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정경대_한의학 이야기_04

醉月 2014. 11. 28. 08:29

生老病死의 절대원리

취나물, 쑥부쟁이, 고사리, 돌나물 등 나물이 가득한 한정식. 체질에 맞게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無病長壽의 지름길이다.
  사람은 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일까? 과학의 잣대로만 설명한다면 그다지 어려울 일이 아니다.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전했다 해도 병들고 늙음을 거역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봄에 싹을 틔운 나뭇잎이 여름에 잘 자라다가 가을에 시들고 겨울에 몸체와 분리되는 자연현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한평생 연속되는 삶의 고뇌, 어느 사이 찾아온 늙음의 한탄, 그리고 병듦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초연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삶의 고뇌야 운명이거니 하고 체념하면 그만이다. 늙음도 그렇다. 옷이 낡아지듯 느낌 없이 진행하는 것이 늙음이다.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병듦은 당장 육신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가 있고, 죽음은 세상과의 영원한 단절이라 그야말로 혼이 날아가고 넋이 나가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병 없이 건강하게 늙는 것이 제일 좋다. 그리만 되면 100세를 넘겨 천수를 누릴 수 있을 테니 생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결코 그런 행운을 누구에게나 주지 않는다. 절대적 원리와 권한으로 병을 앓게 하고 천수를 누리기도 전에 영혼을 육신과 분리시킨다.
 
 
  오장육부도 추위와 더위에 반응
 
  이리 말하고 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신이 주관한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정말로 그렇다면 신이란 인격자가 인류 모두를 공평하게 무병장수하도록 해야 마땅한데 그렇지가 않으니 말이다. 필자가 말하는 하늘의 절대원리와 권한은 섭리를 말함이다. 섭리란 눈으로 볼 수 없으나 천지자연을 변화시키는 기후와 에너지의 규율이다. 기후는 계절을 오가게 해 자연을 변화시켜서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빼앗기도 한다. 귀한 생명을 언제든 앗아가는 혹독한 추위와 더위, 그로 인한 폭우와 폭설은 인간이 쌓아놓은 문명마저 송두리째 파괴한다. 그리되도록 기후를 변화시키는 근원적인 존재는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 주기적으로 파동을 일으킨다.
 
  사람의 육신도 섭리에 상응해 늙고 병들어 생을 마친다. 만물이 그러하듯 사람의 육신도 추위에 수축하고 더위에 확장한다. 마찬가지로 생명활동의 엔진이라 할 오장육부도 추위에 줄어들고 더위에 늘어난다. 날씨가 습하거나 건조하면 몸과 오장육부도 습해지거나 건조해진다. 그래서 늙고 병들며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오장육부는 각기 주관하는 성질이 있다. 간담은 추위(陰氣) 중에 더운 성질을 주관하므로 소양(少陽·陰 중의 陽)이라 하고, 심장·소장·심포·삼초는 열(陽氣를 주관하므로 태양)이라 하고, 비위는 오장의 중심이라 냉(冷)·습(濕)·조(燥)·건(乾) 치우침 없이 주관하므로 지음(至陰)이라 하고, 폐·대장은 열(陽氣)이 많은 중에 추위(陰氣·陽 중의 陰)를 주관하므로 소음(少陰)이라 하고, 신장·방광은 추위(陰氣)를 주관하므로 태음(太陰)이라 한다.
 
  소음, 소양, 태양, 태음 하고 말하니 어째 한참 전부터 체질진단의 정수인 양 유행하는 사상이다 팔상이다 하는 말과 같은 뜻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건 단언하건대 체질진단의 진실이 아니다. 오히려 동양의학원전을 뒤집어놓은 황당한 논리라서 믿기 어렵다. 아무튼 체질은 오장육부의 대소허실을 알아야 바르게 알 수 있다. 오장육부의 대소허실 내지 확정 변화는 섭리의 영향력하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영혼과는 달리 육신은 흙, 물, 열, 숨 쉬는 에너지라는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추위와 더위, 습기, 건기, 냉기 등등의 기후변화에 각기 장부가 낡고 상하면서 그 기능이 쇠퇴하여 늙고 병들며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되니 이것이 바로 불변의 철칙이다. 따뜻하거나 더워야 할 장부가 추위, 습기, 건조함을 만나거나 차야 할 장부가 더위, 열, 건조함, 습기에 노출되면 면역력 저하로 늙음이 진행되고 몹쓸 병균이 자생하고 그리고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력은 곡식에서 찾아야
 
