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神 줄줄 외워도 토종神은 몰라?
무속 기피 의식 탓 우리 神 등한시하는 콤플렉스로 작용
신화는 고대의 지혜다. 신화는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 찾는 옹달샘이다.
필자는 세상을 ‘압축해서’ 산 세대에 속한다. 우리 부모세대와 전근대를 함께 호흡했고 전후세대와 근대를 살았고 우리 아들딸과 더불어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활은 유교 전통에 뿌리내리고, 사유는 불교적 울타리를 맴돌고, 꿈은 신선경에 두고, 몸은 기독교적 서구문화와 놀고, 가끔씩 의식의 저류에 흐르는 샤머니즘과 그 의식의 지표를 강타한 마르크시즘이 충돌하는 기파를 느끼면서 자본주의적 적자생존의 생활전선 위에서 사회운동을 복합적으로 체험하며, 근대와 탈(脫)근대의 모든 사상과 노선이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지적 혼돈의 시대를 살아왔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온 세대! 그렇다. 그것은 우리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우리 신화를 빌려 말하자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바리데기’의 물음이다.
너는 누구냐?
얼마 전 그리스.로마 신화 열풍을 빗댄 ‘제우스는 가깝고 친한 사촌이지만 단군은 멀고 서먹한 육촌쯤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웃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다른 우리 신들은 어떨까? 몇 년 가도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팔촌쯤이나 될까? 바리데기는 먼 팔촌이다.
애니메이션 ‘바리공주’ 프로젝트로 그나마 바리공주를 아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 바리공주의 원래 이름이 바리데기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천덕꾸러기라는 뜻이다. 그래서 부엌데기처럼 얕잡아 이르는 말인 ‘-데기’를 붙여 부르는 것이다. 어릴 적에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부모님한테 야단맞아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정말로 나는 주워온 자식이 아닐까’ 고민했을 게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때때로 바리데기가 아니었을까? 그런 바리데기가 왜 공주냐고? 아버지가 오구대왕이기 때문이다. 아카마쓰 지조(赤松智城)ㆍ아키바 다카시(秋葉隆)가 채록한 ‘바리공주’에 나오는 노래 한 구절을 들어보자. 바리데기가 자신을 데려다 기른 비리공덕 부부에게 “날짐승 길벌레도 다 어미 아비가 있거늘 나의 어미 아비는 어디 있느냐”고 묻자 비리공덕 부부는 “전라도 왕대가 아비 같고 뒷동산 머귀나무가 어미 같다”고 얼버무린다.
전라도 왕대밭은 멀고 멀어
삼시 문안 못 드리겠다
뒷동산 머귀나무에 삼시 문안 극진하시더라
바리데기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한다. 뒷동산 머귀나무를 부모로 삼아 하루 세 번 문안을 드릴 정도로 간절하다. 아마도 머귀나무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너는 누구냐? 도대체 누구기에 하루에 세 번씩이나 내게 절을 하고 난리냐?”
바리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 오구대왕을 위해서 서천 서역국을 지나 저승으로 생명수를 구하러 간다.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은 언니들은 모두 외면하는데 ‘버림받은’ 바리공주가 왜 아버지를 구하러 가는 것일까? 단순히 ‘효’라는 말로써 바리의 행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
부모에게서 선택받지 못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바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콤플렉스를 생각해보라. 이 콤플렉스가 더 큰 반작용을 불러왔을 것이다. 바리의 도전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강렬한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으로서는 갈 수 없는 ‘길 아닌 길’을 가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죽음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예상했던 대로 바리가 생명수를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다. 저승 가는 길을 알기 위해 ‘마고할미’를 만나 추운 겨울날 검은 빨래를 눈처럼 희어질 때까지 빨고, ‘밭 가는 노인’을 만나서 끝없이 이어진 밭을 한없이 갈기도 한다. 무쇠다리 아흔아홉 칸을 놓아주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기 전에, 예수가 광야에 나가 40주야의 단식기도를 하면서 악마로부터 세 가지의 시험을 받았던 것처럼 바리도 앞으로 닥칠 험난한 고난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리는 끝없는 사막과 넓은 벌판을 지나 열 개의 지옥과 깃털조차 뜨지 않는 검은 강 유사하를 건너 또 다른 자신의 정체성에 한발 한발 다가선다.
신이 된 최초의 무당
바리데기는 무장승을 만나 3년 동안 물을 길어주고, 다시 3년 동안 불을 때주고, 다시 3년 동안 나무를 베어주고서야 생명수를 얻는다.
마침내 바리데기는 생명수와 생명꽃으로 아버지를 구한다. 그 과정에서 바리데기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고 싶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다시 살아난 오구대왕이 “내 죄로다” 하고 탄식하면서, 바리공주에게 “너에게 나라의 반을 주랴? 사대문에 들어오는 재물의 반을 주랴?”고 묻는다. 그러나 바리는 “소녀가 부모 곁에서 잘 입고 잘 먹지 못하였으니 만신의 인위왕(人爲王)이 되겠나이다”라고 답한다.
매월 여섯 날은 산 사람 천도하고
매월 여섯 날은 죽은 이 천도하고
일곱 폭 치마, 수놓은 저고리에 몽두리를 입고
수놓은 가죽신, 넓으나 홍띠,
쇠방울 부채를 들고
만신의 몸주 되다.
바리는 떠도는 혼백들을 만나 천도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는다. 바리는 만신이 되고자 했다. 만신이란 무당을 존중하여 부르는 말이다.
만신의 인위왕이란 무당들의 시조신, 즉 무조신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가멤논의 딸로서 아르테미스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이피게네이아처럼 신전을 지키는 무당이 아니다. 무당의 몸주, 즉 무당이 모시는 시조신이 되었다. 말하자면 바리는 신이 된 최초의 무당이다.
바리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회복하고 딸로서의 정체성을 찾고자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여행은 고통받는 자를 위해 봉사하는 무당으로서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음으로써 끝난다.
그러나 이것은 혼돈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바리데기가 힘들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음에도 이제는 텍스트 바깥으로부터 정체성에 대한 도전을 받는다.
예컨대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바리가 무당이 아니라 인로왕 보살이 되었다는 다른 이야기본이 나온다. 바리가 절에 가면 인도국 보살이 되고 들로 내려오면 무당이 된다는 이야기본도 있고, 바리가 부처의 제자이자 오구신이라는 이야기본도 있다. 원 바리데기 신화에서는 동물이나 산신이 바리를 구해주는 것으로 나오는데, 불교 영향을 받은 이야기본에서는 석가세존이 등장하여 구해주는 것으로 나온다. 저승이 불교적인 지옥으로 바뀌기도 한다. 인물만이 아니라 이야기의 줄거리까지 변화하며 신화 자체의 정체성까지 흔들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보자. 유교의 무(巫) 탄압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니 건너뛰자. 근대 이후의 이른바 보편종교 혹은 고등종교라 이름하는 것들과의 관계에서, 또 근대 이성과 과학적 사고체계와의 관계에서 대부분의 ‘먹물’들은 무속과 무당을 ‘금기’의 울타리에 가두어왔다. 그리하여 텍스트 안팎에서 바리데기가 신이 된 최초의 무당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바리데기가 힘들게 찾았던 자신의 정체성을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신화의 구술자와 그 이야기를 전한 ‘먹물’들 때문에 다시 잃고 마는 것이다. 먹물들은 원래 이런 짓을 잘하는 족속인가?
그리하여 바리는 원래부터 효를 숭상하는 착한 공주였다는 식으로, 의심할 나위 없는 효녀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고난을 통한 깨달음을 통해서 세상에 봉사하고 인간에 헌신하는 사제의 길을 선택한 무당 바리가 의지가 강하고 효심이 깊은 효녀 바리공주로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바리데기가 겪는 이중의 정체성 혼돈이라고 부르고 싶다. 일컬어 ‘바리데기 콤플렉스’라고나 할까? 바리데기의 이중의 정체성 혼돈은 바로 무속을 기피하는 금기와 무당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연관돼 있다. 무당 바리의 정체성 혼돈 위에 덧입혀진 무당 콤플렉스가 착종된 상태가 바로 ‘바리데기 콤플렉스’인 것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광고 카피는 거꾸로 ‘우리 것 콤플렉스’를 잘 드러내주는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금기와 두려움을 피하고자 하는 경향과 자신의 뿌리를 찾아 그 금기와 두려움을 대면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 사이에 우리 문화의 지형도가 그려진다고 하면 지나친 이야기가 될까? 어쨌거나 나는 말하고 싶다. 이 ‘바리데기 콤플렉스’는 사실상 우리가 갖고 있는 ‘레드 콤플렉스’보다 더 뿌리깊고 더 커다란 영향력이 있다고! 바리를 쫓아 여기까지 와보니, 우리 스스로가 우리 문화의 본체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강이 눈앞에 흐른다. 그것을 ‘바리데기 콤플렉스’라 이름 붙여보았다. 한번 죽어야 갈 수 있는 저승의 강 유사하를 건넌 바리데기처럼 우리도 한번 우리 정신의 근본을 뒤집어보자. 그래야 우리 문화의 세계, 그 광대무변한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 첫번째 만남이 신화다. 뿌리깊은 ‘무당 콤플렉스’가 우리 신화의 원형, 우리 문화의 원형을 사정없이 비틀고 소멸시켜버리고 있지 않은가? 바로 이때 우리를 설레게 하는 현대에 살아 있는 고대신화의 마지막 임종, 그 짧은 한순간이나마 지켜볼 영광을 누려보자.
그 속에서 필자는 ‘신명’의 빛 한 줄기를 찾아보고 싶다. 지금 이 혼돈과 질서의 보이지 않는 작은 틈새에서 문득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신화여행을 꿈꾸며. 지나온 여러 시대의 잔해를 밟고 서서!
현대의 신화는 판타지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것은 소설로, 영화로 다시 태어난다. 때때로 신화의 상징과 이미지를 차용한 광고 영상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반지의 제왕’처럼 고대신화를 재현하는 영화가 삭막한 현대인의 삶에 옹달샘이 되어주기도 한다. ‘몬스터주식회사’ 같은 애니메이션에서는 현대의 도시 공간 저편에 존재하는 ‘지하국’의 ‘오래된 도깨비’들이 다시 살아난다.
신화가 신화인 이유는 상징과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는 욕망의 ‘상징’이다. ‘몬스터주식회사’에서는 도깨비와 지하국의 ‘이미지’가 현대의 옷으로 갈아입고 새롭게 태어난다.
유니코리아 픽쳐스㈜의 애니메이션 ‘바리공주’ 역시 신화와 애니메이션이 판타지를 매개로 서로 잘 어울리는 관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장선우 감독이 쓴 초기의 시놉시스와 원화 초안으로 맛깔스럽게 정리된 바리데기 이야기를 새롭게 듣는 것은 꽤 신선한 경험이다.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이야기의 삽화들이 사라진 우리 신화의 틈새를 메워 새로운 신화를 그려내고 있으니 맛깔스러울 수밖에!
신화 읽기의 묘미
바로 이 지점에 신화 읽기의 묘미가 있다. 신화의 상징과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또 그 해석에 따라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낼 것이냐? 이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게임이다.
바리데기 신화의 주제가 ‘효’라는 이도 있고 ‘버림받은 딸의 정체성 찾기’라는 이도 있다. 또 ‘현실의 질곡에 맞서는 여성성’으로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필자는 새로운 관점으로 보고 싶다. ‘무당 되기’가 주제가 아닐까 한다.
왜 이렇게 하나의 신화를 놓고 서로 다르게 해석할까?
우리 신화는 일부 건국신화 외에는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았다. 우리 신화는 무당의 입에서 입으로 수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노랫말 속에 살아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면서 신화의 줄거리나 에피소드가 변형되거나 삭제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수많은 세대를 거쳐오면서 불교와 유교, 때로는 도교와 혼합되고 억압과 고난 속에서 변신을 거듭해왔다. 더군다나 노래하는 무당에 따라서도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이야기본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 신화는 내재된 상징을 읽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바리데기 신화에서는 어떤 상징이 핵심이 되는가?
바리가 ‘키는 하늘에 닿을 듯하고 눈은 등잔만 하고 얼굴은 쟁반처럼 크고 손은 솥뚜껑 같고 발은 석 자 세 치인’ 무장승을 만나는 장면을 한번 보자. 바리가 무시무시한 무장승에게 세 번 절을 하자 무장승이 바리에게 묻는다.
그대가 사람이뇨 귀신이뇨?
날짐승 길버러지도 못 들어오는 곳에
어떻게 들어왔으며, 어디서 왔느뇨?
나는 국왕의 일곱째 대군으로,
부모 살리러 왔나니
물값 가져왔냐? 아차 중에 잊었나니
풀값 가져왔냐? 바삐 오는 길에 잊었나니
나무값 가져왔냐? 자주자주 잊었나니
밑 빠진 두멍에 물 삼 년 길어주소
불 삼 년 때어주소
낫 없이 나무 삼 년 베어주소
석삼년 아홉 해를 살고 나니
필자는 바로 이 ‘석삼년 아홉 해’가 가장 핵심적인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바리데기는 무장승을 만나기 전까지 생명수를 찾아 온갖 역경과 고난을 헤치며 멀고 먼 길을 여행했다. 그것을 ‘길 찾기’라고 해두자. 그렇다면 왜 무장승을 만나서 ‘석삼년 아홉 해’ 동안 물 긷고, 불 때고 나무하는가? 물론 생명수를 얻기 위해서다. 여기서 상상력을 발동시켜보자. 이 지점을 단순하게 ‘그랬나 보다’ 하고 읽고 넘어가면 신화 읽는 묘미를 놓치기 십상이다.
힌트가 하나 있다. 무장승이라는 캐릭터가 바리데기 신화의 다른 본에서는 무장신선 혹은 무장선관으로 나온다. 드디어 ‘승’이 아니라 ‘신선’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무장승은 이름이 ‘무장’이고, 그 직함이 ‘승(僧)’이거나 ‘신선(神仙)’이리라. 아니, 원래 신선이었으나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승으로 바뀌었다고 봐야 한다.
자, 신선 무장을 만난 바리가 아홉 해 동안 일을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스승 밑에서 수련할 때 마치 통과의례처럼 반드시 치러야 하는 과정 말이다.
그렇다면 3년 동안 물 긷고 3년 동안 불 때고 3년 동안 나무하는 일은 바로 수행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리가 처음 무장신선을 만났을 때 절을 세 번 했다는 것은 바로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석삼년 아홉 해’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일(노동)과 수행이었던 것이다. 바리는 그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다. 무장이 생명수를 찾는 바리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자.
그대가 길어다 쓰는 물이 약수이니 가져가고
베던 풀은 개안초이니 가져가오
뒷동산 후원의 꽃은
숨살이꽃, 뼈살이꽃, 살살이꽃이니 가져가오
바리가 3년 동안 길어다 쓰던 바로 그 물이 생명수이고, 3년 동안 베던 풀이 곧 눈을 뜨게 하는 풀이며 3년 동안 거닐던 바로 그 ‘뒷동산’의 꽃이 숨을 쉬게 하고 뼈와 살을 살리는 꽃이었던 것이다. 비록 말은 무장신선의 입을빌려 나왔지만, 그 깨달음은 바리의 ‘석 삼년 아홉 해’의 길 닦음 전체를 울리는 것이다. 아니, 추운 겨울날 검은 빨래를 희어지도록 빨고, 끝없는 논을 갈고, 무쇠다리 아흔아홉 칸을 놓아준 그 험난한 고난과 저승 가는 길에서 병든 자와 고통받는 자를 만나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물었던 그 내면의 길 찾기 전체를 함께 울리는 것이다. 생명의 열쇠는 바로 ‘지금 여기’의 물과 풀과 꽃이었던 것이다.
그 깨달음의 의미는 뒤에 나오는 바리의 노래에서 알 수 있다. 오구대왕을 살린 후 바리는 이렇게 말한다.
소녀가 부모 곁에서 잘 입고
잘 먹지 못하였으니
만신의 인위왕이 되겠나이다
부모 곁에서 잘 입고 잘 먹지 못하였으면, 오구대왕이 주겠다고 하는 나라의 반을 받든지 재물의 반을 받아서 이제부터라도 잘 먹고 잘 입으려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바리는 왜 권력과 재물을 마다하고 ‘부모 곁에서 잘 입고 잘 먹지 못하였으니’ 만신의 인위왕이 되겠다고 했을까? 여기서 ‘만신’은 무당을 뜻한다. ‘만신의 인위왕’이란 무당의 시조로서 신이 되겠다는 뜻이다.
이제까지 못 먹었으니까 만신의 왕이 되어서 저승 가는 길목에 지키고 앉아 절밥도 받아먹고 무당밥도 받아먹겠다는 것인가? 실제로 그와 같은 구절도 있다.
바리공주는 인도국 보살이 되어
절에 가면 한 상 가득히 공양을 받고,
들로 내려오면 큰머리 단장에
은아몽두리 입고 언월도와 삼지창,
방울과 부채를 손에 든 무당이 되어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도록 마련하였다
더군다나 바리는 자신뿐 아니라 남편 무장과 아이들, 그리고 자기를 길러준 비리공덕 할미 할아비가 먹고 입고 살게 해달라고 오구대왕에게 요청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바리의 말을, 이제까지 못 먹었으니까 이제라도 챙겨 먹겠다, 이렇게 해석하면 곤란하다. 이렇게 읽는 사람은 돈만 아는 선무당이나 돌팔이 무당만 봐온 게 분명하다.
내림굿에는 무당의 앞날을 알아보는 ‘녹타기’라는 순서가 있다. 내림굿을 받는 신딸이 그릇에 든 맑은 물, 쌀, 잿물, 돈, 흰 콩, 여물, 뜨물의 일곱 가지 녹 가운데서 어느 것을 먼저 여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신딸이 ‘돈’을 먼저 열면 내림굿을 주재하는 신어머니나 선배 무당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무당에게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맑음의 상징인 ‘맑은 물’이 가장 중요한 녹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리의 말을 ‘잘 먹고 잘 입고 잘살기 위해서’ 무당이 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무장이 평토제를 받아먹고 살고, 비리공덕 할미가 별비를 받아먹고 살고, 바리의 일곱 아들이 저승의 십대왕이 되어 먹고산다고 할 때, ‘제삿밥을 받아먹는다’는 것은 신의 직능을 맡았다는 상징일 뿐이다. 그러므로 ‘잘 먹지 못하였으니’라는 구절과 ‘제삿밥을 받아먹는다’는 구절을 말 그대로 기계적으로 연결하면 얼토당토않은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리는 왜 하필 ‘부모 곁에서 잘 입고 잘 먹지 못하였으니’ 만신의 왕이 되겠다고 하였을까? 필자는 그 사이에다 ‘소녀와 똑같이 부모 곁에서 잘 입고 잘 먹지 못한 다른 소녀, 더 나아가 인간을 위해서’라는 말을 넣어서 읽는다. 그래야 무리 없이 의미가 통하는 것이다.
황해도 내림굿에서 신어머니가 신딸의 머리를 풀어 다시 올려주면서 내리는 공수를 들어보자. 신어머니는 부정한 것을 깨끗이 씻으라고 소나무 가지에 맑은 물을 묻혀 신딸의 머리에 뿌리며 이렇게 노래한다.
천지신명 다 맑은 물에 내려주시니
마음이 편하고 욕심을 갖지 말지어다
한없이 맑은 마음을 가지고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길 모르는 사람 길 가르쳐주고
불쌍한 사람 도와주고
외로운 사람 벗이 되고
신이 된 최초의 무당 바리의 깨달음과 한 치도 어긋남이 없지 않은가? 아마도 이 노래야말로 무당의 시조신으로서의 바리가 신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부르는 노래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이렇게 확장되어가는 바리의 깨달음을 확인함으로써 그야말로 ‘석삼년 아홉 해’가 상징하는 일(노동)과 수행이 무당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보다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한국의 무(巫)는 근대적인 이론화 과정을 밟은 적이 없다. 체계화한 경전이 아니라 신화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한국 무의 지평을 신화의 상징체계에서 찾는다. 그 상징의 다리를 두드리며 우리 신화를 새롭게 읽어가는 묘미를 터득해야 재미있는 신화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다. 고등학교 때 ‘취주악단’이라는 밴드 활동을 했다. 가로늦게(‘뒤늦게’의 사투리) 클라리넷을 배우고 연주하면서 바람이 났다. 어떻게 하면 음대에 갈 수 있는지에 골몰했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 음대에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 악기를 구입하는 것부터가 간단치 않았다. 소 한 마리를 팔아야 클라리넷을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1970∼80년대 농촌에서는 소가 가장 큰 재산이었다. 뿐만 아니라 소는 일꾼 중 일꾼이었다. 그런데 그런 귀한 소를 팔아야 클라리넷을 살 수 있으니…. 결국 1년여 동안 부모님 눈치만 살피다가 말 한마디 못해보고 음대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 후로 나는 ‘인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고민을 혼자 지고 헤맸다. 어둡고도 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나를 위로해준 것은 밥 딜런과 존 바에즈의 노래였다.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를 즐겼으면서도 나는 누가 노래를 불러보라고 멍석을 깔아주면 금세 주눅이 들고 마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무엇보다 노랫말을 기억하는 노래가 몇 곡 안 되기 때문이다. 공간지각력이나 창의력은 좋지만 기억력이 나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도 나에게는 사람들 이름을 기억하는 게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를 지칭할 때, 이름을 말하지 못하고 그의 이력이나 그를 대표하는 사건 혹은 이미지를 대신 말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친구 중에 노래 전주만 시작되면 노랫말이 절로 흘러나오는 녀석이 한 명 있다. 노래책 몇 권 분량이 머릿속에 입력돼 있어서 밤새 불러도 레퍼토리가 끝이 없는 친구다. “어떻게 저 많은 노랫말을 다 기억할까?” 내게는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신화를 공부하면서, 굿노래가 어떻게 몇 천년을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을까 궁금해했던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어떻게 그 ‘길고도 긴’ 신화의 노랫말이 수천년 동안 사람의 머릿속에 기억돼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신의 노래 5만 줄 35만 자
현재 우리 신화는 무당이 굿할 때 부르는 노래, 즉 굿노래로 남아 있다. 물론 문자로 기록된 건국신화도 있지만, 건국신화는 우리 신화의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 신화의 본령은 굿노래에 있다. 여기서는 수천년을 무당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굿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학자들은 굿노래를 보통 무가(巫歌)라 부른다. 하지만 무당들은 ‘신의 노래’, 즉 신가(神歌)라고 한다. 오늘날 채록된 무당의 노래 몇 가지를 보자. 현용준이나 진성기 선생이 채록한 제주도 굿노래는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진성기 선생의 ‘제주도 무가본 풀이사전’은 해설을 포함해 827쪽에 달하며, 해설을 빼도 714쪽이나 된다. 진성기 선생이 ‘후기’에서 30년 동안 채록하고 풀어서 해설을 썼다고 했는데, 젊은 시절 30년은 한 사람의 ‘평생’이나 다를 바 없이 중요한 시기다. 대충 계산해도 72줄×714쪽=5만1408줄의 노래며, 노래 자수를 계산해보면 약 7자×50000줄=35만 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 되는 신당본 풀이를 빼더라도 절반 이상을 암기해야 큰무당이 되어 노래를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요즘 대중가요 한 곡을 약 8줄로 계산해서 큰무당이 불렀던 굿노래의 양을 따져보면 대중가요 약 6300곡에 해당하는 것이다.
동해안 무당의 노래도 대단하다. 울산 동구 일산동의 별신굿을 채록한 박경신의 총 5권으로 되어 있는 ‘동해안별신굿무가’의 내용을 모두 합치면 3000페이지가 넘는다.
우리와 가까운 중앙아시아 알타이족의 구전 서사시도 살펴보자. 알타이족은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사료로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지역에 구전 서사시 ‘마나스’가 있다. 알타이족 구전문학을 연구하는 부산대 양민종 교수는 “알타이족 가운데 오스만 투르크계 돌궐 색목인 사이에서 1700년 이상 구전돼온 ‘마나스’는 현존하는 최장의 서사시로 알려진 호머의 ‘일리아드’보다 16배나 더 긴 세계 최장의 서사시”라고 말한다. 마나스는 길이가 25만 수로 A4 용지 분량으로 6000페이지가 넘는다고 하니, 정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무당들은 이 노래들과 굿의 절차를 다 익히고, 관중들과 호흡하며 신을 놀렸을까? 몇 줄의 노래가 아니라 5만 줄의 노래인 것이다. 천자문, 만자문이 아니라 십만자문이다! 어떻게 수십만 자의 노래를 다 외웠을까? 궁금하지 아니한가.
‘기억’을 넘어선 노래 전승
필자는 그 궁금증을 최근에야 풀었다.
“뇌혈관 이상으로 말을 잃어버린 환자가 자신이 젊었을 때 유행하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한 노파가 노래를 따라 부른다.” 어느 음악치료 보고서에 게재된 사례다.
이것은 음악에 대한 지각이 생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드는 안정감, 슬픔, 기쁨, 흥분 따위의 다양한 감정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 강한 정서적 경험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대뇌변연계, 즉 림빅 시스템(limbic system)의 역할 덕분이라고 한다.
림빅 시스템은 식욕과 성욕 같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일시적으로 왈칵 치솟는 본능적 감정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이다. 그래서 림빅 시스템을 인간의 기억과 창조 행위를 맡고 있는 대뇌피질의 신피질계와 구분해 ‘본능의 자리’라고도 한다.
그 본능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포유류로부터 림빅 시스템을 물려받았고, 림빅 시스템의 실제 크기는 포유류가 진화하는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예컨대 포유류의 하나인 혹등고래는 노래를 부른다.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 페트리시아 그레이 박사는 혹등고래가 내는 소리의 음악적 성격을 연구해왔다. 혹등고래 수컷이 부르는 노래는 보통 10∼15분짜리의 곡으로 구성되는데, 혹등고래 수컷은 이런 곡을 몇 시간 동안 계속 부른다. 혹등고래 수컷은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같은 음조의 소리를 사용해 리듬이 있는 노래를 부른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혹등고래에게 작곡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혹등고래가 후렴구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변주로 ‘긴’ 노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는 혹등고래 세계에도 비틀즈와 같은 보컬리스트가 있으며 이들이 도입한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는 히트곡이 되어 그들 사이에서 빠르게 전파된다는 내용을 소개해 흥미를 끈 적이 있다.
스쿠버 다이버인 캘빈 에이트켄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통가의 혹등고래 수컷은 복잡하고 미묘한 노래를 스스로 작곡 또는 편곡해서 부른다. 처음에는 지난해에 마지막으로 불렀던 노래를 부르지만 시간이 가면서 곡조가 변하다가 당해 연도의 히트송이 새롭게 탄생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통가에서 부르는 노래는 그 전년도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행한 노래들이라고 한다. 유행이 1년 늦다나!
혹등고래가 가지고 있는 림빅 시스템과 인간의 림빅 시스템은 크게 다르지 않다. 노래의 기본적인 테마를 변주할 수 있는 혹등고래의 음악은 인간이 발전시킨 음악의 원초적 형태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있어서도 외부의 리듬적 청각 자극이 오른쪽 뇌와 림빅 시스템을 연결할 경우 대단히 강력한 정서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뇌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이 다른 것은 기억하지 못해도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 리듬과 가락을 다시 들으면 생리적으로 그 노랫말이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뇌의 림빅 시스템 속에 아마 ‘소리 이미지의 그물’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아, 그래서 우리 무당들이 수십만 자의 노래를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장구와 쇠와 바라와 징의 리듬에 따라 부를 수 있구나! 알타이족의 샤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언가 내 마음의 밑바닥을 울리는 시나위 장단의 떨림이 느껴진다. 무(巫)의 노래와 음악은 일반 노래들에 비해 신명의 요소가 더 강하다. 무당의 노래 부르는 행위는 단순한 기억의 재생이 아니라 내재된 본능에 호소하는 강력한 정서적 체험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물론 무당들의 타고난 기억력과 평생 같은 노래를 반복해 부르는 것으로 인한 반복 효과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명을 통한 무당과 민중들의 강렬한 정서적 체험이 수천년 동안 ‘노래하는 신화’를 이어져오게 한 힘이었다는 것이 보다 중요한 사실일 것이다.
우리 신화는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기록된 신화도 아니고, 당대의 작가가 문학적·예술적으로 재창작해 그 사회의 통합에 기여했던 신화도 아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잃어버린 신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고 주목받지 않아도 끈끈하게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힘은 무(巫)의 노래가 항상 삶의 현장에서 민중의 삶을 위로하는 민중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신화는 민중의 삶의 현장과 동심원을 이루는 굿판의 현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민족의 노래 민중의 신화
그래서 우리의 노래굿은 신과 단골(관중), 그리고 무당의 ‘삶의 변화’를 끊임없이 포용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역사와 민중을 받아들이는 열린 구조로 그 틀을 다져왔던 것이다. 무당과 단골이 함께 재창조하는 과정으로서의 노래와 굿의 현장, 그곳은 항상 생동하고, 변화하고, 창조하는 살아 있는 삶의 공간이었다.
왜 ‘노래하는 신화’인가? 모든 신화는 무당의 노래로 전해져 내려왔다. 원시시대의 시인이자 사제이자 철학자이자 씨족장이었던 무당은 ‘노래 부르는 광대’였던 것이다. 노래는 문자가 없던 시대의 문자요, 미디어가 없던 시대의 미디어였다. 심지어 문자가 행세했던 시대에도 민중을 움직이는 미디어는 문자가 아니라 노래였다. 세상의 한편에는 지배자들의 문자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피지배자들의 노래가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문자가 아닌 노래로 그 ‘긴’ 역사를 살아,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를 관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져온 우리 굿과 신화는 역사에 포섭되지 않은 역사요, 기록되지 않은 기록이다. 문자가 지배계층의 미디어였다면, 노래는 민중의 미디어였다.
신명은 무당이 부르는 노래를 타고 온다.
우리에게는 창세신화가 없다고들 한다. 우리 신화라고 하면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부터 이야기하는 게 정설처럼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잃어버린 창세신화와 창세신을 찾는다. 왜? 나와 여러분, 우리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우리 신녀(神女)들의 노래에 나오는 창세신화와 창세신을 먼저 소개한다. 신녀는 무당을 뜻한다. 지금은 만신, 단골, 심방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예전에는 신녀로 불렀다. 우리 신화여행에서는 신녀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린다. 신화를 노래하는 여사제라는 뜻에서도 그렇고, 예로부터 부르던 이름을 되찾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왜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가는 길인가? 한마디로 우리 창세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자,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우리에게 창세신화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원래부터 창세신화가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변질되었거나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굿노래 속에 아직까지 천지개벽 신화의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하늘에서는 파란 이슬 땅에서는 까만 이슬
중국 창세신 반고(위).멕시코의 거인신 뜨랄록(아래)
먼저 제주도 큰굿의 첫째 거리인 ‘베포도업침’ 노래부터 들어보자. ‘베포도업침’은 천지개벽에 관련된 많은 신들을 모시는 초감제에서 부르는 노래인데, 우주와 인간세계의 생성과정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 멀리 고대로부터 수천년 동안 문자로 기록되지 않고 오늘에까지 노래에서 노래로 전해져오면서 그 내용이 상당 부분 잊혀지기도 하고 덧붙여지기도 했지만 이야기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 첫머리를 들어본다.
천지가 혼합이었던 시절
하늘과 땅이 구분이 되지 않아
한 덩어리로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천지가 개벽하니
하늘이 먼저 열리고
땅이 열리고
인간세상이 열렸다.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하늘과 땅 사이에
시루떡같이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날이 시작되니
하늘에서는 파란 이슬
땅에서는 까만 이슬
그 사이에서는 누런 이슬이 생겨
서로 만나 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동쪽 하늘에는 파란 구름
서쪽 하늘에는 하얀 구름
남쪽 하늘에는 빨간 구름
북쪽 하늘에는 검은 구름
가운데에는 누런 구름이 뜨고
흘러내린 물은 바다가 되었다.
이 노래에서 ‘갑자(甲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는 동양의 시간 단위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태초의 시간을 가리킨다.
세계의 창세신화가 거의 대부분 신기하게도 태초의 혼돈에서 우주가 생겨난다고 하는 데서 일치한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처음에 ‘그저 막막하게 퍼진 듯한 펑퍼짐한 모양’을 한 카오스, 즉 혼돈이 있었다고 한다. 태초의 세상은 ‘형상도 질서도 없는 하나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베포도업침’에서 노래하는 ‘한 덩어리’와 너무도 똑같다. 중국의 창세신화 ‘반고 이야기’에서는 ‘천지의 혼돈스러움이 계란 같았다’고 하여 ‘한 덩어리’의 모양을 ‘우주란(宇宙卵)’으로 묘사했다.
1927년 벨기에의 수학자 루베이터가 원시 우주는 작지만 온도와 밀도가 매우 높은 우주란으로 응축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우주란이 폭발해서 그 파편들이 은하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수억 년 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폭발이 있은 후에 지금까지도 우주가 모든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자 가모프는 이 생각을 좀더 발전시켰다. 그는 1946년에 우주 폭발 때의 파편의 온도를 계산해냈다. 그는 우주의 기원을 이루는 그 대폭발 이론을 빅뱅(big bang)이론이라고 불렀다. 직관에 가까운 원시적 이미지가 현대과학이 설명하는 우주 형성의 이론과 일치한다는 점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다.
우리와 가까운 종족인 만주족의 창세신화 ‘천궁대전’에서는 태초의 혼돈 양상이 ‘물거품’으로 표현된다.
‘세상에 제일 먼저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먼 옛날 세상은 하늘과 땅이 나뉘지 않은 물거품이었다. 하늘은 물 같고 물 또한 하늘 같았으며, 하늘과 물이 서로 붙어서 물처럼 끊임없이 흐르면서 물거품이 불어나고 많아졌다.’
만주신화의 ‘물거품’과 우리 신화에 나오는 ‘파란 이슬’ ‘까만 이슬’ ‘누런 이슬’의 ‘이슬’은 거의 같은 이미지다. 그것은 다름아닌 물이다. ‘흘러내린 물은 바다가 되었다’는 마지막 단락을 기억해두자.
미륵이 하늘과 땅을 떼어내고
다음으로 ‘창세가’의 첫머리를 소개한다. 손진태의 ‘조선신가유편’에 실린 신녀의 노래다. 1923년 8월12일 함경남도 함흥군 운전면 본궁리에서 큰 신녀 김쌍돌이(68)가 구연한 것인데, 불행하게도 노랫말만 남았다.
하늘과 땅이 생길 때
미륵님이 탄생한 즉
하늘과 땅이 서로 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하여
하늘이 솥뚜껑 꼭지처럼 도드라지게
땅 네 귀퉁이에 구리기둥을 세우고
드디어, 우리 신화에도 창세신이 등장한 것이다. 미륵이다. 하늘과 땅이 생길 때 미륵이 탄생하여, ‘서로 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하는’ 하늘과 땅을 떼어내어 하늘이 도드라지게 땅 네 귀퉁이에 구리기둥을 세웠다. 구리기둥을 세운 것은 물론 하늘과 땅이 서로 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게다.
이집트의 신화에도 미륵과 같은 거인신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치 서로 입을 맞춘 듯이 하늘의 모양을 ‘솥뚜껑 꼭지’와 비슷한 궁륭(穹·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사방이 차차 낮아진 하늘 모양)으로 묘사한다. 하늘의 여신 ‘누트’는 발가락 끝으로 발돋움을 하고 서서 손가락 끝을 대지에 대고 팔다리를 쭉 펴서, 공기의 신인 ‘슈’가 자신의 배를 떠받치게 해 공중에 떠서 하늘 모양을 이룬다. 그런데 너무 높이 솟은 나머지 현기증이 나서 네 발, 즉 하늘의 네 기둥이 된 발을 다른 신이 떠받치도록 해 자신의 배가 궁륭을 이루게 했다고 한다. 창조의 신 ‘라’는 지상에 사는 인간의 세계를 밝혀주기 위해 ‘누트’의 배에 별과 성좌를 박아놓았다.
제주도의 ‘베포도업침’ 고창학본에는 미륵처럼 하늘과 땅을 떼어내는 거인신 도수문장이 등장한다.
하늘과 땅이
네 귀 깊숙이 떡징같이 눌어
네 귀가 한데 합수하니
혼합으로 제 이르자
천지개벽 도업(都業)으로 제 이르자
도수문장이 한 손으로
하늘을 쳐받고
또 한 손으로 땅 밑을 짓눌러
하늘 머리는
북쪽 북서쪽으로 도업하고
땅의 머리는
북동쪽으로 열립니다.
동의 머리는 서의 꼬리
서의 머리는 동의 꼬리
천팔복이 북서쪽
모든 동쪽으로 수성(水聖)
문이 열립니다.
이 하늘과 땅 사이에는
산도 갈려 납니다
물도 갈려 납니다
산 밑에는 물이 나고
물 밑에는 산이 나고
산과 물이 갈립니다.
똑같이 천지개벽할 때 하늘과 땅을 떼어내는 거인신인데도 이름이 다르다. 미륵과 도수문장, 어느 쪽이 더 옛이야기에 가까울까? 우선 제주도의 ‘베포도업침’ 고창학본에 나오는 도수문장은 강태욱본에서 문수문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강태욱본에서는 하늘과 땅을 떼어낸다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도수문장, 문수문장의 ‘수문장’은 ‘대궐문이나 성문을 지키는 장수’일 가능성이 높다. ‘도(都)’를 지키거나 ‘문(門)’을 지키는 수문장(守門將)일 것이다. 또한 ‘옥황의 도수문장’이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도수문장, 곧 옥황이 미륵과 같은 신격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미륵이 창세신으로 등장하는 함경도의 신화보다 제주도의 신화가 후대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의 이름이 사라지고 신의 직함만 남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일단 미륵을 주인공으로 보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큰 신녀 김쌍돌이는 미륵을 엄청난 거인으로 노래한다.
하늘 아래 베틀 놓고
구름 속에 잉아 걸고
들고 짱짱
놓고 짱짱
짜내어서
칡 장삼을 마련하니.
등거리에 옷감 한 필이 들고, 소매에 옷감 반 필이 든다고 한다. 등거리는 조끼같이 등에 걸치는 옷이다. 미륵의 키를 재보자. 한 필이 125마 가량이고 1마가 90cm니까, 미륵의 등거리를 전체 키 8등신 가운데 2등신에 해당한다고 보면 대략 키가 4만cm라는 계산이 나온다. 보통사람의 250배 크기의 거인이다. 이 큰 키로도 하늘과 땅을 떼어내서 하늘을 떠받치려면 모자랐을 터. 얼마나 더 늘어나야 할까? 변신에도 능했을 것 같다.
중국의 반고도 똑같이 거인이다
‘천지가 개벽하여 밝고 맑은 것은 하늘이 되고 어둡고 탁한 것은 땅이 되었다. 반고가 그 속에서 하루에 아홉 번을 변화하였으니 하늘보다도 신령하고 땅보다도 성스러웠다. 하늘은 날마다 1장씩 높아지고 땅은 날마다 1장씩 두터워지고 반고는 날마다 1장식 커졌다. 이와 같이 1만8000년이 지나니 하늘은 지극히 높아지고 땅은 지극히 두터워졌으며 반고도 지극히 커졌다.’ 지금 1장은 10자(尺)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3.03m에 해당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8자가 1장이었다. 성인 남자의 키를 1장으로 본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키만한 길이를 ‘한 길’이라고 하는데, 그게 바로 1장이다. 반고가 날마다 한 길씩 1만8000년 동안 자랐다니, 도대체 얼마나 커졌다는 이야기인가!? 마지막으로 확인해둘 것은 미륵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티탄족과는 다른 거인신이라는 점이다. 같은 거인신이라 해도, 올림포스의 신들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제우스에게 도전한 죄값으로 하늘을 들고 서 있는 벌을 받은 아틀라스와 다르다. 태양신 ‘라’에게 1년에 한 달도 땅에 눕지 못하는 벌을 받은 하늘의 여신 ‘누트’나 ‘누트’를 떠받치고 있는 공기의 신 ‘슈’와도 다르다.
