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정경대_한의학 이야기_05

醉月 2014. 12. 9. 09:10
체질 진단론의 허실
사상의학을 주장한 이제마. 하지만 그의 논리에는 문제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체질이란 몸의 성질과 생긴 바탕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몸의 성질은 차고 덥고 습하고 건조하고 등의 체온 차이를 말함이고, 생긴 바탕은 살이 많고 적고 뼈가 굵고 가늘고 얼굴 생김은 어떻고 등등을 말함이다. 요즘 유행하는 사상이다, 팔상이다, 형상이다, 족상이다 하는 따위가 생김새를 보고 말하는 진단이다. 언제부터인가 체질진단의 정수인 양 보편화되다시피 한 사상(四象) 팔상(八象·사상을 넷으로 쪼갠 것)이 바로 그러하다.
 
  체온을 달리 판단하는 법이 없이 얼굴과 몸의 생김새를 보고 태양인(太陽人·열이 많다) 태음인(太陰人·몸이 차다) 소음인(少陰人·열이 많은 중에 추위가 좀 있다) 소양인(少陽人·추위 중에 열이 좀 있다) 하는 식이다.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해서 동양의학 원전 자체를 부정하는 황당한 논리다. 그러니 진단이 맞을 리가 없다. 맞지 않다는 사실을, 이런 진단으로 환자를 보는 의사들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왜 진단의 진실을 찾으려 하지 않고 이런 진단에 집착하는 것일까?
 
  아마도 드라마로 알려지게 된, 그리고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이제마라는 사람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라는 것이 본래 시청률을 우선시하므로 진실에 충실하기보다 허구가 대부분이다. 어쨌거나 이제마라는 사람이 허준 이래로 명의를 뛰어넘어 신의(神醫)에 가깝게 소개되었으니 드라마가 허구였건 아니건 위대한 존재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주장한 사상을 나름의 논리로 펴낸 수많은 책들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천하의 신의로 드라마화된 이제마라는 사람의 체격이 굉장히 크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태양인이라 하였다는데, 키도 크고 열도 많고 성격도 화끈했던 모양이다. 폐가 크고 간이 작은 사람을 태양인이라 하는데 그것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황제내경》이나 《동의보감》이나 심장을 태양이라 한다. 왜냐하면 심장이 열을 생산하는 공장이니까 당연히 태양인 것이다.
 
 
  《동의보감》에, 생긴 모습 보고 진단하는 법 나와 있어
 
  이제마 자신을 태양인이라 한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기는 한다. 폐가 크면 뼈가 크고 굵기 마련이어서 대개는 키가 크고 가슴이 넓고 몸에 털도 많다. 그리고 열이 많은 특징이 있다. 그러나 폐가 커서 나는 열은 허한 열임을 알아야 한다. 마치 불은 꺼졌는데 쇳덩이를 뜨겁게 달구어 놓은 것과 같은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몸에 털이 많은 까닭은 열을 생산하는 심장이 약해서이다. 즉 심장이 허약하면 진짜 열은 허약해서 추위로 인한 병이 들게 됨에 따라 저절로 털이 많이 나는 것이다. 이른바 적자생존의 논리라 할 수 있다. 폐가 커서 열이 많은데 털이 많다는 것은 그것이 진짜 열이 아니기 때문이다.
 
  폐가 커서 열이 많으면 태양인이라 오인하기 십상이다. 본래 심장의 성질이 태양이라서 심장이 크고 열이 많으면 심장과 아래위로 붙어 있는 폐에 열이 많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심장이 커서 나는 열은 진짜 열이므로 심장과 상대적인 폐는 아주 작고 허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진짜 열이 많으므로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할 필요가 없으니 털도 많지 않을뿐더러 키가 그다지 크지도 않고 뼈도 가늘고 피부도 아주 약하다. 그러니까 이제마는 태양인이 아닐뿐더러, 폐가 크고 간이 작은 체질 역시 태양인이라 진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열이 많다고 무조건 태양인이라 오인하고 아주 찬 성질의 약을 함부로 썼다가는 부작용은 당연하고 심하면 언제 어느 때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질지 모른다.
 
