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대도시의 인상은 한마디로 ‘혼돈’입니다. 남부도시 호찌민보다 사정이 한결 낫긴 하지만 북부의 수도 하노이도 끝없는 오토바이의 물결과 매캐한 차량 배기가스, 마구잡이로 울려대는 경적, 고가도로까지 걸어 건너는 보행자의 무단횡단에 머리가 다 어찔어찔해질 정도입니다. 하노이 시내의 극심한 교통혼잡은 일종의 은유인 듯합니다. 곡예를 하듯 차량은 오토바이를, 오토바이는 차량을 물결처럼 비켜 가는 도로 위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연하고 민첩하게 움직여야만 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악착같은 삶이 들여다보입니다. 이른 새벽 그 길 위에서 꽃을 가득 싣고 가는 자전거를 만났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위해서, 주변을 치장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이를 위한 선물로 베트남 사람들은 꽃을 사고팝니다. 베트남 시장에는 과일 노점 숫자만큼 꽃을 파는 행상이 있습니다. 도시의 누추한 시장과 뒷골목을 환하게 밝히는 건 꽃입니다. 끝없는 전쟁을, 그리고 악착같은 삶을 꽃으로 덮고 있는 도시. 여기는 베트남의 하노이입니다. #하노이의 혼돈, 그리고 자부심
대신 하노이에는 국민적 영웅인 호찌민을 기리는 묘소와 기념관, 박물관으로 대표되는 혁명과 투쟁의 자취, 그리고 끊이지 않은 전쟁 속에서 외세를 물리친 영웅담이 깃든 관광지들이 즐비하다. 여기에다 낡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이 양념처럼 남아 있다. 외세의 침략과 전쟁에서 단 한 번도 굴복해본 적 없는 베트남의 역사는 하노이의 관광지 어디에나 서려 있다. 이를테면 하노이 구도심 번화가의 중심인 호안끼엠 호수. 거대하게 뿌리를 내린 반얀 나무가 늘어진 아름다운 호수 호안끼엠의 이름은 한자 ‘환검(還劍)’에서 나왔다. 1000년간 베트남을 지배했던 중국 문화의 흔적이다.‘환검’이란 ‘칼을 받았다’는 뜻이다. 15세기 베트남 왕조를 세운 이가 이 호수에서 거북이에게서 받은 칼로 명나라를 물리쳐 베트남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하노이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는 호수의 이름에도 승전의 역사가 깊게 새겨져 있는 것이다. 중국과 싸워 이기고, 프랑스를 물리치고,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미국과의 베트남 전쟁에서도 승리한 베트남의 자부심은 이렇게 하노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삶이 가까운 도시…하노이 시장 베트남의 도시에서는 삶이 가깝다. 도시의 번잡한 도로 한쪽에 거울을 걸고 머리를 깎아주는 이발사가 있고, 기껏 몇 푼을 받기 위해 정성껏 운동화를 닦아주는 할머니가 있다. 한쪽 끝에는 화덕을, 다른 쪽 끝에는 국수 따위를 매단 장대를 어깨에 메고 그 자리에서 국수를 말아내는 아주머니가 있는가 하면, 그걸 다 판다 해도 하루 벌이로는 턱없다 싶은 손바닥만 한 좌판을 펼쳐놓은 아저씨도 있다.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처녀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젊은 남자들은 길거리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달짝지근한 커피를 마신다. 고단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순정적이기도 한 삶의 풍경들이다. 이런 풍경들이 유독 흥미롭게 느껴지는 건, 하노이 구시가지의 누추한 풍경과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건너온 시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년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하노이의 골목에서 부족했지만 아름다웠던 과거의 시간과 문뜩 조우하게 된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에서, 상인들이 펴고 앉은 좌판에서 이른 새벽부터 북적이는 시장에서….