그리스신화에서 혼돈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혼돈보다 훨씬 빼어난 자연이라는 신이다.
‘신과 다름없는 이 자연은 하늘로부터는 땅을, 땅으로부터는 물을, 무지근한 대기로부터는 맑은 하늘을 떼어놓았다. 넓은 대지는 스스로 생명을 얻어 여신이 되었다. 이 여신이 ‘가이아’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하늘을 하늘의 신 ‘우라노스’로 만들었다.’ 우주거인 미륵은 하늘과 땅을 떼어내고 난 다음 물과 불을 찾아내고 하늘에 청하는 노래를 불러서 인간을 만들고, 인간세상의 이승과 저승을 다스리기 위해 석가와 경쟁하는 창세신인 것이다.
미륵은 누구인가?
자,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을 하나 던진다. 미륵은 누구인가? 우주거인으로 나오는 미륵이란 명칭은 불교의 미륵불에서 나왔지만 본래 신의 성격은 우리 창세신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현재 ‘미륵’이라는 이름을 쓰는 신의 본디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창세신화의 우주거인은 누구였을까? 건국신화에서만이 아니라, 무속신화에서조차도 사라져버린 우리의 우주거인! 잃어버린 신과 신화를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나와 우리를 찾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나라 창세신화의 본디 주인공을 찾기 위한 여행에 나섰다. 그러나 그 전에 미륵이 왜 우리 창세신화의 우주거인으로 등장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우주거인 미륵은 도대체 누구인가? 미륵이 얼마나 대단한 신격이기에 본디 창세신의 이름을 대체하고 에피소드를 바꾸면서까지 우리 창세신화의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그 속에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다.
우리 거석문화의 대표
논산의 은진미륵, 안성의 비봉산을 등지고 서 있는 태평미륵, 파주의 용미리 쌍미륵, 홍성 용봉산 입구에 우람하게 서 있는 큰미륵들을 보면 누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다.
땅에서 올라온 자연석을 다듬어서 만들었다는 은진미륵은 키가 18m로 한국 최대의 미륵이다. 거대한 천연암벽에 마애각법으로 몸을 새기고 머리 부분은 따로 만들어 올린 용미리 쌍미륵은 키가 17.4m에 이른다. 홍성의 큰미륵은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는데 키가 7m에 둘레가 4m다. 태평미륵은 키가 6m이고 둘레가3.17m, 머리덮개가 1.5m에 달한다.
이 미륵들을 보고 있노라면 미륵이야말로 우리 거석문화의 대표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원시시대의 고인돌 문화와는 다른 친밀감으로 다가오는 돌 숭배 문화로서 말이다.
최치원 선생은 우리의 현묘한 도 ‘풍류’에는 유불도 3교가 포함되어 접화군생(接化郡生), 즉 뭇 생명을 가까이하고 감화한다고 했다. 이에는 물론 미륵 신앙도 포함되어 있다.
미륵은 불교 신화에 등장하는, 미래에 우리를 구제하러 오는 미래불이다. 불교에서는 미륵이 오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용화세계라 한다. 그곳에서는 감미로운 과일나무와 향기롭고 아름다운 풀과 나무들만이 자란다. 음식을 먹고자 하면 저절로 쌀이 생기고 옷을 입고자 하면 저절로 옷이 생긴다. 질병도 없어진다. 그래서 인간의 수명이 8만4000세에 이르고 500세가 되어야 결혼한다. 그곳에서는 욕심, 화, 어리석음이 없어지고 모든 번뇌가 사라지며, 사람들의 마음도 어긋남이 없이 평화롭다. 그곳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다. 미륵보살은 용화수 아래에서 도를 이루어 모든 사람을 깨우친다.
이 용화세계는 기독교의 천년왕국이나 도교의 선계와 같은 유토피아다. 미륵은 그것을 약속하고 실현하는 미래불이자 예수와 같은 구세주인 것이다. 그래서 신라 때에도 고려 때에도 지배층이 앞장서서 미륵세상을 열겠노라고, 혹은 이미 미륵세상이 되었노라고 과시하기 위해 거대 미륵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런 거대 미륵이 아니다. 못생기고 투박할 뿐 아니라 손발이 제대로 붙어 있지도 않은 돌미륵들. 머리가 없어진 미륵 위에 돌 하나 얹어놓아도 미륵이다. 아랫도리가 땅에 묻혀 있는 것은 의당 ‘땅에서 솟아나왔으니’ 당연지사. 그냥 돌덩어리라도 얼굴 형상을 하고 있으면 미륵이다. 그런 수많은 크고 작은 돌미륵들이 우리 산천 곳곳에 퍼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미륵은 절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밭이나 논에서 솟아나온 돌도 미륵이요, 바다에서 어부가 건져 올린 돌도 미륵이요, 마을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선 돌도 미륵이다. 심지어 산에 솟아 있는 바위도 미륵바위요, 솟구쳐 오른 산봉우리도 미륵봉이다. 온 세상에 있는 미륵과 비슷한 것은 모두 미륵이라 이름 붙이고, 그 앞에 정화수라도 한 사발 놓고 빌어야 살맛이 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한 농부가 밭을 갈다 머리가 없는 돌부처를 발견하고는 밭에 모셔두었는데 병으로 고생하던 사람이 돌부처에게 절하고 나서 효험을 보자 병든 사람, 아들 없는 사람, 그밖에 다른 소원이 있는 수많은 남녀가 쌀과 베, 향과 촛불, 꽃과 과일 따위를 가지고 와서 이곳에 바쳤다고 한다. 조신의 ‘소문쇄록’에 기록돼 있는, 1482년 경상도 개령현 송방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서울 출신의 한 모시 장수가 미륵에게 모시옷을 입혀주고 나서 부자도 되고 혼인도 하게 되었다는 충남의 은진미륵 이야기도 있다. 또 제주의 해안 마을 화북리에는 어부가 그물로 건져 올린 돌을 미륵으로 섬기자, 미륵이 그 사람을 잘살게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뒤 마을 청년들이 돌미륵에게 상처를 입히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부병에 걸렸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미륵을 수호신으로 모시자 피부병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런 몇 가지 유형의 이야기들이 전국에 있는 돌미륵들과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남한에만 371기의 미륵이 있다고 한다. 그 많은 돌미륵의 물결 속에서 거대 미륵도 결국 민중들의 것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돌미륵이 된 조수바위
그런데 왜 이렇게 미륵을 모셨을까? 미륵을 절에 모시지 않고 들과 밭에,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포구에, 마을 앞에, 교통의 요충지에, 성문 앞에 모셨을까? 미륵의 메시아적인 성격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중국과 일본의 경우도 우리와 똑같이 불교와 함께 미륵이 전파되었는데도 한국처럼 절 담을 넘어서 민중의 신앙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채록된 ‘돌미륵이 된 조수바우’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수바우와 그의 사돈 정일환은 역적 모의를 하여 서울로 쳐들어갈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서울로 쳐들어가기로 한 날, 아침상을 받은 조수바우가 며느리의 말을 듣지 않고 딸의 말을 들었다가 거사를 그르치게 된다. 재미있는 상징이다. 며느리는 국을 먼저 먹으라고 권했고, 딸은 장을 먼저 먹으라고 권했는데 장을 먼저 먹어서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다니! 왕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반란군 내의 내부갈등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인가? 어쨌든 왕은 조수바우의 집터와 묘터가 좋아서 역모를 꾀했다고 생각해 집터에 못을 만들고 묘에 무쇠 철갑을 씌웠다. 그 후 조수바우의 집안은 망하고 만다. 묘에다 무쇠 철갑을 둘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손발만 묶은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가둬버렸다는 것이니 대단한 상징이다.
조수바우의 며느리가 더 이상 이 집에서 살다가는 안 되겠다며 아기를 데리고 집을 떠나는데, 어떤 중이 와서 가다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한다. 많이 듣던 이야기가 아닌가? 살던 집이 그리워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던 조수바우의 며느리는 결국 아기를 업은 채 돌미륵이 된다.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하려다 실패한 미완의 혁명가 혹은 그 혁명가와 뜻을 함께한 며느리가 돌미륵이 된 것이다.
‘돌미륵이 된 선비’ 이야기도 비슷한 내용이다. 하루 밤 하루 낮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세상을 바꾸려 하였으나 마지막 순간에 ‘이미 닭이 울었다’는 머슴의 거짓말 때문에 와불을 세우지 못한 운주사의 도선국사 이야기도 그렇다.
물론 여기서 돌미륵은 예수가 부활하듯이 다시 세상에 내려와 민중을 구할 구세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저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병을 고쳐달라고,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비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어떻게 미륵이 우리 민중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렸는지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민중들이 미륵의 뒤를 따라 세상을 바꾸려 봉기했을 정도로 미륵을 믿었을까? 문제의 핵심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있다.
14세기 후반에 경상도 고성 출신인 이금(伊金)은 미륵을 자처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포교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 무당이 특히 미륵신앙이 두터워 자신들이 모셔온 성황신 대신 미륵을 모실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은 미륵신앙과 민중봉기에 관한 여러 기록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즉 역사를 움직인 민중봉기의 주인공들이 미륵을 끌어들여 세상을 심판하려 했던 것이다. 드디어 미륵이 민중의 전통신앙과 결합했다. 우주거인 미륵으로서, 창세신으로 재탄생함으로써 한국의 민중들에게 광범위한 영향력을 갖는 신이 된 것이다. 미륵은 불교의 미륵불에서부터 민중의 미륵신앙의 주체로서의 미륵과 무속의 신으로서의 미륵, 창세신으로서의 우주거인 미륵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미륵이 원래부터 거인신이었다는 것도 우리 신화와 결합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미륵의 키는 석가의 80팔뚝 크기 혹은 16유순이라고 한다. 유순이란 고대 인도에서 사용한 거리의 단위다. 1유순은 소달구지가 하루에 가는 거리. 평균 10km쯤이라고 한다. 16유순이면 160km이니 얼마나 큰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 밖에 미륵의 머리털은 검붉은 유리 빛깔이며, 머리에는 온 세상을 비추는 여의주와 보석으로 만든 하늘관이 씌워져 있다. 미륵이 몸을 일으키면 마치 황금산 같다고 한다.
미륵은 우리 창세신화의 주인공이 되자마자 우주창조와 천지개벽의 과정에서 하늘과 땅을 떼어내고, 물과 불의 근원을 찾고, 인간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세상을 빼앗으려는 석가와 내기를 한다. 제주도 신화에서는 천지왕과 그의 아들 대별왕 소별왕이 경쟁해서 이승과 저승을 차지하는데, ‘창세가’에서는 미륵과 석가가 경쟁한다.
미륵님 세월에는 섬두리 말두리 잡숫고
인간 세월이 태평하고 그랬는데,
석가님이 나와서서
이 세월을 앗아 뺏자고 마련하와,
미륵님의 말씀이
아직은 내 세월이지 네 세월은 못 된다.
석가님의 말씀이
미륵님 세월은 다 갔다, 인제는 내 세월을 만들겠다.
미륵님의 말씀이
너 내 세월 앗아가겠거든, 너와 나와 내기하자.
더럽고 축축한 이 석가야.
너와 나와 한 방에서 누워서
모란 꽃이 모락모락 피어서
내 무릎에 올라오면 내 세월이요,
네 무릎에 올라오면 네 세월이라.
석가는 도적 마음을 먹고 반잠 자고
미륵님은 참잠을 잤다.
미륵님 무릎 위에 모란꽃이 피어올랐소아
석가가 중동 사리로 꺾어다가
제 무릎에 꽂았다
일어나서, 축축하고 더러운 이 석가야,
내 무릎에 꽃이 피었는데
네 무릎에 꺾어 꽂았으니
꽃이 피어 열흘이 못 가고
심어 십년이 못 가리라.
미륵님이 석가의 너무 성화를 받기 싫어
석가에게 세월을 주기로 마련하고
축축하고 더러운 석가야,
네 세월이 될라치면, 가문마다 기생 나고
가문마다 과부 나고 가문마다 무당 나고
가문마다 역적 나고 가문마다 백정 나고
네 세월이 될라치면,
삼천 중에 일천 거사 나느니라.
세월이 그런 즉 말세가 된다.
세상에, 현세의 부처 석가가 도적놈에 불과하다니! 마음으로 부처를 모시는 사람들아, 놀라지 마시라. 이것은 석가가 현세를 지배하는 신격으로, 우리 신화의 상징으로 등장했다는 의미다. 그것은 우리 민중들이 ‘지금 여기’의 현실을 도적의 세월로 생각했다는 상징이다. 그것은 또한 미륵의 용화세계 유토피아를 빼앗은 석가의 현세를 말세로 생각했다는 상징이다. 여기서 우리 창세신격을 대체한 것이 왜 석가가 아니고 미륵일까 하는 의문이 풀린다.
이때의 미륵도 물론 우리 신화의 신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불교의 미래불이 아니라 우리 신화로 포섭된 미륵인 것이다. 그것도 56억 7000만년 후의 멀고도 먼 미래에 나타날 부처가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고 생명을 움직이는 힘으로서, 미륵은 ‘지금 여기’에 함께하는 창세신격이자 메시아인 것이다. 그것은 석가와의 마지막 내기에서 ‘생명꽃’을 피워 자라게 한 미륵의 능력으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천지개벽 끝에 실패하는 혁명가
그러나 미륵은 ‘천지개벽’을 이루지만 세상을 갖지 못한다. 착하기 짝이 없어서였을까, 세상사에 뜻이 없어서였을까. 우리 민중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법하다. 석가에게 속아서 세상을 내준 미륵처럼, 늘 현실에서는 실패하는 혁명가들이 돌미륵이 된다. 그래서 미륵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땅속에서 바다 속에서 곳곳에서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엉거주춤 일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미륵은 끝까지 우리 신화와 함께 민중의 곁에 남는다. 저항의 메시아로서 우주거인으로서 수호신으로서, 혹은 우리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으로서.
지금까지 우리는 우주거인 미륵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우리 신화에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창세가’의 나머지 이야기를 계속할까 한다. ‘창세가’는 우주거인 미륵의 창세신격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줄 것이다.
미륵은 하늘과 땅을
갈라낸 다음 해와 달을
떼어서 별을 만든다.
그때는 해도 둘이요
달도 둘이라
달 하나 떼어서
북두칠성 남두육성
만들고 해 하나
떼어서 별을 만들어
작은 별은 백성의
운명 별로 마련하고
큰 별은 임금과 대신의
별로 마련하고
해와 달이 각각 둘이던 시절, 활로 해와 달 각각 하나씩을 쏘아 떨어뜨려서 태양계의 운행을 바로잡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우주거인 미륵은 해와 달 하나씩을 손으로 떼어냈을 터. 미륵은 떼어낸 해를 백성의 ‘운명의 별’로 삼는다. 운명의 별이란 사람의 나이에 따라 그의 운명을 맡는다는 아홉 별을 이르는 말이다. 원래 노랫말에서는 ‘직성(直星)’이라 했다. 제웅의 별, 흙(土)의 별, 물(水)의 별, 금(金)의 별, 해(日)의 별, 불(火)의 별, 계도(計都)의 별, 달(月)의 별, 나무(木)의 별로 이루어진 아홉 별이 바로 그것이다. 남자는 열 살에 제웅의 별이 들기 시작하여 열아홉 살에 다시 돌아오고, 여자는 열한 살에 나무의 별이 들기 시작한다고 한다. “넌 무엇이든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냐?”고 할 때의 직성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이때는 ‘타고난 성질이나 성미’를 뜻하는 것이다. 별자리로 운명을 점치는 서양의 점성술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편 미륵은 떼어낸 달로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을 만드는데, 이 두 별은 해와 달 다음으로 중요한 별이다. 우리는 이것을 고구려 고분벽화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와 달은 낮과 밤, 24절기 같은 천지의 운행과 관련된다. 반면 북두칠성은 인간의 죽음을 관장하고, 남두육성은 삶을 주관한다. 해와 달,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을 생각의 중심에 두는 고대인들의 우주관이 우리 창세가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태양계의 운행을 조정한 미륵은 구름 베틀로 옷을 해 입고 나서 물과 불의 근본을 찾아 나선다. 노랫말을 보자.
미륵님 세월에는 생식(生食)을 하여
불에 익히지 않고 생 낱알을 잡수시와
미륵님은 섬들이로 잡수시와
말(斗)들이로 잡숫고
이래서는 못 살겠네.
내 이리 세상에 나왔거늘,
물의 근본, 불의 근본을 내어야 쓰겠다.
나밖에는 없다!
풀메뚜기 잡아내어 형틀에 올려놓고
정강이를 세 차례 때리고는
여봐라, 풀메뚝아, 물의 근본,
불의 근본을 아느냐?
풀메뚜기 말하기를,
밤이면 이슬 받아먹고
낮이면 햇발 받아먹고 사는 짐승이
어찌 알리?
나보다 한 번 더 먼저 본
풀개구리를 불러 물으시오.
풀개구리를 잡아다가
정강이를 세 차례 때리시며
물의 근본, 불의 근본을 아느냐?
풀개구리 말하기를,
밤이면 이슬 받아먹고
낮이면 햇발 받아먹고 사는 짐승이
어찌 알리?
나보다 두 번 세 번 더 먼저 본
새앙쥐를 잡아다 물어보시오.
새앙쥐를 잡아다가
정강이를 세 차례 때리고는
물의 근본, 불의 근본을 네 아느냐?
새앙쥐의 말이
공을 세우면 나에게 무엇을
주겠습니까?
미륵님 말이
너는 천하의 뒤주를 차지하라 한 즉,
새앙쥐의 말이
금덩산 들어가서,
한쪽은 차돌이요, 한쪽은 시우쇠요,
톡톡 치니 불이 났소.
소하산 들어가니
샘물이 솔솔 나와 물의 근본이라
미륵님, 물과 불 근본을 알아냈다네.
시베리아 일대의 퉁구스, 알타이, 타타르 같은 곳에서 전해 내려오는 불의 기원에 관한 신화는 우리 민족의 신화소와 매우 흡사하다. 돌과 쇠를 부딪쳐서 불꽃을 얻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리얼리티가 강하다. 차돌과 쇠가 부딪쳐서 불이 일어난 것을 처음으로 본 새앙쥐가 인간에게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알려줬다는 이야기다.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 있는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전했다는 이야기와 달라서 관심을 끌 만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재미가 없었을 게다.
신화적인 이야기의 재미는 오히려 서술 방법에 있다. 물과 불의 근본을 찾는 그 방법이 참으로 고약하기 짝이 없다. 우주거인 미륵은 풀메뚜기, 풀개구리, 새앙쥐를 차례로 잡아다가 형틀에 올려놓고 곤장을 친다. 자기 손톱에 낀 때보다 작은 미물을 잡아다 놓고 위엄을 떠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물과 불의 근본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과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엽기적인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 무당의 노래이며 춤이며 말이다. 미륵이 결국 새앙쥐에게 천하의 뒤주를 내맡기고서야 물과 불의 근본을 알아낸다. 곤장을 칠 때의 위엄은 간데없이 ‘재빨리’ 천하의 뒤주를 생쥐에게 내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꼴인가? 새앙쥐는 불의 근본을 차돌과 시우쇠를 부딪쳐서 얻고, 물의 근본은 소하산 깊은 곳의 샘물에서 찾았다고 한다.
생쥐가 크게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참으로 엽기적이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골계미가 듬뿍 담겨, 한바탕 관중을 웃길 만한 장면이다.
물과 불의 근본을 알아낸 미륵은 곧바로 우리 인간을 세상에 내놓았다.
옛날 옛 시절에
미륵님이 한짝 손에 은쟁반 들고
한짝 손에 금쟁반 들고
하늘에 노래부르니
하늘에서 벌레 떨어져
금쟁반에도 다섯이요
은쟁반에도 다섯이라.
그 벌레 자라와서
금벌레는 사나이 되고
은벌레는 계집으로 마련하고
금벌레 은벌레 자라와서
부부로 마련하여
세상 사람이 나왔어라.
금벌레 은벌레가 자라서 인간이 되었다니 참으로 독특한 발상 아닌가? 중국의 여와는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고, 유대의 야훼도 흙으로 아담을 만들었다고 한다. 토우를 빚듯이 말이다. 물론 우리 신화에도 흙으로 사람을 빚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금벌레 은벌레가 자라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프로메테우스는 진흙을 이겨 인간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제우스가 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다 쓸어버리자 데우칼리온과 피라가 등 뒤로 던진 돌이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만주족은 진흙과 돌, 혹은 나무로 인간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여자는 그냥 만들었는데 남자는 여신의 어깨뼈와 겨드랑이 털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야훼의 신화와 대조적이다. 위의 인간 창조 방법과 우리 창세가의 인간 창조 방법을 비교해보라.
우리 ‘창세가’에서는 신이 단번에 인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땅에서 자라면서 서로서로 도와가며 인간으로 변화했다는 ‘공생적’ 진화론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그냥 벌레가 아니라 금벌레 은벌레라고 함으로써 벌레도 인간처럼 생명이 있는 존재이며, 그 가운데서 ‘높고 귀한’ 생명으로부터 인간이 자라났다는 사유를 보여준다.
이것은 절대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창조론이나 하나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해서 인간이 탄생했다는 ‘적자생존’의 전투적인 진화론과 좀 다르다.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에 딱 맞아떨어지는 신화가 있다. ‘수호전’의 손대성, ‘서유기’의 손오공으로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원숭이의 원조라 할 만한 기(夔)라는 원숭이 이야기가 ‘산해경’에 나온다. 불사의 약을 훔쳤다는 이유로 족쇄를 찬 채 하늘에서 추방당한 기라는 원숭이가 땅에 내려와서 인간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원숭이로부터 진화해서 인간이 탄생했다’는 적자생존의 다윈 진화론과 모티브가 똑같다.
우리 신화 속 진화의 원리는 적자생존의 경쟁이 아니라 공생의 화합이라는 현대의 시스템 이론과 더 친숙하다고나 할까? 모든 생물은 하나의 공통된 조상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여러 박테리아의 혼합물이라는 것이 현대의 시스템 이론이다. 그것은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신화보다 금벌레 은벌레에서 자라왔다는 신화와 더 어울리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은 아담과 하와와 달리 왜 이름이 없을까? 그냥 인간의 조상으로서 보편적인 것을 원했던 것일까? 그렇다. 대부분의 신화에서, 아담과 하와까지도 보통명사였던 것이다.
기독교 신화의 ‘아담’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냥 보통명사였던 것이다. 신은 진흙을 빚어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사람(아담)’을 만들었다. 물론 영어권으로 넘어오면, ‘아담’(사람)이 특정한 사람(휴먼)의 이름이 된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흙 혹은 먼지가 ‘아다마’다. 사람(아담)은 흙(아다마)에서 나와서 먼지(아다마)로 돌아간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붙인 이름이리라. 재미있는 이름 짓기가 아닌가? ‘하와’는 히브리어 ‘하야(살다)’의 명사형으로 ‘삶 혹은 생명’을 뜻한다. 아담은 자신의 아내에게 ‘하야’라는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여성을 지배하지만, 신화는 우리에게 여성이 일구는 삶의 신비와 죽음을 뛰어넘는 인류의 어머니로서의 모성을 일깨우고 있다. ‘사람(아담)’과 ‘삶(하와)’이 만나 인류의 조상이 된 것이다.
우리 신화로 돌아가보자.
인류의 조상을 나반이라 한다.
처음 아만과 서로 만난 곳을
아이시다라 한다.
또 사타려아라고도 한다.
어느 날 꿈에 하늘신의 계시를 받아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정안수를 떠 놓고 하늘에 알린 후
돌아가며 술을 마셨는데,
남쪽 산의 붉은 봉황이 날아와서
즐기고,
북쪽 바다의 신령스런 거북이
상서로움을 드러내고,
서쪽 골짜기에서 흰 호랑이가
산모퉁이를 지키며,
동쪽 강에서는 푸른 용이 하늘을 날고,
가운데 누런 곰이 있었다.
천해 금악 삼위 태백은 본디
구한에 속한 것이며
9황의 64민은 모두 그의 후예이다.
우리의 원시신화가 고대 종교로 탈바꿈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할 때, 금벌레 은벌레에서 자라난 우리 신화 속 최초의 인간도 자신의 이름을 갖게 된다. ‘한단고기’에 전해 내려오는 귀중한 기록이다. 나반(那般)과 아만(阿曼),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
이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
춤과 노래로 인간의 탄생 기원
다시 창세가로 돌아가보자. 우리의 창세신 미륵이 인간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금벌레 은벌레를 내려달라고 기원할 때 그는 ‘말’로 기원하거나 ‘손’으로 빚거나 하지 않고 춤추며 노래부른다. ‘하늘에 노래부르니’의 원래 노랫말은 ‘하늘에 축사(祝詞)하니’이다. ‘축사’란 하늘에 알리는 말이라는 뜻이다.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기원하는 바를 노래부른다는 뜻이다. 자, 양손에 금쟁반 은쟁반을 들고 노래와 춤으로 하늘에 비는 미륵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필자에게는 춤추며 노래부르는 무당의 모습이 그 위에 겹쳐진다. 신단수 아래에서 춤추며 노래부르는 단군도 그 위에 겹쳐진다.
꼬리별(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한다. 꼬리별이 지구의 땅덩어리와 충돌하며 거대한 해일이 일어난다. 해일이 자유의 여신상 허리를 댕강 분지르고, 현대 문명의 상징인 뉴욕의 마천루를 단번에 초토화해 버린다. 영화 ‘딥 임팩트(Deep Impact)’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거대한 해일이 도시를 삼키는 예고편 덕분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특수효과가 볼 만했다.
‘딥 임팩트’에 나오는 꼬리별을 파괴하는 장면을 실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억40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여, 2005년 7월4일 꼬리별 템펠 1호를 파괴하는 ‘딥 임팩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사용될 우주선 딥 임팩트호는 2004년 1월 지구를 떠나 2005년 7월4일 템펠 1호 상공에 도착해 발사체를 투하할 예정이다. 딥 임팩트호는 꼬리별을 파괴한 직후 꼬리별의 480km 상공에서 꼬리별 핵에서 분출되는 물질과 얼음 파편을 관찰한다. 우리 모두 2005년 7월4일을 기대하자. 이 프로젝트는 영화 ‘딥 임팩트’가 단순한 상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딥 임팩트와 외계 대재난설
딥 임팩트는 과거에도 지구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오늘날 지구의 나이가 약 46억년이라고 한다. 고생대에도 작은 떠돌이별이 지구에 떨어져 충돌을 일으키는 바람에 고생대 특유의 삼엽충이 모두 사라지고 해양생물의 90%, 육상생물의 70%가 멸종했다고 추정한다.
지금으로부터 6500만년 전쯤 중생대 백악기 말에도 지름이 10∼20km 정도 되는 작은 떠돌이별 하나가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져서 대충돌을 일으켰다. 충돌로 일어난 먼지구름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공중에 떠 있어서 6개월 이상 어두운 밤이 계속됐다. 그리고 이로 인해 10년 동안 ‘핵겨울’ 같은 혹독한 추위가 이어져 대부분의 동식물이 치명적인 피해를 당했다. 이른바 ‘공룡시대’가 바로 이렇게 막을 내렸다고 한다.
기원전 3500년에서 기원전 600년 사이인 신석기시대 후기 및 청동기시대에도 딥 임팩트가 있었다. 이로 인해 몇몇 문명이 파괴되어 사라졌고 별들과 함께 지구로 쏟아져 들어온 우주의 화학물질들이 지구 동식물의 DNA에 영향을 주어 많은 생명체가 변화했다. 이 ‘외계충격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그렇게 멀지 않은 초기 인류의 환경이었다.
우리나라의 선사문화 유적에도 이러한 외계충격에 대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신석기시대 후기의 번개무늬토기와 울산 대곡리 반구대와 천전리, 그리고 고령 양전 알터마을 등지에 남아 있는 바위그림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바위그림 혹은 그림문자는 말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가서 보시라.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울산 반구대 바위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첫눈에 들어오는 것이 고래다. 주로 ‘면그림’인, 바다짐승 들짐승을 그린 300여점의 그림 가운데 가장 많은 40여점의 고래 그림을 보노라면 마치 살아 있는 고래의 향연을 보는 듯하다. 이 고래들은 지금도 동해를 누비고 있다.
단순히 고래 그림만 있는 게 아니다. 10명 혹은 20명씩 탄 두 척의 배가 공동으로 거대한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 고래를 잡기 위한 작살, 일종의 부표인 뜨개, 그물 따위가 같이 그려져 있다. 이 바위그림들은 고래잡이가 근대에 들어 시작됐다는 주장을 뒤집는다.
20명 이상이 타고 고래잡이를 할 수 있는 커다란 배를 만들 수 있는 조선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놀랍다. 또한 작살을 발사하는 기구인 뇌기와 뜨개를 사용하여 고래를 잡는 것은 근대의 고래잡이 기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기술이라고 한다.
울산 반구대 바위그림의 고래 떼는 울산만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기지이자 울산이 최초의 바다도시였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쳐주고 있다. 또한 선사시대의 동북아시아에서 산업이 가장 융성한 지역 가운데 하나였음이 틀림없다는 것도! 하늘을 향하고 있는 고래 떼의 제일 위쪽에는 발기한, 커다란 성기를 달고 있는 남자가 서 있고, 고래 떼 제일 밑에는 무당으로 보이는 사람이 신명이 나 공수를 주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것을 보면 이 그림들이 풍어굿을 하는 모습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고래 떼에게는 우두머리가 있다. 고래의 생태에 대해서는 신석기시대의 우리 선조들이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고래의 우두머리를 고래의 신으로 모시고 풍어굿을 하지 않았을까?
제일 위에 그려진, 새끼를 품고 가는 커다란 고래는 고래의 신, ‘대왕고래’가 분명하다. 옆에는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어쩐지 신의 전령처럼 보인다. 그 다음으로 큰 고래는 작살을 맞은 고래다. 인간에게 살코기와 뼈와 기름과 수염, 그 모든 것을 남김 없이 준 고래에게 감사드리고 재생을 기원하기 위한 굿에 반드시 등장해야 할 작살 맞은 고래의 대표로서 고래의 또 다른 신격(神格)임이 분명하다. 그 뒤를 따라 온갖 고래들이 다 나오는 한판 풍성한 굿을 벌이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다.
그렇다면 반구대 바위그림의 이야기는 고래잡이의 신화일 터.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은 고래잡이의 신화, 바다의 신화를 복원할 수 있는 유라시아 최대의 화려한 바위그림을 우리는 갖고 있다. 그 신화의 근거는 울산 앞바다가 귀신고래의 ‘극경회유해면’이라는 데 있다. 북극 해안을 출발한 서태평양 고래 떼들의 최남단 회유 지점이 울산 앞바다다. 바위그림에 나오는 고래 떼들이 울산 앞바다에서 한 바퀴 휘돌아 귀향길에 오르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이제 보다 후대의 것으로 보이는 ‘선그림’으로 가보자. 이 선그림에는 외계충격의 흔적이 뚜렷이 드러난다. 우선 호랑이의 등장이다. 선그림으로 오면 몇 마리의 고래를 빼고는 거의가 멧돼지, 호랑이 같은 뭍짐승들이다. 면그림에서는 호랑이가 보이지 않고 뭍짐승으로는 사슴이 많았던 것과 비교된다. 선그림에서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은 외계충격 이후 기온이 낮아지고 기후가 변화하면서 추운 지방에 살던 호랑이가 남쪽 한반도로 내려와 울산만까지를 자신의 지배영역으로 삼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외계충격과 관련하여 주목할 사실은 또 있다. 면그림에서 주류를 이루던 고래들과 고래잡이배들, 그 배를 타고 먼 바다까지 나가서 바다를 생존의 터로 삼았을 우리 선조들은 어디로 갔을까? 외계충격으로 종족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반구대 가까이에 있는 천전리 바위그림이 이와 관련해 우리의 시야를 확 틔워준다. 두 겹 세 겹의 둥근 무늬, 마름모 무늬, 물결 무늬, 나선 무늬 같은 기하학적 문양이 빼곡이 그려져 있다. 뱀 모양의 그림도 여럿 있다. 탈(가면)을 쓴 사람의 그림, 표주박같이 생긴 것을 그린 그림, 십자에 가로선을 더한 그림, 다이아몬드 두 개가 서로 붙어 있는 듯한 그림, 몇 개의 빗금을 그어 쭉 뻗은 평행선이 되게 한 그림, 구불구불한 선이 무언가를 표현한 것 같은 그림들…. 이 그림 같기도 하고 그림문자 같기도 한 풍부한 상징들은 무언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고 있다. 무슨 이야기일까? 필자의 시선을 끄는 그림은 무엇보다 탈(가면)이다. 탈을 쓰고 있는 사람은 물론 무당이다. 신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신의 역할을 맡아 굿을 하고 있을 터. 이미 신격으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신은 어떤 신일까? 마름모꼴 그림문자는 번개 무늬다. 번개 치는 모양, 번개의 세기와 횟수를 기록한 것 같기도 하다. 우르릉 쾅 하는 우레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요즘은 원 모양을 수없이 겹쳐서 소리의 울림을 표현하지만, 당시에는 마름모꼴을 겹쳐서 표현했을 뿐이다. 여러 개의 동심원은 날아오는 별똥별들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모양을 표현한 것인 듯하고 꼬리 달린 동심원은 꼬리별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모양을 닮았다.
이와 관련해 특히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하늘로 올라가는 뱀 그림이다. 뱀이 왜 하늘로 올라갈까? 뱀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스웨덴의 타눔 바위그림과 비교해보면 더욱 분명하다. 타눔의 뱀 그림은 더욱 율동적이고 길지만, 사람을 향해서 땅을 기어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천전리 바위그림의 뱀은 머리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세계 여러 곳에서 널리 전해 내려오는 신화 속의 ‘우주뱀(cosmic serpent)’이 분명하다. 오른쪽 사진은 1933년 3월24일 새벽 5시 미국 뉴멕시코 파사몬트의 하늘에서 벌어진 별똥별이 폭발하여 떨어지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같이 떨어진 100여개의 별똥별 가운데 하나다. 우리 천전리 바위그림의 뱀이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과 비교해보라. 거의 비슷하지 않은가? 천전리의 바위그림은 여러 종류의 외계충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하늘에 펼쳐진 놀랍고도 두려운 광경들을 보고 그린 것이 틀림없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리고 땅이 갈라지는’ 천지개벽의 신화를 바위 위에다 새긴 것이다. 천문학자, 고고학자, 수목학자,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3500년부터 기원전 600년 사이에 딥 임팩트와 관련한 온갖 일이 계속 일어났다. 이 시기에 그려지거나 만들어진 세계 여러 나라의 바위그림이나 토기에서 우레와 번개 무늬, 별똥별, 파도 문양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전리 바위그림 가운데 또 하나 재미있는 그림이 하단에 있는 신라시대 명문과 함께 그려진 그림들이다. 6세기 초반에 그려진 것으로 외계충격이 사라진 이후의 그림이다. 기마행렬과 바다를 건너는 배, 장대 위의 새와 용이 그려진 그림들이다. 용 그림이 세 개인데, 행렬 반대편인 제일 오른쪽에 네 발 달린 용을 크게 그려놓았다. 바위그림판의 상단에 있는 우주뱀이 길고도 긴 외계충격시대를 거치면서 하단의 용으로 진화한 듯하다. 이 용그림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왜 뱀과 용 사이에 구별이 없는지를 잘 드러내준다. 또한 이 용 그림이 고구려 고분벽화의 용 그림과 그 모양이 같다는 점을 확인해두자.
아메리칸 인디언에게는 뱀은 벼락에 속하는 동물로 번개 그 자체다. 뱀이 비를 내리게 한다. 안데스에서는 대가리가 두 개인 뱀 혹은 흑과 백의 뱀 한 쌍이 가뭄과 홍수를 상징한다. 고대 서아시아에서 우주의 어머니 이슈타르는 뱀으로 그려진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에게도 뱀은 번개다. 아프리카에서는 하늘의 뱀 무지개는 벼락의 정령으로 번개와 연결된다고 믿는다. 오세아니아에서 뱀은 천지의 창조자다. 인도의 비슈누 신은 똬리를 튼 뱀 위에서 잠을 자는데, 이 뱀은 원초의 끝없는 큰 바다로서 창조 이전의 혼돈을 상징한다.
우주뱀은 천지개벽의 주체이자 매개자로서 세계의 모든 신화에 등장한다. 바로 이 신화들이 딥 임팩트의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다.
우주뱀과 용을 하나의 바위그림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우리 선조들 굿판의 매력이 아닌가 한다. 울산만을 바다의 기지로 삼아 형성된 태화강가의 반구대와 천전리 바위그림판은 신라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큰 굿판’-오늘날의 강릉단오제처럼 수천년을 내려온 상고대의 큰 굿판임이 틀림없다.
우리 선조들의 굿판 ‘매력 만점’
그렇다면 이 바위그림이야말로 천지개벽 신화의 첫 기록임이 틀림없다. 앞에서 우리는 우주뱀과 용의 이야기로 단서를 하나 찾아냈다. 그러나 그 이야기만이 아니다. 천전리 바위그림만 하더라도 그림문자들이 무리 지어 있는 이야기 마디들이 적어도 6∼7개가 된다. 어찌 울산의 반구대나 천전리뿐이랴. 고령 알터, 포항 칠포리와 인비리, 안동 수곡리, 영주 가흥동, 영천 보성리, 경주 석장동과 상신리, 남원 대곡리, 남해 상주리, 함안 도항리, 여수 오림동 등지의 바위그림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냥 ‘그림’으로 보고 무언가 의미를 찾아내고 나름대로 해석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나는 그림이기도 하지만 그림문자로도 봐야 해독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생각에 잠긴다. 우리 신화의 첫 머리를 장식할 이 바위에 새긴 그림문자를 해독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그래서 다채로운 상고대의 신화를 전해 들으며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우리는 울산 반구대의 바위그림에서 고래의 신화를 읽었고, 천전리 바위그림에서 우주뱀의 신화를 보았다. 특히 우주뱀을 통해서 천전리 바위그림이 우리 상고대의 선조들이 외계충격 시대의 생생한 체험을 바위에 새긴 천지개벽 신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늘 ‘아비’ 땅 ‘어미’ 꼬옥 껴안고
반구대, 천전리 바위그림 신화에서만이 아니라 현재 남아 있는 ‘하늘땅 신화’의 텍스트를 통해서도 우리는 외계충격의 현상들과 신의 등장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 여러분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창세신화는 우주거인의 등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원형에 가까운 이야기다.
이 세상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지금처럼 하늘과 땅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때는 하늘이 아비이고 땅이 어미였는데 하늘과 땅이 매순간 꼭 껴안고 있는 바람에 계속 자식을 낳게 되었다.
