 필수과목인 대추, 밤, 곶감 올릴 생각이나 하십시오.”
사실이 그렇다.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과 분명히 다른 ‘뭔가’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종교가 무엇이든, 차례는 민족의 업으로써 반드시 올려야 하는 것인데, 이를 무시하고, 차례 지내는 미풍양속을 저버리는 분들이 계셔서 참으로 안타가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차례를 올리지 않는 분들의 경우, ‘서양인들은 제사나 차례와 같은 풍습이 없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반박하시곤 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민족에 따른 차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그 나라에는 고속도로 주변에 묘가 없다. 까닭은 간단하다. 일본은 매장이 아닌 화장을 해, 이를 납골당에 보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명당이라면 기천만원을 줘가면서까지 묘터를 잡으려는 ‘묘지전쟁’은 당연히 없을 수밖에…….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일본은 우리처럼 풍수지리설도 무시한 채 집단 납골당을 사용함에도 명당 터만 쓴다는 우리 민족보다 잘 산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일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영혼들은 화장하고 납골당에 보관되는 것을 카르마(업)라 생각하며 자연스레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영혼들은 명당에 매장도 하고, 제사와 차례도 당연히 올려야 하는 것을 카르마(업)로 생각하기에 우리는 우리 식대로 해야만 하는 것.
그러니 우리도 차례 지내는 것을 민족의 업으로 여기고, 이왕 지낼 것, 정성껏 지냄이 옳을 터. 괜스레 눈물을 분석하듯 조상의 왕래를 의심하지 말고 현재의 나, 또는 미래의 나를 위해 이번 구정에도 정성껏 차례상을 준비하시길……. 또 누가 알겠는가. 여러분이 모르는 곳에서 여러분의 전생, 혹은 전전생을 위해 누군가가 열심히 차례상을 준비하고 있을지.
한국의 욕, 일본의 미소
세계에서 제일 욕 안 하기로 유명한 나라 일본. 그렇기에 일본인들은 욕 없는 문화를 가진 자국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욕이라고 해봤자 기껏 바카야로 정도로 바카야로도 한자로 풀어쓰면 ‘말과 사슴도 구분할 줄 모르는 바보같은 녀석’이라니, 이건 우리나라에 비하면 욕도 아닌 셈이다.
그러나 과연 욕없는 문화가 자랑할 만한 문화일까. 며칠 전 일본 나가노의 금강사란 절의 초청으로 일본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 전에도 몇 번 다녀왔지만 이번 방문은 조금 특별했다. 아사히신문과 일본 국영 방송인 NHK 방송국, 문예춘추 등 유명 매스컴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 와, 기자회견 식으로 인터뷰를 갖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일본에서 본의 아니게 유명인사가 되어버려 여기저기 바쁜 일정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일본의 모 기업체 회장님과 만나기로 한 자리에 그만 15분 정도 늦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 지리가 서툰 나로선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약속만큼은 정확하게 지키기로 소문난 일본에선 그건 대형사고였다.
“아이쿠, 정말 죄송합니다. 이거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회장을 만나자마자 “스미마셍.”을 연발했고 회장은 나를 반갑게 맞으며 “괜찮습니다.”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순간, 영능력자인 나의 눈엔 그것이 미소가 아닌 분노로 느껴지는 게 아닌가.
바로 그때 ‘일본인들에게도 욕이 있었다면’이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만약 한국에서라면 “거, 왜 늦었소? 사람을 이렇게 기다리게 해도 되는거요.”라는 말이 튀어나왔을 것이고, 아옹다옹 말다툼을 하면서 화는 자연스레 누그러지고, 오히려 화낸 사람은 곧 미안해져 분위기는 이내 화기애애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 회장은 달랐다. 만나면서부터 헤어질 때까지 화를 꾹꾹 참아내며 억지로 웃는 것이 만약 내가 영능력자가 아니었다면 깜빡 속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그런 그가 참으로 딱해 보였다. 속에 있는 말을 입 밖으로 배출해내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겠냔 말이다.
비단 그 회장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욕 없는 문화’ 때문에 많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아왔을 게 뻔하다.
