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거제의 바다와 마주 서보고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거제가 얼마나 매혹적인 밤바다를 품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경관의 빼어남과 풍경의 다채로움으로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는 거제는 익숙한 여행지입니다. 일찌감치 이름을 날린 해금강과 외도는 물론이거니와 몽돌 해안과 운치 있는 해안도로까지…. 거제는 바다가 가진 매혹적인 풍경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철 거제는 피서객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번잡스러운 낮의 풍경을 버리고 집어등으로 수평선이 환하게 빛나는 거제 밤바다를 찾아갔던 건 ‘한적한 거제’의 경관을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피서철을 앞두고 여기 풀어놓는 건 거제의 여름 밤바다 이야기, 혹은 낯선 거제의 풍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깊은 밤에 여차 ∼ 홍포의 길 위에 서다 교교한 달빛 아래 밤바다를 향해 섰다. 숙소에 짐을 풀었다가 창밖으로 먼바다 수평선 끝에 늘어선 오징어잡이배의 황홀한 도열에 홀려서 나온 길이었다. 오후 10시. 이곳은 거제 섬 남쪽의 여차∼홍포 해안도로 전망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달이 수면에 은빛 물살로 반짝거리면서 어둠 속에서 섬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대병대도, 소병대도, 소매물도, 대매물도…. 점점이 떠 있는 섬 뒤의 수평선은 오징어잡이배가 켠 집어등 불빛으로 환했다. 불빛 뒤쪽의 구름이 마치 무지개처럼 형형색색으로 빛났다. 집어등을 켜고 밤을 새워 오징어를 잡는 모양이었다. 이날 낮의 바다는 너울이 높았다. 어둠이 내린 거친 바다 위에서의 고단한 어획의 노동이 어쩌자고 이리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일까. 아는 사람은 안다. 거제의 비경 중의 비경이 바로 이곳 거제 최남단 여차 해변에서 홍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에 있음을…. 거제를 찾은 외지인들은 해금강과 외도, 바람의 언덕을 바삐 둘러보고 돌아가지만, 실상 거제에서 가장 압도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장소가 이곳 3.5㎞짜리 해안도로다. 비포장과 시멘트 포장도로가 교대로 이어지는 이 길이 보여주는 미감은 복합적이다. 여차 해변을 내려다보는 길의 높이와 굽이진 길의 유연함이 그 길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섬의 풍경과 어우러진다. 그 길의 매력은 다만 거기서 보는 풍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길의 아름다움이 전망대에만 있다면, 거제시가 이 길을 지키고자 도로 포장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경관만을 소비한다면 말끔하게 도로를 포장해 편하게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편이 오히려 나았을 것이다. 비포장도로는 자연스럽게 접근을 막는다. 그래서 지켜지는 건 적막이다. 다만 풀벌레 소리와 처연한 울음의 새소리, 그리고 바람이 숲을 흔드는 소리가 풍경의 배경이 돼서 적막으로 비어진 공간을 채운다.