하늘과 땅은 곰, 호랑이를 비롯한 온갖 들짐승 날짐승과 함께 사람도 낳아 사람들과 짐승들이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런데 아비와 어미가 붙어 있으면서 계속 자식들을 낳는 바람에 곰이나 호랑이 등 짐승과 사람들이 머리가 하늘에 부딪혀서 도저히 마음대로 걸어다닐 수가 없었다. 결국 짐승과 사람들은 하늘과 땅 사이의 좁은 틈에서 서로 부딪치면서 거의 기어다니다시피 하며 살아야 했다.
어쩌면 그렇게 닮았을까? 하늘이 아버지이고 땅이 어머니이며, 둘이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하여 자식들을 계속 낳았다는 발상이 그리스 신화와 똑같다. 우리 신화의 ‘아비’는 그리스 신화의 ‘우라노스’이며 ‘어미’는 ‘가이아’ 여신이다. 가이아는 우라노스와의 사이에서 거인족, 티탄 12남매와 외눈박이 3형제, 백수거인 3형제를 낳는다. 땅의 신과 하늘의 신이 세상을 다스리는 신들을 낳은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이들 신들의 계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호머와 로마시대의 시인들이 만들면서부터이므로, 우리 신화가 더욱 ‘원형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신화는 시인들이 새롭게 쓴 것이 아니라 민중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수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신화의 ‘아비’와 ‘어미’는 그리스 신화의 우라노스와 가이아와는 달리 신들을 낳은 것이 아니라 온갖 들짐승 날짐승과 함께 사람을 낳았다.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마디 하자. 신화는 시작부터 ‘엽기’가 아닐 수 없다. 수십억년 동안 서로 붙어 있으면서 계속 자식을 낳았다는 말 아닌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누가? 서로 붙어 있는 아비와 어미가? 아니다. 하늘과 땅이 붙어 있는 바람에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그 틈새에서 기어다니는 짐승들과 사람들이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그런 상황에서 숨이라도 제대로 쉬었을까? 그럼에도 우리 신화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진술한다. 딱 두 마디다.
<< 사람들은 답답해서 고함을 질렀다. 짐승들은 울부짖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레가 ‘우르릉 쾅, 우르릉 쾅!’ 하고 천지를 울렸다. 그런 다음 시퍼런 번갯불이 번쩍번쩍 어둠을 깨뜨려 부수면서 천지를 비쳐댔다. >>
바로 이 이야기다. 외계충격의 체험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우레’와 ‘시퍼런 번갯불’은 다름 아닌 천전리 바위그림에 수없이 그려져 있는 마름모꼴 우레와 번개무늬의 그림문자들을 말로써 표현한 것 아닌가?
꼬리별이나 떠돌이별들이 수도 없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불덩어리들이 휙휙 지나가고 불폭풍이 분다. 굉음과 함께 거대한 충돌이 일어나고 지진으로 땅이 쩍쩍 갈라진다. 온갖 짐승들과 인간들이 아비규환에 빠져서 괴이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그리고 이런 천지개벽은 하루이틀에 끝나지 않았다. 기원전 3500년부터 기원전 600년까지 수천년에 걸쳐서 계속된 일이다.
그렇다. 그것은 공포다! 하늘에 대한 공포! 이 공포의 강렬한 느낌은 수천년에 걸쳐 계속되면서 날이 갈수록 증폭될 수밖에 없다. 쌓이고 쌓인 공포심이 외경심을 낳는다. 우리 신화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 모든 사람들과 짐승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
무력 사용 없는 ‘민중의 신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숨을 죽였다. 드디어 천지개벽 최고의 신이 출현할 차례다.
이때 땅이 꿈틀거리면서 커다란 산봉우리 같은 것이 땅속에서 솟아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산봉우리가 아니었다. 아주 힘이 세고 몸집이 큰 우주거인이었다.
땅속에서 솟아 나온 거인은 끙끙거리면서 하늘을 한쪽 어깨에 떠메더니 하늘을 높이높이 쳐들었다.
이때부터 하늘과 땅은 서로 떨어졌다. 사람들과 짐승들은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었고 비로소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천지개벽이 왜 일어났는가? 땅속에서 큰 거인이 솟구쳐 올라왔다는 것만으로 간단히 설명한다. 우주거인이 한번 크게 움직인 것이다.
우리 신화에서나 그리스 신화에서나 거인신이 하늘과 땅을 떼내는 것은 천지개벽의 대재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 거인신의 신격이 다른 만큼 방법도 서로 다르다. 우리 신화의 거인신은 땅을 누르고 하늘을 높이 쳐들어서 ‘아비’와 ‘어미’를 떼내고 자식들을 더 못 낳게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가이아 여신이 외눈박이 거인 3형제나 백수거인 3형제와 같은 망나니 자식들을 더 이상 낳고 싶지 않아서 거인 12남매 중 막내인 크로노스로 하여금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낫으로 잘라버리게 한다.
하늘과 땅을 떼어놓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한쪽은 하늘을 번쩍 들어 어깨로 떠받치고 영원토록 서 있는다. 자신을 희생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있는 우주거인이다. 다른 한쪽은 아비의 성기를 잘라버림으로써 신의 주도권을 빼앗고 세상을 지배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 신화와 그리스 신화는 서로 다른 길을 간다. 한쪽은 민중의 신화를 대표하고 다른 한쪽은 지배자의 신화를 대표한다. 한쪽은 세상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은 권력의 승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사람들과 짐승들은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가 있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끊임없이 계속되던 외계충격이 사라져 세상이 안정과 평온을 찾았다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크로노스가 지배하던 시대를 ‘결백과 순결의 황금시대’라고도 한다. 그가 다스릴 때 인간세계에는 황금족속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늙지도 않았고 죽음을 잠드는 것으로 생각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들은 욕심 부리지 않고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었다. 삶은 그야말로 축제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비로소 사람들은 춤추게 되고 노래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종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하늘에 바칠 옷과 음식을 차려놓고 무리춤을 추는 큰굿을 연상케 한다. 천전리 바위굿터의 신의 탈과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놓은 굿 그림 앞에서 신을 노래하는 무당의 굿을 연상한다. 그 큰굿을 이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춤추고 노래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면 해피엔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거인이 힘 빠져 주저앉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떼어놓은 거인을 까마득히 잊었다. 그 거인은 여전히 한쪽 어깨로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하늘은 여간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쪽 어깨가 너무 아팠다. 아무리 힘이 센 거인이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거인은 할 수 없이 하늘을 다른 쪽 어깨에 바꿔 메었다. 이때 거인이 기운을 쓰면서 움직이는 바람에 땅이 흔들렸다. 그래서 땅이 갈라지는 지진이 일어나고 산사태가 일어나고 홍수가 일어났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 자주 지진이 일어났다. 그때는 거인이 처음으로 어깨에 하늘을 메었기 때문에 서툴러서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어깨로, 왼쪽 어깨에서 다시 오른쪽 어깨로 자꾸 바꿔 메었기 때문이다.
우주거인이 하늘이 무겁다니, 이게 웬일인가? 세상에나! 거인이 어깨가 아프다고? 거인이 아파했다는 것을 글자 그대로 읽으면 ‘우스갯소리’가 되지만, 신화의 상징으로 읽으면 거인 속에 내재한 ‘자기 모순’으로 해석해낼 수 있다. 왜 아팠을까? 앞 단락의 내용과 연관 지어서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거인을 까마득히 잊었다. 이 신화의 구술자는 “거인의 어깨가 아팠다”고 진술하면서 은근히 “사람들이 잊어버려서”라는 단서를 달아놓았다. 그리고 신화 말미에 “하늘이 떨어지지 않게 거인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특별히 당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인간이 거인신을 내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거인신은 단지 어깨가 아파서 하늘을 바꿔 멜 뿐이다. 그런데 지진과 홍수, 산사태 등을 일으켜서 인간세상에 ‘재앙’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진’은 지질학에서 말하는 지진이 아니다. 우주론이랄까, 혹은 신화의 상징으로서의 지진이다. 땅만 쩍쩍 갈라지는 게 아니라 하늘도 흔들리고 우레와 벼락이 함께 몰아치는 그런 지진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하늘을 한쪽 어깨에 메고 있는 거인을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 거인이 하늘을 메고 서 있다. 만일 이 거인이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으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크고 새빨간 태양이 뜬다. 우레가 치고 번개가 번쩍이고 어둠이 바위덩어리처럼 꽁꽁 굳어버릴 것이다. 이 세상의 마지막이 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다시 서로 붙어서 맷돌같이 되어 회전한다. 하늘과 땅이 붙어 우레 소리를 내면서 빙빙 돌아갈 때 하늘과 땅 사이의 것은, 산이든 나무든 집이든 호랑이든 사람이든 모두 빻아져 가루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상의 모든 생물은 멸망한다.
그 후 새로운 생물이 태어난다고 한다.
신화는 드디어 맷돌을 매개로 해서 세상의 마지막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세상의 마지막, 지구의 멸망 혹은 인류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는 천지개벽의 이야기와 동시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종말이 있어야 시작이 있다. 시작과 종말은 끝없이 돌고 돈다. 맷돌은 그렇게 돌고 도는 세상을 상징하는 이미지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작은 부족인 호피족은 분명히 지구가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호피의 전설에서는 두 사람의 우주거인이 지구의 축을 지키고 있으며, 그들이 손을 떼면 지구의 회전이 뒤흔들려서 종말이 찾아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고 한다. 또 그 후에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고 전해 내려온다.
‘불의 태양’이라고 불리는 현재의 세계, 즉 제4세계의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호피족은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보이지 않으나 우주에서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오는 별이 출현한 뒤에 이 세계는 파멸한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종말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거인의 시대가 가고 인간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한다. 지구환경이 안정되면서 철기시대가 도래하고, 부족연맹의 장들이 신 대신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으로 넘어간다. 그것은 또 다른 신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거인시대를 끝낼 수가 없다. 사람들이 잊은 것은 우주거인이 하늘과 땅을 떼어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거인의 이름도 잊어버렸다. 상고대인들에게서 이름을 얻었을 게 분명한 거인은 다시 ‘이름 없는 거인’이 되었다.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 내려온 구전 과정에서 우리 우주거인의 이름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잃어버린 신화는 찾았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잃어버린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거인을 위해 더 머물러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여러분! 맷돌을 돌릴 때 우레 소리가 나는 까닭을 이제 알겠지요?
“혹시 ‘마고’라는 이름 들어봤니?”
“못 들어봤는데…. ‘여왕 마고’에 나오는 마고, 아니면 샤또 마고? 부드럽고 그윽한 향기가 나는 프랑스 와인이지.”
“아니, 우리 옛이야기에 나오는 마귀할멈이 마고잖아! 괴기하고 술법을 잘 부리는 쪼그랑할멈 말이야. 동화에 많이 나와.”
“그게…, 올 누드로 촬영했다는 모델들이 우루루 나오는 ‘마고’라는 우리 영화 말인가?”
우리의 여신 마고는 아직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마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혼란스럽다. 신화학자들 중에는 마고를 가장 원초적인 여신인 대모신(大母神·the Great Mother)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고와 관련된 이야기는 수백 편이 넘는다. 단지 이것이 단편적인 전설이나 설화로만 남아 있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고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신격인지, 신화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하는 마고의 이미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마고에 얽힌 이야기가 제대로 기록되어 전해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신녀들이 굿을 통해 모신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민중들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마고를 기억하고 오늘날까지도 마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 아닌가?
이제 마고의 진실에 다가가보자. 전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마고 신화의 조각들을 모아서 하나하나 이어보자. 쪼그랑 마귀할멈이 어느새 우리 태고 때의 거대한 여신 마고로 재탄생하여 커다란 조각보 위에 자신의 신화를 그려 보여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전국 각지에 산을 만들고 내를 내며 섬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 마고의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그 산이 스스로 걸어 들어왔다니더. 옛날에 걸어 들어왔다니더, 산이. 그래 걸어 들어와가 다 이래 보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요 ‘저 산 봐라! 산이 걸어 들어온다!’ 하니까 고만 멈춰뿌렸다니더. 안 그랬으면 지품면이 굉장히 넓었을 낀데….”(영덕군 지품면, 문문희·34·여)
산이 걸어다닌다고? 설마! 산이 어떻게? 어디서나 이렇게 한마디로 끝난다. 짧다. 산이 걸어다닌다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있겠는가? 믿지 못할 게 뻔하니까 더 할 말이 없는가보다. 산이 걸어 들어왔다고, 토도 달지 않고 똑같은 말로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못 믿겠지? 못 믿어? 응? 그래도 또 들어봐! 옛날부터 조상들이 전해준 이야기야.’ 이렇게 세 번씩이나!
“산이 딱 요 망경산처럼 와서 도롯이(호젓하게) 주저앉아 있는데, 저기 전라도에서 왔다고 전라도 산이라 하거든. 왜? ‘거 미친놈이다! 무슨 전라도 산이냐?’ (웃으며) 이렇게 옥종 사람들한테 물으면, 산이 전라도서 날아온께네 여자가 ‘아이구, 저런! 산이 날아온다!’ 하니께 푹 주저앉았다 하거덩. 어디? 아 저 옥종 장터 아래로 얼마 안 내려가면 있어.”(하동군 옥종면, 김두상·70)
산이 날아오다니!? 의령군 유곡면 칠곡리의 ‘날아온 산’은 바람 타고 날아왔다고 이름까지 ‘바람산’이다. 옛 어른들 참 바람이 세다. 허풍이 세도 너무 세다. ‘아니, 우주선 타고 다닌다는 외계인을 찾는 세티앳홈(seti@home) 프로젝트는 과학이냐, 허풍이냐? 잘 되면 과학이고 못 되어도 SF(공상과학) 판타지라고들 할 것 아니냐! 옛사람들의 신화적 판타지의 상상력은 허풍이고? 에라, 이 몹쓸 것들!’ 선조들이 야단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대는 잘 모르겠고 하여튼 마 천지개벽할 시긴데, 빨래하는 여자가 보니까 산이 둥둥 떠내려가는 기라. 그래 ‘산 떠내려간다’ 카이까네 마 산이 서버렸어. 난 이렇게 들었어. 외동면 석계리 의례산 이야기여. 마 모두들 명당이라고 이래 쌓는데….”(울주군 청량면, 손영수·50)
이제는 산이 떠내려온다. 천지개벽의 큰물이 져서 개나 고양이나 집채도 아니고 산이 떠내려온다는 것이다. 물론 바다에서는 떠내려오는 것이 보나마나 섬일 테지? ‘떠내려오는 섬’ 이야기다.
“‘저 바다서 섬이 둥둥 떠서 들어오더라 하대예. 그래 옛날 할매들이 그랬는갑대예. ‘저 봐라! 섬이 떠돌아다닌다!’ 그라니께 그 섬이 고마 주저앉아가 그 모가지(산달도와 거제도 사이 좁은 수로)가 생겨가 객선도 댕기고 한다고, 그런 말이 있대예.”(거제, 박천수·70·여)
산이 걸어오고 산이 날아오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산이 큰물에 떠내려오고, 바다로 가서 섬이 되어 떠다닌다? 정말 우리 조상들의 상상력이 대단하지 않은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허풍인가, 그냥 우스갯소리인가, 아니면 판타지인가.
상상력으로 말하는 상고대인들의 과학
산이 걸어오고 날아다니고 떠내려오는 이야기는 산을 옮기는 거인 마고가 뒤에 숨어 있는 유형이거나, 아니면 거인 마고가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빨래하는 여자’로 자신의 흔적을 남긴 유형이다. 자, 엄청나게 큰 거인 마고가 산을 옮긴다고 상상해보라. 이걸 사람들이 보았다면 산이 날아다닌다고 하지 않겠는가?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여신 ‘쉐멩듸’가 빨래를 하다가 한라산이 높아서 불편하다고 산꼭대기를 잡아당겨 던진 것이 날아가 산방산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빨래하는 여자’가 걸어가는 산을 보고 방망이로 쥐어박아 그 자리에 주저앉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거인 마고가 자신의 이름과 신격을 잃어버렸다. ‘빨래하는 여자’로서 작은 흔적만 남겨놓은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떠다닌다는 학설이 나온 것은 1915년의 일이다. 독일 기상학자 알프레트 베게너가 ‘대륙과 해양의 기원(The Origin of Continent and Ocean)’이라는 책에서 ‘대륙이동설’을 제기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베게너의 이론을 그저 공상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이후 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난 판의 운동을 추적한 결과 과학자들은 모든 대륙이 한때는 ‘판게아(Pangaia)’라는 거대한 하나의 대륙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베게너의 견해가 옳았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것이 ‘판 구조론’이다. 오늘날에는 판이 1년에 약 10cm씩 움직인다고 한다.
지구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누구나 우리 조상들의 상상력을 근거 없는 것으로 치부했을 법하다. 그렇지 않은가? 산이 올라오고 걸어가고 날아다니고 바다에서 올라와 섬이 되고 떠다닌다는 것은 맨틀의 대류에 따라 판의 구조가 달라지면서 대륙이 움직이고 바다의 모양이 변하는 것처럼 지진이나 화산 폭발 따위의 지각변동의 결과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원리와 법칙으로 설명하는 현대인들에게 그것은 과학이지만, 판타지의 상상력으로 말하는 상고대인들에게 그것은 신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신화는 등가물이다. 신화는 상고대의 과학이며 과학은 현대의 신화다.
마포 9만 통으로 치마를 해 입어도 한 폭이 모자라
도대체 얼마나 커야 산을 날려보낼 수 있을까? 마고는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키가 얼마나 큰지 ‘말할 수도 없다’고 한다.
“키가 얼마나 컸능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라. 말할 수도 없지라. 완도로 가는 길 남창 앞에 달도라는 섬이 있어라.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이 호남 일대에서는 제일 짚지라(깊지요). 그란디 ‘얼마나 짚은가 보자’ 하고 한번 내려가봉께 그래도 포도시(겨우) 마고의 넓적다리에 가 닿더래요. 그래 ‘그만치 짚구나.’ 그러고 나왔는디, 또 이 산 건너서 저 건너 산을 보면은 그 사이가 있지라. ‘니가 얼마나 너른가 보자’ 그라고 이 산의 바우 끝에다 한 발을 딛고 저 건너 산 바우 끝에다 또 한 발을 딛고 가랭이를 대봉께 포도시 닿더래네요. 그래 이 산 저 산 바우에다 발을 딛고 저 오심이고개에 손을 딛고 저 멀리 용둠벙에다 입을 대고 물을 마셨제. 그래 마고가 얼마나 킁가 알았다카더만.”(해남군 삼산면, 서만오·63)
마고는 ‘마포(麻布) 9만 통을 가지고 치마를 해 입어도 한 폭이 모자라 엉덩잇살이 남는다’고 한다(거창군 남하면 세바우들 전설). 여기서 ‘통’은 피륙의 길이를 재는 단위다. 한 통이 50필이니까 9만 통이면 450만필이다. 한 필이 125마 가량이고 한 마가 90cm니까, 1000억cm의 마포가 든다. 보통사람 6억명을 세워놓은 길이다. 대략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의 2배 하고도 반이나 된다. 자, 이제 치마를 만들어보자. 보통 우리 옷의 폭이 112cm 정도라고 보고 가로 세로 1대 2.2의 비율로 치마 길이를 계산하면 500만cm 정도다. 마고의 키를 치마 길이의 2배로 치면 1000만cm. 정말 어마어마하다. 물론 어림으로 계산한 것이다. ‘마포 9만 통’이라는 상징을 실물로 이해하기 위해서 대충 계산해본 것이다.
이전에 우리는 우주거인 미륵의 키를 계산해보았다. 대충 4만cm로 보통사람의 250배 정도 크기였다. 마고는 미륵보다 250배나 더 크다. 도저히 비교할 만한 대상이 못 된다. 후대에 미륵을 노래한 신녀의 상상력이 쪼그라든 게 틀림없다.
“옛날에 노고가 있었는데, 이 노고가 산천을 전부 만들었대. 산천을 만드는데, 손이 얼마나 크고 힘이 얼마나 좋은지 그저 손으로 평평한 곳을 쭉쭉 그으면 산이 되고 골이 돼서 인물이 나고 그랬대.”(강원도 옥제면, 최종철·71)
정말 그럴 법하다. 어디 산과 내를 만드는 일뿐이겠는가? 성도 쌓고 탑도 쌓고 길 가다가 떨어뜨린 바위로 선돌도 세운다. 여기서 ‘노고(老姑)’는 마고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연륜이 쌓여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마고라고 보면 된다. ‘노고’가 이름이 되어버렸다. 예컨대 지리산 노고단은 ‘지리산에서 마고를 모시고 하늘에 제를 드리는 단’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마고는 가냘픈 ‘선녀’가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술법을 부리는 마귀할멈도 될 수 없다. 마고는 ‘마포 9만 통으로 옷을 해 입은’ ‘말할 수도 없이’ 큰 거인이었던 것이다.
전국 각지에 마고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산천이 있을까? 마고가 직접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르거나 산을 짐바로 묶어 지고 나르는 것은 ‘큰 산 만들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어디 산이 큰 산밖에 없나? 작은 산도 있다. 그래서 마고 신화에서는 꼭 치마 한쪽 끈이 풀어지거나 옷에 구멍이 나서 흙이나 돌, 바위가 흘러내려 작은 산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산 만들기’에 얽힌 이야기들은 구수한 입담으로 재미있게 이야기해야 듣는 사람들도 웃게 마련이다. 그 덕분에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마고가 전국의 산과 내를 다 만들었다는 것은 그냥 듣고 넘길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정말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마고가 산을 조화 있게 만들어서 그 태백산맥이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저 소백산맥으로 쭈욱 가 가지고 영주 북쪽, 죽령, 조령, 추풍령을 품어 지리산을 만들잖아요. 바로 여기서 뺑 돌려서 이쪽으로 가 가지고 영월을 가는 산맥을 하나 만들지요.
여기서 정선을 가자면 산맥이 나오는데 바로 여기서 쭈욱 빠져나가는 금산을 만들고 삼척 남산을 딱 만들었지요. 이 봉황산 줄기는 대관령을 쭈욱 내려오다가 두타산을 봉긋하게 올려놓고. 산이 전부 에워싸고 마고가 사는 곳의 사방을 가지고 와서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어요.”(삼척 남양리, 김일기·52)
역시 전국에 널려 있는 마고바위 가운데 하나인 삼척 남양리의 마고할미바위와 함께 전해 내려오는 ‘마고할미의 조화’라는 이야기다.
전국의 산을 만들려면 자연히 산맥을 틀어쥐어야 하고 전국의 내를 만들려면 자연히 내가 흘러 들어가는 만과 바다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것은 크게는 지구를 만드는 일이요, 작게는 마을 앞의 내와 바위와 돌을 그 자리에 있게 하는 일이다.
결국 마고라는 존재가 자연 자체와 함께한다고 할 수 있다. 생명을 만든 여신으로서 생명 자체와 함께한다고나 할까? 마고는 산과 내와 바위와 돌로 자신의 신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자, 이제 마고의 존재가 보이는가? 마고라는 인물의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마고라는 여신의 신격이 느껴지는가? 이제, 독자 여러분도 마고 신화의 조각그림 맞추기를 해볼 생각이 들었다면 도전해보기 바란다. 그를 위해서 필자가 모은 이야기 마디들, 조각들을 제공하고자 한다.
신화는 지구에 나타난 최초의 인간들이 세계와 우주를 바라보는 눈이다. 그들은 세계와 우주를 있는 그대로 보았고,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충만해 있었다. ‘산이 날아간다’는 한 마디로 이루어지는 마고 신화의 조각들도 고대인들의 체험과 상상의 결합에 의한 것들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마고 신화의 조각들을 하나 둘 모으고 짜 맞추면서 우리는 여신 마고가 마귀할망이나 천태산 마고선녀가 아니라 우주거인이었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신화의 조각들을 ‘짧고 보잘것없다’고 보는 한, 신화의 세계는 결코 자신의 문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굿할 때 모시는 신이냐 아니냐
그러나 우주거인 마고가 창세신일 가능성은 높지만 그 근거는 대단히 미약하다. 우리나라의 산천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조건이 되지 않는다. 창세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다른 이야기마디를 찾아내야 한다. ‘이름 없는 거인’처럼 하늘과 땅을 떼어냈다든가, 아니면 지구의 종말을 불러오는 우주거인이라야 하는 것이다. 미륵처럼 하늘과 땅을 떼어내고 해와 달을 만들고 인간을 세상에 내놓는 그런 창세신이라야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여신 마고는 ‘신화적 흔적’일 뿐 ‘진정한 의미의 신화’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천지창조 신화는 인간세계의 생성과정을 설명하는 신화다. 한국의 민담과 무속신화에 남아 있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는 천지창조 신화라고 하기 어렵다. 제주도의 설문대할망과 강원도 삼척지역의 마고할미는 각 지역의 산천 형성과 관련 있다는 점에서 천지창조 신화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제의(祭儀)와의 상관성을 알 수 없고 신성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 때문에 신화적 흔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뿐 진정한 의미에서 신화라고 하기 어렵다.”
(한국의 창조신화, ‘브리태니커 온라인’에서)
여기서 ‘제의’라고 표현한 것은 다름 아닌 굿이다. 원시시대 때부터 굿을 했다는 것은 바위그림이나 방울과 동경 같은 청동기 유물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제의와의 상관성’이라고 하는 말은 쉽게 말해서 마고가 우리 조상들이 굿을 할 때 모신 신인가 아닌가를 이야기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어쨌거나 필자는 ‘진정한 의미의 신화’와 ‘신화적 흔적’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신화적 흔적’이라는 것을 ‘신화의 흔적’이라고 하면 달라질 게 있을까? 별로 없을 것 같다. 자, 이때의 신화는 ‘진정한 의미의 신화’가 아닌 다른 무엇이란 말일까? 신화를 진정한 의미의 신화와 그렇지 않은 신화로 구분할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신화의 흔적이란 다름 아닌 ‘진정한 의미의 신화의 흔적’일 것이다.
신화는 말 그대로 신들의 이야기다. 굿을 할 때 신으로 모셨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굿을 할 때 더 이상 모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혹은 굿을 할 때 모셨는지 안 모셨는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신화는 신화다.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해서 신화가 아닌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신화냐 아니냐를 가르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신들의 이야기냐 아니냐 하는 데 있을 뿐이다. 신들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더욱 중시해야 할 점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상징체계로서의 신화다. 그 속에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변증으로서의 상상력과 세계관이 꿈틀대는 인류의 문화자산으로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우리 조상들이 마고를 신으로 모셨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우리 신화, 우리의 마고를 찾는 길을 함께 가고 있으므로 입장 차이를 접어두기로 하자. 굿을 할 때 모시는 신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면 당연히 신으로서의 신성성을 인정할 것이므로, 여신 마고가 ‘진정한 의미의 신화’의 주인공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산천을 만들었다는 여신 마고의 신격과 관련하여 우선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마고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사라져버린 경우에조차도 마고가 옮긴 산이나 섬을 신성하게 여겼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 산이나 섬을 여신 마고의 산이나 섬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옮겨온 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든가 옮겨온 산에 묘를 쓰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섬이 떠내려오기에 밀어냈더니 고기가 잡히지 않게 되어 그 섬에 당집을 짓고 굿을 올리자 고기가 잘 잡히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은 이야기로만 남았지만 그 당집에는 분명히 신이 좌정하고 있었을 터. 옮겨온 것이 바위라면 그 바위를 서낭신으로 모시기도 했다. 그 바위는 마고 여신의 상징이거나 분신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는 마고바위라고 불리는, 산 위에 서 있는 길쭉한 돌, 즉 선돌과 관련한 여러 가지 전설이 오늘날까지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양양 죽도의 절구바위에 얽힌 전설은 세상을 지배하려던 마고의 꿈이 어떻게 좌절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마고신화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 서낭당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마고할미제를 지냈다고 전한다. 유교적 표현을 걷어내보자. 마을굿에서 마고굿을 했다는 이야기다.
창세신격으로서의 마고를 찾아라
자,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마고를 굿을 할 때 신격으로 모셨다고 해서 마고가 창세신이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무당의 노래로 수천년을 전해 내려온 창세신화로서의 ‘미륵신화’에 주목했다. 우리에게도 창세신화가 있다는 점을 먼저 보여주었다. 그러나 미륵은 우리 신격임에도, 또한 창세신임에도 우리 상고대의 창세신으로 볼 수 없다. 우리의 고유한 신격으로 보기에는 어딘가 불완전하다. 불교가 전해진 이후에 건너온 신이기 때문이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 만들어진 신화라고 반박하더라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원초적인 신화로서 ‘하늘땅신화’와 ‘이름 없는 거인’ 이야기를 제시했다. 우리는 이 이름 없는 거인이 우리의 창세신이 분명하다는 것을 살펴보고, ‘하늘땅신화’와 ‘미륵신화’에 같은 이야기마디가 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름 없는 거인’이 불교가 전래된 이후 ‘미륵’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창세신인 ‘이름 없는 거인’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그 이름이 마고일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마고신화’와 ‘미륵신화’에서 ‘마포 9만 통으로 치마를 해 입는’ 마고의 이야기마디와 ‘하늘 아래 베틀 놓고 구름 속에 잉아 걸어’ 칡 장삼을 마련한 미륵의 이야기마디는 거의 같은 유형이다. 그러므로 마고에서 미륵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하늘땅신화’와 ‘마고신화’와 ‘미륵신화’ 사이에 같은 이야기마디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국 곳곳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통해 마고가 우리 산천을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 마고가 ‘이름 없는 거인’이라고 주장할 수가 없다.
어떤 분들은 ‘부도지’의 마고 이야기를 예로 들어 마고를 이야기한다. 물론 ‘부도지’는 마고가 상고대의 우리 신화 속의 창세신이었을 가능성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부도지’가 우리 고대종교의 경전임이 분명하고, 따라서 ‘부도지’의 마고신화가 우리 고대신화의 하나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 상고대의 신화라고 하기에는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 ‘부도지’가 우리 상고대 신화가 종교로 발전하여 형성된 사상과 신앙의 체계를 보여주는 후대의 산물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쉐멩듸와 마고의 동질성
자,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잃어버린 우리 창세신의 이름을 찾아 거인신화를 탐색해 왔다. 마지막 남은 가능성은 ‘하늘땅신화’와 ‘미륵신화’에 같이 나오는 하늘과 땅을 떼어낸 이야기마디를 찾거나 인간과 세상의 창조와 멸망에 대한 독자적인 이야기마디를 찾아내는 것뿐이다.
필자는 그 가능성을 탐라(제주도의 옛이름)의 쉐멩듸 신화에서 찾았다. 탐라신화는 1만8000여 신들이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는 우리 신화의 보고다. 그 가운데서도 쉐멩듸는 육지의 마고와 마찬가지로 굿을 할 때 모시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만 남았는데, 제주도 전역에 걸쳐서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고신화와 똑같은 성격의, 똑같은 이야기가 말이다.
쉐멩듸는 설문대, 세명두같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데, 한라산 꼭대기를 베개 삼아 누워서 성산포에까지 발을 뻗어 물장난을 칠 정도로 키가 큰 거인이다. 또한 치마폭에 흙을 담아다 한라산을 만들었다는 여신이다. 그때 찢어진 치마폭에서 떨어진 흙덩이들이 제주도의 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도 없이 한마디로 탐라의 마고라 할 수 있다.
쉐멩듸 여신도 탐라신화에서 창세신이었을 가능성은 높지만 그 근거가 부족하여 창세신화의 흔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마고 여신과 같은 처지다.
필자는 쉐멩듸 여신에 관한 이야기를 샅샅이 뒤져서 읽어보았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떼어내는 이야기마디를 찾았다.
“우리가 옛날에 들으니까, 설문대할망이 키도 크고 힘도 세고 했던 모양입디다. 그래서 한쪽 발은 사라봉에 디디고 다른 한쪽 발은 저기 물장오리라고 거길 디뎌서 산짓물에서 빨래하다가 꾸벅하다가 벗어져서 떨어졌다고 합디다….
옛날에는 여기가 하늘과 땅이 붙었다. 붙었는데 큰 사람이 나와서 떼어버렸다. 떼어서 보니, 여기 물다닥이라 살 수가 없으니 가로 물을 파면서, 목포까지 아니 팠으면 길을 그냥 내버릴 텐데 거기까지 파버리니 목포도 끊어졌다. 그것은 그때에 여기를 육지 만드는 법이 잘못된 거죠. 그런데 설문대할망이 거길 메우려고 흙을 싸 걸어가다가 많이 떨어지면 큰 오름이 되고, 적게 떨어지면 적은 오름이 되었다, 그건 옛말입니다. 치마에 흙을 싸다가 많이 떨어지면 한라산이 되고, 적게 떨어지면 도둘봉이 되었다, 그건 옛날 전설이고….
전부 물바다로 보아서 하늘과 땅이 붙었는데 천지개벽할 때 아무리 하여도 열 사람이 있을 거라 말이우. 그 연 사람이, 누군가 하면 아주 키 크고 센 사람이 딱 떼어서 하늘은 위로 가게 하고 땅은 밑으로 가게 하고 보니, 여기 물바다로 살 수가 없으니 가로 돌아가며 흙을 파 올려서 제주도를 만들었다 하는데, 거 다 전설로 하는 말이죠.”(제주시 오라동 설화, 송기조(74), 구비문학대계 제주편, 1980)
쉐멩듸 여신이 서로 붙어 있는 하늘과 땅을 떼어내 하늘은 위로 가게 하고 땅은 밑으로 가게 하였다는 것은 ‘하늘땅신화’의 이름 없는 거인, ‘창세가’의 미륵이 한 일과 똑같지 않은가? 아! 그렇다면, 이 쉐멩듸가 바로 이름 없는 거인이자 미륵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창세기의 우주거인이 여기 탐라에 이렇게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를 남겨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잃어버린 우리의 창세신을 ‘쉐멩듸’라고 불러야 옳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다.
그러나 너무 흥분하지 마시라. 그렇다고 하여 쉐멩듸가 바로 마고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쉐멩듸는 탐라신화의 우주거인이요, 창세신이기 때문이다. 마고는 육지의 신화다. 탐라는 ‘독립된 나라’였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건국 영웅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독특한 자신들의 문화도 갖고 있다. 대륙 중원의 여러 나라에 사신을 따로 보낸 ‘독립된 나라’였다.
쉐멩듸와 마고
그렇다면? 우리는 몇 고개를 넘고 또 넘어왔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또 한 고개를 더 넘어야 한다. 아! 쉐멩듸와 마고는 똑같은 성격의 여신임이 너무도 분명한데…. 쉐멩듸가 하늘과 땅을 떼어낸 창세신이라고 해서, 마고도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결론은 의외의 곳에서 났다. 쉐멩듸를 한자어로 어떻게 썼을까? 曼姑(만고), 詵麻姑(선마고)라고 썼다는 것이다. 沙曼頭姑(사만두고)라고 쓰기도 했다. 필자는 한자 표현을 통해서 쉐멩듸와 마고의 관계를 알 수 있었다. 장한철의 ‘표해록(漂海錄)’ 첫 5일째 기록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보자.
白鹿仙子活我活我 백록선자여 우리를 구하소서 우리를 구하소서
詵麻姑活我活我 쉐멩듸 여신이여 우리를 구하소서 우리를 구하소서
여기서 詵麻姑는 바로 쉐멩듸다. 우리는 같은 책 뒷부분에 나오는 詵麻姑에 대한 이야기가 현재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쉐멩듸 이야기와 거의 같다는 사실에서 詵麻姑가 쉐멩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1771년 장한철은 쉐멩듸를 마고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의 마고는 탐라의 쉐멩듸와 같은 창세신임이 틀림없다. 마고와 쉐멩듸가 같은 신의 서로 다른 이름인지, 아니면 같은 신격의 서로 다른 이름인지, 혹은 같은 신격의 서로 다른 신인지는 더 연구해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우리의 창세신이 여신이라는 사실은 우리 신화의 지평을 저 멀리 원시시대로까지 넓혀준다. 그리스 대지의 신 가이아나 만주족의 세 여신 아브카허허 바나무허허 와러두허허와 같은 신격의 마고 혹은 쉐멩듸 여신은 우리 신화가 모계사회의 사유를 그대로 전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신 마고에개 생명을 불어넣는 일
필자는 드디어 잃어버린 신화를 찾는 신화여행의 종착역, 창세신화의 여신 마고역에 다다랐다. 그러나 태곳적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여신 마고에게 새롭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는 여신 마고를 하나의 종교로서가 아니라 신화로서 가꾸어가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에게는 아주 독특한 거인신이 하나 있다. 마고와 쉐멩듸, 안가닥과 서해의 개양과는 달리 남성신이다. 이름은 장길손.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아주 친숙하다. 자, 필자와 함께 ‘거인신 장길손’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 옛날 옛적 장길손이라고 하는 거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몇십 리 길도 한 발자국만 떼어놓으면 갈 수 있었다. 귀 길이가 30척이나 되었고, 몸집이 엄청나게 커서 한 번에 쌀을 수십 섬씩 먹어야 했다. 그는 온 천지를 헤매고 다녔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밥 한번 마음껏 먹어보지 못했다. 늘 배가 고픈 그는 먹을 것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왔다. 드넓고 푸른 평야가 끝없이 펼쳐진 남쪽에는 곡식이 풍성했다. 사람들은 쌀 수십 섬으로 밥을 지어 장길손에게 내주었다. >>
참으로 독특한 설정이다. 신이 배가 고프다니?! 거인신이니까 당연히 배가 고플 수밖에 없을까? 그렇지 않다. 거인이든 신이든 ‘먹을 게 없어서’ 늘 배가 고플 것이라는 설정은 정말 새롭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하나 확인해두자. 우리 조상들은 ‘먹을 게 없어서 늘 배가 고팠다’는 사실 말이다. 풍요롭다 못해 낭비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겪어보지 않아서 늘 배고픈 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늘 배고픈 거인 이야기가 더욱 신선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 거인 장길손은 오랜만에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 속이 든든하니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장길손은 자기 모양새를 바다에 비춰보았다. 그런데 아니, 칡덩굴로 겨우 사타구니만 가리고 있는 몰골이라니! 배가 고플 때는 몰랐는데 배가 부르고 나서 보니 참으로 볼품이 없다. 사실 옷이라고 해봐야 산에 있는 칡덩굴이나 나뭇잎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장길손은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옷을 입어보고 싶다고 간절히 소망했다. 이번에도 역시 사람들은 장길손에게 남쪽에서 한 해 동안 나온 베를 전부 내주면서 옷을 해 입으라고 했다. 사람들은 거인 장길손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정성을 다 베풀었다. 그 많은 옷감으로도 옷을 온전히 만들기에는 부족했지만 그래도 장길손은 더없이 행복했다. >>
‘한 번만이라도 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장길손의 바람은 곧 옷에 대한 민중의 바람을 상징한다. 옷감이 모자라기 때문에 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바람은 충족될 수 없는 그저 바람일 뿐이다.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신화 속에 살아남아 있는 마디가 ‘밥과 옷’ 이야기라는 것을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신화의 민중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 장길손은 옷을 입어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흥이 나서 들 한가운데에서 덩실덩실 춤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인 장길손의 춤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가 몸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그의 몸이 해를 가리고 그림자가 백 리 밖까지 드리워졌다. 장길손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쪽에는 우중충하고 검디검은 그늘이 져서 쌀이며 보리며 온갖 곡물이 조금도 자라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장길손이 춤을 추며 팔을 휘두를 때마다 옷자락에서 태풍 같은 바람이 일어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마을 앞에 서 있던 오래된 정자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지붕이 날아가고 돼지도 닭도 날아갔다.