욕은 언어의 배설물이다. 욕을 하는 순간, 우리는 마음 속에 꾹꾹 쌓아놓았던 스트레스가 확 풀려 속이 후련해지곤 하는데, 바로 이것이 제대로 안 된다면 화병 나는 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그러니 욕도 사람에겐 없어서는 안 도리 존재일 수밖에…….
이런 욕의 순기능을 가장 잘 활용하는 곳이 바로 군대다. 적절한 욕은 오히려 군내의 사기를 올리는데 한몫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미군 내에서는 오히려 욕을 장려하는 분위기라 하는데, 그 때문에 최근 한국의 미 팔군에선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한다.
얼마 전 모 잡지에 실린 일화이다. 미국에서 온 여성 고위 공무원이 군내를 시찰하던 중 포병들이 그녀 앞에서 포격 시범을 보이는데, 웬일인지 명중률이 평상시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더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평상시엔 포를 쏘면서 걸쭉하게 욕도 함께 뱉어내 명중률이 높았는데, 여성 공무원 앞에선 차마 욕을 뱉어낼 수 없었으니 자연스레 명중률도 그만큼 떨어졌다는 것. 이 정도면 욕의 파워도 대단하지 않은가.
한국에선 한 번 욕하면 끝나지만 일본에선 한 번 미소짓고 영원히 끝내지 않는다. 그것이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여기서 나는 무엇이 더 좋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여러분이라면 무엇을 선택하시겠는가. 욕인가 아니면 미소인가.
믿음으로 비는 소원
사람들은 왜 사주를 볼까. 아마도 마음 속에 소원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안에 꼭 결혼을 해야할 텐데, 부모님께서 올해도 건강하셔야 할 텐데, 우리 아이 꼭 대학에 합격해야 하는데, 사연도 구구절절한 소원들로 인해 올해도 사주를 보는 이른바 철학원의 인기는 시들 줄 모른다.
그러나 철학원들도 시대변화에 뒤처질 수는 없는 법. 인터넷을 통해 사주를 보는 사이트들이 속속 등장해 네티즌들 역시 재미반 호기심반으로 사주 사이트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으며, 청소년들조차 압구정동이나 대학가 등지에 새롭게 나타난 ‘백화점식 사주방’에서 부모님이나 선생님께는 차마 말못했던 이성문제나 시험성적 등을 남몰래 고백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를 슬쩍 물어보곤 한다니.
대학가에 속속 자리한 사주카페에 여대생들이 삼삼오오 떼지어 앉아 차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풍경은 이제는 꽤 익숙한 광경. 슬쩍 들어 보면 그 중 가장 많이 물어보는 베스트 질문은 단연 이성문제. 이 중 결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신촌의 한 사주카페에서 꽤 오랫동안 있었다는 모씨의 말에 의하면 “요즘 연상연하 커플이 장난이 아닙니다. 두세 살은 보통이고, 예닐곱 살까지 있으니까요. 궁합을 물어보면 참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지.”
사실, 사주를 보러 가는 까닭은 간단하다. 이성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약하기 때문도 있지만,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나도 모르는 내 맘’을 알기 위해 사주를 보러 가는 게 아닐까.
그런 분들을 위해 오늘은 소원성취에 즉효라는 명약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돈 한푼 안 들이고도 소원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명약이 있다면 귀가 솔깃하실 터. 그 명약이란 다름 아닌 믿는 마음이 설마 하시는 분들을 위해, ‘믿음’의 놀라운 약효를 소개할까 한다.
그러니까 내가 후암정사에서 첫 법회를 가졌을 때의 일이니, 1985년도쯤인 듯 싶다. 30대 후반의 여자 분께서 나를 찾아와 “저, 친정아버님께서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인데 쾌차하실 까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실수 아닌 실수를 해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강력한 영능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달만에 돌아가시겠습니다.”라고 말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러자 그 분은 놀라 “한 달이요? 지금 늑막염으로 입원 중이신 데, 그렇게 빨리…….” 그 말에 나는 “아마도 병원에서 오진했을 것입니다. 늑막염이 아닌 암이며 이미 손쓸 시기는 놓쳤습니다.”라고 차근차근 설명 드렸더니, 그녀는 “제발 편하게 돌아가셔야 할 텐데, 법사님께서 좀 도와주세요. 고통 없이 돌아가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렇게 말하곤 그녀는 돌아섰다.
