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안영배 기자의 풍수와 권력_09

醉月 2014. 12. 30. 01:30

[안영배 기자의 풍수와 권력]

 청와대는 天氣 명당 백악관·중난하이는 地氣


명당양택 풍수에서 가장이 어떤 곳에 사는지에 따라 집안의 명운(命運)이 좌우되듯 국가 경영에서도 통치자가 어떤 곳에 머무는지에 따라 국운(國運)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과연 청와대는 다른 나라 최고 권력자들의 거주 공간과 비교할 때 얼마나 풍수 경쟁력을 갖췄을까.

풍수에서는 죽은 자의 집[음택(陰宅)] 못지않게 산 자의 집[양택(陽宅)]도 중요시한다. 중국의 유명한 고전 양택지리서 ‘황제택경’은 음택과 양택을 비교하면서 양택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정도다.


‘묘지가 흉하지만 집터가 길하면 자손이 관록(官祿)을 얻으며, 묘지가 길하지만 집터가 흉하면 자손의 식록(食祿)이 부족하게 된다. 묘지와 집터가 모두 길하면 자손이 영화로워지고, 묘지와 집터가 모두 흉하면 자손이 고향을 떠나거나 대가 끊기게 된다.’

음택과 양택이 모두 길하면 으뜸이겠으나, 비록 조상의 음택이 흉지라 하더라도 그 자손이 좋은 양택에서 살면 관에서 주는 밥은 먹고살 정도는 된다는 게 ‘황제택경’의 논리다. 조상과 자손이 유전자적 인연에 의해 서로 묶여 음택을 통해 기운을 주고받는다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영향력보다, 자손이 현재 사는 집에서 직접적으로 받게 되는 터의 기운이 현실적으로 더 크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터의 기운을 살피고 이를 중요시한 전통은 매우 오래됐다. 신라 건국 초기에 석탈해(昔脫解·재위 57~80)가 토함산 위에서 땅을 살피다가 호공(弧公)이 사는 집터가 초승달 형국의 명당임을 알고 그곳을 빼앗아 살았는데, 그 땅이 옛 신라의 궁궐인 월성(月城)이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석탈해와 가야의 왕 자리를 놓고 다투었던 수로왕 역시 도읍 터를 정할 때 신답평(新畓坪)이라는 지역에서 이곳저곳을 살펴본 후 “이 땅이 여뀌잎처럼 협소하기는 하나 산천이 기이하게 빼어나니 16나한이 살 만한 곳이다. 하물며 1에서 3을 이루고 3에서 7을 이루매 칠성(七聖)이 살 곳으로도 적합하다”고 하면서 이곳을 도읍지로 개척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처럼 삼국시대 초창기부터 전승돼온 ‘터 잡기’는 고려와 조선 왕조의 개국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이어졌고,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한국인의 심층의식에 굳건히 자리 잡았다.

왕조의 종묘사직(宗廟社稷)이 터를 잘 잡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국도(國都) 풍수론은 현대에 들어서서 한 국가의 운명은 그 최고 통치자가 정치를 펼치는 공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게 된다는 국운(國運) 풍수론으로도 연결된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한국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는 국운 풍수상 어떠할까. 또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과 일본, 중국의 최고 통치자들이 머무는 공간과 비교할 때 얼마나 풍수 경쟁력을 지녔을까.


청와대는 북악산을 뒤로하고 본관(가운데)을 중심으로 좌우에 별관이 배치돼 있다.

청와대 터 둘러싼 풍수 논쟁

우리나라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그곳의 주인이 되길 꿈꾸는 청와대부터 살펴보자. 청와대 터에 대해 풍수적 시각으로 문제점을 공식 제기한 이는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가 처음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 ‘신동아’(2000년 3월호)에 풍수학자인 최창조·김두규 교수를 초청해 풍수 대담을 진행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최 전 교수는 “경복궁 북쪽 문인 신무문과 청와대 정문 사이에 난 도로를 경계로 하여 그 아래는 사람들의 거주처가 되고 그 위쪽은 신령(神靈)의 강림지가 된다”면서 신적 권위가 부여되는 청와대 터는 산 사람이 사는 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두규 우석대 교수 역시 일제강점기 청와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 관저(舊 본관)에 살던 일본인 총독들의 말로가 좋지 않았고, 광복 이후 그곳에 살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 또한 퇴임 후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 등을 들며 청와대 터의 문제점을 짚기도 했다.