호안끼엠 호수 북쪽의 동쑤언 시장이 종합시장이라면, 거기서 걸어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롱비엔 시장은 과일을 주로 파는 시장이다. 하노이 서호 북쪽의 꽝안 시장은 꽃을 파는 거대한 꽃시장이다. 한밤중에 불을 밝히고 산더미처럼 쌓인 과일을 파는 롱비엔 시장과 온통 꽃으로 가득한 꽝안 시장의 북적이는 모습에서는 삶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오로지 베트남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혼돈의 거리를 달리는 꽃자전거 하노이의 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장에서, 또 거리에서 꽃을 파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어느 시장을 가든 자전거를 이동수단 겸 좌판 삼아 활짝 핀 꽃을 싣고 와서 파는 상인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수가 적지 않다. 동쑤언 시장에는 딱 과일 좌판의 숫자만큼 꽃 자전거가 늘어서 있었다. 허름한 시장통에서 꽃이 과일만큼 팔린다는 얘기다. 베트남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집과 가게를 늘 꽃으로 장식하고, 제단에도 꽃을 바친다. 가벼운 선물로 꽃을 주고받는 풍습도 있다. 명절이면 꽃을 피운 귤나무와 복숭아나무가 불티나게 팔린다. 이른 새벽 삼각뿔 모양의 모자 ‘농’을 쓴 여성이 꽝안 시장에서 떼어온 꽃을 가득 싣고 여명의 도시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지나는 모습은, 그것 그대로 하노이를 장식하는 한 송이 꽃이다. 중년 이상의 관광객들에게 시장이 각별하다면,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곳은 하노이 구도심의 ‘36거리’이리라. 호안끼엠 호수 북쪽의 비슷비슷한 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된 길을 36거리라고 부른다. 서른 여섯 개 상공인 조직이 거리별로 정해진 상품을 만들어 팔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지금도 100년이 넘은 건물이 드물지 않은 이곳에는 골목마다 문구와 그림, 옷가게 등이 밀집해 있다. 뜨개실만 파는 거리도,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거리도, 가전제품을 파는 골목도 있다. 36거리 인근에 한국의 여행자 사이에서 속칭 ‘뜨고’ 있는 ‘맥주거리’가 있다. 좁은 골목 양쪽의 가게가 모두 술집이나 클럽인데 가게 앞에는 저마다 손바닥만 한 목욕탕 플라스틱 의자를 내놓고 손님을 맞는다. 거리에 나와 앉은 손님들에다 택시와 오토바이가 행인들과 뒤섞이며 소란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용광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젊은이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합석을 하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면서 술에 취한다. 이곳이 독특했던 건 방콕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도시 뒷골목의 환락가에서 흔히 느껴지는 음습함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이곳을 빼놓을 수는 없다…하롱베이 하노이뿐만 아니라 베트남을 대표하는 관광지라면 단연 하롱베이다. 1969개의 석회암으로 이뤄진 크고 작은 섬이 바다 위에 그림처럼 떠 있는 곳.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자연공원으로 등록돼 있다는 명성 탓에 하노이를 찾은 여행자들이라면 국적 불문 의무처럼 다녀오는 곳이다. 하롱이란 이름은 중국어 ‘하룡(下龍)’에서 나왔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외세 침략과 승리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바다 건너에서 쳐들어온 침략자를 막기 위해 용이 이곳으로 내려와 보석과 구슬을 바다 위로 내뿜자 기기묘묘한 섬이 돼서 적을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미리 결론부터 말해두자면 하롱베이에서의 감흥은 기대보다 크지 않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하롱베이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들의 평가도 대부분 그랬다. 사진으로 보는 하롱베이는 입이 딱 벌어질 만하다. 실제 하롱베이에서 만나는 경관도 사진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우중충하고 탁한 베트남 북부의 날씨 탓인지, 혹은 황토색 바다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압도적인 감격은 없다. 그렇다고 ‘시시하다’는 정도는 아니고, 기대를 채워줄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노이를 찾았다면 누구든 하롱베이를 찾지 않을 수 없을 테고, 좀 실망스럽다고 해도 그걸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한다는 데는 기꺼이 동의한다. 하롱베이 관광은 대부분 현지 여행사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게 된다. 당일치기 투어 요금이 우리 돈 4만5000원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 선착장까지는 차로 4시간 남짓이다. 왕복 교통비에 입장료와 유람선 승선료, 유람선에서 갈아타는 노 젓는 작은 배 요금, 거기다 점심 식사까지 다 포함돼 있으니 저렴한 편이다. 당일치기 하롱베이 투어는 유람선을 타고 섬과 섬 사이의 바다를 서너 시간쯤 항해하다 ‘삼판’이라 불리는 노 젓는 작은 배로 갈아타고 동굴을 둘러본 뒤에 배에서 내려 종유석이 샹들리에처럼 늘어진 거대한 석회동굴을 하나 둘러본다. 탄성은 석회암 동굴에서 나왔다. 총천연색의 좀 촌스럽다 싶은 조명도, 동굴 곳곳 관광객들의 손때도 거대한 동굴 안의 종유석들이며 석주, 석순들의 우람하고 화려한 자태를 가릴 수 없었다.
