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완도에는 ‘완도 8경’이 있습니다. 그중 마지막 여덟 번째 경치가 ‘금당의 기암상구(奇岩翔鷗)’입니다. 풀이하면 ‘금당도의 기암괴석과 그 위를 나는 갈매기’를 말합니다. 금당도는 고흥과 장흥 사이의 바다에 있으니 완도에서 멉니다. 일대의 섬들을 다 완도군에 몰아주기로 하는 바람에 완도 땅이 됐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얘기가 달랐을 듯합니다. 등지느러미 같은 능선의 경관과 기암의 절벽을 가진 금당도를 고흥도, 장흥도 탐냈을 것이니, 완도가 순순히 가질 수 없었을 거란 얘깁니다. 금당도는 ‘완도 8경’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제 섬에 있는 풍경만으로도 다시 ‘금당 8경’의 경관을 거느리고 있답니다. 한겨울에도 초록으로 가득한 금당도, 그 섬을 다녀왔습니다. # 수반에 올려놓은 수석…금당도 전남 완도의 섬, 금당도는 잘 알려진 섬은 아니다. 이쪽의 섬이야 여행자들 사이에서 주목받은 적이 거의 없긴 하지만, 이웃한 생일도나 금일도에 비교해 봐도 그렇다. 그나마 금당도를 알린 건 금당도보다 훨씬 더 작은, 고흥의 섬 연홍도 때문이다. 무슨 뜻인고 하니, 미술관이 있고 섬 전역에서 미술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연홍도에 관광객이 드나들면서, ‘연홍도에서 본 금당도의 아름다움’이 알음알음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연홍도에 있는 연홍미술관 마당에 서면 거기서 바다 너머로 흰 석벽을 두르고 있는 금당도가 보인다. 연홍도에서 보면 금당도는 섬 전체가 북한산 암봉이나 설악산의 울산바위를 수반에 올려놓은 듯한 모습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빼어난 수석(水石). 그게 금당도의 첫 이미지였다. 금당도는 완도군에 속하지만, 완도에서 가는 배는 없다. 고흥의 녹동항이나 장흥의 회진항에서 금당도 가는 여객선이 뜬다. 녹동항에서는 배로 40분 남짓, 회진항에서는 20분쯤 걸린다. 굳이 더 먼 녹동항에서 배를 탔던 건, 이른 아침 첫 배로 금당도에 들어가 일출을 보기 위한 계산 때문이었다. 고흥에서 탄 배는 금당도 동쪽의 울포항에 닿고, 장흥에서 탄 배는 금당도 서쪽의 가학항에 닿는다. 녹동항에서 이른 새벽에 출발한 첫 배가 금당도 동쪽 울포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도 캄캄한 어둠이었다. 배에서 내려 남쪽으로 가늘게 바다로 뻗은 곶으로 향했다. 곶으로 가는 길에 세포전망대가 있다. 일출과 일몰이 다 보이는 전망대다. 당일로 금당도를 다녀오면서 일출을 놓치지 않겠다면 금당도까지 배에 차를 싣고 들어가야 한다. 배에서 내려 곧바로 트레킹 코스가 시작되는 세포마을까지 바삐 가야 일출 시간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해가 늦게 뜨는 겨울철에만 당일 배를 타고 들어가 일출을 경험할 수 있다. 똑같은 원리로 금당도에서 나올 때는 가학항 쪽에서 배를 타는 게 좋겠다. 서쪽의 일몰 풍경을 감상하면서 나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 전망대 일출 그리고 노을길 금당도에서 일출을 감상하려면 세포전망대로 가야 한다. 금당적벽길은 세포마을에서 걸어서 20분쯤 걸리는 언덕에서 시작된다. 차가 있다면 트레킹 코스 입구까지 갈 수 있다. 입구에는 차를 서너 대 댈 만한 공간도 있다. 금당적벽길은 산허리에 길을 내어 만든 것이어서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거의 없어 편안하다. 이 길에 두 개의 전망대가 있다. 하나는 ‘하트전망대’이고, 다른 하나는 ‘세포전망대’다. 먼저 만나는 하트전망대. 여기에 서면 금당도와 비견도, 거금도의 길고 가는 곶이 겹겹이 바다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자연스럽게 물을 마시러 온 뱀이나 악어가 떠오르는 풍경이다. 