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봉신연의[封神演義]_02

醉月 2009. 8. 14. 08:38

봉신연의(封神演義)_기주후 소호가 상나라에 반역하다

 

▲ 주왕에게 간언하는 재상 상용 ⓒ 삽화 권미영

 

주왕은 비중이 아뢰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환궁했다.

그날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문무양반이 모인 가운데 아침 조회를 마쳤다.
주왕은 시위관에게 명령한다. “즉시 짐의 뜻을 전하라. 四鎭사진의 제후들에게 공포하여 시행하는데, 매 1진의 지방에서 양가의 미녀 백 명을 뽑아서 짐에게 보내게 하라. 여자는 부귀나 빈천을 구분하지 말고, 다만 용모가 단정하고, 성품이 부드럽고, 예절을 갖추어 현숙하며, 행동거지가 방정하면 된다. 이들을 뽑아서 후궁에 들여보내도록 하라 하시오”

천자의 교지가 다 전달되지도 않았는데, 좌측 반열에서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서 나와 바닥에 엎드리며 말한다.
“늙은 신하 商容상용이 폐하께 아룁니다. 임금이 도가 있은즉 만민이 저마다 생업을 즐기고,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따릅니다. 하물며 폐하의 후궁 미녀는 천명뿐만 아니라 嬪빈이 있고 그 위로 또 妃后비후가 있습니다. 이제 뜬금없이 미녀를 뽑으려 하는데, 백성들이 신망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신은 들었습니다. 백성이 즐거워하는 바를 즐거워하는 자는 그 백성도 역시 그의 즐거워하는 바를 즐거워하며, 백성이 근심하는 바를 근심하는 자는 그 백성도 그의 근심하는 바를 근심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홍수와 가뭄이 빈발하고 있는데, 여색을 일삼는다는 것은 실로 폐하께서 취하실 바가 아닙니다.

堯·舜요·순임금은 백성과 더불어 즐겼으며, 仁德인덕으로서 천하를 감화시켰으며, 창과 방패를 삼가하여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상서로운 별이 하늘에 비쳤으며, 하늘에서 甘露감로가 내렸으며, 봉황이 뜰에서 머물렀으며, 芝草지초가 들에서 자랐습니다. 백성은 풍요로웠고 만물도 풍성하였으며, 길가는 사람이 서로 길을 양보하였습니다.
개 짖는 소리도 없었으며, 밤에 비가 내리고 낮에는 개었으며, 벼 이삭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나 달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가 있어 흥성한 조짐입니다.

이제 폐하께서 만약 눈앞의 즐거움을 취하신다면 사특함으로 눈앞이 캄캄하게 될 것이고,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고, 주색에 빠지고, 동산에서 놀기만 하고, 산림에서 사냥에 힘쓴다면 이것이야말로 바로 무도하여 敗亡패망하는 징조입니다.

노신으로 首相수상으로서 죄를 기다리겠사온데, 서열에 따라 조정의 기강을 잡으면서 임금을 모신지 삼대 째인데, 부득불 폐하께 아뢸 수밖에 없습니다. 신은 폐하께서 현명함을 택하시고 어리석음을 물리치기를 바라오며, 仁義인의를 닦으시고, 道德도덕에 통달하시옵소서. 그러면 화기로운 기운이 천하에 퍼질 것인즉 자연히 백성이 부유하고 재물이 풍족할 것이며, 천하가 태평하고 四海사해가 화목하여 백성과 더불어 함께 무궁한 복을 향유할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은 문태사가 원정중인 北海북해에서 일어난 원복통의 반란정벌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습니다. 바야흐로 그 덕을 닦아야하며, 그 백성을 사랑하고, 그 재물 허비를 막아야 합니다. 또 함부로 정치명령 내리는 것을 삼가 해야 합니다. 바로 堯舜요순임금이 이러했습니다. 또 하필이면 구구하게 미녀를 뽑아 모시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려 하십니까?

신은 어리석어 꺼려할 줄도 모르고 아뢰었으니, 폐하께서 받아들이시기를 진심으로 바라옵니다.“
주왕은 재상 상용의 말을 한참 생각하다가 한마디 한다. “경의 말이 심히 옳다. 짐은 이것을 행하지 않겠다.” 말을 마치자 신하들도 조정을 물러나오고, 주왕도 환궁하였다.

주왕 8년 여름 4월, 뜻밖에 천하의 四大사대 제후가 8백진의 소제후들을 이끌고 商상나라에 입조하여 임금을 알현하게 되었다. 이 사대제후는 東伯侯동백후 姜桓楚강환초, 南伯侯남백후 鄂崇禹악숭우, 西伯侯서백후 姬昌희창, 北伯侯북백후 崇侯虎숭후호이다.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조가에 왔을 때 太師태사 聞仲문중은 북해 원정으로 조정에 없었으며, 주왕이 비중과 우혼을 총애하여 중용하였다. 각처의 제후들은 이들 두 사람이 조정을 틀어쥐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위엄을 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예물을 핑계로 뇌물을 주어 그 마음을 사야만 했다. 소위 ‘천자를 알현하기도 전에 먼저 세력이 있는 벼슬아치를 찾아가서 인사를 한다’는 말이 사실로 되고 있었다.

여러 소제후들 중에 冀州侯기주후 蘇護소호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성격이 불과 같았으며, 성품이 강하고 방정하여 정직했으므로 권문세가를 찾아다니며 청탁하는 따위의 일들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평소에 조금이라도 불공평하거나 불법한 일을 보게 되면 법대로 처분했으며, 관용을 베푸는 것도 적지 않았다.
소호는 비중과 우혼 두 사람에게 일찍이 예물을 보내 본적도 없었다. 이날 비중과 우혼 두 사람은 천하제후들이 보내온 예물을 점검해보다가 유독 기주후 소호만 예단이 없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였으며, 앙심을 품게 되었다.

 

ⓒ 삽 화 권미영

 

해가 바뀌어 새해 첫날 吉日길일이었다. 천자는 아침 일찍 문무양반이 모인 가운데 조회를 열었다. 관리들이 막 천자에 대한 하례를 마쳤다. 황문관이 아뢴다. “폐하, 금년은 신하가 조정에 들어와 賀禮하례 드리는 해입니다. 천하의 제후들이 오문 밖에서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 분부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왕은 首相수상인 상용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다. 상용은 “폐하께서는 단지 4진의 대제후들만 안으로 불러 대면하시어 백성들의 안위와 지역의 풍속 등을 물으셔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히 하는데 참고하소서! 기타 제후들은 오문 밖에서 하례를 받도록 하십시오.”한다.

천자는 이 말에 크게 기뻐하면서 “경의 말이 심히 옳도다!”한다.
황문관은 명에 따라 천자의 어지를 전달한다. “4진의 제후는 천자를 알현하고, 기타 제후들은 오문에서 朝賀조하를 받는다.”

