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첨단무기 전투식량
생존 필수품에서 맛있는 기호식품으로?
전투식량, 최첨단 과학기술로 병사들의 입맛을 사로잡다!
굶주린 군대가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기록은 있어도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기록은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전투식량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병사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필수품이며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진은 생존 훈련 중인 미 해병대원의 모습. 출처 : 미 국방성 홈페이지(https://www.defense.gov/Photos/)
전투식량(戰鬪食糧)은 이름 그대로 전쟁터의 군인들을 위한 비상식량을 뜻하며 부대 혹은 주둔지 식당에서 먹는 식사 혹은 전쟁 중이라도 야전 취사장에서 취사병들이 준비하는 야전식과는 구분된다. 영어로는 Field Ration, Combat Ration, Ration Pack 등으로 부른다. 포장 혹은 내용물의 용도, 보급하는 시기 및 군대 등에 따라 C-ration(Meal, Combat Individual), MRE(Meal, Ready-to-Eat), FSR(First Strike Ration), 24 Hour Ration, IMP(Individual Meal Pack), RCIR(Ration De Combat) 등의 명칭으로도 불리고 있다.
전투식량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병사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필수품이다. 때문에 전투식량은 다양한 기후의 전쟁터에서도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며, 병사들이 전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에너지와 필수 영양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데 최적화 되어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기본 조건을 갖춘 전투식량의 제조 및 가공이 쉽지 않았고 전투식량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각에 영향을 미치는 맛과 향이 변하거나 사라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식품 가공법 및 저장법이 등장하면서 병사들이 선호하는 맛과 향은 물론 다양한 기능을 갖춘 새로운 전투식량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동결건조 전투식량의 등장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즐겨 먹는 가정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HMR)의 대부분은 음식 조리법 중 하나인 동결 건조(凍結 乾燥) 혹은 냉동 건조(冷凍 乾燥) 기법으로 만들어지거나 통조림 식품 혹은 레토르트 식품(Retort food)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전투식량의 개발 과정에서 파생한 것이다.
사진의 산딸기 가공 과정과 같이 동결 건조(凍結 乾燥) 혹은 냉동 건조(冷凍 乾燥) 기술의 등장으로 다양한 음식과 과일을 맛과 영양소의 파괴를 최소화하면서도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출처 : 프리즌 드라이 푸드 홈페이지(http://www.freeze-dry.com/technology/)
통조림 전투식량의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극대화한, 새로운 전투식량에 대한 연구는 이미 194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해 1960년대가 되어서야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미국 나틱(Natick) 연구소에서는 음식의 질감과 풍미의 손실은 최소화하면서도 부피와 중량은 획기적으로 감량할 수 있는 새로운 식품 가공방법이 개발되었다. 바로 동결건조법(Freeze-drying)의 등장이었다. 동결건조법의 특징은 식품의 수분을 기술적으로 분리해 건조시켜 맛과 영양의 손실은 최소화하면서도 부피를 줄이고 보존이나 운반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필요할 경우 물을 다시 부어 가열하면 원상태에 가깝게 복원되는 성질을 활용해 다양한 가공식품 제조에 활용되고 있다.
동결건조법을 활용한 최초의 전투식량은 1960년대 미 육군에서 특수부대를 위한 경량 휴대용 전투식량으로 등장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병참사령부(US Quartermaster Command)가 동결건조법을 적용해 개발한 LRP 푸드포켓(Food Pocket, Long-Range Patrol)이 바로 그것으로 물을 넣고 끓여 먹거나 물 없이 과자처럼 먹을 수 있었고, 기존 통조림 전투식량에 비해 부피가 작고 가볍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후 LRP 푸드포켓은 미군을 위한 한랭지용 전투식량 즉 RCW(Ration, Cold Weather)와 포장 단위를 변경한 MCW(Meal, Cold Weather)로 발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 육군과 해병대를 위한 RCW(Ration, Cold Weather)와 포장 단위를 변경한 MCW(Meal, Cold Weather)는 동결건조법을 활용한 한랭지용 개인 전투식량이다.