첫 배를 타고 금당도로 들어와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삐 왔다면 대략 여기쯤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맞은편 섬, 비견도의 이마 위로 떠오르는 해가 자못 감동적이다. 하트전망대에서 다시 20분쯤 걸으면 세포전망대에 닿는다. 보통 전망대는 높은 곳에 있는데, 세포전망대는 트레킹 코스보다 고도가 낮은 해안에 있다. 전망대에는 제법 번듯한 육각정을 세워놓고, 바다 쪽 공간에는 나무 덱을 깔아놓았다. 나무 덱을 설치한 자리는 이른바 ‘백 패커’들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곳이다. 여기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그래서 장엄한 일출을 만날 수 있다면 뭐가 부러울까. 하나 더. 전날 밤에 날이 맑아 차가운 겨울 바다 위로 뜬 총총한 별까지 볼 수 있다면…. 세포전망대에서 되돌아 나오는 길에 ‘노을길’ 이정표로 방향을 고쳐 잡으면 세포전망대 반대편 해안의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다. 이쪽 바다에는 멀리 다도해의 섬들이 펼쳐진다. 세포전망대에서 일출을 볼 수 있었으니, 그 반대편 해안에서는 노을을 볼 수 있을 것이고, 노을길이란 이름도 그래서 붙여졌으리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벤치가 놓여 있는 이 길에서 보는 노을의 경관도 가슴 저릿하겠다. 노을길의 매력은 노을에만 있는 건 아니다. 아니 이쪽 해안에 노을보다 훨씬 더 근사한 풍경이 있다. 기기묘묘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갖가지 형상의 사암들이 이쪽 해안의 벼랑을 이루고 있다. 모래가 오랜 세월 다져져 만들어진 사암이 바람과 파도에 깎여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조각작품이 됐다. 벌집처럼 숭숭 구멍이 난 바위도 있고, 떡시루처럼 지층이 겹쳐진 바위도 있다.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떠낸 것 같은 자국이 남겨진 순백의 바위도 있다. 이쪽 해안에서 고흥의 연홍도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연홍도에서 처음 본 수석 같은 금당도의 모습이 이쪽 해안을 바라본 것이었다. # 작은 섬에 일곱 시간짜리 종주코스 금당도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섬 산행의 명소다. 그 ‘아는 사람’이 아주 적긴 하지만 말이다. 금당도 섬 산행의 매력은 동쪽 능선과 서쪽 능선에 각각 산행코스가 있고, 동서 능선을 한 번에 다 돌아보는 종주코스까지 즐길 수 있다는 것. 섬이 작고 가장 높은 산이래 봐야 해발 220m에 불과하지만, 줄곧 바다 풍경을 배경으로 삼는 데다 육지의 웬만한 큰 산에 버금가는 26.5㎞짜리 일곱 시간이 넘는 종주코스까지 있으니 다양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
공산만 다녀오겠다면 정상까지는 1시간쯤 걸린다. 쉬엄쉬엄 올라서 한참 동안 경관을 즐기고 출발지점인 면사무소까지 되돌아온다고 해도 2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 공산 정상에서 사방으로 내려다보이는 경관만으로도 거기까지 간 수고를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 그만큼 금당도와 일대 섬들, 그리고 쪽빛 바다의 경관이 훌륭하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내내 공산(孔山)의 ‘공(孔)’이 공자에서 나온 것인지, 타포니 지형의 구멍 때문에 붙여진 것인지 궁금했지만, 섬 안에 아는 사람이 없다. 