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중국 오악기행 ② | 중악 숭산]

醉月 2015. 5. 15. 13:30

[중국 오악기행 ② | 중악 숭산]

5,000년 중국 역사 보려면 낙양·숭산을 보라!

 

글·사진 | 박정원 부장대우 7대 古都·달마 면벽참선 소림사 등 세계문화유산 수두룩…
조용헌 박사·최원석 교수 해설 곁들여


	숭산 정상 연천봉과 봉황대, 이조암, 초조암까지 일직선으로 나란히 이어진다.
▲ 숭산 정상 연천봉과 봉황대, 이조암, 초조암까지 일직선으로 나란히 이어진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는 ‘중원을 지배하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中原者得天下)’는 명언을 남겼다. 대륙을 놓고 치열한 각축을 벌인 자의 실감나는 말이다. 그만큼 중원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중원은 세계 4대문명 발상지이자 중국 문명의 발원지이며, 대륙의 교통 요충지이다. 유장하게 흐르는 황하를 곁에 두고 중국 최대 곡창지대인 화북평야가 있고, 중국 최대의 고도(古都)로 꼽히는 낙양(洛陽)과 정주를 거쳐 대륙 전체의 모든 교통이 지나간다.


그 중원에 중악 숭산(嵩山)이 우뚝 솟아 있다. 중악을 소개할 때 항상 언급되는 말이 ‘천지지중(天地之中)’이다. 하늘과 땅의 중심이자 중원이고, 대륙의 핵심지역이라는 말이다.


숭산 72개 봉우리는 소실산·태실산으로 나눠


왜 그곳에 중악(中岳)을 정했을까? 중국 지도를 보면서 조조의 말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된다. 조조뿐만 아니라 중국 속담에 ‘5,000년 역사를 보려면 낙양을 보고, 500년 역사를 보려면 북경을 보라’는 말이 있다. 북경 이전까지 중원의 핵심은 낙양이었다. 역대 중국 왕조 중 동주·동한·조위·서진·북위·수·당·수양·수당 등 무려 13개 왕조의 도읍지이자 200여 명의 황제가 머물렀던 곳이다. 명실상부 중국 최고의 고도다. 아마 중악으로 정해지기 전부터 이미 중국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었던 듯싶다. 오악이란 개념이 도입되면서 가장 핵심인 중악으로 정해지는 건 역사적으로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낙양엔 중악 숭산이 있고, 숭산 자락 아래 불교 선종의 창시자인 달마가 수련한 소림사가 있고, 중국 4대 서원 중의 하나인 숭양서원이 있다. 사마광이 이곳에서 <자치통감>을 저술했다. 더욱이 중국 최초의 사찰인 서기 68년에 창건한 백마사(白馬寺)와 서기 71년 두 번째로 창건한 범왕사가 있다. 낙양과 숭산이 중국 불교의 성지이자 발상지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역사적, 전략적,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중국 3대 석굴인 용문석굴이 낙양 남쪽에 있다. 불교·도교·유교의 본산과 같이 다양한 종교·문화유적지가 혼재해 있다. 사람이 죽으면 간다는 북망산도 낙양 북쪽에 있다. 북망산에는 여러 왕조의 수많은 황제릉이 산재해 있다. 산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공동묘지와 같은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고묘군이다. 낙양이 중국 역사에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들이다. 이같은 유적들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또한 인류역사보다 오래되는 30억 년 동안 쌓인 다양한 퇴적층으로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봉황대에서 달마가 9년간 면벽참선한 달마동과 달마상이 희미하게 보이는 오유봉은 3개의 봉우리가 완만하게 누운 듯 솟아 있다.
▲ 봉황대에서 달마가 9년간 면벽참선한 달마동과 달마상이 희미하게 보이는 오유봉은 3개의 봉우리가 완만하게 누운 듯 솟아 있다.