  

이후 청와대 풍수 논쟁은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대통령 측근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곤 했다. 모든 것이 청와대 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청와대 이전론까지 제기됐다. 최근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 청와대 이전을 아예 공약으로 내세운 대선 후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풍수를 업으로 삼은 지관들도 대체로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산줄기가 골이 많이 져서 골육상잔의 운명을 피하기 어렵고, 산에 박혀 있는 바윗돌들이 살기(殺氣)가 강해 흉하다 △서북쪽 자하문 고갯길의 요처(凹處)에서 불어오는 골바람(북서풍)은 남향인 청와대 건물 처지에서 볼 때 황천살에 해당하므로 매우 불안한 형상이다 △주산인 북악산의 원줄기가 가회동 쪽으로 뻗어나가는 바람에 청와대는 배신당한 꼴이라는 점 등을 들어 청와대 흉지론 쪽에 무게를 둔다.

   

그런데 청와대 터가 명당임을 주장하는 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바로 청와대가 운영하는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www.president.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의하면,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현재의 청와대 신축 공사를 위해 대지를 조성하던 중 관저 뒤의 암벽에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새겨진 글자가 발견됐다는 것. 가로 2m, 세로 1.3m 크기의 바위에 새겨진 이 글자는 조선 중기인 300~400년 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찌감치 이곳이 으뜸가는 명당 길지로 꼽혔음을 말해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홈페이지는 또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정기를 끊어버리려는 속셈으로 경복궁 바로 앞에다 총독부 청사를 건설하고, 일본인 총독 관저는 경복궁 뒤쪽 경무대에 세웠다는 역사도 싣고 있다. 경복궁보다 지대가 높은 경무대 자리에 총독 관저를 지으면 남쪽의 총독부 건물과 함께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을 완벽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풍수적 계산에서 나온 건축이었다는 것이다. 즉 청와대가 속한 옛 조선의 궁궐 자리가 명당이기에 일본이 조선의 기운을 꺾으려고 풍수적 침략까지 자행했다는 뜻이다.


필자는 서울의 터가 고려왕조 때부터 왕이 임시로 머무는 이궁(離宮)을 세울 정도로 중요시한 곳이었고, 특히 조선의 한양도성(서울)은 재물 기운과 함께 권력 기운이 강한 곳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신동아’ 10월호 참조). 청와대 터는 크게 보았을 때 이 기운의 테두리 안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입지적으로 청와대 터자체는 사람이 못 살 정도의 흉지로 볼 이유는 없는 것이다.

 

풍수지리학자 이몽일 박사는 청와대 일대에 있던 고려 궁궐은 고려왕조 시절 계획적으로 세워진 곳이라고 말한다. 풍수사상이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고려 숙종 9년(1104) 왕업(王業) 연장을 위한 길지로 이곳을 지목했고, 주변의 인왕산과 남산의 높이를 고려한 풍수적 설계에 의해 ‘연흥전’이라는 소궁궐을 건설했다는 것. 조선왕조 개국 때도 원래는 연흥전 터에 본궁을 건설하려 했지만 장소가 협소해 그 아래쪽으로 내려와 경복궁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즉 청와대 터는 고려와 조선왕조가 각별히 공을 들인 명당자리라는 얘기다.


국운과 ‘주인’들의 운명

이 박사는 특히 청와대 흉당론과 관련해 “새 대통령이 나오면 얼풍수들이 으레 그 사람의 조상 묘 터는 말할 것도 없고 생가 터를 이 세상의 둘도 없는 대명당으로 미화하다가 퇴임 시 정쟁이나 비리로 대통령의 위상이 추락하면 그것을 오로지 ‘청와대 터’ 탓으로 돌린다. 사람의 일을 탓하지 않고 땅을 탓할 때 풍수는 미신이 되고 만다”며 맹목적인 지리발복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청와대 터와 대통령들의 풍수적 상관관계는 사실 우리나라 국운의 흐름에서 거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개인의 운 흐름은 대개 60년을 주기로 호운(好運)과 불운(不運)의 순환을 밟지만, 국가나 글로벌 기업의 경우는 보다 더 큰 흐름인 360년(60년이 6회를 반복하는 주기)을 기준으로 상승운과 하강운의 순환 과정을 겪게 된다. 크게는 전반 180년은 양(陽)의 시대로, 후반 180년은 음(陰)의 시대로 분류할 수 있다.