이에 4진의 제후들이 조복을 단정히 하고, 오문으로 들어가는데, 허리에 찬 구슬 노리개가 바람에 가볍게 흔들린다. 구룡교를 지나 붉은 섬돌 앞에 도착하자 만세를 외치면서 하례를 마치고 그 자리에 엎드린다.

천자가 위로의 말을 던진다. “경들은 짐과 함께 널리 협력하여 헌신하였소. 백성들을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였고, 변방까지 무력으로 잘 진정시켜 멀리까지 위엄을 보였으며 가까이는 안정을 이루었소. 많은 수고로움이 있었는바 이 모두가 경들의 공로일 따름이오. 지금 짐의 마음은 한량없이 기쁠 뿐이오.”

東伯候동백후가 아뢴다. “신 등은 聖恩성은을 입어 鎭진을 통솔하고 있습니다. 신 등은 황송하게도 작은 진들을 장악하는 권한을 받아 밤낮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항상 임무를 다하지 못하여 성심에 허물을 끼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비록 犬馬견마의 작은 노력이 있다하나 신하된 본분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보잘 것 없어 만분의 일도 갚을 수 없습니다. 또 저희를 보살펴 주시는 성심이 또 얼마나 수고로우시겠습니까! 신 등은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이 말에 천자는 기뻐서 용안을 활짝 펴고 수상 상용, 亞相아상 比干비간에게 현경전에서 연회를 베풀어 이들을 모시게 하였다.

4대 제후는 머리를 조아리며 은혜에 감사한다. 붉은 섬돌을 떠나 현경전으로 나아가 순서에 따라 자리를 정하고 연회가 시작되었다.
이때 천자도 조정을 물러나와 편전에 들었다. 비중, 우혼 등 두 사람을 불러 묻는다. “지난번에 경들이 짐에게 주청한대로 천하의 4진 대제후들에게 미녀를 진상하도록 짐의 어지를 내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수상 상용이 반대하여 그만두었다. 이제 4진 제후들이 이곳에 와있는데, 내일 일찍 불러들여 그 자리에서 짐의 뜻을 시행하라. 4진 대제후가 귀국하는 대로 미녀를 뽑아 진상하도록 하면 번거롭게 사신들이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의 뜻은 어떠한가?”

비중이 엎드리며 아뢴다. “수상이 諫言간언하여 미녀선발을 멈추었습니다. 폐하께서 그때 받아들이시어 즉시 어지를 멈추었는데, 이것은 미덕이었습니다. 이는 신하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 알고 있사온데 천하가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시행하시면 폐하께서는 신하와 백성들의 믿음을 얻기 어려우며, 소신의 소견으로는 불가하다고 사료됩니다. 신은 최근 冀州侯기주후 蘇護소호를 탐문해 보았는데, 딸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 미모는 하늘이 낳은 듯 자태가 곱고, 정숙하다고 합니다. 만약 소호의 딸을 뽑아 궁전에 들이어 곁에서 모시게 한다면 능히 소임을 감당할 것입니다. 하물며 한 사람의 딸을 뽑는 것에 불과하므로 천하의 백성들을 놀라게 하지도 않을 것이며, 사람들의 이목을 동요시키지도 않을 것입니다.”

주왕은 그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크게 기뻐하면서 말한다. “ 경의 말이 지극히 옳다!” 바로 시종관에게 어지를 전한다. “소호를 들게 하라” 천자의 사자가 바로 역관으로 와서 “기주후 소호는 편전에 들어 국정을 상의하라”고 한다. 소호는 즉시 사자를 따라 龍德殿용덕전에 도착하여 천자를 알현하고, 의례가 끝나자 엎드려 명을 기다렸다.

주왕이 말문을 연다. “짐은 경에게는 덕성을 갖추고 정숙하며 행동거지가 바른 딸이 있다고 들었소. 짐이 그대의 딸을 후궁으로 삼아 시중을 들게 하려하오. 그러면 경은 國戚국척이 되며, 하늘이 주는 봉록을 받고 그 현달한 직위에 오를 것이오. 영원히 기주를 다스리며 편안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이오. 그대의 이름을 사해에 떨치게 하고, 천하가 모두 부러워할 것이오. 경의 뜻은 어떠한가?”

소호는 그 말을 듣고 정색하면서 아뢴다. “ 폐하의 궁중에는 위로는 后妃후비가 있고, 아래로는 嬪빈이 있어 수천에 이릅니다. 하나같이 자태가 어여쁜데, 어찌 폐하의 이목을 기쁘게 하기에 부족하겠습니까? 이에 폐하께서 좌우의 아첨하는 말을 들으시면 불의한 곳에 빠지게 됩니다.

하물며 신의 여식은 자질이 鄙陋비루하고, 본래 예절을 모르며, 덕성과 용모가 부족하여 취할 바가 못 됩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마음을 우선 나라 다스리는데 두시고, 속히 이러한 阿諂아첨하는 소인들을 斬首참수하소서. 천하의 후세사람들로 하여금 폐하께서 올바른 마음으로 수양하고, 간언을 받아들이고, 여색을 좋아하지 않는 임금이라는 것을 알게 하신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 소호가 끌려 나가자, 비중과 우혼이 편전 바닥에 엎드리며 그의 사면을 청한다. ⓒ 삽 화 권미영

 

주왕은 소호의 奏請주청을 듣고 크게 웃으면서 말한다. “경의 진언은 심히 중요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 말이오. 옛날부터 지금까지 누가 여식을 궁중에 넣어 문벌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겠는가? 하물며 여식이 后妃후비가 되면 존귀하기로는 천하에 필적할 만하다. 경은 황제의 척족이 되어 빛나는 높은 지위에 올라 영화를 누리게 되는데, 무엇이 이를 능가할 수 있겠는가? 경은 쓸데없는데 미혹되지 말고, 마땅히 스스로 숙고하도록 하라.”

소호는 주왕의 그 말에 자기도 모르게 화가나 목소리를 높여 아뢴다. “신은 들었습니다. 임금이 덕을 닦고 정치를 부지런히 힘써야 천하 만민이 기쁜 마음으로 복종하고, 사해가 존경하여 따른다고 하며, 하늘의 복록이 영원하다고 합니다.

옛날에 하나라 桀王걸왕이 失政실정하고, 방탕하여 주색에 빠졌습니다. 우리의 조종이신 成湯성탕께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聲色성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재물을 함부로 불리지 않았으며, 덕을 쌓고 노력하는 자에게 관직을 높여 격려하였고, 노력하여 공을 세우는 자에게는 상을 내리는 등 너그럽고 어질었습니다. 바야흐로 하나라를 널리 바로잡아 백성들에게 믿음을 드날리게 하고 그 나라를 昌盛창성케하여 영원히 천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선조들의 법통을 따르지 않고 저 무도한 하나라 걸왕을 본받으시는데, 이는 패망하는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물며 임금이 여색을 좋아하면 반드시 社稷사직이 전복되며, 경대부가 여색을 좋아하면 반드시 종묘가 끊어지며, 선비와 서민이 여색을 좋아하면 반드시 그 몸을 해치게 됩니다.