그렇게 한달이 지난 뒤, 그 분의 친정아버님께선 딸의 곁에서 눈을 감으셨다 한다. 딸의 소원대로 편하게 눈을 감으셨던 것이다. 그 여자분은 당시 지금처럼 영능력자로 크게 알려지지 않던 나의 말을 무조건 믿고 한달 동안 아버님의 고통 없는 죽음을 위해 기도했고, 더 나아가 편안하게 돌아가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도했기에, 슬픈 소원이지만 어쩌면 최고의 소원일지 모를 소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팔공산 갓바위에서 소원을 이루었다는 분들의 얘기를 가끔씩 전해 듣곤 한다. 소문 때문인지 팔공산 갓바위에는 연일 인산인해를 이룬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갓바위에 간절히 소원을 비는 사람들……. 나는 그 분들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비단 갓바위에 빌기 때문에 소원을 이루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그 소원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오늘 마음에 품고 있던 소원이 있다면 거울 앞에서 큰 소리로 소원을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룰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을 갖고 말이다. 만약 그 믿음 속에 소원을 빌었다면, 여러분의 소원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진실뒤에 따르는 기적
올 한 해, 스포츠신문은 언제나 골프 얘기로 들썩인다. 박세리에 이은 김미현의 예고된 등장으로 그 콧대 높은 미 LPGA는 이제 한국 여자 골퍼들의 텃밭이 되고 말았다. 이에 우리나라 국민들의 골프에 대한 이해도 높아져 골프 역시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20세기를 통틀어 진정한 골퍼는 누구였을까. 미국의 골프전문 주간지 <골프위크>는 지난 14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골프에 대한 열정과 골프계 발전에 미친 지대한 영향으로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을 20세기 골퍼에 선정했다. 플레이어를 배제, 순수 골프애호가를 대상으로 한, 이번 선정작업에서 아이젠하워의 골프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정열이 그를 ‘금세기 골퍼’로 만든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가고 없지만 그의 골프는 영원히 남아 세기말을 장식했다고나 할까.
이렇듯 골프는 골퍼의 인생과 사랑, 품위와 성품이 깃든다. 그래서 흔히들 골프를 인생에 비유하지 않은가.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골프를 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인생을 한 치 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서 동시에 자연과 하나됨을 느낀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골프는 자연과 철학, 인간을 하나되게 하는 스포츠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사심 없이 나가는 필드에서 가끔씩 기적이 벌어지곤 한다. 얼마 전의일이다. 골프 매니아인 S 영상사업단 상무인 B씨와 SBS 골프 채널 김범수 아나운서와 함께 서울 근교 골프클럽에서 골프를 치게 되었다. 나로서는 오랜만의 휴식이라 모든 일을 제쳐두고 가뿐한 마음으로 골프클럽으로 향했다.
이날 B씨는 나를 보더니 “법사님, 전 골프친 지 12년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한테 선물 한 번 주시지요?” 이 말에 나는 잠깐 고민하다, “홀인원 정도면 만족하시겠습니까?”라고 웃으며 말하자, 그 분은 놀라며 “홀인원이라뇨? 무리일 것 같은데요…….”라고 말을 흐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가능은 곧 이루어졌다. 여섯 번째 홀에서 B씨가 아이언샷으로 친 공이 그린 위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홀인원이었다. B씨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 “12년 만에 홀인원은 처음입니다. 법사님, 홀인원 맞죠?”하며 뛸 듯이 좋아하는 게 아닌가.