해와 달이 가려지고 검은 하늘이 세상을 뒤덮었다. 검은 하늘이 석 달 열흘 동안 땅을 뒤덮어서 살아 있는 모든 식물이 죽어갔다.
그뿐이랴.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들도 먹을 것이 없어 굶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어두운 밤만 계속되는 세상에서 먹을 것도 구하지 못한 채 헤맸다. 서로 부딪쳐도 누가 누군지 알 수조차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야말로 세상이 흉흉하게 변해갔다. 세상이 망한다는 소문이 바람을 타고 돌고 돌았다.
장길손은 신이 나서 며칠 동안 춤을 추었을 뿐이었지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느새 봄과 여름이 지나갔다. 그래서 마침내 장길손이 춤을 추던 남쪽 평야지대에 흉년이 들었다.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장길손이 흉년을 몰고 오다니!”
“이제 무얼 먹고 사나!”
사람들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기껏 먹여주고 옷 해 입혀줬더니….”
“에잇! 하는 짓이라고는!”
사람들이 농사짓던 연장을 손에 들고 무리 지어 장길손에게로 달려들었다.
장길손은 눈물을 흘리며 그곳을 떠나 북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장면은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거인신과 멀어지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상을 창조한 거인들은 워낙 크기 때문에 ‘우주’와 어울려야지,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족속들이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가 거인족들과 전쟁을 벌여 거인족들을 사람들 세상에서 몰아낸다. 그래서 일부 살아남은 거인족들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산다.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들끼리 사는 것이다. 우리 신화에 나오는 옥황이라는 하늘신은 제우스와 신격이 비슷하다. 단군신화의 환인이나 탐라신화의 천지왕과 같은 신격이다. 여신 마고가 옥황과 다툰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하나 전쟁을 치렀다는 이야기는 남아 있지 않다. 남아 있는 우리 신화에서 거인 장길손은 사람들 세상을 스스로 떠났다.
<< 장길손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산을 넘고 들을 지나 북쪽으로 북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북쪽은 인심도 좋지 않고 먹을 것도 없었다. 얼마 동안이나 굶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걸을 힘조차 없다. 장길손은 너무 배가 고파 돌이든 나무든 흙이든 닥치는 대로 주워 먹었다. 그제야 비로소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몇 발자국 더 가지 못했다. 배가 아파서 도저히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뒹굴다가 배 속에 있는 것을 모두 토해내고 설사까지 했다. 입 속에서 나무, 흙, 돌, 바위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어찌나 많이 먹었던지 그가 토해놓은 것이 쌓이고 쌓여 큰 산이 되었다. 그게 바로 백두산이다. 그리고 설사가 흘러 내려간 것이 태백산맥을 이루었고, 똥덩어리가 튀어 멀리 떨어져 나간 것이 탐라, 곧 지금의 제주도가 되었다. >>
독특한 설정 재미있는 상상력
참으로 재미있는 상상이 아닐 수 없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뒹굴다가 토하고 설사하는데, 웬 똥덩어리가 멀리 튀어나가 제주도까지 만들었는가 말이다. 물론 제주도가 만들어진 이유까지 설명하려고 상상력을 펼쳤겠지만.
장길손의 똥 이야기는 물론 마고의 똥 이야기가 전승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마고가 똥오줌을 누는 일도 새 땅과 새 마을을 만드는 일이다.
궂질이라는 땅이름이 생긴 이유를 들어보자.
<< 저 부북(府北面) 무전에 산만댕이(山頂) 등은 한 등이라도 바우(바위)가 있는데, 그러이 저 부북 쪽을 보고설랑 앉아서 그 똥을 누었다고 카이끼네, 그 바우 이름이 통시방우(통시는 ‘화장실’이라는 뜻의 우리말, 방우는 바위)라. 저쪽 산 이쪽 산에 바우가 크다. 먼 데서 봐도 큰 바우인데, 마 덩그래 보이거든. 그게 통시방우라 카이끼네. 이짝 것도 통시방우고 저짝 것도 통시방우인데. 거리가 이래 멀어. 그래 산을 지고 댕기는 마고가 거기서 그 돌에 이래 걸치고 앉아 오줌을 누기를, 이 부북 쪽을 보고 누니 마 산이 무너졌다카이. 오줌에 마 산이 무너져가 동네가 생겼어. 그 동네 이름은 무전리야. 그 반대쪽, 그러니까 똥이 떨어진 데는 저 상동면인디 저리 널쪄 놔놓으니 그 궂질이라카는 동네가 생겼어. 똥이 내려가니 궂다고 그래 동네 이름을 궂질이라카고.[일동 웃음] (밀양군 삼랑진읍, 설삼출, 남·67)
나무와 돌 바위 따위를 다 쏟아낸 장길손은 남쪽이 그립고 자기 처지가 한심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가 흘린 눈물은 한없이 흘러 동서 양쪽의 두 줄기로 갈라져 내려갔는데 한 줄기는 압록강이 되고 또 한 줄기는 두만강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강들의 지류도 생겨났다.
마음껏 울고 난 장길손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뒤를 돌아보며 길게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소리가 거친 바람이 되어 주변에 있는 것을 다 날려보내는 바람에 이번에는 만주벌판이 생겨났다.>>
그제야 정신이 든 장길손은 자기를 후대한 남쪽 농민들에게 뭔가 보답하고 싶었다. 그는 남쪽 사람들에게 거름이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가 토해놓은 백두산 위에 서서 남쪽을 향해 오줌을 누었다.
그런데 그것이 장길손의 생각과는 달리 홍수를 이루어 북쪽 사람들은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고, 남쪽 사람들은 더 아래로 떠내려가서 그중 살아남은 사람들이 일본 사람의 시조가 되었고, 북쪽에서 떠내려온 사람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우리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장길손신화는 마지막까지 거인이 인간과 어울려 살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거인이 인간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거름이 되라고 오줌을 누었는데, 그만 홍수가 져서 인간들이 모두 다 죽어버린 것이다. 이런, 세상에!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말이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거인신으로서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행동이 아닌가? 애걔걔… 신이 그것밖에 안 돼? 그래서 민중들은 그야말로 ‘단순’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다!) ‘착하디 착한’ (너무 착해서 바보 같다!) 장길손을 이야기하는 재미에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야기해온 것이다. 단순하고 착하디 착한 것! 그것이 민중의 본마음이기 때문일까?
같이 살수 없는 거인 흔적만 남길 뿐
거인 장길손의 이야기 마디들은 참으로 ‘재미있고 웃기는 이야기’로 전해 내려왔다. 장길손의 볼기를 치려다 치지 못하고 지쳐 죽었다는 또 다른 이야기 마디도 있다.
<< <앞부분 생략> 그만 흉년이 들고 말았다. 백성들이 흉년이 들게 한 장길손을 불러다 벌을 내리라고 청하여 왕이 그를 잡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길손을 잡으러 갈 것도 없이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바닥에 엎드렸더니 머리가 대궐 마당에 닿았다. 볼기 오십 대를 치라고 했는데, 볼기짝이 하도 멀어서 하인들이 볼기짝 쪽으로 가다가 지쳐 죽었다. >>
원래는 장길손이 웃기는 주체였는데, 여기서는 되레 왕과 하인이 웃기는 주체가 되었다.
거인 장길손은 겉으로는 우습게 보인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거인의 시각과 인간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거인의 행동은 거인다운 것으로 나타난다. 거인 장길손은 그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의외의 결과에 늘 당황한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이미 거인의 시대는 가고 인간의 시대가 온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같이 살 수는 없다. 거인이 인간이 될 수는 없다.
화해할 수 없는 거인과 인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홍수다. 결국 거인이 인간을 도와주려고 눈 오줌이 홍수를 몰고 온다. 세상의 종말을 가져온다. 한 세계가 끝나는 것이다. 거인은 인간에게 세상을 창조해주었지만, 또한 세상의 종말을 가져오는 신이기도 하다. 당연히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그것이 신화적 사고다. 거인신이 시작했으므로 거인신이 끝낸다.
그러므로 거인신은 멀리해야 할 신이다. 가까이할 수 없다. 그래서 죽어서 산천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우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단지 인간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세계에 그 흔적을 남길 뿐….
우리 신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늘을 들고 있는 ‘장군’으로, 혹은 멀리 떨어진 섬에 사는 외눈박이 거인으로 위험한 거인신은 유폐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땅속 깊은 곳 타르타로스에 가둔다. 중원의 우주거인 반고는 해체된다. 반고의 몸으로 세상을 창조하니, 그 기운은 바람과 구름이, 소리는 우레가, 왼쪽 눈은 해가, 오른쪽 눈은 달이, 팔다리와 몸통은 사방 끝과 오악이, 피는 강이, 힘줄은 지형이, 살은 논밭이, 머리털은 별이, 솜털은 초목이, 이와 뼈는 쇠와 돌이, 정액은 보석이, 땀은 비와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북유럽 신화의 거인신 위미르의 몸도 해체되어 미드가르드라는 땅이 되고, 피는 바다와 호수, 뼈는 산맥, 이와 부서진 뼈는 바위와 자갈, 뇌수는 구름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인간은 여전히 살아남는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의 시조가 되는 것이다.
천지가 생겨나고 사람들이 일어섰으나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생과 사도 제대로 구분이 안 되고, 짐승과 나뭇잎들이 말을 하고, 귀신이 말을 걸면 사람이 대답하고 사람이 부르면 귀신이 대답하던 시절이었다.
하늘에는 해와 달이 둘씩 있어 낮에는 사람이 더워서 죽고, 밤에는 추워서 죽었다.
모든 짐승과 초목들이 말을 하고, 귀신과 인간의 구별이 없어서 사람이 부르면 귀신이 대답하던 시절을 무엇이라 이름 붙일까? 계절은 늘 봄이고 ‘마고성’으로 상징되던 신선들의 옥답에서 나는 과일이 도처에 풍성하여 사람들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일할 필요가 없었던 시절, 마고시대의 선경을 지나서 이제 톨킨이 이름한 대로 ‘중간계’(영국의 소설가 존 로널드 톨킨이 창조한 가상세계로 ‘반지의 제왕’의 무대다)로 왔다고나 할까? 아니면 그리스신화의 황금시대를 지나 철의 시대로 왔다고나 할까?
우리는 이제 본격적인 신화여행의 길을 나선다. 마고신화는 민중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 조각난 채 흔적으로만 남아 있으나, 천지왕신화는 신녀들의 노래 속에 남아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춘 이야기로 전해 내려온다.
천지왕신화는 창세신화와 천지개벽신화의 성격을 함께 갖고 있다. 부계사회와 전쟁의 시대를 열고 스스로 ‘하늘땅신’이 되었던 남성신격으로서의 천지왕이 마고의 창세신화에서 마고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창세신화의 성격을 이어받아 천지개벽시대의 신화를 만들어나간 흔적이 아닌가 한다.
그 첫 이야기가 바로 천지왕과 쉬맹이의 싸움이다.
신을 무시하는 쉬맹이
<< 이때 땅에는 천하 거부로 잘사는 쉬맹이라는 자가 있었다. 욕심 많고 방자한 쉬맹이는 하늘을 향해서도 큰소리를 치곤 했다. 거드름이 잔뜩 실린 쉬맹이의 목소리가 하늘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세상에 나를 이길 자 누가 있으랴!”>>
짐승과 초목들이 말하던 시절에는 사람들도 신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천지개벽으로 신의 위상을 새롭게 세우고자 하는 천지왕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평정하기 어려운 큰 혼란이었음이 분명하다. 권력은 혼란을 만들고 그 혼란을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탄생하게 마련인가?
어느 날 천지왕은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을 하나씩 삼키는 꿈을 꾸었다. 이 꿈이야말로 세상을 바로잡을 옥동자를 얻을 꿈이 아닌가? 천지왕은 조만간 천생배필을 맞으러 땅으로 내려가리라 생각하고 있던 차에 저승왕한테서 쉬맹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 섣달 그믐날. 명절을 맞은 저승의 귀신들은 제사를 받아먹기 위해 모두 이승으로 바삐 올라갔다. 그런데 어디선가 슬피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옥퉁소를 부는 소리가 들리느냐?” 괴이하게 여긴 저승왕이 물었다.
“쉬맹이 아버지가 그의 아들이 제삿밥을 챙겨주지 않아 이승으로 갈 수가 없다고 우는 소리입니다.”
“쉬맹이가 제사상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가난하단 말이냐?”
“쉬맹이는 천하 거부로 하녀를 두고 아버지를 병풍을 치고 모셔두고 밤에 중식까지 먹이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60세가 되자 ‘사람 한 대가 30년인데 아버지는 두 대를 살았으니 너무 오래 살았습니다’ 하고는 그때부터는 밥을 한 끼만 주었답니다. 그래 그 아버지가 ‘왜 그러냐? 배고파 못 살겠다’며 죽은 후에 제사상을 안 받는다는 조건으로 살아 생전에 밥 세 끼를 받아먹었다고 합니다.” >>
천지왕은 쉬맹이의 행동에 분노했다.
“쉬맹이, 이놈! 괘씸하도다! 괘씸하구나. 쉬맹이, 이놈!”
서둘러 일만 군사를 거느리고 지상으로 내려오던 천지왕은 혼잣말을 되뇌었다.
‘하늘땅의 질서를 잡을 때가 온 것 같구나. 해와 달을 삼키는 꿈도, 쉬맹이를 징치(懲治)하는 것도 지금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음이야….’
천지왕과 총명 아기씨의 만남
<< 지상에 내려온 천지왕은 바구왕 집에 머물렀다. 천지왕이 저녁상을 요구하니 바구왕이 “저녁 지을 쌀밖에 없어서 상을 못 차리겠습니다”라고 한다. 이에 천지왕이 “이 고을에 쉬맹이라는 큰 부자가 있지 않습니까?” 하고는 바구왕의 딸 총명이를 시켜 쉬맹이에게 쌀 한 되를 꾸어 오게 한다. 쉬맹이는 쌀 한 되를 꾸어주면서 흰 모래를 섞어서 한 되를 채워주었다. 총명이는 쌀을 열 번이나 깨끗이 씻어서 저녁밥을 짓고 첫 밥상을 차려와 천지왕과 마주앉았다. 총명 아기씨는 월궁선녀처럼 아름다웠다. 천지왕이 기쁜 마음으로 첫 술을 뜨는데 바로 돌을 씹었다. 천지왕이 물었다.
“총명 아기씨, 이게 어찌된 일이오?”
“쉬맹이는 가난한 사람이 쌀을 꾸러 오면 흰 모래를 섞어주고, 좁쌀을 꾸러 오면 검은 모래를 섞어줍니다. 작은 말에 담아 주고는 큰 말로 돌려받아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허, 인간 세상에는 거꾸로 일어나는 일이 많고도 많구나!” 천지왕이 개탄하자 총명 아기씨가 말을 잇는다.
“쉬맹이의 딸들은 가난한 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 점심을 먹이면 고린 간장을 먹이고, 그 아들들은 마소에 물을 먹여 오라 하면 말발굽에 오줌을 누어서 물통에 들어섰던 것처럼 보이게 해서 마소까지 굶기는 자들입니다.”
“괘씸하다, 괘씸해! 쉬맹이가 괘씸하도다!”
쉬맹이의 파렴치한 행동을 다시 확인한 천지왕은 노하여 ‘쉬맹이를 잡아오라!’고 일만 군사를 보냈다. >>
천지왕신화에 나오는 쉬맹이는 3800년을 살았다고 해서 ‘수명장자’라고도 한다. 천지왕 시절에는 해와 달이 각각 둘씩 있어서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얼어붙어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없었던 때다. 이때에 이미 많은 곡식과 재화를 가진 쉬맹이가 존재한 것이다.
그러므로 쉬맹이가 평범한 인간적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현대까지 남아 있는 탐라신화의 ‘천지왕 본풀이’ 노랫말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신과 인간과 짐승이 서로 말을 나누던 시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이므로….
쉬맹이는 천하 부자다. 그리고 곡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지주이자 오래된 화폐인 쌀을 되로 꾸어주고 말로 받는 고리대금업자다.
한편 쉬맹이를 잡으러 간 일만 군사들. 군사들이 쉬맹이네 집에 도착해보니 짖는 개도 아홉이고, 무는 개도 아홉이고, 차는 말도 아홉이고, 찌르는 소도 아홉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 군사들이 천지왕에게 돌아와 “쉬맹이네 집에 조금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고 이르니, 천지왕은 그만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천지왕은 직접 쉬맹이를 처벌하려고 달려갔다.
그러나 쉬맹이네 집 어귀에 도착하자마자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달려들어 물려는 개들이 있는가 하면 말들은 발길질을 하고 소들은 뿔로 받으려 했다.
쉬맹이네 대문도 두드려보지 못한 천지왕은 올래 밖 멀구슬나무 가지 위에 올라앉아 군사들에게 열두 가지 흉험을 내리도록 했다. >>
하늘땅의 신인 천지왕이 ‘물고 차고 받아버리는 개와 말과 소’ 때문에 인간세상의 쉬맹이네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은 오늘날의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여 쉬맹이나 쉬맹이네 집을 지키는 짐승을 구태여 ‘신적인 존재’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아직 신에게 권위가 없었던, 인간과 짐승과 신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던 시절, 거꾸로 신화시대의 인간은 오히려 오늘의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 재미있다.
<< 쉬맹이네 부엌에는 갑자기 개미 떼가 덮쳐서 들끓기 시작했다. 여자 하인이 놀라서,
“솥 앞으로 개미가 무수히 기어다닙니다.”
“그게 뭐 대수냐? 아무것도 아니다.”
이번에는 갑자기 집이 폐가가 되어 습기가 차고 용달버섯이 무수히 생겨났다.
“솥 뒤에 용달버섯이 났습니다.”
“허허, 반찬이 떨어져가니 초기버섯 대신 용달버섯이 나는구나. 그건 흉험이 아니다. 볶아 반찬으로 만들어라.”
쉬맹이 기세가 꺾이지 않으니 천지왕은 ‘큰 솥아! 걸어다녀라!’고 말했다.
“큰 솥이 밖에 나가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부잣집에서 매일 불을 때놓으니 더위 먹어 식히러 나갔을 것이다.”
쉬맹이가 끄떡도 하지 않자 천지왕은 가축들을 미쳐 날뛰게 했다.
“황소가 지붕 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부잣집에서 잘 먹이니 힘이 넘치는 모양이구나.” >>
천지왕이 쉬맹이에게 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주는 열두 가지 흉험 가운데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솥 앞의 개미 떼다. 제주도에서는 부엌에 개미가 꼬이는 것을 아주 나쁜 징조로 여긴다. 두 번째로 나타난 용달버섯은 폐가를 상징한다. 용달버섯은 습기가 많이 차고 썩은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 아무리 흉험을 내려봐도 끄떡을 않으니 천지왕은 급기야 쉬맹이의 머리에 무쇠철망을 씌워버렸다.
“아이구, 머리야. 아이구, 머리야. 큰아들아, 도끼를 가져와 내 머리를 찍어라! 머리가 아파 못살겠구나!”
쉬맹이는 아들들에게 도끼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치라고 말했으나 아무도 감히 그리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종년을 불러 명령을 하니, 종년은 차마 주인의 머리를 찍지는 못하고 옆에 있는 대문의 문지방을 내리찍었다.
한편 올래 밖 멀구슬나무 가지 위에 올라앉아 이 광경을 내려다보던 천지왕은 도끼를 찍는 서슬에 놀라 혹시나 부수어질까봐 엉겁결에 무쇠철망을 확 거두어버렸다.
그러자 쉬맹이의 아픈 머리가 그만 다 나아버렸다.
천지왕은 끝내 쉬맹이를 잡지 못하고는 하릴없이 바구왕 집으로 가는구나. >>
아! 얼마나 허망할까? 하늘땅신으로서, 인간 하나도 어찌할 수 없는 천지왕이여!
이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하릴없이 바구왕 집으로 가는구나.’ 그렇다. 신이라고 별수 있간? 어디서? 부자 앞에서, 쌀(돈) 앞에서…. 아니, 돈을 향한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과 타락과 투쟁에는 신도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냉엄한 현실이므로. 탐라신화의 첫 장을 여는 우리 천지왕 이야기는 이렇게 신화적 리얼리즘의 지평을 보여준다.
현실에 패한 신이 찾는 곳은 어딜까? 신도 인간과 마찬가지라고 옛사람들은 생각했다.
우리를 끝까지 지지해주는 버팀목. 그게 사랑이 아닐까?
천생배필 맺고 달콤한 5일 밤
<< 바구왕 집에 머무른 천지왕이 그날 밤 바구왕을 보고 “발이 시려 잠을 못 자겠소! 딸을 내 방으로 보내주시오!” 하니 바구왕은 대답을 안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긴 한숨, 짧은 한숨을 쉬며 걱정한다.
“지금까지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내놓으라 하는 대로 내어 주었거늘, 하룻밤 자고 갈 손님이 나의 하나밖에 없는 딸을 달라고 하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으랴!”
바구왕이 대성통곡하자 총명 아기씨가 바구왕에게 묻기를,
“아버님, 무슨 일이에요?”
“저 방에 온 손이 너를 자기 방에 보내라 하는구나.”
“내 나이 이미 열여섯 아닙니까? 저 방에 온 손님은 천지왕이에요. 천지왕보다 더한 사위를 얻을 수 있겠어요?”
바구왕이 하릴없이,
“그러면 단장하고 천지왕을 잘 모시라”고 하였다.
총명 아기씨가 단장하고 천지왕 방으로 들어가니 천지왕이 말하기를,
“나비가 꽃을 찾을 건데 꽃이 나비를 찾는구나.”
그리하여 그날 밤부터 천지왕은 총명 아기씨와 천생배필을 맺고 달콤한 5일 밤을 보낸다. >>
아, 그러나 이 불행한 돈 세상을 어찌 그냥 두고 볼 수 있으리오. 신의 이름이라도 빌려서 불벼락을 내리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신녀들이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해두었다. 천지왕이 벼락장군 우레장군을 불러서 쉬맹이네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리는 내용의 다른 본을 소개한다. 천지왕이 무쇠철망을 걷고 난 다음부터 이야기는 계속된다.
<< 천지왕은 하는 수 없이 화덕진군 해명이를 불러 사람의 모양으로 변장하고 쉬맹이네 집으로 가게 했다.
“곡식과 옷을 준비하여 일 년 동안 밖에서 생활할 각오로 바람 위로 피난하라”고 말했다.
“대궐 같은 집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이오?” 쉬맹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면 칠대에 걸쳐 쌓은 재산을 모두 거두어가겠다. 불경한 죄를 단 한 번에 깨닫도록 하겠다.”
끝내 쉬맹이가 반성하지 않자 천지왕은 벼락장군, 우레장군을 불러들인다.
“당장 벼락장군을 내보내라! 벼락사자를 내보내라! 우레장군을 내보내라! 우레사자를 내보내라! 화덕진군, 화덕장군을 내보내라!”
궁궐 같은 쉬맹이네 집은 삽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천지왕은 불탄 자리에 사람이 죽어 있으니 그 원혼을 위로하는 굿을 했다. 쉬맹이의 딸들은 꺾어진 숫가락을 하나 엉덩이에 꽂아서 팥벌레로 환생시키고, 쉬맹이의 아들들은 마소를 굶겼으니 똥소로기(솔개의 일종)로 환생시켜 비온 뒤에 꼬부라진 주둥이로 날개에 묻은 물을 핥아먹도록 하였다. >>
탐라신화 ‘천지왕본풀이’의 주인공은 사실상 천지왕(天地王)이라고 할 수가 없다. 쉬멩이와 싸운 것과 소별왕, 대별왕을 낳은 것 이외에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 아마도 천지왕 이야기가 많이 사라져버린 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이야기 후반부의 주인공은 오히려 소별왕과 대별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소별왕이 어떻게 이승을 차지했는지가 이야기의 주요 줄거리다.
천지왕은 하늘땅신의 이름이다. 옛사람들은 신들의 세계에도 ‘왕’ 혹은 ‘대왕’이 있다고 생각했다. 소별왕, 대별왕 할 때 ‘별왕(別王)’은 무슨 뜻일까? 별왕은 ‘별대왕(別大王)’이라고도 하는데, 무언가 큰일을 하는 ‘특별한 왕’이라는 뜻이다. 즉 하늘땅신을 이어 해와 달을 관장하고 이승과 저승을 맡아 다스리는 큰일을 하는 특별한 대왕이라는 뜻이다.
쉬멩이와의 싸움에서 진 천지왕이 총명왕총명부인을 만나는 데서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두 별왕의 본메본짱(신표)
천지왕과 총명왕총명부인은 천생배필이 된 날 밤 이후 5일 밤을 함께 지낸다. 그 마지막날 밤, 그러니까 천지왕이 떠나기 전날 밤이다. 천지왕이 벽장 쪽으로 돌아누우면서 ‘후’ 하고 한숨을 쉰다. 총명왕총명부인이 한숨소리를 듣고는 “인간세상에 내려와서 인간과 밤을 지내니 답답합니까?” 한다.
왠지 떠나는 님이 야속해서 투정 부리는 듯한 말투다.
“아니오. 내가 아들 형제를 당신 몸에 두고 가건만 누구도 이 아이들을 천지왕 아들이라고 크게 생각해주지 않을 듯해 그럽니다.”
혼돈의 시대에는 하늘땅신에게 별로 권위가 없었나 보다. ‘절대자’로서의 하늘땅신의 ‘말씀’을 기대하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아들이 솟아나거들랑 큰아들을 대별왕, 작은아들을 소별왕이라 하고, 딸 형제가 솟아나게 되면 큰딸은 대별데기, 작은딸은 소별데기라고 불러주시오.”
천지왕은 총명왕총명부인에게 본메본짱(신표·信標)으로 박씨 한 알과 용얼래기 한 쪽을 주고는 옥황으로 올라가버렸다.
총명왕총명부인은 천지왕과 천생배필의 연을 맺은 뒤, 아홉 달 열 달 차자 아들 형제를 낳았다. 큰아들은 대별왕, 작은아들은 소별왕으로 이름지었다. 보통 인간세계 왕들의 이름은 그가 죽고 나서 그 업적을 기려서 짓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소별왕, 대별왕은 신들의 왕으로서 날 때부터 ‘특별한 왕’이었던 것이다.
총명왕총명부인이 아들들을 기르는데 나이가 세 살이 되니 기는 것도 글발이요, 우는 것도 글소리라. 나이 일곱 살이 되니 글 한 자를 가르치면 열 자를 깨닫는다. 삼천 선비 서당에 글공부 활공부 하라 보냈는데 하도 글이 좋아서 다른 선비들이 시기하여, “밤 공다리 생긴 거여? 아니면 낮 간나이 낳은 거여?” 하며 놀린다. ‘아비 없는 호로자식’이라고 욕을 먹은 별왕 형제는 집에 와서 어미에게 줄기차게 묻는다.
“우리 아버지가 누구예요? 네? 어서 찾아줘요.”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지아비 이야기를 하는 지어미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혼을 하고 혼자 사는 여성도 아니고…. 아이를 키우면서 평생을 기다리는 어미여! 속으로 흐르는 피눈물을 아이들에게 보일 수야 없겠지.
“옥황상제 천지왕이 너희들 아버지란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본메본짱도 아니 두고 갔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왜 아니 두고 갔겠느냐! 박씨 한 알 하고 용얼래기 한 쪽을 두고 갔지.”
“그럼 이리 내어놓아요. 보게!”
총명왕총명부인이 아들들에게 본메본짱을 내어준다. 어미는 아이들이 한 번 떠나고 나면 끝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는다.
이것이 소별왕 신화의 출발점이다. 별왕 형제는 아비가 남긴 본메본짱인 ‘박씨 한 알과 용얼래기 한 쪽’으로 하늘로 가는 길을 연다.
우주나무 박나무 박줄을 타고
<< 이월에 나서 첫 돼지날이 되자 형제가 옛돌 아래 박씨 한 알을 심는다. 이윽고 칠월이 되어 첫 돼지날에 흙을 북돋아주고 그 박이 줄을 뻗으니, 높은 상공을 향해 이 가지 저 가지를 넘어가다가 박줄을 타고 옥황으로 올라간다. >>
단군신화에서 ‘쑥과 마늘’이 신으로의 변신을 보증하는 매개체이듯이, 여기서는 ‘박씨 한 알’이 그러하다. 이것이 없이는 신으로 변신하지 못한다. 물론 여기 나오는 ‘박줄’은 박의 덩굴로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우주나무다.
박의 덩굴이 하늘까지? 재미있는 발상이다.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분명 박 덩굴일 것이라는 것은 옛 농부의 상상력 아닌가? 게으름뱅이 잭이 하룻밤 사이에 하늘까지 자란 콩나무를 타고 하늘나라에 올라갔다는 영국의 동화도 같은 종류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상상력으로 지붕 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박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는 시골마을의 초가집을 그려서는 안 된다. 신화는 신화로 읽어야 한다. 하늘나라를 올라갈 정도라면 얼마나 클까 이미지로 그려보시라. 미리내(은하수)를 옆에 끼고 우주를 가로질러 가야 하니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무처럼 생긴 것이니까 나무라고 하되, 그냥 나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우주나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우주나무가 쓰러지지 않으려면 얼마나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할까? 여러분의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북유럽신화에는 우주를 떠받들고 있는 위그드라실이라는 거대한 물푸레나무가 등장한다. 우주나무가 뿌리내리고 자란 곳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두 별왕 형제가 박씨를 심은 ‘옛돌 아래’가 우주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물론 두 형제가 ‘어마어마한’ 박줄을 이 가지 저 가지 타고 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닐 터다. 그야말로 신화적 상상력으로 읽을 수밖에! 그 ‘줄타기’는 인간이 신으로 변신하기 위한 통과의례가 아닐까 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드는, 죽음과 삶을 초월하는 줄타기일 테니까….
<< 두 형제가 천신만고 끝에 옥황에 오르고 보니, 이 가지 저 가지 타고 오르던 박줄이 아비가 타는 용상 뿔에 감겼구나.
그런데, 아뿔싸! 아비는 없고 용상만 있도다.
별왕 형제 둘이 용상을 타네.
“이 용상아, 저 용상아, 임자 모르는 용상이로구나!”
별왕 형제 둘이 용상을 돌며 소리를 내울린다. 눈꼬리를 위로 치켜올리고 봉의 눈처럼 붉은 눈을 부릅뜨고, 굳센 팔뚝으로 단단하기가 구리나 돌 같은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를 내울린다.
“이 용상아, 저 용상아, 임자 모르는 용상이로구나!”
별왕 형제가 용상 옆을 지나가며 소리를 내울리다가 용상의 왼뿔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이때를 기억하기 위해 왼뿔 없는 용상의 전통이 땅으로 내려와 전해 내려오는구나. 그때 생긴 법으로 우리 나랏님도 왼뿔 없는 용상을 타게 마련이라네. >>
하늘에는 하늘신이 없다
얼마나 극적인 상황인가? 하늘에 올라갔더니 하늘신이 없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소별왕신화에서 이 이야기마디를 새롭게 읽어내면서 난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창으로 희미하게 스며드는 새벽빛을 받으며 작업실을 수십 번이나 빙빙 돌며 생각에 잠겼었다. 도대체 이 상황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비 없음’인가 ‘하늘신 없음’인가?
자, 이야기를 더 따라가보자.
<< 이때는 인간세상에 해도 둘, 달도 둘이라 햇빛 둘이 비추어서 인생이 타 죽고, 달빛 둘이 비추어서 인생이 시려 죽는다. 인간들이 더 이상 살 수가 없었다. 두 별왕이 천근의 무쇠화살과 백근의 활을 둘러메고 해와 달을 쏘아 떨어뜨리러 간다.
대별왕은 정동활 미남의 화살 게우 화살을 물려다가 앞에 오는 햇님 하나 섬기고, 뒤에 오는 햇님 하나 쏘아 맞혀서 동쪽 바다 진도밧처 돋아오는 동산새별을 만들고, 소별왕은 흑개구리 가래 박은 곱은 화살을 오니잠쑥 물려다가 앞에 오는 달 하나 섬겨두고 뒤의 달은 맞혀서 서쪽 바다 진도밧처어가는 어시렁별을 만든다.
드디어 천공에 해가 하나 나고 지하공에는 달이 하나 나서 오늘의 세상이 밝아졌다. 그 법으로 해는 하나 동방으로 뜨오욥고, 달은 하나 서방으로 지는 법, ‘법 중의 법’을 마련하였다.
그러고는 두 별왕이 이승법과 저승법을 마련할 때,
“이리 오시오. 우리 형제가 이승법, 저승법을 차지하게 마련하지요.”
“어서 걸랑 그리 해라.” >>
두 별왕은 아비가 없는데도 아비를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해와 달을 조정하고 이승과 저승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에 바로 착수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장 의문이 든다. 두 별왕이 아비를 찾아 하늘로 올라온 것이 아니란 말인가?
신녀가 이 부분에서 중요한 이야기마디를 빠뜨리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두 별왕은 아비를 찾아온 것이 아니고, 세상의 혼돈을 바로잡기 위해 천지왕을 만나러 온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 부분에서 ‘아버지의 부재’와 같은 정신분석학적인 잣대를 들이댈 일이 아니다. ‘아비 없음’이 아니라 ‘하늘신 없음’이 중요한 측면인 셈이다.
이 시점에서 이야기를 되새겨보자. 원래 천지왕이 총명왕총명부인한테 와서 서로 결연하여 대별왕과 소별왕을 낳은 것은 그 두 별왕으로 하여금 세상의 혼돈을 바로잡게 하기 위해서다. 천지왕이 해와 달을 삼키는 태몽을 꾸고서 총명왕총명부인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대별왕과 소별왕이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두 별왕은 신이 되어 천지왕도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두 별왕이 옥황에 도착해서 천지왕이 없는 것을 보고, “이 용상아, 저 용상아, 임자 모르는 용상이로구나!” 하고 소리를 내지른 이유가 보다 분명해지지 않는가?
그것은 결단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해와 달을 조정한다는 엄청난 일에 도전하기 위한 목소리였던 것이다. 귀신을 부르면 생인이 대답하고 생인을 부르면 귀신이 대답하며, 인간이 가지나무에 목매어 죽고 접시 물에 빠져 죽고, 나무와 돌과 풀과 새가 말을 하는, 극에 달한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용기를 내는 소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봉의 눈을 치뜨고 팔뚝에 힘을 넣어가며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 스스로에게 소리를 ‘내울리는’ 것이다. 물론 그 소리를 옥황에 있는 모든 신들이 다 들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옥황의 모든 군사들이 다 들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다. 용상의 임자는 바로 두 형제였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지르는 소리였던 것이다.
하늘에 하늘신이 없다는 것은 ‘용상의 비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비 없음’은 옥황 쟁탈전의 흔적일 수도 있다.
우리 신화에서는 옥황 쟁탈전의 원인과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야기마디가 모두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비의 권력을 빼앗는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유교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아비와 아들 사이인 천지왕과 두 별왕의 권력투쟁은 그래서 묻혀버렸을 수도 있다. 천지왕은 그리스신화의 크로노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의 주신(主神) 제우스의 아버지)처럼 어딘가에 유폐되었거나 아니면 천하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쉬멩이와의 싸움에서 져서 사라졌든가! 아니, 늘 그렇듯이 신들의 세상에조차 염증을 느껴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을 수도 있다. 탐라신화, 고려신화에서 창세의 여신 마고가 사라져갔듯이 하늘땅신인 천지왕도 사라져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신 없음’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임자 모르는 용상
용상의 왼뿔을 부러뜨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왼뿔 없는 용상을 타는 전통이 생겼다는 것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용상의 임자를 몰랐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인가? 임자가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인가? 아니다. 용상에 오른 결단을 기억하라는 뜻이리라.
한편, ‘임자 없는 용상’이 아니라 ‘임자 모르는 용상’이라고 한 말도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다. 아직은 임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영원히 모를 수는 없으므로, 그것은 용상을 둘러싼 소별왕과 대별왕의 싸움을 예고한다
제대로 된 수수께끼는 ‘앉으면 커지고 서면 작아지는 것’처럼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빗대어서 표현하여 그 사물의 뜻이나 이름을 알아맞히는 말놀이다. 그래서 알 듯 말 듯하여 바로 맞힐 수 없다는 점이 수수께끼의 묘미이기도 하다. 그 ‘빗댐’이 기발하여 의표를 찌르거나 상상력을 넓고 깊게 자극할수록 재미있는 수수께끼가 된다.
그런데 ‘이승 차지’라는 우주적인 과제를 놓고 대결을 벌이는 소별왕 수수께끼를 보고 필자는 무척 당황했다. ‘앉으면 커지고 서면 작아지는 것은?’ ‘천장’ 하듯 정답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디를 찾아봐도, 이 수수께끼를 해설해놓은 게 없다. 소별왕 수수께끼와 씨름하느라고 또 밤을 새운다. 지난번에는 소별왕의 ‘용상’을 놓고 밤을 새웠는데…. 소별왕의 신명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라야 제대로 만날 수 있나 보다.
상고대인 과학과 철학의 게임
<< “옵서, 우리 형제가 이승법 저승법 차지하게 마련하지요.”
“어서 그걸랑 그리 해라.”
이승법 저승법 마련하고자 하는데 설운 형님도 이승법을 들고자 하고, 설운 동생도 이승법을 들고자 할 때, “옵서, 우리 수수께끼나 해서 이기는 자가 이승법을 차지하고 지는 자가 저승법을 차지하게 하면 어떨까요?”
“어서 그걸랑 그리 해라.”
드디어 소별왕이 대별왕에게 수수께끼를 내놓는다.
“속이 여문 나무가 겨울이며 여름이며 잎이 삽니까, 속이 빈 나무가 겨울이며 여름이며 잎이 삽니까?”
수수께끼 내기에 천하가 걸렸다. 자못 긴장할 수밖에 없다.
“어디 보자. 어떻게 하여 그리 된다는 말이냐?”
대별왕이 답을 생각하느라 뜸을 들인다. 속이 여문 나무냐, 속이 빈 나무냐.
“속이 여물어야 겨울이며 여름이며 잎이 산다.”
대별왕의 답을 듣고는 소별왕이 곧바로 반박한다.
“그런데 왜 대나무 마디는 속이 비었는데도 겨울이며 여름이며 잎이 파랗게 돋습니까?”
아차! 대나무가 있었군.
소별왕이 신이 났다.
“형님이 저승으로 가야겠습니다.”
대별왕은 수수께끼에서 졌으니 저승을 차지하라는 아우의 말에 눈만 멀뚱멀뚱 아무런 반응이 없다. >>
수수께끼라! 수수께끼에 천하를 건다. 이승과 저승을 놓고 겨루는 수단이 힘이 아니라 지혜 다툼이라는 것이 재미있지 않은가? 그 다툼이 수수께끼 놀이라는 것이 신화답다는 생각이 든다.
수수께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이 소별왕 수수께끼에 담긴 의문은 ‘생명 현상 그 자체’다. 나무의 속이 여물었느냐 비었느냐는 언뜻 단순하게 보이는 질문이지만, 그것이 잎의 나고 짐과 연관됨으로써 그 본질에 가 닿는다. 처음에는 대나무냐 동백나무냐 하는 식으로 나무의 형상을 놓고 여물었느냐 비었느냐며 이야기를 시작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수수께끼를 풀려면 더 깊이 연구할 수밖에 없다. 질문에 대한 첫 답변을 정(正)이라고 놓으면, 반문은 반(反)이다. 무언가 미진하지 않은가? 독자들이 스스로 합(合)을 도출해야만 할 것 같다. 독자들이 참여함으로써 정-반-합의 변증적인 논리구조와 닮아간다. 가설을 놓고 논리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 아닌가?