면사무소에서도, 마을에서 오래전에 펴낸 책자 ‘금당면지(金塘面誌)’에도 단서가 없다. 하기야 면사무소에서 차우리마을로 넘어가는 산중에 바다를 내려다보는 기이한 형상의 바위가 있는데, 금당도의 대표 경관이라면서 그게 ‘수제바위’인지, ‘스님바위’인지조차 불분명할 정도니 말 다했다. 섬 밖의 사람도, 섬 안의 사람도 섬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만큼 섬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 온통 초록의 풍경에 계절을 잊다 공산 정상을 넘어갔다면 거기서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능선을 따라 바위를 딛고 계속 걸어 쟁그랑산을 넘어서 육동마을로 내려오는 길. 이게 동쪽 능선 산행의 완주코스다. 다른 하나는 해안으로 내려가 출발지점인 면사무소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이 길을 두고 ‘병풍바위길’이라 부른다. 내친김에 더 걸어, 해안을 끼고 되돌아와도 후회는 없다. 어느 길을 택하든 실망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걷지 않은 다른 길은 아껴두었다가 다음에 다시 걸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해안 길, 그러니까 병풍바위길을 추천한다. 이 추천은 겨울에만 유효하다. 해안 길은 온통 초록의 세상이다. 난대림의 나무도 초록을 뿜어내고 해안 오솔길 양옆으로 대형 양치식물인 발풀고사리가 그득해 계절을 잊게 만든다. 이건 완전히 초록의 사태(沙汰)다. 길을 걷다 보면 처음에는 한겨울의 초록 잎들이 신기하다가, 이내 계절을 잊게 된다. 이 길에는 기이하게 둥치가 묶은 매듭 형상으로 자라는 소나무가 있다. 어떤 고통이 나무를 저리 자라게 만들었을까. 눕고 뒤틀었음에도 나무는 푸름을 잃지 않았다. 이번에는 병풍바위길로 되돌아가지 않고 동쪽 능선을 따라 쟁그랑산으로 내처 걸었을 때의 코스다. 쟁그랑산을 주민들은 금당산이라고도 하는데, 지도에는 복개산으로 나와 있다. 명칭이 셋이나 된다는 건 얽힌 이야기도 많다는 뜻. 쟁그랑이란 이름은 스님이 산꼭대기의 연못에 밥그릇 뚜껑(복개)을 띄우니 바람에 부딪혀 ‘쟁그랑’ 소리를 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 전한다. 설명은 이렇지만 궁금한 것투성이다. 우선 산 정상에는 연못이 없다. 그리고 스님은 복개를 왜 하필 산정의 연못에 띄웠던 것일까. 쟁그랑산에는 바위를 치면 맑은 쇳소리가 나는 돌들이 있다. 쟁그랑산이란 이름이 붙은 건 그래서가 아닐까. 동쪽 능선 산행은 쟁그랑산에서 육동마을로 내려서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육동마을은 뜻밖에 ‘뭍 육(陸)’자를 쓴다. 섬 한가운데 산을 둘러치고 있어 바다가 안 보이는 유일한 마을이기 때문이란다. # 종주산행, 그리고 섬마을 구경 동쪽 능선 산행만 한다면 육동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걸어서 면사무소까지 돌아오면 된다. 동쪽 능선에다 서쪽 능선 산행까지 붙여 종주하려면 육동마을에서 서쪽 능선 산행 출발지점인 가학리의 개기재 고개까지 걸어야 한다. 아침 배로 금당도로 들어갔다면 개기재 고개에서 금당도 서쪽 능선으로 올라붙을 때쯤 오후 나절이 된다. 그러니 서쪽 바다를 보고 가는 능선길에서는 햇살을 받은 바다로 온통 눈부시다. 금당도 최고봉인 상랑산을 딛고 넘어서 오봉산에 올랐다가 내려와 도로 건너편의 봉지산(195m)까지 타고 넘어가면 금당도 서쪽 능선 산행이 마무리된다. 종주를 마치면 금당도 안의 산이란 산은 모두 섭렵한 셈이 된다. 섬 산행은 배 시간 때문에 늘 시간에 쫓기게 마련. 종주산행을 마무리하는 온금포에서 고흥행 배가 뜨는 울포 선착장까지 1시간을 더 걸어야 하니 마음이 바쁘다. 숙소와 식당이 부족한 작은 섬에서 자칫 배를 놓친다면 그런 낭패가 또 없으니, 여유 있는 시간 배분은 필수다. 