홀인원은 정말 흔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들 홀인원을 하면 기념패나 트로피까지 만들어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기까지 하지 않은가. 그런 기적과 같은 일이 B씨에게 일어나자 그날의 골프는 그야말로 최고의 분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분위기로 8번 홀에 도달하자 우리의 홀인원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한 나이 지긋하고 점잖은 노신사 분께서 B씨에게 다가와 “축하드립니다. 아주 좋으시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정중히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B씨도 기쁜 마음에 노신사와 진한 악수를 나누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노신사께서 180야드가 넘는 곳에서 무심코 샷을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홀인원이 된 것이었다. 그러자 그 분도 놀라셨는지 “평생 처음입니다.”하면서 나이도 잊으신 채 활짝 웃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본 SBS 골프 채널의 김범수 아나운서가 “법사님, 두 분이 악수를 하시더니 홀인원의 기(氣)가 전해졌나 보죠?”하고 물었다. “남의 즐거움을 내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줄 알면 기적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법입니다.”
그날의 경기는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두 번의 연속 홀인원! 이는 한 세기를 마무리하고 다음 세기를 맞는 골프매니아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만약 그 점잖은 노신사께서 진실된 마음 없이 악수를 하였더라면 그 분에게 평생 기억될 홀인원의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분들도 진심으로 다른 분들의 행복을 기원하고 축복해보시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에게 기적을 가져다줄 최고의 주문이 될지 누가 또 알겠는가.
떼 돈과 때 돈의 행복지수
“코스닥이 뭐예요?” “몰라요.” 이 한 마디 카피에 완전 떠버린 모 신문사 광고. 하지만 지금까지도 코스닥을 모르는 아줌마는 없을 듯 싶다. 온 나라가 주식 때문에 울고 웃으니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주식천하가 아닌가.
아침의 시작을 신문 경제면의 증권정보와 함께 하고, 10분에 한번씩은 사서함 700서비스로 주식정보를 들어야 안심이 되고, 회사에 출근해도 내내 인터넷으로 주식정보만 클릭하며, 하루의 끝을 TV 증권정보의 발랄한 음악으로 마치는 분이 있다면 주식중독증을 의심해보아야 한다는데…….
물론 , 나는 그 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주식을 사는 순간, ‘아, 나도 곧 부자가 되겠지’하는, 생각만 해도 짜릿한 그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그리고 어쩌다 예감이 맞아 이익을 보게 되면 그때부터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주식에 중독되고, 그 중독은 판단력을 상실케 해, 본전치기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요즘 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 있다. “법사님, 주식이 오를까요?”, “저, 무슨 주식을 사면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제가 ○○사의 주식을 갖고 있는데 언제 팔면 좋을까요?” 등등.
하지만 그 분들에게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절대 주식은 하지 마세요. 갖고 있던 원금만 되찾으면 다시는 주식에 투자하지 마세요.”라고 말이다. 그러면 그 분들은 한술 더 떠서 “그럼, 이제부터 벤처기업에 투자해볼까요? 엔젤투자가들이 돈 좀 번다는데요?”라고 해, 나를 더욱 난감하게 만들기 일쑤다. 도대체 왜 노력은 하지 않고 떼 돈 벌 생각만 하는지…….
나는 20대 때 1년 6개월 동안 부산역 앞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한 적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여자 목욕탕을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해, 하루 종일 수십 명의 때를 밀고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으면, 새벽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달려가는 곳이 있었는데 그 곳은 바로 ‘독고기 국밥집’.
때를 밀어 번 푼돈으로 뜨끈한 ‘독고기 국밥’을 한 입 딱 넣었을 때의 그 행복이란……. 비록 떼 돈은 아니었지만, 나는 때를 밀고 받은 때 돈으로 떼 돈보다 더 큰 행복을 매일 먹어치웠던 것이다. 그게 바로 돈이 주는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을까.
만약 짧은 기간 동안 운 좋게 몇 군데 투자해 떼 돈을 버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면 영능력자인 나는 왜 주식을 안 샀겠는가. 염력만 집중시킨다면 주식시장의 동향 파악쯤은 내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 하지만 나는 주식엔 손도 안댈 뿐 아니라 주식에는 자칭 문외한인 지 오래다.
여기엔 다 까닭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길가에 떨어진 돈이라도 무심코 줍는 날이면 꼭 집에 가는 길에 넘어져 다친다든지 하는 좋지 않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듯 싶다.