또한 임금은 신하의 표본이온데, 임금이 도를 따르지 않으면 신하는 장차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당파를 만들어 나쁜 일을 하게 되는데, 천하의 일은 오히려 차마 말할 수 없을 뿐입니다! 신하는 상나라 6백여 년의 바탕이 반드시 폐하로부터 문란해지게 될까 두려울 뿐입니다.”

주왕은 소호의 말을 듣고 벌컥 성을 내면서 말한다. “임금이 소집을 명하면 수레의 멍에를 매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장 나서며, 임금이 죽음을 내려도 감히 어기지 않는다고 한다. 하물며 너의 딸 하나를 뽑아 후비로 삼는 것쯤이야! 감히 어리석은 말로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얼굴을 맞대고 짐을 꾸짖기조차 하는구나. 망국의 임금인 걸왕을 짐과 비교하려 들다니, 不敬불경하기가 이보다 클 수 있단 말인가! 시종은 이 자를 오문 밖으로 끌어내고, 法司법사에 보내 법에 따라 조사하여 심문하도록 하라.”

좌우에서 소호를 끌어낸다. 이때 비중과 우혼 두 명이 편전 바닥에 엎드리면서 아뢴다.
“소호는 왕명을 거역하였으니 마땅히 조사하여야 합니다. 다만 폐하께서 그의 딸을 뽑아 후궁으로 들이려고 하는 것 때문에 문책한다고 하면, 천하 사람들이 이를 듣고 폐하께서 현인을 가벼이 여기고 여색을 중히 여기며, 언로를 막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소호를 용서하여 귀국시키면 그는 폐하의 죽이지 않는 은혜에 감격할 것이고, 자연히 그의 딸을 궁궐로 진상하여 폐하를 모시게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백성들에게 폐하의 너그럽고 어진 면모와 간언을 받아들이고 시류를 용납하는 자세, 공이 있는 신하를 보호하신 것 등을 알게 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一擧兩得일거양득이라 사료됩니다.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신이 이를 시행하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주왕은 이 말을 듣고서야 얼굴에 노여움이 풀린다. “경이 주청한대로 즉시 사면을 내리도록 하라. 그로 하여금 환국하게 하고, 더 이상 조가에 머물지 못하게 하라.”

주왕이 성지가 내려지자 빠르기가 봉화처럼 전달된다. 즉시 소호에게 조가를 떠나라고 재촉하며, 더 머무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소호가 조정을 물러나와 머물고 있던 驛亭역정에 되돌아오자 많은 가신들이 영접하면서 위로의 말을 던진다. “성상께서 장군을 조정으로 불렀는데, 무슨 상의라도 하셨습니까?”

소호는 크게 화를 내면서 욕을 한다. “무도하고 어리석은 임금이 선조들의 德業덕업을 생각지 아니하고, 간사한 신하의 아첨하는 말을 즐겨 믿어, 나의 딸을 뽑아 궁궐에 넣어 비로 삼으려 하오. 이는 반드시 비중과 우혼이 술과 여색으로 임금의 마음을 미혹시켜 조정을 전횡하려고 하는 것이오.

나는 폐하의 어지를 듣고 나도 모르게 바른 소리를 아뢰었소. 어리석은 임금은 내가 왕명을 거역한 것을 거론하며, 이 사안을 법사에 송치하였소. 비중과 우혼 두 亂臣賊子난신적자는 어리석은 임금에게 주청하여 나를 사면시켜 귀국하게 하였소. 이는 아마 두 간신이 간계를 꾸민 것 같은데, 내가 어리석은 임금이 나를 죽이지 않은 은혜에 감격하여, 내 딸을 스스로 조가에 바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소.

내가 생각하건대 문태사는 북해원정을 떠나있고, 두 난신적자는 권력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는데, 어두운 임금은 방탕하여 주색에 빠져있고, 조정은 문란하게 될 것이오. 천하가 황폐해지고, 백성은 극도로 곤경에 처해질 것이오. 가련하게도 成湯성탕의 사직이 이제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소!

내 스스로 생각해 본다. 만약 내 딸을 궁궐에 보내지 않으면 어리석은 임금이 죄를 묻기 위해 군사를 일으킬 것이오. 또 만약 내 딸을 후궁으로 보내면, 나중에 어리석은 임금이 덕을 잃었을 때 천하 사람들은 내가 지혜롭지 못하였다고 멸시와 조소를 보내게 될 것이오. 이 자리에 있는 장수들 중에 좋은 계책이라도 있으면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오.“


 

▲ 주색만 탐하는 주왕에게 화가난 기주후 소호는 반역시를 적어 정문 옆 담장에 붙인다. ⓒ 삽 화 권미영

소호의 말을 듣고 난 후 많은 장수들은 일제히 아뢴다. “저희들이 알기로는 임금이 바르지 못하면 신하는 다른 나라에 망명한다고 합니다. 지금 폐하는 현인을 가벼이 여기고 여색을 중히 생각하시니, 눈앞에 혼란이 보입니다. 차라리 조가를 벗어나, 스스로 한 국가를 지킴으로써, 위로는 宗社종사를 보호하고, 아래로는 몸과 가정을 지키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이때 소호는 몹시 화가 나있는 있는 상황에서 가신들의 말을 듣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분이 치밀어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한마디 내뱉는다. “대장부는 일을 분명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좌우에 소리쳐 “문방사보를 가져오너라. 나의 뜻을 담은 시를 午門오문(정문)담장에 붙여 나는 영원히 商상나라에 입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알릴 것이다.”한다.
기주후 소호는 다음과 같은 시를 적어 자신의 뜻을 알렸다.
“임금이 신하와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五常오상(인의예지신)을 그르쳤다. 기주후 소호는 영원히 상나라에 입조하지 않겠다.”
(君壞臣綱, 有敗五常. 冀州蘇護, 永不朝商!)
소호는 시를 담장에 붙이고 가병들을 거느리고 곧 조가를 출발하여 자기의 근거지인 기주를 향해 서둘러 나아갔다.

한편, 주왕은 소호가 얼굴을 맞대고 꾸짖듯이 한 바탕 간언을 하자 소호의 딸을 후궁에 들이는 소원을 이룰 수 없었다. 주왕 자신은 비록 비중과 우혼이 주청한대로 받아들였으나, 소호가 장차 그 딸을 궁궐에 진상한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까 하는 갖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썩 유쾌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때 오문을 담당하는 신하가 들어와 엎드리면서 아뢴다. “신은 소호가 쓴 16자 반역시가 오문담장에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였사온데, 감히 隱匿은닉할 수 없었습니다. 폐하의 재가를 엎드려 바라옵니다.” 시위가 시를 받아 임금의 책상위에 펼쳐놓는다.

주왕이 한번 보더니 크게 꾸짖는다. “불충한 자가 이렇게 무례할 수가 있는가! 짐이 하늘의 호생지덕(好生之德 살아있는 것을 아끼어 함부로 살생하지 않는 품덕)체득하여 좀도둑조차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사면하여 귀국하게 하였더니, 저 소호가 도리어 반역시를 오문에 붙여 조정을 크게 욕보이고 있다. 그 죄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구나!”