숭산(嵩山)은 서쪽 소실산(少室山)과 동쪽 태실산(太室山)으로 나뉜다. 모두 72개 산봉우리를 지니고 있으며, 최고봉 연천봉(連天峰·1,512m)은 소실산에 있다. 태실산 최고봉은 준극봉(峻極峰·1,491m)이다. 따라서 숭산 최고봉은 소실산 연천봉이다. 또한 숭산에는 4개의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숭양서원(Songyang Academy)과 탑림(塔林·Pagoda Forest),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회선사(會善寺), 계모궐(啓母闕) 등이다.


숭산은 누운 능선… 오행 중 토체의 형상


태실산에는 정상 준극봉 아래 법왕사, 회선사, 12각 15층의 중국 최고(最古)의 탑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숭악사탑, 숭상서원, 계모궐, 중악묘, 태실궐 등의 유적지와 명소들이 있고, 소실산에는 정상 연천봉 아래 소실궐, 소림사, 탑림, 삼황채, 초조암, 이조암, 달마동 등이 있다. 무술로 유명한 소림사는 소실산 아래 무성한 숲 속에 있다고 해서 소림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탑림은 소림사 고승들의 묘지다. 당나라부터 현재까지 248개의 불탑은 전부 각각 다른 모양으로 ‘고대 탑예술의 지상박물관’으로 불린다.


청나라 위원(魏源)이 ‘中岳嵩山之峻(중악숭산지준·중악 숭산은 높고 가파르다)’이라 한 것도 태실산의 준극봉에서 유래했다. 중국 속담에 ‘嵩山如臥(숭산여와·숭산은 마치 누운 듯하다)’는 말은 숭산의 오행사상을 강조한 개념이다. 오행 중에 ‘토체(土體)의 형상’이라는 말이다.


북송의 유명한 문학가 범중엄(范中淹)은 “준극에 아니 오고 어찌 천하를 돌았다 할 수 있으랴!(不來峻極遊 何以小天下)”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숭산 서쪽 소실산에 오르기 위해 입구에 들어섰다. 산 능선이 반듯하게 일자로 누워 있다. 정말 희한한 모습이다. 가이드는 “부처님이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설명한다. 바로 이 모습이 토체의 형상이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는 “일(一)자로 누워 있는 산을 ‘테이블마운틴(Table Mountain)’이라고도 합니다. 옛날에는 이러한 지형에서 왕이 나올 형세라며, 그런 곳에 집터를 잡거나 묘를 쓰면 역모를 꾸미려 한다며 처형하기도 했습니다”고 운을 뗀다. 오행은 목, 화, 토, 금, 수를 가리킨다. 이 중 토가 황색이며 정중앙에 있다. 그래서 중악이고 중원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중악과 오행, 그리고 황색이 전혀 상관없는 듯이 보이지만 밀접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와 풍수학자 최원석 교수가 봉황대에서 일행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와 풍수학자 최원석 교수가 봉황대에서 일행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조암. 선종 2대조 혜가 스님과 제자들의 동상이 있다.
▲ 이조암. 선종 2대조 혜가 스님과 제자들의 동상이 있다.

이조암(二祖庵)이 나온다. 초조 달마에 이어 선종의 2대조다. 달마가 인도 사람이라면 이조 혜가는 중국인으로 실질적 선종을 이끈 인물이다. 주변 봉우리는 온통 암벽일색이다. 하지만 이조암 부근만 토산이다. 거기에 이조암이 자리 잡고 있다. 달마의 첫 제자 혜가 스님 동상을 중앙에 봉안하고 양쪽으로 제자가 있다.


지금 소림사 스님들은 한 손으로 절을 한다. 그 전통이 혜가 스님으로부터 유래했다. 혜가 스님이 유불선을 통달하고 달마를 찾아가 제자가 되겠다고 하자, 달마는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지 않으면 제자로 삼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안 받겠다는 의미다. 이에 혜가는 자신의 한쪽 팔을 잘라 눈을 붉게 물들이며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다고 한다. 소림사 스님들이 한 손으로 인사하는 이유는 바로 한쪽 팔이 없는 혜가 스님에서 비롯됐으며, 한쪽으로 붉은 천을 두른 복장 또한 달마가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가사를 벗어 잘린 팔을 감싸니 붉게 물들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이를 ‘혜가단비(慧可斷臂)’라고 하며, 지금까지 전한다.