# 달밤에 만나는 거제 밤바다의 절정 한낮에는 물론이고 이른 아침과 해질 무렵 여차∼홍포 해안도로를 자주 만났다. 풀무로 바람을 불어넣은 아궁이처럼 수면을 온통 벌겋게 달구며 저무는 해를 만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게 최고의 풍경이라 여겼지만, 이제 고쳐 적는다. 여름날이라면 이 길의 절정의 시간은 두말할 것 없이 ‘달밤’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차 쪽에서 홍포로 이어지는 길에서 만나는 세 번째 전망대에서 맞이하는 여름밤이 가장 감격적이다. 밤바다를 마주하고 전망대에 오르면 어둠으로 눈이 둔해지는 대신, 오감이 예민하게 깨어난다. 요즘 같은 한여름에도 거제 남쪽 바다의 수온은 18도 남짓. 낮 동안은 가마솥 같은 폭염이었어도 해풍이 부는 밤의 해안에서는 반팔 차림이 서늘하다. 바다와 섬은 수평선의 어선들의 집어등에 의해 실루엣으로 떠오르고, 그 사이로 불 밝힌 어선과 제 몸집보다 네댓 배나 큰 배를 끄는 예인선들이 부지런히 오간다. 저 멀리 매물도 쪽에서는 등대의 불빛이 명멸한다. 구름이 많은 날이어서 볼 수 없었지만, 맑은 여름밤에 이 바다 위로 별이 뜬다면, 은하수가 펼쳐진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바다 위의 별은 마치 아이맥스 영화 스크린처럼 시선 정면의 수평선 위로 뜬다. 해안도로의 전망대 위에서 자정을 넘겼지만, 그 사이에 이 길을 오가는 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해변마다 외지인들이 몰고 온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피서철에도 이 길만큼은 한적하다. 한밤중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올여름 피서철에 거제에 가게 되거든, 그리고 그날 마침 달빛이 밝거나 별이 총총 뜨거든 한밤에 여차∼홍포 해안도로에 꼭 올라보시길…. 그 길에서 되도록 오래 머물며 여름밤의 어두운 바다와 섬들이 집어등과 등대로 밝혀지는 밤바다의 황홀한 경관을 꼭 만나 보시길…. # 노자산에서 가라산으로 건너가는 길 노자산 산행은 거제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한다. 낮 동안의 산행이라면 휴양림 안쪽에서 노자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2’코스를 택해 노자산에서 가라산으로 종주하는 편이 낫다. 이 구간에서 능선을 따라 양쪽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은 찬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그러나 능선을 오르내려야 하는 데다 위태로운 바위 구간이 있어, 지형에 익숙하지 않다면 야간산행으로는 무리다. 야간산행이라면 정상이 아니라 ‘등산로1’코스를 따라 노자산 능선의 전망대까지만 오르는 게 좋겠다.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휴양림에서 학동 해변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시작된다. 바닷가의 산은 해발고도 0인 수준점 근처에서 출발하니 숫자로 짐작하는 높이보다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 보통. 하지만 고갯마루의 출발지점이 이미 해발고도 150m가 넘으니 산행은 생각보다 쉬운 편이다. 고갯마루에서 출발해 왕복 1시간 30분이면 전망대까지 넉넉하다. # 밤바다의 황홀한 풍경을 내려다보다
목적지인 능선의 전망대에 당도하면 학동 해변의 반대쪽, 통영 일대의 장쾌한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목조 전망대에 오르면 한산도, 산달도, 장사도가 그림 같이 떠 있고, 그 너머로 통영 일대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해가 넘어갈 무렵이라면 낙조가 남긴 붉은 기운이 바다와 섬들을 적시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아쉽게도 밤이 깊어 노자산에서의 밤 풍경은 사진에 담지 못했다. 고도를 높인 거제 밤바다 풍경은 황홀했지만, 안타깝게도 사진으로는 그 불빛들이 감광되지 않았다. 해무가 산자락을 몰려다니던 낮 시간에 다녀온 사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짐작하길 바랄 수밖에…. 야간산행은 내려설 때 주의해야 한다. 노자산에서 내려오려면 길을 되돌아 짚는 대신, 정상 쪽으로 더 가다가 첫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이 길로 가면 이내 순한 임도로 내려오게 된다. 환한 달빛 속에서 잘 다듬어진 임도를 따라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길은 편안하기도 하거니와 운치도 있다. # 유람 여행의 명소, 해금강과 외도 해안 곳곳이 명승인 거제 여행은 말 그대로 ‘유람’이라 할 만하다. 