#새로운 명소 짱안, 그리고 바이딘 사원 하롱베이를 흔히 ‘바다의 구이린(桂林·계림)’이라고 부른다면, 하노이에서 남쪽으로 100㎞쯤 거리에 있는 닌빈성의 작은 도시 짱안은 ‘육지의 하롱베이’라고 표현한다. 비유에서 비유로 건너온 표현이다. 베트남에서는 ‘tr’을 ㅉ으로 발음한다. 짱안은 ‘Trang An’으로 쓴다. 그런데 알파벳을 지우면 ‘장안(長安)’이란 한자가 드러난다.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은 지금 중국의 시안(西安)이다. 당나라가 무너지자 베트남은 그 수도의 이름을 여기에다 옮겨두었다. 베트남을 통일하고 짱안을 수도로 정한 딘 왕조가 여기서 제국 건설을 꿈꾸었던 것이다. 짱안은 하롱베이와 마찬가지로 평탄한 지형 위에 석회암이 녹아 만든 우뚝한 바위가 들어선 기묘한 지형을 품고 있다. 짱안은 베트남 수도로서의 역사와 일대의 빼어난 경관이 합쳐지면서 지난 2014년 문화와 자연이 결합한 유네스코 복합유산으로 지정됐다. 베트남의 역사가 깃든 유적도 흥미롭긴 하지만, 대부분 관광객은 경관지구에 펼쳐지는 독특하고 빼어난 풍경을 즐기기 위해 짱안을 찾는다. 짱안 여행의 백미라면 들판 위에 산이 섬처럼 기묘하게 우뚝 솟아 있는 산이 접첩이 그려내는 동양화풍의 절경을 감상하며 즐기는 뱃놀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짱안보다는 비슷한 경관을 품고 있는 인근의 땀꼭이 명소로 꼽혔는데, 기반시설 부족과 들끓는 잡상인 탓에 비슷한 경관의 짱안으로 관광객이 몰려든다. 짱안에서는 삼판 조각배를 타고 두 시간 남짓 강물을 따라 흘러가며 주변 경관을 감상하고 도합 아홉 개의 석회동굴을 지난다. 짱안을 찾아간 김에 들를 만한 곳 한 곳. 짱안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동남아시아 최대 사찰 바이딘 사원이 있다. 지난 2007년 문을 연 사찰은 테마파크를 연상케 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 전체 부지면적이 539㏊(163만여 평)이고 사찰 건축물이 들어선 면적만 자그마치 27㏊(8만1600여 평)에 달한다. 세월이 묻어 있지 않은 신식 절이긴 하지만 긴 회랑을 따라 늘어선 500개의 나한 불상이며, 거대한 전각과 동종,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12층 불탑 등이 감탄을 자아낸다. 하노이까지는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시차는 2시간. 한국 시간에서 2시간을 빼면 된다. 베트남 화폐단위는 동(VND). 1동은 19.8원쯤이다. 베트남 돈에서 0을 하나 지우고 절반으로 나누면 한화로 금방 계산된다. 물가는 저렴한 편. 다국적 체인 호텔이 아니라면 특급호텔을 80~90달러 남짓에 묵을 수 있다. 음식값도 저렴한 편. 괜찮은 식당의 쌀국수 한 그릇에 2000~3500원쯤이다. 하노이 시내에는 한국 식당들이 많다. 하롱베이나 땀꼭, 짱안 여행은 호안끼엠 호수 인근에 즐비한 여행사에서 쉽게 예약할 수 있다. 당일 상품의 경우 하롱베이는 4만5000원 남짓. 짱안이나 땀꼭은 3만 원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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