자, 공룡의 3대 수수께끼와 비교해보자. 첫 번째 수수께끼는 공룡이 자신의 거대한 몸을 어떻게 지탱했을까 하는 점이다. 예전의 가설은 공룡이 수중에서 생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설은 오래가지 못했다. 범죄 현장에 남은 발자국으로 범인을 추적하듯, 공룡의 발자국은 공룡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 발자국을 연구해서 공룡이 물에서 살았다는 수중생활설을 뒤집었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공룡이 온혈동물인가 하는 것이다. 겉보기에 공룡은 냉혈동물 파충류로 보이지만, 파충류로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세 번째 수수께끼는 새가 공룡의 자손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다. 시조새를 매개로 새가 공룡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사실이 마치 정설처럼 이야기되어왔다. 그러나 이 정설은 깨졌다. 이 수수께끼들은 더 많은 화석을 연구하다 보면 하나씩 풀릴 것이다.
수수께끼는 비교하는 형상을 매개로 하여 숨어 있는 세계의 문을 두드린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계를 응시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의 형상은 지극히 피상적이다. 겉을 보는 것만으로는 이 세계를 다 알 수 없다. 가만히 있던 산이 어느 순간 대폭발하며 지각 변동을 일으킬지 모른다. 우리의 세계상을 불쑥불쑥 부숴버리곤 하는 세계의 깊은 이면을 볼 수 없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작은 것인가? 얼마나 피상적이며 찰나적인 것에 불과한가?
수수께끼는 형상 속에 숨어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세계의 문을 열고자 하는 자들의 놀이다. 믿음과 불안이 교차하는 심리적 떨림, 초조와 긴장! 그래서 ‘놀이’다.
우주의 문 여는 신비로운 암호
이 수수께끼는 나무들을 ‘관찰’하고 여름과 겨울을 ‘관찰’하는 데서 나온다. 관찰은 과학을 전제로 이뤄진다. 또한 이 수수께끼는 대나무와 동백나무를 ‘구별’하고 여름과 겨울을 ‘구별’하는 데서 나온다. 또한 서로 ‘비교’한다. 그리고 ‘추론’한다. 그것은 과학의 출발점이다. 이 소별왕 수수께끼는 불완전하지만 상고대인들이 발견한 최고의 과학과 철학 게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수수께끼에서 세계를 향한 상고대인들의 도전과 모험의 기록을 읽는다.
수수께끼로 건져 올린 ‘은유’들은 세계와 우주의 문을 여는 신비로운 암호다. 그것들은 끝없는 질문을 담고 우리 앞에 던져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답이 없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대별왕이 한 번 틀렸어도 계속 틀리란 법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별왕이 이겼으되 다 이겼다고 할 수도 없다. 소별왕이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기록에서는 소별왕의 반문으로 수수께끼의 대결이 끝나지 않는다. 반문에 대한 답변이 또 전개된다.
<< 문제 : 무슨 일로 어떤 나뭇잎이 이삼사월 녹음방초에 꽃과 잎이 번성했다가 구시월 설한풍을 당하면, 어떤 나뭇잎은 떨어지고 어떤 나뭇잎은 떨어지지 않습니까? 춘하추동 사시절에 잎이 번성하는 나무는 어떤 나무입니까?
답변 : 속이 빈 나무는 잎이 지고 속이 여문 나무는 잎이 지지 아니하니 춘하추동 사시절에 잎이 번성하느니라.
반문 : 어찌 왕대 죽대 자죽대는 속이 댕댕 비었으되 춘하추동 사시절에 잎이 지지 않고 새 속잎이 납니까?
반문에 대한 답변 : 왕대 죽대 자죽대는 속은 댕댕 비었으되 마디마디가 더욱더 맺어지니 잎이 지지 않느니라. >>
물론 질문과 반문은 소별왕이 하는 말이고, 답변은 대별왕의 것이다. 이제 결말도 달라진다. 새로운 가설을 세워 답변을 낸 대별왕이 수수께끼 다툼에서 이긴 것이다. 새로운 정-반-합의 변증법적 논리 순환이 시작되고 있다. 정말 ‘열려 있는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상상력 훈련 ‘브레인스토밍’
자, 다시 원래의 기록으로 돌아가자. 소별왕이 “형님이 수수께끼에서 지셨으니 저승으로 가십시오”라고 하는데도 대별왕이 눈만 멀뚱멀뚱한 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처럼 보인다. 아직 소별왕이 이긴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 소별왕이 대별왕의 미적지근한 태도를 눈치채고 또 다른 수수께끼를 제안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다른 수수께끼를 한 번 더 해봐서 지는 쪽이 저승으로 가기로 하죠.”
이번에도 소별왕이 도전적으로 먼저 나섰다.
“어찌하여 높은 동산의 풀은 매가 바뜨고 깊은 굴렁의 풀은 건주장단하나이까?”
별로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대별왕이 곧바로 대답하기를, “큰비가 수천리에 내리면 물이 동산 위에서 굴렁으로 씻어 내리우니 깊은 굴렁의 풀은 건주장단하고 동산 위의 풀은 매바뜨느니라.”
소별왕이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단숨에 반박한다.
“그러면 왜 사람은 머리가 높아도 머리털이 쉰댓 자나 까맣게 나고 발등에는 한 가닥의 털도 나지 않습니까? 형님이 수수께끼에서 지셨습니다. 이제는 정말 형님이 저승으로 가야겠습니다.”
대별왕은 수수께끼에서 아우한테 졌으나 여전히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다. >>
이번에는 ‘빗댐’이 너무 지나쳐서, 난센스 수수께끼처럼 되었다. 왜 이렇게 멀리 난센스로까지 나아갔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디에서 출발했든 간에 생명의 신비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유는 당연히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난센스 수수께끼처럼 우리도 한번 훌쩍 뛰어넘어서 말해보자. 나무와 풀과 인간이 모두 똑같은 생명 원리를 갖고 있다는 인식을 갑작스레 드러내고 있다고나 할까?
그러나 난센스 수수께끼라 하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소는?’ 같은 난센스 퀴즈는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소? ‘미소’다. 정답이 있다. 그러나 소별왕의 수수께끼에는 정답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물론 단답형이 아니다. 두 번째 수수께끼도 ‘열려’ 있다. 난센스처럼 보이지만 ‘빗댐’이라는 수수께끼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한히 계속되는 질문과 답변, 혹은 반문과 반문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고리’를 갖고 있다. 다른 기록에 나오는 대별왕의 답변을 들어보자.
<< “인간세상의 백성으로 말하자면, 삼신할머님이 자손을 내올 때 일곱 달에 남녀를 구별하고 아홉 달 열 달 만삭을 다 채우느니라. 아이가 머리끝을 먼저 아래로 들이밀어서 오늘 세상에 나오니 허리 위의 두상에 쉰댓 자 머리가 나고 발등에 털은 매가 바뜨느니라.” >>
자, 여기에 반문과 답변과 반문에 대한 반문이 또 이어진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은 생산보다 서비스의 비중이 더 커진 사회, 상상과 실재가 구별되지 않는 세계인 오늘날의 상상력 훈련, 브레인스토밍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보다 분명한 것은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이승을 차지할 수 없다는 조건이다. 이 수수께끼는 이승을 차지한 신의 지혜와 능력을 보여주는 신화의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말놀이기도 하지만, 또한 놀이 이상의 상징과 현실을 보여준다. 예컨대 유리는 ‘일곱 모가 난 돌 위의 소나무’ 밑에 숨겨진 반쪽의 칼을 찾아내야 아들을 증명하는 본메본짱으로 아버지 동명왕을 찾아갈 수 있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수수께끼에서 알은 무엇인가? ‘소나무’의 은유다. ‘소나무’ 뒤에다 무엇을 숨겨놓았을까? 그것은 ‘기둥’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돌’은 ‘주춧돌’이 된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왕이 된 것도 마찬가지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점심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알은 아침 점심 저녁이 숨겨놓은 상징을 찾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와 청년과 노인이었다. 그래서 답은 ‘인간’이었다. 그 한마디에 오이디푸스의 운명이 달라졌다.
물론 우리 신화 소별왕 수수께끼에는 이와 같이 딱 맞아떨어지는 정답이 없다. 단답형이 아니다. 그래서 이 수수께끼 놀이만으로 이승 차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당연히 또 다른 시합이 필요하다.
소별왕과 대별왕의 꽃피우기 시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을 기대해도 좋다. 수수께끼로 생명의 속성에 대한 지혜 다툼을 벌였으나 이승을 차지할 주인공은 결정되지 않았다. 바야흐로 두 별왕 형제는 꽃피우기 시합에서 생명력 그 자체를 놓고 대결을 벌일 것이다.
소별왕의 나무 수수께끼 가설 및 그 검증과정은 공룡 수수께끼 가설 및 그 검증과정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둘 다 ‘생명의 신비’를 파헤치려고 한다. 그 점에서 같다. 나무 수수께끼의 가설과 공룡 수수께끼의 가설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공룡 수수께끼는 상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인류의 모든 사유와 과학의 힘으로 지금도 풀어나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현대과학의 영역에 위치한다. 소별왕의 나무 수수께끼는 상고대 사유의 일단을 드러내는 수수께끼 그 자체로 신화의 영역에 위치한다. 그래서 생명 현상에 대한 ‘은유’로서만 자신의 역할이 한정되어 있다. 그것이 두 수수께끼의 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소별왕의 나무 수수께끼는 상고대 사유의 일단을 드러내 보여준다. 수수께끼 그 자체가 상고대 사유의 방법론이 아니었을까? 거꾸로 생각해보자. 우주와 생명의 신비의 문을 여는 과학은 현대 신화가 아닐까?
소별왕과 대별왕 가운데 누가 이승을 차지할 것인가? 두 별왕은 수수께끼를 주거니 받거니 했지만 승패를 가릴 만한 결정적인 판이 없었다. 어느 누구가 당장 졌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승복하기는 어려운 ‘탐구형’ 수수께끼이자 ‘진행형’ 수수께끼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 이 수수께끼 내기를 노래로 전하는 신녀마다 결과를 서로 다르게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쯤 되자 소별왕이 드디어 승패를 가릴 수 있는 결정적인 내기 한 판을 제안한다.
이승 주인 걸고 꽃 피우기 내기
<< “좋습니다. 이번에는 형님과 내가 한방에 누워 모란꽃이 모락모락 피어서 내 무릎에 올라오면 내 세월이요. 형님 무릎에 올라오면 형님 세월이라. 모란꽃을 피우는 편이 이승을 차지하기로 합시다.”
소별왕이 형 대별왕을 이겨 이승을 차지할 궁량을 틀고, 꽃 피우기 내기에 천하를 걸었구나.
대별왕 눈을 뜨고 자는구나. 참잠을 자는구나. 한잠을 푹 자는구나. 소별왕 꾀잠을 자는구나. 반잠을 자는구나. 겉눈은 감고 속눈을 뜨고 자네.
대별왕 무릎 위로 모란꽃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구나. 가지가지 활짝 피어 봉오리를 맺어놓았네. >>
두 별왕의 이승 차지 대결을 놓고 ‘수수께끼’에서 ‘꽃 피우기’로 다툼이 번졌다. 그런데 왜 하필 꽃 피우기 내기였을까? 꽃은 씨앗을 맺으려는 식물이 자신을 나타내는 최고의 표현이다. 벌이나 나비를 유혹하는 향기와 다채로운 색깔과 각각의 다른 모양새, 그리고 곧 지고 말 터이지만 아름다움까지 갖추고 있는 ‘살아 있는 존재 그 자체’다. 또한 그것은 ‘사랑’의 메신저로서 수많은 연인들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꽃은 민족이나 종교에 따라 여러 가지 상징으로 쓰인다. 우리 신화에서는 꽃이 어떤 상징으로 등장할까? 먼저 같은 탐라신화의 ‘할락궁이’ 이야기에 나오는 서천꽃밭으로 가보자.
<< 꽃감관은 할락궁이를 꽃밭으로 데려가서 뼈 오를 꽃, 살 오를 꽃, 피 오를 꽃, 오장육부 기를 꽃, 환생꽃, 웃음꽃, 싸움꽃, 멸망꽃 같은 열 가지 꽃을 주고 다시 세상으로 내려보냈다.
“이 꽃으로 원수를 갚고 어머니를 살려오너라.”
할락궁이가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니 만년장자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죽일 듯이 덤벼들었다.
“죽기 전에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무엇이냐?”
할락궁이가 품속에서 웃음꽃을 꺼내 휘두르니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다시 싸움꽃을 꺼내니 모두 물어뜯으며 싸움을 했다. 마지막으로 멸망꽃을 휘두르니 다 죽고 말았다.
할락궁이는 만년장자의 학대로 죽은 어머니의 뼈를 모아서 일곱 가지 꽃을 꺼내놓고 종나무 회초리로 세 번을 치니 어머니가 부스스 일어났다. >>
정말 놀라운 신통력이 아닐 수 없다. 죽은 사람을 ‘환생’시킬 뿐만 아니라, 뼈와 살도 올리고 피도 돌게 하며 오장육부를 되살려 웃게 만드는 일을 ‘꽃’이 대신하고 있지 않은가? 신이라 하더라도 어느 신이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텐데 말이다.
소별왕과 대별왕이 피우고자 하는 ‘꽃’이 상징하는 바는 바로 ‘생명’이리라. 강릉의 ‘당고마기 노래’는 소별왕과 대별왕의 꽃 피우기 내기를 불교의 석가와 미륵의 내기로 윤색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야기 속의 꽃은 모란꽃에서 ‘은둔 발환화’로 변했으나 그 꽃의 능력이나 상징은 달라지지 않았다.
<< “미륵님 무릎 밑에 세 송이가 피었는데 은둔 발환화가 피었던가배. (중략) 은둔 발환화라는 꽃을 뜯어다가 죽은 사람에게 대고 치쓰다듬고 내리쓰다듬을 것 같으면 사람이 도로 되고 살아난다고 했고 (중략) 참 비상한 불로초 한 가지인 그런 꽃인데….”(박용녀 구연·‘당고마기 노래’·1927) >>
대별왕 잠든 틈 소별왕 꽃 꺾어
우리 신화에 나오는 꽃 피우기야말로 생명활동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두 별왕은 이승을 차지하기 위해 수수께끼로 생명의 속성에 대한 지혜 다툼을 벌이더니 꽃 피우기에서는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능력 자체를 놓고 대결을 벌인 것이다. 꽃 피우기 내기는 모든 삼라만상의 생명을 관장할 자를 판별하려는 한 판 내기였던 것이다.
아니, 그런데 그 모란꽃이 대별왕 무릎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모란꽃이 가지가지 활짝 피어 봉오리를 맺는 게 아닌가!
자, 여기서 소별왕이 ‘이승을 차지하려고 벌이는 궁량’은 무엇일까, 어떤 색깔일까 하는 점이 이야기의 초점이다.
<< 소별왕이 일어나서 대별왕 무릎의 꽃을 살짝 꺾어 자기 앞으로 당겨다 꽂아놓는다. 그러고는 모른 척하며 누워 잔다.
날이 밝아 일어나니, 대별왕 무릎에는 꽃은 없고 꽃뿌리만 있구나. 윗도리 없는 꽃뿌리 눈물이 엉키벙키해 있구나. 소별왕 무릎에는 서리화(뿌리 없는 종이꽃) 한 대 피었구나. 밑뿌리 없는 꽃송이 잎이 시들어가네. >>
아니, 소별왕의 ‘궁량’이라는 것이 다름 아닌 ‘속임수’가 아닌가? ‘귀신과 생인이 합도하여 귀신을 부르면 생인이 대답하고, 생인을 부르면 귀신이 대답하는’ 천지개벽 시대의 대혼돈을 극복하기 위한 ‘궁량’이 한낱 속임수라니!
<< 대별왕은 벌써 눈치를 챈다. 대별왕이 소별왕을 불러서 말하기를,
“네 세월이 되면 도적법이 많겠구나.”
소별왕이 되묻기를,
“어떻게 해서 내 세월이 되면 도적법이 많습니까?”
“괘씸하구나. 내 무릎의 꽃이 걸음을 걸어 너의 무릎으로 갔단 말이냐? 네 욕심이 너무 세구나. 나는 저승 차지하러 가겠노라.”
대별왕이 또 한소리한다.
“내 무릎에 있는 꽃을 네가 훔쳐 너의 무릎에 꽂았으니 네 세월이 되면 뿌리 없는 꽃이 만발하겠구나!”
소별왕이 당혹스러워하며,
“어찌 해서 내 세월이 되면 뿌리 없는 꽃이 만발합니까?”
“내 무릎에는 뿌리가 있고 네 무릎에는 뿌리 없는 꽃이 피었으니 네 세월이 되면 말의 머리마다 소머리 뿔이 났나 보아라.”
“소머리 뿔이 났습니다.”
“설운 동생아, 네 세월이 되면 인간이 좁쌀같이 나고 난 날부터 도적 심사를 품고 나며, 십리에 기생 나고 오리에 과부 나며, 가문마다 역적 나고 가문마다 백정 나며, 물위를 다니는 배도 날고 물속에 사는 게도 날 터이다. 저승법은 주년이라. 참실 같은 법일러라. 한번 가면 다시 올 줄 모르신 법일러라. 나는 저승법을 마련하마. 저승법은 맑고 청랑하리라.” >>
이리하여 대별왕과 소별왕 형제가 갈라서고, 대별왕은 저승을 차지하고 소별왕은 이승을 차지하여 다스린다.
자, 그렇다면 이승을 차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소별왕과 대별왕이 이승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진정한 뜻은 ‘인간 백성 낮에는 볕발에 잦아 죽고 밤엔 얼어 고사 죽고, 가지나무에 목매어 죽고 접시물에 빠져 죽는’ 인간들을 구하고, 또 귀신과 생인을 가르고 세상을 이승과 저승으로 나누어 천지개벽 시대의 ‘대혼돈’에 어떻게 마침표를 찍느냐는 데 있다.
‘귀신과 생인이 합방하여 귀신을 부르면 생인이 대답하고, 생인을 부르면 귀신이 대답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세상, 사람과 귀신이 구별되지 않는 세상, 따라서 사람이 죽지도 못하고 귀신처럼 오래 사는 세상, 더 나아가서 나무와 돌과 모든 푸성귀가 말을 하고 모든 짐승이 말을 하여 사람과 다르지 않은 세상을 표현한 것이다. 사람이 죽지도 못한다는 것은 제대로 살지도 못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소별왕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보고는 ‘인간 도업이 아니로다’ 한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탐라의 심방 고창학은 초감제에서, 두 별왕이 천지왕과 총명왕 총명부인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어디에서인가’ 솟아났다고 노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귀신과 생인을 구별하여 이승과 저승으로 나눠서 보내고 경계를 지어야 비로소 인간세상이 열린다. 지금의 인간 세상이라는 것은 ‘아직’ 없다. 대혼돈 속에 내재해 있을 뿐이다. 이승과 저승도 마찬가지다. 이미 존재하는 이승과 저승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것이 아니다. 이승과 저승도 없던 시절에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다스리고자 ‘솟아난’ 별왕 둘이서 누가 어떻게 만들어 다스릴 것인지를 놓고 경쟁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대왕, 별대왕인 것이다.
그러므로 두 별왕의 경쟁은 인간세상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나 다툼이 아니다. 인간세상을 차지한다는 것은 이승법과 저승법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질서’의 결과일 따름이다.
이 점을 혼동하면 우리 신화의 참된 뜻을 왜곡하게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원본이 사라지고 이본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하는 이본들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소별왕의 속임수는 인간세상을 구하기 위한 ‘큰 속임수’로 해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치졸하기 짝이 없는 그야말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여튼 필자는 여기에서 ‘인간세상을 다시 만들다’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금벌레 은벌레를 내려받아 인간을 창조한 창세의 여신 마고 시대가 지나가고, 천지개벽 시대의 새로운 인간 세상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인간들은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도 있고, 대홍수에 살아남은 인간의 후손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 그때 그 시절에는 새와 말이 말을 하고 나무들이 걸음 걸으며, 까마귀 까치 말살하고 말 머리에 뿔이 나며, 쇠머리에 모래기(갈기) 돋고 닭 머리에 귀가 나며, 개 머리에 볏이 돋는, 그런 시절입니다. …사람이라, 옛날에 생길 적에 어디서 생겼습니까? 천지 암녹산에 가 황토라는 흙을 모다서 남자를 만들어노니 여자 어찌 생산될까? 여자를 만들었습니다.(셍굿, 강춘옥 구연·‘관북지방무가’·1966)
그제야 정신이 든 장길손은 자기를 후대한 남쪽 농민들에게 뭔가 보답하고 싶었다. 그는 한참 생각하다 자기가 토해놓은 백두산에 서서 남쪽 사람들에게 거름이라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줌을 누었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과 달리 홍수가 져서 북쪽 사람들은 남쪽으로 밀려내려가고, 남쪽 사람들은 홍수로 떠내려가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본 사람의 시조가 되었고, 북쪽에서 떠내려온 사람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우리나라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장길손 이야기 중에서·임석재·‘한국의 구전설화’·1993) >>
마고는 하늘로부터 금벌레 은벌레를 내려받아 인간을 만들었지만, 소별왕은 인간세상을 새로 만들었다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소별왕 읽기의 초점이 ‘인세(人世) 차지’가 아니라 ‘인세 창조’라는 데 있다고 감히 생각해본다.
소별왕의 인간세상 창조가 인간 창조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몽골의 부리야트족 신화를 보면 알 수 있다.
<< 옛날에 땅이라는 것은 없고 전체가 큰물로 덮여 있었다. 쉬베게니 보르항, 마이다르 보르항, 에세게 보르항 셋이서 합의하여 세상을 만들기로 하고 물위를 걷고 있었다. 그때 마침 앙가트라는 새가 새끼 열두 마리를 데리고 물위로 떠가고 있었다. 세 보르항이 새에게 이르기를 “너 말이야, 물 밑바닥에 들어가 그곳에서 검정색, 빨간색 흙과 모래를 가져다다오!”라고 했다. 앙가트 새는 세 보르항의 말에 따라 물 밑바닥으로 들어가 검정색 흙, 빨간색 흙과 모래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하여 세 보르항은 앙가트 새가 가져다준 흙과 모래를 물위에 뿌려 땅을 만들고, 그곳에 나무와 식물이 자라나게 했다.
그 다음엔 사람을 만들었다. 사람의 몸은 빨간색 흙으로, 뼈는 흰색 돌로, 피는 물로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세 보르항은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을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이 두 사람에게 어떻게 생명을 불어넣고, 누가 이들을 보살필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다. 그래서 세 보르항은 각각 자기 앞에 그릇을 놓아두고, 누구의 그릇에서 빛이 발하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그들은 각자 앞에 있는 그릇에서 빛이 발하는 보르항이 앞으로 사람을 보살피기로 결정하고 모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쉬베게니 보르항이 맨 먼저 일어나 그릇을 살펴보니 마이다르 보르항 앞에 놓인 그릇에서 빛이 발하고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쉬베게니 보르항은 마이다르 보르항 앞에 있는 그릇을 자기의 그릇과 맞바꿔놓고서는 다시 누워 잠을 잤다. 얼마 있다가 세 명이 모두 잠에서 깨어나 그릇을 살펴보았다. 당연히 쉬베게니 보르항 앞에 있는 그릇에서 꽃이 피어나고 빛이 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쉬베게니 보르항이 사람들을 보살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이다르 보르항은 쉬베게니 보르항의 속임수를 알아차리고 이르기를 “네가 나를 교활하게 속였기 때문에 네가 보살필 사람들 역시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도둑질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
인간세상을 만드는 능력, 창조하는 능력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나누고 이승과 저승을 갈라 새롭게 세상을 창조하는 능력일 것이다. 물론 그 핵심은 ‘꽃 피우기’가 상징하는 ‘삶’의 능력이다.
생명을 기르는 능력, 삼라만상의 생명을 관장할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하는 ‘꽃 피우기’의 능력은 원래 대별왕이 갖고 있던 것이다. 소별왕이 속임수를 써서 그 능력을 훔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이제 우리는 왜 도적이 들끓는 세상에 사는지, 왜 불평등과 차별과 싸우며 살아야 하는지 안다. 우리는 ‘현실’이라는 잣대의 혼탁한 이승법이 다스리는 세상의 기원 신화에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래! 우리는 ‘원칙’이라는 잣대의 맑고 청랑한 법이 다스리는 저승을 향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렷다.
백근에 미치지 못하면 귀신으로 구분해 인간 세상을 창조했다.
<< 하늘 차지 천지왕 땅 차지 총명왕총명부인
저승 차지 대별왕 이승 차지 소별왕
옥황 차지 옥황상제 지황상제
인간 차지 인황상제
산 차지 산신백관 물 차지 사마용신
(박봉춘 구연·<초감제>·1937년·아카마쓰 지세이·아키바 다카시 채록) >>
우리는 이 노랫말을 통해서 우리 신화가 하늘과 땅의 우주 공간과 이승과 저승이라는 삶과 죽음의 시·공간을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옥황과 인간 세상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하늘과 땅을 떼어내어 세상을 창조한 이는 여신 마고였다. 여신 마고는 태초의 혼돈을 끝내고 세상을 열었다. 하늘과 땅의 우주 공간을 연 것이다. 신화 세계에서 여신 마고를 제치고 그 하늘과 땅을 차지한 이는 천지왕과 총명왕총명부인이다.
그때는 “요 하늘엔 낮에는 햇볕이 둘이 뜨고 밤에는 달빛이 둘이 뜰 때, 낮에는 만민 백성 잦아(몹시 더워 말라) 죽고 밤에는 만민 백성 곳아(얼어서 꼿꼿하게 굳어) 시려(추위에 떨어) 죽을” 천지혼합과 개벽의 시절이었다.
하늘에 해가 둘, 달이 둘이던 시절은 우리 신화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마디는 세계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우선 몽고와 퉁구스족.
<< 당시 사방에 네 개의 해가 있었다. 한 사냥꾼이 그중 세 개를 쏘아 떨어뜨렸다. 신은 노하여 그를 마멋 다람쥐가 되게 하였다.(몽고 우르가 부족 신화)
해가 두 개 떠 있어 몹시 더웠다. 어린아이가 죽을 뿐 아니라 인류가 절멸하게 되었다. 젊은이가 정벌 길에 올라 수십 년 후 해를 쏘니 해의 눈이 관통되었다. 해는 젊은이의 옷을 벗겨 피를 씻으며 너희들이 살아가는 것이 해의 덕인데, 그것도 모르고 보은제를 아니 지내므로 아이를 죽였다고 한다. 그 후 다달이 화살 맞은 해에게 제사를 지낸다.(대만 부눈족 신화)
수인(垂仁) 천황 때, 아홉 개의 해가 나타났다. 천문박사는 이를 점쳐서 북단의 해가 참이고 남쪽에 있는 해는 까마귀가 둔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수 8인이 명을 받아 사다리를 걸쳐놓고 올라가서 여덟 개를 쏘아 떨어뜨리니, 모두 까마귀였다. 이는 수인제 18년 2월10일 진시의 일이다.(일본 신화) >>
‘세발까마귀’, 즉 삼족오(三足烏)가 원래 해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잘 알 수 있다. 이는 중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신화에서 모두 다 같다. 활을 쏘아서 떨어뜨린다는 점도 같다.
해와 달이 각각 둘이라는 천지개벽시대의 이야기는 상고대를 살았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단순한 상상력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이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천전리 바위그림에서 ‘외계충격시대’의 신화를 보았다. ‘외계충격시대’에는 작은 떠돌이별과 꼬리별, 그리고 그 잔해가 지구 대기권으로 돌입하여 충돌을 일으키고 우주 먼지가 대량으로 들어와서 지구 대재난이 계속되었다. 하늘에는 어마어마한 불덩어리가 폭발하고 지진이 나고 큰 홍수가 지고 몇몇 문명들이 파괴되어 사라졌다. 우리 상고대 신화의 천지개벽시대는 바로 ‘외계충격시대’의 지구 대재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천지개벽은 여러 번에 걸쳐서 일어났다. 하늘땅은 늘 다시 열렸다. 하늘에 해가 둘, 달이 둘이던 시절도 있었고, 10개의 해 가운데 9개가 떨어지기도 한 시절도 있었다. 떨어지는 해는 물론 꼬리별이나 작은 떠돌이별이었을 것이다. 낮에 떨어지는 꼬리별은 해라고 불렀고, 밤에 떨어지는 작은 떠돌이별은 달이라 불렀다.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그렸던 바위그림의 신화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해와 달이 그냥 떨어질 리 만무하니까, 하늘의 신이나 영웅이 화살로 쏘아 떨어뜨렸다고 믿었던 시대. 천지개벽은 한꺼번에 일어나서 끝났던 게 아니다. 외계충격은 BC 3600년부터 AD 600년까지 한 번에 수백년씩 수차례에 걸쳐서 계속되었던 대재난이었다. 해가 66개, 달이 77개 있었던 시절도 분명 존재했을 터.
<< 옛날 해가 66개 있었다. 한 영웅이 이 불덩이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열을 없애려고 했다. 화살을 가지고 60개를 쏘아 없애고 5개를 바다 속에 묻어버리고 최후의 하나는 눈 하나를 쏘아 없앴다. 또 옛날 달이 77개 있었는데 누군가가 76개를 쏘아 떨어뜨리고 최후의 하나는 발을 쏘아서 불구로 만들어놓았다 한다.(롤로족 신화) >>
해와 달이 떨어지던 시절, 곳아 죽고 잦아 죽던 시절에 사람과 짐승과 귀신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었으랴. 사람이 짐승과 귀신과 구별 없이 함께 섞여 살던 이 천지개벽시대를 끝낸 이는 천지왕이 아니다. 천지왕이 총명왕총명부인과 결연하여 얻은 소별왕 대별왕이었던 것이다.
소별왕은 대별왕과 힘을 합해 해와 달을 하나씩 쏘아 떨어뜨리고 나서 형을 저승에 보내고 자신은 이승으로 내려온다.
<< 대별왕이 저승국을 가니
불쌍한 백성은 불쌍대로 다스리고
원통한 백성은 원통대로 다스리고
가련한 백성은 가련대로 다스리고
정막한 백성은 정막대로 다스리고
죄지은 이는 죄지은 대로 다스리고 하니
법지법이 맑아지며 진옛날에 참씰 같은 법이라.
소별왕이 인간 세상으로 나려와서
화정녀와 남정종을 불러다가 백 근 저울에 저우려봐서, 백 근이 준준이 찬 자는 생인으로 인간 세상에 모두 붙이고. 허궁허천(虛窮虛天) 무기옷이 가던 이, 백 근 못 찬 자는 눈동자 둘 박아서 귀신으로 옥황에 모두 올리니까,
귀신은 눈동자가 둘이니까 저승과 산 사람을 바라보고, 산 사람은 눈동자가 하나뿐이기 때문에 귀신을 못 쳐다본다. >>
소별왕이 백 근을 달아서 인간을 추려냄으로써 귀신과 생인을 가른다. 백 근이라…. 60kg이다. 백 근이 넘는 사람들은 ‘휴’ 하고 한숨을 내쉬어도 좋다. 당시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시라. 아마도 괴물 취급을 당했을 수도 있으니까…. 인간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근수로 구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신화는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원시적인 사유이자 상징적인 사유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인간과 귀신을 구별할 수 있을까?
이때의 무게라는 것은 다름아닌 ‘실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인간의 진정한 실체가 아니다.
생인과 귀신을 이승과 저승으로 나눈 다음 소별왕은 인간의 말을 바로잡는다. 어떻게?
<< 후춧가루 다섯 말 닷 되 칠 새 오리 송피가루 다섯 말 닷 되 빻아서, 구상나무 위의 가지에 도올라서는 갑자기 부는 남풍으로 동서로 삭삭 불어버리니까, 나무 돌 푸싶새들, 까마귀가 혀가 칭칭 저려서 말 못하게 되었구나. 모든 짐승도 말을 몰라, 귀신도 혀를 총총 저려서 말을 몰라 간다.
생인은 말을 종종 일러 인간 세상이 환생 곳에 번성 곳이 되어 천지 도업 제이르자 >>
인간과 짐승, 인간과 귀신 사이에 커뮤니케이션 ‘장벽’을 설치하여 서로 말을 못하도록 한다. 나무, 돌, 푸싶새들, 까마귀 등 모든 짐승이 인간의 말을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귀신과 생인 사이에 말이 통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이승 저승을 가르고 생인 귀신을 나누는 데 성공할 뿐만 아니라 생인이 인간으로 환생하고 번성하도록 인간 세상을 새로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써 이승과 저승이 나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저승에 가지 않고 영원토록 살겠다고 하면 어찌할 것인가?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될 터.
이승과 저승을 나눈다는 것은 곧 인간에게 삶과 죽음을 준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나고 늙고 죽는 존재의 시작과 끝을 정하는 일이며, 그리하여 시간의 시작이자 운행이며, 하늘과 땅이라는 우주 공간으로 확장되는 시·공간의 새로운 질서다.
인간 생명의 시작과 끝은 곧 수명이다. 인간에게 생명을 준다는 뜻은 수명을 주는 것이다. 유한한 존재, 시간에 얽매인 존재로서의 인간인 것이다. 영생을 주는 것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천지왕과 소별왕은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그것은 곧 쉬맹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원토록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 덩어리, 그것이 쉬맹이의 캐릭터다.
쉬맹이는 수명장자(壽命長子)다. ‘수명(壽命)이’에서 쉬맹이 또는 쇠맹이로 변한 것이다. 물론 수명장자로도 부른다. 쉬맹이는 3800년을 살았다고 한다. 쉬맹이는 영원히 살 것처럼 보였다.
<< 쉬맹이는 자기 아버지가 갓 예순이 되자 음식상과 술을 치워버리고 아침에도 죽, 낮에도 죽, 저녁에도 죽, 하루 죽 세 번씩을 먹이기로 한다. 쉬맹이 아버지는 끼니를 들고 온 하님에게 “이거 어떡하느냐? 왜 한 끼니에 죽 한 사발씩만 주느냐? 내 배고파서 못 살겠다.” 하님이 말하되, “주인님 말이 꼭 이처럼만 하라고 합니다.” 쉬맹이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놓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아버지, 사람 한 대가 서른인데 아버진 금년으로 예순, 두 대를 살았으니 너무 살았수다. 아버지가 두 대를 살아도 더 잘 먹을 테면, 죽어서 저승에 가도 끝내 이승에 귀신으로 먹으러 오지 않기로 하면, 죽어 삼년상에 음식상과 술을 놓는 몫으로 잘 대접하겠습니다.” “아, 그리 할 거여!”
“그렇게 하면 아버지는 죽어서 가도 인간 세상에 초하루 보름 명절 때나 기일제사 때 끝내 오지 아니하기로 증서를 쓰십시오.”
아버지가 그리하기로 하고 증서를 쓰니, 쉬맹이는 아버지 죽은 후에 먹는 몫으로 소 잡아놓고 예전처럼 밤참까지 잘 먹이는데…. 예순하나 나는 해에 막 먹고 난 뒷날에 그만 황천길로 떠났구나. >>
사람이 한 대, 30년 정도를 사는데 두 대를 살았으니 너무 살았다고? 이 노랫말로 미루어봐서 옛날에는 인간의 수명이 30세 정도였나 보다. 근대에 들어와서야 평균 수명이 45.5세가 되었으니, 상고대에 60세까지 살았다면 대단히 오래 산 것이다. 하물며 3800년을 산 쉬맹이야 말할 것도 없다.
쉬맹이는 ‘최초로 신에게 도전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무엇으로? 수명으로. 3800년을 산 쉬맹이는 이승과 저승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간임이 분명했다. 천지왕에게 들으란 듯이 “이 세상에 나를 당할 자 누가 있으랴?”라며 호언장담을 하는 쉬맹이를 그냥 두고서는 이승과 저승을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렷다.
천지왕이 쉬맹이를 징치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쉬맹이가 아버지에게 효도하지 않았다든지 고리대로 민중을 착취했다든지 하는 것은 명분에 불과하다.
천지왕은 쉬맹이를 징치하는 데 실패한다. 그것은 이승과 저승을 나누고 귀신과 생인을 갈라서 인간 세상을 창조한 소별왕의 몫이었던 것이다.
<< 인간 세상을 맡은 소별왕은 신하와 군사들을 불러모아 왕의 권위를 갖춘 다음 곧바로 쉬맹이를 붙들어 꿇렸다.
“네 이놈! 네놈은 천지왕의 가르침을 받고도 나쁜 짓을 계속하고 있으니 용서할 수 없다. 여봐라, 당장 이놈을 능지처참해라.”
엄명을 받은 군사들이 쉬맹이를 능지처참하고 그 뼈와 살을 빻아 허공에 날려 보냈다. 쉬맹이의 뼛조각과 살조각은 파리와 모기, 빈대, 벼룩 같은 벌레들이 되었다. >>
소별왕은 쉬맹이를 징치함으로써 인간의 수명을 한 대(30세)로 정했다. 오늘날 인간의 수명은 한 대에서 두 대로, 다시 세 대로 늘어났지만 쉬맹이처럼 ‘천 년을 사는 인간’은 땅 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쉬맹이는 옛날에 천년을 사는 인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다. 인간의 수명과 존재를 이야기하는 신화의 상징인 것이다.
자! 다시 돌이켜보자. 소별왕은 이승 차지 경쟁에서 형 대별왕의 꽃 피우는 능력을 훔쳐냈다. 우리는 그 꽃 피우는 능력이 생명 능력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더욱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그래서 곧 스러질 운명이기도 하지만, 꽃은 그 생식작용으로 자신을 이어나가는 ‘생명’을 상징한다.
소별왕이 꽃 피우는 능력을 훔쳤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소별왕은 인간에게 생명을 줌으로써 이승과 저승을 나누어 인간 세상을 새롭게 창조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꽃 피우는 능력을 속임수로 훔친 탓에 그 인간 세상에는 도적이 들끓고 서로 다투는 자가 많고 나쁜 일이 많이 생기게 되었으니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가 없다. ‘좋은 일에는 흔히 탈이 끼어들기 쉽다’고 하더라니!
이제 인간의 시간이 새로 흐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태어남과 삶과 죽음의 시간이 째깍째깍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인간의 시대가 오지 않았다.
인간에게 수명을 주고 이승과 저승으로 나누었다는 것은 또한 인간과 신들의 경계를 그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한한 존재로서 생명을 갖게 된 인간은 이제 신들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게 되었다. 소별왕은 쉬맹이를 징치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의 권위를 세웠다.
이제 천지왕의 천지개벽시대의 혼합과 혼란은 끝났다. 바야흐로 신들의 시대가 열렸다.
소별왕과 대별왕이 이승과 저승을 나누어 다스리기 시작한 이후에는 누구도 이승과 저승을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람은 서천강을 건너 한 번 저승으로 가고 나면 다시 돌아올 수가 없다. 누구나 한 번은 가지만 처음 가는 길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저승사자가 처음이자 마지막 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대별왕이 저승법은 맑고 청량할 것이라고 선언하였지만, 아직 법을 다 만들지 못한 때였나 보다. 저승사자들이 아직 저승으로 갈 때가 되지 않은 아이들을 잘못 데리고 간다든가, 아니면 저승으로 갈 때가 된 사람들을 못 데리고 간다든가 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 ‘법지법’을 바로 세워야 할 때였다.