즉석에서 명령을 내린다. “殷破敗은파패, 晁田조전, 魯雄노웅 등에게 六師육사(1師는 2,500명)를 통솔하라고 전하라, 짐이 모름지기 정벌에 친히 나아가 반드시 기주를 멸망시키겠다!”
얼마 되지 않아 노웅 등이 입조하여 주왕을 알현한다. 주왕이 “소호가 반역시를 오문에 붙여 상나라를 배반했다. 그 마음이 특별히 가증스러워 법률과 기율에 따라 용서하기가 어렵다. 경들은 병사 2십만을 통솔하고 선봉에 서시오. 짐은 친히 6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 죄를 성토할 것이오.”

노웅은 다 듣고 난후 고개를 숙이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소호는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이다. 忠義충의를 품은 사람이 무슨 일로 천자를 거역하였을까? 임금이 스스로 친정하겠다는데 기주도 이제 끝장났구나!

노웅은 그 자리에 엎드리면서 소호를 위해 두둔한다. “소호가 폐하께 죄를 지었다고 하나 수고스럽게 어가를 앞세우고 친정하려 하십니까? 하물며 4대제후가 모두 귀국하지 않고 아직 도성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한 두 명의 제후에게 정벌을 명하여 소호를 사로잡아 그 죄를 분명히 하여, 스스로 징벌의 위엄을 잃지 마시옵소서. 하필 임금이 수레를 끌고 멀리까지 가서 그 일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주왕이 묻는다. “4대 제후 중 이번 정벌에 누가 합당하겠소?”
비중이 곁에 있다가 아뢴다. “기주는 바로 북방 崇侯虎숭후호 관할에 있습니다. 숭후호에게 정벌을 명 하시옵소서” 주왕은 즉시 시행하라고 한다.

옆에 있던 노웅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숭후호는 탐욕스럽고 횡포한 필부이다. 병사를 이끌고 원정을 떠나면 지나가는 지방마다 반드시 잔악한 해를 끼칠 것인데, 백성들이 어찌 편할 수 있겠는가? 현재 西伯서백 姬昌희창은 어짐과 덕이 사방에 알려졌고, 信義신의도 드러났다. 어찌 서백 이 사람을 추천하여 백성들을 보호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양쪽이 모두 원만할 것이다.”

주왕이 막 어지를 전달하려고 하는데, 노웅이 상주한다. “숭후호는 비록 북쪽지방을 안정시켰지만, 사람들에게 오히려 은혜와 믿음을 주지 못하였는데, 이번 정벌에서 조정의 위덕을 펼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차라리 어질고 의롭다는 명성이 자자한 서백 희창을 보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符節부절과 斧鉞부월(큰 도끼)을 수여하면, 스스로 화살과 돌이 난무하는 정벌을 수고롭다고 여기지 않고, 소호를 붙잡아 그 죄를 바로잡을 것입니다.”

주왕은 한참 생각하더니 두 사람의 주청을 모두 따르기로 했다. 특별히 어지를 내려 두 제후에게 부절과 부월을 주어서, 소호를 정벌하도록 했다. 임금의 사자는 바로 어지를 가지고 현경전으로 갔다.

이때 현경전에는 4대 제후와 재상 상용·아상 비간 등이 아직 연회를 끝내지 않았는데,

갑자기 ‘어지’가 내려오자 도무지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주왕은 승후호와 회창에게 반역시를 붙인 소호를 정벌하라는 어지를 내린다.

근거 없이 충신을 벌할 수 없다는 회창과 어지를 받들어야 한다는 승후호는 잠시 논쟁을 벌이다 소호가 있는 기주로 향한다.

왕의 공격을 예상한 소호는 부하들에게 전쟁 준비를 명령한다.ⓒ 삽 화 권미영

 

천자의 사자가 “서백후와 북백후는 어지를 받들라”한다.
두 제후는 어지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앉아 어명을 받는다. 사자가 조서를 읽는다.

“조서에 이르노라. 짐은 상하의 구별이 오직 엄격하고, 임금을 섬기고 신하를 부리는 도는 둘이 아니라고 들었다. 고로 임금이 부름을 명하면 말안장 놓기를 기다리지 않고 서둘며, 임금이 사약을 내려도 감히 명을 어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尊貴존귀함과 卑賤비천함을 확실히 구분하고, 맡은 바 임무를 받들어 행하고자 함이다. 이에 무도한 소호가 도리에 어긋나고 무례한데다 대전에 서서 임금의 명령을 거역하여 기강이 이미 무너졌도다. 용서하여 귀국케 하였더니 자신을 새롭게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바로 오문에 시를 붙여 군주를 반역하였는데, 그 죄는 용서할 수 없도다. 그대 서백 희창 등에게 節鉞절월을 내리니 곧장 시행하라. 가서 왕명을 거역한 것을 징벌하고, 방자하게 날뛰지 못하게 하여, 죄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어라. 이에 조서를 내려 그대들에게 정벌에 나설 것을 명하노니 삼가 받들도록 하라”

임금의 사자가 읽기를 마치자, 두 제후는 사은하고 몸을 바르게 한다. 서백후 희창은 두 명의 승상과 세 명의 제후들에게 말한다. “소호는 상나라에 입조하기 위해 왔으나 아직 궁전 뜰에도 들어가지 못하여 성상께 하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조서를 내려 ‘대전에 서서 임금의 명령을 거역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소호 이 사람은 본래 충의를 품은 자로 여러 차례 軍功군공을 세웠습니다. 오문에 붙은 시는 반드시 거짓으로 꾸민 것일 겁니다. 천자께서는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고, 공적이 있는 신하를 정벌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천하의 제후들이 복종치 않을까 두렵습니다. 두 분 승상께서 내일 아침 일찍 입궐하여 그 상세한 내막을 살펴주십시오. 소호가 지은 죄가 말대로 사실이라면 정벌하는 것이 옳겠으나, 만약 말이 사실과 다르다면 정벌을 그만두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에 비간은 “서백후의 말씀이 옳습니다”한다.
옆에 있던 숭후호가 한마디 한다. “「왕의 말씀이 실과 같이 가늘어도 관인의 끈과 같이 소중히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어지를 이미 내렸는데, 누가 감히 거역하겠소? 하물며 소호가 오문에 반역시를 붙였다는 것이 근거가 있을 터인데 천자가 어찌 연고 없이 이러한 어려운 결단을 내렸겠습니까? 이제 8백제후가 왕명을 따르지 않으면, 저마다 제멋대로 창궐할 것입니다. 왕명이 제후들에게 시행되지 않을 때 곧 어지러움으로 나아가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희창이 대답한다. “공의 말씀이 비록 옳으나 그 한 극단을 잡고 있습니다. 소호가 충성스럽고 어진 군자임을 모릅니까? 평소 붉은 정성과 충심으로 국가를 위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데 방책이 있었고, 병사를 다스리는 데 법도가 있었고, 수년 이래 과실이 없었습니다. 이제 천자가 누구에게 미혹되었지 모르겠으나 군사를 일으켜 선량한 인사에게 죄를 물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나라에 상서로움 조짐이 아니어서 두렵습니다.

