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송철규 교수의 중국 고전문학_10

醉月 2010. 6. 4. 08:52

전쟁 중에 싹튼 明末 명망가와 기생의 사랑 중국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도화선

천안함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큰 홍역을 앓고 있다. 이번의 아픔이 계기가 되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이처럼 우리는 그 긴장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전시상태 국가이다. 인류는 갖가지 이유로 유사 이래 수많은 전쟁을 치러왔다. 전쟁은 순기능도 있지만 파괴와 살상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비극임이 틀림없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개인과 가정, 국가와 문명에 이르기까지 각종 비극을 연출하였다. 이런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처절한 삶을 그리는 작품을 특별히 전쟁문학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마거릿 미첼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939)도 대표적인 전쟁문학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남북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남녀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애슐리, 레트 버틀러 등의 사랑과 이별을 파란만장하게 그려낸 대작으로서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 받는 고전 명작이다. 중국에서도 이런 전쟁문학에 속하는 작품이 많지만 그중 대표작을 꼽으라면 역시 청대 희곡가 공상임(孔尙任)이 쓴 전기(傳奇·당나라 소설인 ‘전기’와 다른 명청대 희곡을 일컫는 용어) ‘도화선(桃花扇)’을 들 수 있다. ‘도화선’은 명 멸망 이후 세워진 남명(南明) 정권의 몰락 과정에서 항청(抗淸)의 기치를 내세운 명말 복사(復社)의 유명 인사 후방역(侯方域·실존인물로 작품에서는 ‘후조종’이라고 칭함)과 진회(秦淮·남경) 지방의 유명한 기생 이향군(李香君·실존 인물)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하여 내용이 전개되는 40막으로 이루어진 역사극이다.

明 멸망 후 남명 정권 배경

후방역은 남경에서 아름다운 이향군을 만난 후 그녀에게 시가 적힌 부채를 정표로 주었다. 그날, 두 사람 모두의 친구인 양용우(楊龍友) 역시 두 사람에게 온갖 예물을 주었다. 그런데 다음날 알고 봤더니 그 예물은 원래 완대성(阮大金成)이 양용우에게 건네주었던 것이었다. 완대성은 환관 위충현의 충실한 부하로서, 위충현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행동을 함께 하였다. 그러나 정계에의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이에 복사의 인사들이 정계로 진출하는 흐름을 파악하고는 색깔을 바꾸어 복사에 가입하였다.

▲ 일러스트 이철원
복사 내에서도 후방역의 명망이 가장 높자 완대성은 그를 포섭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보내온 예물 앞에서 후방역은 난감하였다. 그러나 완대성이 이미 관직에서 물러난 이상 그에게 냉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 이향군의 생각은 달랐다. 완대성이라는 인물이 잔악하기로 소문나 모두들 싫어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은 절대 신뢰할 수 없었다. 향군은 그 길로 완대성이 보낸 옷과 장신구를 돌려보냈다. 후방역도 이향군의 태도를 보고 느낀 바 있어 완대성의 선물을 거절하였다. 완대성은 이 일로 두 사람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

남명 몰락과 함께 한 비극적 사랑

그 후 이자성이 북경을 함락하고 숭정제(崇禎帝)가 세상을 떠났다. 바로 그해에 마사영(馬士英)과 완대성 등은 남경에서 복왕(福王) 홍광(弘光)을 옹립하여 남명(南明) 정권을 세웠다. 그러나 주관이 없는 군주와 주위의 간신들은 청의 군대에 용감히 맞서기는커녕 술과 여자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였다. 완대성은 이향군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후방역은 앙심을 품은 완대성의 핍박에 시달리다가 일찌감치 달아난 상태였다. 이향군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해 머리를 땅에 부딪쳤다. 그때 이마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후방역이 정표로 주었던 부채를 물들였다. 그녀의 지조에 감동받은 양용우는 부채의 붉은 피를 바탕으로 점점이 복사꽃을 그려 넣은 후 후방역에게 보냈다. 이향군은 결국 완대성에게 끌려갔다. 그녀는 연회석상에서 마사영과 완대성을 향해 ‘환관의 양아들’이라 욕을 해주었고, 결국 궁중에 갇히게 되었다.

청의 군대가 남하하는 와중에도 남명 정권은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군사를 담당한 장군들조차 적군과 맞서 싸우기는커녕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결국 강남의 대부분은 청의 군대 앞에 손쉽게 무너졌다. 후방역과 이향군은 약속이나 한 듯이 각각 서하산(栖霞山)으로 피신하였다가 백운암(白雲庵)에서 감격적으로 재회하였다. 명나라의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제단 앞에서 두 사람은 옛 정을 다시 확인하였으나, 제사를 주관하던 장도사는 그들에게 다음의 말을 건네었다. “아아!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보게나! 나라가 어디 있으며, 집은, 임금은, 또 부모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니 남녀 간의 정 또한 헛된 것이 아니겠는가?” 도사의 이 말에 방역과 향군은 대오 각성하여 도복으로 갈아입고 산속으로 들어가 수도에 정진하게 된다. 마지막에 장도사는 ‘백골 도화선 속에서 남명 왕조는 사라지고(白骨靑灰長艾簫, 桃花扇底送南朝)!’라는 말과 함께 ‘복사꽃 그려진 부채(桃花扇)’를 없애버린다. 이렇듯 후방역과 이향군의 사랑은 남명 왕조의 운명과 함께 처량하고 애달픈 노랫가락에 실려 끝을 맺는다. 

‘도화선’은 청대의 또 다른 희곡작품인 ‘장생전’과 달리 비극적으로 끝나고, 마치 한 편의 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도화선’은 역사극으로서 극중 인물과 사건은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였다. 후방역은 명말 청초의 유명한 문인이었다. 그는 자신과, 대의를 앞세울 줄 알았던 진회지방의 유명한 기녀 이향군과의 로맨스를 바탕으로 ‘이희전(李姬傳)’이란 소설을 남기기도 하였다. ‘도화선’은 바로 이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지어졌다. 극중의 이향군은 작자가 심혈을 기울여 창조해낸 긍정인물이었다. 그녀는 이전에 나왔던 여러 여성 형상과 크게 달랐다. ‘서상기’의 최앵앵이나 ‘모란정’의 두려랑 등도 주목받는 여성 형상이지만, 그녀들은 언제나 개인의 목적을 위해 행동하였다. 그러나 이향군은 신분은 비록 비천하였으나 마음속에는 언제나 국가의 운명이라는 대의명분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가 후방역을 사랑한 이유도, 그가 단지 풍류를 아는 멋쟁이라서가 아니라 복사의 일원으로서 정의를 대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총명하고 지조가 있으며 권력 앞에서 당당했던 그녀는, 문학작품이 만들어낸 최고의 여성 형상이라 할 만하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후방역이 그녀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