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조용헌의 영지 순례]5만 불보살이 머무는 영지, 오대산의 재발견

醉月 2020. 8. 14. 19:55

[조용헌의 영지 순례]5만 불보살이 머무는 영지, 오대산의 재발견

▲ 오대산 적멸보궁.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photo 조용헌
나는 그동안 오대산파(五臺山派)는 잘 몰랐다. 오대산에 아는 도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알아야 그 산에 자주 가게 된다. ‘山不在高(산부재고) 有仙則名(유선즉명)’이라는 말도 있다. 산은 높다고 장땡이 아니고 그 산에 신선이 살고 있어야 명산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선은 나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축소해석하고 싶다.
   
   나는 계룡산파 출신이다. 계룡산파의 특징은 주역과 사주팔자, 국운과 같은 미래 예측에 주특기가 있다. 근래 계룡산파가 배출한 최고의 인물은 김일부(金一夫·1826~1898) 선생이다. 이 양반이 ‘정역(正易)’이라는 매우 이색적이고 독창적이고 신비로운 책을 써냈다. 그 요체는 후천개벽 시대로 진입한다는 것이었다. 후천개벽이 오면 어떻다는 말인가? 여자가 득세한다는 것이고, 상놈과 딴따라가 대접받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고, 한국이 ‘세계를 이끄는 문화의 지도국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1980년대 계룡산에 드나들면서 계룡산파 선생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았지만, 요즘 와서 보니까 그리 황당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파의 주특기는 불로장생의 신선사상에 있다. 7부 능선쯤에서 멈추고 청산으로 들어와서 유유자적하게 살자는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다. 합천의 가야산파는 왠지 속세와 떨어져서 소나무 향기가 짙게 밴 도인의 풍모가 있다. 가야산파는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다는 특징이 있다. 최치원의 유풍이 남아 있다. 속리산파는 의술과 치료에 주특기가 있었고, 금강산파는 차력(借力), 무술(武術), 축지(縮地)와 같은 밀리터리 도술에 고단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상대적으로 오대산파는 무엇인가. 그동안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근래에 오대산을 출입하게 되었다. 그 산과 인간의 궁합도 시절 인연이 있다. 너무 젊어서 갔더라면 깊이를 몰랐을 수가 있다. 세상 풍파를 어느 정도 겪고 쓴맛도 본 다음에 오대산을 오른 것이다.
   
   
   규방 깊숙이 숨어 있는 귀족적 미인 닮아
   
   남한의 서남쪽에 살았던 필자로서는 동북 방향에 있는 강원도 오대산이 접근하기에는 좀 멀었다. 대척점에 있었다. 그렇다고 산의 형세가 바위절벽이 장엄하고 드라마틱한 모습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육산을 대표하는 오대산의 매력은 숨어 있었다. 화면발 잘 받는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지만, 규방 깊숙이 숨어 있으면서도 귀족적인 매력을 풍기는 미인에 비유된다고나 할까.
   
   우선 오대(五臺)라는 지명이 범상치 않다. 오대는 5개의 봉우리이고, 이는 동양의 오행사상에 그대로 배치된다. 태극에서 음양이 갈라지고 음양에서 다시 오행으로 분화된다. 오행에서 만물이 배출된다. ‘수·화·목·금·토’라고 하는 오행사상은 우리의 전통문화에 너무나 깊숙이 박혀 있는 사상적 틀이다. 오행의 가운데에는 토(土)가 있다. 동서남북 사방의 4가지 요소, 즉 수·화·목·금이 모두 토에서 융합된다. 오대산의 동대·서대·남대·북대도 다 개성이 있다. 그리고 가운데에 중대(中臺)가 있는 것이다. 음양오행 가지고 글도 쓰고 밥 먹고 살아온 필자로서는 이 오대와 중대라는 지명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어떻게 이리 절묘하게 산봉우리 5개가 형이상을 형이하로 보여준단 말인가!
   