다만, 지금은 방패와 창을 사용하지 않고, 살육을 하지 않아 요임금 시대와 같은 태평함을 함께 즐겼으면 합니다. 하물며 전쟁은 불길한 조짐으로 병사가 지나는 지방은 반드시 놀람과 근심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 백성을 고달프게 하고 재물을 손상하며, 무력을 남용하여 전쟁을 일삼고, 정당한 이유없이 군대를 출동시키는 일 등은 모두 태평한 성세에는 마땅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숭후호가 대꾸한다. “공의 말씀은 당연히 이치에 합당하나, 임금의 명령을 받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홀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천자의 말씀이 널리 밝혀졌는데, 누가 감히 거역하여 스스로 임금을 속이는 죄를 지으려 하겠습니까?

희창이 대답한다.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공이 군대를 이끌고 앞서 가시면 나도 군대를 인솔하여 곧 뒤따라가겠소.” 이렇게 하여 각자 흩어졌다.

서백후 희창이 두 승상에게 말한다. “숭후호가 먼저 출발하고, 희창은 잠시 西岐서기로 돌아가서 병사를 인솔하여 바로 뒤따라가겠습니다.”
마침내 각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다음날 숭후호는 연병장으로 가서 사람과 말을 점검하고, 천자에게 하직인사를 올리고 정벌에 올랐다.

한편, 소호는 병사들과 함께 조가를 떠나 하루가 되지 않아 冀州기주로 돌아왔다. 소호의 장남 蘇全忠소전충이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성곽 밖으로 나와 영접했다. 그들 부자가 성으로 들어와 원수부에 도착하여 말에서 내렸다. 여러 장수가 편전 앞에서 서로 예를 마쳤다.

원수부에 자리하자 소호는 한바탕 그간의 사정을 알린다. “지금 천자는 失政실정한 것 같소. 천하의 제후들이 천자를 알현하는데, 간사한 신하 누군가가 내 딸의 자색이 빼어나다고 몰래 주청한 것 같았소. 못난 임금이 나를 편전으로 들게 하더니 내 딸을 뽑아서 후궁으로 세우려고 하였소.

바로 내가 임금의 면전에서 잘못을 공박하여 뜻밖에 昏君혼군을 크게 노하게 만들었소. 하여 나를 붙잡아 어지를 어긴 죄를 묻고자 하였소. 그때 비중·우혼 두 사람이 천자께 나를 용서하여 돌아가도록 주청 하였는데, 이것은 내가 자진해서 딸아이를 천자의 후궁으로 바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소.

그 당시 내 마음이 몹시 불쾌하여 상나라에 반역하는 시를 지어 오문에 써 붙였소. 이번에 어리석은 임금이 반드시 제후를 지정하여 이곳으로 보내 죄를 물을 것이오. 여러 장수들은 내 명령을 잘 들으시오. 곧 임박한 공격을 대비해서 인마를 훈련하고, 성벽에 목책을 두르고 대포와 돌을 설치하여 미리 방비해주시오.”

 

술과 여색에 빠진 주왕을 비판했던 소호. 그를 제거하라는 명을 받고 숭수호가 나선다.

봉황 투구와 황금 갑옷의 숭후호는 장수도 단숨에 베어낼 큰 칼을 들고 무서운 기세로 돌진하는데…….ⓒ 삽화 권미영

 

소호의 명령을 받은 여러 장수들은 성을 방비하는데 밤낮으로 조금도 태만하지 않은 채 다가올 전쟁을 기다렸다.

한편, 崇侯虎숭후호는 오만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그날 출병하여 조가를 떠나 기주를 향해 진격했다. 그 출병의 기세가 다음과 같았다.
“대포소리는 하늘을 울리는데 양양한 큰 바다에 봄날 우레가 일어나는 것 같고, 징소리가 땅을 진동시키는데 일만 길 높은 산에 벼락을 때리는 같다. 旗幟기치가 벌려있는데 봄날 버들잎이 겹쳐 있는 것 같다. …칼과 창이 번쩍번쩍 빛나 삼동겨울에 상서로운 눈이 깔려 있는 것 같고, 劍검과 방패가 삼엄하여 9월 달 가을 서리가 땅을 덮은 것 같다.…(중략)”

대군이 각 지방도로를 거쳐 행군한지 하루가 되지 않아 앞서간 전초병이 돌아와 숭후호에게 보고한다. “인마가 이미 冀州기주에 이르렀는데, 제후께서 군령을 내려주십시오”
숭후호는 막사를 치도록 하고 주둔을 명한다. 그들은 군대의 진지를 암암리에 八卦팔괘의 방위와 구성 원리에 따라 배열했다.

숭후호가 군대가 머물 영채를 구축하는데, 기주의 정탐병이 이를 탐지하고 소호에게 보고했다. 소호가 “어느 진의 제후가 우두머리이던가?”묻는다. “북백후 숭후호입니다.” 한다.

소호는 크게 노했다. “만약 다른 제후라면 그의 의견에 대한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숭후호 이 사람은 소행머리가 법도를 잃었고 예절조차 모른다. 이번 기회를 타서 숭후호 군대를 크게 쳐부수고, 우리 군대의 위엄을 떨치게 하고, 또한 만백성을 위해 해로움을 제거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소호가 군령을 전한다. “군대를 점검하여 성을 나가 싸움에 임하라!”여러 장군들이 명령을 받고, 군대와 장비를 갖추어 성을 나서는데, 한바탕 대포 소리가 일고 살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성문을 열고 나오는데 상대편의 장수들이 한 줄로 말을 타고 늘어서있다. 소호가 큰 소리로 꾸짖는다. “장군은 들어가서 전하시오. 主將주장에게 군영의 문에서 만나자고 청하시오!”

소호의 말을 전해들은 숭후호는 병사들을 점검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군영의 문 앞에 세워둔 깃발사이로 숭후호가 逍遙馬소요마를 타고 여러 장군들을 거느리고 영채를 나오고 있는데, 영채의 대문 두 기둥에는 용과 봉황을 수놓은 깃발이 걸려있다. 뒤에는 그의 장남 崇應彪숭응표가 호위하며 따르는데 진영 앞머리의 기세를 더하고 있다.

소호가 건너다보니 숭후호는 나르는 봉황모양의 투구를 쓰고, 황금색 갑옷과 위에 걸친 붉은 큰 도포 차림에 옥대를 둘렀으며, 자주색의 준마를 타고, 장수를 베는 큰 칼을 말안장 위에 걸쳐놓았다.