이 저승법을 바로 세운 이가 강림도령이다. 사람들에게는 강림도령이 저승 가는 길의 동반자였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하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강림도령의 안내 없이는 저승에 갈 수 없었다.
‘사자’ 혹은 ‘차사’는 여럿이 있다. 하늘에서 심부름을 하는 천황(天皇)차사는 ‘일(日)직사자’요, 땅의 일을 보는 지황차사는 ‘월(月)직사자’다. 이승에서 죽은 자의 영혼을 안내하는 이는 ‘이승차사’ 강림도령이고, 저승의 일을 보는 이는 ‘저승차사’ 이원사자다. 또 ‘명부차사’가 있어 제 명을 다하지 않으면 아무나 죽는 일이 없도록 한다. 우물가에는 ‘단물차사’가 기다렸다가 세상 떠나는 영혼을 인도하고,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거나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진 영혼을 인도하는 ‘용궁사자’도 있으며, 객지나 길에서 저세상으로 가는 영혼을 인도하는 ‘객사차사’도 있다. 나뭇가지에 걸려 죽은 영혼을 인도하는 ‘의사차사’, 멱을 감다가 갑자기 세상을 하직한 영혼을 데려가는 ‘엄사차사’, 날아온 돌에 맞아 비명횡사한 혼을 인도하는 ‘탄석차사’, 불에 타 죽은 영혼을 인도하는 ‘화덕차사’, 옥에서 목숨을 잃은 영혼을 인도해가는 ‘무죄차사’도 있다.
강림도령이 ‘이승차사’로서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 저승으로 가서 ‘저승차사’인 이원사자에게 인계하면 그때 이원사자가 비로소 명부(冥府)의 세계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심청전’을 잠깐 볼작시면, 심청이가 아비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목욕재계하고 깊은 밤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 놓고 비는데, 똑 이렇게 비는 것이렷다.
“아무 달 아무 날에 심청은 삼가 두 번 절하고 비옵나이다. 천지 일월성신이며 하지후토 산영성황 오방강신 하백이며, 제일에 석가여래 삼금강 칠보살 팔부신장 시왕성군 강림도령 차례로 굽어보옵소서.”
심청은 저승을 다스리는 대별왕의 시왕(十王)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염라대왕은 부르지도 않고 강림도령을 부르고 있다. 우리 조상들에게 강림도령은 아이도령으로서 염라대왕보다 더 친숙하고 더 큰 비중을 가진 신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자, 그럼 이제 강림도령이 어떻게 ‘이승차사’가 되었는지 탐라의 ‘차사본풀이’ 노래를 들어보자.
동경나라의 범을황제 아들로 삼삼구 아홉 형제가 솟아났다. 아들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도 아니며 아홉이 쑥쑥 솟아나니 하늘이 내려준 복 중의 복이라. 경사 중의 경사로구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병도 없이 한날한시 위로 삼형제 죽고 아래로 삼형제 죽으니 가운데 삼형제만 살아남았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뒤따른다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나. 범을황제, 살아남은 아들 삼형제에게 글공부시키면 ‘없는 명’과 ‘없는 복’이 생길까 하여 동문 10리 밖에 스승을 정하고 글공부를 시킨다.
아들 삼형제 일천서당 다니면서 부지런히 공부를 하였더랬다. 노는 날이 돌아와 심심하고 더 심심하여서 뒤천당 연하못에 배 구경 물 구경을 가는구나. 연하못에서 신들이 쉰다는 연팡돌이 좋아서 삼형제가 고누판을 그렸다. 고누 두며 세월을 보내네.
동개남 상주절 마라 스님이 시주를 받아다 헌 당, 헌 절 수리하려고 절을 내려온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고누를 두며 노는 범을황제 아들 삼형제를 보았네.
마라 스님 풍월로 관상을 보고는,
“이 선비님 저 도령님. 낳기는 잘 낳았다마는, 열다섯 십오 세를 넘길 수 있다면 명도 길 듯하다마는, 넘기기가 어렵도다. 어려워!”
마라 스님이 한마디 툭 던지고는 아랫녘으로 치넘어간다.
곧 죽는다는 소리에 놀란 아들 삼형제가 울며불며 아비 찾아 집으로 쫓아오는구나.
범을황제 말하기를, “죽다 남은 자식들아, 묻다 남은 자식들아! 무슨 일로 우느냐?”
“아버님, 아버님. 웬 중이 와서 우리 삼형제 열다섯 살을 넘기지 못한다 하여 웁니다.”
“뭐라고? 여봐라, 오리정에 나가서 그 중놈을 잡아오너라.”
초조하게 기다리던 범을황제, 호위병들에게 끌려오다시피 한 마라 스님을 보고는, “중놈이 웬 허황된 소리냐?”
한날한시 여섯 아들을 잃은 범을황제, 속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손발이 사시나무 떨듯 하지만 짐짓 큰소리로 호통을 치는구나. 범을황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라 스님, 무심한 눈으로 높낮이도 없이 말을 하는구나.
“왕의 팔자에는 자식이 없소. 이 아이들은 왕의 아들이 아니라 부처님의 아들이오. 속세에서 살아가면 열다섯을 넘기지 못합니다. 지금이라도 속세 떠나 절에 가서 지내면 화를 면할 것이오.”
마라 스님의 담담한 신색에, 놀란 가슴을 다스리는 범을황제. 단박에 중놈이 아니라 스님이다.
“스님!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 궂은 운을 막을 수는 있겠소?”
그 시절에는 아이들 사망률이 높았다. 홍역이나 천연두 따위를 쉽게 이길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범을황제처럼 모두들 자식들을 주렁주렁 많이 낳고 기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십오 세를 넘기는 게 보통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덜컥 겁이 난 범을황제는 이미 궂은 운을 막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게 ‘현실’이었으니까!
“왜 없겠습니까? 은그릇 놋그릇 비단 짐 차려서 아들 삼형제에게 팔도 구경도 시키고 우리 절에 와서 한 삼 년 공부하고 있으면 궂은 운수가 넘어가서 명이 길어질 듯합니다.”
마라 스님은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해서 품안의 자식으로 고이 길러서는 사람은커녕 목숨도 지킬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산과 들과 강을 다니면서 몸과 마음을 닦도록 아이들을 풀어놓으라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내던져라! 마을과 마을을 다니며 사람과 사람들을 만나서 인간을 배우도록 하라는 이야기다. 아이들아, 도전하라!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인생을 걸라!
범을황제도 이미 알고 있었다. 자기 자신도 이미 열두 살에 동경나라를 떠나서 저 멀리 주년나라와 해동나라를 여행하지 않았던가? 범을황제는 은그릇 놋그릇 비단짐을 마련하여 삼형제를 동개남 상주절로 올려 보낸다.
마라 스님을 따라 동개남 상주절로 들어간 아들 삼형제. 머리 파르랗게 깎고 백팔염주 목에 걸고 느닷없이 중이 되었구나.
이렇게 저렇게 세월이 가더니 어느새 삼형제 나이 열다섯이 되던 해, 드디어 일이 닥치는데! 수명이 다된 삼형제를 데려오라는 염라대왕의 명을 받들고 저승사자 셋이서 동경나라에 내려왔구나.
느닷없이 오면서도 어김없고 비정하기로는 죽음의 사자, 차사만한 것도 없는 법이다. 차사는 염라대왕의 명을 받아 저승으로 사람을 데려가기 위해 이승으로 온다. 차사는 복장부터 서슬이 퍼렇다. 남색 바지에 백색 저고리를 받쳐 입고 자주색 행전을 차고 백색 버선에 미투리를 신었다. 까만 쇠털 전립(戰笠)을 머리에 쓰고 한산모시 겹두루마기를 두르고 남색 쾌자를 걸쳤다. 옆구리에는 붉은 오랏줄을 달고 옷고름에는 적배지를 달아매고, 팔뚝에는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석자 오치짜리 팔찌걸이를 조여 매었다. 가슴에는 용(勇)자, 등에는 왕(王)자가 새겨져 있고 등뒤에는 상여의 용두머리를 매어 끌고 갈 행차배를 지고 온다. 부릅뜬 눈은 부리부리한 봉황의 눈이다.
그런데 어허, 이게 어찌된 일인고? 어디에서도 삼형제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구나. 저승사자들 어쩔 수 없이 집안 가속들을 한 명씩 족친다.
아들 삼형제가 동개남 상주절에 있다네. 어서 가자.
저승사자 셋이서 상주절에 도착하니 눈이 핑핑 돌아가는구나. 파르랗게 머리 깎고 회색 가사 장삼 차려입고 백팔염주를 두른 중들이 모두 삼천이나 되는구나. 이 중이 저 중 같고 저 중이 이 중 같으니 이를 어이할꼬. 제아무리 저승사자라도 이 스님 저 스님 구별이 안 되네.
이런! 이런! 하는 사이 삼형제 죽을 날이 스리슬쩍 지나가 버리고 이제 저승사자 셋이서 그냥 돌아갈 수밖에.
“이러다가는 염라대왕한테서 벼락이 떨어지겠소. 가다가 아무 놈이나 잡아 가지고 빨리 갑시다.”
저승사자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을 저승으로 데리고 간다. 강림이 사자가 되기 전에는 저승사자가 사람을 잘못 데리고 가는 일이 많았다네. 자기 명이 다하지도 않았는데 죽은 사람들만 억울하기 짝이 없구나. 불쌍타, 불쌍해!
삼형제는 고비를 잘도 넘겼겠다?
우리 삼형제 이제는 살았네. 이제 죽을지 저제 죽을지 두근반 서근반 하던 새가슴을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쓰다듬던 그 해 9월 보름날. 삼형제가 어미 생각 아비 생각에 비새 울 듯 우는구나.
“저 해와 달이야 우리 어미 아비 쳐다보고 있으련만, 우리는 이처럼 못 보는구나.”
삼형제 노래를 부르니, 스님에게 어찌 들리지 않을까? 그러다가 삼형제가 급기야 집에 보내달라는 청을 넣으러 가니 마라 스님이 탄식을 하는구나.
“삼 년만 꼬박 채우면 본디 수명과 복을 되찾을 수 있을 텐데 어쩔 수가 없구나! 굳이 가고 싶다 하니, 쯧쯧쯧….”
마라 스님은 혀를 차면서도 은그릇 놋그릇 비단 꾸러미들을 모두 내주며 노자 삼아서 가라고 한다. 그래도 못내 아쉬워 신신당부한다. 한 고비를 넘겼을 때가 더욱 위험한 법이 아니던가?
“어차피 가는 길! 다만 가는 길에 김치고을에 들르지 마라.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게 되더라도 까치못 우물물일랑 마시지 마라. 만약 그 물을 마셨다 하더라도 과양상이 집에 가서 밤잠을 자지 말고 술이며 밥이며 주나때나 먹지 마라.”
삼형제 동경나라 집 찾아가는 길에 이 마을 저 마을로 장사하며 물건 팔고, 팔도를 구경하다 보니 여러 날이 지나갔다. 날도 저물어가는 어느 날, 그날 따라 빨리 고향에 가려는 성급한 마음에 물 안 마시고 밥 안 먹은 채 가다보니 배도 고프고 목도 말라온다.
일은 꼭 이럴 때 생기는 법.
바로 눈앞에 보이는 연못으로 달려들어 실컷 물을 마시고 보니 연못가에서 어여쁜 아낙네가 빨래를 하고 있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김치고을이에요.”
“그럼 이 연못 이름은 뭐죠?”
“까치못이라 해요.”
김치고을에 까치못이라. 아차! 스님이 가지 말라던 김치고을에서 먹지 말라던 물까지 마셔버렸구나.
그렇다. 금기는 깨지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금기를 깬 삼형제의 앞날이 왠지 불안하다. 더군다나 ‘어여쁜 아낙네’라 더욱 그러하지 않은가?
삼형제 속으로 후회했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날은 이미 저물어 갈 곳도 없구나.
“이 부근에 묵어갈 곳이나 있소?”
“없어요.”
“주막이… 없나요?”
“괜찮으시다면 우리 집에라도 가시지요.”
멀뚱멀뚱 쳐다보고도 눈앞에 걸어가는 어여쁜 아낙이 과양상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삼형제.
은그릇 놋그릇 비단 꾸러미에 눈이 돌아가버린 과양상이 아리따운 옷을 입고 나와 술 음식을 차려놓고 대접하니 삼형제는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다가 드디어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는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어여쁜’ 아낙네의 웃음에 잘도 넘어갔구나. 미련하고 또 미련하구나. 눈이 즐겁고 입에 단 향기 좋은 것에 홀려 실체를 보지 못한 채 눈뜬 장님이 되었구나. 그렇다. 삼형제는 이미 3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절을 떠남으로써 스스로 포기한 바가 있다. ‘팔도 구경’과 ‘3년 공부’라고 하는 여정은 운명에서 도피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기 위한 자신의 수련 과정이기도 했다. 어미 생각 아비 생각에 자신의 의지를 꺾고 눈앞의 욕망에 굴복하여 절을 떠나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오늘의 사태가 예비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자신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능력도 없고 상대방도 볼 줄 몰라 인생을 그르치는 이가 어디 삼형제뿐이랴! 우리들 모두가 늘 그렇게 무언가 그르치며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 결과는 참혹하다.
은그릇 놋그릇 비단 꾸러미에 눈먼 과양상이가 참기름을 솥뚜껑에 소왕소왕 끓여다가 삼형제 왼쪽 귀에 사르르 오른 쪽 귀에다 사르르, 삼형제를 모두 죽여버리네. 삼형제의 시체를 까치못에 던져버리네.
천당이 있다 한들 천당이 어디 있으며 왕생극락이 있다 한들 저승에 왕생극락이 있으리까? 극락이라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 있는 법입니다. |
우리 신녀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천당도 극락도 없다. 여기서 ‘인간’이라는 것은 ‘사람 사이’로 인간 세상을 말한다. 즉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근심 수심 없이 사는 게 극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세상은 불평등하고 도적이 많다. 누구나 잘 먹고 잘 입고 근심 수심 없이 사는 게 불가능하다. 저승법은 맑고 깨끗하지만, 이승법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모에게서 나 인간 세상에 와서 칠십 고래희요 팔십이 정해진 명이라도 잠든 날 잠든 시 병든 날 병든 시에 근심 수심을 다 버려서 단 사오십을 지낼수 있으리까? 부모 놓아두고 자식 가고 조상 버려두고 자손 가고 아이 갈 데 어른 가고 어른 갈 데 아이 가고 저승길은 거은 물 거은 다리가 되옵네다 . |
‘거은’은 ‘거슬러 오르는’이라는 말이다. 울며불며 따르는 어린아이를 버려두고 갈지라도 돌아오지 못하는 이 저승길, 한 번 가면 돌아올 줄 모르는 이 저승길은 ‘거슬러 오르는 물, 거슬러 오르는 다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저승길을 도저히 갈 수 없는 귀신도 있다. 한 많고 설움 많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귀신이다.
우리 범을황제의 아들 삼형제가 바로 그렇다. 열다섯 십오세의 고개를 넘으려고 세상 공부를 다니던 삼형제는 어이없이 덧없는 죽음을 당하였다. 이팔청춘 꿈같은 시절을 눈앞에 두고 그 시체까지 돌에 묶여 까치못에 던져졌으니, 죽어서도 어미 아비를 한번 만나지도 못하고 어찌 발걸음이 떨어질까?
이 원수를 어찌할까? 맺힌 한을 풀지 못하고서야 어찌 맑고 깨끗한 저승으로 갈 수 있을까?
삼색 꽃 세 송이와 오색 구슬 세 개
삼형제를 죽인 과양상이가 하루 이틀 칠일이 지나가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까치못에 가만히 가서 살피는데, 송장은 아니 뜨고 난데없이 붉은 꽃도 동실동실 노란 꽃도 동실동실 파란 꽃도 동실동실. 꽃 세 송이가 물위에 둥실둥실 떠오르는구나. 욕심 많은 과양상이, 삼형제 죽어 있는 연못의 꽃조차 탐이 나네. “이 꽃아 저 꽃아, 나에게 태운 꽃이거들랑 내 앞으로 어서 오거라!” 물막개 빨래 방망이로 물을 앞으로 당기니 삼색 꽃이 과양상이 앞으로 떠온다. 앞에 오는 꽃은 벙실벙실 웃는 꽃, 가운데 오는 꽃은 비새같이 우는 꽃, 맨 끝에 오는 꽃은 팥죽 같은 용심을 내는 꽃. 오도독 꺾어다가 집으로 와서 대문에 하나 뒷문에도 하나 샛문에도 하나를 꽂아두었다. 과양상이 드나들 때마다 매달아놓은 꽃 세 송이가 조화를 부리는데, 나가려고 하면 앞머리채를 박∼박 잡아끌고 들어오려고 하면 뒷머리채를 박∼박 잡아끌고 머리가 문설주에 시도 때도 없이 부딪히기 일쑤구나. “이런! 고약한 꽃∼∞§∼§∼같으니라구!” 과양상이가 꽃을 훅 하니 떼내어 손바닥에 놓고 복복 비벼서 청동 화로 은단 숯불에 미련 없이 털어넣으니, 얼음산의구름 녹듯 바스스 타는구나. |
아니, 삼형제의 넋이 과양상이 죄를 묻기 위해 꽃으로 환생한 것이 아니었나? 그런데 바스스 타버리다니!
이 지점에서 우리는 참으로 아쉬워할밖에! 그러나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자, 이야기를 더 따라가 보자.
과양상이가 꽃을 화로에 털어넣고는 제 성질을 못 이겨 소중기(팬티) 바람에 마당에 내려가 작대기로 검불(마른 풀이나 낙엽 따위)을 박박 긁고 있다. 마침 불씨를 얻으러 온 뒷집 청태산 마귀할망이 화로 속을 이리저리 휘저어보더니, “과양상이야! 불은 없고 웬 구슬이 세 개 묻혀 있구나!” 할망의 말을 듣고 화로 속에 있는 고운 화단지 구슬을 본 과양상이. 세상에 둘도 없는 욕심보가 발동해 ‘아이고, 그 구슬 내 것이우다’ 하고 얼른 빼앗아버린다. 오색이 영롱한 예쁜 구슬이라 과양상이는 구슬을 손바닥에서 동글동글 놀린다. 그러다가 햇볕이 비쳐 구슬이 뱅실뱅실 웃는 것 같으니까 기뻐서, 이제 아까우니까 그 구슬 하나를 입에 물어서 혀끝으로 이리저리 놀려 굴린다. 구슬이 자르르 스르르 녹아서 목 아래로 내려가는구나. 다시 구슬을 하나 입에 물어서 놀리니까 또 목 아래로 내려간다. 이처럼 입 노리개로 가지고 놀다가 구슬 셋을 모두 먹었네. 그냥 보기에는 성에 안 차 먹어치워 버렸구나. |
과거 깃발이 둥둥 떴구나
삼형제가 죽어 그 넋이 꽃으로 환생하고, 그 꽃이 다시 구슬로 변신한다. 과양상이가 그 구슬을 꿀꺽! 했다. 말하자면 삼형제의 넋이 과양상이 몸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과양상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대충 짐작하는 독자도 있을 줄 안다.
이 궁금증을 풀기 전에 ‘구슬’ 이야기를 잠깐 한다. 구슬은 우리 옛 이야기에서 여의주를 말한다. 보통 ‘푸른 구슬’, ‘파란 구슬’, ‘황금 구슬’로 나온다. 이것은 뜻한 바 모든 것을 이루게 해주는 주술을 부린다.
여기서의 구슬은 주술을 부리기는 하지만, 여의주는 아니다. 꽃의 변신이다. 꽃은 암수의 생식기를 갖추고 있는 ‘생명’의 상징이다. 우리 신화의 서천꽃밭에 있는 꽃들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 능력의 결과물이 열매 아닌가?
과양상이가 먹어버린 구슬은 곧 꽃이 맺은 열매를 상징한다. 그런데 열매는 곧 씨앗이다. 씨앗은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때부터 과양상이 배가 불러 오르기 시작하더니, 한 달에 피를 모아서 다섯 달에 배가 반 짐을 실어서 열 달에 배가 찬 짐을 실었네. 하루는 과양상이가 구들 네 구석을 데굴데굴 구르며, ‘아야 배야! 아야 배야!’ 죽을 듯이 소리 지른다. 청태산 마귀할망이 와서 과양상이 허리를 내리쓸어 보니 아기가 머리를 벌써 돌려 궁(宮)의 문을 열려고 한다. “한 맥을 써라!” 맥을 못 추다가 한번 힘을 내어 한 맥을 써보니 아들이 솟아나고, 두 맥을 써보니 샛아들이 솟아나고, 세 맥을 써보니 막내아들이 솟아나 한꺼번에 아들 셋을 얻었네. 과양상이가 삼형제를 금이야 옥이야 고이 기르는데, 일곱 살 나던 해에 산천 서당에 보내니 천하 문장감이라. 아들들에게 비단 옷 입히고 좋은 서당 보내는 사이에 범을황제 아들 삼형제에게 빼앗았던 은그릇·놋그릇·비단 꾸러미에다 논·밭까지 다 팔아먹고 집만 덩그마니 남았구나. 열다섯 나는 해 삼형제가 과거를 치르러 서울로 올라갈 때, 과양상이는 집마저 팔아치우고 아들들 노자를 마련하네. 과거를 치르니 삼천 선비 낙방하고 삼형제 과거 띄웠구나. 과거 깃발을 둥둥 띄웠구나. 삼만관속 육방하인 거느리고 어룡마를 타고 내려오는데, 삼 년하고도 석 달을 내려오는구나. 아이들이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오면 서리 골살이 나라살이 골골이 다 추어서 내려오면서리 새면을 잡히는데, 뚱뚱뚜우뚱 뚜우∼ 꽝새는 꽝꽝∼ 나팔은 왱왱∼ 대부포는 두두둥둥∼ 새장이는 대댕댕∼ 새면이라면 바로 해금, 대금, 목필, 곁피리, 장구, 북, 나팔 따위의 삼현육각(三絃六角)을 잡히는 음악이라. 거, 풍류를 놀며 내려오는 소리 아주 근사하거든. 재수도 좋게!? 장례 때 입는 베치마를 둘러 입고 남의 밭을 빌려 콩을 갈던 과양상이 비비둥당 우둥당 북 치고 피리 부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청가마·백가마·흑가마 가마 세 개가 저 멀리 동네 어귀로 들어온다. “물렀거라! 섰거라!” 과거 깃발이 둥둥 떴구나. “아따! 어떤 놈의 집안은 산천이 좋아 과거를 띄워 오는고? 우리 집 아들들은 어디 간 놈의 손땅(손등)에 죽었는가 발땅(발등)에 죽었는가. 저기로 과거 띄워 오는 놈은 내 앞에서 모가지나 세 도막에 부러져 버려라!” |
욕 한번 섬뜩하구나. 그게 자기가 낳은 자식인 줄도 모르고 표독스럽게 “모가지나 부러져라”라고 저주를 해대는 과양상이 꼴이라니. 남의 자식들에게 저주를 퍼부어놓고 어찌 자기 자식이 잘되기를 바랄까? 그런데 이 과양상이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 떠오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과거 기별입니다∼!”
과양상이 얼싸 ∼ 좋다, 좋다∼ 좋다 하는구나.
“얼씨구 좋다! 절씨구 좋다! 설운 아기들 과거 띄워 오는데 아니 놀고 뭐할쏘냐! 과거 급제 자축하는 잔치를 이레 동안 베풀면 그 또한 좋겠구나!”
잔치를 한다는 게 남의 소는 다 모아다 잡아서 챙겨놓구서리 누를 다 끼쳐놓구서리, 기세가 등등해진 과양상이가 관헌으로 가서 호통 치는 꼴 좀 보소.
“염치없는 김치원아, 감사가 세 명이나 오는데 마중을 안 나오고 무엇 하느냐?”
과양상이의 악살에 견디다 못해 김치원이 과양상이 집으로 마중 오고, 과양상이는 아들들 절 받을 채비를 한다.
아이 삼형제가 말을 타고 두룻이 들어와 말안장에서 내려선다.
큰아들 첫 번째 엎드려 절하고 일어서지를 않는구나.
둘째 아들 두 번째 엎드려 절하고 일어서지를 않는구나.
막내아들 세 번째 엎드려 절하고 일어서지를 않는구나.
과양상이 과거 띄워 온 아기 얼굴이나 볼까 하고 앉아서 바라고 기다려도 고개를 들고 일어서지를 않는구나.
“이게 어찌된 일이더냐?”
달려들어 큰아들 머리를 들어보니 눈동자는 저승으로 돌아가 있고, 샛아들 고개를 들어보니 입에 거품 코에 송인이 오르고, 막내아들 고개를 들어보니 손톱 발톱 검은 피가 섰구나.
김치원이 시체를 뒤집어 일으켜보니 눈에는 흙이 가득 들고 배는 붕붕 부풀어 오르고 살이 문드러진 것이 이제야 죽은 사람이 아니라 죽은 지 오래된 송장이라.
과양상이의 속을 뒤집어놓은 과양 삼형제의 시체가 죽은 지 오래된 송장이라고? 여기서 과양상이의 속만 뒤집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도 뒤집어진다. 오래된 송장은 바로 범을황제 아들 삼형제의 송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범을 삼형제가 꽃으로 환생하여 다시 재가 되었다가 구슬로 맺혀 과양상이의 아들로 또다시 환생하여 과양상이 눈앞에서 죽어버린, 이 모든 환생과 죽음의 과정이 허깨비였다는 말이 아닌가? 과양상이가 꽃을 본 것도 구슬을 놀리다가 먹은 것도 환상이고, 아이를 밴 배도 헛배이며 산통을 느끼고 아이를 낳아 길러 과거를 띄우고 돌아와서 죽은 모습을 본 것도 다 허깨비 놀음이었다는 대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진 것이다.
우리 인생도 한바탕의 꿈과 놀이인데, 꿈속의 꿈이요, 놀이 속의 놀이인 환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욱더 기가 막히는 이야기는 과양상이의 눈에 허깨비가 씌었다는 사실이다. 과양상이는 아직도 진실을 볼 수 없다. 욕망이라는 허깨비 놀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팬터지 속 팬터지의 생명력이 아닐 수 없다.
과양상이의 소장
한꺼번에 아들 셋을 잃은 과양상이는 어처구니가 없고 끝없이 용심이 나는구나. 얼마나 분하고 원통한지, 원님에게 화풀이를 한다. “우리 아들 삼형제를 한날 한시에 낳고, 한날 한시에 문과급제해 와서 한날 한시에 죽어버렸수다. 무엇 때문에 죽어버렸습니까?” 아침에 아침소장, 점심에 점심소장, 저녁에 저녁소장, 하루에 삼세번씩 소장을 올려 석 달 열흘 100일을 계속하니 과양상이 소장만 아홉 상자 반이 차고 넘쳐난다. 과양상이가 날마다 성안을 마구 돌아다니며 욕을 하는데, “아들 삼형제가 하루아침에 죽었는데 까닭도 모르는 원님이 있느냐? 소장을 아홉 상자 반이나 들여다봐도 무슨 짓을 하는지 말 한마디 못하는 놈! 괘씸한 놈, 김치원 놈!” 또 날마다 성문에 올라가 소리를 친다. “개 같은 김치원아, 봉고파직하고 이 마을을 떠나거라! 다른 원님 놓아서 우리 아들 죽은 소장 처리나 하게끔!” 김치원이 삼형제가 이유도 단서도 없이 죽었으니, 절하다가 갑자기 죽었으니 뭘 밝혀낼 게 있으랴! “저런 못된 년에게 욕설이나 들어먹고, 정말 살맛이 안 나는구나.” |
자, 김치원은 과양상이의 소장을 어떻게 해결할까? 다음을 기대하시라.
“개 같은 김치원아, 봉고파직하고 이 마을을 떠나거라!”
오늘도 성문에 올라가서 외치는 과양상이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가고 김치원의 간은 갈수록 콩알만하게 오그라든다.
봉고파직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김치원.
“저런 더러운 년한테 저 입살을 듣고 내가 원을 살아 무엇할꼬?”
문을 잡고 드러누워 죽기로 작정한 김치원이 아침상도 아니 받고 점심상도 아니 받는다. 부아가 난 김치원의 부인이 한 소리를 하네.
“이게 무슨 꼴입니까? 과양상이를 징치하든지, 그도 아니면 저승의 염라왕이라도 잡아와서 해결을 해야지요.”
문 밖에서 하회를 기다리고 있던 사령들 가운데서 도사령이 뛰쳐나온다. 옳다구나! 무릎을 치며,
“맞습니다.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면 죽은 자의 입을 열어야 합니다. 염라왕을 이승으로 불러와서 삼형제의 입을 열어야 죽은 까닭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염라왕 상대 에라, 이판사판
그렇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입을 열 수 있는 자가 있지 않은가? 저승의 염라왕! 에라, 이판사판이다. 저 죽음과 두려움의 상징인 염라왕을 이승으로 불러오는 수밖에!
김치원이 마음속으로 작정을 하고는 묻는다.
“그런데, 염라왕을 누가 잡아온단 말이오?”
이 대목에서 이야기는 또 한 번 뒤집어지면서 새롭게 전개된다. 과양상이의 난데없는 소지를 이승의 원이 염라왕을 잡아온다는 기가 막힌 해법으로 풀어낸 것이다. 신의 위엄과 권위를 생각해볼 때 참으로 발칙한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신화에서는 신들의 지배가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을 잡아온다는 관념은 우리 신화에서 인간의 현실세계가 더욱 주요한 측면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리스신화에서 저승을 다스리는 신 하데스를 누가 감히 잡아온다고 하였던가. 아무도 없다. 제우스 신조차도 한 수 접고 들어갔던 죽음의 신이 아니었던가!
자, 드디어 우리 저승 이야기의 주인공 강림도령이 등장할 차례다.
도사령이 하는 말,
“우리 사령들 중에 다른 사령들을 숨도 못 쉬게 하는 힘 좋고 담대한 강림이란 자가 있습니다. 강림이는 문 밖에도 아홉 각시 문 안에도 아홉 각시를 첩으로 두고 살 정도로 힘이 좋고,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사람이 있단 말이지? 김치원이 너무나 반가워한다. 아니, 저승에 가서 염라왕을 잡아올 수 있는 자가 있단 말이지? 놀랍고도 놀랍도다!
강림은 첩을 열여덟이나 둘 정도로 정력이 절륜하고 똑똑하다고 한다. 그래야 염라왕을 잡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력, 곧 생명력이 왕성하다는 것을 높이 사는 이유가 저승에 가더라도 죽음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중시해서였을까? 어쨌거나 힘이 장사라 천하에 무서운 것이 없고 풍류도 일세출이라! 이게 바로 강림이다.
“하지만 무슨 명목이 있어야 할 게 아니냐?”
“강림이는 내일 제일 작은 각시의 어머니 제삿날이라 거기에 들렀다가 또 다른 각시들을 다 돌아보고 오자면 출근이 늦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출근이 늦은 핑계로 염라왕을 잡아오라 하십시오.”
맞아. 바로 그거야. 옭아매기 수법. 내 이놈을 물고를 내서라도 내 말을 듣게 만들고야 말 테다.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관이 아니던가?
“그래? 그거 참 잘 되었다. 내일 새벽부터 사발통지를 돌려 동헌 마당 개폐문을 열고 열 관장 입참을 시켜라.”
다음날 아침해가 동녘에 뜰 무렵, 강림이가 작은 각시 어머니의 제사를 드리고 열여덟 각시에게 반해 잠을 자다 날 새는 줄 몰라 그만 출근이 늦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큰북이 쿵쾅쿵쾅 진동을 하고 멀리서 고동이 울리며 피리 나팔 날라리 소리가 찢어지는구나.
동헌 마당에서 김치원이 발빠른 박파도를 내어놓고,
“강림이 궐 뽑아라!”
박파도는 높은 동문 밖의 공덕동산을 치달아 올라서서,
“강림이 궐이여!”
사방에서 사령들이 소리쳐 부르는 소리에 강림이가 팔딱 눈을 떠보니 창문 밖이 훤하다.
강림이는 이 고을이 뒤집히는 난리가 났나 보다 생각하고 장안 군복 서단쾌자를 입을 새도 없이 팔어깨에 걸친 채 관아로 들어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령들이 줄줄이 나서서 강림이를 잡아죽일 판으로 결박하고는,
“강림이는 사관 불참이여!”
김치원이 호통을 친다.
관헌 마당에 작두가 걸리고 형틀이 걸렸다. 그 앞으로 칼춤을 추며 가고 강림의 목에는 큰칼을 씌운다.
아이구! 큰일났다. 강림이, 김치원에게 사정한다.
“원님아 원님아, 강림이는 죽을 목에 들었습니다만 살 도리가 없습니까?”
김치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단호하게 묻는다.
“이승에서 지금 죽겠느냐, 아니면 저승에 가서 염라왕을 잡아오겠느냐?”
바짝 얼어붙은 강림이가 엉겁결에 그만 엇대답을 하고 마네.
“저승에 가서 염라왕을 잡아오겠습니다.”
강림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강림이 목에서 큰칼을 벗겨내고, 김치원이 강림에게 저승 본짱을 내어준다.
저승 본짱을 받아든 강림은 기가 막혀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린다.
‘저승길이 어디라고 저승 염라왕을 잡으러 간단 말이냐! 앞길이 왁왁 캄캄하구나.’
강림이 사령방에 들러,
“늙도록 사신 동갑님네. 저승 염라왕을 잡아오라는 말 들은 적 있습니까?”
“내 늙도록 살아도 저승 염라왕 잡아오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걸.”
“나는 저승 염라왕 잡으러 갑니다.”
늙은 사령이 강림이에게 이별주를 권하니 강림이 술을 아무리 마셔도 아니 취하고, 푸른 산을 쳐다보면 검은 산으로 보이고 검은 산을 쳐다보면 흰 산으로 보이는구나.
열여덟 각시 다 돌아다니며 말해보아도 마치 한 놈이 말하는 듯 말하는구나.
“아이구, 당신 죽음만 같지 못합니다. 염라왕을 어떻게 잡아옵니까?”
이젠 막다른 길로 가네. 장가가고 시집가고 나서는 한 번도 들른 적이 없어 남녀구별법도 모르는 큰각시 집으로 들어간다.
“매정하고 매정한 설운 낭군님아, 오늘은 어쩐 일로 저 문을 열고 들어오십니까?”
강림이 아무 대답 없이 사랑방으로 들어가서 탄식만 하고 앉아 있구나. 큰각시가 보리 방아를 찧다가 내버리고 아침식사를 지어서 열두 가지 높고 낮은 반찬을 가득히 차려놓고는 서방님께 들여놓는다.
“낭군님, 무슨 일로 상도 받지 않고 근심을 하고 있습니까?”
강림이 눈물을 콧등으로 다륵다륵 떨어뜨리면서 저승 염라왕 잡으러 가게 된 사연을 말한다.
“아이구, 설운 낭군님아! 그만한 일로 탄식을 하고 있습니까? 염라왕 잡으러 갈 길은 내가 닦겠으니, 염려 마시고 식사나 하십시오.”
역시 큰각시다. 옛날에는 큰각시가 집의 ‘안주인’이 아니던가? 우리 ‘큰각시’는 어머니 같은 이미지다. 옛날에는 아기도령을 키워서 남편으로 만들었다고 하더니. 여기서는 앞날을 내다보는 신통방통한 ‘여신’ 같은 이미지이기도 하다. 저승에 가서 염라왕을 잡아오는 것은 강림이지만, 저승 가는 길을 닦아주는 사람은 강림의 큰각시다. 큰각시는 죽은 자를 보내는 굿을 담당하는 신녀이기도 하고 그 굿의 절차와 마찬가지로 저승 가는 길을 닦고 다리를 놓아주는 강림의 각시로서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강림이 허우덩싹 웃으며 상을 받아 식사를 하는 사이에 큰각시가 이른다.
“서방님, 김치원님에게 가서 석 달 열흘 백일만 더 기한을 주면 염라왕을 잡아오겠다고 하고 승낙을 받아오십시오.”
강림이 김치원에게 가 기한을 연기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돌아오자, 큰각시가 부지런히 저승 갈 길을 준비한다.
풀논에 풀나락 수답에 수나락 강답에 강나락, 세 논의 나락을 합치니까 닷 섬 닷 말이로구나. 이걸 가져다가 느티나무 방아에 도외나무 절구공에 동백나무 함지에 이여동동 소리도 좋다. 나락을 찧는구나. 이 나락쌀을 다시 단 한 말 쌀로 능거놓아서 동백나무 함지에 담아 물을 부으니 적당히 불었구나. 느티나무 방아에 동백나무 절구공으로 이여동동 소리에 맞춰 찧어서 가루를 빻아 떡을 친다. 시루 첫 징(시루떡을 찔 때 소를 넣어 뗄 수 있게 만든 첫 층계) 메밥 한 그릇은 대문을 지키는 문전신에게 들러놓고, 또 한 징 메밥 한 그릇은 부엌 지키는 조왕 할망에게 들러놓고, 놓다가 남은 시루 한 징 메밥 한 그릇은 강림이 저승 가며 먹을 것으로 만들어놓는다.
강림의 큰각시가 향나무 삶은 물로 목욕을 한 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조왕신 문전신 앞에 떡을 떡 차려놓고 이레 동안 잠도 자지 않고 굽엉일어나 굽엉일어나 절을 한다.
“강림이 저승 가는 길을 잘 찾아가게 하여주소서.”
정성을 갸륵하게 여긴 조왕 할망이 일곱째 날 선잠이 든 강림의 큰각시 꿈에 나타났네.
“어찌 무정눈에 잠을 자겠느냐? 천황닭이 곧 꼬끼오∼ 꼬르르륵 자지반반(고요한 밤의 닭 울음소리) 울게 된다. 강림의 저승 행차길이 바빠지니 빨리 강림을 저승으로 내보내라.”
큰각시는 급히 강림에게 저승옷을 내주며 갈 길을 서두르라고 재촉한다. 강림이 저승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저승 행차가 완연하구나. 남색 얇은 비단으로 만든 붕에바지에 흰색 얇은 비단으로 만든 저고리를 입고 물명주 통허리띠를 야무지게 잡아맨다. 자주색 명주 비단으로 만든 통자로 된 행경(각반)을 하고, 거기에 무늬 있는 하얀 코재비 버선을 신고 섭송메 미투리가 풀어지지 않게 낙고지(들메끈)로 꽉 매었다. 한산모시 두루마기에 남색 수와지 비단 붉은 쾌자를 입고, 흑두전립을 썼네. 앞으로 홍고달(붉은 볏) 달고 포승줄을 옆으로 달고 관장패는 등에 지고 패지 끈을 품에 품고 앞에는 날랠 용(勇)자, 뒤에는 임금 왕(王)자를 새겨 붙였구나. 옷 입은 본새가 굴망굴짓 놀망놀짓 허울애비 허튼짓하듯 늠름하구나.
어떤 다리를 놓아 갈까?
강림이 저승옷을 입고는,
“이 옷은 어느때에 차려놓았소?”
“벌써 이리 할 줄 알고 지어놨수다.”
이때 내어놓은 법으로 우리 인간세상에도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저승옷(壽衣)을 차려놓는 법이 생겼다네.