  사상의학을 주장한 이제마의 논리를 한 가지의 예만 들어서 비판하였으나 다른 상(象)이란 것들도 마찬가지다. 천하에 사람의 몸만큼 귀한 것이 없으니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수천 년 사람의 생로병사를 책임져 온 동양의학 원전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원전은 심장을 태양(太陽·간을 소양, 신장을 태음, 폐를 소음, 비장을 지음)이라 하였다. 그리고 몸의 성질을 여섯 가지로 나눈다. 한(寒·추위) 풍(風·추위 중 양기) 습(濕·습기) 서(暑·더위) 조(燥·아주 더운 열) 건(乾·건조)이다. 그리고 생긴 모습을 보고 진단하는 법은 《동의보감》에 자세히 실려 있다. 형상학이라 할 수 있는 이 진단법은 오장육부의 크고 작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체질은 오장육부의 크기와 연관
 
  몸의 성질인 체질과 생김새의 바탕인 형상은 알고 보면 오장육부의 크고 작음 내지 강하고 약함에 의해서 정해진다. 원칙적으로 심장이 크면 폐가 작고 열이 많다. 피부가 희지만 약하고 털이 적으며 이마가 좁고 나이가 들어서는 이마에 주름이 가로로 길게 파인다. 폐가 크면 간이 작고 허한 열이 많다. 눈이 크고 뼈가 굵으며 키가 크고 가슴이 넓은 데다 피부가 두껍고 목이 굵고 짧으며 좀 검은 편인데 털이 많다. 간이 크면 비장이 작고 살집이 적다. 눈이 작고 추위를 타며 피부는 가무잡잡하고 손톱발톱이 두껍다. 비장이 크면 신장이 작고 살집이 많다. 피부가 약하고 건조하다. 신장이 크면 심장이 작고 피부는 검은 편이다. 털이 많으며 추위를 많이 타고 머리카락 숯이 아주 많은데 쉽게 희어지고 이마가 넓다.
 
  이와 같이 사람마다 오장육부 중 어느 것은 크고 어느 것은 작기 마련이다. 그리고 큰 장부는 작은 장부를 급박한다. 이것을 상극이라 하는데, 심장은 폐를 극해서 폐를 병들게 하고, 폐는 간을 극해서 간을 병들게 하고, 간은 비장을 극해서 비장을 병들게 하고, 비장은 신장을 극해서 신장을 병들게 하고, 신장은 심장을 극해서 심장을 병들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극관계는 어디까지나 원칙론이다. 어느 하나의 장부가 너무 크면 오히려 큰 그 장부에 먼저 병이 들어서 다른 장부로 옮겨가기도 하는데, 대개는 대단히 위험한 병일 때 극하는 장부로 전이된다.
 