- 전투식량 사진 : MRE인포닷컴 홈페이지(https://www.mreinfo.com/)
- 미 해병대 혹한기 훈련 사진 : 미 국방성 홈페이지(https://www.defense.gov/Photos/)
레토르트 전투식량의 끝판 왕, MRE
이와는 별도로 이미 조리한 식품을 레토르트 파우치(Retort Pouch)로 불리는 플라스틱 봉지에 넣어 밀봉한 뒤 고압으로 가압 살균 후 급속 냉동시키는 레토르트 식품(Retort food) 가공 방식도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1957년부터 미국 나틱 연구소에서 개발이 시작됐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아폴로 계획(Apollo program, 1961년~1972년)을 위한 우주식 개발에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초의 시판용 레토르트 식품은 1968년 일본의 오츠카 식품(Otsuka Foods)에서 판매를 시작한 ‘본 카레’(Bon Curry)이며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 등장한 ‘오뚜기 3분 요리’가 최초다. 레토르트 기술이 처음 개발된 미국에서 미국 식약청(FDA)의 레토르트 식품의 일반 판매 승인이 떨어진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다.
1981년 등장한 MRE는 미군 최초의 레토르트 전투식량이며 발열 팩이 포함되어 있어 음식을 따뜻하게 가열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998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24종류의 식단을 유지하고 있으며 보통 1번부터 12번까지 A형, 13번부터 24번까지가 B형으로 2개의 박스로 구성된다.
사진 : MRE인포닷컴 홈페이지(https://www.mreinfo.com/)
미군이 기존 통조림 전투식량 대신 레토르트 식품을 개인용 전투식량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1981년 등장한 MRE(Meal, Ready-to-Eat)부터다. 기존 개인용 전투식량과 MRE의 가장 큰 차이점은 통조림이 사라져 무게가 가볍다는 점과 “발열팩”으로 알려진 FRH(Flameless Ration Heater) 플라스틱 팩을 사용해 불 없이도 전투식량을 뜨겁게 가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산화마그네슘이 물과 만나면 화학적 반응을 통해 끓어오르는 현상을 이용한 MRE의 발열팩 덕분에 미군 병사들은 언제 어디서나 따뜻한 전투식량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MRE는 등장 이후 세계 각국의 전투식량에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군용 전투식량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MRE의 또 다른 특징은 현존하는 전투식량 중 가장 다양한 식단과 지속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07년 9월, 미군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투경험을 바탕으로 FSR(First Strike Ration)로 불리는 새로운 전투식량을 도입했다.
FSR과 세계 각국의 현대식 전투식량들
분쟁지역에 최초 투입되는 기동전개 부대용으로 도입된 FSR은 기존 MRE에 비해 더 가볍고 부피가 작은 것이 특징이며 별도의 취사도구 없이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FSR은 최초 전개 후 후속군수지원체계가 구축될 때까지 최대 72시간(3일) 동안 별도의 보급 없이도 임무수행이 가능하도록 병사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FSR은 기존 MRE를 대체하기 보다는 전투식량으로서 MRE의 장점을 더욱 극대화시킨 것으로 평가받으며 상호 보완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은 개인용 전투식량은 MRE와 같은 레토르트 전투식량으로, 소대급 이상의 인원을 위한 야전식량은 통조림 전투식량과 레토르트 전투식량을 적절히 혼합한 형태로 보급하고 있다. 물론 전투식량의 맛과 풍미를 중요시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의 국가는 개인용 전투식량에도 통조림 전투식량의 비율이 매우 높다. 음식 고유의 맛과 향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통조림 전투식량에 비해 레토르트 전투식량은 제조과정에서 음식의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레토르트 전투식량으로 구성된 미국의 MRE와 달리 유럽 주요 국가들의 개인용 전투식량은 레토르트 전투식량과 통조림 전투식량이 적절히 혼합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제조과정에서 음식의 맛이 변하는 레토르트 전투식량과 달리 통조림 전투식량은 비교적 음식 고유의 맛과 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프랑스군의 개인용 전투식량, RCIR(Ration De Combat)로 주요 식단인 참치 감자 통조림이나 모로코풍 닭고기 스튜, 가공 치즈 등이 모두 통조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 MRE인포닷컴 홈페이지(https://www.mreinfo.com/)
스위스군의 개인용 전투식량(Kamperation)은 아예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다양한 간편식 혹은 통조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별도의 전투식량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다양한 일반 제품 중 취식의 간편성, 영양균형, 병사들의 선호도 등을 고려해 전투식량을 구성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형 전투식량의 오늘과 미래