   
   오대의 한가운데 있는 중대의 카타르시스
   
   중대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도사들이 깊은 애착을 가졌던 지점이다. 지로산(地爐山)이라는 명칭이 그것이다. 로(爐)는 화로라는 뜻이다. 도가의 단학(丹學)에서는 화로가 핵심이다. 신선이 되려면 화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화로에서 불을 어떤 강도로 조절하느냐, 그리고 화로의 재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단약의 성패가 결정된다. 화로의 재질이 금이냐 은이냐 동이냐 아니면 쇠와 금의 합성이냐 아니면 옥으로 만든 화로를 쓰느냐에 따라 약물의 효능이 달라진다. 약물이라는 것은 제조를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제조는 화로에서 이루어진다. 화로에는 불을 때야 한다. 불은 화학 변화를 일으키게 해주는 신물(神物)이다. 범속에서 초월로 넘어가는 계기는 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양 신화에서도 불을 다루는 대장장이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법사는 불을 다루는 능력, 그러니까 화로를 다루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한국의 제조업, 특히 자동차와 조선, 고층빌딩을 뒷받침하는 데에는 철강회사인 포항제철이라는 존재가 필수적이었듯이 말이다. 화로가 지닌 또 다른 의미는 내단(內丹)에서도 나타난다. 외단(外丹)이 섭취하는 약물을 제조하는 것이라면 내단은 인체의 오장육부에서 심장의 화기와 신장의 수기를 융합하는 일이다. 내면의 연금술이다. 이 화기와 수기가 만나서 융합하는 장소가 아랫배의 단전(丹田)이다. 단전에다가 호흡을 통해서 바람을 넣는다. 단전호흡은 화로에 바람을 집어넣는 풀무질에 해당한다. 바람을 너무 세게 넣어도 안 되고 약해도 안 된다. 시기에 따라서 적절한 풀무질이 요구된다. 이 풀무질의 농도 조절이 바로 고도의 내공이라는 것 아닌가. 그 풀무질이 이루어지는 인체의 단전이 바로 화로이고, 신선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승부는 화로에서 결판난다. 오대산 중대를 지로산이라고 명명했다고? 이건 도가에서 일찍부터 오대산을 주목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중대에서 도를 닦으면 사방의 동·서·남·북대에서 ‘자동빵’으로 에너지가 중앙으로 집중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오대산은 그 포진된 5개의 봉우리가 범상치 않은 것이다.
   
   
▲ 적멸보궁 뒤에 있는 용뿔바위.

   오대산 영적 에너지 주목한 불교
   
   그러나 오대산이 가지고 있는 영적 에너지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목을 한 문파는 도교가 아니라 불교였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일찍부터 오대산을 찜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자장율사가 누구인가. 선덕여왕 때의 대국통, 즉 왕사를 지낸 인물이다. 신라를 불교국가로 만드는 마스터플랜을 짠 고승이다. 황룡사에 구층목탑을 세우는 공사를 기획했고, 울산의 태화강 입구에 태화사라는 절을 세워 신라의 해운물류와 국방의 거점으로 삼았으며, 양산 영축산 밑에다가 통도사를 건립하여 국가적으로 승려들을 양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그 자장율사가 바로 오대산을 주목하였다. 중국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오대산의 중대 꼭대기에다가 모셨다. 그게 지금의 적멸보궁이다.
   
   중대의 적멸보궁에 대해서 이곳이 최고의 명당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한국에서는 내로라하는 영지이다. 사리는 도를 닦은 고승의 뼈를 태우는 화장(火葬)의 과정에서 나오는 구슬이다. 영롱한 빛깔을 띠고 있다. 황금색도 있고 수정처럼 맑은 색의 사리도 있고, 보라색의 사리도 있다. 삼겹살에 소주 많이 먹고 골프만 치고 죽은 일반 범부도 죽어서 화장을 하면 사리는 나온다. 문제는 흑사리가 나온다는 점이다. 영롱한 빛이 없는 거무튀튀한 사리다. 흑사리 껍질은 아무 영험이 없다. 유럽의 이름 있는 수도원에 갔을 때도 그 수도원의 바닥이나 또는 성당의 밑에 유명 수도사나 신부의 유골을 매장해 놓은 광경을 여러 군데서 목격하였다. 말하자면 법당 바로 밑바닥에다 매장해 놓은 셈이다. 필자는 처음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보통 신자들이 기도하고 예배하는 바로 그 발 밑에다 무덤을 쓴 단 말인가? 이건 무엇인가?
   