주식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분들이 그 돈을 오직 자신만을 위해 쓴다면 이 돈은 순간엔 행복을 줄지 모르겠지만, 훗날 반드시 큰 재해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확률이 다른 분에 비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이를 잘 알기에 나는 내가 운영하는 벤처기업을 지금껏 상장시키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고속도로에 우리 회사의 무인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도, 회사를 상장시키는 일만큼은 위와 같은 이유로 막고 싶다. 물론 상장만 하면 큰돈이 생기겠지만, 이로 인해 더 큰 것을 잃을 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도 몸은 회사로 마음은 주식시장으로 출근하는 분들, 경마장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마권 산 사람이 아니라 경마장 주인이고, 카지노에서 돈 버는 사람도 카지노 주인이라는 사실만큼은 명심하시길 바란다.
병원에서 만난 영가
사람이 가장 많이 살아나고 또 죽어 가는 곳. 바로 병원이 그런 곳이 아닌가 싶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의 희비가 응급실에서 교차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병원에서는 꽤 많은 초보 영가들을 만날 수 있다.
이는 간단한 이치이다. 영화 <고스트>를 보면 병원 응급실에서 심장 마사지 끝에 죽은 한 환자의 영가가 육체에서 분리되어 천장으로 붕 떠오르지 않는가. 바로 이 순간이 본격적으로 초보 영가 상태로 돌입하는 상태이며, 초보 영가들에겐 가장 헛갈리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얼마나 갈등이 생기겠는가. 그냥 영계로 가자니 자신의 육신과 가족들에게 미련이 남고, 또 안 가자니 영가로서 가야 할 앞날이 막막해질 터. 이번엔 그런 초보 영가를 만난 얘기를 할까 한다. 물론 이 얘기는 실화이며 내가 직접 체험한 사건임을 미리 밝혀둔다.
때는 당시 폐결핵으로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최악의 시한부 판정을 받고 스무 살의 생을 정리한 채, 마지막 희망을 안고 모 종합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을 무렵의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날도 한 차례 심한 각혈을 하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과연 나에겐 내일이 있을까. 오늘이 마지막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공연히 슬퍼져 눈시울이 젖어드는 순간이었다.
“차길진 환자님, 오늘은 어떠세요?”하며 담당 수간호사가 말을 거는 게 아닌가. 분명 문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어느새 내 곁에 와있는 그녀가 그날따라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저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쉬는 날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 말에 그녀는 “폐에 공기 넣는 시술을 해드리려고요.”하며 시술을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화창하고 평화로운 일요일을 이 고통스런 시술로 망치고 싶지 않아, “오늘은 괜찮으니까, 내일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녀는 “저 곧 결혼하면 병원도 그만 둘 텐데 오늘만 받으세요. 이게 제가 해드리는 마지막 시술이 될 거예요.”라고 말하며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받고 싶지 않아 “죄송하지만 다음에 해주십시오. 오늘은 일요일이잖습니까.”라고 말하며 한사코 거절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그녀는 슬프다못해 창백하리 만치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럼 편히 쉬세요. 오늘만큼은 제가 꼭 해드리고 싶었는데…….”하며 병실을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왠지 수간호사의 지나친 듯한 행동에 마음이 심란해져 한동안 멍하게 누워있었지만 별다른 의심 없이 그날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차길진 환자님, 주사 놓겠습니다.”는 발랄한 목소리에 잠을 깬 나는 게슴츠레 눈을 떠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수간호사가 아닌 다른 간호사였다. “어젠 수간호사께서 직접 오셨는데 오늘은 출근 안 하셨습니까?”
그러자 간호사는 주사를 놓으며, “어제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오셨다구요? 아직 모르셨어요?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어제 망우리에 있는 아버님 묘소로 가시던 중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결혼직전에 인사드리러 가는 길이었다는데……. 그게 마지막이 되다니 참 안되셨어요.”라고 말하고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그때 그 처절하고 비참한 심정이란……. 갓 영가가 된 그 수간호사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몸담았던 병원에 찾아왔지만, 영가가 된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 그녀는 그렇게 헤매다가 영가를 볼 수 있는 나에게로 찾아와 간호사로서의 마지막 본분을 다하려했던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초보 영가들과 마주칠 때면 그녀가 생각난다. 마지막 가는 길에서조차 환자를 치료하려했던 그녀. 다음 생엔 못다 핀 의술의 꿈을 이룰 수 있길 기원한다.