실제 360년 대순환 주기는 어떤 나라의 운세를 살필 때 키워드 노릇을 한다. 우리나라 전쟁사를 예로 들어보자. 1231년 제1차 여몽전쟁을 시작으로 고려는 몽골과의 지루한 전쟁을 겪었고, 그 후인 1592년엔 일본의 침략으로 조일전쟁(朝日戰爭·임진왜란)을 겪었으며, 1950년엔 6·25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이 3개 연도 사이엔 모두 360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60갑자 이론으로 세계 각국의 국운 흐름을 연구하는 명리학자 김태규 씨는 음양오행상 갑목(甲木)에 해당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60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갑진(甲辰)의 해가 국운 분기점이 된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360년 단위의 국운은 모두 6단계의 마디(60년)로 진행되는데, 1904년(甲辰) 시작된 제1단계 순환 마디는 1963년에 마쳤고, 지금은 1964년(甲辰)부터 시작된 제2단계 순환 마디에 해당한다는 것.


이를 청와대 터와 연관지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제1단계(1904~1963) 시기는 계절로 치면 춥고 배고픈 이른 봄철에 해당하며 어느 나라든 고난과 시련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1905년 일제에 의해 외교권을 뺏기고 1910년 국권까지 뺏기는 수모를 겪었다. 일제가 경복궁에 조선총독부를 건설하고 청와대 터에 총독관저를 지은 것(1939년)도 이 시기다.

새로 지은 관저에서는 모두 3명의 일본인 조선총독이 거쳐 갔다. 1945년 광복 이후엔 미군정의 하지 장관과 우리나라의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무실 겸 주거지로 사용하면서 6·25전쟁과 남북분단, 5·16군사정변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겪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역대 조선총독과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비참한 말로를 오로지 청와대 터와 연결하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국운의 흐름상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해당하므로 나라를 빼앗기고 최고 통치자의 운명 또한 정쟁 등으로 비극적이고 험난한 길을 겪어야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운이 밑바닥에 있을 땐 그 터의 기운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는 법이다. 고려시대에 등장한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도 국운의 부침에 따라 터가 힘을 받쳐주기도 하고 쇠하기도 한다는 이론적 배경을 깔고 있다. 이 시기에 지어진 관저 내부가 최창조·김두규 두 교수의 지적처럼 양택풍수상 잘못된 구조나 살기를 받아 그 해로움을 겪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운의 밑바닥 시기에 대통령의 관저가 마냥 좋을 리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건물 자체가 사라져 이를 확인할 길은 없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3년 일제 잔재 청산과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이 건물을 헐어버렸기 때문이다. 옛 건물 터는 현재 청와대 경내에 위치 표석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자손이 설치면 망하는 자리

1964년(甲辰)부터 시작된 제2단계(1964~2023) 시기는 어떠할까. 박정희 정권의 제3공화국 출범과 맞물려 시작된 제2단계는 국가 발전을 위한 역동성이 발휘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김태규 씨는 “이 시기에 해당하는 국가의 경우 대부분 위대한 지도자들이 등장하는 특징이 있으며, 더불어 국가 발전을 위한 과정에서 내부적으로는 심한 갈등과 분열 양상이 드러나기도 한다”고 말한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러시아제국의 표트르 대제,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 미국의 링컨 대통령, 중국의 덩샤오핑,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모두 해당 국가의 국운 제2단계 시기에 등장해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초석을 다진 지도자급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


국운 제2단계 시기에 청와대 구본관의 주인들은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독재자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우리나라의 절대 빈곤을 해결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엔 경제성장과 올림픽 등을 통해 국력과 국격(國格)을 드높였다. 이 시기에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탄을 받을 만큼 급성장했다. 터와 국운을 논하는 국운 풍수적 시각으로 볼 때도 청와대 자리를 흉당이라고 폄훼할 근거가 박약한 것이다. 다만 퇴임 후 겪은 대통령 개개인의 불행은 터로 인한 국가수반의 불행이라기보다는 각자가 스스로 초래한 ‘예정된 사건’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할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제2단계 시기의 정점이라 할 만한 1989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신축을 결정해 오늘의 청와대 모습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규모 수행단을 거느리고 방한했을 당시 청와대 구본관이 너무 협소해 나라의 체면을 구긴 사달이 났는데 이 일이 신축 공사의 배경이라고 한다.