좀 일찍 산행을 마치고 금당도의 마을 구경을 해보자. 섬의 경관 중에서 가장 이색적이었던 것은 공산 아래 차우리마을의 연못이었다. 연못은 본래 민물고기를 기르던 양식장이었단다. 섬에서 민물고기 양식이라니…. 지금은 양식을 하지 않지만, 연못은 마을 뒤편의 바위산인 공산을 수면 위로 도장처럼 찍어내며 마을의 운치에 한몫을 톡톡히 한다. 연못 앞에는 지금 동백이 한창이다. 연못 뒤쪽으로는 1909년에 한옥으로 지은 마을의 동각(洞閣)이 있다. 뭐 그리 특별하달 것 없는 한옥인데, ‘동각을 세울 때 인부들이 대들보가 너무 커 겁을 낼 것 같아 야간을 이용해 공사를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허풍도 이런 허풍이 없다 싶은데, 아마도 섬에서는 그만 한 규모의 한옥 건축이 일대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금당도의 진기한 절경은 해안 절벽 쪽에 모여 있다. 병풍바위와 부채바위, 교암청풍, 금당절벽, 초가바위, 코끼리바위…. 이런 절경의 해안 풍경은 배를 타야만 볼 수 있다. 금당도 유람선은 고흥 거금도 금진항에서 하루 두 번 운항하는데, 요즘 같은 비수기에는 손님이 없으면 결항하는 경우가 많다. 금당도 주민에게 들은 이야기 한 토막. 금당도 서쪽에 금당도에 딸린 작은 섬 질마도가 있다. 이 섬이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연예기획사 대표의 소유란다. 금당도에 딸린 섬을 샀다면 필시 금당도를 와봤을 것이고, 금당도가 가진 아름다운 풍경 또한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섬 하나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당연한 일이었겠다. ■ 여행정보 관광객도 고흥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다. 회진항에서 금당도까지 하루 5회 운항한다. 녹동항에서 금당도까지는 하루 4회 운항하는데, 첫 배가 오전 6시에 있다. 금당도에서 녹동항으로 나오는 막배는 오후 5시 50분에 있다. 당일로 섬에 들어갔다 나온다 해도 12시간 정도 섬에 머물 수 있어 종주등반을 하는 데 여유가 있다. 금당도로 가는 배는 차를 싣고 갈 수 있는 카페리호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금당도에 여관이 하나 있고, 민박도 예닐곱 곳이 있지만 아무래도 불편하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고흥이나 장흥 쪽에서 묵고 당일로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 장흥보다 고흥의 숙소 사정이 좋은 것도 장흥의 회진항보다 고흥의 녹동항에서 배를 타는 관광객이 더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녹동신항 주변에 시설이 괜찮은 모텔들이 모여 있다. 금당도는 그리 크지 않은 섬이지만 면사무소도, 보건소도, 중학교도, 우체국도 있다. 섬 안에 아리랑식당(063-843-7071), 대일식당(063-843-9727), 광주식당(063-843-9742)을 비롯해 일곱 군데 식당이 있는데 민박을 겸하는 곳이 많다. 식당은 모두 관광객보다는 지역 주민들을 상대하는 밥집이라 특별한 메뉴는 없다. 면사무소 맞은편의 중국집 남해루(063-843-0073)는 풍성한 해물을 넣은 칼칼한 맛의 짬뽕으로 제법 이름난 곳이다. 하지만 자장면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요즘 같은 비수기에는 식당 영업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영업 여부를 알아봐야 한다. 섬에 도착해 식당을 찾아가 미리 식사를 예약해 두는 게 낫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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