해안도 절경이지만 거제에서는 섬 여행도 빼놓을 수 없다. 여행자들을 싣고 가는 배로 당도할 수 있는 섬이 여럿이다. 섬 하나가 통째로 정원을 이룬 외도가 간판격이고, 늦봄의 동백으로 이름난 지심도, 최근에야 도보 길이 놓인 내도, 그리고 매물도와 장사도로 가는 배도 거제에서 뜬다. 매물도와 장사도는 행정구역으로 보면 통영 땅이니 일단 제쳐 두고, 여행자들의 발길이 자주 닿는 거제의 섬은 외도와 내도, 그리고 지심도다. 거제의 대표적인 명소인 해금강은 말할 것도 없고, 해금강 유람과 묶어 운항하는 외도 역시 일찌감치 알려진 곳. 갖가지 외래종 식물과 이국적인 건축으로 단장된 섬은 낭만적이면서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외도의 명성 때문에 해금강의 위세가 깎였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해금강의 경관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갖가지 바위마다 이름 붙여 이야기를 풀어놓던 유람선 선장의 수다가 근래 들어 많이 줄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고 지는 외도의 정원은 어디든 나무랄 데 없고, 정원 구석구석과 해안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근사하다. 섬은 긴 시간의 노동과 정성으로 더 이상 손댈 곳이 없는 완결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구태여 흠을 잡자면 피서철이면 관광객을 가득 태운 유람선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바다 위에 정박할 정도로 번잡스럽다는 것, 그리고 타고 온 유람선으로 섬을 나가야 하는 원칙 때문에 2시간 안쪽만 머물 수 있다는 것 정도다. # 피서철에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만나다 이에 비하면 지심도는 외도와는 정반대 분위기의 섬이다. 거제 장승포항에서 남동쪽으로 5㎞ 남짓 떨어진 지심도는 너비 500m, 길이 1.5㎞의 자그마한 섬. 섬 안에는 동백나무와 함께 후박나무, 소나무 등 37종의 식물이 뒤섞여 자라는데 10그루 가운데 7그루가 동백이다. 섬 전체가 동백숲인 지심도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붉은 꽃이 후드득 떨어져 융단처럼 덮이는 늦봄 무렵. 그러나 여름날 짙은 동백 숲 터널의 분위기도 못지않다. 지심도는 꽃이 없더라도 아름드리 동백이 드리운 짙은 숲만으로도 훌륭하다. 굵고 오래된 동백나무가 이끼를 뒤덮은 채 가지를 뒤틀고 있는 숲은 신령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여름날에는 저 멀리 끝이 소실점으로 가물거리는 어두운 숲 터널이 축축하고 서늘한 바람이 지나는 길목이 된다. 어둑한 동백 숲과 함께 일제강점기의 포대와 진지 등을 느긋하게 짚어가며 둘러보는 맛이 썩 괜찮다. 거제도가 피서 인파로 북적이는 한여름에도 찾는 이가 많지 않다는 것에도 점수를 줄 수 있다. 외도와 함께 둘러본다면, 인공으로 가꿔진 이국적인 섬의 낭만적인 풍경과 압도적인 숲이 그려내는 적막한 아름다움을 서로 비교해 볼 수도 있겠다. 이쯤에서 피서철에 거제도의 빼어난 경관을 한적하게 만날 수 있는 몇 곳을 더 짚는다면, 그중 하나가 공곶이 쪽의 서이말 등대이고, 또 한 곳은 거제 포로수용소 뒤편의 계룡산이다. 서이말 등대는 외도와 해금강, 바람의 언덕 일대와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고, 계룡산은 해발 566m의 산정의 눈썹 밑까지 차로 단숨에 올라가 거제만의 화려한 낙조 풍경과 마주 설 수 있는 곳이다. 묵을 곳 & 먹을 것 = 거제 지세포에는 대명리조트 거제마리나(1588-4888)가 있다. 28층 건물의 2개 동에 들어선 객실 516실이 모두 바다 쪽으로 베란다를 낸 이른바 ‘오션뷰’형이다. 여름 휴가시즌 예약은 이미 끝났다. 와현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호텔 리베라 거제(055-730-5000)는 드문드문 빈방이 남아 있다. 바람의 언덕을 지나 신선대 위쪽의 블루마우리조트(055-632-6377)는 객실에서의 빼어난 바다 경관으로 이름난 곳이다. 거제의 대표적인 맛집으로는 장승포의 ‘항만식당’(055-682-3416)과 상동동의 ‘백만석’(055-637-6660)이 손꼽힌다. 항만식당은 갖은 해물에다 된장을 풀어 끓인 해물뚝배기를 낸다. 백만석은 다져서 네모꼴로 냉동한 멍게와 김가루, 참기름 등을 넣고 비벼 먹는 멍게비빔밥의 원조로 꼽히는 집이다. 저렴한 가격에 돌게장과 다양한 반찬을 내는 장승포의 ‘싱싱게장’(055-681-5513)도 알아주는 맛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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