청와대 신축 배경이야 어떻든 구본관은 사실 북악산 기슭의 후미진 곳에 자리 잡아 시민들이 쉽게 바라다볼 수 없는 구중궁궐과 같았으나, 새로 자리 잡은 본관은 서울시내에서 곧잘 눈에 띌 뿐만 아니라 주변 산과 조화를 이뤄 안정감을 주는 명소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청와대 신축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천하제일복지’라는 암각 글자는 청와대가 비로소 대한민국 국운을 상징하는 대표성을 갖게 됐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원래의 청와대 구본관이나 현재의 본관 자리는 터의 국세(局勢)로 살펴볼 때는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건물이 입지한 모양새로 볼 때는 차이가 있다. 새 청와대 본관은 본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별채를 각기 배치한 ㄷ자 구조인데, 최고의 권력 터답게 땅에서 분출하는 지기(地氣)형 권력 에너지가 건물 전체를 둥그렇게 감싸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중의 천기(天氣)가 청와대 본채를 중심으로 빛살처럼 쏟아져 내리면서 국운 상승을 북돋우는 기상을 하고 있다. 이는 구본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운이다.(앞 사진 참조)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청와대 본채를 정면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 방향의 대통령 집무실과 오른쪽 별채 일부분의 경우 강한 살기(殺氣)에 노출됐다. 이러한 살기는 대통령의 직계 자손에게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살기는 권력과 맞물린 기운이기도 하므로 대통령 자손이 권력과 연계된 행동을 할 경우 바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예컨대 청와대 신축 관저의 주인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그 아들들이 권력에 개입했다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다만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은 독신이라서 자손 문제에서는 자유롭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청와대 관저는 국운을 북돋우는 하늘의 기운이 땅의 권력 기운과 너무 강하게 맞물려 있어서 자칫하면 대통령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대통령이 강한 권력 기운을 감당할 만큼 기운을 중화할 수 있는 풍수적 비보(裨補) 장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神氣 강한 일본 총리 관저

현재 대한민국은 국운 제2단계의 끝자락 부분에 와 있고, 10년 후인 2024년(甲辰)엔 제3단계로 접어든다. 국운 제3단계는 내부에서 통합돼 뭉쳐진 강력한 힘이 외부 세계로 뻗어나가고 발산하는 시기다. 김태규 씨는 제3단계 시기에 가장 위험한 점은 과도한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이어졌다가 후에 외부로부터 역공격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3단계 시기에 있었던 독일(1890~1949)과 일본(1885~1944)의 경우 팽창주의에 의해 침략전쟁을 벌였다가 철저한 응징을 당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대한민국은 국운 제2단계가 끝나는 2024년을 전후해 실질적인 남북통일 상태를 맞이할 것이며, 본격적인 국운 제3단계 시기에는 화려한 비상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어쩌면 현재의 청와대 상공에서 내려오는 천기는 사실상 국운 제3단계를 위해 예비해온 기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총리 관저. 앞쪽 건물이 숙소용이고 뒤쪽이 집무용이다. 둥그런 모양이 영기(신기)가 집중되는 곳이다.

청와대의 천기는 사람마다 독특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모양이다. 어떤 이는 북악산 자락 높은 곳에 위치한 청와대 경관이 위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처럼 인간 세상과 동떨어진 신들의 세상처럼 느껴진다고도 한다. 물론 이러한 느낌을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운을 주도하는 천기 에너지가 가진 속성과 유사한 부분이 있긴 하다.


사실 신들이 노니는 느낌을 주는 최고 권력자의 공간은 청와대가 아닌 일본 총리 관저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지난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취임 뒤 총리 관저 입주를 거부했는데, 총리 관저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괴담에 대해 “모시 요시로 전 총리가 귀신의 일부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입주 거부의 이유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현재도 관저에서 생활하지 않는 아베 총리는 자택에서 출퇴근한다.