   그 성자급 사제나 수도사들의 뼈에서 나오는 종교적 영험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이 필자가 추측한 결론이다. 도를 많이 닦은 고단자의 뼈에서는 4차원의 계시나 기도발이 나온다고 서양인들도 믿었기 때문이다. 그 성자가 꿈에 나타나서 병을 고쳐주거나, 아니면 어떤 미소를 짓거나, 아니면 참나무 가지를 하나 건네주거나, 아니면 이마를 쓰다듬어 주거나 한다. 그러면 재수가 있는 것이다. 이건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 이런 종교적 체험이 누적되다 보면 아예 성당 예배 드리는 바닥에다가 그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시정잡배들 시신을 바닥에 묻어 놓으면 밤에 귀신으로 나타나서 신자들에게 해코지나 하고 신세 타령이나 하겠지만, 그 모든 집착을 다 털고 간 도력 높은 신부들은 신자들에게 도움을 주면 주었지 해코지를 하겠는가. 유럽도 망자의 뼈가 가지고 있는 파워를 일찍부터 인식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물며 사리는 뼈의 정수라고 볼 수 있다. 뼈의 진액이 뭉쳐서 사리가 된 것이다. 고승의 살아생전 닦아 놓은 모든 내공이 사리에 응축되어 있다고 해도 된다. 그러니 영험이 없을 리 없다. 사리를 모셔 놓으면 꿈에 상서로운 빛이 나타나거나 아니면 병이 낫거나 인생 근심거리가 사라지는 체험을 많이 한다. 유교를 신봉했던 조선시대에도 불교의 사리를 접하고 난 뒤에 효과를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사리응험기(舍利應驗記)’ 같은 기록은 당대의 일급 유학자들이 남긴 기록이다. 유학자들도 사리에 대한 신비한 체험을 하고, 그 영험함을 부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도 옆에 붙은 섬나라인 스리랑카에는 불치사(佛齒寺)라고 하는 유명한 사찰이 있다. 부처님의 치아사리(齒牙舍利)를 모셔 놓았다는 절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도 영국 사람들이 이 치아사리를 가져가려고 여러 가지 작전을 많이 썼지만 스리랑카 전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못 가져가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스리랑카가 비록 식민지 지배를 받더라도 부처님 치아사리만 잘 보존하면 언젠가는 영국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전 국민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 불치사에 가서 치아사리를 친견한 다음에 영험한 꿈을 꾸었던 경험이 있다. 치아사리는 직접 눈으로 친견하려면 매우 어렵다. 날짜, 시간 그리고 뒤로는 백을 써야만 가능하였다.
   