초조암·이조암·정상 연천봉 일직선으로 놓여


이연걸이 ‘소림사’란 영화촬영을 한 이조암에서 조금 올라가면 혜가 스님이 연마했다고 전하는 연마대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봉황대가 잇달아 나온다. 연마대에서 숭산이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이유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 봉우리들의 지질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봉황대에서는 이조암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돌산으로 둘러싸인 유일한 토산이다. 즉, 양의 기운 한가운데 음의 기운이 차지하고 있다.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이다. 동행한 경상대 최원석 교수는 “동중정(動中靜)의 봉우리”라고 말한다. 이런 곳이 명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봉황대에서 이조암과 달마가 9년 동안 면벽수도 했던 초조암 달마동까지 거의 일직선에 가까울 정도로 스승 달마를 뒤에 두고 있다. 그리고 봉황대 바로 뒤로는 숭산 최고봉 연천봉이 있다. 절묘한 구도가 아닐 수 없다. 동행한 모든 사람이 “이조암 자리는 누가 봐도 명당으로 보인다”며 입을 모은다.



	숭산 봉황대 정상 안내판이 있는 봉우리에서 사람들이 숭산 전경을 둘러 보고 있다.
▲ 숭산 봉황대 정상 안내판이 있는 봉우리에서 사람들이 숭산 전경을 둘러 보고 있다.

	달마상
▲ 1 숭산 오유봉에 있는 달마상의 웅장한 모습. 2 달마대사가 9년간 면벽참선을 한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 그 자리에 전시해 두고 있다.

달마가 있는 봉우리는 3개의 봉우리 중 중앙에 자리 잡고 있고, 연천봉과 이조암, 초조암도 3개의 봉우리가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바로 그 옆에 삼황채(三皇寨) 봉우리가 있다. 글자 그대로는 3개의 황제의 울타리라는 의미지만 삼황채는 인왕·진왕·천왕을 말한다. 인왕은 중국 고대신화에서 여와신을 가리킨다. 달의 원륜을 머리에 이고 있으며, 인간을 창조한 신으로 묘사된다. 천왕은 복희신을 말하며, 태양을 머리에 이고 있다. 복희신과 짝을 이뤄 일월신의 하나로 기능을 한다. 진왕은 신농신을 말하며, 농업의 신이다. 삼황채에는 중국 고대신화를 암시하는 동시에 불교 선종의 계보와 숭산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봉우리와 암자들이다.


조 박사는 “중간에 한 번 솟아 기운이 뭉친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강한 기운을 한 번 풀어 주는 의미도 있다”며 “암석 기운이 하단전을 통해 들어오는 형국”이라고 설명한다. 더욱이 이조암 바로 앞에 양 옆으로 두 개의 우물이 있어 기운을 더욱 식혀 주고 있다.


최 교수도 “이 터는 한마디로 하면 외유내강형이다. 겉은 부드럽고 속은 단단한 지형”이라고 말한다. 오행에서 양-음-양으로 이어지는 ‘리괘’라고 설명한다. 한 참가자도 “변산반도의 월명암이 이런 터와 비슷하지 않냐”고 묻는다. 조 박사도 “맞다”고 맞장구친다. 조 박사는 “숭산의 요철(凹凸)을 봤다”며 감격해마지 않는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그 당시 풍수나 오행원리에 맞춰서 이조암 터를 잡았을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로 잡은 게 후대에서 해설을 맞춰서 한 것일까? 최 교수는 “풍수란 텍스트가 5세기쯤부터 보이기 시작한다”며 “달마가 500년 전후 활동했으니 아마 그 당시에는 수 세기 동안 경험에 의해 쌓였던 원칙들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여겨진다”고 말했다. 조 박사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