지옥 꿈을 꾸는 여인
천당과 지옥은 과연 존재할까. 사실 천당과 지옥은 아마존의 늪지대같다. 우리가 보기에는 늪지대야말로 지옥과 같은 곳이라 생각되겠지만, 악어에게 있어서는 더 없이 편안한 안식처가 되는 곳 또한 늪지대이다. 이렇듯 늪지대는 사람의 마음 상태로 천당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는 매일 ‘지옥 꿈을 꾸는 여자’를 알게 된 적이 있다. 한 여자중학교 교사인 L씨는 매일 지옥을 연상하는 끔찍한 꿈을 꾸며 살고 있었다. 인생의 3분의 1이 수면시간인데 그 수면시간동안 지옥을 헤맨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더군다나 그녀의 꿈에는 단순한 지옥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장면들이 나타나 매일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폭발음과 함께 온몸이 불로 지져지는 고통을 느끼는가 하면, 무수한 군화발에 목이 사정 없이 채이는 모습, 또 어느 날은 군복을 입은 수십 명의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꿈들이 매일같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신기한 것은 그 꿈들이 실제 모습과도 너무나 흡사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니 결혼은 커녕 일상생활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신경과에서 치료도 받아봤지만 꿈은 더욱더 잔혹해져 갔다. 그러던 중 그녀는 필자가 쓰고 있던 전생에 관련된 책들을 읽고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필자가 있는 후암정사로 찾아온 것이었다.
“도대체 제가 전생에 무엇이었기에 매일 지옥에서 살아가는 걸까요?” 가냘픈 그녀가 애원하는 눈빛으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자 필자는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곧이어 그녀의 큰 눈과 필자의 눈의 초점이 일치하는 순간, 필자는 하얗고 빠른 빛을 통해 어느 낯선 곳으로 순간이동하게 되었다. 그곳은 황원의 모래바람이 거칠게 불어대는 곳으로 바로 중국의 만주벌판이었다. 벌판 한가운데는 일장기가 펄럭이는 군 막사들이 빼곡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래바람이 심하게 일더니 일본 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함성을 지르며 막사 쪽에서 무질서하게 뛰어오는 게 아닌가. 그들은 줄도 무시한 채 재빨리 허름한 건물 속으로 하나둘 속속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허름한 건물은 바로 조선에서 끌려온 종군위안부가 있는 곳이었다. 전쟁에 참가한 일본 군인들의 성적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전쟁의 희생양으로 끌려간 그녀들. 인권이 유린되고 처녀성이 희롱당한 그곳에 전생의 그녀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1930년대 초부터 20만 명이 넘는 한국 여성들이 중국, 동남아 등지로 ‘종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끌려갔고, 일본이 패망하자 그녀들은 무자비하게 학살당하거나 그곳에 버려진 채 일본은 군대를 철수해버렸던 것이다. 이런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던 전생의 그녀는 여러 명의 일본군에게 성폭행당하고, 갖은 성적 학대와 수모를 당하며 그곳에서 근근히 버텨가던 중, 지독한 성병에 걸려 만주벌판 모래더미에서 쓸쓸히 죽고 말았다.
그녀의 전생에 한이 맺히고 또 맺혀 현생에 태어나서도 전생을 무의식적 ‘꿈’의 상태로 생생히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의 얘기가 끝나자 그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알고나 있었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에 종교를 권해보았고 그로부터 몇 개월 후, 그녀는 열심히 성당에 나가고 있다며 묵주기도를 드린 뒤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는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인생의 3분의 1은 수면상태이다. 2시간만이라도 천당에 있는 기분으로 행복하게 잠을 잔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그녀에게 공포스러운 꿈이 아닌 행복한 꿈 이야기를 듣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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