  생로병사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비례한다. 그러니까 오가는 계절의 수만큼 늙고 그런 중에 병들고 죽음에 이르게 되니 하늘의 섭리가 곧 생로병사의 절대원리이자 권력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똑같이 자전하고 공전하는 지구라는 땅에 실려서 사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는데 왜 누구는 병 없이 오래 살고 누구는 평생 병에 시달리거나 몹쓸 병으로 요절하는 것일까? 이 의문의 대답도 간단명료하다. 타고난 체질이 모두가 같지 않고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태어난 시기의 섭리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오장육부의 크고 작음 내지 실하고 허약함, 즉 체질이 확정된다. 그리고 그 체질은 대해의 파고를 헤치고 항해하는 돛단배처럼 각기 다른 성질로 오가는 세월의 섭리에 상응하면서 생로병사는 전개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불변의 천지이법이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진행한다. 대략 태어난 그해가 춥고 그달이 겨울이고 그 시간이 저녁이나 밤이면 체질이 차고 심장이 허약하며, 그해가 덥고 그달이 여름이고 그 시간이 낮이면 체질이 덥고 폐가 허약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심장이 허약하고 체질이 찬데 추위를 만나면 심장 기능이 쇠퇴하고 늙어지며, 폐가 허약하고 체질이 더운데 더위를 만나면 폐 기능이 쇠퇴하고 늙어진다. 그리고 그런 기후변화가 반복되는 사이에 병이 들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생로병사는 불변의 자연법칙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위대한 지혜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초목처럼 자연의 법칙에 속수무책으로 종속되고 마는 속절없는 피동적 존재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능히 체질을 개선해 온갖 질병을 이겨서 장수할 수 있는 법은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면면히 전해지는 옛 성인의 가르침에서 알 수 있거니와 귀하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 지극히 상식적이어서 얼른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음식이 바로 그것이다.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면해주는 단순한 식품이 아니다. 사람은 곡식의 정기로 생명을 유지하고 면역력을 키워서 각종 병균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그러므로 곡기를 끊으면 생명도 끊어지는 것이다. 비단 사람뿐이 아니라 자연계의 생명체 거의가 다 식물에 의존해서 생존하는데 그 수많은 식물 중에서 곡식에 생명력과 면역력이 가장 많이 함유돼 있다. 만약 인삼을 비롯한 다른 초목에도 그런 성분이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불행히도 인간의 생명력은 곡식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밥상 위의 반찬이 생명과 면역의 정기를 더해준다.
 
 
  체질에 맞는 음식이 최선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체질에 맞는 올바른 선택이 중요하다. 무엇이 어디에 좋다는 말에 혹하거나 입맛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이것저것 함부로 많이 섭취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가령 열이 많은 체질에 산삼, 녹용은 크나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열에다가 열을 주니 불난 집에 기름 끼얹는 것과 같아서 많이 먹으면 육신을 망가뜨린다. 열로 인해 폐가 망가져서 피를 토하거나 심각한 병을 앓을 수 있고, 신장이 말라서 늙음이 급히 찾아오고 수명도 짧아진다. 한때 방송을 통해 개똥쑥이 암에 좋다고 알려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나뭇잎 한 번 흔들고 스쳐간 바람처럼 소문이 잦아들었다. 정말로 모든 사람에게 좋았다면 세계 인류가 암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을 테니 하늘이 내린 약초라 할 것이다. 하지만 개똥쑥은 그 성질이 차다 못해 얼음처럼 차디차다. 따라서 습하거나 찬 사람은 맞기는커녕 많이 섭취하면 병을 심화시켜서 생명을 단축시킨다.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 스님은 폐암을 한 번 수술했는데 재발해 열반에 든 것으로 알고 있다. 세속의 오염된 공기로 숨을 쉬지도 않았고, 육식을 피하였으며 담배, 술은 더더구나 가까이하지 않았던 스님이 왜 폐암을 앓았는지 남의 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공기 맑은 산중에서 청정한 물과 말만 들어도 좋다는 사찰음식으로 생활한 스님인데 하필 폐암이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질병이다. 그러나 하늘의 섭리를 생각하면 이해하고도 남는다. 폐암은 대개 심장이 너무 크고 실해서 열이 너무 많을 때 앓기 쉽다. 암이 열에 약하다는 주장은 지극히 단편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체질이 냉하거나 습해서 앓는 암은 열에 약하지만 열이 많아서 앓을 수 있는 폐암, 위암 등에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과 같다.
 
  여하간 법정 스님은 본래 폐가 약한 체질인데 더위가 심한 기후와 에너지의 시기를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병을 앓았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원칙론이다. 폐가 다른 장부에 비해 터무니없이 크고 실해도 그런 병을 앓을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어쨌거나 정확한 체질만 알았더라도 능히 그런 병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늘의 섭리가 비록 폐암을 앓을 수밖에 없도록 영향력을 행사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짐작한 대로 열 때문에 폐가 약했다면 찬 성질에 속하는 짜고 매운 음식을 섭취했다면 절대로 그런 병을 앓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저나 짜고 매운 음식은 무조건 몸에 해롭다는 말을 하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있는 터라 스님이 섭취했을 리가 만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사찰음식이 본래 짜고 맵지 않으니 모르긴 해도 입에 대지도 않았을 것 같다.
 