일본 총리 관저는 집무실 공간과 숙소용 공간으로 나뉜 구조다. 그런데 숙소용 공간엔 하늘로부터 영기(靈氣)가 내려온다. 이러한 영기는 천기와 지기가 쇠해 기운이 공중으로 떠버린 공간에서 가끔씩 출현하기도 한다. 일본 전직 총리가 숙소에서 귀신을 보았다는 얘기도 영기의 기운이 강하게 침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서울 여의도 국회도 일본 총리 관저와 똑같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기운이 공중으로 떠 있는 상태다. 한때 국회 의원회관에서 귀신 출몰설로 국회 직원들 사이에 소동이 일어났는데, 기운이 뜬 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地氣 강한 백악관과 중난하이

어찌 보면 일본 최고 권력자인 총리가 머무는 공간의 기운이 쇠했다는 건 일본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음을 의미한다. 필자가 보기에 일본의 기운은 총리 관저가 아니라 일왕이 머무는 곳에서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늘 아래 천손(天孫)민족으로 자부하는 우리나라는 사실 땅 기운보다 하늘 기운에 더 민감했던 듯하다. 삼국시대 이래 남겨진 문화유적들을 보면 대개 천기가 강하게 내려오는 곳이거나, 천기와 지기 혹은 천기와 수정기(水精氣)가 배합된 곳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역시 지기보다는 천기의 영향력 아래 강하게 노출돼 있음은 물론이다.


이와 달리 미국 대통령이 머무는 백악관과 중국 최고 권력자가 머무는 중난하이(中南海)는 천기 대신 지기가 강력한 곳이다. 백악관 주변 일대는 원형의 지기가 세계를 경영할 수 있도록 대국(大國)의 기운을 뿜어낸다. 백악관은 조성 당시 최고의 풍수적 감각을 갖춘 설계자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보인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도시계획자인 피에르 랑팡과 함께 새 수도인 워싱턴에서 백악관과 의사당 건설 등 도시계획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랑팡은 최고의 풍수가라고 칭송받을 만큼 뛰어난 안목을 갖췄던 인물인 듯하다. 건물 배치에서 탁월한 입지를 구축한 미국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풍수 대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백악관의 기운은 향후 수십 년 후쯤엔 휴지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기쇠왕의 논리는 외국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쯤이면 백악관에 잠복해 있던 살기가 터져 나와 국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중국의 최고 권력층이 거주하는 중난하이의 경우 베일에 싸인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궁궐인 자금성 서쪽 지역에 자리한 중난하이는 중하이(中海)와 난하이(南海)라고 하는 2개의 호수를 합친 명칭인데, 마오쩌둥, 덩샤오핑, 저우언라이 등 중요 인물이 관저로 사용한 건물들이 있으며, 시진핑 현 주석 역시 중난하이의 근정전(勤政殿)에서 집무한다. 이곳 역시 베이징 도심에서 서쪽으로 25㎞ 떨어진 향산(香山)에서 오는 지기가 강하게 맺혀 있으며, 세계 경영의 꿈을 키우는 곳이다. 단 이곳의 기운은 분열의 기상도 없지 않으므로 향후 중국 정치의 미래는 계속 지켜볼 일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이웃 나라들의 최고 권력자가 머무는 공간과 청와대를 비교하더라도 청와대 터가 결코 다른 곳에 ‘꿀리지’않는다. 백악관이나 중국 근정전에 흐르는 지기 못지않은 천기를 청와대가 품고 있으며, 특히 이러한 천기는 시들어가거나 휴지기에 들어가는 기운이 아닌, 젊은이의 기운처럼 앞으로 뻗어나갈 기운이라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 터에서 대통령들이 정치를 펼친 지 한 갑자가 넘었다. 그 60년의 짧은 시기에 대한민국은 단군 이후 가장 부강한 나라로 성장했다. 이 기운이 지속되려면 청와대에 살던 역대 대통령의 말로가 좋지 않았다는 흉당설은 이제 자제해야 할 때도 된 듯하다. 새 청와대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부 좋지 않은 살기는 비보풍수로 제살(制煞)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몽일 박사의 “청와대 풍수의 문제점은 터를 잘못 잡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운용의 묘미를 살리지 못하는 데 있다”는 말이 더욱 피부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공간 운용의 묘미야말로 현대 풍수의 백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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