대한민국 육군의 경우 개인용 전투식량은 1994년 개발된 레토르트 형태의 1형 전투식량(3식단)과 동결 건조식인 2형 전투식량(3식단) 그리고 특전사를 위한 고열량 압착방식의 특수전용 전투식량(3식단, 1994년 개발)이 있다. 2003년에 개발된 즉각 취식형인 3형 전투식량(2식단)이 추가되었으며 현재 4종 11식단의 개인용 전투식량이 있다. 참고로 즉각 취식형인 3형 전투식량의 경우 발열 팩의 줄을 잡아당기는 것만으로도 음식물이 덥혀진다는 특징이 있다. 미군의 MRE이나 다른 국가의 전투식량이 발열 팩을 사용하더라도 물과 같은 발열 작용제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매우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즉각 취식형인 3형 전투식량(1식)과 특수전용 전투식량(1일치 3식)의 비교 사진. 특수전용 전투식량은 별도의 보급 없이 적진 후방에서 장기간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특전사의 임무 특성을 고려하여 부피가 극단적으로 작고 가벼우며 열량이 높고 먹기 간편하다는 특징이 있다.
사진 출처 : 계동혁
특수전용 전투식량의 경우에도 우주인들이 먹는 우주식과 비슷한데 일단 별도의 보급 없이 적진 후방에서 장기간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특전사의 임무 특성을 고려하여 부피가 극단적으로 작고 가벼우며 열량이 높고 먹기 간편하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육군은 별도의 가열이 필요한 레토르트 형태의 1형 전투식량은 즉각 취식형인 3형 전투식량으로 통합해 2020년까지 2형 전투식량 10식단, 즉각 취식형인 3형 전투식량 10식단, 특수전용 전투식량 7식단 등 3종 27식단으로 전투식량을 개선한다는 목표를 갖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국군 신형 전투식량을 리뷰하는 해외 유튜버.
좌측 사진 [출처: https://www.youtube.com/channel/UC2I6Et1JkidnnbWgJFiMeHA] 우
측 사진 [출처: https://cafe.naver.com/nuke928/240883]
다양한 기능을 갖추게 될 미래의 전투식량
전투식량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병사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필수품이다. 현대의 전투식량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간편하게 취식할 수 있고 적은 양이라도 고열량과 포만감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다만 현대 전장 환경에 최적화된 전투식량은 당연히 기호식품과 같이 모든 병사의 입맛에 맞출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또한 2000년대 초반까지 등장했던 전투식량조차도 영양의 불균형으로 인해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장기간 취식을 금지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전투식량은 맛이 없다는 편견이 점점 깨지고 있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21세기형 전투식량들은 최첨단 식품공학 덕분에 생존필수품에서 장병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기호식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전투에 지친 병사들이 전투식량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와 필수 영양소를 공급받는 것은 물론 최소한의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도록 다양한 부가기능이 추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온음료와 같이 탈수상태의 병사들이 빠른 회복을 돕는 기능성 음료부터 초코바와 같이 적은 량을 먹더라도 포만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간식 등이 대표적인 예다.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의 개인용 전투식량(24 Hour Ration)조차도 병사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필요할 경우 일반 시판 제품도 부식 및 간식으로 과감하게 도입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전투식량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조금이라도 더 맛있고 다양한 부가기능을 갖춘 전투식량을 병사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 : 영국 정부 홈페이지(https://www.gov.uk/government/news/)
글 : 계동혁 군사전문가 <육군 블로그 필진>
* 본 글은「육군 아미누리 블로그」필진의 기고문으로, 육군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軍史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투용 장갑과 전술장갑 (0) | 2020.02.12 |
---|---|
탄약 걱정 없는 미래전쟁 핵심 무기 (0) | 2020.01.31 |
역사 속으로 사라질 해체 예정 부대들 (0) | 2020.01.21 |
차기 차륜형 장갑차의 현재와 미래 (0) | 2019.12.24 |
2020년 국방예산 (0) | 2019.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