소호는 말위에서 몸을 앞으로 가볍게 구부리며 예를 취하고 난후 말을 건넸다.
“賢侯현후께서는 그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불초한 제가 갑옷을 입고 있어서 온전한 예를 갖출 수 없습니다. 지금 천자는 무도하고, 현인을 가벼이 여기고 여색을 중시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에 뜻을 두어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릇되고 망령된 말을 듣고, 강제로 저의 딸아이를 후궁에 들이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술과 여색에 빠진다면, 머지않아 천하에는 큰 변란이 있을 것입니다. 소생은 이곳 변방의 강역을 그냥 지키고 있는데, 현후께서는 어떠한 이유로 정당한 명분 없이 대군을 출동시켰습니까? ”
숭후호는 소호의 말을 듣고 크게 노했다. “그대는 천자의 부름과 뜻을 거역하고, 궁궐 문에다 반역의 시를 붙여 놓았는데, 이것이야말로 불충한 사람으로서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다. 이제 천자의 명을 받들어 그 죄를 묻는다. 마땅히 군영 문 앞에서 엎드려 스스로 죄를 청해야 하는데, 오히려 교묘한 말로 빠져 나가려고 한다. 그리고 무장을 한 병사를 이끌고 맞서고 있는데, 그 强暴강포함을 불러들이고 있구나!”

말을 마친 숭후호가 좌우를 돌아보면서 “누가 나와 더불어 이 반역 자를 사로잡을 것인가?”한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좌측에 있는 장수하나가 나섰다. 머리에는 봉황 날개모양의 투구를 쓰고, 황금 갑옷위에 붉은 전포를 입고, 사자모양의 허리띠를 두르고, 청총말을 타고 있는데, 큰 소리로 외쳤다. “末將말장이 이 반역자를 사로잡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하면서 사람과 말이 미끄러지듯이 대군 앞으로 나왔다.

그때 그곳에 있던 소호의 아들 蘇全忠소전충이 이것을 보고는 옆으로 비스듬히 말고삐를 늦추고 미늘창을 휘두르면서 “멈추어라!”한다. 소전충은 이 자가 부장 梅武매무라는 것을 알았다.
매무가 한마디 했다. “소전충! 듣거라. 너희 부자는 반역을 하여 천자한테 죄를 지었다. 오히려 반역에 대한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기는커녕 뿌득 뿌득 천자의 군대에 대항하고 있는데, 이는 스스로 滅族멸족의 화를 불러들이고 있구나!”
그 말에 소전충은 바로 말을 몰아 창을 휘두르며 매무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 삽 화 권미영

 

소전충의 창이 매무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가자 매무는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소천충의 얼굴을 향해 휘두른다. 두 장군이 양쪽 진영을 사이에 두고 중앙에서 맞붙었다.

온통 징 소리와 북소리, 사람들의 고함소리뿐이다. 두 영웅이 龍虎相搏용호상박하고 있는데 한번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하는 것이 눈 뜨고 바라보기조차 어지럽다. 도끼가 날아오면 창으로 막는데 창으로 몸을 휘감아 막는 것이 봉황이 머리를 흔들며 피하는 것 같고, 창으로 찌르면 도끼로 맞이하는데 창이 머리를 지나 아슬아슬하게 뺨 옆을 지나간다. 두 사람이 싸움을 시작한지 20합이다. 그때 소전충이 창으로 매무를 찔러 말 아래로 떨어뜨린다.

소호는 아들 소전충이 접전에서 이긴 것을 보고 북을 두드리라고 명령을 내린다. 기주군 진영에서 장군 趙丙조병, 陳季貞진계정 등이 말을 몰고 달려가 칼을 휘둘러 매무의 머리를 베어온다.

그때 소호의 군대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가을 구름이 몰려가듯이 적진을 향해 총공세를 폈다. 마치 막 솟아오른 태양의 기세처럼 공격을 감행하자 적군의 시체가 들판에 널 부러졌는데, 흐르는 피가 시내를 이루는 듯했다.

숭후호 휘하의 장수들인 金葵금규, 黃元濟황원제, 崇應彪숭응표 등이 한편 싸우고 한편 달아나는데, 10리 밖으로 패주하였다.
이에 소호는 징을 울려 병사들을 철수하도록 명을 내렸다. 군사를 물려 성으로 돌아와 원수부에 도착했다. 어전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곧 오늘 싸움에서 전공이 있는 장병들에게 상을 내리고 노고를 위로하였다.

이어서 소호는 “오늘 비록 적을 크게 무찔렀으나, 저 숭후호는 반드시 병사를 정돈하여 복수하러 올 것이다. 다시 올 때는 장수와 병사들의 수를 강화하여 침입해 올 것이다. 그때는 이 기주가 반드시 위험할 것인즉 이를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한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부장 조병이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君侯군후께서는 오늘 비록 승리하였다 하오나, 앞으로 싸움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번에는 주왕을 반역하는 시를 썼고, 오늘은 적장을 죽이고 무수한 적군을 살상하였으니 왕명을 거역한 것인데, 이는 모두 용서할 수 없는 죄입니다.

하물며 천하에는 제후가 숭후호 한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조정을 온통 들끓게 하였으니 여러 갈래로 병사를 몰아올 것인데, 기주는 탄환하나 겨우 용납할 정도의 비좁은 땅에 불과하므로 소위 ‘돌을 안고 물에 뛰어드는’ 형국으로 그냥 서서 위험을 지켜보는 것과 같습니다.

숭후호가 금방 패주하여 불과 십리 남짓 물러났는데, 그 진영을 재정비하기 전 어수선한 틈을 타서 병사들에게 하무를 물리고, 말에게는 재갈을 물려, 몰래 적진을 급습한다면, 저들을 모조리 전멸시킬 수 있겠사오나, 우리 병사들의 득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사옵니다.

그런 연후에 다시 어느 한 곳의 현명하고 어진 제후를 찾아서 그에게 의존하여 進退진퇴를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겠사오며, 또한 종사를 보전할 수 있으리 여겨집니다. 그러나 군후의 높으신 뜻은 어떠하신지 모르겠사옵니다.”

소호는 부장 조병의 이치에 합당한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공의 말이 심히 옳도다. 바로 나의 뜻과 합당하도다” 한다.

그리고 장수들에게 야습명령을 하달한다.
아들 소전충에게 삼천 명의 人馬인마를 거느리고, 서문 십리 밖 五崗鎭오강진에 가서 매복하라고 한다. 소전충은 명령을 받고 물러갔다.
진계정은 左營좌영을 통솔하고, 조병은 右營우영을 통솔하고, 소호 자신은 中營중영을 통솔하였다.

마침 황혼이어서 어둑어둑 해지는데, 깃발을 모두 접어서 말도록 하고 북소리를 쉬게 하며, 병사들에게는 하무를 입에 물려 떠드는 것을 막았고, 말은 재갈과 고삐를 물렸다. 공격은 대포소리를 신호로 하였다. 제장들은 명령을 받고 모두 역할에 따라 물러갔다.

