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함의 초상화
완함도 완적처럼 방달하여 예법에 구속받지 않았는데, ≪세설신어≫엔 그의 광방한 언행에 관한 기록이 완적에 못지않다.
완씨 문중의 사람들은 술을 잘 마셨는데, 완함이 친척들과 함께 모이니, 평소 사용하는 술잔을 사용하지 않고 술이 가득한 커다란 동이에 둘러앉아 서로 권하며 실컷 마셨다. 그때 한 무리 돼지떼가 술을 마시러 오니 이들에게로 가서 함께 술을 마셨다.(≪세설신어․임탄편(任誕篇)12≫)
이 문장을 보면, 완씨집안 사람들은 원래 술을 잘 마시는 피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호쾌한 성격까지 나눠 가졌던 모양이다. 친족끼리 모이면 조그만 술잔이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갑작스런 돼지의 등장으로 인해 완함이 돼지와 술친구하여 그 자리에서 빠지게 되면 술자리가 끝날 수도 있을 터인데, 이에 대해 원망하는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완씨 집안 사람은 모두 보통 풍류를 지닌 사람이 아님을 알겠다. 그의 기질을 알 수 있는 것으로써 다음의 두 고사가 있다.
완함과 완적은 길 북쪽에 살았고, 여러 완씨들은 길 북쪽에 살았다. 북쪽에 사는 완씨는 모두 부유했고, 남쪽에 사는 완씨는 가난했다. 민간풍속에 옷을 말리는 날인 7월 7일에 북쪽에 사는 완씨가 옷을 말리느라 야단인데 모두 화려한 비단이었다. 완함은 쇠코잠방이를 뜰에 내걸었다.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기니, 이렇게 말했다. “풍속을 어길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한 것일 뿐이오.”(≪세설신어․임탄편(任誕篇)15≫)
완함은 고모집의 선비족 여종을 총애하였다. 모친의 상중에 고모가 멀리 떠나려고 했는데, 당초에는 여종을 남겨두고 간다고 했다가 출발할 때는 결국 그녀를 데리고 떠났다. 완함은 손님의 나귀를 타고 상복을 입은 채 고모를 쫓아서 여종과 함께 나귀를 타고 돌아와서 “사람의 씨를 잃을 수는 없지!”라고 하였는데, 즉 둘째 아들 완부(阮孚)의 어머니다.(≪세설신어․임탄편(任誕篇)15≫)
첫 번째 고사는 술을 잔뜩 마신 뒤 벌거벗고 방안에 누운 유령(劉伶)의 고사가 연상되는데, 자신의 광방함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 당시의 풍기였기에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일반 사람이라면 가난을 감추려고 했을 터이지만 완함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완함의 기질상 그렇게 행동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 의도적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두 번째 고사다. 완함이 고모집의 선비족 여종을 좋아하였고 자신의 둘째를 가진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일은 그다지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었고, 명문가의 자제로써 혹 불미스런 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완함은 본성에 따라 예법에 구애받지 않고, 오히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벌인다. 자신이 상중인데다가, 양가집 자제가 상복을 입고서 여종과 함께 나귀를 타고 돌아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이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그러나 완함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본성대로 행동한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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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함의 비파 |
그러나 진(晉)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은 결국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아마도 사마염이 그를 허용하지 않은 이유가 광방한 태도와 술에 심취한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완함은 다른 사람과 교제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도 아마 그가 승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전(傳)에 따르면, 완함은 음률에 뛰어났으며, 완함이 만들었다고 하는 완함의 비파가 있다고 전한다. 이것도 또한 기질상 그가 다른 사람과 교제하기보다는 자신의 즐거움을 즐긴 인물이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자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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