  그런데 형상으로 보고 혹은 체온을 보고 진단을 한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생활습관에 따라서 형상이 바뀔 수도 있다. 체온도 그렇다. 속은 아주 찬데 겉으로는 열이 펄펄 나기도 하고, 속은 아주 더운데 겉으로는 아주 찬 체질이 있는 데다 더우면서도 체질은 습하고, 추우면서도 체질은 건조하기도 한 등 정밀한 진단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잘못 진단했다가는 약을 잘못 쓸 테니 자칫하면 큰일이 날 수 있다. 속은 찬데 겉으로 열이 나는 체질을 오인하고 찬 약을 쓰거나, 속은 열이 가득한데 겉으로 추위를 탄다고 열이 있는 약을 썼다가는 부작용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심하면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다. 특히 폐가 커서 허한 열이 나는 체질인데 감기로 열이 펄펄 끓을 때 급히 열을 내리는 주사를 놓으면 더욱 위험하다. 심장 쇼크로 사망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진정한 명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하나도 둘도 체질을 확정짓는 오장육부의 크고 작음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러면 만에 하나 약을 잘못 쓰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뿐더러 바르게 약을 쓸 수 있어서 천하의 명의라 칭송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첨단 의료기기도 오장육부의 상대적 관계를 모르고, 열이 나도 그것이 허한 열인지 진짜 열인지 분간을 못한다. 체질을 알지 못하니 병의 원인을 알 리가 없고 결과만 겨우 진단해 낸다. 물론 무슨 병은 혈관이 막혀서 혹은 무슨 수치가 높아서 하는 원인이야 곧잘 파악하기는 한다. 그것은 병의 근본원인이 아니다. 혈관이 왜 막히고 수치가 왜 높아졌는지를 파악해야 비로소 원인을 알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병이 든 뒤에 병을 고치는 가장 낮은 의술 수준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양의 명의로 지금까지 그 명성이 사라지지 않은 편작이란 인물이 있다. 춘추전국 시대 오나라 사람인데 천수가 다하지 않은 한 못 고치는 병이 거의 없었다. 이에 왕이 그를 불러 후한 상금을 내리며 천하에 제일가는 명의라 칭송해 마지않았다. 편작은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절대로 명의가 아니라며 칭송을 거두어 달라 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자신은 무거운 병이 든 뒤에 병을 고치므로 수준이 낮은 보통의사이고, 둘째 형은 가벼운 병이 곧 무거운 병이 될 줄 알고 미리 고쳐 버리므로 진정한 명의라 하였다. 그러나 둘째 형보다 더 뛰어난 신의가 있는데 그는 체질을 잘 진단해서 작은 병마저 들지 않도록 하는 첫째 형이다. 천하 사람들은 둘째 형과 첫째 형이 의사인지 아닌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오장육부의 크고 작음을 잘 파악해서 어느 시기 어느 장부에 병이 올지 미리 짐작하고, 그리고 그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병이 들지 않도록 하는 자가 진정한 명의 또는 신의란 뜻이다. 말이 맞지만 세상천지에 그렇게 진단할 수 있는 법이 어디 있으랴 싶어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절대로 황당하지가 않다. 뜻밖에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것에 있다. 마치 물레방아가 퍼 나르는 물처럼 시시각각으로 돌고 돌며 흐르는데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날씨가 더우면 그 열 때문에 몸이 더워져서 부풀어 오르고 오장육부 핏줄 힘줄 신경선 할 것 없이 팽창하기 마련이다. 날씨가 추우면 그 추위 때문에 몸이 차져서 수축되고 오장육부 핏줄 힘줄 신경선 할 것 없이 오그라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습하면 몸도 오장육부도 피도 근육도 습해지고, 건조하면 건조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더우면 더위 때문에 병이 들고, 추우면 추위 때문에, 습하고 건조하면 습하고 건조함 때문에 병이 들기 마련이다.
 
 
  의명학은 어느 곳에 병이 올지 알 수 있어
 
  좀 더 구체적으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심장은 열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작고 허약한데 계속해서 추위를 만나면 당연히 심장이 위축돼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심장을 움직여서 열을 생산하고 피를 만들어 주는 미생물들이 기진맥진해서 뻗어 버릴 테니 당연하다. 다른 장부의 미생물들도 마찬가지다. 기진맥진한 미생물들이 죽어 시신이 되면 그것이 균으로 변해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면 암이 되고, 제 살을 갉아먹으면 염증이 되는 등 온갖 질병을 앓게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날씨가 바로 늙고 병들어 죽게 하는 주범이라는 뜻이다. 해마다 덥고 춥고 습하고 건조하고 뜨겁고 냉하며 다르게 다가온다. 여기다 춘하추동 3개월씩, 그리고 아침 낮 저녁 밤의 기후변화에 우리의 몸이 상응하니 이에 생로병사가 있는 것이다.
 
  명의·신의는 타고난 시기에 천하를 주관한 섭리를 파악해 이를 인체에 대입하여 오장육부의 크고 작음 내지 체질을 완전하게 파악한 다음, 다가오는 기후를 짐작하여 어느 장부에 병이 올지 판단할 줄 아는 자이다. 그러므로 적절한 음식과 약을 써서 큰 병을 앓지 않게 할 수 있을 테니 명의요 신의인 것이다. 의명학의 이치가 바로 그러하다. 태어난 시기에 천하를 주관한 섭리를 인체에 대입하면 타고난 체질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그 체질이 가령 심장이 커서 열이 많다면 다가오는 세월의 기후변화를 비교해 보면 몇 살의 나이에 어느 장부에 병이 올지 분명하게 진단할 수 있다.
 
  그 후 체질에 맞는 음식과 산야초목을 찾아서 꾸준히 섭취만 하면 천하에 무슨 병이든 능히 극복 가능하다. 설사 모르고 지내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뜻밖의 병을 얻었다 하더라도 병의 원인을 앎으로써 치료에 획기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다음 회부터 체질진단의 진실을 쓰려 하거니와 어느 나라 누구든 절대로 허망하지 않은 이 진단의 이치를 깨달은 다음 자신과 타인의 구원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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