한편 그때 숭후호는 혼자 “재주만 믿고 망령되게 행동하였다. 병사를 끌고 멀리 정벌을 나와, 금일 장수를 잃고 군대에 손실을 입힐 줄을 누가 알았으랴! 마음이 심히 부끄러울 뿐이다” 라며 자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패주하여 도망한 장졸들을 모아 점검하고 임시병영을 다시 만들었다. 중군에 앉아 있으려니 답답한 것이 몹시 불쾌할 뿐이었다.
숭후호는 여러 장수들에게 “나는 내가 군대를 이끌고 정벌을 한지 여러 해인데, 일찍이 실패한 적이 없었다. 오늘 장군 매무를 잃었고, 삼군에 손해를 끼쳤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한다.

곁에 있던 대장 황원제가 간언한다. “군후께서는 ‘勝敗승패는 兵家병가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라는 것을 어찌 모르십니까?

西伯侯서백후의 대군이 멀지 않아 도착하면, 기주를 쳐부수는 것은 마치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울 것입니다.

군후께서는 이에 너무 근심하여 번뇌하지 마시고, 의당 몸을 보중하시옵소서!”한다.


 

ⓒ 삽 화 권미영

 

소호와 첫 싸움에서 패한 숭후호는 怏怏不樂앙앙불락하던차에 황원제 장군이 건넨 위로의 말을 듣고 진중에서 술좌석을 마련했다.

여러 장수들과 함께 그날의 패배를 잊기라도 하려는 듯이 취하도록 마셨다.

이번 싸움을 묘사한 옛 시도 있어 그 결과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승후호가 군대를 인솔하여 원정을 떠났는데, 기주성 밖에 기치를 내걸고 주둔했다. 기주의 삼천 철기병에게 막대한 손상을 입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해에 숭후호의 이름이 헛된 것임을 믿게 되었다.”

한편 소호는 어둠을 틈타 군사와 말을 조용히 몰아 성 밖으로 나와서 적진을 급습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저녁 8시가 넘었고, 성 밖 십리정도까지 행군했다. 적진 가까이 몰래 잠입한 척후병이 돌아와 소호에게 공격 준비가 끝났음을 보고하자 소호는 즉시 대포를 쏘아 공격 명령을 내린다.

공격의 대포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는데, 마치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삼천 명의 鐵騎軍철기군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돌진하여 적군을 향해 짓이겨 들어간다. 이 사나운 기세를 숭후호 군사들이 과연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전투의 참혹함이 이러하였다.

숭후호 군은 어둠속에 군사들이 야습해와 대오를 무너뜨리는데 어떻게 지탱할 것이며, 칠흑 같은 어둠이 군영에 내렸는데 무너진 영문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 공격해 오는 북소리에 놀란 사람들은 오직 급박한 가운데 달아날 뿐이었다. 말(馬)은 말대로 하늘을 울리는 큰 대포소리에 놀라 동서남북으로 어지러이 흩어진다.

칼과 창이 분분히 날아오자 그때서야 서로 간에 싸움이 시작된 줄 알았다. 깊이 잠든 병사들은 동쪽에서 공격하면 서쪽으로 달아나고, 잠이 들깬 장군들은 투구를 쓸 겨를조차 없었다. 先行官선행관은 말안장을 얹지도 못하였고, 중군의 장수들은 맨발에 신조차 신지 못했다.

공격하는 소후군의 장수들은 날래기가 사나운 호랑이와 같고, 진채를 공격해 오는 군사들도 씩씩하기가 마음껏 노니는 용과 같았다. 칼과 창, 도끼가 난무하면서 살육전이 계속된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고, 말과 말이 부딪쳐 서로 밟고 밟히는데, 땅에 시체가 널 부러져 있다. 전장은 온통 상처 입은 군인들의 아픈 비명소리, 화살 맞은 장졸들의 구슬픈 신음소리 뿐이다.

버려진 북과 군대의 깃발들이 땅에 가득하고, 불타는 군량과 건초더미로 인해 사방이 붉게 물들었다. 천자의 명령을 받아 정벌을 떠나왔는데, 그 군대가 모조리 전멸될 줄이야 그 누가 예상이나 하였을까? 마치 가을 구름이 바로 구천하늘 높이까지 치솟아 오르듯이 온통 패잔병 무리들이 도망치기에 바쁘다.

세 갈래로 나누어 공격해 들어오는 소호군은 병사마다 용감하였고, 개개인이 모두 선두를 다투었다. 한바탕 사람을 죽일 듯 한 고함소리에 숭후호 진영의 보루가 무너졌고, 팔방에 배치한 침략군들이 흐무러졌다. 소호는 혼자 말을 몰아, 한 자루 창을 쥐고, 좌충우돌하면서 적진 속으로 들어가 숭후호를 붙잡으려고 하였다.

좌우 영문에서 고함소리가 땅을 뒤흔드는 그때 정작 숭후호는 꿈속에 빠져있었다. 군사들의 죽고 죽이는 아우성 소리에 놀라 깨어난 숭후호는 부랴부랴 전포를 걸치고 일어났다. 바로 말에 올라 칼을 뽑아 들고는 장막을 뚫고 나왔다. 그때 등불 그림자 속에 소호가 금 투구와 금 갑옷을 입고, 붉은 전포와 옥으로 된 허리띠를 두르고, 청총마를 타고 화룡창을 들고 있는 것이 눈앞에 보였다.

소호가 고함을 지른다. “숭후호는 달아나지 말고 게 섰거라! 말에서 내려 오라를 받으라!” 소호는 손을 비틀면서 창으로 숭후호의 가슴을 향해 찔러온다. 숭후호는 당황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칼로 창을 맞받아친다. 두 마리 말도 맞붙었다. 바야흐로 싸움이 시작되는데 숭후호의 장남 崇應彪숭응표가 장군 금계와 황원제를 이끌고 와서 싸움을 돕는다.

이때 소호의 우영인 趙丙조병 장군이 달려오고, 좌영인 陳季貞진계정 장군이 달려와 두 진영이 혼전을 펼쳤다. 깊은 밤인데도 교전은 계속되었다.

두 진영이 한창 맞붙었는데 소호는 상대진영을 급습하여 타격을 가할 생각뿐이었고, 숭후호는 무방비 상태였으므로 기주의 병사들은 일당십이었다. 숭후호 진영의 금계 장군이 상대편 조병장군의 칼을 맞아 말에서 떨어졌다. 숭후호는 세력이 불리한 것을 보고 한편 싸우면서 한편 도망치기에 바쁘다.

숭응표가 아버지 숭후호를 보호하면서 필사적으로 탈주로를 열고 도망가는데, 흡사 상갓집의 개와 같았고 막 그물에서 벗어난 물고기와 같았다. 기주의 군대는 흉포하기가 사나운 호랑이 같고, 악랄하기가 이리나 여우와 같았다. 죽은 시체가 들판에 가득 깔렸고, 피가 도랑을 이루어 흐르고 있었다.

숭후호 군대는 서둘러 분주히 달아나는데 밤이 깊어 길조차 모른 채 그냥 앞을 향해 도망치고 있었다.

단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발버둥 칠뿐이었다.