큰각시가 강림에게 묻기를,
“낭군님, 원님에게 저승 본짱은 받았습니까?”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쓴 것을 받았소.”
이 말을 들은 강림의 큰각시가 우레같이 김치원에게 달려간다.
“김치원님, 강림이 염라왕 잡으러 저승 가는데 저승 본짱이 어찌 이렇습니까? 산 사람의 소지는 흰 종이에 검은 글이나, 저승 글이야 어찌 그렇습니까? 붉은 종이에 흰 글을 써주십시오.”
김치원이 ‘옳구나. 내가 실수를 하였구나’ 하면서 붉은 종이에 흰 글을 써서 내어준다. 이것을 적배지(붉은 패지·赤牌旨)라고 한다. 저승에서 통하는 문서로구나.
이때 내어온 법으로 우리 인간세상의 법에도 명정법(銘旌法)을 마련하였구나.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그의 품계와 성씨를 기록한 붉은 비단을 장대에 단 조기(弔旗)를 상여 앞에 들고 가서 널 위에 펴고 묻는 법이 생겼다네.
적배지를 받아든 큰각시는 집으로 돌아와 물명주 전대 허리띠를 강림의 허리에 핑핑 감으며,
“저승 초군문(初軍門) 가기 전에 급한 대목 내닫거든 이 물명주 전대 허리띠를 손으로 잡고 세 번 떨어 흔들면 알 도리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큰각시는 본메본짱으로 귀 없는 바늘 한 쌈을 앞섶에 찔러두고,
“설운 낭군님, 어서 가옵소서!”
자, 이제 이야기는 강림이 저승을 찾아가는 대목으로 접어든다. 어디가 저승인가? 여러분도 구경 삼아 따라가볼 생각이 있겠지요?
‘설운 아기 저승 가는데 무엇으로 다리를 놓아주리?’
강림이 부모와 이별한다.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마음이 큰 어른이라 망건을 벗어 다리를 놓는다.
‘설운 아기 저승 가는데 무엇으로 다리를 놓을까?’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아래로 감추어주니 속곳을 벗어 다리를 놓는다.
‘설운 낭군 저승 가는데 무엇으로 다리를 놓을까?’
큰각시는 버선 벗고 신 벗어 다리를 놓는다.
이때 내어온 법이 인간세상 부부 사이의 법이라. 열 아이 낳아도 하나도 보람 없는 부부 사이의 법이다. 강림이가 저승 갈 때 신이든 버선이든 신고 갈 땐 좋아도 저승에서 돌아와서 벗어보면 신었던 것과 닮지 아니한 우리들 부부 사이의 법이다.
여러분도 우리 굿에 나오는 대목 그대로 같이 저승 가는 길을 닦아야 한다. 자, 어떤 다리를 놓아 갈까?
“설운 낭군님, 어서 가옵소서!”
큰부인의 배웅을 받으며 강림도령이 저승 가는 길을 찾아나선다.
소별왕과 대별왕이 이승과 저승을 갑갈라서 귀신들을 저승으로 보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저승은 도대체 어디일까? 우리 신화의 공간은 천하궁과 지하궁, 그리고 인간으로 나눈다. 이때 인간은 ‘사람 사이’라는 뜻으로 인간 세상을 말한다. 그 공간 구성 위에 또 이승과 저승이라는 시간 구성이 짜여 있는 것이다. 현실의 인간과 신화적인 시간으로서의 이승이 하나의 짝을 이룸으로써 신화적인 시공간으로서의 이승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화적 시간으로서의 저승과 짝을 이루는 공간은 어디일까?
한번 가면 오지 못하는 곳이 저승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저승을 제집 드나들 듯 넘나드는 풍류 남아가 드디어 등장한다. 저승은 어디 있을까? 같이 따라가보자.
조왕할망을 만나다
강림은 큰 눈을 부릅뜨고 삼각 수염을 젖혀 올리고 좁은 목에 벼락치듯, 넓은 목에 번개치듯 간다. 가다보니 앞에 웬 노파가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하늘을 날듯 훨훨 걷는구나. 벗으로나 삼으려고 빨리 걸어봐도 노파는 한참을 앞서 가 있다. 더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도 영 앞지를 수가 없구나. 달을 보고 걷고 해를 보고 걷다 며칠이 지났는지 노파가 연팡돌 위에 앉아 숨을 고른다.
그 사이에 노파를 따라잡은 강림이,
“예사 걸음이 아닙니다. 며칠을 걸어 시장하실 텐데 점심이나 드시고 가십시오.”
“나도 요깃거리가 있다.”
둘 다 점심밥으로 떡을 꺼내놓는데, 한 시루에 쪄내고 한 손매가 난 떡이라.
“아니, 할머니 점심과 제 점심이 어떻게 이렇게 똑같나요?”
“이놈아, 나를 모르겠느냐? 네 집의 조왕할망이다. 네 부인의 정성이 하도 기특하여 저승길을 인도하러 왔는데 이만큼 잘 왔구나. 이 길을 가다보면 연제못이 있을 것이야! 그 못가에서 목욕재계하고 이 떡을 올려서 정성을 다해 빌면 세 신선이 내려올 것이네. 그때는 알 도리가 있을 것이니∼ 음! 쯧쯧쯧….”
그러고는 조왕할망이 소리 없이 사라져버리는구나.
조왕은 부엌을 다스리는 신이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불을 신성하게 여겨 숭배를 했다. 조왕은 부엌의 아궁이와 부뚜막을 맡는 신으로서 집안의 불을 다루는 가정의 수호 여신이다. 당연히 부인네가 주로 모신다. 그러므로 조왕할망은 강림의 큰부인이 보낸 첫 번째 저승길 안내자다.
강림이 조왕할망의 말을 듣고 끝없이 가다보니 과연 연제못이 있거늘, 목욕을 하고 정성을 다하여 빈다. 어느덧 세 신선이 내려왔구나! 세 신선이 묻는다.
“너는 어디로 가는 길이냐?”
“저는 저승에 염라대왕을 청하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저승길을 모르니 길을 인도해주십시오.”
세 신선이 한참을 생각하다 푸른 부채, 붉은 부채, 홍세줄을 내어주며 말하길,
“가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쓰거라.”
강림이 푸른 부채, 붉은 부채, 홍세줄을 둘러메고 간다. 가다보니 어느덧 안개가 끼어 동서남북을 분별하지 못하겠더라. 푸른 부채를 내던지니 안개가 걷히고 길이 분명하게 보인다. 이 무슨 조화랴! 또 끝없이 가다보니 청청한 곳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분명치 않구나. 붉은 부채를 내던지니, 신기하도다! 또한 안개가 걷히고 길이 분명하게 보이네!
그 길을 따라 또 끝없이 간다. 가다보니 저만치 앞에 푸른 옷 동자가 잰걸음으로 걸어간다. ‘옳지! 저 동자를 따라가면 되겠구나’ 하고 강림은 부지런히 쫓아가네. 한데 푸른 옷 동자가 보통 걸음이 아니라. 강림이 큰 눈을 부릅뜨고 삼각 수염을 젖혀 올리고 좁은 목에 벼락치듯, 넓은 목에 번개치듯 걸어도 도저히 아이의 걸음을 따라잡을 수가 없구나. 푸른 옷 동자가 앉아 쉬는 사이에 강림이 겨우 그 앞에 다다른다.
“덕분에 길을 잘 왔소. 점심이나 함께 나눠 먹읍시다!”
“나도 있소.”
푸른 옷 동자의 점심을 보니 이번에도 한 시루에 쪄내고 한 손매가 난 떡이라.
“나는 큰부인의 집을 지키는 문전신이오. 부인의 정성이 갸륵하여 도와주는 것이니 그리 아시오. 저승길은 일흔여덟 갈림길이라, 그 길을 다 알아야 저승으로 갈 수 있는 법.”
문전신(門前神)은 말 그대로 집의 대문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탐라에서는 성주, 조왕, 터주, 측간 신과 같은 집안의 신들 가운데서 가장 앞선 위치에 있다. 그리고 집안의 대주가 ‘먼 길’을 떠날 때나 돌아왔을 때 먼저 고하는 대담이다. 길과 집안의 경계로 들고나는 곳이 문인 까닭이다. 문은 곧 ‘길’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셈이다.
그 문전신이 저승길을 하나하나 세어간다.
“천지혼합 때 들어간 길, 천지개벽 때 들어간 길, 인왕도업 때 들어간 길, 천지천왕 들어간 길, 천지지왕 들어간 길, 천지인왕 들어간 길, 산 베포 들어간 길, 물 베포 들어간 길, 원 베포 들어간 길. 신 베포 들어간 길, 왕 베포 들어간 길, 국 베포 들어간 길, 제청도업 때 들어간 길, 올라 산신대왕 들어간 길, 산신백관 들어간 길, 대서용궁 들어간 길, 서산대사 들어간 길, 사명대사 들어간 길, 육한대사 들어간 길, 인간불도할망 들어간 길, 마마신 들어간 길, 일궁전 들어간 길, 월궁전 들어간길, 삼대상공 들어간 길, 천제석궁 들어간 길, 스님 초공 들어간 길, 이공 서천 들어간 길, 삼공 주년국 들어간 길, 원앙감사 들어간 길, 원앙도사 들어간 길, 시왕감사 들어간 길, 시왕도사 들어간 길, 진병서 들어간 길, 신일월 신병서 들어간 길, 진추염라태산왕 들어간 길, 버물지어사천왕 들어간 길, 제초일에 진강왕 들어간 길, 제이 초강왕 들어간 길, 제삼 송제왕 들어간 길, 제사 오관왕 들어간 길, 제오 염라왕 들어간 길, 제육 변성왕 들어간 길, 제칠 태산왕 들어간 길, 제팔 평등왕 들어간 길, 제구 도시왕 들어간 길, 제십 십전왕 들어간 길, 십일 지장왕 들어간 길, 십이 생불왕 들어간 길, 십삼 좌두왕 들어간 길, 십사 우두왕 들어간 길, 십오 동자판관 들어간 길, 십육 사자 들어간 길, 천왕차사 일직사자 들어간 길, 인왕차사 어금베도사나장 들어간 길, 옥황 금부도사 들어간 길, 저승 이원사자 들어간 길, 물로 요왕국 대방황수 들어간 길, 담물 용궁차사 들어간 길, 나무에 절량차사 들어간 길, 물에 엄사차사 들어간 길, 대로 객사차사 들어간 길, 비명차사 들어간 길, 노불업 노차사 들어간 길, 맹도맹감 삼차사 들어간 길, 화덕차사 들어간 길, 상금차사 들어간 길, 발금차사 들어간 길, 모람차사 들어간 길, 적차사 들어간 길, 작고도 작은 개미 왼 뿔 한 조각만큼 길이 났구나.”
저승사자들이 다니는 일흔여덟 갈림길이 많기도 많을샤. 저승길을 다 일러준 문전신이 강림에게 갈 길을 알려주는데,
“산딸기나무 가시덤불에 바람눈이 덮이고 돌무더기의 오목 볼록이 심한 험한 길을 긁어 뜯으며 가다보면 저승 질토래비(길을 닦는 사람)가 석자 두치 오척 길을 닦다가 시장기에 몰려 양지바른 곳에 앉아 졸고 있을 것이오. 그 앞에 떡을 갖다놓으면 알 도리가 나올 것이라.”
강림의 이름을 세 번 부르다
강림이 청동 같은 팔뚝으로 가시덤불을 긁어 뜯으며 가다보니 아닌게 아니라 저승 질토래비가 길가에 앉아 소닥소닥 졸고 있다. 강림이 그 앞에다 시루떡을 살그머니 갖다놓는다. 질토래비가 시장에 떡을 가져다가 허겁지겁 떼어먹으니 눈에 생기가 돌아 산도 넘고 싶어라 물도 넘고 싶어라, 하는구나. 뒤를 돌아보니,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우람한 몸으로 태산같이 버티니 섬뜩한 느낌이 나는 이가 서 있네. 질토래비가 와들랑이 일어서며,
“나는 저승길을 안내하는 이원사자요. 댁은 뉘신지?”
“나는 이승 김치마을에 사는 강림이라 하오.”
“그런데 어디 가는 길이십니까?”
“저승 염라대왕을 잡으러 가는 길이오.”
“아니, 저승을 어떻게 갈 수 있겠소?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걸어보시오, 저승에 가는가. 못 가는 법이라오.”
“내 갈 길은 저승길이니 그 길을 알려주십시오.”
산 자가 죽은 자가 들어가는 저승길을 알려 달라 하니 이원사자 황당하고 난감하기 이를 데 없구나. 그러나 어쩌랴! 저승법은 맑아서 대접을 받으면 반드시 보답해야 하는 법. 나중에 벌을 받더라도 길을 알려줄밖에.
“뜬 적삼이 있소?”
“있습니다.”
“내가 혼을 세 번 불러들이면 혼으로나 저승 초군문에 가시오. 저승 초군문 가기 전에 헹기못에 이르거든 헹기못 바위에 보면, 이승에서 제명에 못 죽고 남의 명에 간 사람 저승도 못 가고 이승도 못 와서 비새같이 울고 있을 것입니다. 그이가 ‘나도 데리고 가주십시오’ 하고 쾌자를 잡을 것이니 그때 떡을 자잘하게 부수어서 동서레레 뿌리면 저승 초군문에 뿌려질 것입니다. 참, 저승 본짱은 있소이까?”
“이런, 안 가져왔소!”
“이게 무슨 말이오이까? 저승 본짱이 없으면 저승을 가도 돌아올 수 없소!”
강림이 손바닥을 두들기며,
“이것 참! 나 일이로구나.”
강림이 그때 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큰부인이 이별할 때 큰일이 닥치면 허리띠 전대를 삼세번 떨어뜨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강림이 전대 허리띠를 손에 들고 삼세번 떨어뜨려보니 적배지가 다르륵기 떨어진다. 이원사자가,
“오! 바로 이게 저승 본메가 아닌가?”
이원사자 강림의 적삼을 벗겨,
“강림이 보오, 강림이 보오, 강림이 보오” 하고 강림의 이름을 세 번 크게 부르니, 강림의 혼이 몸에서 스르륵 벗어나는구나.
사립문 밖이 황천이라 문득 눈을 떠보니강림의 혼이 저승 포도리청 호안성(저승 가는 길의 성 이름)을 지나 헹기못에 가다가 보니 헹기못 바위에 앉은 이가, ‘나도 데려가 달라’고 강림의 쾌자를 잡는다. 떡을 자잘하게 잘라서 뿌리니 저승 못 간 이들 배고프던 차에 떡을 주어먹다 그만 쾌자를 놓아버린다. 강림이 눈 질끈 감은 채로 헹기못에 풍덩 빠지고 보니,
“이크!”
아찔하구나! 회오리쳐 감기는 물길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디깊은 곳으로 한없이 떨어지네. 정신이 아득하다네.
문득 눈을 떠보니, 바로 저승 연추문 앞에 떨어졌구나!
아! 드디어 강림이 저승에 다다랐다네. ‘저승이 멀다더니 삽작 밖이 황천이라’는 노랫말처럼, 문득 눈을 떠보니 저승일세그려!
이승과 저승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삶의 문제가 죽음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삶의 문제는 이인칭이나 삼인칭의 문제가 아니라 일인칭인 ‘나’의 문제다. ‘죽음을 앞에 두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삶’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신화는 우리에게 ‘저승 이야기’를 통해서 어릴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법을 가르친다.
죽음을 맞이하는 법을 안다는 것은 사는 법을 아는 것이기도 하다. 늘 죽음을 맞이하는 자에게 삶은 축복이 아닐까, 환희가 아닐까?
우리 신화의 강림은 이승과 저승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강림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늘 이판사판으로 사는 자의 ‘호탕함’과 ‘연연해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 강림이 어떻게 염라대왕을 잡아오는지 구경해보자.
그 힘 그 배짱 쓸 만하구나
강림이 저승문 앞에 적배지를 붙여놓고, 연주문 기둥에 망건을 벗어 머리에 베고 누운 채 배짱 좋게 염라대왕 나오기를 기다린다.
저승문 앞에서 꼬박 이틀을 기다리자 천둥 번개 치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저승문이 열리더니 앞에는 영기, 뒤에는 기류를 세우고 삼만관숙 육방하인이 길을 비키라고 외치면서 연주문을 나온다. 첫 번째 가마가 넘어가더니 두 번째 세 번째 가마가 넘어가고, 네 번째 가마가 넘어가더니 열두 사자를 앞세운 다섯 번째 가마가 멈칫 서면서 무섭게 호령한다.
“연주문에 붙인 적배지가 어떤 적배지냐?”
이원사자가 큰 소리로 말하자,
“이승 강림이가 저승 염라대왕을 잡으러 온 적배지입니다.”
그때 강림이 염라대왕이 타고 있는 가마 앞으로 내달려가 붕어 눈을 부릅뜨고 배에 잔뜩 힘을 실어 소리친다.
“염라대왕은 포승을 받으시오.”
“감히 어떤 놈이 길을 가로막는단 말이냐?”
난데없는 방해꾼에 염라대왕이 노하여 천둥 번개를 부르니, 세상이 캄캄해지고 천지가 요동을 한다. 강림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이 쿵더쿵 겁이 덜컥 솟는다. 하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 죽을 힘을 다해 열두 사자를 메다꽂은 뒤 세 신선이 준 홍사줄로 염라대왕이 탄 가마를 휘휘 묶는다.
“저승에 관장(官長)이 있으면 이승에도 관장이 있는 법. 아무리 저승 관장이라 해도 이승 관장 명령도 들어야 합니다.”
염라대왕, 그 배짱이 쓸 만한지라. 그도 그럴 것이 산 자가 저승의 열두 사자를 메다꽂으니 그 힘이 쓸 만하고,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염라대왕 앞에서 큰소리를 쳐대니 그 배짱 한번 쓸 만하다.
“넌 누구냐?”
“이승에서 온 강림이오.”
“용맹이 있어서 좋다마는 지금은 심복장자네 집 아기씨가 큰 병 들어 시왕맞이굿을 하며 나를 청하는 중이니 가서 술이나 한잔하고 가자.”
“그것도 좋습니다.”
굿판에 들어서니 시왕맞이하던 신녀가 염라대왕을 청해 음식과 술을 바친다. 염라대왕 말하기를,
“내가 받은 술 한잔 하시게나.”
강림이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고는 술에 만족하여 잔칫상에 쓰러져 잠자다 깨어보니 염라대왕 온데간데없구나. 강림이 놀라 사방을 둘러보니 없던 나무기둥이 보이는지라 강림이 이를 눈치채고 묻기를,
“이 집은 누가 지었느냐? ”
“강태공 서목수가 지었습니다.”
“불러오시오.”
강림 앞에 불려온 강태공 서목수에게 강림이 기둥을 몇 개 세웠느냐고 물으니,
“여든여덟 개를 세웠습니다. 이 기둥, 이 기둥은 내가 세웠습니다마는 저 기둥은 내가 세우지 않았습니다.”
“대톱 소톱 가져와 그 기둥을 자르시오.”
실금실작 설컹설컹 톱질을 하니 혼비백산한 염라대왕이 부엉이로 변신하여 큰 대 위를 날아오른다. 이에 질세라 매로 변신한 강림이 날아올라 날개로 덮치니 염라대왕이 이번에는 쉬파리가 되어 집구석으로 피했겠다. 거미로 변신한 강림이 거미줄을 쳐서 파리 다리를 옭아매니 염라대왕이 꼼짝없이 붙들린다.
우리 고전소설 ‘전우치전’에 나오는 강림은 모든 거지들을 모아 저잣거리를 다니며 양식을 빌어먹고 세상을 주유한다. 그 강림이 ‘손을 들어 한번 구름을 가리키니 구름 문이 절로 열리는’ 신기한 도술, 전우치를 꼼짝 못하게 할 정도로 뛰어난 도술을 부렸다고 한다. 전우치가 “소생이 눈은 있으나 망울이 없어 선생을 몰라뵈었다”고 사죄하고 누군지 알려달라고 물으니, “나는 강림도령이되, 세상을 희롱코저 두루 다니노라” 하였다. 세상을 희롱코저 다닌다는 강림의 술법이고 보니, 염라대왕조차도 한 수 아래로 접어둘밖에!
염라대왕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그동안 너를 시험해본 것이니라. 그만하면 네 청을 들어줄 만하구나. 먼저 가 있으면 모레 사오시에 내가 원으로 찾아가마.”
“그러면 징표라도 써주시오.”
강림을 돌려앉힌 뒤 염라대왕이 강림이 등에 임금 왕(王) 자를 새겨준다.
저런 졸부가 날 불렀느냐?
염라대왕에게 약속을 받은 강림이 이승으로 돌아오려고 하니 길을 알 수가 없다.
“올 때는 내 마음대로 왔으나 갈 때는 내 마음대로 갈 수가 없으니 저승길을 알려주시오.”
염라대왕은 앞발이 없는 흰 강아지 한 마리를 내주며 “이 강아지가 가는 대로 따라가면 알 도리가 있을 것”이라 한다.
앞서 걷던 흰 강아지가 헹기못에 당도하니 갑자기 달려들어 강림의 목을 물고는 헹기못으로 풍덩 빠진다. 살아 있는 사람 꿈꾸다 깨듯이 강림이 눈을 번쩍 뜨고 보니 이승이로다.
이때 흰 강아지가 강림의 목 앞쪽을 물었기 때문에 남자는 목 앞에 뼈가 튀어나오게 된 것이다.
강림이 이승을 오고 보니 어느 마을이 어느 마을인지 구별이 안 되는구나. 갈 길을 몰라 북방을 바라보니 불빛이 보인다. 강림이 불빛을 쫓아 찾아간 곳이 강림의 큰부인 집이라.
강림의 큰부인은 강림이 저승 가서 삼년상 첫 제사가 돌아오니 문 앞에 섰구나.
“설운 낭군님, 살았으면 하루바삐 돌아오고 죽었으면 길일 제사 많이 받아가시구려.”
그때 강림이 대문 밖에서,
“먼길을 넘어가는 사람인데 하룻밤 묵어갑시다.”
“오늘 밤은 묵어갈 수가 없습니다.”
“어인 일로 그렇습니까?”
“우리 집 낭군이 저승 가 삼년상 첫 제사가 되는 날입니다.”
“내가 바로 강림이오.”
“우리 낭군 강림이가 살아 있을 리 없습니다. 뒷집 김서방이거든 다음날 다시 오시오.”
“아니, 내가 강림이란 말이오. 날 못 알아보시겠소.?”
“그러면 관대 섶 한쪽을 내보이십시오. 그러면 알 도리가 있습니다.”
강림이 관대 섶 한쪽을 내보이니 본메본짱으로 저승 갈 때 귀 없는 바늘 한 쌈을 꼽은 게 삭아 오도독 부러진다.
“낭군님이 확실하구나.”
문을 열어 강림이를 맞이하여 방으로 들어가니 제사상이 차려져 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낭군님, 저승 가 삼년상 첫 시제가 됩니다.”
“나는 저승에서 사흘을 살았는데 이승은 삼년이 지났구려.”
‘저승의 하루가 이승의 1년’이라는 것이 바로 저승의 시간법칙이다. 얼마나 오묘하고 재미있는 법칙인지 잘 생각해보시라. 우리가 돌아가신 부모님 제사를 1년에 한 번 지낸다. 그러면 우리는 1년에 한 번 부모님을 추억하고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저승의 시간으로 말하자면 우리 부모님은 매일매일 자식들을 만난다. 이승의 1년은 저승의 하루와 같기 때문에, 우리는 1년마다 만나뵙지만 저승에 계신 부모님은 매일매일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신화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법칙이며 이승과 저승이 맞물려 돌아가는 시공간의 오묘한 사이클이다.
그날 밤 강림이가 사랑을 풀고 큰부인하고 누었더니, 강림의 큰부인 삼년상 첫 시제만 지나면 영영 살아보자 하던 뒷집 김서방이 다음날 아침에 와보니 망근 벗어 걸려 있고 관대 벗어 걸려 있으니까 원님에게 달려가,
“강림이 저승 가 염라대왕 잡아오겠다고 하고서는 낮에는 병풍 뒤에 숨어서 살림하고 밤에는 병풍 밖에서 부부간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원님이 날래게 박파도를 불러세워,
“당장 가서 강림이를 잡아오라.”
박파도가 강림이를 잡아서 관헌으로 끌고 오니 원님이 말하되,
“어느 것이 염라대왕이냐?”
“내일 사오 시에 염라대왕이 오실 것입니다.”
“좋다. 그때까지 강림이를 하옥하라.”
강림이 옥 안에 가두어두고, 다음날 사오시가 돼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김치원이 강림이를 끌어내라고 호통을 치는 순간 천지가 요동을 하며 깜깜해지더니 바람이 크게 불어 잠긴 문들이 저절로 열리면서 좁은 목에 벼락치듯 염라대왕이 관헌 마당에 들어서 호령한다.
“누가 나를 불렀느냐?”
겁이 난 김치원은 기둥 뒤로 숨어 벌벌 떨며 나오지 못한다.
“저런 졸부가 나를 불렀느냐. 강림이는 어디 갔느냐?”
강림이 불려나와 사정 이야기를 하니 염라대왕은 과양상이를 불러오도록 한다.
“애기 낳으면서 공이 들었느냐?”
“이를 말씀입니까?”
“애기 죽으니 어떻더냐?”
“애가 아픕디다.”
“아이들은 어디 묻었느냐?”
“큰놈은 앞밭에 묻고 샛 놈은 뒷밭, 작은놈은 옆밭에 묻었습니다.”
“그러면 그 죽은 아들들 뼈라도 있느냐 없느냐. 가서 생빈눌을 파보자. 아무도 손대지 말고 과양상이 네 손으로 무덤을 헤쳐보아라.”
아니나 다를까. 과양상이가 세 밭의 묘를 다 파헤쳤는데도 시체는 없고 칠성판만 있구나.
“괘씸한 년! 범을황제의 아들 삼형제 돈을 털어먹고 죽이지 아니하였느냐? 그게 네 아들로 아느냐? 범을황제 아들로서 너한테 공 갚으러 온 거다.”
염라대왕이 사람들을 까치못에 데려간다. 염라대왕이 금풍채로 까치못을 삼세번 후리니 까치못이 바짝 말라서 물기가 없는 마른 먼지가 나온다. 범을황제의 죽은 아들 시체는 뼈만 살그랑이 남아 있었다. 흩어진 뼈들을 모아 염라대왕이 금풍채로 삼세번 후리니 삼형제가,
“아이고, 봄 잠이라 늦게 잤습니다.”
벌떡 일어나니 염라대왕 과양상이를 불러다,
“저기 보이는 아이들이 너희 아들 삼형제냐?”
“예. 우리 아들 삼형제랑 똑같습니다.”
범을황제 아들 삼형제가 칼 받으라, 활 받으라 죽일 판으로 들어가니 염라대왕이 말하되,
“원수는 내가 갚아주마. 부모님을 어서 찾아가라.”
그때서야 과양상이가 죄를 실토하니 염라대왕이 호령하며,
“네 아들 죽는 것은 애가 아프고 남의 아들 죽이는 것은 즐겁더냐?”
염라대왕은 아홉 마리의 소와 일곱 명의 장정을 불러서 과양상이의 몸을 묶고 아홉 가닥으로 찢어 죽이도록 했다.
저승법은 맑다고 하였다. 과양상이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이승과 저승을 오간다. 과양상이는 이승법 아래서는 떵떵거리며 잘살았다. 그러나 기어코 자신의 욕심을 잊지 못해 저승의 관장을 불러내고야 만다. 이승을 대표하는 관장이 김치원이라면, 저승을 대표하는 관장은 염라대왕이다. 세 형제를 토막 살인한 과양상이는 결국 아홉 가닥으로 찢겨 죽는 형벌을 당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의 그 법으로.
이때 보복의 정당성은 힘있는 자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다. 저승법이 맑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힘없는 자들을 위한 보호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즉, 힘있는 자들의 폭력은 결코 돈으로 해결할 수 없고 똑같은 수준의 폭력을 되돌려받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힘있는 가해자가 다시 복수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과양상이로 대표되는 현실의 강자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는 수단으로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저승법의 본래 의미가 있었다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고대의 ‘저승법’은 오늘날 신화로서 여전히 살아 있다. 정의의 첫 출발점으로서 말이다.
자, 과양상이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그러나 저승 본풀이 두 줄기 중 한 줄기인 강림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다.
지붕 상마루로 들어가 이름 세 번 불러 영혼 인도
강림은 원래 신선이다. 잠깐 등장하는 ‘전우치전’에서도 그랬듯, 강림은 도술로도 천하를 놀라게 할 만한 도령님이었던 것이다. 거지들을 벗삼아 천하를 주유하며 행각하는 ‘노닐파’이기도 하고, 못된 놈을 보면 서슴없이 나서서 징치하는 ‘행동파’이기도 한 강림도령. 세상에 거칠 것이 없는 아이 도령 강림!
염라대왕은 똑똑한 강림이를 모셔다 차사로 임명하고자 한다. 염라대왕이 강림이를 모시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승과 저승을 오가면서 수명이 다한 사람들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는 역을 왜 강림이에게 맡기고자 하는가 말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왜 하필 ‘아이 신선’ 강림인가?
사람들이 저승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저승 가는 길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저승차사를 보내면 끝내는 안 간다고 버티며 싸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승법보다 저승법이 맑고 깨끗하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아니, 더럽고 축축하더라도 이승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과 죽음의 경지(境地)를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자가 필요한 것이다. 술 한잔을 나누며 시를 읊기도 하고 함께 노닐다가 신선의 도를 가르쳐도 좋을 법한 자. 때로는 용력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강제로라도 데리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닐듯이 저승으로 안내해줄 자, 그런 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 염라대왕이 아닌 사람들이 가장 원했던 저승길의 동반자는 ‘무서운 저승차사’가 아니라, ‘아이 신선’인 강림도령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 신선’ 강림도령을 데려다가 열여덟 각시를 거느린 ‘젊은 사령’으로 만들어놓고서도 여전히 강림도령으로 불렀던 것이다.
몸을 가질래? 혼을 가질래?
염라대왕이 김치원에게 말하기를,
“김치원님아, 강림이를 잠깐만 빌립시다. 저승에서 부리다가 보내리다.”
“아니됩니다.”
“그러면 우리 반 조각씩 나누어 가지세.”
“좋습니다.”
“몸을 가지겠습니까, 혼을 가지겠습니까?”
참으로 의미심장한 구절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은 이 상황에서 어떤 답을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몸과 혼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몸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혼을 가질 것인가?
어리석은 김치원님이 말하기를,
“몸을 가지겠습니다.”
그제는 염라대왕이 강림사자 강파도 머리 위 가마의 머리털 3개를 뽑아서 저승으로 돌아간다.
그래, 정말 그렇다. 김치원이 아니고 ‘어리석은 김치원’이다. 몸을 가지겠다는 ‘어리석은’ 김치원이야말로 우리 인간들이 원하는 바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늘 몸으로 사는 존재들이니까. 혼은 어디에다 버려두고 남은 몸, 그 몸에 온갖 사랑과 애정을 쏟아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강림이 동헌마당을 걷다 말고 갑자기 능경대를 짚은 양 우두커니 서 있구나. 울럿이(얼빠진 자세로 멍청히) 서 있구나. 김치원이 술을 먹다 말고 말하기를,
“강림아, 이 술 한 잔 먹고 저승 갔다 온 얘기나 해봐라. 어디 한번 들어보자.”
한 번 말해도 펀펀, 두 번 말해도 펀펀 강림이 잠잠하다. 울컥하는 김치원.
“저놈 봐라, 저승 염라대왕을 오라지었노라 잡아왔노라 하고는 말대답도 아니하는구나.”
툭 건드리니 뎅그랑이 푸더지는구나(자빠지는구나). 입에 거품이요, 코에 송인(방금 죽은 송장의 콧속이 거무스름한 것)이 올라 강림이 죽어간다. 혼이 빠져나간 강림, 가까이 가서 보니 이번에는 진짜로 새파랗게 죽었구나.
강림의 큰부인이 동헌마당으로 달려나와 말하기를,
“원님아, 우리 낭군 무슨 못한 일 있습디까? 강림사자 강파도를 살려냅서!”
원님 앞으로 달려들어 허우 튿으는 게 원님도 죽고 보니 옛날에는 사람 죽어 대살법(代殺法)이 있었다네.
강림의 큰부인 섭섭해하여 대·소상 3년에 이르는 상을 치러 이때부터 기일 제사법이 마련됐다.
물명주 한 동을 내어주며,
“이걸로 낭군님 옷 해 입혀라.”
옷을 해 입히니 베 한 동을 내주며,
“이걸로 매치(시신을 감싸는 것)하라.”
삼베로 시신을 휘감아 묶고는 섭섭하여 적삼 들러 초혼하고, 없는 곡식 낭자하여 칠성판을 들러놓고,
“조관하고 입관하라.”
입관하고 섭섭하여 성복제나 해볼까? 성복제 하고 섭섭하여 이제는 묻자고 하니까 택일하고 섭섭하여, 일포제 하고 섭섭하여, 조관하고 들어내어, 동관하고 들어서 나가,
마흔여덟 상여꾼 말캐나무 상여화단 ‘어기낭창(상여노래에서 받는 소리)’하여도 섭섭하다. 하관하고도 섭섭하여,
“초우제나 지내라.”
묻어서 초우제 지내고 섭섭하여 재우제, 삼우제, 졸곡, 초하루 보름 삭망 시안상을 놓아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상을 놓는구나.
그래도 섭섭하여 1년에 한두 번 잊어버리지나 말자고 세 명절 기일 제사법을 마련했구나.
“기일 제사 명절을 지내라.”
적배지 잊어버린 까마귀
저승에 간 강림에게 염라대왕이 분부하길,
“인간사람 여자는 칠십, 남자는 팔십에 차례차례 저승으로 데려와라.”
강림이가 적배지 붙여두려고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다가 길가에 앉아 쉬고 있으니 까마귀가 까옥까옥하며,
“그 적배지를 내 앞날개에 붙여주십시오. 인간세상에 가서 붙여두고 오겠습니다.”
강림이 적배지를 까마귀에게 줬더니 앞날개에 달아서 인간세상으로 날아간다. 까마귀가 가다 보니 말이 죽은 밭에서 말을 잡고 있으니, 말 피 한 모금 얻어먹고 가려고 까옥까옥 울어댄다. 이 소리에 말 잡던 백정이 말발굽을 끊어 까마귀에게 집어 던지니 까마귀가 놀라 날아오르느라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그 바람에 적배지가 후두둑 떨어진다. 담꼬망에 있던 백구렁이가 그 적배지를 받아 재빠르게 먹어 들어간다.
그때 나온 법으로, 칠성(뱀·부를 주는 사신)은 죽는 법이 없어 아홉 번 죽어 열 번 환생하는 법이다.
까마귀가 옆을 쳐다보니 솔개가 앉아 있어 말하기를,
“내 적배지 돌려달라, 까옥.”
“아니 보았노라, 뺑고로록.”
그때 나온 법으로 지금도 까마귀와 솔개는 만나면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싸우는 법이라.
결국 까마귀는 적배지 없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네.
“아이 갈 데 어른 갑서.
어른 갈 데 아이 갑서,
부모 갈 데 자식 갑서.
자손 갈 데 조상 갑서.
조상 갈 데 자손 갑서.”
거은 물 거은 다리를 주었다네. 제 목숨이 다해 저승 가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뒤바뀌어버렸다네.
까마귀도 사납게 울어 사나운 법이라. 아침에 우는 까마귀는 아이 죽을 까마귀, 낮에 우는 까마귀는 젊은 사람 죽을 까마귀, 오후에 우는 까마귀는 망년 노인 죽어갈 까마귀, 지붕 위의 상(上) 가지에서 우는 까마귀는 상인 죽을 까마귀, 중간 가지에서 우는 까마귀는 중인 죽을 까마귀, 낮은 가지에서 우는 까마귀는 하인 죽을 까마귀, 꺅꺅! 듣기 싫은 소리로 우는 자장 까마귀는 싸움 날 까마귀, 동데레 앉아 우는 까마귀는 양식 없는 손님들이 올 까마귀, 서쪽에 앉아 우는 까마귀는 소문 기별 올 까마귀, 초저녁에 우는 까마귀는 불(화재)이 날 까마귀, 밤중에 우는 까마귀는 역적도문 살인 날 까마귀.
이리하여 저승 초군문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가득 찼다네. 깜짝 놀란 저승의 최판관이 강림이에게 묻기를,
“차례차례 오라고 했는데 어떻게 아이 어른 다 왔느냐?”
이에 강림도 놀라 급히 까마귀를 잡아서 문초하니 ‘적배지는 말 죽은 밭에 들어가서 잃어버렸다’고 이실직고한다.
강림이 밀대로 된 곤장 보릿대 형틀에 때죽나무 막대로 까마귀 아랫도리를 후린다. 그때의 법으로 ‘갈아놓은 밭의 까마귀 걸음’이라 하여 아장아장 앙기조침 걷는 법을 마련했다네.
강림에게 염라대왕이 분부하되,
“동방삭이를 잡으려고 아이 차사가 가면 어른이 되고 어른 차사가 가면 아이가 되어도 잡아오질 못하니 어찌된 일인고? 네가 동방삭이를 잡아오면 한 달을 놓아주마.”
“알겠습니다.”
강림이가 인간세상으로 내려와서 검은 숯을 냇가에서 발강발강 씻고 있으니까 동방삭이가 지나가다 말고 말하기를,
“어떤 일로 숯을 씻고 있느냐?”
“검은 숯을 백일만 씻으면 하얀 숯이 되어서 백 가지 약이 된다 하여 씻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놈아, 나 동방삭이 삼천년을 살고 있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강림이가 방긋 웃으며 옆에 차고 있던 홍사줄을 풀어 동방삭이 몸을 묶으니,
“어떤 차사가 와도 날 잡을 차사는 없더라만 동방삭이 삼천년을 살다 보니 강림의 손에 잡히는구나. 어서 저승에 가자.”
염라대왕에게 바쳤더니 염라대왕 말하기를,
“강림이 똑똑하고 엽렵하니 사람 잡는 인간 차사로 들어서라.”
이렇게 해서 강림이 드디어 인간사람 잡아가는 강림차사가 되었다네.
봉황의 눈 서슬 퍼런 차사
느닷없이 오면서도 어김이 없고 비정하기로는 죽음의 사자, 차사만한 것이 없는 법이다. 차사는 염라대왕이 있는 저승으로 사람을 데려가기 위해 이승으로 내려온다. 차사는 복장부터 서슬이 퍼렇다. 남색 바지에 백색 저고리, 자주색 행전을 두르고 백색 버선에 미투리를 신고 있다. 머리에 까만 쇠털 전립(戰笠)을 쓰고 한산모시 겹두루마기를 두르고 남색 쾌자를 걸친다. 옆구리에는 붉은 오랏줄을 달고 옷고름에는 적배지를 달아매고 팔뚝에는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석자 오치짜리 팔찌걸이를 찬다. 가슴에는 용(勇) 자, 등에는 왕(王) 자가 새겨져 있고 등뒤에는 상여의 용두머리를 매어 끌고 갈 행차배를 지고 온다. 눈은 부릅뜬 것이 봉황의 눈이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강림차사는 적배지(赤牌旨·붉은 천에 저승에 갈 자의 이름이 쓰여 있다)를 들고 마을 사람들의 생명을 관장하는 본향 당신에게로 가서 호적과 장적을 맞춰본 뒤 데리고 갈 사람의 집으로 간다. 그러나 집안의 신들이 지켜주기 때문에 영혼을 잡아가는 데 번거로움을 겪는다. 문 앞에는 일문전신이 있어 못 들어가고, 뒷문으로 들어가자니 뒷문전신, 부엌으로 들어가자니 조왕신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차사는 지붕 상마루로 들어가 죽은 자의 나이와 이름을 크게 세 번 부른다. 초혼(招魂) 이혼 삼혼. 그러면 육신에 묶여 있던 영혼이 홀연히 몸을 떠나 비로소 집 밖으로 나가게 된다. 강림차사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 저승으로 가서 저승차사에게 인계하면 저승차사가 비로소 명부의 세계로 데리고 간다.