  특히 폐에 유익한, 매운맛에 속하는 마늘, 파 따위는 사찰음식에서 절대로 금하는 음식이다. 그러고 보면 쓴맛, 신맛에 속하는 것들, 즉 쓴맛에 속하는 산야의 나물일 텐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심장을 도와 열을 돋우는 음식들이다. 한마디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허약한 폐를 더 약화시키는 음식인 것이다. 스님이 그런 음식을 섭취했다면 천하의 명의가 아니라 천상의 신의가 하강해도 고치기 어렵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던 대로 열이 많은 체질이었다면 그에 맞추어서 맵고 짠맛에 속하는 음식을 꾸준히 섭취만 했어도 애당초에 폐암 자체를 앓지 않았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장기별로 좋은 음식들 따로 있어
 
  하나라도 체질에 맞게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야말로 병 없이 오래 사는 비법 중의 비법이라 할 수 있다. 오곡 중에서도 쌀은 주식이라서 체질에 관계없이 매일 먹어야 한다. 오미와 오곡에 있어서 신맛과 보리는 간담을 돕고 쓴맛과 팥은 심장·소장을, 단맛과 조는 비위를, 매운맛과 기장은 폐·대장을, 짠맛과 콩은 신장·방광을 돕는다. 그에 더해 오과, 오채에 있어서 녹두·매실·콩잎은 간담을 돕고, 수수·살구·취나물은 심장·소장을, 메주콩·고구마·아욱은 비위를, 율무·복숭아·파는 폐·대장을, 짠맛과 검은콩 부추는 신장·방광을 돕는다. 이 외 닭은 간담, 양은 심장·소장, 소는 비위, 말은 폐·대장, 돼지는 신장·방광을 돕거니와 이와 같이 수많은 음식은 물론 약초 심지어는 방위, 색깔 등도 오장육부별로 분리된다.
 
  이와 같이 병 없이 오래 사는 만 가지 이치가 체질과 음식에 다 들어 있다. 따라서 체질진단의 진실과 그에 맞는 음식과 약초를 소개하려 하거니와 드디어 의명학의 정수가 다음 회부터 서서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미리 귀띔해 두자면 기후와 에너지의 규율을 판단할 수 있는 법과 그에 상응한 우리의 체질이 어떻게 확정 변화해 가는지를 밝히고 형상으로 알 수 있는 체질분석법도 소개할 예정이다. 그리고 체질과 질병의 유형별로 그 원인을 분석하고 우리가 항상 가까이하는 음식으로 어떻게 예방하고 치료에 도움을 주는지 동양의학 상식에 어긋남이 없이 자세하게 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방향을 조금 돌려서 요즘 주식인 쌀에서 농약이 검출되었다며 참 시끄러운데 이에 대해 좀 언급을 해야겠다. 사실 그런 것쯤이야 선거철이라 정치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을 뿐이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논란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 비료, 농약, 제초제를 뿌리기 시작한 그 시절부터 쌀은 이미 그런 오염에 중독되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벼가 그것들이 섞인 물을 흡수했을 테니 당연하다. 모르긴 해도 정밀하게 검사하면 농약 성분뿐만 아니라 제초제, 비료의 화학성분까지 벼가 머금고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듯 식물에 매운맛을 섞어 물을 주면 그 열매가 맵고 설탕을 섞으면 달기 마련이다. 그처럼 벼뿐만 아니라 밥상 위의 온갖 작물이 다 그렇다. 비료로 벼를 키우고 농약과 제초제를 뿌리기 시작한 수십 년 전부터 각종 암을 비롯한 불·난치병을 앓는 환자가 점점 더 많아진 것 같다. 마시면 곧장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그 독한 약이 밴 음식을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먹었으니 말이다. 미세한 독성이 오랜 세월 인체에 쌓이고 쌓이다 보면 그런 병을 앓을 수밖에 없을 테니 당연하기도 하다.
 
  그리 생각하면 요즘 세상에 뭐 하나 안심하고 먹을 것이 없는 것 같다. 유기농 농작물도 농도만 묽을 뿐이지 농약, 제초제를 쓰지 않으면 농사를 짓기 어려우니 말이다. 그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벼를 자연에 맡겨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어장의 물고기 먹이처럼 퇴비를 주면서부터 작물의 면역력이 떨어져 자생력을 잃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 정도가 점점 심화돼 잡초와 병충의 공격을 방어할 기력을 다 잃고 말았던 것이다. 따라서 생산량은 현저하게 줄어들기 마련이고 근대에 이르러 인구가 폭발적으로 불어나니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부득불 비료, 제초제, 농약을 개발해 작물을 보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쌀에 농약성분이 있다는 것 자체를 크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니란 생각도 든다. 농도가 너무 짙다면 세상이 떠들썩하게 문제를 삼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퇴비 없이도 잘 자랐던 원시자연의 야생 작물을 주식으로 우리의 생명력과 면역력을 기르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 본다. 그리만 하면 그동안 몸속에 축적된 화학성 오염이 오래지 않아서 사라질 테니 항상 우리를 위협하는 불·난치병에서 해방될 수도 있어서 산해진미보다 귀한 약밥상이라 할 수 있겠다. 거기다가 여러 가지 부식, 후식을 체질에 맞게 섭취하고 역시 체질에 맞는 약초를 녹차맛만큼이나 좋게 해서 즐길 수 있게만 한다면 그야말로 병 없이 오래 사는 금상첨화의 비법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의명학이 그리할 수 있도록 앞장을 서려 하거니와 다음 회부터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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