 

▲ 싸움에서 패한 숭후호에게 장자 숭응표는 우선 전열을 가다듬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미리 매복해있던 소전충의 공격에 숭후호는 또 다시 도망가고 숭웅표가 소전충과 싸우다 심한 상처를 입는다. 
ⓒ 삽 화 권미영

 

 소호는 도망치는 숭후호 패잔병들을 추격하여 20여리를 쫓았다. 이때서야 징을 쳐서 군사를 거두도록 명령을 내렸다. 소호 군은 이날 밤 야습에서 일방적으로 승리를 하고 기주성으로 되돌아갔다.

한편 숭후호 부자는 대오가 흐트러져 뒤죽박죽이 된 패잔병들을 거느리고 앞을 향해 허겁지겁 도망가고 있는데, 다만 황원제와 손자우 장군이 後軍후군을 재촉하며 뒤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숭후호가 말위에서 여러 장수들에게 말한다. “내가 병사를 이끌고 출병한 이래 일찍이 크게 패한 적이 없었다. 오늘 저 역도들에게 우리 진영이 몰래 습격을 당하였고, 마침 캄캄한 밤이라 미처 준비조차 하지 않아 수많은 병사와 장수를 잃어 큰 손실을 입었다. 이 통한을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생각해보니 西伯侯서백후 姬昌희창은 스스로 무사함만을 취하여, 천자의 어지를 어기어 군사를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서 成敗성패를 관망하기만 하는데 진실로 이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장자 숭응표가 대답한다. “싸움에서 이미 패하였고, 사나운 기세 또한 이미 잃었습니다. 이제 군대를 멈추어 움직이지 말고 전열을 다시 가다듬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서백후에게 사람을 보내어 군사를 일으키도록 재촉해서, 호응해 오면 그때 다시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다 듣고 난 후 숭후호가 대답한다. “내 아들의 의견이 몹시 현명하구나. 날이 밝는 대로 군사와 말을 수습하고, 다시 상의를 해보도록 하자” 이 말이 채 끝나지기도 전에 대포소리가 하늘을 울린다.
대포소리에 이어 함성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어디선가 “숭후호는 빨리 말에서 내려 죽음을 받으라!”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숭후호 부자와 여러 장수들은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니, 젊은 장수하나가 보였다.

머리를 묶어 금관을 썼으며 이마에는 황금색 띠를 두르고 한 쌍의 꿩 깃털을 꽂아 흔들거린다. 커다란 붉은 도포에 황금갑옷을 걸친 그는 銀合馬은합마를 타고 畵杆戟화간극을 들었는데, 얼굴은 보름달 같고 입술은 주사를 칠해놓은 듯 했다.

그 젊은 장수는 이곳에서 미리 잠복하여 기다리고 있던 소전충이었다. 사나운 목소리 꾸짖는다. “숭후호! 나는 내 아버지의 명을 받들고 여기에서 당신을 기다린 지 이미 오래다. 속히 창을 버리고 죽음을 받으라! 아직도 말에서 내리지 않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숭후호는 소전충을 크게 꾸짖는다. “이런 맹랑한 놈이 있나! 너희 부자는 모반을 하고 조정의 명을 거역했다. 조정의 명을 받은 관원을 죽이고, 천자의 군마를 살상하였으니 그 죄가 산과 같이 쌓였다. 너의 시체를 마디마디 토막 내더라도 그 죄를 씻기에 부족할 것이다. 우연히 한밤중에 습격한 그 간사한 계책이 들어맞았다고 감히 위세를 부리고 날뛰면서 큰 소리를 치고 있구나. 이제 하루가 못되어 천자의 군대가 도착하면 너희 부자는 죽어서 장례 지낼 땅조차 없게 될 것이다. 누가 나에게 저 역적 놈을 사로잡아 오겠는가?”

황원제가 말을 몰아 칼을 휘두르면서 곧장 소전충을 향해 달려간다. 소전충은 손에 들고 있던 삼지창으로 황원제의 얼굴을 공격한다. 타고 있던 두 말도 함께 교차하며 한바탕 큰 싸움이 벌어졌다.

두 장수의 싸움이 치열하였으나 그 승부가 쉽사리 가려지지 않았다. 옆에 있던 손자우가 말고삐를 늦추고 삼지창을 휘두르면서 달려들었다. 그리하여 황원제와 손자우 두 사람이 소전충 한 사람을 놓고 싸우게 되었다.

2대 1의 싸움에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던 소전충이 갑자기 큰소리로 고함을 내지르면서 창으로 손자우를 찔러 말에서 떨어뜨렸다. 소전충은 이를 틈타 다시 기운을 돋우면서 숭후호를 향해 돌진했다. 이제는 숭후호 부자가 소전충과 맞서는 형세가 되었다.

소전충이 뛰어난 무술 실력을 유감없이 떨치는데, 마치 바람을 탄 사나운 호랑이 같고, 바다를 뒤흔드는 교룡과 같다. 세 장수가 어울려 한바탕 싸움이 무르익었다. 한창 싸우는 가운데 소전충이 숭후호의 허점을 틈타 창으로 숭후호의 다리를 보호하는 철갑 한쪽을 낚아서 벗겨버렸다. 깜짝 놀란 숭후호가 말을 힘껏 몰아 싸우던 장소를 벗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숭응표는 아버지가 패주하는 것을 보자 마음이 조급해지고 손발마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당황해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때 소전충이 숭응표의 가슴을 향해 창을 찔렀다. 승응표가 급히 피했으나 창은 이미 왼쪽 어깨에 깊이 박혔다. 피가 도포와 갑옷위에 흥건히 흘러내리는데,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번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상대편 장수들이 황급히 달려들어 숭응표를 구해내고는 死地사지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아래 무조건 앞을 향해 도망치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소전충은 그들을 추격하려고 하였으나 칠흑과 같이 어두운 밤이었고 뜻밖의 일이 생길까 걱정되어 병사들을 정돈한 뒤 철수하여 성으로 돌아왔다.
이때 날은 점차 밝아오는데, 소전충이 궁궐로 돌아와 그날 밤 싸움의 결과를 보고했다. 소호가 아들 전충을 前殿전전에 불러 물었다. “그 도적을 잡아 왔느냐?”

소전충이 “아버님의 명을 받들어 오강진에 매복해 있는데, 한밤중에 패잔병이 도착했습니다. 그때 공격을 개시하여 용맹스럽게 싸워 손자우를 찔러 죽이고, 창으로 숭후호의 다리를 보호하는 철갑을 벗겼으며, 숭응표의 왼쪽어깨에 상처를 입혀 말에서 막 떨어지려고 하는 찰나에 그쪽 편 여러 장수들의 도움을 받아 도망치는 바람에 놓쳐버렸습니다. 깜깜한 밤인지라 경솔하게 추격할 수 없어 군사를 철수하여 돌아왔습니다.” 한다.

소호가 “이제 이 늙은 도적도 끝장이로구나! 전충은 우선 편히 쉬도록 하라.” 한다. 모두들 그 자리에서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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