   
▲ 적멸보궁 근처의 샘물 ‘용안수’. photo 조용헌

   용안수 샘물의 효험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오대산의 중대 꼭대기에다 모셔 놓았다. 중대 꼭대기는 엄청난 명당이다. 용의 머리 꼭대기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적멸보궁 법당 뒤로는 이 용의 뿔을 상징하는 바위가 돌출되어 있다. 이 용의 뿔에 해당하는 바위는 풍수적으로는 1만볼트 에너지가 들어오는 입수맥(入首脈)이다. 바위가 돌출되어 있어야만 에너지가 들어오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적멸보궁에서 약간 밑으로 내려가면 샘물이 있는데 이 샘물 이름이 가관이다. 용안수(龍眼水)이다. 글자로 써 있다. 용안수가 양쪽으로 두 군데 있다. 이는 적멸보궁이 용의 머리에 있다는 점을 확인시키기 위한 보조장치이다. 물맛이 좋고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소문 나서 신도들이 자주 마신다. 나도 간 김에 두 바가지나 들이켰다. 좋은 약수는 최고의 건강식품이 아니겠는가. 참고로 지리산 화엄사 뒤로 가면 봉천암(鳳泉庵)이 있는데 이 봉천암에도 영험한 샘물이 있고, 그 샘물 이름이 봉안수(鳳眼水)이다. 봉황의 눈에서 나오는 샘물이라는 뜻이다. 적멸보궁의 용안수는 용의 눈에서 나오는 샘물이다. 적멸보궁의 법당에 앉아 보면 바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쩌릿쩌릿하니 기운이 척추를 타고 올라온다. 올라온 기운은 머리 쪽으로 올라간다. 양 미간 사이에서 빛이 발한다. 약간 누런색 빛도 올라오다가 핑크빛으로 변하기도 한다. 명당에서 올라오는 에너지는 찌릿한 감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색깔로도 감지된다. 색깔은 대체적으로 황금색, 흰색, 핑크색 정도다. 영험하다는 기도터에 가서 이런 기운을 느껴야지 영지가 확실히 있기는 있구나 하는 신심을 가진다. 그러려면 몸을 예민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술·담배 적게 하고 마음을 화평하게 가지고 평소에 몸을 무리하게 쓰지 말아야 한다. 평온한 상태에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도 닦는 것이다. 너무 기뻐하고 들뜨거나 아니면 너무 화내고 근심 걱정 많이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감(氣感)이 떨어진다. 그 중간 상태의 마음을 항상 유지하면 그게 평상심이다. 조주선사는 ‘평상심이 도’라고 하지 않았던가! 평상심을 오래 유지하면 자동적으로 기감은 형성된다.
   
   자장율사는 오대산의 각 봉우리마다 불교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즉 오대산에는 5만명의 불보살이 상주하고 있다는 신앙이 그것이다. 봉우리 하나마다 1만명씩이나 불보살이 있다는 이야기다. ‘오만진신(五萬眞身)’이다. 서너 명도 아니고 5만명이 계신다고 하니 그 얼마나 성스러운 산이란 말인가! 만약 한국에 기독교가 먼저 들어왔으면 이 오대산은 기독교적 의미로 해석되었을 것이다. 자장율사는 동쪽의 동대 만월산에는 1만명의 관음보살이 상주해 있고, 남쪽의 남대 기린산에는 1만명의 지장보살이 있고, 서쪽의 서대 장령산에는 대세지보살이 있고, 북쪽의 북대 상왕산에는 오백의 대아라한이 있고, 중대의 지로산에는 1만명의 문수보살이 상주한다고 믿었다. 자장율사에 이어서 신라의 두 왕자가 이 오대산에 와서 도를 닦았다. 형 보천태자와 동생 효명태자 형제이다. 아마도 경주의 왕위 계승 과정에서 신변에 위협을 느끼니까 경주와 멀리 떨어진 오지였던 오대산에 숨어서 수도를 했던 것일 게다. 형편이 풀리니까 동생 효명은 경주로 다시 돌아가서 왕이 되었다. 33대 성덕대왕이다. 유명한 에밀레종이 바로 성덕대왕 신종으로 불린다. 형인 보천태자는 오대산에 남아서 수도를 하였다. 보천은 여기에서 좋은 샘물로 차를 달여 먹고 불보살들에게 차 공양을 한 덕에 육신등공(肉身騰空)을 했다고 ‘삼국유사’에 나온다. 육신등공은 육신을 가진 채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표현이다. 신라 출신 김가기가 중국 종남산에 가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어 대낮에 백일승천(白日昇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대낮에 몸이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의미다. 신선 중에서도 최고 등급이 백일승천이다. 육신등공과 비슷한 의미다. 오대산과 적멸보궁은 6세기 무렵부터 이미 영지로 대접받았던 민족의 성지요, 자기 치유이니 영지임이 틀림없다.

'풍류, 술, 멋' 카테고리의 다른 글

五色매력 영종도  (0) 2020.08.27
단양 나옹선사 석굴  (0) 2020.08.20
경북 안동 서원여행  (0) 2020.08.14
전남 신안군 임자도  (0) 2020.08.08
[조용헌의 영지 순례]풍광도 수행  (0) 2020.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