우리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은 참으로 아름답다. 하늘과 땅을 떼내고 우주를 만든 여신 마고, 쉐멩뒤, 그 아홉 아들딸인 울뤠마루, 보름웃도, 동백자… 이승과 저승을 나누어 인간세상을 창조한 별왕 형제… 그 가운데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신이 운명과 시간의 여신인 ‘오늘’이다. 탐라신화의 ‘오늘이 이야기’는 ‘조선무속의 연구’에서 유일하게 채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다. 시간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하늘과 땅을 떼낸 마고가 우주 공간의 운행과 더불어 시간을 흐르게 했음이 분명할 터.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과 땅을 떼낸 신은 크로노스다. 크로노스가 맞붙어 있는 하늘 우라노스와 땅 가이아를 떼내려고, 자신의 아비인 우라노스의 성기를 낫으로 잘라버렸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낫은 우리 마고와 같은 신격으로 보이는 여신 가이아가 자기 뱃속(지구의 중심)의 ‘힘줄의 근원’에서 결정을 뽑아 그걸 날카롭게 다듬어서 만들어준 것이다. 크로노스의 낫을 ‘천공의 낫’ 또는 ‘시간의 낫’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하늘 땅을 떼낸 데서부터 시공간이 시작했기 때문이겠다. 크로노스를 그린 그림에는 낫을 들고 선 크로노스 곁에 해시계나 모래시계가 등장하는데, 낫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의 속성을 보여주며 시계는 시간 자체를 상징한다. 그에 비해서 우리 신화의 시간은 ‘오늘’이 중심이다. ‘오늘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시간 자체의 이름으로 신이 된 오늘이, 매일이는 있지만 어제 내일이는 없다는 사실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제는 ‘어제의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의 오늘’일 것이다. 자, 오늘이를 만나보자. 성도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 옥 보석같이 예쁘장한 계집아이가 고요하고 쓸쓸한 들에 외로이 나타나니 그를 발견한 세상사람들이, “너는 어떠한 아해냐?” 묻더라. “나는 강님들에서 솟아났습니다.” “성이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이냐?” “나는 성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리하니, “어찌하여 지금까지 살아왔느냐?” “내가 강님들에서 솟아날 때부터 한 마리 학이 날아와 한 날개로 요를 만들어 깔아주고, 한 날개로는 이불을 만들어 덮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입에 야광주를 물려주어 그리저리 살려주니 오늘까지 무사히 살아왔습니다.” “나이는 어떻게 되느냐?” “나이도 모릅니다.” 이러저러 사람들이, 너는 난(태어난) 날을 모르니 오늘을 난 날로 하여 이름을 오늘이라고 하라.
오늘이 어떻게 나이가 있나
이야기의 시작을 그냥 읽으면 정말 재미없다. 신화의 상징으로 읽어야 한다. 오늘을 난 날로 하여 이름이 오늘이라! 오늘은 시간이므로 오늘은 태어난 날이 오늘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성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른다. 이것은 이야기의 문맥에서 ‘모른다’이지만 실제로는 ‘없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이다. 성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더군다나 나이도 모른다. 즉, 나이도 없다. 오늘이 어떻게 나이가 있겠는가? 여러 백성들에게 이름을 지어 얻은 오늘이. 학을 부모 삼아, 강님들의 걸어다니는 짐승, 날아다니는 새들을 벗 삼아 이리저리 다니다가 어느 날 박이왕의 어머니 백씨 부인을 만난다. “너는 오늘이가 아니냐?” 처음 보는 부인이 대뜸 이름을 부른다. “네, 오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 이름을?” “너의 부모 나라를 아느냐?” “모릅니다.” “너의 부모 나라는 원천강이라.” 오늘이 벌렁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묻기를, “원천강은 어찌 갑니까?” “원천강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든 계절이 모여 있는 곳이지. 계절의 향기와 바람이 시작되고 시간이 시작되는 곳이란다. 하지만 인간인 네 몸으로 가기가 쉽지 않을 게다.” 옥 보석같이 예쁘장한 줄만 알았던 오늘에게서 뚝심이 묻어난다. “그래도 가겠습니다.” “네가 정 원천강을 가려거든 서천강가의 흰 모래땅으로 가거라. 거기 가면 별충당이라는 정자에서 글 읽는 도령이 있으니, 그 도령에게 길을 물으면 알 도리가 있을 것이야.” 오늘이 강님들을 떠나는구나. 자신을 키워주던 학을 남겨둔 채, 외로운 오늘이의 벗이 되어준 날짐승, 들짐승을 뒤로 한 채 끝도 없이 펼쳐지는 흰 모래땅의 바람을 맞으며 기약도 없이 가는구나.
장상•연꽃나무•이무기의 부탁
오늘이 얼굴에 모랫가루가 딱지처럼 눌러 박힐 때쯤 서천강가의 흰 모래땅에 당도하니 과연 젊은 도령이 별충당이라는 정자에 앉아 글을 읽고 있다. 쉬지도 않고 글을 읽는 도령과 문밖에서 종일토록 서 있는 오늘이. 그러다 날이 저물어간다. 오늘이 정자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길을 디디며, “지나가는 사람인데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석양의 붉은 노을만 정자를 더욱 붉게 비출 뿐 도령은 글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오늘이 마음을 다독이고, “나는 오늘이라는 사람입니다.” 푸른옷동자가 그제야 글 읽기를 멈추고 돌아보며, “나는 장상이라 하오. 옥황의 분부가 여기 앉아 언제든지 글만 읽어야 한답니다. 그런데 당신은 무슨 일로 이곳에 오셨습니까?” “부모 나라가 원천강이라고 하여 그곳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오늘이가 대답하니 푸른옷동자가 친절한 말로,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올라와서 이곳에서 쉬었다가 날 새거든 떠나십시오.” 오늘이 정자에 올라 고맙다는 말을 건넨 뒤 백씨 부인을 만난 사실을 말하며 길을 인도해줄 것을 간청하니, “여기서 모래땅을 며칠 더 가다보면 연화못이 있는데, 못가에 오늘님 키의 세 배쯤 되는 연꽃나무가 있을 것입니다. 그 연꽃나무에게 물으면 알 길이 있을 것입니다.” 이튿날 날이 새자 떠날 채비를 하는 오늘이에게 푸른옷동자가 부탁을 한다. “원천강에 가거든 왜 내가 밤낮 글만 읽어야 하고 성밖으로 외출 해서는 안 되는지 이유를 물어다가 전해주십시오.” “꼭 그리하겠습니다.” 오늘이 연화못을 찾아서 또다시 몇 날 며칠을 모래땅을 걷다보니 푸른옷동자 말대로 과연 연화 못가에 연꽃나무가 있더라. 오늘이 연꽃나무에게 다가가서, “연꽃나무야, 말 좀 물어보자. 어디로 가면 원천강을 가느냐?” “웬일로 원천강을 가는고?” “나는 오늘이라는 사람인데 부모 나라 원천강을 찾아가노라.” “반가운 말이로구나. 그러면 나의 팔자나 알아다 주시오.” “무슨 팔자이뇨?” “나는 겨울에는 움이 뿌리에 들고(뿌리만 살아 있고), 정월이 나면 움이 몸 중에 들었다 이월이 되면서 가지에 가고, 삼월이 나면 꽃이 되는데 윗가지에만 꽃이 피고, 다른 가지에는 꽃이 아니 피니 이 팔자를 물어줍서.” “그러면 원천강은 어찌 가느냐?” “가다보면, 청수 바다가 있을 것이오. 그 바닷가 모래밭에 몸길이 스무 자가 넘는 천년 묵은 이무기가 누어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을 터이니, 이무기에게 물어보면 좋은 도리가 있을 것이오.”
오늘이가 연꽃나무와 헤어진 뒤 몇 날 며칠 가로질러 서쪽으로 가니, 푸르디푸른 청수바다가 펼쳐진다. 청수 바닷가 모래밭에 천년 묵은 이무기가 불이 뿜어져나올 것 같은 눈을 하고 고개를 꺼덕꺼덕, 몸을 비틀비틀, 꼬리를 꿈틀꿈틀 바닷가 모래밭을 지치며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이무기의 모양새에 지레 질린 오늘이는 겨우 용기를 내 말하기를, “이무기님, 어찌하면 원천강을 찾아갈 수 있는지 인도해줍서.” 이무기는 눈앞에 작고 가냘프게 생긴 계집아이를 무심히 바라보더니, “길 인도하기는 어렵지 아니하나, 어찌하여 원천강을 찾아가는가?” “부모 나라를 찾아 서천강가 흰 모래땅을 지나 연화못을 거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럼. 내가 길을 인도하는 대신 나의 부탁도 하나 들어주시오” “그러면 부탁은 어떤 것입니까?” “다른 이무기들은 야광주를 하나만 물어도 용이 되어 승천을 하는데, 나는 야광주를 셋이나 물어도 용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겠는지 원천강에 가거든 물어다 주시오” “잊지 않고 그리하겠습니다.” 이무기는 거대한 몸을 지치더니 오늘이에게 등을 내민다. 오늘이를 등에 태운 이무기는 청수바다에 굉음을 내며 뛰어든다. 끝없는 청수바다를 사흘 밤낮을 헤엄쳐 건너편에 오늘이를 넘겨주는구나. 이무기가 오던 길로 돌아가며 오늘이에게 원천강 가는 길을 일러주는데, “이 길로 따라 가다보면 매일이라는 낭자를 만날 터이니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알 도리가 있을 것이오.” 이무기와 작별하고 몇 날 며칠을 걸어가다 보니 서천강가 흰 모래땅에 장상 도령이 거처하던 별충당과 똑같이 생긴 정자에서 장상 도령처럼 앉아서 글을 읽고 있는 웬 처자가 보이더라. 오늘이가 장상 도령을 본 듯 반가운 마음에 덥석 통성명부터 한다. “오늘이라 합니다.” 하지만 저번의 장상 도령처럼 이 처자, 오늘이가 안중에 없다. 오늘이 더 가까이 다가가, “원천강을 가는 길을 인도하여줍서.” 글 읽던 처자가 그제야 눈을 돌려 오늘이를 맞는다. “당신은 오늘이고 난 매일이니 우린 인연이 있나 봅니다. 그런데 원천강은 어찌 가십니까?” “부모 나라를 찾아 원천강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매일이가 흔쾌히 오늘이 길 인도를 승낙하면서 부탁을 한다. “원천강에 가면 왜 내가 항상 글만 읽고 살아야 하는지 내 팔자를 물어다 주세요.” “꼭 그리하지요.” 오늘이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작별할 때 매일이 일러준다. “이 길로 가다가 산을 여러 번 넘으면 우물이 있고, 거기에 하늘의 궁녀가 울고 있으리니 그들에게 물으면 소원을 성취할 것이오.”
바가지의 구멍
오늘이 또 길을 가는구나. 끝도 없는 길을 또 가는구나. 가다보니 산이 앞을 가로막는데 산 끝자락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구나. 그 산을 넘고 넘어 넘어가니 산이 또 앞을 가로막고, 그 산 너머 산이 또 가로막는구나. 산을 삼세번 넘으니 아닌 게 아니라 우물가에서 하늘의 궁녀들이 흐느껴 울고 있구나. 오늘이 다가가 궁녀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저희들은 전에는 하늘 옥황의 시녀였답니다. 우연히 득죄하여 우물을 푸고 있습니다. 우물을 다 퍼내기 전에는 하늘로 올라갈 수가 없는데 아무리 퍼내려고 하여도 푸는 바가지에 큰 구멍이 뚫려 있어 조금도 물을 밖으로 퍼낼 수가 없습니다.” 말을 마친 궁녀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듯 오늘이에게 도움을 청하니 오늘이가 말하길, “옥황의 신인이 못 푸는 물을 어리석은 인간으로 어찌 풀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막 떠오른 생각이 있으니 그리 해보겠습니다”. 오늘이는 정당풀을 베어와 풀을 뭉쳐 베개처럼 만들고 그것으로 바가지의 구멍을 막았다. 거기에 송진을 녹여서 막은 곳을 칠한 다음 볕에 말렸다. 그리고 정성을 다하여 옥황상제에게 축도한 뒤 그 바가지로 물을 푸니, 순식간에 물이 말라붙거늘 궁녀들이 사지에서 살아나온 듯이 기뻐하는구나. 궁녀들이 너무 고마워서, 오늘이가 청하는 원천강 가는 길을 안내하며 길동무해주겠다고 나선다. 오늘이는 궁녀들을 따라 또 길을 간다. 산을 수없이 넘고 강을 서너 번 넘어 며칠을 더 가니 배처럼 구불구불 만리장성으로 쌓인 별당이 보였다. “여기가 원천강입니다. 부디 오늘님 가는 곳마다 행복하십시오.” 궁녀들은 축도를 하고 오늘이에게 작별을 하며 바삐 옥황으로 제 갈길을 가는구나. 오늘이는 원천강으로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세 가지 부탁도 받는다. 장상의 부탁과 매일이의 부탁은 같은 것으로 보고 세 가지 부탁이라고 하였다. 오늘이가 여행에서 만난 문제들과 문제풀이의 해법이 바로 시간의 열쇠임이 분명하다. 다음 회에 함께 풀어보자.
오늘이가 드디어 원천강에 다다랐다. 서천강가의 흰모래 땅과 연화못을 거쳐 청수바다를 건너, 바위산을 넘고 우물을 지나 많고 많은 깊은 산과 너른 강을 넘고 건너 부모 나라 원천강에 온 것이다.
문지기 제지에 “무정코 무정타”
원천강 주위에는 굽이굽이 만리장성을 쌓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문 앞에는 문지기가 파수를 보고 있었다. 오늘이가 문을 열어달라고 하니, “넌 누구냐?” 하고 묻는다. “나는 인간세상 강림들에서 온 오늘이라고 합니다.” “무슨 연고로 이곳에 왔는고?” “이곳이 나의 부모 나라라고 하여 찾아왔소.” “문을 열어줄 수 없노라.” 문지기의 거절은 너무나 냉정했다. 가련하고 가련하다. 오늘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오늘이는 최후의 한 오라기의 용기마저 상실하고 눈앞이 캄캄해 성문 앞에 쓰러진다. 오호 통재라! 오늘이가 땅에 엎드려 통곡하는구나.
수백만 리 멀고도 먼 인간세상에서 처녀 혼자 외로이 온갖 산과 온갖 물을 건너 고생 겪으며 부모 나라라고 찾아왔는데 이렇게도 박정하게 하는구나 이 문안에는 내 부모가 있으련만은 이 문 앞에 내 여기 왔건만은 매일이는 소원 성취한다더라만은 원천강의 신인들은 너무 무정코 또 무정타 빈 들에 서 홀로 울던 오늘이, 죽을 길을 찾는다. 부모는 다 보았나 내 할 일 다하였다 강림들에 가면 무엇하리 내 여기서 죽자 내 죽는 건 원통할 일 없으나 오던 길 팔자 부탁은 어찌하리 박정한 문지기야 무정한 신인들아 그리웁던 어머님아 그리웁던 아버님아
오늘이가 이리 말하며 의식이 왔다갔다 혼절할 듯 흐느껴 우니, 돌 같은 문지기의 염통에도 눈물의 동정이 우러난다. 문지기가 부모 궁에 올라가서 이런 사실을 말하니 벌써 부모 궁에서도 알고 있었다. 오늘이의 비명 소리가 부모에게까지 흘러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문지기가 말하기를, “저의 책임으로 문을 못 열어주었습니다만은 어찌하오리까?” “오늘 벌써 다 알고 있었느니라. 어서 오늘이를 들어오게 하라.” 낙망하고 또 낙망하던 오늘이 천만 의외의 기쁜 소식이라. 꿈인가 하며 문지기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간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뜰 앞에서 노부부가 오늘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묻는구나. “처녀 혼자 몸으로 왜 이곳에 왔느냐?” “부모님을 찾아왔습니다.”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던 아이냐?” “인간세상 강림들에서 저절로 솟아나 학의 새 깃 속에서 자고 놀고, 야광주를 물려주어 살았습니다.” “내 딸이 틀림없구나. 강림들에서 자라난 내 딸이 틀림없구나.” 노부부는 오늘이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늘이를 반겨주는구나.
노부부 또 하는 말이, “너를 낳은 날, 옥황상제가 우리를 불러서 원천강을 지키라고 하니 어느 명이라고 거역할 수가 있었겠느냐? 여기 있게 되었으나 항상 네 하는 일을 다 보고 있었느니라. 학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일렀더니 이렇게 어엿한 처자가 되었구나.” 그동안 못다 한 회포를 푸느라 하루 이틀 사흘이 쏜살같이 지나갔구나. 마음을 다독이고 나서 노부부가 오늘이를 데리고 원천강 곳곳을 다니며 구경을 시켰다네.
계절의 신, 풍요의 신
오늘이가 만리장성이 둘러싸인 원천강의 이쪽 문도 열어보고 저쪽 문도 열어보고, 발길 닿는 곳마다 열어보는구나. 원천강은 춘하추동 네 시절이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곳을 보면 봄바람이 불며 온갖 종류의 봄꽃이 만발해 있고, 저곳을 보면 푸르디 푸른 녹색 나무가 바다처럼 펼쳐진다. 뒤를 돌아보니 가을의 단풍이 한 폭의 그림 같고, 옆은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겨울밤이 이어지는구나.
사계절의 신은 아마도 ‘태어남’과 ‘자람’과 ‘열매 맺음’, 그리고 ‘죽음’의 네 가지 성격을 가진 신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그는 ‘태어남’을 다스리는 신도 아니고 ‘죽음’을 다스리는 신도 아니다. ‘태어남’을 다스리는 신은 삼신 혹은 삼승할망이고, ‘죽음’을 다스리는 신은 대별왕과 그의 시왕들이다. 유명한 염라대왕도 시왕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사계절의 신은 정태적인 신이 아니다. 움직이는 신이다. ‘변화’의 신이다.
어제도 내일도 없어 오늘밖에 없어 자고 나도 오늘이고 또 자고 나도 오늘이야
그 ‘오늘’은 가만히 정지해 있는 오늘이 아니다. 끊임없이 흐르는 변화의 오늘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계절의 생성 자체가 ‘변화’를 상징한다. 크로노스 시대에는 늘 봄이었다. 그러나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무한 지옥 타르타로스에 가두고 나서 황금의 시대는 은의 시대로 넘어간다. 시간을 만든 신은 크로노스다. 그러나 계절을 만든 신은 제우스다. 제우스는 늘 봄이던 계절을 뚝 분질러서 겨울과 여름, 날씨가 변덕스러운 가을, 짧은 봄 네 계절로 나누었다. 그로부터 대기가 메말라가는 통에 불볕더위가 계속되는가 하면, 북풍이 물을 얼리고 나뭇가지에다 고드름을 매다는 혹한이 오기도 했다고 하지 않은가? 땅에다 씨앗을 뿌리고 소를 코뚜레에 꿰어 이랑을 갈기 시작한 시점도 바로 이때다.
계절을 만든 신은 제우스지만, 그 계절을 계절답게 만든 신은 디오니소스다.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사람들이 거리를 누빌 때는 남성의 생식기와 비슷한 남근상 ‘팔로스’를 앞세우고 다녔다고 한다. 그의 별명이 바코스인데, 뜻이 ‘싹’이다. 씨앗이 땅에서 제 몸을 썩혀 싹을 내어 자라고 열매를 맺어 다시 땅에 들어 부활하는 ‘변화’의 상징이 아닌가? 디오니소스는 계절의 신이요, 곡식과 과일의 신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빚은 술의 신이다. 그 술을 마시고 부리는 광기는 열광적인 강신(降神) 상태이자, 질서에 대한 혼돈의 표현이다. 그것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부활의 의식이다. 그를 통해서 디오니소스는 썩어서 다시 생명을 탄생시키는 밀알의 신으로서 땅의 풍요를 상징하는 것이다.
원천강의 사계절을 돌아보고 나서 오늘이는 부모에게 여기까지 오게 도와준 벗들의 세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한다. 오늘이가 세 가지 부탁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이야기하는구나. 노부부가 차근차근 풀어주는구나. “장상 도령과 매일 낭자는 하늘이 맺어준 배필, 천생 배필이로구나. 그 인연을 서로 모르고 있으니 글만 읽을 수밖에. 두 사람이 부부가 되면 만년영화를 누릴 것이니라. 연화못의 연꽃나무는 윗가지의 꽃을 따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주면 다른 가지에도 꽃이 만발할 것이리라. 청수바다의 이무기는 야광주를 한 개만 물었으면 용이 될 터인데, 너무 욕심이 많아 세 개를 물었으니 용이 못 된 것이니라. 그러니 처음 본 사람에게 야광주 두 개를 주면 곧 용이 되리라.”
오늘이가 부모님이 한 말을 새겨듣고 또다시 온 길을 돌아가려 하직 인사를 하는데, “어머님 아버님, 아름다운 원천강에서 오랫동안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간세상에서 온 몸이라 인간세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 가지 부탁도 풀어드려야 하구요.” 노부부가 한편으로는 애틋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흐뭇하기 이를 데가 없다. 원천강을 떠나려는 오늘이에게 말하기를, “연화꽃과 야광주를 얻으면 누구나 신녀가 될 수 있을 것이니라.”
세 가지 열매를 맺다
오늘이가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간다. 깊은 산과 너른 강을 건너고 하늘의 궁녀들을 만났던 우물을 지나 바위산을 넘어간다. 매일이가 있는 별충당 정자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글을 읽던 매일이가 화들짝 반기며 오늘이를 맞는다. “그래 부모님은 만났습니까? 내 부탁은 알아보셨습니까?” “매일 낭자는 장상 도령이라는 분과 인연이 있답니다. 그분과 혼인하면 만년영화를 누린다는데….” “하지만 난 장상 도령이 누군지도, 어디에 사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장상 도령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지요.”
그리하여 오늘이와 매일이는 며칠 밤낮을 걸어 청수바다에까지 이른다. 천년 묵은 이무기가 고개를 끄덕끄덕, 몸은 비틀비틀, 꼬리는 꿈틀꿈틀 이제나저제나 오늘이를 기다리고 있었네. 오늘이를 보자마자 이무기가 마른하늘에 벼락치듯 묻는구나. “욕심이 너무 많대요. 야광주를 하나도 아니고 세 개씩이나 갖고 있어서 용이 못 되었다고 하네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두 개를 주고 나면 바로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무기는 오늘이에게 야광주 두 개를 쥐어주고 바로 용이 되어 다섯 가지 색깔의 아롱다롱한 구름을 피어올리고 뇌성벽력을 치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오늘이와 매일이는 다시 발길을 재촉하여 연화못에 이르렀네. “연꽃나무야. 윗가지의 꽃을 꺾어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주면 다른 가지에도 꽃이 활짝 핀다고 하더구나.” 그 말을 듣고는 연꽃나무가 즉시 오늘이에게 윗가지 꽃을 꺾어준다. 오늘이가 윗가지의 연꽃 한 송이를 받아 향내를 맡아본다. 아, 그런데 저 연꽃나무를 보라! 가지가지마다 고운 꽃이 피어오르는구나. 아름다운 향내를 뿜어내는구나. 오늘이와 매일이는 다시 가장 먼저 부탁을 받은 장상 도령에게 바쁜 걸음을 돌렸지. 흙바람을 맞으며 두 사람은 걷고 또 걸어 드디어 서천강가 흰모래 땅에 있는 별충당 정자에 도착하는구나. 아직까지도 여전히 글만 읽고 있던 장상 도령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한다. “하하하! 왜 언제까지 여기서 글만 읽고 있어야 하는지요.” “여기 있는 매일 낭자와 인연을 맺으시면 만년영화를 누리게 됩니다.” 장상 도령과 매일 낭자는 한눈에 서로가 천생배필임을 알아보고 그날로 바로 부부가 되어서 오래오래 잘살게 되었다는데….
매일과 장상의 노래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다. 풀이는 다음으로 미룬다.
오늘 오늘 오늘이라 달도 좋아 오늘이여 오늘 오늘 오늘이라 날도 좋아 오늘이라 매일 장상 오늘이면 성도 얼마나 가실 것이냐 오늘 날은 날이 좋아 달 중에도 상달이여 날 중에도 상날이여 오늘 오늘 오늘이라 달도 좋아 오늘이여 오늘 오늘 오늘이라 날도 좋아 오늘이라 매일 장상 오늘이면 성도 얼마나 가실 것이냐 달 중에도 상달이여 날 중에도 상날이여 매일이는 땅 사람 장삼이는 하늘 사람 매일이는 여자이고 장삼이는 남자이외다 옥황에는 흉년지고 지황에는 시절 좋아 매일이와 장삼이는 지황에 얻어먹으러 오라 날 좋은 날은 일을 하여 얻어먹되 품삯을 주면 돈 한푼씩 거슬러주고 비 온 날은 신을 삼아서 얻어먹되 품삯을 주면 돈 한푼씩 거슬러주고 얻어먹고 살았수다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영등(바람의 신)을 모시는 큰 굿인 영등굿을 촬영하기 위해 지난 3월 제주도를 찾았을 때, 필자는 바람신의 조화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3월은 음력으로 2월, 우리 조상들은 이 달을 영등맞이를 하는 ‘바람달’ 또는 ‘영등달’이라고 불렀다. 2월 초하루 오전 1시경에 바람의 여신인 영등이 하늘에서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의 생활을 하나하나 살피고 다니다가 보름(15일)이나 20일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영등이 내려오는 2월 초하루를 ‘영등날’, ‘바람님날’이라고 부른다. 보통 이때부터 꽃샘바람이 분다.
물영등 바람영등
바람이여, 정말 짓궂은 바람이여! 하루에 날씨가 여섯 번도 더 변한다는 탐라. 꽃을 시샘하는 바람, 즉 꽃샘바람이라 그런지 정말 시샘이 많다. 그래서 변덕도 심하다.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어오는지 모를 정도로 짓궂다. 바람은 짓궂고도 사납다. ‘이월 바람에 쇠뿔도 오그라든다’는 탐라의 속담처럼.
와흘로 가는 길목에서 검은 구름이 한라산 언저리에 낮게 깔린 동네를 지나가니, 비바람이 불고 회오리가 몰아친다. 그뿐이랴! 돌아오는 길에는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하더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겨울 날씨로 변한다. 시야에서 한라산도 없어지고 수평선도 사라진다. 이것이 봄이냐 겨울이냐! 이 눈보라 속을 어떻게 헤쳐나가나 걱정하고 있는데, 어느덧 길은 제주시로 접어든다. 언제 눈이 왔느냐는 듯이 햇볕이 쨍쨍 내리쬔다.
바람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해하며, 택시 운전을 하는 중년의 아주머니에게 바람의 여신 영등할망에 대해 물어보았다.
“영등할망이 들어오는 날이라서 날씨가 이리도 매섭구먼!”
“지금처럼 바람이 심하게 불고 눈발이 몰려오면 옷 자랑 하려고 두꺼운 옷을 껴입고 오는 부자영등이 온다 하고, 날씨가 따뜻하면 옷을 별로 걸치지 못하고 오니까 거지영등이 온다고 하지요.”
“아! 부자영등, 거지영등도 있었군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재미있네요.”
전국적으로는 영등할망 또는 영등할머니를 ‘물영등’과 ‘바람영등’으로 나눈다. 영남에서는 2월 초하루에 비가 오면 ‘비영등 드린다’고 하고, 바람이 불면 ‘바람영등 드린다’고 한다. 2월 초하룻날 비가 오면 올라갈 때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올라갈 때마다 바람이 분다고 하는데, 비가 와야 풍년이 든다는 믿음은 전국적이다. ‘영등할망’이 옷을 입고 우장을 쓰고 오면 비가 오고 풍년이 든다는 것이다.
여수 돌산에서는 비가 오면 보리농사에 좋고, 바람이 불면 고기잡이를 못하기 때문에 비영등이 내리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신안 방월리에서는 물영등이 내리면 농사가 잘된다고 하고, 영등이 올라간 날 장닭의 꼬리가 팔랑거릴 정도로 바람이 불면 시절이 좋다고 전한다. 진도 굴포에서는 12일에 바람이 불고, 영등할미가 하늘로 올라가는 20일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영덕에서는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영둥떡’을 해서 ‘영둥할매’에게 바친 뒤, 1년 내내 고기가 많이 잡히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바람의 여신 영등은 혼자서 다니지 않고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다니는데, 이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비가 오고 딸을 데리고 오면 바람이 분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며느리가 물영등이고 딸이 바람영등이다.
경기 가평에서는 ‘영등할머니’가 딸을 데리고 오면 다홍치마를 휘날리게 하느라고 바람이 불어 흉년이 들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며느리가 미워서 다홍치마를 얼룩지게 하느라고 비가 내려 풍년이 든다고 한다. 제주에서는 딸을 데리고 올 때는 딸의 치마를 너울거리게 하고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해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보이려고 ‘영등할망’이 심술을 부려서 보름 내내 바람 잘 날 없다고 생각한다. 구례 마산에서는 딸과 같이 오면 바람이 부는데, 이는 이 고을 저 고을을 다니면서 구경하라고 바람이 부는 것이라 한다. 어쨌든 바람영등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흉년을 걱정하게 만든다.
제주에서는 영등이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는 며느리를 밉게 보이게 하려고 비를 몰고 온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구례 마산에서는 ‘영등할매’가 며느리하고 같이 오면 비가 오는데, 이는 며느리를 미워하여 며느리의 몸이 흠씬 젖으라고 비를 내리는 것이라 한다.
친정어머니와 딸은 서로 좋아하지만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는 불화와 갈등이 많은 인간세상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신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여신 영등의 뜻과는 반대로 딸을 데리고 오면 흉년이 들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지 않는가 말이다. 사람들은 영등의 딸보다 며느리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 딸보다 며느리라! 딸은 시집 가면 남이요, 며느리는 내 식구라고 생각하던 전통시대의 사고를 반영한 게 아닌가 한다.
정성을 다해 곳곳서 영등맞이
바람의 여신 영등도 원래는 세 자매 신이었다. 영남과 강원 일부 해안에서는 영등의 맏이를 ‘상칭’(큰손 또는 큰할매), 둘째를 ‘중칭’(중간손 또는 둘째 할매), 막내를 ‘하칭’(막손, 끈티손 또는 셋째 할매)이라고 하여 같이 모신다. ‘상등할미’ ‘이등할미’ ‘하등할미’라고 하는 곳도 있다. 이들 세 자매가 각각 며느리나 딸 중 한 사람을 대동하고 인간세상을 보러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데, 지방마다 약간 다르지만 예컨대 울산에서는 상칭, 중칭은 초하룻날 왔다가 상칭은 초닷샛날, 중칭은 보름날 올라가고 하칭은 보름날 내려와서 스무날 올라간다고 한다. 또 영등을 모시고 함께 내려온 ‘수부’라는 부하는 보름이나 20일에 올라간다고 한다.
이 기간에 집집마다 영등맞이를 하는데, 이를 ‘영등 모신다’ ‘영두한다’고도 했고 ‘바람 올린다’고도 했다. 변덕이 심한 바람의 신이니 성질이 까탈스러울 수밖에! 인간들은 흉·풍년을 결정할 힘과 영험을 지닌 여신 영등의 비위를 맞추느라 온 정성을 다한다. 정월 그믐날 문전에 황토를 깔고, 사립문에는 푸른 잎이 달린 댓가지 몇 개를 꽂은 금줄을 걸어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
영등할머니를 설광에다 모시거나 뒤뜰 담 밑에 모시며, 향토 흙을 놓고 대나무를 꽂고서 오색실과 고운 천을 매단다.
이날 새벽에 주부가 장독대나 부엌에 정안수를 떠놓고 비린내 나지 않는 생선, 비늘 없는 생선, 나물, 떡, 무찌개, 오곡밥을 해서 놓은 뒤 바람이 순조로워 농사가 잘되고 가정에 평안이 깃들기를 빈다. 이날을 작은 설날이라 부르며 콩·나락·오곡을 해 뜨기 전에 볶아먹는다. 영등할머니 오시라고 물 떠놓고 빈다.
음식상은 영등할머니가 오는 초하룻날, 나흗날, 아흐렛날, 마지막손(영등할머니가 올라가는 날)인 열아흐렛날 등 네 번 차린다.
15일에 올려보낼 때는 수부상을 차려 수부제를 함께 지내는데, 수부는 풍신을 모시고 다니는 신이라 하며 수부상에 썼던 음식은 수저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먹는다.
해안가에서는 바다의 듬북이를 뜯어다가 삶아서 가루를 내어 쌀떡을 만들어놓고 “바람님, 잘 잡수고 가시고 잘되게 해주십시오”라고 빈다. 2월15일 바람님이 하늘로 올라가기 전까지 무엇이든 바람님 앞에 먼저 올리고,
밖에서 먹을 것이 들어오면 반드시 장독대에 내놓았다가 먹는다고 한다.
이 기간에는 농사일이나 바다일을 비롯해 물건을 사고 파는 일, 심지어는 빨래도 하지 않는 등 엄격한 금기(禁忌)가 뒤따른다.
해산물 곡물 씨 뿌려
제주도 민중들에게 바람의 신은 전국의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영등할망’이다. 그런데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굿에서 영등대왕의 본풀이가 나온다. 제주도에서 영등할망과 다른 영등대왕을 만든 이들은 후대의 남성 심방들이 아닌가 한다.
조선시대 후기에만 하더라도 바다에 나갔다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졌을 때 탐라의 뱃사람들은 ‘백록선자여! 백록선자여! 선마고여! 선마고여!’ 하며 자신의 신들을 불렀다고 전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뱃사람들에게 ‘가남보살!’을 부르라고 시키는 영등대왕은 아마도 나라가 무너진 이후 근대 초기 심방들의 작품이 아닌가 한다. 어쨌거나 제주의 민중에게는 여전히 바람의 신은 여신 영등인데도 굿에는 영등할망이 아니라 영등대왕이 나온다. 그래서 심방들은 영등할망을 위해 영등하르방을 만들고, 영등대왕을 위해 ‘영등나장’, ‘영등도령’을 만들어서 일곱 영등을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한 가족으로 만들었다.
영등대왕은 무휴(無)에서 솟아났으며, 인간세상 사람도 아니고 저승 사람도 아니며 요왕(龍王) 사람도 아니었다.
영등은 요왕 황저에 들어가 바다 깊은 곳에서 동정국의 아씨와 서정국 부인, 그리고 선녀 셋이서 나발이펑개에서 놀기를 좋아하였다.
봄이 가까이 오고 있던 어느 날 큰 고동나팔을 불며 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살려줍서! 살려줍서!” 소리치는 보제기들의 소리가 들렸다.
영등이 급히 바다 쪽으로 달려가 보니 한림읍 한수(翰洙)리의 보제기들이 탄 배가 풍랑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그 배가 사람을 잡아먹는 외눈박이 거인들의 땅으로 떠밀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등이 말했다.
“저 사람들을 구해서 살려내리라!”
영등이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앉자 배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영등이 그 사람들을 전부 바위 속으로 숨겨버렸다.
그때 외눈박이들이 그들을 잡아먹으려고 개를 데리고 들어와서 영등에게 묻는다.
“좋은 반찬이 오고 있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
“무슨 소리냐? 나도 그런 걸 주우려고 나와 앉아 있는데 아무것도 못 봤다.”
영등이 시치미를 떼자 외눈박이들은 할 수 없이 다 돌아갔다.
영등은 보제기들을 바위에서 나오게 한 뒤 배를 내놓아 보내며 말했다.
“이 배를 타고 ‘가남보살! 가남보살!’을 외우며 가라!”
영등은 배 뒤에서 부드러운 바람을 보내어 보제기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보제기들은 배를 탄 뒤 열심히 “가남보살! 가남보살!” 하고 불렀다.
외눈박이 땅을 떠나 거의 한 수리 가까이 온 보제기들은 마을 앞 한곶이 보이자 안도하였다.
“이제 다 왔는데 ‘가남보살’을 아니 부른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돛을 내린 보제기들이 배를 대려고 할 때, 홀연히 강풍이 일어서 그들을 다시 외눈박이 나라로 불려보내고 말았다.
영등이 때마침 그 자리에 나와 앉아 있었다. 보제기들이 우루루 그에게로 가서 빈다.
“제발 다시 한번 살려주십시오!”
“그때 내가 뭐라고 하였더냐?”
영등은 짐짓 꾸짖었지만 어떻게 하랴.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직감한다.
“이번에는 ‘한곶’에 가더라도 ‘가남보살! 가남보살!’을 잊지 말고 부르며 다니거라. 그리고 이후에도 영등달 초하룻날엔 나를 기억하거라!”
그때 보제기들은 조심조심 ‘가남보살!’을 부르며 한 수리까지 돌아왔다.
그 뒤에 냄새를 맡고 잔뜩 화가 난 외눈박이들이 영등을 찾아왔다.
“당신 덕분에 좋은 반찬을 못 먹었다!”
영등이 딴전을 피웠으나 외눈박이들은 속지 않았다. 외눈박이들은 분풀이로 영등을 긴 칼로 세 토막으로 잘라 죽여서 바다에 내던져버렸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영등의 머리는 소섬으로 오르고, 발치거리는 한 수리 비꿀물로 오르고, 한가운데의 잔등은 지금의 성산(城山)인 청산으로 올랐다.
세상사람들은 바다에 수중액을 막아준 영등의 은혜를 생각하여 소섬에서 정월 그믐날 굿을 하고, 초하룻날 비꿀물에 오고, 청산은 초닷샛날 영등굿을 시작한다.
이제, 독자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먼저 단군신화를 보자.
“환웅은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의 산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이를 신시(神市)라 일렀다. 이 분이 환웅천황이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면서 인간의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맡아 인간세계를 다스리고 교화했다.”
단군신화의 풍백, 우사, 운사는 위의 글에서 누구를 가리키는가. 풍백, 우사, 운사는 여신인가, 남신인가.
‘백(伯)’은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풍백은 ‘바람 우두머리’, 즉 바람의 신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바람님’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영등이다. 그렇다면 우사는 ‘물영등’일 테고, 운사는 ‘바람영등’이리라.
왜 바람신을 백(伯)이라 하고 나머지를 사(師)라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 풍백이 더 높은 신이었던 까닭이다. 바람의 여신 영등이 두 자매 또는 며느리 딸을 데리고 다니는데, 물영등 바람영등이니까…. 바람영등을 풍사(風師)라고 하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다. 풍백과 겹치니까. 그래서 구름으로 표현했을 터이다.
그렇다면 ‘여신인가, 남신인가’ 하는 질문은 필자의 ‘신화읽기’와 함께해온 독자 여러분을 위해 남겨놓고자 한다. 그 질문은 또한 ‘바람의 여신 영등과 바람의 신 영등대왕은 어떤 관계일까?’ 하는 질문과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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